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강행군의 열풍을 일으키시며

 

초강도강행군길을 끊임없이 이으시며

1

 

자강도는 나의 정든 고장입니다

 

오로지 조국의 번영을 위하여,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불면불휴의 현지지도의 강행군길을 끊임없이 이어가시며 자신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쳐가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거룩한 모습에서 온 나라 인민은 절세의 애국자의 숭고한 헌신성을 사무치게 절감하였고 다함없는 고마움의 정, 감사의 정을 금치 못해하였다.

특출한 정치실력과 숭고한 조국애, 민족애로 만사람을 격동시키는 력사적사변들을 안아오시고 민족의 찬란한 미래를 앞당겨오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위인상은 남조선과 세계 진보적인류의 마음을 틀어잡았다.

남조선의 각계층 인민들속에서는 《사랑과 믿음으로 천하를 얻는 인덕정치의 화신》이라고 장군님에 대한 흠모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갔다.

2007년을 보내면서 세계적으로 《10대명인》을 선정하는 언론활동이 벌어졌는데 경애하는 장군님을 《10대강성정치인》으로 선정하면서 세계의 언론인들은 수십성상 자기 수령을 따르며 승리하는 조선인민의 정신적중심에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서계신다고 격조높이 평하였다.

절세위인에 대한 다함없는 흠모와 신뢰, 감사의 정이 커갈수록 강성국가를 일떠세워 인민들에게 하루빨리 세상에 부럼없는 행복한 생활을 안겨주시려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의지는 더욱더 굳건해졌다.

주체96(2007)년 10월 어느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군들과 하신 력사적인 담화에서 오늘 우리앞에 나서고있는 가장 중요한 과업은 나라의 경제를 하루빨리 추켜세워 경제강국을 건설하는것이다, 경제강국은 사상강국, 군사강국과 함께 강성대국의 기본징표의 하나이다, 당의 선군혁명령도밑에 지금 우리 나라가 사상강국, 군사강국으로 그 위용을 떨치고있는것만큼 경제강국만 건설하면 우리 나라는 명실공히 사회주의강성대국이라고 말할수 있다, 우리에게는 경제강국을 건설할수 있는 토대가 튼튼히 마련되여있으며 그 전망도 좋다, 우리는 모든 조건과 가능성을 총동원하여 기어이 경제강국을 건설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2012년은 위대한 수령님 탄생 100돐이 되는 뜻깊은 해입니다. 우리는 경제강국건설을 힘있게 다그쳐 수령님의 탄생 100돐이 되는 해에는 맑고 푸른 이 하늘아래 강성대국의 대문을 활짝 열어놓아야 합니다.》

어버이수령님의 탄생 100돐이 되는 뜻깊은 2012년에 강성대국의 대문을 활짝 열어놓아야 한다!

전체 군대와 인민에게 승리에 대한 확신을 더한층 북돋아주는 웅대한 구상과 목표를 제시하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 60돐이 되는 뜻깊은 해인 2008년에도 불철주야의 초강도강행군 길을 끊임없이 이어가시며 사회주의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총진격의 북소리높이 새로운 비약의 폭풍을 일으켜나가도록 현명하게 이끄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유훈을 관철하시기 위해 날이면 날마다 달이면 달마다 한순간의 휴식도 없이 자신의 모든것을 깡그리 불태우시며 강행군천만리길을 이어오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

언제인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이렇게 자신의 심정을 절절히 터놓으시였다.

그전에는 수령님께서 조금이라도 더 편히 쉬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초가 한시간이 되여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였는데 지금은 내가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일을 더 많이 할수 있게 한초가 한시간이 되여주었으면 좋겠다고, 하루를 열흘맞잡이로 일을 하여도 모자라는것이 시간이라고, 한초를 한시간이 되게 늘일수만 있다면 그만큼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더 많이 일을 하겠는데 그렇게 할수 없는것이 안타깝다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런 절절한 심정을 가슴가득 채우시고 2008년 정초부터 눈보라 사나운 찬 눈길을 헤치시며 자강땅에 대한 현지지도의 길에 오르시였다.

2008년은 준엄했던 고난의 행군시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력사적인 6 000여리의 눈보라강행군을 단행하시여 자강땅을 찾아주시고 강계정신의 창조로 난관돌파의 진격로를 열어놓으신 때로부터 10년이 되는 의의깊은 해였다.

돌이켜보면 10년세월 날이 갈수록 더욱 뜨거워만진것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자강도사람들에 대한 믿음이고 사랑이였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강도인민들은 그처럼 곤난한 때였지만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고, 나에게 큰 힘을 주었다고 최상의 믿음을 안겨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이시였다. 때로는 한해에도 여러차례나 이곳을 찾으시여서는 나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자강도인민들이 있다고 하시며 힘과 용기를 안겨주시고 자강도에 오면 떠나고싶지 않다고 하시며 주실수 있는 온갖 은정을 다 베풀어주시였다.

자강도인민들에 대한 남다른 정을 안고계신 장군님이시였기에 뜻깊은 2008년에 자강땅을 찾으시여 사연깊은 강계닭공장부터 들리시였다.

강계닭공장은 나라사정이 어려웠던 시기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강계정신의 창조자들인 자강도인민들에게 고기를 먹일 대책을 세워야겠다고, 자강도에 다른 도들보다 먼저 현대적인 닭공장을 세워주자고 하시며 공장의 위치로부터 건설력량문제, 자재보장문제에 이르기까지 세심한 보살피심을 주시여 일떠선 인민사랑의 결정체였다.

사연깊은 공장을 여러해만에 또다시 찾아오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먼저 생산실태부터 알아보시였다.

순간 공장일군들은 죄송스러움을 금할수가 없었다.

한것은 생산이 이전보다 좀 떨어졌기때문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러한 대답을 들으시고는 생산이 떨어진 리유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아보시였다.

이윽고 알깨우기작업반과 비육직장 1호동을 돌아보신 장군님께서는 나직하나 힘있는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강계닭공장은 자강도 …로동계급의 식생활을 개선하는데서 중요한 몫을 맡고있는것만큼 고기와 알생산을 늘여야 하겠습니다.》

그러시고는 공장의 생산을 다시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릴 방도를 하나하나 밝혀주시였다.

먹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닭배설물들을 사료기지들에 많이 보내주어 강냉이생산을 늘이도록 하는 문제, 공장에서 설비관리, 기술관리를 잘하도록 하며 이를 위하여 생산자들의 기술기능수준을 끊임없이 높이는 문제…

지난 시기 종자와 사료, 첨가제와 같은 문제에만 신경을 써오던 공장일군들은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면서 앞이 탁 트이는것만 같았다.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곳 로동계급에게 힘과 용기를 안겨주시기 위해 알창고에 가시여서는 닭알이 가득 차있는것을 보니 기분이 좋다고 하시고 공장에서 자체로 건설한 오리작업반에 가시였을 때에는 닭배설물을 균처리하여 오리에게 먹이는 방법으로 사료를 절약하면서 많은 오리를 기르고있는데 아주 잘하였다고, 오리고기를 거저 얻는것이나 다름없다고 하시며 그들의 경영방법을 적극 지지해주시였다.

잘하였다고, 아주 잘하였다고 거듭 치하해주시는 장군님을 우러르며 공장일군들은 자강도인민들에게 더 많은 고기와 알을 먹이시려 그처럼 마음쓰시는 그이의 친어버이사랑에 더 높은 생산실적으로 보답해야 하겠다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자강도에서 새로 건설한 강계돼지공장도 현지지도하시였다.

사료공급으로부터 먹이 및 물공급, 돼지우리온습도조절 등 모든 공정들이 자동화된 공장의 현대적인 면모는 참으로 볼만 하였다.

동행한 일군들이 흐뭇한 심정을 금치 못해하는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런 감명깊은 말씀을 하시였다.

《수령님께서 계실 때 이렇게 훌륭한 돼지공장을 건설하여 보여드렸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수령님께서 이런 돼지공장을 보시였으면 대단히 기뻐하시였을것입니다.》

현대적인 돼지공장을 건설하고 모두가 기쁨에 넘쳐있을 때에도 장군님께서는 인민을 위해 한평생을 다 바치신 수령님께 이런 훌륭한 돼지공장을 보여드리지 못한 아쉬움,

수령님께 생전에 더 큰 기쁨을 드리지 못한 아쉬움으로 하여 마음이 무거우시였던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강계시에 모든 공정이 자동화된 현대적인 돼지공장까지 건설하여 고기생산을 더욱 늘일수 있게 되였다고 하시면서 과학적인 경영관리체계와 먹이보장대책을 철저히 세워 더 많은 고기를 생산할수 있는 구체적인 방향과 방도를 밝혀주시였다.

뿐만아니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공장을 다녀가신 후 전용렬차까지 편성하여 생산정상화에 절실히 필요한 종자돼지들을 보내주시는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자강도인민들의 행복한 생활을 위해 바쳐가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끝없는 헌신의 자욱은 련이어 찾아가신 장강버섯공장과 장강식료공장 그리고 장강토끼종축장에도 뜨겁게 새겨졌다.

장강버섯공장을 찾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장강군에서 자체의 힘으로 지방의 특성에 맞는 종균생산기지를 실리있게 건설하고 이에 기초하여 막대한 량의 버섯을 생산하고있는데 대하여 커다란 만족을 표시하시였다.

더우기 장군님께서는 이 공장지배인이 강냉이를 변성하여 리용할데 대한 어버이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들고 20여년동안의 실험끝에 효소액을 연구하여 발명권을 받았다는 사실을 아시고는 좋은 일이라고 못내 기뻐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얼마나 만족하셨던지 이렇게 말씀을 이으시였다.

