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경무대의 안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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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림속에 들어앉은 경무대의 여름밤은 서늘하였다. 보름에 가까워오는듯 터질듯이 차오른 놋대야같은 둥근 달은 수양버들가지로 어울려들고 비원의 련못에서는 붕어, 잉어들이 낮게 떠도는 하루살이를 잡아먹느라고 쩜버덩거린다. 횅창하게 밝은 빛은 잔주름 깔린 얼음판같은 수면우로 쏟아져내리고 이따금 불어오는 찬 바람이 물우에서 바스러진다.

행정부의 선포를 축하하는 연회장에서 돌아온 리승만은 프란체스까를 데리고 오늘 낮에 리화장에서 이사하여온 경무대를 한바퀴 돌아보자 곧바로 련못우에 있는 정각에 올라왔다.

요즈음은 매일같이 연회요 만찬이요 오찬이요 주지육림에 묻혀 살아온다.

가는 곳마다 술이 넘쳐흐르고 녀인들의 요사스러운 웃음이 넘실거린다.

그는 정각에 펴놓은 돗자리우에 올방자를 틀고앉아 수양버들가지에 새여내리는 달빛을 쳐다보다가 호젓한 자리에서 기분이 좋을 때면 항용하는 습관대로 그 두툼한 입술을 벌리고 시흥을 토하기 시작하였다.

 

        담벽에 그림자 어른거려

        새벽녘 달인가 여겼더니

        옆집 아낙네가 켜놓은 초불이

        락엽진 창문으로 스며든 불빛

 

그가 고개까지 주억주억거리며 예까지 읊어내려가는데 마미가 짝자그르 손벽을 쳤다. 그리고 애교가 찰찰 넘치는 웃음을 담고 아양을 떨었다.

《아유 정말 풍미스러운 시입니다. 다시한번 읊어보시지요. 제가 정리해두렵니다.》

마미가 세계적인 명시라도 감상하듯이 수다를 떨자 령감의 입귀가 벙글써해졌다.

《뭘 대단한거라구… 그럼 다시 해볼가.》

리승만은 두드러져나온 두툼한 눈시울을 내려붙이더니 다시 웃몸을 흔들거리며 《음-》하고 시흥에 잠겨들었다.

리승만은 방금 토해버린 즉흥시를 외우느라고 다시 상판을 꺼떡꺼떡거리고 마미가 적어내려갔다.

끝없는 환락과 흥에 겨워 경무대의 첫밤을 시간가는줄 모르고있는 리승만과 마미는 경무대가 저들의 시기에 이르러 더는 지탱할수 없는 전횡과 폭압의 대명사로 지탄을 받다가 그 이름까지 저들의 운명과 함께 끝장날줄은 생각도 못하고있었다.

뒤날에 리승만이 4. 19인민봉기에 의하여 하와이로 쫓겨난 후 리승만과 함께 경무대라는 이름까지 들어내야 한다는 여론이 사회일각에서 비발쳤다. 긴세월을 내려오면서 경무대는 이 나라의 존엄을 짓밟아온 외세와 매국, 독재와 부패의 본당으로 악명을 떨쳐왔던것이다.

그래서 정계와 학계에서까지 이름있는 명사들을 다 불러내다가 집이름 바꾸는 놀음을 벌려놓았다. 저마끔 제나름으로의 의미를 붙여 숱한 이름들을 내놓았는데 마지막으로 추려낸것이 청와대와 화랑대라는 이름이였다. 청와대란 집기와가 평화를 상징하는 푸른 빛갈을 띠였다는 의미가 있었고 화랑대란 리씨조선의 시조 리성계가 집권하여 국호를 바꿀 때 조선이라는 이름과 함께 대안으로 내놓은 이름이였다.

이 시기 경무대의 주인으로 들어선것은 대학시절에 고고학을 전공하였다는 윤보선이였다. 그는 청기와가 우리 나라의 문화재인것만큼 고유한 전통을 지닌 의미에서 청와대로 부르자고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대던 론의를 끝내 버렸다.

