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혜숙이네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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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정시명은 《국회》청사로 권영호를 찾아갔다. 자기 눈으로 화제에
올라있는 인물을 직접 확인해보고 그와의 사업전망을 설계하고싶었던것이다. 모두가 상반동이라 하니 도무지 종잡을수 없었다. 그럴수록 그를 돌려세워야겠다는 생각은 커지기만 하였다.
구실은 신문에 실을 단독인터뷰였다.
《서울신문》편집원 명함장을 가지고 거기에서 일보고있는 김승원의 처 윤미향과 함께 갔다. 그 녀자는 이미 《서울신문》에 리승만과의 인터뷰를 실어 사회적파문을 일으킨 전적이 있었다. 《서울신문》이 뒤날 리승만의 압력을 받아 그를 해직시키자 《광명일보》에 돌려놓았다가 다시 《서울신문》에 들이밀었다.
가기전에 그들은 질문서준비를 면밀히 하였다.
서울안에 류행되기 시작한 물결머리를 함함하게 다스린 녀비서의 안내를 받아 권영호의 방에 들어섰을 때 정시명은 권혜숙의 모습을 방불히 보는것만 같아 자기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그에게 팔뚝처럼 투실투실한 외태머리를 뒤통수에 달아놓으면 오누이가 아니라 쌍둥이들이라 불리울것 같다.
한편으로는 어디서 많이 보아둔 모습같기도 하다. 쭉 뻗어오른 실팍한 허리에 흰 대리석을 깎아놓은듯 미끈한 목이며 불빛이 쏟아져나올듯 한 광채유난한 눈망울이 분명 추억을 불러내는 모상이다.
약간 꺼져든 눈확이며 《어서들 오시오. 신문사에서 련락을 받았습니다.》하고 방안을 울리는 랑랑한 목소리며 손을 가슴팍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내밀며 악수를 청하는 틀있는 몸가짐이 우아할 정도로 멋을 풍기는데 그것도 눈에 익은 모습이다.
그가 권하는 가죽쏘파에 앉아 방안을 휘둘러보면서 생각을 더듬던 정시명은 《아, 몽양!… 그렇지, 몽양과 비슷한데가 있군.》하며 속으로 무릎을 쳤다.
서울에 와서 려운형을 처음 만나던 일이 생각났다.
사람이 장중하면서도 애교가 있고 생각나는대로 거침없이 열변을 쏟으면서도 후더운 인정을 푹푹 던져주어 첫 대면에 흠뻑 취하게 해주던 몽양, 그 열정의 인간이 떠올라 때없이 가슴이 뭉클해졌다.
《자, 말씀들을 하십시오. 난 원래 신문기자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기자들이란 보고들은걸 자기 신문의 구미에 맞게 다시 료리하여 가지고 세상에 내놓아 취재대상을 곤경에 빠뜨리기도 하고 여론의 재판을 받게도 하기때문이지요.
헌데 뭐 〈서울신문〉의 체질을 알아보니 독립계신문이라고 하기에 오늘의 단독회견에도 중립적인 객관성을 지켜주겠다는 언질을 받아두어야 하겠습니다.》
권영호는 맞은편 쏘파에 허리를 붙이고 앉아서 여유작작한 미소를 짓고 손님들을 아량을 보이는듯 한 눈길로 둘러보았다.
몸가짐을 틀스럽게 하며 30대에 어울리지 않게 위엄을 보이고 도량을 펼쳐놓는게 좀 부자연스럽기도 했지만 려운형을 확실히 쭉 삐여나게 닮았다.
어쩌면 려운형의 행동거지를 모델로 삼고 자기 바깥모양새도 그렇게 가꾸어가는지도 모른다.
속모양새도 그렇게 가꾸어갈수 없을가?… 어쩐지 막연한 기대가 생겨나 정시명은 아직은 세련미가 덜한 권영호의 거동에 가벼운 홍소를 담았다.
《예, 의원님의 말씀이 리해되며 충분히 공감이 됩니다. 기자의 펜대가 자유롭다고 해도 역시 편집자의 칼질을 많이 당합니다. 그런데 뭐 정치인들도 비슷합디다. 제 목소리 내구싶어도 이 눈치, 저 눈치 봐가며 말하고 웃는게 정치인들의 체질이더군요.
