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혜숙이네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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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남이 새로 구입한 집은 한강이 발밑으로 보이는 고관저택마을에 자리잡은 2층짜리 벽돌집이였다.
서병남은 안지생의 부탁을 받고 약수동에 이사오면서 안전을 위한 여러가지 대책을 세워놓았다.
우선 린근의 주민들속에서 헌병집으로 통하게 소문을 놓도록 한것이였다.
서병남의 둘째아들은 김정원의 지도를 받으면서 강원도 강릉헌병대에서 대위로 복무하고있었다.
서병남은 집에 전화를 가설하기전에 동사무소에 뻔질나게 드나들면서 강릉헌병대의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아들도 헌병대의 턱을 걸고 아버지를 바꾸어달라거나 동의 관리들에게 여러가지 부탁을 하군 하였다. 그런가 하면 송호정으로 하여금 아들의 부탁이라는 명목으로 수하의 헌병들을 시켜 서병남을 전화로 자주 불러내도록 하였다.
이렇게 해놓으니 서병남은 이사오자바람에 동관리들속에서 《헌병대집》으로 불리우고 주변사람들속에서도 그렇게 통하게 되였다.
다음으로는 이곳에 눌러앉기전에 이사짐을 싸들고 도봉구로, 관악구로, 신촌으로, 종로동으로 서울의 변두리와 중심지역을 들락날락하게 함으로써 추적하던 놈들이 미처 꼬리를 물기 어렵게 오리무중으로 되게 하였다.
집의 구조도 안전상 편리하게 품을 들여 개조해놓았다.
정시명과 전우들이 사용해야 할 방은 전부 벽장을 통하여 지붕으로, 담장밖으로 빠져나갈수 있게 했다. 그리로 탈출하면 한강버들숲에 떨어진다. 거기서는 한강다리와 나루터가 멀지 않으므로 수원이나 서울중구의 번화가에 들어가 쉽게 종적을 감출수도 있었다.
정시명이 집두리를 한바퀴 돌아보니 사업하기도 여러모로 편리할것 같았다.
대문쪽과 옆으로 큰도로가 뻗어가 쉬임없이 자동차와 마차들이 북적거리고 행인들이 끊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이집 출입자들이 특별히 눈에 뜨일 리유는 없을것 같다.
정시명이 자기를 따라선 안지생과 서병남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서병남은 고개를 끄덕끄덕거리다가 신중한 기색으로 자기 의견을 내놓았다.
《일전에 저 안선생에게 말씀한바 있지만 문제되는게 하나 있습니다. 뭔고 하니 우리가 외부인원을 감시하기가 복잡하다는겁니다. 길앞에 있는 행상군들을 쫓아버리라고 동사무소에 이야기는 해놓았는데 아직까지 모두 버티고있습니다.》
서병남에게는 《흥국상회》의 기본거점이라 할수 있는 자기 집을 보위하는것이 제일 급한 일이여서 그것부터 눈에 걸리는 모양이다.
《그건 제가 두루 생각을 해보았는데 일없을것 같습니다. 저 앞거리와 옆거리에 우리 사람을 행상군으로 앉혀봅시다.
그러면 도리여 접근하는 놈들을 감시하기에도 좋고 아래에서 〈흥국상회〉를 련결시키는 통신원격으로 리용할수도 있어 지휘부의 로출을 막는데 좋을듯 싶습니다.》
안지생이 자신있게 주장하였다.
《아, 그거 정말 묘안이올시다. 앞거리에 가게방을 사서 아예 제가 눌러앉겠습니다.》
서병남이 쌍수를 들어 환영이다.
《뭐, 주인장께서 구차스레 거기에 앉겠습니까.》
정시명이 기세를 올리는 서병남을 돌아보며 빙그레 웃었다.
《뭘요, 구차스럽다니요. 사람팔자가 타고난게 있습니까. 저한테 통신소장자리쯤 주시오.》
《허허… 그건 좀 생각해봅시다. 백화점주인이 가게방이라… 어떻소, 안동무?》
안지생도 따라웃었다.
