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혜숙이네 문제

3

 

먼저 길철은 《5. 10단독선거》를 계기로 남조선에 조성된 정세에 대하여  수자와 사실을 렬거하면서 상세하게 분석적으로 개괄하였다.

다음에는 김승원이 《국회》사업에 대하여 보고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가 서두에서 《국회와해투쟁을 벌려야 할 필요성》이라는 말을 련발하자 정시명은 미간을 찌프렸다. 그 말이 귀에 거슬렸다. 《국회》사업의 성격과 본질을 흐리게 하는 표현이라고 생각되였다.

정시명은 즉석에서 그의 말을 가로챘다.

《가만… 그 소리가 듣기 거북하오. 〈국회〉와해투쟁이라니… 김선생, 임무설정을 그렇게 해서는 안될것 같소.》

그 소리에 김승원은 입을 다물고 의혹이 서린 눈으로 정시명을 보았다. 안지생이도 창밖으로 푸릿한 하늘에 시선을 보내고있다가 뜨아한 눈길을 지었다.

《우리는 〈국회〉를 와해시킬것이 아니라 단합시키는 투쟁을 벌려야 하오.》

《〈국회〉를 단합시키다니?… 그놈들이야 반동들중에서 선발된 반동들인데… 그것들을 모여놓으면 누구에게 덕보일 일이 되겠다구요.…》

《무엇을 중심에 놓고 단합시키는가 하는거요. 중심에 어떤 기발을 걸고 어떤 구호를 세워놓겠는가 이게 중요하오. 그건 물론 애국의 기치요, 통일의 구호요. 〈국회〉가 이 나라 인민의 의사와 상반되는 인물들로 꾸려진것만은 사실이요. 하지만 우린 미제의 식민지정책의 어용기구로 출범한 〈국회〉가 인민의 의사를 배반하고 력사에 죄인무리로 락인찍혀지지 않도록 열과 힘을 바쳐봅시다. 놈들의 의결기관이 미제의 식민지정책의 도전자로 되게 한다면, 리승만의 매국적인 민족분렬정책의 강력한 반대세력으로 된다면 우리의 통일애국위업을 앞당기는데 하나의 기여로 되지 않을가. 의원들, 그 자신들을 위해서도 얼마나 좋은 일이요.

물론 이것은 아직은 우리의 꿈이요, 리상입니다.

방금 길철동무가 보고에서 언급한것처럼 아직은 품안에 끼고 돌아갈만 한 여지가 없소. 그래도 내 언젠가 이야기했지만 박달나무에도 못 들어갈 자리는 있소. 김선생이 궁리를 넓혀 벌써 진지를 차지하였소.

우리가 통일애국이라는 거국적인 구호를 들고 사상과 리념을 초월하는 련합을 모색하여 진지하게 달라붙을 때 〈국회〉연단을 애국의 연단으로 만들수있다고  보오.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진보적사상의 근간은 애국이라고 간곡히 말씀하시였소.

더 찾아냅시다. 애국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를… 없으면 만들어내서 그네들의 가슴에도 애국이라는 두 글발을 쪼아박아봅시다. 그래서 미군철수를 공개적으로 선언하게 합시다.

지금 미국놈들과 리승만은 〈국회〉에서 미군주둔의 법적명분을 쉽사리 만들어낼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이 문제를 놓고서는 방심하고있소.

결국 〈국회〉는 미군을 지켜나선 저들의 마지막이면서도 철통같은 보루라고 보고있소.

우리는 바로 거길 타격합시다. 그쪽을 타격하여 미군을 철거시킬데 대한 전인민적항거에 이바지합시다.》

정시명의 우렁우렁한 호소는 모두의 가슴을 뜨겁게 울려놓았다.

잠시 좌중은 물뿌린듯 잠잠해졌다. 그들은 정시명의 격조에 심장의 고동을 같이 하면서 그 세찬 열기와 높은 리상과 나라의 운명에 대한 고결한 사명감을 되새기고있었다.

먼저 침묵을 깨친것은 길철이였다.

《거창합니다. 가슴이 벅찹니다. 난 회장동지가 내세운 목표와 투쟁의 진폭을 전적으로 지지합니다. 때가 되였습니다. 더는 좌시할수 없습니다.

그런데… 가능성… 현실성… 우린 이것을 무시해서는 안될것 같습니다.》

좌중이 그 소리에 웅성거리기 시작하였다. 길철의 이야기가 뜨겁게 달아오른 그들을 현실이라는 엄혹하고 복잡한 세계를 다시 엄중한 눈으로 들여다보게 하였던것이다.

《가능한가?… 그래, 면밀히 타산된 가능성이 있어야지… 길철동무, 처남이 김승원동무가 조직한 소장파에 등록한걸 알고있소?》

그 소리에 길철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크게 놀라 눈들이 휘둥그래졌다.