하지만 오늘 권의원님에게 난 언질을 맡겨드립니다.》하며 윤미향은 입가에 야릇한 미소를 담으면서 권영호의 고압적인 이야기를 살며시 건드려놓았다.
정시명은 속으로 혀를 찼다. 남편못지 않은 재기있는 달변에 여유있는 자세가 여간 조화되고 세련되여있지 않다.
(부부 오누이라더니…)
정시명은 이쯤되면 자기는 옆에서 자리지킴이나 해도 찾아온 목적은 달성될것 같았다.
권영호가 녀기자의 이야기를 흥미있게 받으며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화제를 끌고나갔다.
《그러면 뭐 물어보시지요.》
《난 〈국회〉개원식과 몇차례의 〈국회〉에서 단행한 소장파의원들의 용기있는 도전에 대하여 국민앞에 소개한바가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야 난 놀랍게도 그속에 리대통령을 절대적으로 숭배하는 〈독촉〉계 의원들이 여러명 포함되여있다는것을 찾아보게 되였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봐야할가요?》
《거 뭐 어렵게 생각할게 있나요. 민주주의가 〈국회〉안에서 제 모습을 찾고있는것으로 리해하세요. 제 목소리를 울려 그걸 국민의 뜻과 지향으로 모아들이는게 〈국회〉의 민주주의가 아니겠어요. 미국이나 유럽의 국회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없다면 비정상으로 보는게 우연이 아니지요.》
권영호는 즉석에서 다소 미묘한 문제라고 할수 있는 질문에 대하여 사뭇 명쾌한 대답을 주었다.
《그렇다면 〈독촉〉의 계률에 저촉되지 않습니까? 〈독촉〉은 리승만이고 리승만은 〈독촉〉이라는 말이 〈독촉〉안에서는 류행어가 아닌가요?》
《난 그런 가부장적계률에는 자기를 얽어매두지 않습니다. 난 리대통령의 독립리념을 접수하고 그에 공명하여 그분을 받들고있지만 그분을 하느님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잘못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밝히고 그분의 영상이 흐려지지 않도록 해주는것이 사심없이 그분을 받드는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라의 전도를 걱정한다면 쓰더라도 그분을 따라야 합니다.
허지만 난 〈독촉〉안에서도 리승만대통령의 옳고그름에 대하여 명확히 계선을 가르면서 나갈것을 주장하는 자유인물이올시다. 뭐 일생을 코맞대고 살 배우자를 선택할 때도 만가지가 다 만점이 돼서 손목을 잡는거야 아니지요.
우리 집 안사람도 좋고 나쁜게 6대 4쯤 돼요.》하며 권영호는 소리내여 웃었다.
윤미향도 정시명도 따라웃었다.
《아유, 정말 아슬아슬했군요. 호호… 그러면 〈독촉〉의 리념중에서 권의원님을 특별히 매혹시키는 부분은 어떤것입니까?》
《그건 미국과 굳게 제휴하여 국민의 번영을 도모하며 공산도배가 없는 자유민주국가를 세우는것입니다. 이것이 이 나라의 애국하는 인민들의 리상입니다.》
《공산도배를 반대하는것도 리념이라 부를수 있을가요? 그것도 신생인류의 정신적유산일진대 반공이란 하나의 정치적엇드레질이 아닐가요? 그리고 뭐 미국과의 제휴도 리념이라고야 볼수 없지요. 용서하십시오, 의원님.》
《아, 흥미있어요, 그건 그렇소. 그건 현 단계에서 우리 독립촉성회의 행동좌표요. 미국이 없다면 우린 벌써 쏘련의 위성국이 되였을거요. 그리고 광복후 미국의 원조가 없었다면 이 나라 국민은 다 굶어죽고 얼어죽었을거요. 미국은 해방국이며 우리의 영원한 우방이요. 리승만대통령을 내가 존경하는것은 그분이 우리 국민과 국가의 생명선인 미국과의 튼튼한 친선과 협조의 기초를 쌓았다는데 있소.》
《그러면 미군을 서울에 영원히 비끄러매놓아야 한다는건데… 외세의 보호를 받고서야 실질적인 독립국체모를 갖추었다고 볼수 있을가요? 차라리 국호부터 보호령이라 하든지, 미국의 위임통치령이라고 하는것이 세상앞에서 시원스럽지 않을가요? 못난 이들이 사는 나라라는 조소를 받더라도 말이예요.》
그 녀자는 그냥 생글거리며 권영호의 가려운 부분에로 야금야금 접근하고있었다.
