제 4 장 경무대의 안방
3
다음날 정시명은 조태준에게 문진국을 만난 일을 이야기하였다.
조태준은 쌍수를 들어 환영이였다.
《문진국! 그 친구 괜찮은데. 기어이 제 걸음으로 제 길에 들어섰군. 그 친굴 믿어도 될겁니다. 전 그전부터 문진국과 속에 있는 얘기를 하고싶었습니다. 사실 지금 주위를 돌아보면 그러루한 인간들이 많습니다.》
《도와주라구. 얼마나 좋은 일이요. 나라앞에 사람구실하고저 하는것보다 더 훌륭한게 어데있소.》
이날 저녁에 정시명은 조태준과 문진국을 새로운 투쟁의 주역으로 내세우기로 김명호와 합의하고 그들을 따로 만났다.
《잘만 하면 리승만과 리범석사이에 영원히 화합이 될수 없는 쐐기를 박아넣을것 같습니다.》
조태준이 정시명의 설명을 듣고나서 신명이 나 들썩거렸다.
김명호가 핀잔조로 말했다.
《그렇게 문제를 설정해서야 안되지요. 두놈사이에 쐐기나 박아서 뭘하겠소. 문제는 리승만이 현 단계에서 제 마음대로 민족의 리익에 저촉되는 일을 마구 벌리지 못하도록 하는거요. 우리의 〈흥국상회〉가 민족의 리익을 지켜나선 하나의 보루라는걸 언제나 명심해야 합니다.》
《옳소. 리승만도 겨레를 위해 좋은 일만 해나간다면 구태여 우리가 그놈을 과녁으로 할 리유가 없소. 이번 벌리게 될 투쟁은 전술적으로는 제놈의 지반을 확대시키려는 리승만의 독재적야심을 경계하고 리범석이 자기의 후원세력을 잃지 않도록 해주는거요. 리범석이 팔다리 성해야 운신을 제대로 할게 아닌가. 당면해서는 리범석에게 〈족청〉을 넘겨주는것이 자기의 정치적지반을 허무는 자살행위라는걸 깨닫도록 옆에서 잘 일깨워주오.》
문진국이 정시명의 이야기를 심중히 듣고있는데 조태준이 방법을 내놓았다.
《문선생, 리범석에게 〈대한청년단〉이 유켄트와 같은것이라는걸 말해줍시다.》
《유켄트라니?… 그건 무슨 소리입니까?》
《히틀러를 숭배하던 도이췰란드의 청년단이름이 유켄트였소. 사실인즉은 리범석이 우리 〈족청〉을 그렇게 꾸려보자고 했는데 그걸 역리용해서 리승만이 발판넓히기놀음을 파탄시키는데 리용합시다.》
매사에 기발하고 착상력이 있는 조태준이 제가 꺼낸 말에 스스로 흡족해서 짧은 머리칼을 연신 쓰다듬는다.
정시명도 그 소리가 그럴듯 하였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부터 크게 끄덕이였다.
《묘안이요, 묘안! 그 말 하나면 리범석은 정신이 번쩍 들게요. 지금 리범석의 립장은 어떻소?》
《사전약속은 파기해버렸는데 리승만측에서 너무 야단이니 호미난방격이지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며칠전에 통합을 위한 실무인원들을 보내달라고 〈독촉〉계에서 요구해왔는데…》
조태준이 문진국의 말을 받아 대답을 이었다.
《그건 내가 잘라던졌지요. 총리가 나에게 사전에 전화를 했댔소. 내 재량권에 맡긴다고 말이요. 그게 보내지 말라는 소리이지요.》
《문군, 조동무의 말대로 쑤셔보오. 〈대한청년단〉이 히틀러를 악질적으로 옹호해나선 유켄트와 같은것으로 될것이라는것을 인식하면 리범석이 주대있게 나갈거요.
사실 히틀러는 유켄트와 같이 파쑈적이고 분별을 잃은 청년단에 크게 의거하고 덕을 단단히 보았소.
앞으로 〈대한청년단〉이 〈서북청년회〉와 같은 망종조직이 돼서 독재자의 기반으로 될것은 명백하오. 첫 단계의 리범석과의 사업은 이런 정도로 합시다.》
《알았습니다.》
《이번 사업이 끝나면 리범석을 어떻게 하겠는가 하는걸 같이 연구해봅시다. 문동무가 그 방향에서 자기 사업을 지향시켜 나가야겠소.》
《예.》
문진국은 《흥국상회》가 부여한 첫 임무수행에 달라붙었다.