《이 효소를 넣어 만든 강냉이국수는 강냉이냄새도 나지 않고 매끈매끈하며 색갈도 연하고 소화가 잘되여 흡수률도 높다는데 내가 이 국수를 가져다 실지 어떤지 먹어보자고 합니다.》

인민들에게 맛좋은 식료품을 먹이게 된것이 얼마나 기쁘시였으면 이름없는 지방의 자그마한 공장에서 만든 국수까지 몸소 가져다 맛보겠다고 하시겠는가.

모두가 뜨거움에 휩싸여있는데 한 일군이 지배인의 가정에 대해서도 말씀올리면서 공장에서 함께 일하고있는 며느리를 소개해드렸다.

그의 인사를 받으신 장군님께서는 지배인동무의 가정에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아들과 딸, 며느리, 사위를 비롯하여 9명이면 지식인가정이라고 말할수 있다고 하시면서 한공장에서 버섯생산을 늘이기 위해 전심전력하고있는 공장지배인의 일가를 두고 훌륭한 애국자가정이라고 높이 평가하시였다.

북방의 맵짠 추위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자강땅의 여러곳을 돌아보실수록 자강도인민들에 대한 그이의 각별한 정은 더욱더 깊어만지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강계정신창조 10돐기념 사진전시회장을 돌아보시면서 자신의 그러한 심정을 절절히 터놓으시였다.

깊은 감명속에 사연많은 사진들을 일일이 다 보아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자강도인민들은 그처럼 어려웠던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에 자기 힘으로 도시와 마을을 행복의 무릉도원으로 꾸린 사회주의수호전의 영예로운 승리자들이라고 값높은 평가를 주시였다.

그러시고는 지금 자강도사람들이 강계정신창조 10돐을 맞으며 지난날을 추억깊이 돌이켜보고있다는데 나도 역시 가장 어려웠던 고난의 행군시기의 자강도사람들을 언제나 잊지 못하고있다고, 내가 고난의 행군시기부터 오늘까지 자강도를 여러차례 현지지도하였는데 그때마다 도의 면모가 달라지는것이 눈에 뜨이게 알리였다고, 이번에 강계정신이 창조된 10돐을 계기로 또다시 자강도를 현지지도하였는데 도의 면모가 전반적으로 그전보다 더 좋아졌다고 치하하시였다.

무슨 과업을 주면 구실을 대는것이 아니라 무조건 접수하고 어떤 수를 써서라도 기어이 해내고야마는 자강도사람들이 그리도 미더우시여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자강도사람들에게는 과업을 줄 맛이 있다고, 바로 그렇기때문에 오면 떠나고싶지 않고 떠나면 또 오고싶은 곳이 자강도라고 하시면서 말씀을 이으시였다.

《자강도는 정말 고난의 행군시기 나의 정든 고장입니다. 자강땅에 들어서면 힘든줄도 모르고 피곤한줄도 모르겠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마음속에 자강땅이 얼마나 소중히 자리잡고있는가를 그대로 보여주는 뜻깊은 말씀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자강도인민들은 강계정신을 계속 높이 발휘하여 지난 시기 빛나는 10년을 창조한것처럼 앞으로 보다 더 빛나는 10년을 창조하여야 하며 강성대국건설을 위한 장엄한 투쟁에서 선봉적역할을 하도록 하여야 한다는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시였다. 그뿐아니라 도안의 기계공장 로동계급을 비롯한 혁신자들에게 공훈국가합창단의 공연을 보여주도록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모든 일이 잘되여 나가고있는 자강땅의 눈부신 현실을 통해 자강도사람들의 투쟁정신과 일본새로 달라붙으면 강성대국을 건설하는것은 먼 앞날의 문제가 아니라는 확신을 다시한번 가지게 되시였다.

참으로 경애하는 장군님께 있어서 자강도는 오시면 떠나고싶지 않으시고 떠나시면 또 가고싶은 정든 고장이였다.

하건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타신 야전차는 자강도를 떠나 또다시 인민을 위한 초강도강행군길을 떠났다.

2

 

친정아버지가 되시여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

혈육의 정이 진하게 흐르는 이 신성한 부름이야말로 이 땅의 천만자식들을 한품에 안아 보살펴주시는 은혜로운 사랑의 태양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위인상을 격조높이 칭송하는 세상에서 가장 정답고 아름다운 언어이다.

한 나라의 령도자이기 전에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가 되시여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쳐 일하는데서 기쁨과 보람을 찾으신 경애하는 장군님.

그이께서 매일 매 시각 이어가신 선군혁명령도의 천만리길은 그대로 인민들을 제일로 귀중히 여기고 아끼시는 친어버이의 거룩한 자욱으로 수놓아지는 뜨거운 사랑의 장정이였다.

현지지도의 길에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 어느 단위를 찾으시여도 인민들의 생활을 구석구석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료해하시고 친부모의 정을 초월하는 사랑을 쏟아부어주시였다.

세간난 자식의 살림살이를 보살펴주는 친정아버지의 심정으로 평범한 가정을 찾아주시고 다심한 은정을 부어주신 이야기들은 인민의 어버이로서의 경애하는 장군님의 위인상을 가슴뜨겁게 절감하게 하고있다.

주체97(2008)년 1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장강군의 장평협동농장을 현지지도하실 때의 일이였다.

잠간만 서있어도 뼈속까지 얼어드는 맵짠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오랜 시간 이 농장의 토끼작업반을 돌아보신 장군님께 농장의 한 일군이 토끼를 직심스럽게 잘 기르고있는 제대군인출신의 작업반장의 집에도 들려주실것을 간청하였다. 남편은 작업반장으로, 안해는 기술원으로 일하는 그들부부를 만나보시면 기뻐하시지 않을가 하는 생각에서 드린 청이였다.

장군님께서는 그의 말에 《좋소. 가봅시다.》라고 쾌히 응해주시며 그들의 집으로 향하시였다.

가시던 도중 장군님께서는 맞은편 둔덕에 훌륭하게 새로 꾸린 소재지마을과 거기서 살고있는 농장원들의 반영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료해하시였다.

한동안 마을의 전경을 바라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소재지에 살림집을 멋있게 잘 지었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살림집들에 전기난방을 한 살림방과 전실, 토끼우리가 달린 창고가 있으며 이불장과 찬장, 텔레비죤수상기와 선풍기까지 갖추어놓고 농장원들이 당의 은덕을 노래하며 행복하게 잘살고있다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우리 인민들이 행복하게 잘산다는 말을 들을 때가 제일 기쁩니다.》

산골지방 인민들도 벌방사람들 부럽지 않게 행복한 생활을 누리도록 해주시기 위해 남모르게 바치신 자신의 로고는 감감 잊으신채 장군님께서는 흐뭇한 웃음을 지으시였다.

잠시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작업반장의 집에 이르시였다.

그들부부와 두 딸의 인사를 정겹게 받아주신 장군님께서는 날씨가 추운데 왜 아이들을 밖에 세워놓았는가고,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하시며 아이들에게 빨리 방으로 들어가자고 재촉하시는것이였다.

이윽하여 방에 들어서신 그이께서는 반장의 안해에게 방에는 무엇을 때며 전기난방상태는 어떠한가에 대하여 알아보시고 가족사진도 친히 보아주시였다.

그리고 벽에 걸린 군복을 보시고는 반장에게 어디서 군사복무를 하였는가, 나이는 몇이고 어느 대학을 나왔는가를 물으시며 그들의 생활을 하나하나 헤아려주시였다.

이어 그이께서는 가정토끼사에 들어서시였다.

주인의 깐진 일솜씨가 엿보이는 토끼사에는 수십마리의 토끼들이 욱실거리고있었다.

하나같이 실한 토끼들을 감탄어린 시선으로 둘러보시는 장군님께 반장의 안해가 작업반토끼기르기를 위해 가정에서 자기들이 하고있는 일에 대해 자세히 말씀드렸다.

그의 설명에서 이들부부가 작업반일을 위해 바쳐가는 성실한 노력을 정겹게 느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좋은 일이라고 치하의 말씀을 해주시였다.

장군님을 자기 집에 모신것만도 더없는 영광인데 너무나 응당한 소행을 두시고 높이 평가해주시는 그이의 칭찬에 감격을 누르지 못하던 작업반장은 올해에 토끼를 백여마리로 늘이겠다고 확신에 넘친 결의를 다지였다.

장군님께서는 그렇게 하리라고 믿는다고 그를 고무해주시였다.

그때 그의 안해가 어려움도 잊고 이렇게 말씀드렸다.

《장군님, 제가 황해북도에서 시집을 온 다음 친정부모들도 아직 한번 와보지 못했는데 장군님께서 처음으로 저의 집을 찾아주시였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러니 내가 첫 손님이란 말이지.》

이렇게 말씀하시는 그이의 모습에는 친부모의 따뜻한 정이 한껏 어려있었다.

장군님께서는 감격에 젖어있는 작업반장부부와 농장일군들에게 이곳 농장이 토끼기르기의 앞장에 선 인민군대의 모범을 따라배우는데서 하나의 불씨가 될데 대한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그 뜨거운 믿음과 기대를 받아안고 격정으로 가슴들먹이는 그들을 인자한 눈빛으로 바라보시다가 화제를 돌리시여 반장동무의 안해가 황해북도에서 시집온 다음 지금까지 친정부모들도 한번 와보지 못한 집에 내가 찾아와 친정아버지가 온것 같다고 하는데 이 집에 왔던 기념으로 사진을 찍자고 하시였다.

장군님의 정깊은 말씀에 아이들은 너무 기뻐서 손벽을 치며 발을 동동 굴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러는 두 아이들을 자신의 앞에 세우시고 모두를 곁에 불러주시였다.

혈육의 뜨거운 정이 넘쳐흐르는 뜻깊은 기념사진이였다.

크나큰 영광과 행복감에 눈물이 글썽해진 작업반장부부는 경애하는 장군님께 목메여 아뢰였다.