그들은 아직 길철이 처가집에서 당한 봉변을 듣지 못했던것이다.

《누구입니까?》 김승원이 물었다.

《권영호… 그가 권혜숙동무의 오빠라오.》

《아, 권영호… 그 사람이 〈독촉〉계인데 이번에 용케도 그쪽에서는 제일 먼저 일어서주더군요. 그런데 그 사람이 혜숙의 오빠라니? 참 세상이 좁기도 하군.》

김승원은 자리에 앉으며 감탄인지 탄식인지 똑똑치 않은 소리를 내질렀다.

《그거야 그놈이 젊은 혈기에 한번 우쭐해서 신문에 제 이름석자를 내놓자는 배심이지요. 그러루한 놈들의 광기에 기대를 건다면 그건 잘못 타산된 목표입니다. 그놈이 미국과 리승만을 개올리는걸 내 귀로 직접 듣고왔습니다.》

길철이 처남소리가 나오자 열이 나서 손세까지 써가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길철의 이야기에 일리가 있었다.

《국회》개원식이 있은 다음날 서울신문들은 젊은 의원들의 도전을 굉장히 떠들어댔다. 용감하고 뼈심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그들을 사진까지 받쳐 이구동성으로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정시명은 길철의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말을 받았다.

《그래도 리유불문하고 리승만에게 반발해나선걸 우린 중히 여겨줘야되지 않을가. 리승만의 숭배자가 리승만의 면전에서 반기를 들었는데 그걸 광기로만 볼수 있을가. 그러한 의로움밑에 무엇인가 그네들나름으로의 주장과 타산과 결단이 있지 않을가.》

《그 녀석은 제가 한번 맞다들어본 놈이니 제가 잘 압니다. 제가 뭐 그 녀석에게 걸려 물귀신될번 했다고 심지 바르지 못한 소리하는게 아닙니다.》

《허허허…》

정시명은 웃고 말았다.

그러나 길철은 여전히 얼굴이 달아가지고 그냥 열을 올려 말을 이었다.

《그 녀석은 의식적인 반공, 맹목적인 미국숭배, 체질적인 권력야심… 이러루한 못난것만 가뜩 품고있는 철저히 타도해야 할 놈입니다. 우리가 이런놈에게까지 관용을 베풀어 손을 내밀어서는 안됩니다.》

《음!… 혜숙이 그럴만 하게 됐군.》

정시명은 한걸음도 비켜설것 같지않은 길철의 단호하고 완고한 벽에 부닥치자 혼자소리로 중얼거리며 잠시 길철이를 바라보기만 하였다.

길철의 격한 심정이 십분 리해되였다. 그의 말대로 권영호는 그가 당해본 인간이다. 길철이 기민하고도 정확한 사고력으로 그 인간의 체질평가를 내린셈이다. 거기에 옭맺힌 감정의 앙금까지 첨가되니 처남에 대한 극도의 환멸과 분노를 삭여내지 못한다.

회의에 참가한 다른 사람들은 둘사이의 이야기가 무슨 소리인지 료량이 되지 않으면서도 오가는 말이 례사스럽지 않아 얼떠름한 낯빛들이였다.

례영이 마침 보리차를 끓여 차관과 차잔들을 들고 들어왔다.

《엎어진김에 좀 쉬기요. 그 편지를 갖다주렴.》

례영이 차잔을 다 돌리고는 자기 방에 가서 꽃봉투를 들고왔다. 그리고는 길철의 눈길과 마주치자 얼른 고개를 돌리고 도망치듯 방에서 나가버렸다.

정시명은 봉투를 받아놓고도 곰방대에 담배를 꾹꾹 다질뿐 말이 없었다.

어쩐지 이제 당장 예상밖의 불길한것이 들이닥칠듯싶어 방안의 공기는 때없이 침중해졌다. 모두가 더운 차를 훌훌 불어가며 목을 적시면서도 눈시울을 내리뜨고 불을 붙이지 않은 곰방대만 빨고있는 정시명의 눈치를 조심스럽게 살피였다.

정시명의 낯색이 여느때없이 어둡고 무거웠다. 옆에서 폭탄이 터져도 눈섭한오리 흔들릴것 같지 않던 무쇠같은 인간이 그 무슨 깊은 비애와 슬픔과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모지름을 쓰고있는것 같다.

불안하고 초조한속에서 시간이 흘러갔다.

한참 지나서 정시명이 손에 들고있던 봉투에서 속지를 꺼내는데 그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있었다.

《동무들!》 하며 정시명은 정중하게 첫 마디를 떼고 자리에서 솟구치듯 일어섰다. 그러나 목이 콱 막힌듯 입술을 짓씹고있다가 앞상에서 차잔을 들어올려 목을 추기였다.