《유켄트》에 대한 문진국의 말을 들은 리범석은 대뜸 갓 면도한 자리가 푸릿하던 두볼이 주홍빛으로 타들며 주먹으로 책상을 쳤다.
《유켄트!… 유켄트!… 옳아. 유켄트야. 자네 참 신통하게 비유하였네. 유켄트를 리승만에게 넘겨줘서야 안되지. 가뜩이나 제왕노릇하며 돌아치는 리승만이 유켄트까지 가진다면 어떻게 되겠나. 그건 독재의 어깨에 날개를 돋쳐주는 격이야. 안되네, 안돼.》
방안이 떠나갈듯 크게 고함을 지르고난 리범석은 즉시에 《족청》단장을 대리하는 사람과 조직부장 조태준을 호출하였다.
리범석은 그들에게 이렇게 호통을 쳤다.
《〈대한청년단〉가입수속은 일체 중지하라. 이제부터 〈대청〉(대한청년단)결성에 관여한 〈족청〉의 일체인원을 철수시키시오.》
조태준이 리범석의 의중을 떠보느라고 우정 미련을 부려보았다.
《그러면 리승만대통령이 크게 노하지 않을가요?》
《뭣이? 조직부장은 언제부터 리박사눈치보기부터 하게 되였나. 그리고 지시를 집행하기전에 타산하는 법은 언제 배워둔거구. 〈대한청년단〉은 유켄트란 말이야. 히틀러가 철부지망나니들을 전부 그속에 집어넣고 〈하일 히틀러〉를 온 도이췰란드땅에서 울리게 한걸 자네들은 알테지. 리승만은 지금 제 발밑에 유켄트를 두자고 몸살이야.
빌어먹을, 아침저녁으로 〈족청〉해산령을 언제 내리느냐고 물어오는 까닭을 이젠 알만해. 당장 손을 떼!》
그들이 돌아가자 리범석은 문진국의 의견에 따라 자기와 은연중 맥을 같이하고있는 문교부장관 안호상과 농림부장관, 내무부장관을 불러들였다.
그들은 다 리승만의 직계로 혹은 심복인물로 통하던 인물들이였지만 리승만이 대통령으로 된 후 모든 권력을 제 손아귀에 독점하려고 미쳐돌아가는바람에 자연히 반기를 들고나선 인물들이였다. 우익적인 청년단체들을 제놈의 지휘봉에 두려는 독재적야심에 대해서도 정면으로 도전할만 한 건덕지가 없어 안달아하던 그들이였다.
리범석의 말을 들은 그들은 선뜻 동조하여 나섰다.
조봉암이 자기의 립장을 바꾸게 된데는 연고가 있었다.
며칠전에 궁술장에서 조봉암은 정시명을 만나게 되였다.
궁술장에서 다방으로 자리를 옮긴 그들은 장시간 시국이야기를 나누었다.
정시명은 이 자리에서 리승만의 정당재편성놀음이 가지는 위험성에 대하여 신랄하게 까밝히면서 리승만을 업고 자기 리속이나 볼노릇이지 어째서 그 품속에 깊숙이 말려들어 가느냐고 점잖게 경고하였던것이다.
리범석은 장관들중에서 발언권이 비교적 강한 조봉암이까지 지지자로 나서자 더욱 승이 나서 우익청년집단을 하나로 묶어 손아귀에 틀어쥐려는 시도를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행위라고 비난의 도수를 높이였다.
리승만은 리범석이 끝까지 청년단체합동놀음에 도전해나서자 하는수없이 가장 세력이 큰 우익청년단체인 《족청》은 제외하고 《서북청년회》, 《대동청년단》, 《독립청년단》 등만 가지고 《대한청년단》을 조작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대동청년단》 단장 리청천도 그리 달가와하지 않으면서 25살이상의 청년들을 신익희가 당수노릇하는 《대한국민당》에 들여보내고 자신은 그의 부당수로 되였다.
정시명은 이 사건을 발화점으로 리승만과 더욱 주견을 가지고 맞서나가도록 문진국과 조태준의 사업을 밀고나갔다.
《대한청년단》의 창립을 선포하는 날이 왔다.