그제야 서병남도 자기가 들어앉는것은 무리라는것을 짐작하고 멋적은 웃음을 지었다.
《그럼 저 며늘아이를 앉혀놓읍시다. 앞에도 옆에도 우리 가솔을 앉혀놓는게 무탈하거든요.》
안지생이 그 소리에는 맞장구를 쳤다.
《그렇다면 문제가 없을것 같습니다. 가게방 물건은 제창 백화점에서 도매로 넘겨받아 팔수 있으니 장사에 밑질것도 없구요.》
이렇게 되여 서병남은 앞가게에는 며느리를 앉히고 옆도로의 가게에는 광주에 살던 조카딸을 데려다가 장사를 하게 하였다.
이튿날 서병남의 집에 《흥국상회》성원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도착하는 차제로 정시명에게 사업정형과 전망적인 의견을 제기하였다.
성과가 눈에 띄였다.
김명호는 《유엔조선위원단》과의 사업이 한걸음 전진했다고 하였다. 각국의 대표들이 대체로 교체된 조건에서 료해사업부터 진행하였다. 그중에서 경향성이 나아보이는 오스트랄리아대표와 수리아대표와의 사업을 벌렸는데 성과가 있었다. 《5. 10단선》이 불법, 무법의 선거라는것을 그들이 납득하게 되였다고 한다.
김명호는 이렇게 설명을 하였다.
《그래서 조만간에 수리아대표는 〈5. 10단선〉을 무효화시킬데 대한 성명서를 발표하게 될것이며 오스트랄리아대표도 자기의 공식적립장을 밝히게 됩니다.
〈유엔조선위원단〉의 움직임에 바빠맞은 미국놈들은 9월에 열리는 유엔총회에 〈유엔조선위원단〉이 참가하여 혹시 딴소리를 할지 모른다고 우려하면서 유엔총회가 열리게 되는 빠리행 려행비용을 지불하지 못하도록 비렬한 술책을 쓰고있습니다.
이것때문에 위원단내부에 또다시 패가 생기고 〈5. 10단선〉지지를 표시한 저들의 공개보고서를 다시 검토할데 대한 목소리가 울려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김승원의 사업에서 한걸음의 전진이 일어난것이 무엇보다도 기뻤다. 5월 31일에 있은 《국회》개원식을 계기로 김승원이 초당파적인 그루빠를 편성하는데 성공한것이다.
일은 이렇게 벌어졌다고 하였다.
… 림시의장으로 선출된 리승만은 첫 개원모임때부터 마치 이 나라의 대통령이 다 된듯이 림시의장이라는 직분에 어울리지 않는 소리를 탕탕 했다.
리승만은 개회사라는데서부터 미군주둔은 우리 국가존립의 절대절명의 기반이요, 이제 정부가 서면 미국고문들을 수천명정도로 앉혀놓아야 되겠소, 정치방식은 미국식이 유일한 선택이요, 정부의 실력배양으로 통일을 합세다, 〈대한민국〉창립의 특등공신은 임영신입네다 등의 소리를 련발해서 방청석은 물론 의원속에서도 강한 론난이 벌어졌다.
휴식시간에 김승원은 의원들의 동향을 타진해봤다. 리승만의 발판인 《독촉》계와 신익희가 맡아보는 《국민당》계의 의원들도 리승만의 무분별과 권력람용에 입들이 한발씩 나와 삐죽거리고있었다. 특히 젊은축들이 삼삼오오로 모여서서는 늙은이가 벌써부터 아니꼽게 놀고있다며 목청을 돋구고있었다.
김승원은 자기의 보좌관의 직함으로 개원식에 참가한 길철과 이 문제를 놓고 의논하였다. 길철이 김승원의 말을 듣더니 무릎을 쳤다.
지금 30대의 의원들이 수십명이 된다. 하늘의 별이라도 따낸것 같은 성취감과 자부심에 한껏 부풀어있는 그들속에 한번 불을 질러보자. 무엇인가 움직임이 있을수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개원식에서부터 불을 걸기로 합의하고 방도를 토의하였다.
