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선군조선의 존엄과 기상을 더 높이 떨치시려
친어버이의 따뜻한 손길로
허술히 대할 문제가 아니다
무릇 사랑이란 그 어떤 대가를 바람이 없이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치는 헌신을 가리켜 하는 말이다.
자식에게 기울이는 부모의 육친적사랑, 남녀간의 불같은 사랑, 벗들사이의 깨끗한 사랑…
그처럼 사랑의 세계는 아름답고 뜨거우며 또한 강하다.
그러나 세상에는 그 사랑을 다 합쳐도 비길수 없이 우주처럼 무한대하고 마를줄 모르는 대하의 흐름처럼 멈출줄 모르며 태양의 열도처럼 뜨거운 사랑이 있으니 그것은 인민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치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인민사랑이다.
자신보다 더 귀중히 여기시는 인민들에게 하루빨리 유족하고 행복한 생활을 마련해주시려 불면불휴의 정력적인 현지지도의 낮과 밤을 끝없이 이어가신 경애하는 장군님.
한겨울에 야전복차림으로 북방의 찬바람을 맞으시며 공장길을 걸으시고 무더위와 폭우가 기승을 부리는 삼복철에 포전길을 걸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모습을 신문과 TV를 통해 뵈올 때마다 누구나 안타까운 마음으로 장군님께서 부디 찬눈비 더는 맞지 마시고 험한 길 더는 걷지 마시라고 절절히 아뢰였다.
하지만 그이의 안녕을 바라는 인민의 마음이 더해갈수록 인민에게 바치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과 헌신은 더욱 뜨거워만졌다.
주체95(2006)년 2월 어느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만사람의 심장을 울리는 뜻깊은 말씀을 하시였다.
《인민군군인들과 인민들은 내가 순간의 휴식도 없이 세월의 눈비를 다 맞으며 현지시찰과 현지지도의 길을 걷고있다고 하면서 나의 건강에 대하여 걱정하고있는데 나는 그렇게 하고있는것을 더없는 보람으로, 긍지로 여기고있습니다. 우리 조국의 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한몸을 깡그리 다 바쳐 일하려는것이 나의 드팀없는 각오이며 의지입니다. 나는 앞으로도 우리 조국과 민족의 존엄을 지키고 우리 인민들을 잘살게 하기 위하여 인민군군부대들에 대한 시찰과 인민경제 여러 부문에 대한 현지지도를 계속하려고 합니다.》
인민에 대한 이렇듯 열렬한 사랑을 지니시였기에 장군님께서는 모든 사색과 활동의 중심에 언제나 인민을 놓으시였고 인민의 행복에 모든것을 복종시키시며 애민헌신의 자욱을 새기고 또 새겨가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2006년 3월초 삼지연군에 대한 현지지도의 나날을 보내고계시였다.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첫날에 삼지연군읍에 새로 건설한 삼지연학생소년궁전과 삼지연군 문화회관, 백두산지구 체육촌을 돌아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 다음날에는 베개봉국수집을 찾으시였다.
조선식건물의 우아한 자태를 자랑하는 베개봉국수집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2002년 10월 삼지연읍지구를 돌아보실 때 《베개봉각》이라고 부르려던 국수집이름을 조선식이면서도 친절감이 나게 《베개봉국수집》으로 하도록 해주신 뜻깊은 사연이 깃든 봉사기지였다.
일군들로부터 2백여석이나 되는 국수집의 좌석이며 봉사능력에 대한 해설을 들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먼저 1층의 봉사시설들을 돌아보시였다.
목재를 가지고 부각과 음각으로 봇나무를 형상한 1층 1호실의 벽면들을 보시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보기 좋다고, 장식을 아주 잘하였다고 치하해주시고 벽에 붙인 특색있는 풍경화를 놓고서도 높은 평가의 말씀을 주시였다.
눈길을 돌리시여 시퍼런 색갈에 얼른거리는 창문유리를 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손님들이 식사를 하면서 창문을 통하여 바깥풍경을 내다보아야 하겠는데 유리가 얼른거려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베개봉국수집의 창문유리를 좋은 유리로 바꿀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이윽고 1층에 있는 주방칸까지 돌아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2층에 있는 대중식사실에 들리시였을 때였다.
대중식사실에는 손님들이 기호에 따라 식사를 하게 한다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여러개의 칸막이들이 있었다.