이날 문진국은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행사에 리범석을 초빙하여 축하연설을 하도록 모임주최자들과 막후교섭을 하게 했다.
《대청》의 창립을 기를 쓰고 반대하여온 총리가 축사를 하겠다는것이 주최자측으로서는 뜻밖이고 반가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행사에는 리승만이 프란체스까까지 앞세우고 참가하였다. 《대청》의 총재로는 리승만이 들어앉게 되였던것이다.
리승만은 리범석이 참가하여 축사까지 한다는 소리에 못내 의아해 하면서도 희한한 일이기도 하여 반갑게 맞아주었다.
창립이 선포되고 역원들의 명단이 발표된 후 주최자가 래빈축사가 있겠다며 리범석부터 내세웠다.
만장의 우뢰같은 박수를 받으며 리범석이 안경을 번뜩이며 연단에 나섰다.
그는 서울운동장을 꽉 채운 젊은 망나니패거리들을 쭉 훑어보고는 컹컹 잔기침을 하고나서 《광복시대 청년들의 사명》에 대하여 지지하게 엮어갔다.
리범석은 팔을 머리우에 번쩍 올리고는 선이 굵게 휘휘 내저으며 한창 떠들어대다가 슬쩍 화제를 바꾸었다.
《에, 오늘 결성되는 〈대청〉은 전적으로 대통령각하를 신봉하고 받들어야 합니다. 지난 2차대전시기 도이췰란드의 유켄트가 히틀러를 받들던것처럼말입니다.
사실상 방금 만장일치로 통과된 본단의 강령과 규약도 그렇게 되여있다고 본인은 깊이 확신해마지 않습니다.
유켄트!- 나는 대통령각하의 유켄트에 충심으로 되는 경의와 축복을 보내는바입니다.》
이제 사회의 각계에 퍼져 폭풍같은 반향을 불러일으키게 될 이야기를 리범석은 짐짓 입가에 엉큼한 웃음까지 담은채 천연스럽게 뱉아던졌다.
삽시에 운동장에 운집한 회의참가자들은 갈가마귀떼처럼 소란을 피우기 시작하였다.
주석단중간에 권태에 지친 피로한 얼굴이 무거워서 주먹에 턱을 고여들고 리범석의 축하연설을 귀등으로 스쳐보내며 딴 생각을 하고있던 리승만은 청중의 소란에 눈을 멀뚱멀뚱거리다가 옆에 있던 단장이 귀띔해서야 눈을 흡떴다.
《뭐, 유켄트라구?!》
리승만이 소영각같은 소리가 마이크를 통하여 운동장에 울려퍼졌다. 노할 때만 항용 그러하듯 다람쥐볼처럼 처진 주름잡힌 볼편이 실룩거리였다.
리승만은 두눈을 흡뜨고 리범석을 당장 난장을 치듯 손가락으로 앞탁을 두드려댔다.
《그러니 나더러 히틀러라는거야? 고현놈!》 그 소리가 다시 운동장에 웅웅거리며 울리자 누구인가 마이크를 꺼버리였다.
리승만은 천둥같이 화가 나서 프란체스까를 데리고 주석단에서 퇴장해버렸다.
그러자 회의장은 일진광풍에 휩싸인 갈숲처럼 소란스러워졌다.
망나니패들이 기가 나서 무대에 연신 뛰여올랐다.
회의주최자측에서 리범석에게 퇴장해줄것을 요구하자 리범석은 그냥 연탁에 버티고 서서 운동장을 노려보기만 하였다.
회의사회를 맡아보던 리승만의 심복졸개인 경무대경찰서 부서장이 리범석의 옷섶을 단단히 탈아쥐고 들이댔다.
《자기의 〈족청〉 사람들은 한놈도 보내주지 않은 존경하는 총리각하, 당신이 도대체 이 자리에 축사요 뭐요 떠들어댈 체면이 있습니까?
뭐, 유켄트라구? 그래 대통령이 히틀러면 당신은 겝벨스나 히물러쯤 된다는거요?》
밸머리 사나운 리범석이 이 모욕적인 삿대질을 거저 넘길리 만무였다.
리범석은 주석단팔걸이의자에 가서 앉아 소요를 일으키고있는 운동장을 노려보다가 《여-》하고 뒤쪽에서 대기하고있던 호위경찰들을 불러댔다.
경찰 대여섯이 달려왔다.