길철과 헤여지자 김승원은 김성수를 찾아갔다. 《한민당》대표로서 주석단에 앉아있던 김성수도 개원식에서 대통령책임제를 은근히 거드는 리승만의 발언에 밸머리가 잔뜩 꼬여있었다.
그걸 쟁점으로 본때를 보이자는 김승원의 제의에 쾌히 응해나섰다.
휴식시간이 끝나 다시 회의가 시작되였다.
리승만이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재개를 선언하고 자리에 앉을 때 김승원이 《림시의장!》하고 손을 들고 일어났다.
사람들의 이목이 그에게 집중되였다.
리승만도 회의일정에 없는 김승원의 돌발적인 출현에 그 붕어눈을 꺼벅거리다가 《말씀하세요.》하고 턱을 꺼덕거렸다.
《아까 림시의장께서는 우리 〈국회〉의 엄숙한 연단에서 자기의 직분에 합당치 않게 무책임한 발언을 함부로 하였습니다. 미군주둔문제요, 정치방식문제요, 고문요청문제요 하는것은 이 영광스러운 좌석에서 함부로 거론할 성격의 문제가 아니요. 특히 림시의장이라는 초당적인 공인의 자격으로 자기 개인과 자기당의 의사를 선전, 강요, 발설해서는 안될줄로 압니다.
더구나 림시의장은 정부의 실력배양으로 통일을 한다고 했는데 그러면 정말 북벌통일이란 말입니까?
지금 여론이 우리 〈국회〉 보고 반민족모임이라는 지탄도 크게 울리고있는데 〈국회〉의 공식발언에서 동족상쟁을 운운해도 일없다는겁니까? 이건 명백히 직권람용, 부당발언이라고 보면서 상기발언들의 즉시 취소를 요구하는바이며 저의 요구사항을 의사록에 기입해줄것을 운영측에 부탁하면서 제헌의원여러분, 저의 제기에 동의하시는분들은 자기 립장을 기립표시해줄것을 요청하는바입니다.》
그의 발언이 떨어지기 바쁘게 방청석에서 우뢰같은 박수가 일제히 터져나왔다.
그 박수소리에 힘을 얻은듯 여러명의 의원들이 용기있게 벌떡 일어섰다.
여기저기서 신문기자들이 소신있게 자리를 차고 일어나는 의원들의 얼굴을 사진기에 담느라고 분주히 돌아쳤다.
두번째렬의 가운데자리에 앉아있던 김승원은 자기에게로 눈길을 돌리고있는 의원들에게로 천천히 몸을 돌려 눈으로 훑으며 지나갔다. 그의 눈길과 부딪친 면목이 있는 젊은 의원들이 줄레줄레 일어섰다. 좌우앞뒤를 살피고있던 여러명의 의원들이 또 여전히 그치지 않고 있는 방청석의 우렁찬 박수성원에 고무되여 일어났다.
어림짐작으로 마흔은 넘어설것 같다.
방청석에서는 의원들이 새로 일어날 때마다 더 요란한 박수로 그들의 배심있는 행동에 련대성을 표시하였다.
40여명의 젊은 의원들중 무소속이 많았지만 《독촉》계와 《한민당》계에서 지금껏 리승만을 따라나섰던 젊은 의원들도 있었다. 그들은 자기의 주장을 지킬줄 아는 뼈대굵은 인물들이라는것을 세상에 선을 보이듯 잠시토록 회의장의 여기저기에 고개를 높이 들고 부각상처럼 우뚝 굳어져가지고 앉을줄을 몰랐다.
그들중에는 리승만이라고 해도 안중에 없다는 영웅심리에 추동된 사람도 없지 않았지만 어쨌든 김승원은 《국회》안에서 장차 어깨를 겯고 나갈수 있는 동료들을 순식간에 걷어쥐게 된것으로 하여 기쁘기 그지없었다.