허지만 집이름을 바꾸었다하여 근본이야 변할수 있으랴. 윤보선으로부터 그후에 여러차례 뒤바뀐 청와대주인들은 악정과 부패로 이 나라를 어지럽히여 청와대도 여전히 인민의 원성을 사게 되였다.

령감의 즉흥시조를 다 정리하고 난 마미는 한번 영어로 소리내여 읽어보고는 깔깔거리다가 리승만의 음침한 눈길과 부딪치자 웃음을 뚝 그치고 개올렸다.

《참말로 명문입니다.》

경개좋은 달밤에 웬 초불이며 록음우거진 정원에서 무슨 락엽이랴만 계속 이어지는 녀인의 해몽같은 뜻풀이가 기묘하다.

《록음속에 락엽진 가을을 바라보시는게 비상한 령감이고 련못에서 춤추는 둥근 달을 초불로 세워놓으신것이 뭇사람들은 가히 엄두도 낼수없는 기발한 시정입니다.》

시에 대한 취미나 재주로 보면 젊은 시절에 시대의 류행에 따라 쉘러와 바이론의 열렬한 숭배자로 있었던 프란체스까가 훨씬 나을것이였다.

그러나 그 녀자는 요즈음 령감의 불편한 심기를 고려하여 자상하게 왼심을 쓰면서 령감의 기분에 거슬릴세라 조심하고 있었다.

기실 권력에 대한 평생의 소원이 성취되여 경무대를 타고앉게 된 리승만은 기쁨속에서도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갖가지 불안과 시름과 권태에 휩싸여있었다.

《정부》라는건 만들어놓을 때부터 숱한 추문을 남겨놓았는데 세상에 팔삭둥이같은걸 내놓으니 또 새로운 걱정거리가 산더미처럼 생겨난다.

총리직만해도 그렇다. 임영신이 여론의 발길질에 채우자 평양에서 도망쳐온 민주당 당수 리윤영을 내세웠는데 《국회》가 또 야단법석이였다. 리윤영이 도대체 어떻게 개국공신이 되느냐, 대통령, 총리가 둘다 이북계니 이남에는 인물이 없다더냐고 들썩거려 끝내 부결되고 말았다.

리승만은 자기의 유일한 터밭이라 믿어마지 않던 《독촉》계의 의원들까지 목청을 돋구자 아연해졌다.

거기에는 하지의 부추김이 있었을것이라고 생각했다. 하는수없이 하지와 노불의 권고를 받아들이는수밖에 없었다.

하지는 김성수가 싫으면 리범석을 선택하라고 고압적인 자세로 권고하였다.

하지는 남조선군부도 바란다고 하면서 송호정과 류동명이까지 대동해가지고 와서 리범석에게 총리직과 국방장관직을 주라고 들이댔다.

리범석은 프란체스까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 사람의 관상에 심술기가 많고 부정기가 많다는게 마미의 주장이다.

《내 주변에 실력이 없는 아첨쟁이들만 모여든다는 여론이 있으니 리범석이같은 심술군하나 갖다놓는것도 모양새좋지 않을가.》

리승만이 슬쩍 비쳐보았더니 마미가 종알거리는것이 귀여웠다.

《아유 령감님, 그래도 령감님께서 경무대를 지킬라면 수하에 아첨군 다루는게 편하지 심술군을 두고 마음고생 어찌하시렵니까. 괜찮습니다. 령감님께서는 여섯대를 내려오는 독자라 친족정치라는 시비는 듣지 않을것이 아닙니까. 나라의 장관뽑는 일인데 그만한 뒤소리야 어찌 없겠습니까.》

리승만은 마미가 총리직에 윤치영이 아니면 리기붕을 내세우고 싶어 안달이라는걸 알고있었으나 받아들이지 않고있었다.

두사람 다 마미에게는 인연이 깊은 사람들이였다.