《이놈들을 경찰청에 압송해가! 총리의 인신을 중상모독한 죄야.》
그는 자기와 연탁에서 몸싸움을 벌린 놈팽이들의 면상을 향해 손가락을 창끝처럼 박았다.
주석단우에서 몇놈의 리승만졸개들이 목덜미를 잡히여 끌려가는것을 보자 운동장을 메운 패당들의 흥분은 고조에 이르렀다.
한놈이 주석단에 올라와서 메가폰을 통해 소리질렀다.
《사회! 긴급제의요! 총리의 축사에서 문제발언들을 당장 취소시키며 체포되여간 동료들을 즉각 석방할것을 대회결의로 채택할걸 제의하오.》
다시 확성기가 웅웅거리기 시작하였다.
사회를 맡아보던 《대한청년단》 최고위원 유진산이라는 자가 가결에 붙인다고 선언하였다.
대회참가자들이 기다린듯 너나없이 일제히 손을 들었다.
《좋습니다. 만장일치로 통과되였습니다. 존경하는 총리, 사죄하시오. 사죄. 총리각하에게 대회의 결의안을 제출하는바입니다.》
유진산은 리범석에게로 돌아서서 이렇게 사뭇 정중하게 통보하였다.
《잘은 놀고있다. 총리가 늬들의 놀음에 놀아날줄 아느냐.》
리범석이 안경을 벗어들고 아래를 향해 눈을 찔 빨며 한마디하자 운동장은 다시 휘파람소리, 고함소리, 히히닥닥거리는 소리로 어지럽기 그지없었다.
대회를 더는 수습할수 없음을 알게된 유진산이 《총리께서 심사숙고하기 바랍니다.》하고 위협조로 한마디 하고는 곧 대회의 페회를 선언하였다.
《흥, 네까짓것들이 누굴 믿고 지랄소동을 벌리는지 내 알만하다. 이 나라에 법이 있고 총리라는 자리가 무서운 자리라는걸 내 보여주마.》
리범석이 이렇게 벼르며 일어서자 유진산은 주석단에서 서둘러 꽁무니를 빼서 자동차를 타고 경무대로 질주하였다.
리범석은 즉시에 기동경찰대를 호출하여 그를 추격하여 체포하라고 을러멨다.
경무대정문까지 뒤쫓아갔다가 헛물을 켠 경찰대는 유진산이 나올 때를 기다려 경무대의 철울타리를 겹겹이 에워쌌다.
이렇게 되여 나라의 경찰이 국권을 한손에 틀어쥐였다고 호언장담하는 대통령의 자택을 포위하는 정치사상 전무후무한 일대 정치만화가 연출되였다.
리범석은 포위환을 며칠동안 풀지 않았다.
리승만이 대노하였으나 국방장관과 내무장관이 한패가 되여 달려드니 어데다 해볼데가 없었다.
그는 하는수없이 사회부장관을 시켜 유진산을 야밤중에 은밀히 경무대 뒤문으로 빼내여 피신하게 하였다.
이 사실을 때늦게 알게 된 기동경찰대는 즉시에 사회부장관의 집을 기습하여 유진산을 체포하였다.
사태가 복잡하게 번져지자 리승만은 완전히 미칠 지경이 되였다.
그는 유진산체포에 동원된 경찰들과 경무대를 포위했던 기동경찰대 대장 그리고 수도경찰청장을 즉시 해임시키고 유진산을 석방하라는 대통령의 특별지시를 내렸다.
이 소식이 하지의 귀에까지 들어가 노불이 리범석을 찾아와서 사태를 완화시키라고 압력을 가하였다.
리범석이와 광복후 계속 어울려지내면서 그의 후견인으로 자처해온 《족청》고문 써젠트까지 찾아왔다.
리범석은 미국사람들까지 개입하자 윤치영과 조봉암을 불러오고 그 자리에 문진국과 조태준도 참가시켜 수습방도를 협의하였다.
《물러서지 말아야 합니다. 이번에 정부측에서는 대통령의 독무대를 허용할수 없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조태준의 발언에 윤치영도 조봉암도 지지해나섰다.
문진국이 의견을 내놓았다.
《내무장관님, 유진산의 엉치를 한번 쑤셔보시지요. 그놈이 〈대청〉조직과 관련해서 분명 꿀떡 삼킨 재물이나 돈이 약차할겁니다. 한 이태 콩밥 먹일거야 없겠습니까. 경찰이 리승만의 가병들이라고 계속 국민여론에 쫓겨만 다니겠습니까.