《동무들, 난 원래 이 소식을 회의가 끝난 다음 길철동무에게 조용히 알려주자고 했습니다. 다른게 아니고 권혜숙동무가 우리 대오에서 떠나갔소.》

《예?!》

《대오에서 떠나다니요?!》

《혜숙이가?!》

뜻밖의 소식에 좌중은 일시에 비명같은 소리를 내지르는데 길철의 얼굴은 순식간에 백지같이 해쓱해졌다.

정시명이 화석처럼 굳어져버리는 길철의 모습에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자꾸만 보리차를 입에 댔다뗐다 하면서 혀를 추기기만 하였다.

잠시후에야 정시명은 편지를 든 손을 내리더니 《얘, 례영아!》하고 떨리는 어조로 불렀다.

《예.》 례영이 얼른 방안에 들어섰다.

《네가 동래에 갔다온 얘기를 이분들께 먼저 해드려라.》

《제가요?… 동래 갔다온걸 말입니까?》

《그래, 네가 날 대신해주려마.》

《…》

례영은 자기를 지켜보는 여러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빛이 꺼져버린 길철의 눈길과 마주치자 그만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고 쿨쩍거리기 시작하였다.

《례영아, 어서!… 여긴 회의장이다. 다 들어야 할 일이다.》

정시명이 애써 감정을 누르고 근엄하게 타일렀다.

례영은 고개를 푹 떨군채 될수록 여럿의 눈길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동래에 갔다온 이야기를 하였다. 도간도간 흐느낌으로 토막이 났지만 차츰 리성을 가다듬어 이야기를 제대로 이어나갔다.

… …

례영이 부산에 들어선것은 땅거미가 잦아들무렵이였다.

그는 우편국에 가서 동래의 혜숙의 친정에 전화부터 했다.

혜숙의 어머니가 전화를 받았는데 누구인가, 왜 찾는가, 어디서 사는가, 어디서 전화를 하는가 하고 꼬치꼬치 캐물었다.

례영은 부산에서 가까이 지내온 동무인데 사흘후에 서울가는 길에 들리겠다던 동무가 소식이 없어서 전화를 하노라고 했다.

혜숙의 어머니는 미덥지 않은듯 끝내 혜숙에게 전화를 넘겨주지 않았다.

그래 례영은 래일 아침에 동래온천에 가겠으니 온천접수실에서 아침 아홉시에 만나잔다고 전해달라고 하고는 전화를 놓았다.

다음날 그는 온천접수실앞에서 혜숙이를 기다렸다.

미구에 혜숙이가 나타났는데 미행이 있을가 싶어 잠시 그의 뒤꼬리를 살피다가 다른 징후가 없다고 안심이 되여서야 만났다.

탈의실에서 옷을 맡기고 욕실에 들어선 그들은 안으로 문을 잠그고 우선 욕탕에 미끄러져들어가 몸을 잠그었다.

혜숙이는 물속에서 례영의 손을 덥석 잡더니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섧게 울기 시작하였다.

울음을 씹으며 혜숙이 먼저 물었다.

《길선생이야기를 듣고 왔겠지?》

례영은 뭉싯한 젖가슴에 그의 얼굴을 살그시 포개안은채 고개를 가볍게 숙여보였다.

《대강…》

《난 어쩌면 좋아. 례영아, 난 이제야 알았어. 나와 길선생사이에는 서로 뛰여넘을수 없는 심연이 놓여있다는걸. 난 그분앞에 다시 나설수 없다는걸 똑똑히 깨달았어.》

《언니, 무슨 어처구니 없는 소리야. 나와 함께 이 길로 어서 가자. 우리 아버님이 기다리고계셔. 한시도 지체말고 동래를 떠나오라고 했다. 쓸데없는 생각 걷어치워.》

례영이 속으로는 혜숙이 그 무슨 어려운 결심을 내리고있는것 같아 가슴이 덜컥하였으나 다심하게 타일렀다.

《쓸데없는 생각 아니야. 사람이란 정말 제 분수라는게 있는가봐. 바랄만 한걸 바라구 따를만 한걸 따르구 사는게 다 팔자소관이야. 내 처지에 그런분을 감히 넘겨보며 살아오다니… 욕심두 크지.》

《무슨 새빠진 소리냐?》

《난 요 며칠새 아버지하구도 어머니하구도 밤을 새우며 말쌈했지. 오빠가 어떤 사람이란건 례영이도 들었을거구…

한마디로 우리 집은 통일을 위한 길에서 우리가 쳐없애고 나가야 할 첫번째 장애물이야. 난 이걸 깨달았어. 그래서 두려워진거야. 내 자신이 그 어지러운 집안에 아주 잦아들가봐.