윤치영과는 이미 하와이시절부터 마미하고는 이성의 남다른 교제로 밀착된 사이였다.

리기붕과는 그의 처 박마리아를 통해 가까와진 사이였다.

서울에 들어선 후 프란체스까가 일점혈육하나 없는데다가 모든것이 생소하고 언어소통이 잘되지 않아 고독을 달랠길 없는데 다행으로 미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어머니때부터 독실한 그리스도교인으로 살아온 리기붕의 처 박마리아가 나타났다. 신통히도 그들 역시 부처간에 나이차이가 커서 동부인해 나타날 때면 꼭 부녀사이처럼 보였다. 지난 3년간 박마리아는 마미의 더할나위없는 친구가 되여주었다.

리승만이 어느날 마미의 성화가 하도 극성이 돼서 하지에게 리기붕을 총리로 세워보자고 넌지시 내비쳤더니 코방귀를 뀌며 한다는 말이 《리기붕의 처가 부인곁에서 돌아간다는 말이 군정청에도 흘러들고있습니다. 안방정치라는 말이 두렵지 않습니까.》하고 대설궂게 정통을 찔렀다.

이렇게 되여 총리직을 둘러싼 암투가 리범석의 선택으로 막을 내렸다.

리범석의 《족청》을 장차 《독촉》에 병합시킨다는 양보를 받아내고 총리직에 국방장관직까지 얹어주었다. 《족청》세력이 그쯘하다는 말이 여러번 들려와 군침을 삼켜왔는데 그것만 내놓아준다면 그까짓 총리자리줄만도 하였다. 여차직하면 목을 친다는 속궁리도 있었다.

그런데 마미가 우려하던 심술기가 《력사적》이라는 의미를 붙인 1차 국무회의라는데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회의를 주관해야 할 총리가 몸이 아프다는 핑게로 수원온천욕탕에 엎디여있다는것이였다.

정부의 장, 차관직분배를 자기와 협의하지 않았다는데로부터 발동이 된 심술이라는것을 대뜸 알아차렸으나 어쩌는수가 없었다. 네가 다 해먹으라는 심보다.

장관으로 세워놓은 놈들도 입삐뚤어진 소리만 한다고들 한다.

총리나 외무장관자리만 넘보던 윤치영은 령감의 엉큼한 속대를 모를줄 아느냐, 목자르기좋은 자리 주었으니 밀어던지자는 수작으로 받아들인다는것이다. 신통히 넘겨짚은 소리지만 당자에게서 거침없이 나온 소리라니 고약스럽다. 미국에서부터 자기를 그림자처럼 따라나선 허정은 차례진 총무처장자리가 마뜩지 않아서 오리발걸음이라고 한다.

(젠장 그건 왜 장관이란 이름을 붙이지 않고 이 말썽이야.)

리승만은 정부의 기구안을 만든 윤치영이 고약하다고 속으로 개욕을 퍼부었다.

농림부장관으로 올려놓은 조봉암도 차례진 자리가 마음싸지 않아 나야 공산당했지 농사지어본 일이 있나 하면서 벌써부터 사직서용지를 찾는다고 한다.

정부조각놀음에서 배제된 조병옥과 장면을 비롯한 측근인물들은 그들대로 입이 한발씩 나와가지고 끼리끼리 술판을 벌려놓고서는 령감의 케속 이제야 알았노라고 로골적으로 등을 돌린다고 한다. 그래 조병옥은 구미특사로, 장면은 미국주재 대사로 내보내주마고 얼른 약속을 해두었지만 돌아보는 눈찌가 곱지들 않다.

바깥에서는 하지가 여전히 코코에 망신을 시키면서 아직도 제하인 취급하듯 한다. 맥아더가 《정부》선포식에 참석하여 하지를 인차 본국에 돌려보내겠다고 했는데 아직도 어깨를 돋구고있는걸 보면 맥아더라는 위인도 듣던대로 허풍쟁이라는 말 그른데가 없는것 같다.