이번에 좀 한방 잘 울려서 경찰이 때벗이했다는 소릴 듣지 않겠습니까?》
《그래, 그렇단 말이요. 문비서 말이 신통하우.》
조봉암이 그 말이 그럴상싶어 선뜻 북을 쳐준다.
윤치영도 여럿의 말에 단단히 속을 도사리고 일어섰다.
윤치영은 내무부에 올라가자 마침 발급한 리승만의 징계명령서를 가지고온 경무대 비서실장 리기붕의 앞에서 그걸 갈기갈기 찢어 휴지통에 집어던지며 이렇게 자기의 후배를 훈계하였다.
《유진산이 원래 협잡으로 〈대청〉조직자금을 뫃고 재물을 사취한 죄가 있어 우리가 뒤를 캐던 놈이요.
헌데 이번에 나라의 국무총리의 발언 몇마디 걸고 공석에서 모독했으니 나라의 기강을 바로세우려면 법대로 다스려야 할게 아닌가. 헌법의 최고수호자인 대통령이 위법행위를 두둔해서야 되겠는가.
실장이 옆에서 잘 보필해야지 대통령을 엉망으로 만들어놓은 다음에는 초벌주검을 당할자 누구라는걸 알아서 처리하게.》
유켄트로부터 시작된 사건은 마치도 굴러가는 눈덩이처럼 그냥 딩굴어가며 커져갔다.
사건은 《국무회의》와 《국회》에까지 상정되여 대란투극까지 벌어지게 되였다.
리범석과 윤치영, 조봉암을 일방으로 하고 리승만과 장택상, 임영신을 타방으로 하는 행정권의 패싸움이 수습할수 없을 지경으로 되자 리승만은 리범석에게 총리직에서 사직하라고 요구하였다.
그러나 리범석은 리승만의 면전에서 험상궂은 눈찌로 쏘아보면서 단호히 거절하였다.
《나는 사표를 낼만 한 죄가 없소. 나는 앞으로도 국위를 훼손하는 여하한 시도에 대해서도 그가 누구의 세력을 등에 업고있건 〈국회〉가 나에게 부여한 공권력을 발동하여 끝까지 짓눌러버릴것입니다.》
정시명은 리범석을 내세워 쑤셔놓은 불집을 끄지 말고 계속 리승만을 견제하기 위한 투쟁을 줄기차게 벌려나가도록 하였다.
새로운 투쟁과제로 대통령중심제의 헌법을 내각중심제의 헌법으로 고치는 문제를 제기하였다.
7월 중순에 《국회》에 상정된 이른바 《맥아더헌법》을 놓고 그러지 않아도 내외여론이 강도높이 비판하고 있었다. 미국무성까지도 리승만의 통치에 대하여 머리를 기웃거리면서 은근히 리승만의 도전세력들에게 헌법개정을 시사하고 있었다.
이미 서울주재 미국령사 핸더슨은 《수의계》의 젊은 의원들에게로 고개를 돌리기 시작한 《국회》부의장을 불러다놓고 내각중심제를 연구해보는것이 좋으리라는 야릇한 암시를 주었다.
그런가 하면 미국대사로 정식 서울에 나타난 무쵸는 《한미행정이양》협상을 하는 회담의 휴식시간에 리범석에게 남조선의 정치현실과 리승만간의 실력상의 배리로 남조선에서 대통령중심제를 선택한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슬쩍 한마디 여운있는 소리를 했다.
미국무성의 이러한 움직임은 그러지 않아도 몇달 되지 않은 통치기간에 매우 치졸하고도 독재적인 작태를 련발하여온 리승만을 로골적으로 가르써 보는 인물들이 많아지게 하였다.
조태준과 문진국은 이러한 내외의 분위기를 가지고 리승만에 대한 공세전의 고삐를 늦추지 말라고 리범석의 등을 달게 하였다.
리범석은 곧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새로운 투쟁이 벌어졌다.
리범석쪽에서 들고나서자 《국회》쪽에서도 화답해 나섰다. 《수의계》가 선봉에 나섰다.
