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세력와해의 검은손

 

수십년전 남조선의 한 재야인사는 이렇게 말한적 있다.

《미국의 지배와 간섭의 력사를 보라. 리승만, 박정희, 전두환, 로태우 어느 누구 하나 미제대통령 아닌 사람이 있었나?》

그가 말한것처럼 이 땅을 식민지로 타고앉아 남조선의 권력을 주물러온 미국의 행적은 남조선의 《대통령》선택, 결정권을 가진 실력자가 다름아닌 미국임을 실감할수 있게 한다.

그러면 남조선의 《정권》교체력사를 보자.

1960년 3. 15부정선거를 계기로 분출한 4월인민봉기로 하여 미국은 리승만《정권》으로서는 더이상 저들의 식민지통치의 안정화를 기대할수 없음을 간파하였으며 강력한 군부파쑈철권통치실현을 위한 5. 16군사쿠데타를 지휘하여 박정희《정권》을 조작하였다. 이것은 미중앙정보국(CIA) 최고책임자였던 덜레스가 1964년 5월 3일 영국 BBC TV에 출연하여 《내가 재임중에 미중앙정보국의 해외활동으로서 가장 성공을 거둔것은 5. 16쿠데타》였다고 력설한것을 보아도 알수 있다.

1970년대말에 이르러 박정희군사독재를 반대하는 10월민주항쟁이 남조선 각지에로 파급되면서 식민지정권내부의 알륵과 갈등은 심화되고 《정권》말기증상이 뚜렷이 드러났다. 식민지통치위기를 느낀 미국은 박정희를 제거하고 새로운 친미파를 《대통령》에 앉히기로 마음먹었다.

1979년 10월 25일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이였던 존 베시는 아시아협회가 주최한 만찬회에서 《가령 특별한 사건이 일어난다고 해도》라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하였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인 26일, 김재규는 박정희를 쏘아죽였고 《내뒤에는 미국이 있다.》고 하였다. 《뉴욕 타임스》 11월 5일부에는 《죽인것은 한국인이지만 지시한것은 미국이다.》는 기사가 실리기도 하였다. 또한 10월 30일 미국무장관 밴스는 《박대통령의 후계자선출은 한국의 내정문제이지만 상담을 해온다면 미국의 의견을 전할수 있다.》고 말해 《한국》정치에 대한 개입의사를 확고하게 피력했다.

미국은 전두환을 내세워 12. 12숙군쿠데타를 단행케 하고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령을 전지역에 확대실시하여 민주세력의 진출을 차단하였으며 광주대학살만행을 지휘하여 식민지통치유지를 위한 전두환《대통령》만들기작전을 착착 진척시켜나갔다.

미국의 적극적인 부추김밑에 포악하기 그지없는 친미군사파쑈폭군인 전두환은 1980년 8월 27일 드디여 실질성이 없는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벙거지를 뒤집어쓰고 미국의 대《한》식민지정책의 움직이는 도구로 활용되게 되였던것이다.

대중의 피로 얼룩진 전두환《정권》은 출범당초부터 남조선인민들의 항의와 규탄을 받았다.

남조선 각지에서 터져오른 반미반전두환군정종식을 위한 투쟁열풍은 미국에 있어서 방관할수 없는 식민지통치위기의 극대화가 아닐수 없었다.

이같은 정세변화의 추이에 대비하여 미국은 다른 새로운 창안품을 도출했다. 친미군부독재자 로태우를 내세워 각계의 직선제요구를 절대차단, 간선제를 통한 군정교체의 강화로 식민지통치위기수습과 그 안정을 시도했다.

미국방성기관지 《패시픽 스타즈 앤드 스트라이프스》는 1987년 5월 8일호에 《최근까지 유망한 경쟁자들이 여러명 지정되여왔지만 한사람에게 론의가 집중됐다. 그는 전두환과 륙군사관학교 동기동창생이며 지금 민정당 대표위원으로 있는 로태우이다.》라고 미국에 의해 준비추진중인 로태우《대통령》만들기내막을 실토했다.

전두환의 《4. 13호헌조치》반대투쟁이 6월민중항쟁으로 증폭확산되고 이 결과 남조선의 《대통령》은 국민들이 직접 투표로 선출하게 되였다. 하지만 미국은 남조선의 《대통령선거》에 개입하는것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미국은 로태우의 립지를 부각시키고 인민대중의 투쟁열기를 차단하기 위한 기만적인 6. 29민주화선언극을 연출하고 로태우의 인기부각을 위한 미국나들이, 1로 3김의 《대권》싸움을 부추기는 교활무쌍한 야권분해공작정치의 구사 등 로태우로 하여금 어부지리를 얻게 하는 각종 최면술을 도입했다.