《장군님, 이제는 닭고기와 닭알뿐아니라 토끼고기도 먹게 되였는데 이렇게 추운 날 험한 길을 걷지 마시고 저희들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TV화면으로 보아주십시오.》

그들의 진정을 헤아리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눈가에 뜨거움을 가득 담으며 말씀하시였다.

《토끼작업반 반장동무네 부부가 닭고기와 닭알도 먹고 이제는 토끼고기도 먹게 되였으니 이렇게 추운 날 험한 길을 걷지 말아달라고 하는데 고맙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헤여지기 아쉬워 그냥 서있는 아이들을 보시고 날이 추운데 아이들을 빨리 들여보내라고 다정히 이르시며 앞으로 일을 더 잘하라고 정겹게 당부하시였다.

작업반장부부는 먼길을 떠나는 친부모를 걱정하는 자식들마냥 눈물로 경애하는 장군님을 바래워드리며 오래도록 서있었다.

만사람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사랑의 이야기는 2008년 5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찾아주신 길주농장에서도 전설처럼 꽃펴났다.

이날 장군님을 맞이한 농장의 전경은 마치 한폭의 그림을 련상시키였다.

갖가지 과일나무들로 둘러싸인 아담한 문화주택들, 산뜻하게 건설된 공공건물들과 편의봉사시설들, 규모있게 잘 정리된 포전들과 도로들…

모든것이 훌륭하게 조화를 이루고있는 농장의 전경을 이윽토록 바라보시며 장군님께서는 마을이 일하기도 좋고 살기도 좋은 행복의 무릉도원으로, 사회주의락원으로 훌륭히 꾸려진데 대하여 커다란 만족을 표시하시였다.

그리고 집집의 풍치를 한껏 돋구어주는 잎이 무성한 과일나무들과 줄당콩들을 보시고서는 농촌풍경이 얼마나 좋은가고 기쁨어린 말씀을 하시였다.

농장의 여러곳을 돌아보시며 영농실태와 농촌건설정형을 구체적으로 알아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어 새집들이한 제4작업반의 한 제대군인가정을 방문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집주인이 인민군대에서 사관장으로 복무했다는 사실이며 그가 보람찬 군사복무를 마치고 고향땅에 뿌리내렸다는 사실을 아시고 대견해하시였다.

이윽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옆에 있는 그의 딸을 바라보시며 가문에 장사가 있는 모양이라고 웃으시며 말씀하시였다.

중학생인 그의 딸은 나이에 비해 키가 크고 체격도 여간 좋지 않았는데 어찌 보면 씨름선수같았다.

농장의 한 일군이 할아버지가 전쟁시기 락동강전투에서 총창으로 적을 찔러 어깨너머로 넘긴 힘장사라고 말씀드리였다.

그이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며 그런것 같다고, 어머니보다 키도 더 크고 몸도 좋다고 하시며 희망이 무엇인가고 다정히 물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을 총대로 결사옹위하는 인민군대가 되겠다는 딸의 씩씩한 대답을 들으신 그이께서는 못내 대견해하시며 제대군인부부에게 아이들을 잘 키우라고 당부하시였다.

이어 넓고 환한 전실이며 웃방, 아래방 그리고 부엌까지 다 돌아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가마뚜껑도 반들반들하게 닦고 집을 알뜰하게 잘 거두었다고 치하도 하시고 TV는 제대로 보는가, 화면의 질은 어떠한가에 이르기까지 헤아려주시였다.

마치도 세간난 자식의 집을 찾은 친정어머니와도 같은 그이의 다심한 사랑에 감격한 제대군인의 안해는 자기들은 원래 작은 집에서 살았는데 장군님의 은덕으로 이렇게 좋은 집에서 살게 되였다고 고마움의 인사를 삼가 올리였다.

그러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안해가 나의 덕분에 이렇게 좋은 집에서 살게 되였다고 하는데 그것은 나의 이 아니라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가 좋고 당의 옳바른 령도가 있기때문이며 동무들이 당의 의도에 맞게 일을 잘한 덕입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겸허하신 그이의 말씀에 제대군인의 안해는 눈물을 머금고 새 집을 받은 후 친정어머니도 찾아오지 못하였는데 아버지장군님께서 우리 집에 먼저 찾아오셨으니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거듭 감사의 인사를 올리였다.

그러한 제대군인의 안해를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제 꼭 어머니를 모셔오라고 정깊은 어조로 당부하시였다.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집을 떠나시기에 앞서 집주인에게 병사시절의 정신으로 일을 잘하라고 하시면서 그들모두를 사랑의 한품에 안으시고 영광의 기념사진을 찍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자기 딸의 집을 다녀가시였다는 놀라운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온 제대군인 안해의 친정어머니는 꿈같은 현실앞에서 울먹이며 격정을 토로하였다.

《나라앞에 큰 공로를 세운적도 없는 평범한 농장원가정에까지 찾아오시여 앞날을 축복하여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은 진정 우리모두의 친아버지이십니다.》

친어버이의 사랑을 받아안은 행운아들은 단지 이들만이 아니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선군시대 모범선동원으로 내세워주신 한드레벌의 평범한 녀성농장원도, 사랑의 TV수상기를 받아안은 심심산속 룡흥사의 관리원부부도 다 그런 행복자들중의 한사람들이였다.

2008년 7월 어느날 평안북도 태천군 은흥협동농장을 현지지도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포전에서 농장원 엄정실을 만나주시였다.

그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8년전 대소한의 강추위속에 한드레벌을 찾으시였다는 감격적인 소식에 접한 후 농사때문에 그토록 마음쓰시는 장군님의 심려를 조금이나마 덜어드리려는 일념을 안고 수도 평양을 떠나 이 농장에 자원진출하여 성실한 구슬땀을 바쳐가고있는 모범농장원이였다.

꿈결에도 그리던 경애하는 장군님을 만나뵙게 된 그는 한없는 감격으로 가슴설레이며 그이께 정중히 인사를 올리였다.

장군님께서는 나이는 몇살인가, 집은 어디인가고 다정히 물어주시며 농촌으로 자원진출하여 농업생산에 전심전력을 다하고있는것은 참으로 기특한 일이라고 치하해주시였다.

그러시면서 다른 나라 청년들이 수도시민권을 얻지 못해 안달아하고있을 때 우리 청년들은 정든 수도를 서슴없이 떠나 전야로, 탄전으로, 개발지로 자진하여 탄원해가고있다고, 이것이 바로 당과 혁명에 무한히 충직한 우리 청년들의 참모습이라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엄정실동무가 이 협동농장에서 일을 잘하는 모범농장원이고 선군시대 중앙모범선동원으로서 분조에서 큰 역할을 하고있으면 장합니다. 1960년대에는 리신자동무가 온 나라에 소문난 본보기선동원이였는데 엄정실동무도 리신자동무처럼 일을 잘하여야 하겠습니다.》

한가슴에 받아안기에는 너무도 큰 믿음에 눈굽을 적시는 그에게 장군님께서는 부모들이 이제는 평양에 다시 와서 살라고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하시며 부모들이 더 많은 쌀을 생산하는것으로써 당을 끝까지 잘 받들라고 하였다는데 정말 훌륭한 부모들이라고, 오늘 자신께서 한 말을 편지로 써서 부모들에게 알려주라고 이르시였다.

《장군님, 꼭 쓰겠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감사의 눈물을 쏟고있는 엄정실을 자신의 가까이에 세우시고 사랑의 기념사진까지 찍어주시였을뿐아니라 다음에 오실 때에는 그의 집에도 들리겠다고 약속도 하시였다.

그로부터 며칠후 엄정실농장원은 새 세대 청년으로서 응당 하여야 할 일을 한 자신을 보통사람들이 한생을 살아도 오를수 없는 영광의 상상봉에 올려세워주신 장군님에 대한 한없는 고마움을 누를길 없어 부모들에게 앞서 그이께 감사의 편지를 삼가 올리였다.

그는 편지에서 21살 나이에 이곳에 진출한 후 지금까지 많은 일군들이 찾아와 수고한다고 말을 하고 돌아가군 하였지만 자기의 소행을 그토록 기특해하시면서 부모들까지 알아보시고 높이 평가해주신분은 오직 아버지장군님밖에 없다고 하면서 이렇게 마음속생각을 터놓았다.

《저희 부모들은 한드레벌로 떠나는 저에게 극상해서 힘이 들면 편지를 쓰라, 아프면 편지를 쓰라고 하면서 고무는 해주었지만 저의 희망의 날개를 위훈으로 펼쳐주시고 시대의 앞장에 보란듯이 내세워주신 운명의 스승, 삶의 은인은 진정 아버지 김정일장군님이십니다.》

정녕 인민모두를 친자식으로 여기시고 따뜻이 보살펴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그 사랑의 세계에는 멀고가까운 곳이 따로 없었고 귀한 자식, 못난 자식이 따로 없었다.

그래서 인민들은 장군님께 삼가 감사의 편지를 올릴 때면 《자애로운 어버이 김정일장군님》이라고 친근한 이 부름을 심장으로 터치였던것 아니랴.

인민의 그 진정의 토로에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더 큰 힘과 용기를 얻으시였고 조국과 인민을 위한 삼복철강행군, 초강도강행군을 끝없이 이어가시였다.

3

 

《봄향기》

 

주체97(2008)년 3.8국제부녀절날이였다.

이날 동평양대극장은 열광의 환호, 행복의 파도로 끓어번지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3.8국제부녀절을 맞는 녀성들을 위하여 성대한 경축공연무대를 마련해주시고 평양시안의 최고인민회의 녀성대의원들, 녀맹책임일군들, 녀성작가, 기자, 방송원, 창작가, 예술인들과 함께 공연을 관람하여주시는 뜨거운 은정을 베풀어주신것이였다.

공연관람에 참가할 대상들에 대하여 여러차례 가르치심을 주시고 공연에 출연할 단체와 공연순서까지 하나하나 짜주시며 세심히 보살펴주신 자애로운 어버이의 보살피심속에 펼쳐진 그날의 뜻깊은 공연무대.