그것을 보신 장군님께서는 대중식사실의 성격에 맞지 않는데 대해 지적하시면서 다른 나라에서는 돈을 가지고 1등실, 2등실로 구별한다, 돈밖에 모르는 자본주의나라에서는 그렇게 한다고 하여도 인민을 제일로 내세우는 사회주의 우리 나라에서는 절대로 그렇게 하여서는 안된다고 절절하게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말씀에서는 인민을 차별하려는 사소한 요소도 절대로 허용할수 없으며 특권행세를 부릴수 있는 온상자체를 아예 없애버려야 한다는 준절한 깨우침이 울리고있었다.
자책에 잠겨 고개를 숙이고있는 일군들에게 장군님께서는 다정하신 음성으로 잘못은 고치면 된다고 하시며 국수집 지배인에게 국수를 언제 먹을수 있는가고, 국수를 해놓고 청하면 그때에 다시 오겠다고 말씀하시여 장내의 분위기를 일변시키시였다.
지배인이 《경애하는 장군님, 언제든 꼭 다시 오십시오. 그러면 국수를 잘 말아올리겠습니다.》라고 정중히 말씀드리였다.
그러자 장군님께서는 그때 식사할 때에는 나도 대중식사실에서 하겠다고 하시며 환히 웃으시였다. 동행하던 일군들속에서 웃음파도가 일어났고 분위기도 순식간에 밝아졌다.
하지만 일군들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대중식사실의 칸막이를 두고 왜 그처럼 심각히 대하셨는지 그 깊은 뜻을 다음날 삼수발전소건설장에서 더욱 뼈저리게 절감하게 되였다.
그날 발전소건설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에 대하여 일일이 가르치심을 주시던 장군님께서는 언제우에서 건설현장을 굽어보시다가 문득 어느 한 곳을 가리키시며 일군들에게 물으시였다.
《저 구역도 물에 다 잠깁니까?》
다 잠기게 된다는 한 일군의 대답을 들으신 그이께서는 철거세대가 얼마나 되며 철거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는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물으시였다.
도의 책임일군이 그 정형에 대해 솔직히 말씀드리였다.
그 일군으로부터 건설속도에 맞추다보니 아직 다른 곳에 집을 다 지어주지 못한채 철거시키고있다는것을 아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금시 안색을 흐리시였다.
한동안 아무 말씀도 없이 살림집들이 있는쪽을 바라보시던 장군님께서는 이윽고 일군들에게 침수구역에서 살림집들을 철거시키는 문제가 중요하다고, 삼수발전소건설과 관련하여 보고한 많은 문건들을 보았는데 침수구역철거문제는 반영되지 않았기에 이 문제를 료해하기 위하여 자신께서 왔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순간 일군들은 격해지는 마음을 걷잡을수 없었다.
련 이틀동안 삼지연군에 대한 쉬임없는 현지지도로 겹쌓인 피로를 푸실수 있게 오늘만은 좀 쉬시였으면 하는 일군들의 간청도 물리치시고 아침일찍 삼수발전소건설장을 찾으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심중에 이렇듯 큰 심려가 실려있는줄은 몰랐던것이다.
마음속으로 자신들을 심각히 반성하고있는 일군들을 이윽히 바라보시던 장군님께서는 한결 눅잦히신 음성으로 침수구역주민들에게 말이나 해주는것으로 굼때여서는 절대로 안된다, 이 문제는 정치사업식으로만 할것이 아니라 실천적으로 해결할 문제이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을 이으시였다.
《침수구역에 있는 주민들을 문화주택을 다 지어주고 철거시키되 그전에 쓰고살던 집보다 더 잘 지어주어야 합니다.
…
사회주의의 기초는 인민입니다. 인민에게 의거하고 그들의 지지를 받아야만 사회주의를 지켜나갈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침수구역에서 철거하는 주민들에게 살림집을 지어주는 문제를 절대로 허술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잠시 동안을 두시였던 장군님께서는 철거세대가 4 900세대가 넘는다는데 주민이 한세대에 3명씩만 보아도 만명이 훨씬 넘는다고, 수만kW의 전기보다 1만 5 000명의 인민들이 더 귀중하다는것을 명심하여야 하겠다고 그루박아 말씀하시였다.