리승만은 《국회》안에서 가장 민감하고 돌진력이 강한 소장파의원들을 달래기 위하여 회장과 간사들을 불러놓고 우는 소리를 하다가 마지막에는 국체를 뒤흔드는데서 선도적인 소장파의원들을 모조리 체포하겠다고 을러멨다.
그것이 오히려 붙는 불에 키질이 되였다.
황철산이 어떻게 그걸 벌써 아느냐고 따지고 들면서 정보정치를 하느냐고 면박을 주었다.
권영호는 《이 문제는 각하께서 민심을 살피여 재고할 여지가 있습니다.》하고 접수할수 없다는 의향을 분명하게 했다.
리승만은 골이 났다. 권영호가 첫 직사탄을 맞았다.
권영호는 《독촉》에서 쫓겨나고 《대한국민당》에서도 쫓겨났다. 《독촉》의 부산지부장자리도 내놓게 되였다.
이에 반발한 권영호는 《국민당》청사를 나서는 길로 《국회》부의장이 당수로 있는 《민주공화당》청사를 찾아갔다.
그날중으로 《민주공화당》은 실무진들의 회의를 열고 권영호의 전당을 환영하였다.
《수의계》의 주장에 선참으로 호응해나선것은 김성수의 《한민당》이였다.
원래 김성수는 헌법이 정계에서 론의되던 첫 시기부터 내각중심제를 주장하였다.
《수의계》회원들의 활동으로 삼분의 일에 달하는 의원들이 헌법개정문제를 요구하여 나섰다.
리승만은 더는 어쩔수 없었다.
그리하여 개헌문제는 《국무회의》의 정식안건으로 상정되였다.
이 회의에서 리승만은 먼저 자기의 반대립장을 강하게 표명하는 이른바 《대통령조서》부터 발표하였다.
《본인은 적지않은 〈국회〉의원들이 헌법개정문제를 제기하고있으므로 국무회의에 상정시키게 된다.
그러나 본인은 아직 한해도 시행해보지 않은 국가헌법의 개정을 운운하는 주장은 국가의 존망을 위태롭게 하고 정치적무질서와 혼란을 자초하는 행위라고 인정하면서 반대한다.
정치권은 제도권에 적어도 한해나 두해의 유예를 주어봐야 될것이다.》
말하자면 한해나 두해정도는 소란을 피우지 말고 잠자코 지켜보기만 하라는것이였다.
리승만의 독선적인 망발에 화가 치밀어오른 리범석은 리승만의 조서발표가 끝나자마자 벌떡 일어나 반격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국무위원 여러분!
내각성원들이 대통령중심제밑에서 도저히 자기의 실력을 발휘할수 없다는것은 당신들도 실감하고있습니다.
대통령은 심지어 려권발급수표까지 하고있으며 한딸라의 외환반출도 시시콜콜히 통제하고 개입하고있습니다.
이러한 정치에 총리가 할 일이 뭐이며 도대체 민주주의란 어데 있습니까.
그러므로 나라의 행정부를 맡은 수장으로서 본인은 현 대통령중심제의 헌법을 개정하는것이 필요할것이라고 주장하는바입니다.》
그러자 외무장관자리를 타고앉은 장택상이 일어났다.
《나는 대통령각하의 조서가 정당하게 지적하였다고 봅니다.
미국의 정치를 보면 방금 각하께서 조서에서 제기한것처럼 대통령이 새로 선거되고 신정권이 발족되면 한해나 두해정도는 반대세력도, 지어 언론매체들도 사정을 보아주고 보기 쑤악스러운것이 있어도 참아줍니다.
말하자면 밀월기간이라 볼수 있지요.
그런데 지금 우리 행정부와 〈국회〉가 사회여론에 편승하고 방금 선을 보인 집권자에게 걸음마다 시비질이요, 앙탈질입니다. 요즘 신문이라는건 정부비방에 신바람이 났단 말이요.
여러분, 좀 자중해봅시다. 속을 크게 써보잔 말입니다. 그리고 내무부가 어정쩡해요.》
장택상은 이렇게 늘어진 어조로 리승만을 싸고돌면서 천연스럽게 금이발을 번쩍거리며 헤벌쭉거렸다.
이 모임장소에서는 누구도 대통령조서라는것이 장택상의 기안품이라는것을 모르고있었다.
리승만의 잔등 가려운데를 긁어주는듯 한 장택상의 아첨기가 력력한 넉두리에 오만상을 하고있던 윤치영이 날카롭게 반박했다.