꿈결에도 그립던 장군님을 몸가까이 모시고 공연을 관람하게 된 기쁨으로 하여 녀성들의 가슴가슴은 형언할수 없는 환희와 감격으로 한껏 높뛰였다.

공연이 끝났을 때였다.

한 일군이 급히 무대로 오르더니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녀성들의 명절을 축하하여 전체 공연출연자들과 관람자들에게 사랑의 선물을 보내주시였다는 놀라운 소식을 알려주는것이였다.

관람자들은 자기 귀를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다.

장군님께서 출연자들도 아닌 우리들에게도 선물을 보내주시다니?! …

잠시후 천수백명에 달하는 출연자와 관람자들모두에게 사랑의 선물이 안겨졌다.

고급화장품 《봄향기》세트와 여러종의 식료품들…

드넓은 극장관람홀은 삽시에 감격의 파도로 출렁이였다.

아직은 산과 들에 꽃이 피지 않은 3월이였건만 장내는 불시에 사랑의 봄향기로 차넘치고있었다.

하다면 사람들을 한껏 격동시킨 그 봄향기는 어디서 풍겨왔는가.

3.8국제부녀절을 며칠 앞둔 어느날 깊은 밤, 평안북도의 한 책임일군을 전화로 찾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신의주화장품공장에 가서 《봄향기》화장품을 얼마나 더 생산할수 있겠는가 하는것을 알아보라고 하시고나서 필요한 량을 알려주시며 그 화장품을 3.8국제부녀절에 쓰려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토록 분망하신 가운데서도 녀성들의 명절을 잊지 않으시고 그들을 위해 각별히 마음쓰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웅심깊은 사랑이 사무쳐와 책임일군은 손에 든 수화기를 꽉 그러쥐였다.

다음날에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여러차례나 도의 책임일군을 전화로 찾으시고 신의주화장품공장에서 《봄향기》화장품이 다 생산되면 실어올 운수기재를 보내겠다고 하시며 그것을 화물자동차나 뻐스로 운반하면 손상이 갈수 있다는것을 헤아리시고는 렬차를 보내여 실어오도록 하겠다고, 다음날 렬차를 보내겠으니 화장품을 거기에 실어보내야겠다고 세심히 가르쳐주시였다.

그러시면서 화장품세트값을 도에서 물어주려고 한다는데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우리는 상품값을 물어주는데서도 모범이 되여야 한다고 하시며 《봄향기》화장품세트값을 봉투에 넣어 보내주겠으니 받아두었다가 그 공장에 넘겨주어야 하겠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화장품을 실은 특별렬차가 사랑의 기적소리를 울리며 두줄기 레루우를 달렸다.

이날 공연을 관람한 녀성들만이 아니라 남성들까지도 사랑의 《봄향기》화장품을 받아안는 뜻밖의 행운이 차례졌다.

너무도 놀라운 현실앞에서 믿어지지 않는듯 저저마다 어리둥절해하였다.

그 사연을 알았을 때 그들의 감격은 형언할수 없었다.

관람에 참가한 녀성들이 화장품세트를 받아안은 후 그걸 보고 집에 돌아간 남편들로부터 선물이야기를 듣고 부러워할 안해들의 심정까지 헤아리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3.8절 당일날 공연을 시작하기에 앞서 한 일군을 부르시여서는 화장품선물을 녀성들만이 아니라 남자들에게도 주려고 한다고, 그러면 그들의 안해들이 얼마나 좋아하겠는가고 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의젓하게 앉아 3.8절 주인공들을 박수로 축하해주려고 하던 남성들의 가슴에 사랑의 선물이 안겨졌다.

꿈결에도 생각지 못했던 행운아들로 되여버린 남성들은 눈굽을 훔치며 경애하는 장군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또 올리였다.

《봄향기》화장품!

그것은 단순히 인간의 미를 보태주는 화장품만이 아니라 우리 녀성들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녀성들로 내세워주시려는 장군님의 사랑이 응축되여있는 봄날의 아름다운 향기였다.

봄향기전설은 어제오늘에 꽃펴난것이 아니였다.

나라가 시련을 겪던 강행군시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 녀성들이 제일 고생을 많이 하였다고, 우리 녀성들처럼 가장 아름답고 강직한 녀성들은 이 세상에 없다고 자주 말씀하신 경애하는 장군님이시였다.

1999년 6월 신의주화장품공장을 찾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종전에 수출을 위주로 하여 생산하던 화장품을 다 우리 인민들에게 팔아주도록 하시였을뿐아니라 우리 인민들에게 차례질 화장품을 만드는 공장은 마땅히 제일 경치좋고 문화위생적으로 완전무결한 장소에 자리잡아야 한다고 하시며 남신의주의 좋은 위치에 공장을 새로 현대적으로 일떠세우도록 대담한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신의주화장품공장건설을 발기하시였을뿐아니라 몸소 설계로부터 자재, 시공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업을 세심히 보살펴주시였으며 공장건설중에도 몸소 찾아오시여 건설과정을 걸음걸음 따뜻이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장군님의 세심한 손길아래 그 규모에 있어서나 생산공정의 현대화에 있어서 손색이 없는 선군시대의 창조물로 공장이 일떠설 때 공화국에 대해 온갖 비방만을 일삼아온 력사의 반동들은 제나름의 억측들로 분분하였다.

《남신의주에 신의주화장품공장을 새로 건설한다는것은 철저한 위장이다.》, 《화장품공장이 아니라 미싸일공장과 같은 중요군수공장이 비밀리에 건설된다.》…

어떻게 하나 공화국의 사회주의제도를 허물어뜨리려고 헛된 망상을 하는 그자들로서는 나라사정이 어렵던 그때 은혜로운 사랑의 빛발아래 화장품생산기지가 꾸려지리라고 어찌 상상조차 할수 있었겠는가.

2001년 1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머나먼 외국방문의 길에서 쌓이고쌓인 피로도 푸실 사이없이 조국에 들어서시는 그길로 완공된 이 공장부터 찾으시였다.

현대적인 설비들이 들어찬 공장의 여러곳을 돌아보시며 《봄향기》세면비누생산과 포장공정을 더욱 완비할데 대한 구체적인 가르치심도 주시고 생산되는 《백학》치약을 살펴보시며 못내 만족해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어 문화위생적으로 알뜰하게 꾸려진 화장품직장에도 들리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전에 손로동으로 하던 공정이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고 현대화된것이 그리도 기쁘시여 온 공장이 환해지도록 웃으시였다.

공장의 한 일군이 결혼식매대들에서 《봄향기》화장품을 팔아주니 사람들이 정말 기뻐들 한다고 말씀올렸을 때 장군님께서는 인민들이 좋아하면 됐다고, 더 많이 생산하여 보내주자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언제인가는 인민들의 마음속에 따뜻한 봄향기가 넘쳐나게 하시려는 심정을 담아 화장품의 상표를 《봄향기》로 달도록 해주시고 오늘은 또 이렇게 줄줄이 쏟아져나오는 《봄향기》화장품을 보시며 인민들에게 더 많이 차례지도록 하기 위해 마음쓰시는 장군님의 사랑앞에 일군들모두가 감격을 금할수 없었다.

슬하의 천만자식을 모두 한품에 안으시고 세상에서 제일 좋은것은 다 안겨주시려고 온갖 심혈을 기울이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어버이사랑은 크지 않은 하나의 일용품인 불소치약에도 뜨겁게 스며있다.

불소치약을 만들어 인민들의 건강에 도움을 주도록 마음써오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여러해전에 벌써 신의주화장품공장에 수십종의 불소치약견본까지 내려보내주시면서 하루빨리 질좋은 불소치약을 만들어보도록 과업을 주시였다.

공장에서 장군님께 기쁨드릴 조급한 마음에서 만들어 올린 불소치약을 료해하시고는 불소치약을 그렇게 만드는것이 아니라고, 불소치약에 대한 연구를 해야 한다고, 불소화합물을 많이 넣으면 이발이 꺼매진다고 하시며 잘못된 점을 하나하나 바로잡아주신 경애하는 장군님.

자신들의 경솔한 처사를 심각히 돌이켜보며 공장의 기술자들과 로동자들은 다시금 달라붙어 끝내는 가장 합리적인 배합비률을 찾아내였고 드디여 불소치약을 원만히 만들어내게 되였던것이다.

2008년 11월 어느날 신의주화장품공장을 또다시 찾아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제품진렬대에 놓인 치약의 상표를 보시고 대뜸 《불소치약이로구만. 성공하였나?》라고 물으시였다.

성공했다는 대답을 들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신의주화장품공장에서 내가 보내준 불소치약견본을 보고 불소치약을 만드는데 성공하였으며 불소치약을 생산하여 인민군군인들과 인민들에게 공급하였으면 잘하였습니다.》라고 못내 만족해하시였다.

인민들이 리용할 치약 하나에도 어떻게 하나 더 질좋게더 잘 만들도록 이렇듯 심혈을 쏟으신 장군님의 인민에 대한 열화의 사랑.

정녕 그것은 자식을 위한것이라면 크고작은것이 따로없는 어머니의 사랑처럼 한없이 자애로운것이였다.

사랑이란 말이 생겨 장구한 세월이 흘렀지만 경애하는 장군님의 인민에 대한 사랑처럼 순결하고 진실하며 열렬하고 헌신적인 사랑이 그 어디에 있었던가.

사랑하는 인민들을 온 세상이 부러워하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내세워 영원히 강성대국승리의 봄날에 살게 하시려는 특출한 인민관을 지니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따사로운 품이 있었기에 이 땅에는 그윽한 봄향기, 사랑의 향기가 넘쳐흘렀다.