《우리 당은 인민을 위한 당이고 우리 당의 정치는 철두철미 인민을 위한 정치인것만큼 모든 사업을 인민의 리익에 맞게 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혁명과 건설을 수령님께서 의도하시고 바라시던대로 해나갈수 있습니다. 철거하는 주민들의 살림집문제를 잘 해결해주지 못하면 당의 군중로선을 철저히 관철할수 없습니다.》
그이의 절절한 말씀을 새겨안으며 일군들은 철거문제를 단순하게 처리하려고 했던 자신들의 처사가 얼마나 경솔한 행동이였는가를 뼈아프게 자책하게 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발전소건설과 침수구역주민 살림집문제, 이 두 전선을 다 틀어쥐고 내밀어야 하겠다고, 여기에서도 기본은 철거세대주민들의 살림집건설이라고 다시금 간곡히 당부하시였다.
눈보라 사나운 천리길을 헤쳐오시여 침수구역주민들의 철거문제를 당의 군중로선을 철저히 관철하는가 못하는가 하는 중요한 문제로, 미룰수 없는 중대사로 여기도록 자기들을 일깨워주시고 온갖 은정어린 조치를 다 취해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
그이를 우러르며 일군들모두는 장군님이시야말로 인민을 하늘처럼 여기시고 그들과 생사고락을 같이하시는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심을 다시금 절감하였다.
이 가슴뜨거운 사연을 전해들은 침수구역주민들은 뜨거운 격정에 오열을 터뜨리였다.
그 이후 침수구역주민들의 생활에 대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남다른 관심은 더욱더 깊어만졌다.
한달후인 뜻깊은 4월의 봄명절을 맞으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모든 철거세대들에 천연색TV수상기와 그릇세트, 이불, 담요, 옷감을 비롯한 수많은 사랑의 선물을 보내주시는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한날한시에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사랑의 선물을 가슴한가득 받아안은 철거세대주민들의 심정은 말로는 다 표현할수 없는 감사의 격정으로 끓어번지였다.
두메산골의 평범한 철거세대주민들을 위하시는 장군님의 다심한 사랑은 그들이 받아안은 이불에도 눈물겹게 어리여있었다.
아직은 새집들이도 하지 못한 침수구역주민들에게 갖가지 희한한 생활용품들이 한가득 전해질 때 그속에는 명세에 적혀있는 이불이 없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좀 있으면 여름인데 이불은 두었다가 새집들이를 할 때 전달하는것이 좋겠다고 하시였기때문이였다.
그후 장군님의 말씀대로 살림집건설에 착수하여 불이 번쩍 나게 다그친 결과 보기만 해도 번뜻한 살림집들이 일떠서고 주민들이 입사하는 경사가 났다.
이전에 살던 집과는 대비도 안되는 궁궐같은 새 집을 그것도 철거된 때로부터 불과 몇달 되지 않아 받게 된 꿈만 같은 현실에 너무 기뻐 행복의 웃음소리 꺼질줄 모르는 세대들에 선기가 날 때를 기다려 덞어질세라 정히 보관되였던 사랑의 새 이불이 전달되였다.
한없이 자애로운 친어버이사랑이 어린 폭신한 새 이불을 쓰다듬으며 철거세대인민들은 한없는 고마움에 쏟아지는 눈물을 걷잡을수 없었다.
진정 북방의 자그마한 국수집의 칸막이를 놓고서도 인민을 먼저 생각하시고 일군들이 허술하게 생각했던 발전소건설장의 철거세대문제를 사회주의의 기초와 관련한 중대문제로 여기시며 주실수 있는 모든것을 다 베풀어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인민에 대한 열화의 사랑.
만물에 생명을 주고 자래우고 열매맺게 하는 태양의 빛과 열보다 더 따사롭고 열렬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인민사랑의 빛과 열을 가슴 한가득 받아안으며 천만군민은 보답의 한마음안고 선군혁명총진군길을 다그쳐나갔다.
현대화의 목적을 똑바로 인식하여야 한다
한가지 기쁨을 주고나면 열, 백가지 기쁨을 더 주고싶고 어려울 때일수록 자식의 얼굴에 그늘이 질세라 더욱더 마음을 쓰는것이 어머니의 지극한 정성이다.
인민을 위하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사랑이 바로 그러하였다.