《외무는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거요? 정부를 비판해야 할 〈국회〉와 여론의 권리를 무시하는겁니까? 신문이라는게 통치권의 눈치만 보고 비위맞추기만 할것같으면 그게 신문고유의 얼굴이 있는거요? 정치와 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들춰내서 바른 소리로 몰아가는게 신문이라는걸 아시오.》
윤치영은 앉은 자리에서 리승만의 입김이 서린듯 한 장택상의 넉두리를 둘러메쳐놓았다.
윤치영은 장택상이 서울경찰청장을 하면서 수많은 신문사들을 페간시켜 언론의 뒤발질을 무수히 당해온데 대하여 까놓고 그를 움쩍 못하게 해놓았다.
리승만이 앞으로 툭 삐여져나온 두툼한 입술을 꾹 다물고 윤치영을 곱지않게 노려보다가 장택상이 다시 맞불질을 하려고 하자 손바닥을 귀바퀴에 넌떡 펴들어 제지시켰다.
《신문말이 나왔으니 내 한마디 합세다.
내 오늘 아침 김성수가 주관하는 서울신문을 보았는데 코코에 삐뚤어진 입방아질이요. 대통령이 기자들을 만나주지 않는다는 심술스런 수작도 있어. 신문이 좋은 말 기쁜 말 해준다면 내 따라가며 만나줄테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너무 뜯고 꼬집고해서 머리가 아파.
물론 듣기 거북한 말도 할 때는 해야하고 또 그걸 싫다고 눈빠는것도 못난사람들이지.
그러나 같은 말도 너무 들으면 귀가 쏜다 그 말이요. 달아날수도 없고… 그래 내 좀 생각이 있어. 외무장관이 한마디는 옳게 했어. 내무가 좀 무서워야 되지 않을가. 립건할건 딱딱 립건하구…》
리승만이 장택상과 찧고까불며 본문제를 어벌쩡하게 강목으로 몰아가는것을 눈치챈 리범석이 다시 개헌문제에로 말곬을 끌고나갔다.
리승만은 발밑에서 지글지글 끓고있는 불을 끄기 힘들다는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러자 리승만은 내무부에 있는 자기의 심복들을 윤치영 몰래 경무대에 끌어들였다.
음모적방법으로 개헌의 불을 끄자는 심산이였다. 얼마후부터 정계에 《국회》와해음모가 있으며 여기에 특정인물이 개입되여 있다는 괴문서가 나돌았다.
대대적인 검거선풍이 예견된다는 류언비어가 전해졌다.
《수의계》회원들에게 협박전화가 그치지 않았다.
개헌움직임은 더 전진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정치권을 마음대로 흔들어 제놈의 매국배족행위에 푸른등을 켜놓으려 하는 리승만에게는 커다란 심적압박감과 타격을 주었다.
정시명은 다시 수염을 기르기 시작하였다. 코수염을 짧게 하고 턱수염을 길게 하여 채수염으로 만들 잡도리를 하였다.
머리칼형태도 바꾸고 옷차림에도 주의를 돌렸다.
매사에 보다 심중하게 움직이였다.
그는 위험이 몸가까이에서 배회하고있다는 생각을 한시도 덜수 없었다.
정시명의 속내를 먼저 알아낸것은 례영이였다.
어느날 례영은 부엌에서 동자질을 하다가 《어머니, 아버님이 다시 수염을 기르는데 웬일일가요?》하고 신중하게 물었다.
《글쎄말이다. 내가 한번 어째서 구접스레 수염을 기르느냐고 했더니 웬걸 마누라에게 어울려서 마음이 가볍지 않느냐고 웃더라.》
《또 아버님의 뒤를 따르는 놈들이 있는가 봐요.》
《글쎄 내 생각도 그 생각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게 분명해.》
《아버님께 물어보세요.》
《네가 물어보려무나. 뭐 내 소리야 말 같애야 들어주지.》
《호호, 어머닌…》
민순임이 손을 내저으며 눈을 흘기자 례영은 까르르 웃었다.
저녁상을 물리자 례영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버님, 한가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엉? 뭔데… 어서 물으려무나.》
《아버님뒤를 따르는 놈들이 또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뒤를 따르는 놈들이?… 거 뭐 뚝 부러지게 밝힐 놈이 없지… 반동놈들이야 다 우리 뒤를 따르겠지.》
《야 참, 아버지.》
례영이 정시명의 팔을 잡고 아이들처럼 몸을 흔들며 매달리였다.