4

 

새롭게 태여난 인민의 봉사전당들

 

주체97(2008)년 4월, 민족최대의 명절인 뜻깊은 태양절을 맞으며 새롭게 개건된 대동문영화관과 옥류관, 청류관이 준공되였다.

이름있는 문화 및 사회급양봉사기지들이 짧은 기간안에 최상의 수준에서 훌륭하게 변모된 놀라운 현실앞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다 경탄과 기쁨을 금치 못했다.

대동문영화관만 놓고봐도 종전의 건물외부형식을 그대로 살리면서 보다 세련시켰는가 하면 연건축면적도 종전의 2배나 더 크게 형성하였을뿐만아니라 최상급의 음향설비와 영사설비를 비롯하여 모든 관람홀들과 전시홀, 도서매대 등 건물내부를 완전히 일신시킨 현대적인 문화정서생활기지로 새롭게 태여났다.

평양의 자랑인 옥류관과 모란각 그리고 보통강반의 특색있는 청류관도 건축내부전반의 조형화, 예술화가 더욱 높은 수준에서 보장되고 최신식봉사설비들과 모든 조건들을 원만히 갖춘 현대적인 급양봉사기지로 자기의 모습을 달리하였다.

이것은 어버이수령님의 념원을 꽃피우시여 인민들에게 보다 문명하고 문화적인 생활조건을 마련해주시려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고귀한 헌신이 낳은 빛나는 사랑의 열매들이였다.

돌이켜보면 훌륭히 개건된 봉사기지들은 한평생 인민을 제일로 위하신 어버이수령님의 따뜻한 사랑의 손길이 깃들어있는 귀중한 유산들이였다.

사람들은 지금도 벽돌 한장, 세멘트 한삽이 귀하던 전후의 어려운 시기에 인민들의 문화정서생활을 위해 수도의 한복판에 영화관을 먼저 건설하도록 하시고 친히 그 이름까지 《대동문영화관》으로 명명해주시였을뿐아니라 준공식날에는 해빛같은 미소를 지으시며 기뻐하시던 어버이수령님의 모습을 잊지 못하고있다.

대동강의 맑은 물이 감돌아흐르는 옥류벽우에 하늘을 날을듯 푸른 합각지붕을 떠이고 우아하게 솟아있는 옥류관도 어버이수령님의 손길에 의해 마련된것이다.

1958년 8월 어느날 이른새벽 한척의 배가 대동강기슭을 천천히 지나가고있었다.

그 배에 바로 어버이수령님께서 타고계시였다.

전쟁의 상처를 채 가시지 못한 평양의 정경을 가슴아픈 눈길로 바라보시던 수령님께서는 반월도앞에 배를 세우시고 대안에 병풍처럼 펼쳐져있는 바위를 한동안 눈여겨 살펴보시다가 집터로서는 아주 좋은 자리라고, 저 옥류벽우에 대동강풍치에 어울리면서도 마치 물에 떠있는것처럼 보이는 조선식료리집을 번듯하게 건설하여 인민들에게 안겨주자고 하시며 그 터전을 잡아주시였다.

그후 옥류관이 훌륭하게 일떠서고 그곳에서 인민의 행복넘친 웃음소리가 대동강물결에 실려 랑랑하게 흐르던 어느날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에게 경치도 수려하고 건물도 아름답고 이름까지 좋으니 우리 인민들이 어찌 옥류관을 사랑하지 않겠는가고, 나는 우리 인민들에게 이처럼 좋은 집을 지어준것이 제일 기쁘다고 못내 만족해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의 뜨거운 사랑이 어려있는 봉사기지들을 더 훌륭하게 꾸리고 인민들에게 보다 좋은 혜택이 차례지도록 하기 위해 언제나 마음을 쓰시였다.

모든것이 부족하던 시련의 그 시절 장군님께서는 고난의 행군을 하느라고 수고한 우리 인민들에게 맛보이면 얼마나 좋아하겠는가고 하시며 그 옛날 왕족들만 궁전에서 해먹던 어북쟁반국수 못지 않은 고기쟁반국수를 옥류관에서 잘 만들어 인민들에게 봉사하도록 은정어린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이 땅우에 강성대국의 려명이 밝아오고 행복의 웃음소리 커갈수록 경애하는 장군님의 인민에 대한 사랑은 더욱 깊어만 갔다.

2007년 삼복철의 어느날 장군님께서는 대동문영화관을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개건할데 대한 구상을 펼쳐주시고 그 영예로운 임무를 군인건설자들에게 통채로 맡겨주시였다. 그리고 공사의 첫시작부터 그 진행정형에 대해서 수시로 알아보시고 구체적인 지도를 주시였으며 다음해인 2008년 1월에는 대동문영화관은 내가 올해 태양절을 맞으며 수도시민들에게 줄 선물로 마련하는 대상인것만큼 건축학적으로는 세련되고 화려하면서도 리용에서는 인민들의 기호와 미감에 맞으면서도 편리하게 건설하여야 한다고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대동문영화관을 만점짜리 창조물로 완성하시려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시였는지 사람들은 다는 모르고있다.

영화관바닥에 미정석을 까는 문제가 제기되였을 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쇠붙이 같은것에 석재가 긁히울수 있는 결함을 헤아려보시고 대동문영화관바닥에 까는 돌은 돈을 좀더 들여서라도 온전하게 할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관람자들에게 친근감을 불러일으키는 영화관 중앙홀 천정의 조명등에도 장군님의 세심한 손길이 닿아있다.

원래 설계가들과 건설자들은 영화관 중앙홀을 화려하게 장식하게 할 목적으로 중앙홀 천정에 무리등을 설치하였었다.

이러한 사실을 아시게 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해당 일군에게 대동문영화관은 공공장소이므로 무리등이 맞지 않는다고 하시며 다른 조명으로 교체하도록 세심히 보살펴주시였다.

그이의 말씀에 따라 무리등대신 원형면조명등이 설치되였는데 그렇게 하니 중앙홀이 현대감이 나게 더 환해지고 공공장소로서의 영화관의 체모에 더 잘 어울리게 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렇듯 다심한 사랑의 손길에 떠받들려 대동문영화관은 물론 옥류관과 모란각, 청류관은 먼 후날에도 손색없을 창조물로 개건될수 있었다.

주체97(2008)년 6월 어느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평양시의 개건된 문화 및 급양봉사기지들을 현지지도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근로자들이 다양한 문화정서생활을 마음껏 누릴수 있는 현대적인 문화전당으로 변모된 대동문영화관이며 대중급양봉사기지로서의 면모를 훌륭히 갖추고 화려하게 개건된 옥류관과 모란각, 청류관의 외부와 내부를 일일이 다 돌아보시였다.

어느 대상이라 할것없이 누가 보아도 최상의 수준에서 황홀하게 꾸려졌지만 인민들이 리용할 봉사기지들이 한점의 흠도 없는 완벽한것으로 되게 하시려는 그이의 높은 요구는 실로 끝이 없었다.

대동문영화관의 2호관람홀을 돌아보시던 장군님께서 관람홀의 앞부분 관람석이 영사막으로부터 너무 가까운것을 헤아리시고 이 관람홀의 맨 앞줄 관람석에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화면이 너무 가까와 어지러울수 있고 화면을 올려다보아야 하므로 목이 아플수도 있다고 지적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영화관의 관람홀을 앞뒤로 길게 만드는것은 낡은 방식이라고, 앞으로 영화관을 꾸릴 때에는 관람홀을 앞뒤길이는 줄이고 량옆으로 넓게 하며 관람석을 영사막을 중심으로 반원형으로 배치하여 사람들이 어디에 앉아 영화를 보아도 화면이 잘 보일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고 전문가들도 생각지 못했던 문제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그뿐이 아니였다. 옥류관을 돌아보시던 장군님께서는 누구도 관심을 두지 못했던 어느 한 홀의 바깥창문 웃부분에 알릴듯말듯하게 나있는 얼룩을 발견하시고는 개건공사를 하면서 새 유리를 바꾸어 끼우지 않고 원래 있던것을 그대로 두다보니 손상이 되여 그런것 같다고 하시며 창문에 새 유리를 바꾸어 끼우는것이 좋겠다고, 창문 웃부분에는 흐린유리를 끼우는것이 좋을것 같다고 이르시였다.

청류관에 가시여서도 기본현관홀에 잇닿아있는 대중식사홀을 보시고 기본현관으로는 수많은 사람들이 계속 나들겠는데 대중식사홀에서 식사하는 사람들이 들여다보이게 해서는 안된다고 깨우쳐주시였다.

깊은 자책속에 잠긴 일군들은 때늦게나마 자신들을 돌이켜보며 모든것을 보고 평가하시는 그이의 기준이 무엇인지 다시금 명백히 깨닫게 되였다.

《인민을 위하여 복무함!》, 이것이 바로 장군님의 평가기준이였으며 그래서 그이의 요구성은 그처럼 높은것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옥류관의 2층의 어느 한 호실에 들리시였을 때였다.

넓고 환하게 꾸려진 방을 보시고 장군님께서는 옥류관일군에게 물으시였다.

《여기는 연회장이요?》

《장군님, 여기는 연회장이 아니라 지난 시기에 있던 간막이를 없애고 꾸린 대중식사칸입니다.》

그 넓은 방에 한가득 둘러앉아 맛있게 음식을 드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지시는듯 흐뭇한 미소를 담으신 장군님께서는 《2관 2층 2호실이 대중식사칸이라는데 방이 큼직하여 좋습니다. 지난 시기 식사칸에 간막이를 하였던것을 없애고 대중식사칸으로 꾸렸다고 하는데 그렇게 하기를 잘하였습니다. 인민을 위하여 봉사하는 식당의 식사칸은 마땅히 이렇게 되여야 합니다.》라고 치하하시였다.