며칠전에는 《정권이양행정령》을 발표하고 미군정청으로부터 행정업무를 이양받으라고 했는데 하지가 사전토의가 없었다고 딱 잘라맸다.

임명된 장관들이 인계인수를 위해 관계기관들에 나갔다가 우거지상이 되여 와서 보고하는 말이 가관이다.

리범석이 군정청통위부에 가서 통위부간판을 내리고 국방부간판을 걸어놓는 간단한 의식을 벌렸다.

그런데 어느새 나타난 군정장관 띤이 그를 면전에서 개몰듯 욕설을 퍼붓고는 당장 간판을 바꾸어놓으라고 명령을 내렸다 한다.

상공부장관 임영신은 국장들을 달고갔는데 미군정청 상공부장이 눈을 부라리며 대문안에 들여놓지도 않더라 한다.

리승만이 하도 통분해서 엊그저께 맥아더에게 긴급전화로 고소질을 했더니 좀 알아보자고 하고는 오늘 아침에야 한다는 말이 무쵸가 이양권한을 가진 대통령의 특사로 서울에 가니 잘해보라고 미적지근하게 대답해왔다.

골치를 쑤셔대는것으로 보면 《국회》쪽이 더 급하다.

얼마전에 젊은것들이 모여들어 친일파숙청을 위한 《반민족행위가담자 처벌법》이라는 법안을 제출하였다. 그 취지에 대해 감히 누구도 정면에서 걸고들수 없어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가결되여 왔기에 덜컥 수표를 해서 돌려보냈는데 그걸 시달해놓고 보니 큰 화단거리가 되고 말았다.

우선 치안업무가 중단될 형편이다. 치안을 다스린다는 20만 경찰중 대부분이 왜정시기 일본경찰관 복무자들이니 그들이 다 족쇄를 차게 된것이다.

《반민법》(반민족행위가담자 처벌법)이 나오자 《국회》안에 특별위원회가 생기고 소장파의원이 그 위원장으로 들어앉았다. 잇달아 행정기관들에 《반민특별위원회》가 나오고 거기에 특별경찰대까지 소속되여 마구잡이로 끌어다가 조서를 씌운다, 재판을 벌린다 전국이 들썩거린다.

그통에 살고난것이 좌익권이다. 그들이 이번 란리에 앞장에 섰다고 한다.

벌써 구류장들에 리승만의 《독촉》계와 《한민당》계 인물들과 박흥식과 같은 큰 재벌층들이 들어가 콩밥을 먹고있고 리광수와 최남선과 같은 친일문 예인들도 들어가 리승만의 발밑을 흐물흐물거리게 하고있다.

리승만은 신익희를 불러다놓고 《국회》를 꽉 눌러놓을 수를 내놓으라고하니 《국회》라는게 아무 나라나 벌둥지 한가지이니 덧쑤셔놓는 일은 말라고 오히려 제쪽에서 언성을 높인다. 측근에서도 어느 한 놈 신통한 방략으로 가려운데 긁어주는 놈 없고 코꿰인 송아지상에 우는 소리들뿐이다.

《이 나라엔 확실히 인물이 없거니… 월명성화에 조작이 남비라 군왕은 현명한데 수하에 똑똑한 신하는 없다고?… 허허 북송 8대가 소동파가 과시 현인이구나.》

리승만은 윤치영이 김구를 찾아갔다가 와서 들려주던 고사 한구절을 외우며 쓰거운 웃음을 지었다.

《에잇 참, 정치라는게 참 고달픈 놀음이로다.》

리승만은 이렇게 장탄식을 연방 이어가며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는 달을 쳐다보다가 아이적에 부르던 동요 한구절이 생각났다.