《각성을 높이는게 좋으면 좋았지 나쁠거야 없지. 나도 이젠 여기와서 이태를 넘기는데 조심이야 해야지. 우리 하는 일이 워낙 미국놈들과 그 앞잡이들의 나쁜짓을 징벌하는것이니 그놈들도 신경쓸건 자명한 일이 아니냐. 그래서 조심을 하는거다.》
정시명은 례영이 더 말을 꺼내지 못하게 꾹 박아놓았다.
정시명은 문진국의 위험신호가 전우들에게 알려질가봐 은근히 경계하고있었다. 놈들이 지명수배를 하기 시작하였다는것을 알게 되면 그의 활동을 여러가지로 제약하는 비상조치를 취할것이라는 위구심에서였다. 정시명은 싸움이 본격화되여가는 시점에 와서 한시도 묶이워있을수 없다고 생각하고있었다.
그러나 문진국의 위험신호는 곧 《흥국상회》의 모임에서 토의되게 되였다.
문진국이 어느날 조태준에게 이야기하고 조태준이 즉시로 안지생에게 보고하였던것이다.
《흥국상회》의 긴급모임이 열렸다.
안지생이 제기된 정황을 보고하였다. 지휘부의 안전을 세심하게 다져오지 못한 자기비판도 하였다.
모두가 펄쩍 뛰였다.
김명호는 결정적인 안전대책을 취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였다.
결정이 채택되였다.
《정향동지는 금일부터 지하에 들어간다. 정향동지의 움직임은 〈흥국상회〉의 승인밑에 관계자의 동행속에서만 허용된다.
안지생동지는 해당 결정의 집행에 대하여 〈흥국상회〉앞에서 책임질것이다.》
김명호가 결정서초안을 랑독하고 전우들이 손을 들어 찬성하자 정시명이 말했다.
《동지들, 나의 손발을 그렇게 얽어매놓으면 어떻게 하자는거요. 우린 〈국회〉에서 미군을 몰아내기 위한 투쟁을 본격화하기로 결정했소. 이 투쟁만이라도 결속한 다음 봅시다. 결정집행을 당분간은 보류하도록 했으면 합니다.》
정시명은 진심으로 간청하였다.
그러나 모두들 결정을 무조건 집행해야 한다고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여러가지 대책이 세워졌다.
안지생은 서울안의 여기저기에 여러개 거점을 새로 마련하였다. 그리고 한곳의 거처지에서 극상 보름을 넘기지 않도록 하였다. 《흥국상사》와의 거래도 일체 끊도록 하고 모든 처리를 최남수에게 맡겨놓았다.
움직일 때는 례영이와 아성이 함께 다니도록 하였다.
정시명과의 련계보장은 례영이와 안지생을 통하여 진행하며 《흥국상회》집체모임을 될수록 없애고 지휘성원들이 안지생과 사전협의없이 정시명의 거처에 드나드는것도 금지하였다.
안지생은 자신도 김구에게서 물러나 정시명과 성원들과의 련계보장과 지휘부의 안전대책에 전념하였다.
길철에게 정시명에 대한 수사선에 어떻게 하든지 김창기의 사람을 들여보내라고 부탁하였다.
정시명은 전우들의 보살핌을 무등 고마와 하면서도 새로운 생활체계, 사업체계가 자신의 활동을 구속하는데 대해서는 자주 불만을 표시하군 하였다.
그때마다 안지생은 고집스럽게 말했다.
《안됩니다. 정선생님, 제가 마동열동무한테 인계받은 임무입니다. 제 실책이 커서 지금까지 놈들의 기도를 모르고있었는데 이제부터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습니다.》
안지생이 이런 말을 할 때마다 정시명은 함박눈이 송이송이 내리던 잊지 못할 밤을 생각하며 목이 메이군 하였다.
(장군님께서는 무고하신지?… 김정숙녀사께서는 무고히 지내시는지?…
그밤처럼 분렬된 나라를 두고 밤을 지새우고계시겠으니 언제면 그분들의 마음속에 두터이 실린 시름을 가셔내게 될가?…
내가 정말 우리 장군님께서 아껴주시고 믿어주시던 그 해빛같은 자애에 무엇인가 보답이나 하고있는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