그 말씀을 음미하며 일군들은 아무리 번쩍거리고 화려한것이라 할지라도 인민을 위하고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것이라는 그이의 숭고한 인민적가치관을 다시금 새겨안게 되였다.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풍치수려한 모란봉의 경치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며 멋들어지게 꾸려진 모란각도 돌아보시였다.

모란각에서 국수를 비롯하여 여러가지 음식들을 봉사한다는 설명을 들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한 일군에게 손님들이 많은가고 나직이 물으시였다.

손님들이 많다는 그 일군의 대답을 들으신 그이께서는 잠시 모란봉을 둘러보시더니 모란각을 국수집으로 운영하는것은 좋지 않다고 말씀하시였다.

일군들에게는 예상하지 못하였던 뜻밖의 지적이였다.

왜냐하면 모란각은 여태 옥류관처럼 국수를 만들어 시민들에게 봉사해왔으며 그곳이 옥류관의 분관이라는 의미도 그렇게 해석해왔기때문이였다.

영문을 몰라하는 일군들에게 그이께서는 국수를 눌러 봉사하게 되면 육수와 꾸미를 만들 때 뜨물이 적지 않게 나오게 되는데 그것을 바로 처리하지 못하는 경우 인민의 문화휴식터인 모란봉의 자연환경에 손상을 줄수 있다고 일깨워주시였다.

그러시면서 모란각에서는 아이스크림을 비롯한 청량음료와 빵, 꽈배기, 지짐, 통닭구이 같은것을 봉사해줄수 있다고 음식의 종류까지 세세히 가르쳐주시였다.

인민들을 위한 일이라면 하나에서 열, 백을 헤아려 보다 훌륭한 조건을 마련해주려고 애쓰시는 그이의 진정이 어려와 일군들은 또 한번 충격을 받았다.

식당운영과 봉사활동에서 지침으로 되는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번에는 집기류소독문제를 화제에 올리시였다.

《식당들에서는 손님들에 대한 봉사를 잘하는것도 중요하지만 소독을 철저히 하고 위생을 잘 지키는것이 더 중요합니다. 식당들에서 1회용나무저가락을 쓰는것은 별문제이지만 그릇이나 금속으로 만든 수저는 반드시 소독하여야 합니다.》

옥류관을 잘 꾸리는것도 중요하지만 인민들이 마음놓고 찾아가 음식을 먹을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는 깊은 의도의 말씀이였다.

이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식당들에서는 음식그릇뿐아니라 수저 같은것들도 철저히 소독하여 인민들의 건강에 해를 주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공기소독과 물소독을 비롯한 여러가지 소독방법을 잘 배합하여 소독대책을 철저히 세워야 한다고, 옥류관은 사회급양봉사의 전당인것만큼 위생설비와 소독설비를 완전무결하게 꾸려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게 하여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천만금을 들여 세상에 자랑할만 한 인민의 봉사전당들을 마련해주신것만도 분에 넘치는데 해당 일군들도 생각지 못한 집기류들의 소독문제까지 마음을 쓰신 경애하는 장군님은 진정 인민을 제일로 위하시는 자애로운 어버이이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다녀가신 후 옥류관을 비롯한 봉사기지들은 보다 완벽하게 꾸려지게 되였다.

훌륭히 개건된 봉사전당들의 새 모습에 이끌려 저저마다 찾아가고 흐뭇하게 봉사를 받고 너무 기뻐서 어쩔줄 모르는 인민들의 행복한 모습.

그것은 정녕 오직 한마음 인민을 위하시는 길에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쳐가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애민헌신에 의해 펼쳐진 사랑의 화폭이였다.

언제인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나의 인생을 쥐여짜면 인민이라는 두 글자밖에 나올것이 없다고 하시면서 나 김정일우에 인민이 있고 김정일은 인민의 아들이라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거목에는 뿌리가 있고 대하에는 시원이 있듯이 경애하는 장군님의 모든 사색과 활동, 투쟁과 업적은 이렇게 인민을 위하여라는 이 하나의 뜻, 하나의 념원에서 시작되고 꽃펴났다.

5

 

《어린이들에게 제일 좋은것을 보장해주어야 합니다》

 

비바람, 눈보라 사납고 낮과 밤이 따로없는 그 멀고 험한 초강도강행군길에서 경애하는 장군님 제일로 기뻐하실 때는 과연 어느때였던가?

그것은 인민들이 한가지라도 덕을 입는것을 보셨을 때였다.

그이의 제일 큰 기쁨의 세계에는 조국의 미래인 어린이들이 소중히 자리잡고있었다.

주체97(2008)년 7월초 어느날이였다.

장마가 금방 선을 보이던무렵인데 그날따라 본때를 보이려는듯 비가 억수로 쏟아져내렸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창대같은 비줄기를 헤치시고 어린이영양식품을 전문으로 생산하는 강계식료공장을 찾아주시였다.

0여느날도 아니고 험한 날씨에 이름없는 자기들의 일터를 찾아오실줄은 꿈에도 몰랐던 공장일군들은 눈시울을 적시며 경애하는 장군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였다.

일군들의 안내를 받으며 공장연혁소개실을 돌아보신 장군님께서는 공장에서 생산하고있는 여러가지 콩가공식품들이 전시된 제품진렬대로 다가가시였다.

사탕과 과자봉지들을 손수 들어보시며 하나하나의 제품을 주의깊게 보아주시는 장군님께 한 일군이 이 공장 제품이 질이 좋아서 어느 한 계기에 진행된 전국적인 당과류품평회에서 1등을 하였다고 자랑스럽게 말씀드렸다.

그이께서는 정말인가고 되물으시며 대단하다고 치하하시였다.

이어 장군님께서는 위생안전성을 보장하면서도 보기에도 한결 시원스럽게 잘 꾸린 콩가공작업반을 돌아보시며 여러가지 콩가공식품을 만들어 강계시안의 탁아소, 유치원어린이들과 전쟁로병, 특류영예군인들에게 공급하고있다는 사실을 보고받으시자 대단히 만족해하시였다.

잠시후 콩우유작업반에 이르신 장군님께서는 공장에서 콩우유를 매일 생산하여 강계시안의 모든 탁아소, 유치원들과 소학교들에 콩우유차로 실어다 공급해준다는 사실을 아시고는 좋은 일이라고 하시며 한번 더 듣고싶으신듯 다시금 물으시였다.

《매일 정상적으로 공급하오?》

정상적으로 공급한다는 한 일군의 대답에 장군님께서는 기쁨을 금치 못하시였다.

그이의 모습을 우러르는 일군들의 눈앞에는 콩우유에 깃든 뜨거운 사연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1992년 어느날 지금 자신의 간절한 소원은 우리 어린이들에게 콩우유를 떨구지 말고 정상적으로 먹였으면 하는것이라고 하시며 현대적이고 성능높은 콩우유기계에 대한 자료를 직접 찾아내시고 생산설비들을 일식으로 갖추도록 세심히 가르쳐주신 경애하는 장군님.

2001년 7월 8일에는 평양어린이식료품공장을 찾으시여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에도 시안의 모든 학생들과 어린이들에게 하루도 빠짐없이 콩우유를 공급하였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아주 훌륭한 일을 했다고, 동무들이 나의 소원을 풀어준셈이라고 하시면서 자신께서는 오늘 이 공장에 오고싶은 생각이 간절하여 왔다고, 수령님께서 생전에 우리 어린이들을 그처럼 사랑하시였는데 그 뜻을 받들자고 자신께서 오늘 이 공장에 왔다고 절절히 말씀하신 장군님.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런 숭고한 사랑이 북변의 강계땅에까지 뜨겁게 이어져 강계시에서도 어린이들을 위한 콩우유생산과 공급사업이 중단없이 진행될수 있었다.

지나온 일들을 감회깊이 돌이켜보는 일군들이였지만 공장에서 이룩한 자그마한 성과를 두고 그리도 만족해하시는 장군님의 마음속에 얼마나 숭고한 뜻이 새겨져있는지 미처 몰랐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당과작업반에 이르시였을 때였다.

과자로에서는 완성된 제품이 줄지어 떨어지고있었다.

고난의 시기에 아이들에게 사탕, 과자를 제대로 먹이지 못한것이 지금껏 마음에 걸리시여 마음쓰시던 경애하는 장군님이시였기에 그 흐뭇한 광경에서 멀고 험한 수백리령길을 달려온 피곤이 다 풀리신듯 환한 미소를 지으시였다.

이윽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과자를 넣은 비닐봉지를 손에 드시고 《이거 질이 참 좋구만.》라고 하시며 포장대우에 쌓여있는 조롱박형식의 과자도 손수 만져보시다가 몸소 그 맛까지 보아주시였다.

그러시고는 과자맛이 좋다고, 동무들도 맛을 보라고 하시며 동행한 일군들에게 권하기까지 하시였다.

일군들은 저마다 과자를 손에 집었다.

그들이 과자맛이 정말 좋다고 이구동성으로 말씀드리자 장군님께서는 확실히 이 공장에서 만든 과자맛이 괜찮다고 또다시 치하하시였다.

어린이들에게 질좋은 사탕, 과자를 먹이게 되였다는 기쁨이 앞서시여 이곳 일군들의 수고를 그처럼 거듭 평가해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이시였다.

공장을 다 돌아보고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이 평생 잊지 못할 가슴뜨거운 말씀을 꺼내시였다.

《어린이들은 조국의 미래이고 혁명의 계승자들입니다. 어린이들을 키우는 문제는 나라와 민족, 혁명의 전도와 관련되는 중요한 사업이므로 앞으로도 어린이들에게 제일 좋은것을 보장해주어야 합니다.》

지금껏 공장을 돌아보시면서 별치않은 콩가공품 하나에도 그토록 관심을 돌리시고 과자의 맛까지 보아주시던 장군님의 심중에 어떤 생각이 자리잡고있었는지 비로소 깨달은 일군들이 뜨거운것을 삼키였다.