권영호의 자못 틀스럽던 모양새가 흐트러지기 시작하였다. 보기좋게 부풀어있던 허옇고 멀쑥한 볼이 벌깃하게 타들기 시작하였다.
권영호는 몇번 헛기침을 하고나서 평온을 유지하려고 애쓰면서 대답을 이었다.
《미국과 미군의 개념은 별개의 개념이요. 미군이야 이제 〈대한민국〉이 선포되면 물러가야지요. 그건 뭐 더 거론할 필요가 없는거지요.》
《리승만대통령은 이미 〈국회〉개원식에서도 미군주둔의 필요성을 강도높이 력설한것으로 알고있는데요.》
《그건 뭐 대통령으로서의 뜻이 아니고 리승만 개인의 뜻이겠지요. 그 문제는 예민한 문제요. 이만합시다.》
권영호는 점점 우려와 불안이 느껴지는 위험수역에로 몰아가는 녀기자의 질문에 화가난듯 회견을 끝내려고 서둘렀다.
《가만, 권의원님의 고향은 어딥니까? 말씨로 봐서는 경상도 같은데요.》
《옳습니다. 남해도이지요. 광복후 부산쪽으로 갔지요.》
《부모님들은 계신가요?》
《예.》
《형제분들은요?》
《형제들은… 남자형제는 없고 누이동생이 있는데 소식을 모릅니다.》
《이북에 가셨는가요?》
《아니…광복전에 헤여졌으니…》
이때 문이 빠끔히 열리더니 녀비서가 들어와 뭐라고 귀속말을 하였다.
대뜸 권영호가 신경질적으로 《없다고 해요.》하고 퉁명스럽게 내뱉았다.
《인터뷰중이라고 말씀드렸는걸요.》
《어랍쇼, 벌써부터 의장행세를 쓰자는건가. 계속 그따위로 나올것 같으면 문턱을 넘어선다고 해요. 〈한민당〉에서 의석 하나에 20만 준다는걸 그 사람들 잊은게 아니야.》
《그래도 가서 한번 찾아뵙는게 좋지 않을가요.》
《에 에 〈국회〉라는게… 내 좀 참자고하니 벌써부터 대진내가 나기 짝이 없단 말이요. 저마끔 제 두령들의 눈치보기만 하면서 꼭 초례청에 나앉은 새각시앉음새란 말이요. 참 시끄러워… 기자선생, 우리 〈국회〉꼬락서니가 이렇소. 내가 두번째로 소장파들의 도전에 합세하였다고 당기(당기률위원회)에 출두하라는거요.
〈국회〉의원의 주대있는 행동이 이렇게 어렵다는걸 국민들이 좀 알아주면 좋겠소.》
《그 이야기를 우리 신문에 실어도 좋겠습니까?》
《아니, 그것만은 싣지 마시오. 그리고 정리된 메모지를 나한테도 한통 보내주시오.》
《호호, 〈국회〉안에서 그렇게도 용맹스럽던 권의원님이 어찌된 일입니까? 이건 출판에 대한 사전검열인가요 아니면 제도권에 대한 아부인가요?》
《허 허, 뭘 그렇게 비양거리시오. 날 좀 살려주소. 자, 이젠 실례합니다.》
권영호는 넉살좋게 싱긋벙긋거리며 일어났다.