이윽고 리승만이 자기에게 감히 불질을 해온 도전자들을 눈에 새겨 넣을듯 한명한명 노려보다가 다소 풀이 죽어가지고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김의원의 제기는 반수이상의 지지를 얻지 못했으므로 유감스럽지만 기각되였습니다. 다음회순으로 넘어가겠습니다.》
김승원은 이 정도로 그치는것이 좋을듯싶어 일어난 의원들에게 감사와 격려의 눈인사를 보내고는 자리에 앉자고 손을 눌러보였다.
그러자 일시에 일어난 의원들은 약속이나 한듯 그 손길에 따라 자리에 앉았다.
김승원이 자연스럽게 40명 의원의 길잡이가 된 격이다.
김승원은 자리에 앉자 리승만을 향하여 좀 더 맞불질을 하여 따라나선 40명 의원을 각성시켜주는것이 좋지 않았는가 하는 아쉬운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처음으로 열리는 《국회》를 지켜보는 국민적정서를 고려하여 중도에서 앉아버린것이 좋았다고 생각을 고쳐 하였다.
회의가 끝났을 때였다.
여러 의원들이 김승원을 에워싸고 명함장을 요구하였다. 그의 주위에 기립호소에 호응해나선 40여명의 의원들이 다 모여들었다.
그들은 의기양양해서 중구난방으로 떠들었다.
《아, 김형, 씨원합니다. 우리 〈국회〉의 관례를 잘 만들어 놓았습니다.》
《용기있는 결단이였습니다. 앞으로도 당치 않은것들과는 이렇게 도전합시다.》
《로형, 고맙소. 난 돌아가서 나의 지지자들에게 첫 귀환보고를 자랑스럽게 하게 됐소. 당신들이 나에게 던져준 표를 당당하게 행사했다고 말이요.》
이렇게 다들 김승원을 추켜올리며 기세를 올리자 김승원이 큰 소리로 웨쳤다.
《의원여러분, 고맙소. 〈국회〉의원의 권리를 소신껏 행사해준 당신들의 의로운 행동에 나의 진심으로 되는 사의를 표합니다. 우리의 행동은 민주의 새싹이고 〈국회〉운영의 바람직한 미래의 모습이요.
오늘은 비록 실패했지만 방청석에서 울리던 박수소리를 새겨둡시다. 그것은 국민의 량심이고 평가요. 난 오늘의 우리의 용기와 의지를 하나로 묶을것을 제기합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그에 호응하는 소리가 울렸다.
그런데 적지 않은 사람들은 주저하는 기색이였다.
김승원은 그들이 동요하는 까닭이 리해되였다.
그들은 이미 《국회》에 조직된 각이한 그루빠에 이미 적을 두고있었다. 《반공련맹》회장이며 《국민당》당수인 신익희와 《대동청년단》 단장 리청천은 소속의원들을 묶어 《3. 1구락부》를 조직하고 조봉암을 비롯한 무소속의원들과 김약수의 《인민공화당》계는 《6. 1구락부》로 무어졌으며 그밖의 그룹이 여러개 생겨났다.
김승원이 자기 의견을 내놓았다.
《여러분들의 리념과 당파와 정견이 서로 다르니 초당파적인 그루빠를 조직합시다. 구태여 이름을 붙일것 같으면 여러분들은 30대의 젊은 의원들이니 초당파라고 해서 기성세력의 보수와 안위주의적인 정치간상행위에 젊은 혈기와 량심과 지조로 맞서나갑시다. 자기들의 뜻을 지킨다는 의미에서 〈수의계〉라고도 할수 있지 않을가요?》
김승원의 아량있는 설명에 주저하던 의원들까지 박수로 지지해나섰다.
이렇게 되여 40여명의 젊고 행동력이 있고 비교적 정의감이 있는 의원들이 김승원의 주위에 뭉쳤다.
김승원은 그들의 손목을 하나하나 굳게 잡아주고나서 다시 큰소리로 말했다.