이 결과 1987년 12월 16일 《대통령선거》에서 온갖 관권과 금권, 폭력을 총발동시킨 가운데 미국에 의한 로태우《대통령》만들기작전은 36% 《대통령》으로 성공할수 있게 되였던것이다.

이후로도 미국은 각종 선거에 개입하였다. 그러나 선거개입론난을 피하기 위해 특정후보를 지지하는 모습보다는 누가 당선되든 미국의 요구에 복종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방식을 택하였다.

례를 들어 1997년 《대선》때 미국은 당시 론점이였던 국제통화기금(IMF) 지원문제와 관련해 리회창후보측과 김대중후보측을 고루 만나 IMF의 부당한 요구의 무조건 리행을 강요하였다. 또 선거막바지에 이르러 김대중후보가 IMF 재협상을 추진하겠다고 하자 주《한》미대사관 부대사와 공사참사관이 김대중후보측 핵심인물들을 만나 《그러한 주장은 한국경제의 신뢰회복을 어렵게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후 김대중후보는 자신의 립장을 후퇴하였다.

이상의 사실들은 미국이야말로 《한국정치의 수수께끼》, 《보이지 않는 손》으로 불리우며 장장 근 70년이 되는 오늘까지 이 땅을 찬탈하고 현지대리인을 내세워 식민지배와 간섭, 배후조종을 해온 실제적인 통치자임을 명백히 보여준다.

이러한 미국도 남조선인민들의 민족적감정까지 지배할수 없는것이다. 미국이 가장 두려워하는것이 바로 남조선사회에 존재하는 련북통일의식과 반미자주화의식이다.

6. 15공동선언의 채택으로 북남사이에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가 조성되고 남조선근로인민대중의 정치의식수준도 크게 성장하였다. 2002년 온 남조선땅을 뒤덮었던 반미초불시위와 로무현《대통령》의 당선은 미국의 남조선정치개입이 예전처럼 쉽지 않다는것을 보여주었다.

아니나다를가 로무현《정권》은 미국이 한창 북에 대한 금융제재나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에 동참하라는 압박을 가할 때 《의혹만 가지고 밝혀지지 않은 죄를 먼저 처벌하는 행태》라고 비판하였으며 북의 핵시험을 두고는 《한나라당》처럼 《무분별한 무력도발행위》라고 하지 않고 《미국의 제재에 맞서는 정치적압박수》라고 해석하였다. 이것은 미국에게 있어서 달갑지 않은 현실이였다.

조선반도에 평화의 분위기가 조성되고 북남관계가 개선되는 경우 미국은 동북아시아패권장악의 전초기지인 남조선에 더이상 개입할 여지가 없어지게 된다. 지금까지 미국이 남조선을 군사적으로 강점하고 정치, 경제 등에 개입해온 명분은 북과 남의 대결상황에서 북의 《남침》으로부터 남조선을 지킨다는것이였다. 이 명분이 사라지게 되면 남조선도 막대한 비용과 기지를 섬겨바치면서 미군을 붙잡고있을 리유가 없어지게 된다.

때문에 2007년 《대통령선거》에서 미국은 민족공조의 관점보다는 민족대립의 관점이 강하고 북과 남의 합의사항을 성실히 리행하려는 립장보다는 시시때때로 북의 행동을 의심하고 의혹을 부풀려 과장하여 민족대결로 몰아갈수 있는 립장에 있는 《한나라당》을 당선시켜야 할 절실한 필요성을 느끼게 하였다.

하여 미국은 대선구도를 조선반도평화세력과 대결세력간의 구도가 아니라 경제를 살려낼수 있는 사람이 당선되여야 한다는쪽으로 여론을 조성하면서 경제위기를 《대통령선거》의 핵심쟁점으로 내세우기 위한 교활한 술책을 꾸미였던것이다.

미국이 남조선《대통령선거》때마다 후보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어떤 후보가 자신들에게 유익할지 분석하는 작업을 빠짐없이 진행한다는것은 이미 공개된 비밀이다.