정시명은 윤미향의 수고를 진심으로 치하하고나서 홀로 집으로 돌아오면서 권영호의 인상을 더듬어보았다. 그리고 그와의 사업을 놓고 곰곰히 생각에 잠겼다. 자부심이 강하고 야심이 크다는 직감부터 앞섰다. 하기는 30대초반의 의원이니 그럴법한 일이다. 그 나이에 이 나라의 우익계의 중진들이 다 모여든 최상급의 무대에 올라섰으니 그 의기가 하늘을 찌를듯 하리라는것은 십분 리해된다. 그리고 민족앞에서 나름으로의 봉사를 하며 그로써 인망을 두터이하고 정치권에서 야심만만한 자리를 차지할 꿈을 안고있다. 이것도 리해되는 일이다. 소신도 있다. 주변분위기에 말려들지 않고 하고싶은 목소리를 내려는 자세가 엿보인다.
그러나 혜숙이, 길철이 단언을 내린것처럼 반동인것은 사실이다.
반동이라… 정시명은 그들의 평가를 재확인하게 되자 명치에 돌멩이가 매달린듯 뻐근해왔다.
《반동이라!…》 그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혜숙의 집안식구들을 한명한명 생각해보았다.
광복전에는 정치참여를 싫어하였다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되여 오늘은 저마끔 딴 무리에 휘말려들어 동상이몽들을 하게 되였는가?…
이걸 한번 뒤집어틀어서 생각해보자.
광복이 가져온 인민들의 정치참여의식의 구체적표현이라고 봐야지 않겠는가. 이제는 우리도 나라의 정사에 나서서 이 나라의 백성된 구실을 해야 되겠다는 주인의식의 소박한 표현이 분명하다.
그들은 그걸 통하여 《애국자》로서의 제 얼굴들을 가지고있노라고 자부하고있다.
그런 의미에서는 혜숙의 가정은 개명된 집안이다.
그런데 어떻게 되여 력사의 정의를 따라서지 못하고 진보의 뒤골목길을 걷게들 되였는가.
어디서 시작되는것인가?… 혜숙의 아버지로부터 시작된것은 아닌것 같다.
딸의 사회적진출을 반대해나선 아버지가 주동적으로 정치현장에 뛰여들리는 만무다.
권영호로부터 시작된것 같다.
일본류학… 그래, 혜숙의 가정의 비극은 일본류학으로부터 시작되였다. 권영호가 일본에 건너가 영어를 안주머니에 차고온탓으로 미국놈들과 가까이 하고 그 덕으로 미국놈으로부터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알속있는 리권을 한아름 챙겨가지면서부터 비극은 닥쳐들었다. 소낙비처럼 삽시에 퍼부어진 그 리권이 현훈증을 일으켜 근본이 똑똑한듯싶은 저 권영호에게서 사물에 대한 인식과 분석에서 리성의 자대를 헝클어놓고 별과 별찌를 가려볼 판단력을 흐려놓았다.
일본류학으로부터 시작된 사대굴종과 정치적몽매, 편견과 외곡에서 저 인간을 끌어내는것이 쉽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정시명은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갔다. 혜숙의 사정을 놓고봐도 그렇고 《흥국상회》가 이미 결정한 새롭고 거창한 투쟁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도 이 일을 늦잡아서는 안될 일이다.
어떻게 저 인간을 이끌어주어야 하겠는가?
불현듯 최남수의 생각이 났다.
며칠전에 김승원이 찾아와 최남수를 정식으로 대오에 받아들이자고 하였다.
그가 책임자를 만날것을 희망한다고 하여 어제 저녁에 만났다.
그 자리에 길철이도 참가하였다.
《이 길철선생이 나를 애국의 길로 돌려세웠습니다.》
최남수가 이렇게 고마운 인사를 차릴 때 길철이 례의바르게 그 인사를 사양하며 하던 말이 인상적이다.
《아닙니다. 제가 최선생님과 같은 일가견을 세우고 살아오신분을 돌려세웠다니 어림이나 되는 말입니까. 생활이 선생님을 이 길에 들어서게 떠밀어준거지요. 나라 위해 마음을 쓰는 사람들은 갈래가 몇천으로 시작되여도 종당에는 이렇게 한길에서 만나게 되지요.》
그래, 길철의 말이 신통하다. 생활이 그를 떠밀게 도와주어야 한다. 현실속에서 흐려진 눈을 가시게 해야 하고 삐뚤어진 걸음새를 바로잡아 방정하게 걷도록 해야 한다. 분명히 그는 애국과 매국에 대한 표상을 옳게 가려내지 못하고있다.