이런 내가 나라앞에서 누구보다도 헌신적이고 사심이 없고 깨끗한 인간을 한생의 반려로 선택하고 쟁취하였어.

아하- 례영아, 례영이는 다는 모를거야. 난 자기자신을 이제야 발견하였어.

자기가 얼마나 엄청난 실수를 하였는가를 인제야 알게 되였다. 사랑이란 이성에 대한 욕심이 돼서는 안되지 않아.》

《언니, 지금 내게 무슨 수수께끼같은 소릴 하고있는거야? 자꾸 복잡하게 생각지 말아. 서로 위해주고 서로 아껴주면 다지 뭐가 있다는 말이야.》

《이런 거접스러운 생각일랑 하지도 않는 례영이가 부러워. 정말 부러워. 마동지나 례영이 부러워. 그 사랑의 세계는 선명하고 순결하고 단순하지.

사랑하는 심장 그 하나면 얼마든지 서로서로 일생을 의탁할수있는 사이였거든.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그런 복잡한 생활이 깔려있었구나.》

《언니, 자꾸만 알쏭달쏭한 소리를 하지 말어. 난 언니나 길선생이 동지들의 축복을 받았고 그 축복에 깨끗한 행복으로 보답하리라는걸 믿어. 그러면 다가아니야?》《아니, 례영이, 생활이란 그렇지 않은가봐. 생활은 보다 복잡하고 미묘하고 거칠기도 한것이지. 난 그이곁을 떠나기로 결심했어. 지금껏 받아안은 사랑이면 난 족해. 내가 지금껏 길철동지의 속을 썩여온것은 어리석은 계집의 자존심에서였지. 정말 버릇없는 변덕이고 한푼어치도 안되는 고집이였지. 그래서 난 여기서 회계를 했어. 생각을 굳힌것은 내 심장의 타이름이야.

난 그이께 더는 짐으로 돼서는 안돼. 그이가 나때문에, 나의 가정때문에 헛눈을 팔고 헛된 정력을 랑비하고 손이 떨리고 걸음이 주춤거리는것을 보고싶지 않아.

그이가 혁명앞에서, 나라앞에서 그리고 자기의 량심앞에서 깨끗한 자기 모습을 변치 않을것을 충심으로 바랄뿐이야.

이것이 내가 그이께 마지막으로 고여드릴수있는 마지막헌신이야.》

《아유 복잡해. 왜 그리두 복잡하냐. 올라가자. 당장 이 길로 서울로 가자. 네가 정말 요 며칠새 변해도 단단히 변했구나. 우리 아버지가 이래서 그리두 걱정하셨구나. 가자, 어서 가자.

언니가 정말 여기서 하루를 더 지체하다가는 쓸데없는 생각에 묻혀 영영 일어나지 못할것 같구나. 가자, 어서 가자.》

례영이 혜숙이를 와락 밀쳐버리고 욕탕에서 빠져나오려고 하자 혜숙이가 다시 그를 끌어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두 녀자는 서로 끌어안은채 물속에서 오래도록 말없이 눈물만 쏟았다.

례영은 자기로서는 혜숙의 마음을 돌려세울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원래 평소에도 주장이 있고 고집이 센 축이였는데 요며칠 련이어 부닥친 충격에 입은 상처가 너무도 깊어 누구라도 도저히 쉬이 아물게 할수 없을것 같다.

그러나 어떻게 하든지 당장은 시비를 더 캐지말고 서울로 데리고 가야 한다. 아버님이랑 여러 선생들이 뒤일을 맡아주시겠으니 올라가면 차츰 옭맺힌 마음의 끈이 풀리고 생각이 제곬으로 다시 흘러갈것이다.

둘은 따뜻한 물속에 몸을 맡기고있다가 온몸이 온천물의 자극으로 게나른해져서야 욕탕에서 나왔다.

그들은 바깥에 나와서도 온천뒤에 있는 대숲에서 무릎을 맞대고 앉아 이야기를 많이 하였으나 전진이 없었다.

온천식당에서 점심을 함께 하고난 뒤 혜숙은 려관앞의 자그마한 초가집에 거처를 정해주고 다음날 아침에 다시 오마하고 떠나갔다.

이날 저녁 례영은 한잠도 잘수 없었다. 자꾸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혜숙인 독한 마음을 먹고 있는것이 틀림없었다.

헤여질 때 자기를 덥석 끌어안고 속삭이던 말이 귀전에 자꾸 되살아났다.

《례영아, 난 정말 그 좋은분들과 함께 오래오래 나라 위한 한길을 걷고싶어. 아무튼 우리 평생에 서로들 잊지 말구 살아가자.》

무엇때문에 이런 말을 했을가? 아침에 오마하는 사람이 영원한 작별이라도 하듯이 정에 사무친 눈으로, 목이 메인 소리로 인사를 남긴것이 우연치 않다.