 

        달아 달아 둥근 달아

        리태백이 놀던 달아

        옥도끼로 계수나무 찍어다가

        금도끼로 다듬어

        초가삼간 지어놓고

        … …

 

정말 저 달에서 리태백이 놀고있다가 옥좌에 오른지 두달도 못되여 벌써 허둥지둥거리는 이 리승만을 내려다보며 크게 웃지 않을가 하는 왕청같은 생각을 해보고는 제풀에 어이가 없어 실성한 놈처럼 《허허허…》하고 텅 빈 구새통에서 울리는 궁근 소리로 한바탕 웃었다.

《막걸리 한잔 드시지요.》

어느결에 자리를 떴는지 마미가 막걸리가 들어있는 누런 놋주전자를 들고와서 등뒤에 섰다가 나선다.

속안이 클클하기 짝이 없던 리승만은 막걸리소리에 기분이 바뀌여져서 《어, 좋지.》하고 칭칭 감겨들던 고달픈 생각에서 벗어났다.

리승만은 독실한 그리스도교신자라 술과 담배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대통령으로 선거된 며칠후 그의 취임을 축하하여 임영신이 자기 집에 주안상을 차렸는데 임영신이 부어주는 위스키 한잔을 받다가 이런 말을 했다.

《광복후 민생은 도탄에 빠지고 굶는 사람 부지기수인데 대통령이 어찌 쌀로 빚은 술을 마신단 말이요.》

이 말을 임영신이 다음날로 기자들에게 전해서 신문마다 대서특필로 날리게 했다.

리승만은 그날부터 정말 술을 딱 끊어버렸다. 민심낚으려 한마디 던진 말에 발목이 묶이운셈이 되였다. 그런데 리기붕의 집에서 박마리아가 특별히 빚어보내오는 막걸리맛만은 놓을수 없어 간간히 한잔정도 마시군 했다.

《자, 마미도 한잔…》

리승만은 마누라에게도 잔을 내밀며 권하고는 그닥 흥심이 나지 않아 입을 다물고 다시 대나무걸상에 허리를 붙이고 달을 쳐다보았다.

마미도 령감이 아마도 경무대의 첫날밤이 감구지회가 깊어지게 해서 그런가부다 하고 대나무걸상을 조용히 흔들어주며 련못을 내려다 보았다.

시간이 퍼그나도 흘렀는데 비서가 찾아왔다.

윤치영내무장관이 긴급상면을 요청하여 응접실에서 기다린다는것이다.

《아유, 좀 일정을 지키도록 해주세요. 대통령께서도 자기 시간을 갖도록 여러분들이 노력해줘야 되지 않나요.》

프란체스까가 발끈 화를 내며 쏘아붙이였다.

《어, 무슨 긴한 일이 생겼겠지. 내 나갈테니 간다구 전하게. 아니… 여기로 오라구 하게.》

리승만이 프란체스까의 지청구를 가로채고 분부하였다.

인차 연회색의 여름양복을 빈틈없이 차려입은 윤치영이 정각에 나타났다.

《대통령각하, 밤시간에 죄송합니다.》

《어서 이리오게. 대통령에게 낮과 밤이 따로있어서야 안되지.》

《다른게 아니구 제주도의 불이 점점 확산되고있습니다.》

《확산돼?… 모조리 쳐죽이라지 않았나. 토벌사령부는 뭘하고있소?》 리승만은 대뜸 결이나서 오만상을 해가지고 고아댔다.

《그 토벌대라는게 한심한 놈들입니다. 철저히 평정하라고 들여보냈는데 총 한방 쏘지 못하고 빨찌산지휘부와 마주앉아 평화협정이요 뭐요 시간만 보내고 있습니다. 그통에 반란의 규모는 점점 커가고있습니다.》

《그럼 지휘관놈들을 끌어내 주리를 틀어. 부대도 교체하고… 이젠 송호정이도 옮겨놓을 때가 되지 않았는가. 미국사람들의 눈치는 어떠한고?》

《탐탁치 않아하는 눈치입니다.》

《그래야 될가보이. 총리한테도 자네가 한마디 건늬여주게. 지금이 어느땐가. 국가를 선포했으니 유엔의 승인도 받아야겠고 미국이나 우방국들과 외교관계도 맺어야 되겠는데 집안사정이 여의치 못해서야 랑패가 아닌가. 제주도놈들 최후의 한놈까지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불을 끄게. 어서 바삐.》