생활… 생활이라… 어떻게 그에게 자기를 재인식하고 주변을 재인식할수 있는 생활을 마련해줄수 있겠는가.
그는 다시 최남수에게로 돌아섰다. 만약 그가 아직까지 자기 울타리속에서 맴돌게 하였다면, 김승원과 함께 호흡을 하는 생활과 투쟁의 들끓는 무대에 끌어내지 않았다면 지금도 그는 시대의 가녁에 머물러있었을것이다. 김승원과 길철이 그리고 여러 전우들과 함께 선거와 그후에 있은 《국회》의 여러 모임장에 따라다니면서 그는 크게 달라졌다. 정치적으로 단순했던 그가 정치권의 혼잡한 움직임을 엿볼수 있는 정치현장에서 비로소 정치의 시비를 가리는 눈을 가지게 된것이다.
지금 최남수는 정식으로 《흥국상회》에 들어섰다. 그에게 《고려상사》가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것이라는것을 정식으로 이야기해주고 재정책임을 지웠으며 《흥국상사》도 그가 접수하여 관리운영을 맡아보도록 하였다.
정시명은 조직의 규모가 커지고 수많은 투쟁과제를 떠안고있는 현재에 와서는 《흥국상사》에 한주일에 한번정도 나가 상사의 경영활동을 청취하고 실무적지시를 주는것이 어려워졌다. 기업관리를 형식적이라도 총괄하자면 늘상 기업전반을 장악하고 있어야 하겠는데 너무 큰 부담이였던것이다.
그래서 그는 어느날 상사의 리사들과 직원들을 모여놓고 건강이 좋지 않아 주주로만 있겠다고 하면서 사장후임으로 최남수를 소개하였다.
주주란 이따금 주주들의 총회에 참가하여 리권분배에만 참가하게 되므로 드문드문 얼굴이나 비치면 되였다.
최남수는 고려상사를 자기의 회사에 통합하여 전반적인 기업규모를 줄이면서 영화촬영소같은것은 처분하고 알속이 있는 몇개의 회사들만 걷어쥐였다.
정시명은 앞으로 최남수를 《흥국상회》모임에도 정식 참가시켜야 되겠다고 생각하였다.
최남수를 《흥국상회》로 떠밀어준 그런 생활을 권영호에게도 마련해주어야 한다. 자기를 비쳐볼수 있는 생활속에 깊숙이 들이밀어야 한다.
그는 지금 소장파의 집단에 한발을 걸써 들여놓았다.
이제 소장파는 마땅히 통일애국을 부르짖게 될것이다. 참다운 애국의 길을 모색하게 될것이다. 그 자체가 권영호의 현재의 준비로써는 따라서기 힘든 생활이다. 여차하면 발을 뽑을수도 있다.
좋기는 그를 회장으로 내세우면 좋을듯 하다.… 아니 황철산이 적임자다. 용케 무어진 초당파그루빠가 자기 존재를 이어 가자면 어정쩡한 인물을 내세워서는 안된다. 소장파를 정식으로 하나의 《국회》에 등록된 집단으로 만들어놓고 김승원을 포함한 지도부를 만들어 여기에 권영호를 세워보자. 장차로서는 권영호가 수리가 될수있는 인물이다.
정시명은 이렇게 권영호에 대한 인상을 마무리지었다.
며칠후 아서원에서는 소장파를 《수의계》로 정식 명명하는 모임이 열렸다.
회장으로 황철산이 류임되고 간사로 김승원과 권영호가 선거되였다.
《수의계》의 세칙이 발표되여 일치가결로 통과되였다.
황철산이 회의결속을 《수의계》의 실질적인 지휘자인 김승원에게 위임하였다.
김승원은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젊은 의원여러분, 우리는 국민이 선거한 대표입니다. 그러나 어디가서 이 말 하기에는 여러가지로 부끄러운게 많습니다.