너무 흥분한 탓일가?…

그 무슨 심상치 않은 일이 터질것만 같아 례영은 눈을 뜨고 날밝기만 기다렸다.

그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주인집에서 차려준 밥상에 나앉아 숟가락을 드는둥마는둥하고 물러앉는데 밖에서 주인찾는 녀자의 목소리가 났다.

례영이 얼른 마당에 나갔다.

그런데 나타난것은 혜숙이 아니라 파마머리에 양장을 하고 서양향수내를 풍기는 서른전의 녀성이 심부름군인듯 한 사내아이에게 꽤 묵직한 짐짝을 메워가지고 나타났다.

녀인은 례영에게 눈인사를 지어보이고는 《혹시 아씨가 례영이라고 서울서 온…》하며 애교가 잘잘 끓는 서울말씨로 묻는다.

《예, 제가 례영입니다. 혹시 혜숙이네…》

《예, 혜숙이는 저의 시누이랍니다.》

《아, 그래요? 어서 방으로 들어가세요.》

《괜찮아요. 여기가 좋아요. 〈얘, 넌 돌아가도 된다.〉》 녀인은 사내아이에게 지페 한장을 꺼내주며 돌려보냈다.

《우리 시누이가 보내온겁니다. 이건 아씨에게 보내는 편지구, 이건 혜숙이 어제 오후에 구해온 감술이랍니다.》

《그럼 혜숙이는?…》

례영이는 어쩐지 얼음덩이를 통채로 삼킨듯 속안이 선득해져서 황황히 물었다.

《편지에 다 썼다고 합니다. 우리 시누인 오늘 새벽바람에 집을 떠났습니다.》

《예?… 집을 떠나다니요?! 제가 함께 가려고 왔는데… 서울로요?》

례영이 편지를 받아들다말고 비명처럼 새된 소리를 내질렀다.

《글쎄요. 서울가는 차림새는 아니였는데… 그럼 전…》

녀인은 그 무엇인가 불길한 예감에 이그러지는 례영의 고운 얼굴을 지켜보며 잠시 머뭇거리다가 《호-》하고 짧은 숨소를 내며 돌아섰다.

례영이는 대나무울바자밖으로 총총히 사라지는 녀인을 말없이 바래주고나서 토방우에 앉아 편지봉투를 뜯었다.

봉투안에는 례영에게 전하는 편지와 또 하나의 작은 봉투가 나왔다. 작은 봉투에는 《정선생님께 드립니다》하는 글이 적혀있었다.

례영이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왼손으로 꼭 그러안고 편지를 읽었다.

《례영이, 올케를 믿고 이 편지를 보낸다. 며칠 지내보니 그래도 날 동정하고 리해해주는건 올케밖에 없구나. 날 용서해줘. 난 이길로 집을 떠난다.

백천번 생각하다가 나선다. 날 리해하여다오. 언제나 례영인 날 사랑해주고 리해해주었지. 존경하는 여러 선생님들에게 더는 부담으로 되고싶지 않다.

그리고 난 우리 가정이 나라앞에 지은 죄를 가장 무자비한 싸움에서 피로써 덜고싶어.

례영이, 참 좋은 나의 동무야. 너의 앞길이 행복해지기만을 바라고 또 바란다. 이 술이 좋은것은 못돼도 여러 동지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나의 마음으로 알고 부어올려다오.

조국이 통일되는 날 서울광장에서 꼭 만나자.

                                                 숙 》

… …

례영이 이야기를 마치고나자 제사 죄스러운 눈으로 길철의 척 늘어진 어깨와 고개부터 보고는 또 얼굴을 싸쥐고 방안에서 달려나갔다.

그가 나가자 정시명이 손안에서 꼬깃꼬깃해진 종이를 반반하게 펴서 들었다.

《혜숙동무가 나에게 보낸 편지요. 내가 읽겠습니다.》

정시명은 앉은 자리에서 웅글은 소리로 읽어내려갔다.

 

그리워지는 선생님!

저를 위해 속썩이시는 선생님께 이렇게 겹치는 심려를 끼쳐서 무어라고 죄송스러운 마음을 여쭈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길철선생님께 올리는 편지를 쓰고는 지우고 또 쓰고지우고 하면서 여러번이나 썼는데 흐르는 눈물때문에 종시 끝을 맺을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외람스럽지만 선생님께 속말씀 드리고 선생님을 통하여 길철선생님께 하직의 인사를 전하는것이 마음 편할듯 싶어 이렇게 펜을 들게 되였습니다.