《젊은 의원여러분! 난 여러분들의 소행을 국민앞에 다진 선거공약을 리행하려는 의로운 행동으로 높이 평가하면서 고맙게 생각합니다. 난 사실 리승만의 독선, 독주에 참을수 없어 일어서기는 했지만 여러분들의 대바른 련대가 없었더라면 한갖 손가락으로 이마나 퉁겨주는 정도로 그치고 말았을겁니다. 감사합니다. 의원여러분, 당신들에 대한 사의의 표시로 내 턱을 낼랍니다. 여러분 모두를 나의 손님으로 초청합니다.》
이날 저녁 아서원에서는 술판이 벌어졌다.
비용은 최남수가 다 부담하였다. 그도 의원방청석에 있다가 김승원의 행동에 혀를 찼다.
그는 옆사람들에게 《저 사람이 내가 밀어주는 사람이요. 어떻소. 저게 심지바른 정치가란 말이요.》하고 큰소리로 자랑하며 손바닥이 얼얼하도록 박수를 쳤다.
그는 김승원이 자기 주장을 지지하는 의원들은 일어서라고 호소했을 때는 눈치를 보는 의원들을 안타깝게 굽어보며 어서 일어들나라고 소리치다가 벌떡 일어나기까지 하여 방청객들을 웃기였다.
《저게 정치하는 사람이란 말이요. 리승만이 입부리 함부로 놀리다가 우리 의원님께 땀깨나 뽑는군. 잘한다, 잘해!》
최남수는 이렇게 성수가 나서 소리질렀다.
아서원에서 크게 술판을 마련한 최남수는 김승원의 옆에 들락날락하면서 좌석을 이것저것 주관하였다. 아서원 마담을 불러놓고는 《이게 다요? 우리 의원님이 리승만의 면상을 호되게 족치고 왔단 말이요. 이분들이 다 함께 말이요. 무소불위라 꺼떡거리던 리승만을 혼구멍을 냈는데 배들이 오죽 출출하겠소. 아서원의 뒤창고를 다 털어내오란 말이요.》 해서 참석한 의원들이 한바탕 웃음판을 벌려놓게 하였다.
김승원은 분위기가 고조되자 이렇게 정중하게 제의하였다.
《자, 오늘의 쾌거를 기록해두는 의미에서 수표를 남깁시다. 그리고 정식으로 소장파의 출범을 선언합시다.》
그러자 호응하는 목소리와 박수가 터져나왔다.
종이장과 펜대가 돌아갔다. 참가자들은 거기에 자기 이름을 큼직하게 써놓았다. 일종의 등록사업인것이다.
《회장도 뽑읍시다. 중심이 있어야 될게 아니겠소.》
《옳소.》
일치하게 김승원을 제기하였으나 그는 뒤전에 물러나 앉았다.
《믿어주시니 고맙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회장은 소장파들의 집합체라는 모양새에 걸맞게 젊은분이 나서야 합니다.
오늘 우리 〈국회〉는 제일 나이든 리승만을 림시의장으로 선출해놓고 망신을 했는데 난 우리 소장파의 회장으로는 제일 나이 젊은분을 선출하여 낡은 세대의 때젖은 고태에 맞세워놓을것을 제의합니다.》
김승원은 충청남도지역의 무소속으로 있는 황철산이라는 청년에게 눈독을 들인지 며칠이 되였다.
황철산은 이번에 선거된 제헌의원들가운데서 제일 나이가 어린 서른한살된 청년이였다.
김승원이 《한민당》의 선전부장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여러번 만났는데 제일 마음에 들었다. 아버지는 일제때 경성대학 교수로 있다가 반일선동을 했다는 리유로 해직을 당하고 담양에 내려가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광복후 일본에 건너가 대학을 다닌 황철산이 공산당에 들겠다고 하니 아버지는 한사코 말렸다고 한다.
광복전에 자기도 공산당에 관계한바가 있는데 노는 꼴들이 한심해서 다 걷어치우고 대를 이어 부쳐온 땅마지기를 넘겨받아 농사에 묻혀왔다는것이였다.