2007년 《대통령선거》때에도 남조선주재 미국대사관관계자들이 《KBS》 보도본부장과 고위급기자들을 만나 선거전망과 리명박에 대한 평가를 전달받았던 사실이 위킬릭스 폭로전문에서 드러났다. 특히 《KBS》 보도본부장은 전문에 《빈번한 대사관 련락관》으로 분류되여있었는데 미대사관이 그를 주요정보원으로 활용하고있었다고 한다.

미국의 남조선정치개입의 목표가 대북적대정책을 통한 미일남조선 3각군사동맹의 강화가 첫번째인것만큼 미국은 정치공학적인 정계개편구도에 더하여 반북공세의 내용마련을 다각도로 모색하였는바 그 내용의 핵심이 바로 6. 15공동선언과 10. 4선언에 대한 대공세이다.

리명박집권후 미국과 보수세력의 반북모략책동은 북체제외곡, 북경제폄하, 《북인권문제》조작 등을 병행한 립체전으로 벌어졌으며 나중에는 현재 남조선정치권에서 벌어지고있는 《종북세력척결》소동에로까지 확산되였다.

그러나 《대통령》 친형인 리상득의 말대로 뼈속까지 친미인 리명박에게 《대통령》벙거지를 씌우고도 미국이 항상 근심스러운 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야권련대였다. 지난 서울시장선거에서도 갖은 오그랑수를 썼지만 보수패당은 야권련대를 이길수 없었던것이다.

야권련대를 주도하고있는 당이 이전의 민주로동당이자 현재의 통합진보당이다.

미국에게 있어서 통합진보당에 대한 와해는 결국 보수패당의 가장 큰 적수인 야권련대의 단합을 방해하는 유일한 방도일것이다.

리명박집권초기부터 미국의 충실한 노복인 수구보수패당은 민주로동당에 대한 탄압을 극도로 심화시켜왔다. 외부에서 간첩사건을 조작하여 민주로동당과 련계시키고 내부에서는 당원들을 계속 《보안법》으로 탄압하며 《종북소동》을 일으켜 당분렬에 이르기까지 하였다. 2010년에는 전교조, 공무원 로조원의 당원가입을 조사한다며 당 홈페지 써버강탈을 집요하게 시도하였었다.

이러한 미국과 수구보수세력이 통합진보당의 창당과정을 강건너 불보듯 하였다는것은 아주 이상한 일이 아닐수 없는것이다. 미국의 골치거리로 되고있는 통합진보당의 결성이 이상할 정도로 순조롭게 진행되였다는데 4. 11《총선》이후 터진 통합진보당사태를 미국과 무관하게 보지 말아야 할 심중한 리유가 있다.

미국과 보수패당의 반북립체전의 최종목표가 바로 6. 15공동선언과 10. 4선언의 기발을 내리우기 위한것인것만큼 평화통일을 강령으로 하고있는 통합진보당의 와해소동이 결국 진보세력와해를 노리는 미국의 검은손에 의해 벌어지는것임은 두말할나위 없다.

남조선에서 벌어지는 모든 반북립체전의 진원지는 다름아닌 미국이다. 다른 나라의 경우를 보더라도 극렬한 리념공세, 선전공세는 미국의 전유물이였다.

1950년대 미국사회를 휩쓸면서 랭전시기를 열었던 리념공세의 시초가 바로 미국의 매카시선풍이였다. 6. 25전쟁을 전후한 국면에서 미국은 공화국정권에 대한 대대적리념공세를 펼쳤으며 이것은 련이어 윁남전쟁시기 호지명정권으로 맞춰졌었다.

미국은 이라크전을 앞둔 상황에서도 후쎄인정권에 대한 비방공세에 집중하였다. 1979년 이란혁명을 봉쇄하기 위해 후쎄인을 지원하여 이란-이라크전쟁을 사주하였던 세력이 미국이였음을 참작한다면 미국의 선전공세가 철저히 정치군사적리해에 따른것이라는것을 알수 있는것이다.

미국은 지금 북의 《추가도발》가능성을 내들면서 남조선보수패당에게 《한미일 3각군사동맹》의 기틀마련을 위한 《한일군사협정》을 체결할것을 계속 요구하고있으며 탄도미싸일사거리연장을 거듭 요구하고있는 보수패당과의 흥정을 통해 괴뢰들을 미국주도의 미싸일방위체계에 끌어들여 저들의 동북아시아전략실현에 효과적으로 써먹으려고 하고있다.

이것은 현시점에서 다음기 《대통령》자리에 친미보수패당을 들여앉히는것이 미국에게 얼마나 절실한 리해관계가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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