지금 항간에서 우리 〈국회〉를 바라보는 눈이 어떤가는 여러분모두가 느끼고있을것입니다.
저는 여러차례 〈국회〉에 참가하면서 얼빤하게 지내다가는 자신이 어쩔수 없이 우리의 력사책에 죄인으로 기록될수 있다는 무서운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옛날 〈을사보호조약〉에 제 이름자를 남긴 오적들도 그 당시에는 민족을 위해 마땅한 일이라고 변명도 했겠으나 력사는 그들을 만고죄인으로 락인찍었고 후손들에게 그 오명이 전해지게 되였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이따금 소름이 끼치군 합니다.
우린 그렇게 되지 맙시다. 당파와 정견이 우리를 죄인으로 되게 하는 리유나 구실로 되여서는 안될줄로 믿습니다. 당파우에 민족이 있고 리념우에 애국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수의계〉에는 대체로 젊고 대바른 의원님들이 들어있습니다. 우리들이 기발을 듭시다. 우리 〈수의계〉는 〈국회〉연단에서 벌어지는 모든 문제들에 대하여 사사건건 우리를 선거해준 국민의 눈으로 따져갑시다. 그래서 우리 계의 이름을, 뜻을 지킨다는 의미에서 〈수의계〉로 명명한것이 참뜻이 있습니다. 우린 〈수의계〉를 이 나라의 어지러운 정치무대에서 국민이 희망을 가질수 있는 한줄기의 등불로 되게 하여 력사에 좋은 기록을 새겨갑시다.》
김승원의 조용하면서도 여운이 있는 말은 참가자들의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명명모임이 끝나자 회장이 《수의계》의 조직적인 진출로서 하나의 방안을 다음번 《국회》에 제출하자고 제의하였다. 《국회》의 기본직능이 법안의 제정, 개정, 수정이며 그 집행에 대한 감독과 총화이다. 김승원이 그를 지지하여 자기의 제안을 내놓았다.
《난 이런 의견이 있소. 광복이 되였으나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과거 왜놈시기에 일본의 식민지화에 협력한 친일파세력에 대한 청산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초대행정부가 출범하면서 초미의 과제로 내세워야 할 문제입니다.
그래서 나는 반민족행위에 가입한자들은 지난날도 그렇고 앞으로도 엄격히 처벌하는 법을 제정할것을 발기했으면 합니다.〈수의계〉가 이를 내놓으면 국민의 선양을 도모하고 〈국회〉의 각계의 초당파적인 호응도 받을수 있을것이라고 믿어마지 않습니다.
나는 친일적인 색채가 짙은 〈한민당〉계이지만 이 법안채택에 국민적량심을 가지고 초당파적인 견지에서 관철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김승원의 말이 끝나자 일시에 좌중은 물뿌린듯 잠잠해졌다.
정시명과 김승원이 《수의계》의 첫 공동투쟁과제로 이 문제를 상정시키도록 한것은 여러가지 리유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김승원이 언급한것처럼 초당파적인 폭넓은 지지와 호응을 받을수 있었기때문이였다.
그러므로 상정만 되면 가결될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게 되면 《수의계》회원들이 자기 조직의 사업에 만족감과 자신감을 가지고 보다 전진적인 투쟁에 나설수 있는것이다.
모임에 참가한 의원들이 년소한 사람들이라는데도 주의가 돌려졌었다.
《국회》의원으로 된 사람들중 나이많은 자들속에서는 일제시기 그놈들과 크건작건 협력관계에 있었던 자들이 적지 않았다. 만약 첫 싸움의 화살이 자기들에게로 돌아오리라는 우려가 있다면 뒤걸음질칠수도 있는것이다.
황철산이 가부를 묻자 회원들은 무겁게 주먹들을 올렸다.
법안초안의 작성은 권영호에게 위임되였다.
생각밖으로 권영호는 쾌히 접수하였다. 하기는 그에게는 이 법안이 발효되는 경우 그 파편에 얻어맞을 조건이 없는것이다.
《국회》투쟁의 첫 포성이 공개적으로 준비되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