《예, 경찰대는 협정에 구속됨이 없이 계속 작전을 벌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경비대의 려단을 시급히 배비변경해야 되겠는데 송호정총사령관이 선거후 38국방경비도 편안치 않다고 도리질입니다. 하지중장을 찾아갔더니 이제는 대통령의 인가를 받으라고 합니다. 그래서 일은 날자를 다투기에 죄송스러운대로 왔습니다.》

《흥! 군정업무는 그냥 주관하겠다 하면서 상판 어지럽히는 일에서는 발뺌을 하자는거지. 좋아, 조금 기다리게. 인차 〈국군〉편성을 해서 군력을 확보한 다음 보기로 하세.  지금은 거 장교들이나 바꿔치우는게 어떤가?》

《그렇게라도 해주십시오. 국방장관에게 령을 내려주십시오.》

《그렇게 하세.》

리승만이 이렇게 제기된 사항을 매듭짓고나자 윤치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보게, 온김에 막걸리맛이라도 보고가게. 마미, 따르게.》

《아, 전…》 윤치영은 령감이 자기를 세워놓고 또 무슨 지지한 넉두리를 늘어놓을것 같아 달아빼려 일어섰다.

리승만이 눈을 흘기며 《뭘…》하고 호령기있는 어투로 눌러놓아 윤치영은 프란체스까가 내미는 잔을 받아드는수밖에 없었다.

《어서 쭉 들게. 리기붕의 처가 갸륵해. 미국서 학문을 닦고 녀류명사가 되겠노라 하던 녀인이 막걸리 담가오는 솜씨보면 술집마담들 찜쪄먹겠거든.》

리승만은 윤치영이 고개를 돌리고 막걸리잔을 비우는것을 흡족하게 지켜보며 은근한 소리로 이었다.

《장관자리를 놓고 뭐 쑤군거린다면서?》

《글쎄요. 어쩌겠습니까. 각하께서 일전에 걱정하신것처럼 자리는 적고 나서고싶어 하는 사람은 많으니 뭐 편안치들 않겠지요.

자리를 놓고 돌아가는 수작들을 꺼내놓으라는 소리인지라 윤치영은 저으기 신경이 예민해져서 얼버무렸다.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꺼냈다가 래일 저녁쯤 되면 그 당사자가 화를 입을판이다. 유아독존인데다가 대통령벙거지까지 쓰고보니 요즈음에는 마음 내키는대로 칼을 휘둘러댄다.

리승만은 언제나 아부하는 소수의 측근핵심들을 주위에 모여놓고는 충성경쟁을 시켜가면서 믿음을 주기도 하고 회수하기도 하는 지배와 분리, 신뢰와 배척의 묘한 지배방식을 구사해온다.

따라서 리승만에게는 벗보다도 적이 많다. 그의 영향력에 모여드는 사람들과 적이 되여 떠나가는 옛 동료들이 교체되는 과정이 너무 빠르다. 떠나간 심복에 대한 차후관리에도 신경을 써야 되겠는데 리승만이 배타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이고 보니 그에 대해서는 통 무감각이다.

그래서 윤치영이 슬하에 끼고있는 사람들을 내쫓은 다음에는 1년에 한두번씩 문안이라도 전하고 설기념선물이라도 내 너를 기억한다는 정도로 보내여 터밭관리를 하라고 두세번 건의를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리승만은 번번이 화증이 나서 《쫓아보낸 놈을 다시 돌아봐서는 뭘해. 찾아오는 놈들도 일일이 정을 주지 못하겠는데.》하고 퉁명스럽게 받아넘기군 했다.