지나간 한주일동안 저는 너무도 놀랍게 달라진 우리 집안을 구석구석 헤쳐보면서 우리 집이야말로 우리의 애국집단이 타도해야 할 대상이며 력사의 죄인들이라는것을 똑똑히 알게 되였습니다. 광복후에 옛날 죄지은 사람들까지 좋게만 달라져 건국에 한몫을 하는데 어째서 저의 집안은 못되게만 번져졌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오빠가 얼마나 더러운 시정배로 되였는가는 길철선생님이 목격한바 그대로입니다.

제가 요 며칠 여기에 머무르면서 무슨 소리인들 안하였겠습니까.

하지만 부모들은 저의 말을 애초에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고 도리여 제가 나선 길에서 되돌아설것을 강요하고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뼈를 깎아내는 고통스러움을 씹으며 우리의 사랑의 미래를 검토해보게 되였습니다.

확실히 오빠와 길철선생님, 우리 집과 《흥국상회》는 물과 기름처럼 공생공존 할수 없는 적아입니다.

길철선생님은 일찌기 량부모 다 여의고 조국과 인민앞에 깨끗한 충정을 고여온분이며 그 길에서 자기를 탈선시키려는 그 어떤 요소에 대해서도 타협이 없는분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랭정한 리성을 가다듬고 생각하고 판단을 내렸습니다. 통일애국의 길을 막아나선 온갖 반동들과의 투쟁전선의 일익을 무겁게 담당하고있는 길철선생님에게 마음의 부담거리를 얹어주지 말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누가 누구를 하는 싸움에서 저때문에 마음이 약해서는 안되며 티끌만 한 주저도 보여서는 안되는분이라고 말입니다.

저의 집이 속한 그러한 반동의 무리, 매국을 애국으로 은페하고 겨레에 도전하는 무리들을 무자비하게 타격하십시오.

선생님! 그래서 저는 길철선생님의 곁에서 영원히 물러서기로 결심한것입니다.

저를 위해 안타까워하시고 기뻐도 해주시던분들에게 커다란 실망을 드리는 일이지만 이것이 아껴주고 위해주는분들의 사랑에 보답하는것임을 저는 늦게나마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저를 믿어주십시오. 저는 영원히 통일애국을 신념으로 알고 살아갈것입니다.

력사의 죄인이 된 우리 집사람들이 나라에 지은 죄를 천분의 일이나마 덜기 위하여 싸우고 싸우고 또 싸울것입니다.

저는 이 길로 산으로 갑니다. 저는 통일의 길을 막아나서는 반동무리들을 이 땅에서 쓸어버리고있는 빨찌산대오에 들어서렵니다. 선생님들의 슬하에서 교양되고 사랑을 받은 인간의 리념과 결의를 피로써 겨레앞에서 보증을 받으려고 합니다.

남도의 거치른 산간오지에서 애국성전의 총소리가 높이 울릴 때 이 혜숙의 총성도 함께 울린다고 믿어주세요.

그리운 정선생님! 두 김선생님! 안선생님! 저를 친딸처럼 사랑해주시던 사모님! 부디 귀한 몸 건강하시여 통일승리의 그날에 철없는 소녀가 올리는 절을 받아주십시오.

저의 다정한 스승이시고 귀중한 벗인 길철선생님!

어지러운 근본도 생각지 않고 감히 그렇게도 깨끗한 선생님을 넋 잃고 사모하여온 이 리기적이고 분별없는 죄된 몸이 어떻게 용서받을수 있겠나요.

새로운 사랑을 찾아 부디 행복하시기를 바랄뿐입니다.

                                                      권혜숙 올림

 

정시명이 편지의 랑독을 끝내자 방안은 사람들도 공기도 한덩어리로 얼어붙은듯 숨소리마저 잦아들고 굳어져버렸다. 김명호는 깍지낀 두손에 으스러지게 힘을 주며 두눈을 부릅뜨고 창밖을 바라볼뿐이고 안지생은 얼혼이 빠진 사람마냥 천정의 한점만 뚫어지게 쏘아본다. 김승원은 아까부터 눈을 감고있는데 아예 잠들어버린듯 이따금 아래턱만 움씰거리며 으드득 소리를 냈다.

길철은 모두의 눈길들이 자꾸만 자기에게로 모여드는듯싶어 어깨를 간추리고 머리를 무릎에 묻은채 대척이 없다.

다치면 금시 탁 터질듯 방안공기는 한껏 팽배해졌다.

정시명은 편지를 꽉 움켜쥔채 속에서 마구 뜀질을 하고있는 비분을 어데다 터쳐놓을 곳이 없어 길철의 졸아든듯싶은 모습만 측은하게 바라볼뿐이였다.

《이거야 억이 막혀. 으흐흐흐… 에이 못난 놈들! 못난 놈들… 세상에 이럴수가 있는가? 이럴수가!…》

폭탄 터지는듯 한 거센 목청으로 심장이 터지는듯 한 고통을 처음으로 뿜어올린것은 김명호였다.