일찌기 어린이들을 나라의 왕이라고 하시며 세상에 없는 궁전을 지어주시고 철따라 새 교복을 안겨주시던 어버이수령님의 숭고한 뜻을 이어 강성국가의 주인공들인 후대들을 위해 온갖 심혈을 기울이신 장군님의 사랑은 이렇듯 지방의 자그마한 식료공장에도 사랑의 전설을 남긴것이다.

인민들이 덕을 보게 하는데서 제일 큰 기쁨을 찾으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의 발자취는 같은 날 찾아가신 강계닭내포국집에도 뜨겁게 새겨졌다.

7년전 12월, 북방의 칼바람을 맞으시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찾아주셨던 강계닭내포국집.

그때로부터 이곳 종업원들은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 그이께서 가르쳐주신대로 식당의 계단돌도 화강석으로 바꾸어놓고 주방도 다시 번듯하게 꾸려놓았으며 지붕의 기와도 질좋은것으로 교체하였다. 식당은 전에 비해 몰라보게 달라졌고 봉사사업에서도 실질적인 성과를 내고있었다.

쏟아지는 비에 옷자락을 적시며 변모된 식당외부를 둘러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비방울이 튀여나는 계단돌의 미끄럼정도를 가늠해보시고 이제는 미끄럽지 않다고, 정말 좋다고 하시면서 그때 닭내포국집을 돌아보면서 식당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대리석을 깔았기때문에 겨울철에 사람들이 오르내리다가 미끄러워 넘어질수 있다고 하였는데 이렇게 화강석으로 계단을 만들어놓으니 얼마나 좋은가고 하시며 환히 웃으시였다.

그리고 종전과는 달리 큰 식당의 맛이 나게 넓고 규모있게 꾸려진 1호식사칸에 들어서시여서는 식탁우에 차려놓은 닭내포합성료리, 닭간완자튀기, 닭발튀기, 닭심장볶음, 닭대가리식혜 등 20여가지의 닭내포료리를 보아주시고 닭내장과 부산물을 가지고 료리를 먹음직스럽게 잘 만들었다고, 보기만 해도 먹고싶은 생각이 든다고 치하의 말씀을 해주시였다.

강계시의 한 책임일군이 장군님께서 일러주신대로 내포국밥에 술 한잔씩 받쳐서 봉사하는데 간혹 어떤 손님들은 술이 작다고 더 요구하군 한다고 말씀올리자 잇달아 다른 일군이 술 한잔이 작다고 신소함에 써넣은 사람도 있다고 하여 삽시에 분위기가 흥그러워졌다.

사실 술이 작다는것은 반대로 안주가 많다는 의미로도 되였다.

처음 이 식당을 찾아주신 그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손님들이 닭내포료리를 마주하면 의례히 술생각이 날것이라고 다심히 헤아려주시며 세상에 소문난 강계포도술공장의 술도 봉사해줄데 대한 은정어린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그래서 식당에서는 술까지 받쳐서 봉사하고있었는데 한잔 술로 넘기기에는 한상의 음식이 참으로 푸짐하였던것이다.

그들의 스스럼없는 말에서 자강도사람들의 행복한 생활이 눈앞에 방불히 어려오시는듯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웃음비낀 어조로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술을 한고뿌이상 마시게 허용하면 닭내포국집이 아니라 술집이 될수 있다고 다정히 이르시였다.

그바람에 장내에는 가벼운 웃음파도가 일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인민들이 실지로 덕을 보는것이 얼마나 기쁘시였던지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닭내포국집을 크게 짓고 운영하여 인민들에게 닭내포국을 봉사해주니 얼마나 좋습니까. 닭내포국집을 건설하기 정말 잘하였습니다. 전국적으로 이런 닭내포국집은 자강도밖에 없을것입니다. 강계시민들은 물론 자강도에 찾아오는 전국 각지의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와서 닭내포국을 사먹고 당의 고마움을 느끼고있다고 하는데 좋은 일입니다.》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2호식사칸도 다 돌아보시고 식당로대우에서 락원의 도시로 전변된 강계시의 전경을 부감하시면서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 제일 고생이 많았던 자강도사람들의 생활이 날로 윤택해지는데 대해 거듭거듭 만족을 표시하시였다.

좀전에는 어린이들에게 사탕, 과자를 먹이고싶은 자신의 소원이 풀렸다고 그리도 만족해하시더니 인민들에게 닭내포국을 푸짐히 봉사해주는 흐뭇한 현실에 또다시 기쁨을 금치 못해하신 어버이장군님.

장군님의 큰 기쁨!

무릇 자식에게 쏟아붓는 어머니의 사랑은 대가를 바라지 않으며 그 어떤 간난신고도 달게 여긴다고 한다. 그만큼 자식들을 위한 고생이 크면 클수록 어머니는 거기에서 더 큰 보람과 행복을 느끼는것이다.

인민을 위하여 자신을 깡그리 바치는것을 최고의 인생관으로 간직하고계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 있어서 인민을 위한 헌신은 자식을 위한 어머니의 고생에도 비교할수 없는 위대한 생의 가장 큰 보람이였고, 가장 행복한 기쁨이였던것이다.

6

 

산림조성과 산림보호사업은 숭고한 애국사업이다

 

어버이수령님께서 한평생 가꾸시여 물려주신 조국산천을 푸른 숲이 우거지고 갖가지 열매가 주렁지는 사회주의무릉도원으로 꾸리는것은 강성대국의 휘황한 래일을 앞당겨오시려던 경애하는 장군님의 구상이고 확고한 결심이였다.

이름없는 하나의 야산도 한그루의 애어린 나무도 다 후대들에게 물려줄 조국의 귀중한 재부였기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새 세기에 들어와 전국을 수림화, 원림화하기 위한 산림조성사업을 본격적으로 전개해나가시였다.

전국을 수림화, 원림화하는데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수종이 좋은 나무를 많이 심는것이라는것을 명철하게 밝혀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고난의 행군시기에 나무를 망탕 베여 산림이 적지 않게 못쓰게 되였는데 수종이 나쁜 나무들인 경우에는 크게 아까울것도 없다고 하시며 수종이 좋은 나무를 많이 심어 화를 복으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그리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나무를 많이 심기 위해 시, 군마다 양묘장을 꾸려놓고 수종이 좋은 나무모들을 계단식으로 많이 키워냄으로써 나무모를 떨구지 않고 나무심기를 실속있게 할수 있도록 해당한 대책도 취해주시였다.

이렇듯 열렬한 그이의 애국지성이 그대로 숲을 자래우는 빛이 되고 자양분이 되여 고난의 상처를 가신 산들마다에 푸른 숲이 우거지고 황금산, 보물산들이 로동당시대의 귀중한 재보로 태여났다.

무더운 삼복철이 시작될무렵인 주체97(2008)년 7월 어느날 오가산령은 끝없는 감격으로 설레이는듯 하였다.

높고 험한 령을 넘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천년원시림으로 이름높은 오가산자연보호구를 찾아오시였던것이다.

자연도 천출위인을 알아본듯 지꿎게 내리던 비가 뚝 그치고 짙게 끼였던 안개도 신기하게 걷히면서 눈이 부실 정도로 청청한 하늘을 펼쳐보이며 천지조화를 부리였다.

오가산령마루에 도착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아침해빛을 받아 장쾌한 모습을 드러낸 산봉우리들을 부감하시며 오가산자연보호구가 정말 멋있다고 흥분어린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랑림산줄기의 서북쪽지역에 높고 험한 산들로 이루어져있는 오가산자연보호구에는 어버이수령님께서 배움의 천리길과 광복의 천리길을 걸으신 뜻깊은 혁명사적과 함께 경애하는 장군님의 불멸의 자욱도 새겨져있었다.

오가산령을 중심으로 수림의 바다가 끝간데 없이 펼쳐진 오가산자연보호구에는 수많은 동식물자원과 특히는 1 100여년 묵은 주목을 비롯하여 700년 자란 피나무, 550년 자란 잣나무 등 진귀한 천연기념물들도 적지 않다.

이곳 자연보호구관리소의 한 일군이 장군님께 이에 대하여서와 오가산의 원시림구역이 우리 나라에서 그 형성력사가 제일 오랜 산림지대의 하나라는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해드리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제가 우리 나라를 강점하기 전에는 이 오가산일대에 넓은 면적의 원시림이 있었으나 강점한 다음 많은 산림자원을 략탈하여갔기때문에 그 면적이 많이 줄어들고 황페화되였다고 하는데 일제는 산림자원뿐아니라 우리 나라의 수많은 지하자원을 략탈해갔다고 하시면서 말씀을 이으시였다.

《그러나 우리 인민은 일제의 가혹한 자원략탈책동과 조국해방전쟁의 엄혹한 환경속에서도 오가산자연보호구를 굳건히 지켜냈습니다. 이것은 조국의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도 자기의 생명처럼 귀중히 여기는 우리 인민의 숭고한 애국심의 발현입니다.》

가혹한 탄압과 략탈 그리고 준엄한 불길속에서도 조국의 재보를 지켜낸 민족의 강의한 애국심을 되새겨보시는듯 그이께서는 다시금 태고연한 원시림을 둘러보시였다.

이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40여년전에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오가산에 오시였던 일을 감회깊이 회억하시며 오늘 여기에 오니 수령님생각이 더욱 간절해진다고, 오가산은 정말 수령님의 혁명활동력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력사적인 고장이라고 말할수 있다고 감동어린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자강도에서 지난 고난의 행군시기 오가산자연보호구의 나무들을 한대도 찍지 않고 그대로 보존한것은 잘한 일이라고 높이 치하하시며 보호구에 무슨 동물들이 있는가도 알아보시고 550년 자란 잣나무도 보아주시면서 원시림의 여러곳을 돌아보시였다.

700년 자란 피나무며 320년 자란 신갈나무(참나무)를 보아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1 100여년 자란 주목앞에 이르시였을 때였다.