윤치영이 예상했던대로 리승만이 동료들의 뒤를 캐기 시작하였다.

《조병옥이 나에 대한 험구에서는 누구 짝지지 않는다면서?》

《예, 좀 그런게 있나봅니다.》

윤치영은 리승만이 다 알고 묻는지라 적당히 대꾸하였다.

윤치영은 리승만의 곁에서 눈치보기를 오래한 사람이라 그앞에서 남에 대한 뒤소리질해야 그게 뒤날에 자기에게 두배, 세배의 액운을 끼친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원체 남을 걸고드는 얼굴뜨끈한 일을 미워하는 성미에다가 그런 약빠른 타산도 있으므로 언제나 동료들에 대한 험구는 될수록 피하군 하였다.

윤치영이 말꺼낼 기색이 없자 리승만은 제잡담 넉두리를 늘어놓기 시작하였다.

《병옥이 그 사람이 그래서는 안되지. 그 사람 내외가 미국에서부터 내 슬하에서 자란 사람들이지. 병옥이 빙부(장인)는 나하고 한살 터수인 독립투사였어. 그분이 먼저 작고했어. 그때에 나더러 딸부탁하고 세상을 떠났지. 그래서 난 그네들의 큰아버지벌로 생각하고 병옥의 내외를 귀해한거야. 헌데 어쩌겠나. 대통령이 장, 차관직을 놓고 너무 린색하여 은혜갚음이 없는 부도덕으로 몰리게 되였은즉 지금이야 그 사람부터 량해하여줘야지.》

《대통령각하, 너무 마음 쓸게 없습니다. 가물이 든다고 씨앗박지 않겠습니까. 다 이 고비를 넘기면 오가는 잡소리도 잦아들겁니다. 높은 산에 아름드리나무 없다 했거늘 나라의 정상에 계시는데 어찌 좋은 소리만 들으시겠습니까.》

《허허… 자네 말 참 귀맛이 달아. 이보게, 저 남산을 보게, 저게 무슨 형국인가?》

리승만이 껄껄 웃더니 문득 정각뒤쪽으로 달빛에 희붓이 보이는 남산을 가리키며 물었다.

윤치영은 남산쪽으로 돌아서기는 했으나 인차 대답을 못했다.

일생토록 독서를 즐기고 미국의 명문대학도 여러개 마친 리승만은 들은게 많고 70고개를 넘어섰어도 기억력이 좋다. 그는 이따금 아래사람들을 불러다놓고 이렇게 다문박식을 뽐내는 질문을 들이대여 상대를 난감하게도 하고 탄복시키기도 한다.

윤치영이 아무리 생각을 굴려보아야 달빛이 어린 우중충한 산발을 두고 이렇다하게 풀이해나갈게 없어 잠자코 있었다. 그러면서도 인차 빠져나가야 되는건데 리승만의 장광설에 잠만 밑지게 되였다고 속으로 투덜거리였다.

《허허… 잘 새겨보라구. 남산을 내 예서 오늘 찬찬히 여겨보니 산모의 태줄처럼 생겨먹었어. 아마 그래서 이 한양성에 도읍을 세운지 500년을 내려오면서 태조로부터 순종에 이르기까지 왕비를 선두로 처족들이 발호한 정치가 계속되였단 말일세. 멀리로는 숙종에게는 장희빈이 있었고 가까이로 고종에게는 민비가 턱수염을 쥐고 흔들었지.》

《예.》 윤치영은 뜻밖의 리승만의 고담에 감심이 되여 길게 말끝을 뽑으며 허리를 적당히 굽신거렸다. 그러니 뭘 이야기하자는걸가? 윤치영은 좀체로 자기의 속내를 얼굴에 드러내지 않는 늙은 로불같은 리승만의 엉큼한 얼굴을 슬쩍 쳐다보며 뒤말을 기다렸다.

