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탄압의 대명사 - 색갈론
일찌기 남조선의 어느 한 언론인은 《시대착오적인 색갈론, 편가르기늪에 빠진 대한민국에 미래는 없다.》고 하면서 남조선사회에서 보수패당의 골동품으로 때없이 등장하는 색갈론에 대해 개탄한바 있다.
보수패당의 색갈론공세는 보수의 존재명분을 합리화하기 위한 하나의 정치도구로 등장하여 지금 남조선정치계는 물론 사회전반을 휩쓸고있다. 남조선에서 색갈론을 부르짖는 사람들은 자기스스로 《상식과 원칙을 존중하면서 전통을 고수》하는 보수라고 자칭하고있다. 그러나 그것은 위장에 불과하다. 실지로는 반칙과 특권을 체질화하고 자기들의 권력만을 고수하려는것이다.
원래 보수세력의 어지러운 과거를 들추어보면 이 집단은 사회력사발전의 합법칙적과정에 생겨난 정치세력이 아니라 남조선의 극히 비정상적인 과정을 통하여 생겨나고 오늘까지 목숨을 부지해온 구시대의 유물에 불과하다.
남조선에서 보수의 원조상은 제국주의자들의 적극적인 비호속에 생겨난 식민지독재정권인 리승만을 괴수로 하는 우익세력들이라고 볼수 있다.
해방후 남조선을 군사적으로 강점한 미제는 완전히 미국화된 노복 리승만과 친일세력을 규합하여 항일애국세력, 진보세력을 가차없이 탄압한 피바다우에 괴뢰정권을 조작함으로써 매국세력에게 살길을 열어주었다.
미국을 등에 업고 집권한 친일분자들, 출세와 승진의 길을 갈구하던 일제치하의 관료, 군장교, 경찰, 친일경향의 지식인들은 저들의 생존부지를 위해 민족을 배반한 과거를 감추고 반공을 명분으로 자기의 정치적적수들을 사정없이 물어메치였다.
보수우익의 대응을 더욱 폭력적으로 만든 주역은 6. 25전쟁을 전후로 하여 북에 대해 악감을 품은채 남으로 도주하여간 우익청년들이였다. 이들은 북의 인민민주주의국가발전으로부터 《자신의 기반을 직접 박탈당했다.》는것으로 하여 북에 대한 적개심에 있어서 남조선의 우익을 압도했다. 공산주의가 싫어 남으로 내려왔다는 명분 하나만으로도 이들은 남쪽에서 보수세력의 주도권을 잡을수 있었던것이다.
보수세력의 초기적기반이 바로 미국의 절대적지원을 받는 물리적인 국가기구인 리승만《정권》과 경찰, 군대였던것만큼 1950년대까지 이들은 저들이 주장하는 《자유민주주의체제》수호의 선봉에 서서 남조선사회전반에 자기의 영향력을 확대하여왔다.
만일 미국이 남조선을 강점하지 않았더라면 친일의 연장세력인 친미보수세력은 형성되지도, 오늘까지 존재할수도 없었을것이다. 과거의 이 모든 매국세력의 집합체의 후신이 바로 오늘의 보수세력인것이다.
과거 도이췰란드의 파시즘이나 미국의 매카시즘이 그러하듯 보수우익세력은 자신의 립지를 지키기 위해 항상 진보개혁세력에 대한 자기 방어심리 혹은 북에 대한 과도한 위기의식과 공포심을 가지였다. 즉 분렬을 리용하여 정치권력을 틀어쥔 친미괴뢰보수패당의 이러한 심리적강박관념이 바로 색갈론이라는 매카시즘적의식을 발로시켰다.
색갈론은 보수패당이 자기의 존재위기때마다 써먹군 하는 상투적인 수법이고 《만능의 무기》였으며 죽어서도 고칠수 없는 보수패당의 체질적악습이다. 아무리 퍼도 마르지 않는 샘처럼 색갈론은 오랜 세월 상대방을 정치, 사회적으로 완전히 매장할수 있는 무서운 총칼로 되여왔다.
리승만독재정권의 색갈공세는 주로 진보애국세력에 대한 정치테로, 고문, 학살로 표현되였다. 1946년 민주주의적통일정부수립을 제창한 인민당 당수 몽양 려운형선생이 백주에 승용차안에서 저격살해된 사건, 단독정부수립을 반대하고 4월남북련석회의정신에 따라 북과 남의 협상에 의한 평화통일을 주장한 한국독립당 당수 백범 김구선생이 대낮에 암살된 사건, 리승만의 《북진통일》을 반대하여 선거유세에 나섰던 민주당 《대통령》후보 신익희가 렬차안에서 급사한 사건 등은 다 리승만독재정권의 색갈공세에 의하여 일어난것들이였다.
특히 1950년대 후반기 남조선정치권에서 진보와 보수의 격렬한 충돌의 불꽃을 일으킨것은 조봉암 대 리승만의 대립구도였다.
조봉암은 참신한 진보정치의 대명사였고 리승만은 부패한 극우파쑈독재의 대명사였다. 조봉암의 진보당은 낡은 자유민주주의 또는 개인적민주주의페기를 지향하면서 민주적인 복지사회를 건설하는것과 함께 평화통일을 목표로 내걸었다.
리승만은 미중앙정보국의 배후조종을 받은 공안당국자들에게 지령을 내려 조봉암을 간첩혐의로 교수형에 처하였으며 그가 이끄는 진보당을 강제해산하였다.