설명판을 보시고 나무앞에 다가서신 그이께 한 일군이 이 주목은 우리 나라에서 제일 오래 자란 나무라고 말씀올렸다.

장군님께서는 이 주목은 력사가 있는 나무라고, 정말 볼만 하다고, 억센 조선의 기상을 보여주는것 같다고 하시고는 이 나무는 아래쪽에 내려가서 올려다보아야 더 멋있게 보일것이라고 하시였다.

오가산자연보호구의 산림분포상태를 구체적으로 료해하시고 산을 내리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만족하신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오가산자연보호구에 있는 천연원시림은 수종이 다양하고 수백년 자란 나무들이 많아 정말 멋있습니다.》

그러시고는 문득 오가산에 대한 기록영화가 있는가고 물으시고나서 과학영화나 기록영화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고, 오가산에 대한 기록영화나 과학영화가 지난 시기 만든것밖에 없으면 다시 잘 만들데 대해서 지적하시였다.

그리고 산림조성과 산림보호사업을 잘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오가산자연보호구사업에서 나서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떠나시기에 앞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산림조성과 산림보호사업이 나라와 민족의 륭성번영을 위한 숭고한 애국사업이며 후대들을 위한 사업이라는것을 잊지 말고 전체 인민이 이 사업에 적극 떨쳐나서야 한다는데 대해 다시금 강조하시였다.

장군님과 헤여지는것이 너무도 아쉬워 눈시울을 붉히는 이곳 일군들의 마음인양 천고의 원시림도 소리내여 설레이는듯 하였다.

그 마음을 읽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어디서 사진을 찍으면 좋겠는가고 하시며 일군들을 가까이 부르시고 전경도와 550년 자란 잣나무를 배경으로 영광의 기념촬영을 하시였다.

조국의 귀중한 재보이고 자랑인 오가산자연보호구를 떠나시면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런 가슴뜨거운 말씀을 남기시였다.

《나는 자강도와 화평군의 일군들과 인민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의하여 오랜 력사를 가진 오가산자연보호구가 자기의 본태를 고이 간직하고있을뿐아니라 선군시대에 와서 그 내용이 보다 풍부화된데 대하여 만족하게 생각하며 애국의 열정을 다 바쳐 자연보호구를 훌륭히 보존관리한 도안의 인민들과 관리소종업원들의 공로를 높이 평가합니다.》

너무도 과분한 그이의 치하를 받아안으며 모두가 나라의 귀중한 재보인 오가산자연보호구를 더 잘 보호관리하고 온 나라를 수림화, 원림화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높으신 뜻을 더 잘 받들어나갈 마음속결의를 다지였다.

오가산자연보호구를 돌아보신데 이어 자강도산림과학연구소와 자강도공업림사업소의 어느 한 양묘장을 현지지도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산림조성사업은 나라의 산림자원을 늘이고 국토를 아름답게 가꾸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고 강조하시면서 산림조성사업을 힘있게 벌릴데 대한 구체적인 과업들을 제시하시였다.

오가산천연보호구를 비롯하여 자강도안의 산림부문의 여러 단위에 대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지지도를 계기로 산림조성과 보호관리에 대한 대중의 열의가 더한층 높아지게 되였다.

2008년의 삼복은 례년에 보기 드문 고온현상을 기록하였다.

그늘속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땀이 비오듯 내리고 숨막히는듯 한 무더위로 하여 날새들마저 숲속에 기여드는가하면 지어 바다물온도가 28℃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모든것을 질식시킬것만 같은 이런 무더위속을 뚫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또다시 삼복철강행군길에 오르시였다.

조국의 최북단 해발 1 200여m의 오가산을 내려 서해의 대계도로, 서해에서 다시 동해로!

정말이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빨찌산식초강도강행군으로 장군님께서는 전해에 비해 더 많은 단위들을 찾으시였고 험한 길을 더 많이 걸으시였다.

초복이 되면서부터 더욱 다그쳐진 경애하는 장군님의 1만여리 삼복철강행군길은 리원군 산림경영소의 양묘장에도 이어졌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양묘장을 찾으신 때는 2008년 8월초 어느날 이른새벽이였다.

멀고도 험한 길을 달려오신 장군님이시였지만 피로의 기색은 조금도 보이지 않으시고 밝은 미소속에 양묘장의 실태를 구체적으로 료해하시였다.

이곳 산림경영소에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높이 받들고 고난의 행군시기에 양묘장을 훌륭하게 꾸려놓고 많은 나무모를 키워내는 애국적헌신성을 발휘하였다.

2008년에만도 30정보의 넓은 면적에 잣나무를 심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 자랑찬 현실은 다 군내 인민들이 미래를 위해 살자는 장군님의 숭고한 인생관, 조국의 숲을 만년대계로 가꾸어가시려는 그이의 원대한 구상에 심장의 박동을 맞추며 일하는 과정에 이룩한것이였다.

이곳 종업원들이 흘린 애국의 구슬땀이 후덥게 스민 양묘장의 여러곳을 구체적으로 돌아보시며 장군님께서는 그들의 소행을 높이 치하해주시였다.

이날 특히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못내 만족해하시며 평가하신것은 산림경영소에서 오래동안 품을 들여 잣접림을 가꾸어온것이였다.

양묘장을 다 돌아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10리가량 올라가면 소나무에 잣나무를 접하여 조성한 잣접림이 있다는것을 아시고는 어서 가보자고 하시며 먼저 걸음을 떼시였다.

잠시후 장군님께서 도착하신 산림의 첫탁에는 둘레가 한아름이나 되고 높이가 10m이상 되게 자란 잣나무가 그이를 마중하듯 서있었다.

30여년전에 접하여 이제는 무성한 가지마다 소담한 잣송이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그 나무는 보는 사람마다 감탄을 자아내는 이 잣접림의 대표와도 같은 나무라고도 할수 있었다.

그 잣나무를 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정말 멋있다고 흐뭇해하시였다.

이윽하여 군안의 잣접림분포정형과 잣접의 우월성, 전망계획에 대한 산림경영소일군의 해설을 다 들으시고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매우 만족해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리원군산림경영소에서 소나무에 잣나무를 접하여 키울데 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관철하기 위하여 1967년부터 하전지구에 69정보의 잣접림을 조성하여 지금 49정보에서 잣을 따고있다는데 아주 잘하였습니다. 정말 수고하였습니다.》

사실 소나무에 잣나무를 접하여 키우는것은 몇십년 앞을 내다보고 하여야 하는 일인것만큼 애국심이 없이는 할수 없는 일이였다.

리원군에서 수십년세월 어버이수령님의 가르치심대로 잣접림을 조성해올수 있은데는 한 평범한 일군의 남모르는 수고가 깃들어있었다.

전 산림경영소 지배인이 바로 그 주인공이였다.

그는 어릴 때 잣접방법을 배워두었다가 1970년대에 중단되였던 잣접을 지배인이 된 후 다시 시작하였고 잣접림을 조성하고 가꾸는데 깨끗한 량심을 바쳐 많은 일을 해놓았다.

비가 오고 눈이 오고 바람이 부는 날이면 더구나 마음이 놓이지 않아 숲으로 달려나와서는 나무버팀목 하나라도 더 매주면서 잣나무 한그루한그루를 제 살붙이처럼 여기며 정성을 쏟아부었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한 일군이 바친 남모르는 수고를 헤아려보시는듯 나무들을 한동안 올려다보시던 장군님께서는 오랜 기간 숲과 함께 삶을 빛내인 전 산림경영소 지배인에 대한 평가의 말씀을 주시였다.

푸른 숲에 바쳐진 평범한 한 인간의 애국적소행을 값높게 빛내주시는 장군님의 크나큰 사랑을 뜨겁게 절감할수 있는 순간이였다.

이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잣접을 어떻게 하는가도 물으시고 심은 잣나무는 원가지가 곧추 자라지만 접한 잣나무는 가지를 많이 치는 우점에 대해서까지 구체적으로 료해하시고는 잣접림을 다시한번 둘러보시며 리원군산림경영소에서 잣접림조성을 아주 잘하였다고, 잣접림이 정말 멋있다고 거듭 치하해주시였다.

2년전에 접한 애어린 잣나무를 손수 허리굽혀 유심히 살펴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잣접림을 조성하자면 애국심도 있고 지구성도 있어야 한다고, 함경남도사람들은 지구성과 인내성이 있다보니 잣접림을 많이 조성해놓을수 있었다고, 리원군산림경영소에서처럼 조국산천을 변모시키기 위하여 이악하게 꾸준히 노력한다면 우리는 짧은 기간에 나라의 모든 산을 무성한 숲으로 뒤덮을수 있다고 하시면서 《여기는 현대판 오가산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라고 기쁨에 넘쳐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과분한 치하를 받아안으며 일군들모두는 좀전에 양묘장에서 산림조성사업은 인민의 행복과 나라의 부강번영을 위한 숭고한 애국사업이며 만년대계의 자연개조사업이라고 하시면서 지적하신 장군님의 말씀을 다시금 되새겨보았다.

《우리 민족이 대대로 살아온 삼천리금수강산을 우리 세대에 와서 더 잘 보호하고 더 잘 꾸려 풍치수려하고 여러가지 열매들이 주렁지는 사회주의무릉도원으로, 로동당시대의 금수강산으로 전변시켜야 합니다.》

시대와 력사앞에 지닌 우리 세대의 의무를 자각하게 해주고 애국의 열의를 북돋아준 그이의 이 말씀.

그것은 곧 먼 후날 후대들이 무성하게 펼쳐진 수림을 보면서, 사회주의무릉도원, 로동당시대의 금수강산으로 전변된 이 땅을 보면서 우리 세대 사람들을 뜨겁게 추억할수 있도록 애국의 고귀한 땀을 바쳐갈것을 바라신 절세의 애국자의 열정넘친 당부였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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