《그런데 난 말일세. 처족도 없구 외척도 없고 6대독자라 일족의 횡포가 없을터이니 리씨조선의 500년 페환이였던 세습통치요, 족벌정치요 다 끝난지라 이건 이 나라가 길할 조짐이 아닌가.》

리승만은 프란체스까가 퉁겨준 이야기로 루루이 엮어온 고담을 결속지어놓고 벙그레 웃었다.

윤치영은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얘기를 끌고다니다가 자기에게로 슬그머니 끌어와 자빠뜨려놓을줄이야 뉘 알았으랴.

《옳은 말입니다.》

윤치영은 리승만의 이야기가 듣고보니 저으기 일리가 있어 남산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머리를 여러번 조아려보였다.

윤치영은 령감이 더는 말을 꺼낼상싶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문득 생각되는게 있어 다시 자리에 앉았다.

《여쭐게 하나 더 있습니다.》

《뭔데?》

《래일 낮에 반공대회를 서울광장에서 벌리는데 독촉국민회에서 각하께서 참석하실것을 요망해 왔습니다. 그래서 경호조직때문에…》

《반공대회라? 뭘 가지고 벌리지?》

《〈반민법〉철회운동을 호소한다는겁니다.》

《그래?…》

리승만은 고개를 끄덕여보이고는 잠시 눈시울을 닫아매고 생각에 잠기였다.

일인즉 리승만이 신익희를 시켜서 벌리는 대회이다. 윤치영이 이걸 거들어 참여를 운운하는건 무슨 케속인가.

리승만은 시치미를 떼기로 작정하고 말을 이었다.

《거 뭐 꼭 그런걸 벌려야 하겠나. 국회 소장파가 뉘는 손든게 아니냐고 소란피우면 어쩔텐고…》

《딴은 그것도 걱정이 되는데…》

《그건 그런대로 놔두고 내무쪽에서 한바탕 휘저어보게.》

《저희가 말입니까?》

《경찰들을 동원해서 반민특별위원회를 몇개 조겨놓게. 특별경찰대는 가두어놓고 며칠 콩밥 먹였다가 풀어놔주고 그 다음에는 서울에서 좀 소리를 내게. 경찰서장들이 반민특별위원회 업무중지와 거기 소속경찰대해산을 나에게 들이대도록 하란 말일세.

불응하면 서울경찰은 총 사직하겠다고 나더러 을러메고… 교통순사만이라도 철수시키면 교통체증에 서울시민들부터 온통 란리일거야…

이쯤 되면 나도 〈국회〉에 대고 할 소리가 있을게 아닌가.》

《네 알겠습니다. 참으로 고견입니다.》

윤치영은 리승만이 내놓는 계교가 그럴듯싶어 크게 감동된듯 한 공손한 눈길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령감이 아직은 통치술로서는 누가 당할자 없어.》하고 자못 감탄해마지 않았다.

《국회》가 채택한 《반민법》때문에 제일 타격을 받고있는것은 윤치영이다. 나라의 립법기관인 《국회》가 이미 채택한 법을 뒤집어엎을 궁리를 해왔는데 리승만이 말대로 하면 가능성이 보인다.

윤치영은 경무대의 첫밤을 편히 보내라는 말을 남기고 정각을 내려갔다.

리승만은 그를 눈길로 바래주고는 다시 달빛이 깔린 경무대의 이곳저곳을 휘휘 둘러보며 생각에 잠기였다.

밤이 깊어갔다. 귀 따갑게 울어대던 개구마리의 울음소리도 그치고 둥근달도 서쪽으로 기울어졌다.

리승만은 정각에서 내려 련못가를 조용히 거닐었다. 그의 뒤에서는 마미가 발끝으로 기척을 죽이며 따라선다.

밤! 밤! 경무대의 첫밤…

리승만에게도 프란체스까에게도 생각많은 밤이였다.

력사에 하많은 죄악을 남기게 될 경무대의 새 주인의 밤은 숱한 재앙거리를 걷어안고 깊어가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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