그래서 황철산은 《한민당》에도 들어가보고 《독촉》에도 들어가보고 좌익정당에 들어가기도 해보았으나 끝내 마음에 드는 거처지가 없어 무소속으로 나와버렸다고 한다.
어느날 황철산은 일본에서 《독서회사건》에 참여해서 헌병대에 끌려가 뭇매를 맞던 소리를 했다. 김승원이 그 소릴 듣고 반일했던 사람이 어째서 친일적인 《한민당》에 관여했는가 하니 그는 인생이란 무쌍한게 아니냐고 너털웃음을 쳤다.
이번에 제일 선참으로 김승원을 따라나선 사람도 황철산이였다.
이날 모임에서는 회장으로 황철산이 선출되였다.
… …
김승원은 이렇게 자기의 보고를 끝마쳤다.
정시명은 그의 보고를 듣고 크게 흡족해하였다.
무엇보다도 김승원이 자신감을 가지게 된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에게 짐이 너무 무겁지 않을가 걱정했는데 오히려 생각이 무겁고 걸음발이 재지 못한 그 사람이 꼭 적임자인것 같다.
김구와 사업한 안지생의 보고도 마음을 놓게 하였다.
김구가 입산중지를 결심하였다는것이다. 입산을 권고하는 아들을 되게 꾸짖는것을 직접 목격하였다고 하였다.
《네놈이 누구의 풍에 놀아 나더러 입산을 꼬드기는지 짐작이 없는줄 아느냐. 백범이 속세에서 사라지면 어떻게 되는줄 너 알고있겠지? 김장군과 다진 약속이 무효로 되고 리승만의 반통일론에 거침이 없어질진대 그래 이 나라 겨레의 비발치는 원성에 애비이름 넝마같이 되는 꼴 보는것이 네게는 재미더냐?》
안지생이 두눈을 부릅뜬 김구의 흉내까지 내서 정시명은 사뭇 즐거워서 《안동무가 또 수고를 했소. 다람쥐노릇 한다는게 헐치 않지.》하며 웃었다.
《아닙니다. 뭐 그건 항복이라고 몇마디 이야기했더니 대뜸 〈그렇거니. 좀 두고봅세나.〉합디다. 백범선생님이 달리야 될수 있습니까.》
《옳소. 달리야 될수 없는분이지. 그러니 우리들의 책임도 중하단 말이요. 미국놈들과 반동들이 여전히 백범선생을 애국의 대오에서 떼내려 못난 짓을 꺼리지 않으니 절대로 마음놓을 일이 아니요.〈그렇거니〉한 말은 그럴듯 한데 〈두고보세나〉란 말은 무슨 여운이 있는게 아닐가.
우리 장군님의 평생의 지기로 된분이니 차질없이 주의를 돌려 잘 지켜줍시다.》
정시명은 이렇게 다시 당부하였다.
뒤늦게 길철이 들어섰다.
길철은 요새도 부지런히 뛰고있었다. 그는 혜숙이가 돌아오기를 한초가 새롭게 기다리면서도 번거롭게 뇌리에 갈마드는 고민거리를 털어내느라고 애를 썼다.
그는 김승원의 활동을 곁에서 성의껏 지원하고 여러 전우들의 사업도 더 적극 밀고나가고있었다.
그런데 문제거리가 생겼다. 김승원을 따라 《국회》출입이 잦아지면서 처남과 마주치게 될것이기 때문이였다. 그렇다고 김승원이 커다란 일판을 벌려놓은 때에 주춤거릴수도 없는 일이였다.
《망할놈의 자식, 에에… 일이 이렇게 번져질줄이야…》
길철이 이렇게 짜증이 나서 울떡울떡거리는데 정시명은 그의 말에서 혜숙이네 집안소리가 묻어나오자 순식간에 낯빛이 거멓게 타들었다.
길철이 들으면 이 자리에서 까무라칠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협의회가 열리기 몇시간전에 받았던것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