이 사건에서 눈여겨보아야 할것은 리승만《정권》이 진보당의 강령가운데서 평화통일강령을 탄압표적으로 삼았다는것이다. 물론 진보당 핵심인사들의 공판기록을 보면 평화통일강령만이 아니라 진보정치강령에 대해서도 탄압의 구실을 찾아보려고 시도하였음이 드러난다. 하지만 진보당을 강제해산시킨 결정적인 탄압표적은 명백히 평화통일강령이였다.
그것은 평화통일강령이 이 땅의 낡고 썩은 극우파쑈독재체제를 새로운 민주주의체제로 교체하는 진보정치강령과 맞물리기때문이다. 평화통일강령이 극우파쑈독재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까닭은 평화통일이 진보정치와 무관하게 실현되는것이 아니라 진보정당이 집권하는 진보적정권교체를 통하여 실현될수 있기때문이다.
이렇게 놓고보면 6. 15공동선언과 10. 4선언을 채택한 김대중과 로무현의 대북화해협력정책이 보수정권에 자리를 빼앗기자마자 빈종이장이 되여버린것이 단순히 리명박의 《실용》의 자대에 의한것만이 아니라는것이 명백해진다. 평화통일실현과 진보정권교체는 곧 보수패당의 생존을 위한 정치적기반을 허물어버리는것으로 된다.
그렇기때문에 색갈론소동은 독재정권유지에 대한 대중의 심판여론이 고조될 때, 선거가 있을 때에 반드시 일어나군 한다. 그 대상이 바로 련북자주통일을 주장하고 당국의 반인민적, 반민족적행위를 반대하는 진보개혁세력들이라는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색갈론소동은 진보개혁세력들을 《적에 대한 동조》세력 또는 《적》으로 몰아세우는 파쑈공안통치로 타번지군 한다. 군부파쑈독재시기 《민족일보》사건과 인민혁명당사건 등이 그 대표적실례들이다. 자주, 민주, 통일을 지향하는 진보애국인사들이 독재정권의 총칼에 《좌파, 빨갱이, 간첩》으로 몰리워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야말로 색갈론은 매국이 애국을 타매하고 범죄자가 재판관으로 둔갑하여 판을 치는 거꾸로 된 론리가 아닐수 없다.
보수정치권의 구시대적유물인 색갈론소동이 리명박시기에 다시 부활하였다. 집권초기부터 《친북, 좌파》니 뭐니 하며 통일운동단체들과 진보진영에 랭전적색갈론과 공안통치를 들이대던 수구보수패당이 2011년 4. 27재보충선거때에도 남조선강원도 도지사후보로 나선 당시 민주당의 한 의원까지 색갈론에 걸어 공격하였다.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민주당후보가 《북의 <천안>호폭침》을 부정하는 발언을 한데 대해 사죄하라느니 뭐니 하고 력설하였으며 이 당의 원내대표라는자는 《모호한 말로 민중을 혼란시키는 세력이 있다.》느니, 당국의 조사결과를 믿을수 없다고 가장 활발히 활동했던 사람이 도지사후보로 나선것을 보면 《참으로 기가 막히다.》느니 뭐니 하고 피대를 돋구면서 민주당인사에게 《좌파세력》의 감투를 씌우려 하였다.
이것이 《천안》호사건의 흑막을 파헤칠것을 주장하는 각계 인사들을 《친북좌파》로 몰아댐으로써 선거형세를 보수패당에게 유리하게 만들려는 파렴치한 색갈론소동의 일환이라는것은 량심과 지각이 있는 사람치고 누구나 모르는바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패당은 어리석게도 2011년 10월에 있은 서울시장선거에서 이 상투적수법을 또 들고나왔다.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은 어느 정당에도 소속되지 않고 야권단일후보로 출마한 박원순에게까지 《평양시장도 아니고 서울시장이 된다는게 끔찍한 일》이라느니, 그가 서울시장에 당선되면 《공산당을 허용할지도 모른다.》느니 하며 색갈론감투를 씌워댔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의 이 장구한 전통에 대해 한 교수는 《한나라당의 색갈선풍은 특이한 색조를 띠고있다. 처음에는 <색갈이 수상해>로 시작해서 <좌파>로 건너뛰더니 마침내는 <간첩만들기>로 비약한다. 이것은 색갈론연출로 저들은 마치 <백의의 천사>, <정의의 사도>라도 되는것처럼 위세를 펼치려는 고도의 계산된 정치적술수에서부터 나온 꼼수에 불과한것이다.》라고 조소했다.
독재통치유지의 방패막이로 보수패당의 입에서 떨어질줄 모르고 터져나오는 색갈론의 목적과 정체는 바로 여기에 있는것이다.
그러나 99% 근로대중의 생존권은 안중에도 없이 1% 기득권의 존재가치만을 위해 마구 몰아대는 색갈론은 오히려 역풍을 불러왔다. 서울시장선거는 경제를 살릴것이라고 국민을 기만한 리명박《정부》에 대한 응당한 심판이였고 1%에게 속히웠던 99%의 옳바른 선택이였던것이다.
《빨갱이색갈》몰이에 정신이상이 되여버렸던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간판도 바꾸어달고 색갈까지 빨간색으로 바꾸어가며 4. 11《총선》에 나섰던 정도이니 보수패당의 집권야욕이 어느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는 가히 짐작할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