그는 살진 주먹으로 가슴팍을 텅텅 소리나게 치면서 열기가 번들거리는 눈을 무섭게 굴리며 울화를 터뜨렸다.

《그런 불량한 자식! 그래 리념이 다르다고, 색갈이 다르다고 매부를 바다에 처넣겠다고… 패륜이지, 악덕이지… 이런 불한당이 〈국회〉의원이라구?

그 자식 어디 내 손에 걸려들기만 해봐라. 그 애비는 또! 그 에미는 또! 이 강산에 그런 망종들이 삐져나다니…

그 잡스러운 놈팽이들부터 코꿰여 동래앞바다에 처박아야 할 일이 아닌가.》

김승원이 방안이 떠나갈듯 노성을 터뜨렸다. 평소에 좀체로 성낼줄 모르던 사람이 독을 쓰니 당장 일을칠듯 무섭다.
길철이 더는 그 자리에 있기가 괴로운듯 자리에서 무겁게 일어나 신발을 대강 걸치고 바깥으로 나갔다.

그는 마당 한구석에 있는 은행나무밑둥아리에 허리를 붙이고 앉아있다가 다시 뒤문을 열고 한강이 굽어보이는 바위를 향해 어정어정 걸어갔다.

정시명은 그가 나가자 담배들을 태우라고 이르고는 《안동무, 좀 나가보오.》하고 걱정스럽게 부탁했다. 그리고는 곰방대에 담배를 다져넣고 불을 붙이고나서 성난 황소들처럼 숨소리를 씨근거리고있는 김승원과 김명호와 마주앉아있기가 거북스러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방금 꽃이파리가 지고 쌀알같은 열매들이 다랑다랑한 포도넝쿨밑으로 가서 나무걸상에 앉아 담배만 풀썩풀썩 태웠다.

잠시 생각을 가누던 정시명은 스스로 놀라서 자신에게 물었다.

(가만… 내가 무엇때문에 회의에서 편지얘기를 꺼내놓았을가?)

이렇게 물음표를 세워놓고는 격렬하게 태를 치는 흥분을 서서히 눅잦히려고 애썼다.

(혜숙의 오빠때문이였지. 《국회》투쟁에 그를 내세우는 문제를 놓고 길철의 완고한 반대에 부닥쳤지……

내가 주장하려는것은 무엇이였는가?… 권영호를 도와주자는것이였지…

그렇지, 권영호를 끌어안아야 한다는것을 저들이 스스로 깨닫도록 하자는 노릇이였는데… 그런데 난사로구나.…

동지들속에서는 혜숙의 가정에 대한 타매의 목소리가 세차졌다.

혜숙의 립장에 공감하면서 그들의 사랑의 결렬을 어찌할수 없는 비극으로 받아들이고있다.

실제로 혜숙이 향방이 없어졌으니 어데 가서 찾아내며 찾아냈다고 한들 강심먹고 삭여버린 사랑의 끈을 누가 어떻게 이어놓는단 말인가.)

키꼴이 늘씬하고 멋있게 생긴 혜숙의 선이 굵직굵직한 모습이 그냥 어른거렸다.

그렇게도 밝게 웃으며 막힌것없이 탁 터놓고살던 《괄량》이가 웃음을 잃고 정을 잃고 구석진 곳만 애써 찾고있는 그 가냘파지고 애절해진 모습이 눈에서 피가 뚝뚝 돋게 한다.

긁어서 부스럼이라더니 괜히 가지 않겠노라 떼를 쓰는 혜숙이를 달래서 친정에 보내 그들의 사랑을 일조에 하늘에 날려보내고 젊은이들의 가슴에 영원히 아물길 없는 상처를 만들어놓았다.

어쩌면 좋단 말인가. 저들을 저대로 내버려둘수가 없지 않는가.

방안에서는 아직도 두 사람이 분을 삭이지 못하고 권영호에게 저주를 퍼붓고있다.

정시명은 어수선하게 떠도는 생각에 묻힌채 시간 가는줄 모르고 줄담배만 이어댔다.

혜숙의 문제를 내걸고 《국회》투쟁의 필요성과 그 방향에 대하여 자기의 립장을 내놓자고 했는데 격앙될대로 된 분위기에서는 다시 꺼내놓기가 어려웠다. 흥분이 앞서서는 건설적인 합의를 보는것이 어렵다고 생각되였다.

그래서 다시 모임을 시작했을 때 정시명은 그 문제는 피하면서 가라앉은 목소리로 차후의 사업에 대한 토의를 실무적으로 간단명료하게 결속하였다.

《지금 남북삼천리에 차넘치는것은 미군을 몰아내고 완전통일독립국가를 세우기 위한 투쟁입니다.

남조선전역에 파급되고있는 유격전도 미군을 몰아내기 위한 목표를 향하고있고 모든 좌익과 중도세력들이 이 선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 〈흥국상회〉도 이 거족적인 투쟁에서 자기의 몫을 찾아내자는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맡아야 할 과제는 무엇이겠는가.

조성된 정세를 〈흥국상회〉의 성격에 맞게 어떻게 리용하는가 하는겁니다.

그래서 찾아낸것이 바로 아까 제기한 〈국회〉를 통한 미군철거투쟁입니다.

다음으로, 새로 조직될 행정부가 리승만의 독주에 반기를 들게 하며 동족을 해치려는 음모에 힘을 합치지 못하도록 하는겁니다. 매국적인 인물들과 당파를 하나라도 더 미국놈들과 리승만의 품에서 떼여내여 한줌도 못되는 역적도 배들을 철저히 민족의 구성원에서 격리시키도록 합시다.

이 두가지 과업이 새롭게 조성된 정세와 관련하여 동지들에게 제기하고저 하는 문제입니다.

다시한번 이번 투쟁의 전모를 함축한다면 미군철거를 위한 〈국회〉투쟁-바로 이것입니다.》

정시명은 《5. 10단독선거》후 지금까지 머리속에서 무르익혀온 대결구상을 이렇게 명확하게 내놓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다시금 마디마디에 힘을 주어 강조하였다.

《〈국회〉를 미군장기주둔을 합법화시키는 법적공간으로 내쳐두는가 아니면 미군을 내쫓는 합법적무대로 만드는가, 뻐근한 일이요. 하지만 이번에도 우리 〈흥국상회〉는 반드시 해낼것이요.》

정시명의 드팀없는 결심에 대하여 참가자들은 일치하게 찬동을 표시하였다.

그러나 혜숙이네 문제로 하여 의연히 모두의 표정은 납덩이처럼 무겁고 음울하였다.

사업분담이 있었다. 김승원이 주타격전선인 《국회》사업을 담당하고 김명호가 정당들과의 사업을 보면서 《유엔조선위원단》과의 사업을 그냥 맡았다.

길철이는 처남과 대결하여 이미 그에게 안면로출이 되였으므로 김승원의 보좌관자리에서 떼내고 자료사업으로 전우들의 활동을 밀어주면서 조직될 행정부와의 사업을 전망적으로 담당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안지생은 내부사업들을 맡아보면서 남북련석회의 참가자들을 비롯한 민족주의세력들과의 사업을 계속 근기있게 밀고나가도록 하였다.

회의를 끝내면서 정시명은 모임장에 드리운 침울한 분위기를 가셔주고싶어 한결 밝은 어조로 말했다.

《반동중에서도 상반동들이 모인 〈국회〉를 움직여낼수 있겠는가. 나도 뻐근해지는 질문이요. 그러면 〈국회〉를 움직일만 한 세부적인 대안이 마련되여있는가? 없소. 참고할 경험도 없소. 앞으로도 찾지 못할게요. 우리 각자가 정열과 사색과 행동으로 탐구해서 경험을 쌓고 완성해나갑시다.

림기응변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건 타고난 재능이 아니요. 맡은 과업을 놓고 부단히 사색할 때만 부닥치는 임의의 정황에서 예지가 발동되고 기대했던바 이상의 창조적열매를 수확할수있소.

김승원동무와 길철동무가 새로운 단계의 투쟁에서 벌써 모범을 보여주었소.

벌써 〈국회〉안에 우리의 의지와 목표를 관철시킬수있는 40여명의 초당파적인 집합체를 무어냈는데 이건 이 사업에 대한 연구를 심화시켜온데로부터 회의과정에 생겨난 뜻밖의 정황을 제때에 포착하여 가장 적합하고 가장 결정적인 기회에 결단성있게 일을 성사시킨 림기응변이 가져온 결실이요.

사색과 정열, 담력… 내가 동지들에게 구태여 경험을 소개한다면 김승원동무가 이룩한 이러루한 경험이요. 절대로 답답하게 생각할건 하나도 없소.》

김승원이 책임자의 후한 칭찬에 열적은 웃음을 지으며 《하, 그거야 뭐, 굴레벗은 망아지같은 녀석들인데 이제 어떻게 놀아 대겠는지 뉘 알겠다구요.》하고 중얼거리며 몸처신이 거북한듯 실팍한 목덜미를 슬슬 긁었다.

일상적인 체질화된 틀잡힌 몸가짐을 흐트러뜨리는 그 단순하고 꾸밈새없는 동작으로 하여 방안을 무겁게 짓누르던 분위기는 한결 늦춰지고 처음으로 모두의 얼굴에 미소가 피여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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