자식들의 행복을 락으로 삼는 인정많은 어머니처럼 이 나라 천만자식들의 행복을 가꾸어주시려 어느 하루 변변히 쉬지도 못하신채 헌신에 헌신을 얹어가신 경애하는 장군님.
나는 현지지도로 날과 달을 보내기때문에 어느 하루도 편안하게 잠을 자보지 못하였습니다, 내가 잠을 자는것은 현지지도의 길의 자동차안에서 잠간 눈을 붙이는것뿐입니다, 나에게는 자동차안에서 조금 자는것이 제일 단잠이고 쉬는 때이며 그것이 휴식의 전부입니다, 나는 이것을 고생으로 생각한적이 없으며 오히려 여기에서 커다란 긍지와 보람을 느끼군 합니다. …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런 뜨거운 마음을 안으시고 해와 달을 이어가시며 불면불휴의 현지지도의 길을 걷고 또 걸으시였다.
강성국가건설에서 일대 비약을 일으켜나가는 전면적공세의 해인 2006년에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인민생활향상에서 전환을 일으키기 위해 자강도와 평안북도, 함경남도와 황해북도를 비롯하여 인민경제의 여러 부문 사업에 대한 정력적인 현지지도를 진행하시였다.
그 나날 인민들에게 하나라도 더 좋게, 더 많이 차례지도록 마음쓰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다심하신 손길은 그이께서 이르신 곳마다에 따사로운 해발마냥 뜨겁게 어리였다.
주체95(2006)년 2월초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강계정신의 위력을 더 높이 발휘하여 혁명적대고조의 열풍을 일으켜나가고있는 강계시를 또다시 찾으시였다.
장군님께서 강계시에 오셨던 날은 흰눈갈기를 말아올리며 찬바람이 이는 여느때없이 추운 날이였다.
그러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오늘 추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자강도에는 추운 때 와보아야 제맛이 난다고 하시면서 현지지도의 길에 오르시였다.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제일먼저 들리신 곳은 현대적인 설비들을 그쯘하게 차려놓고 쓸모있고 맵시있는 가구들을 많이 생산하고있는 강계목재가공공장이였다.
공장일군들의 인사를 차례로 받아주신 장군님께서는 잠시 공장구내를 둘러보시고나서 지금까지 사업이 바빠 와보지 못하고있다가 오늘에야 왔다고 하시며 현장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현지지도사적이 깃든 작업장에서는 로동자들이 한창 이불장이며 옷장, 밥상을 비롯한 여러가지 가구들을 조립하고있었다.
로동자들의 작업모습을 주의깊게 보아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완성하여 세워놓은 가구들앞에 이르시였다.
조립식양복장을 비롯하여 전시된 가구들은 척 보기에도 쓰기 편리하고 그 형식도 새롭고 현대적이였다.
조립식양복장앞으로 다가가시여 손수 가구문을 열고 그안을 유심히 살펴보신 장군님께서는 가구를 아주 잘 만들었다고 치하하시고 주런이 세워놓은 가구들을 흐뭇한 시선으로 둘러보시다가 어느 한 가구를 가리키며 저건 무슨 가구인가고 물으시였다.
한 일군이 자강도에 흔한 엄나무로 합판을 만들어 짠 이불장이라고 설명해드리였다.
엄나무로 말하면 가구에 색을 먹이던 지난 시기와는 달리 무색도장으로 가공하여 나무의 결이 그대로 나타나게 하는 가구제품의 추세에 비추어볼 때 리상적인 재료로 소문이 나있었다. 그런것으로 하여 많은 나라들에서 이 나무를 고급가구를 제작하는데 리용하고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여느 가구들과는 무늬가 눈에 뜨이게 다른 그 이불장앞으로 다가가시더니 문겉면을 쓸어보시고 양복장에 새겨진 무늬를 자세히 살펴보시다가는 다시 몇걸음 뒤로 물러나보기도 하시였다.
그러시던 장군님께서는 동행한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이불장이 자강도에 흔한 엄나무로 합판을 생산하여 만든 가구라는데 나무문양이 그대로 나타나게 만든것이 좋습니다. 아주 잘 만들었습니다. … 가구가 정말 좋습니다.》
만족한 미소를 그득히 담으시며 장군님께서는 가구의 가격에 대해 알아보시고나서 이렇게 멋있는 가구들을 많이 만들어 우리 인민들에게 팔아주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좋은것을 하나 보시여도 제일먼저 인민들을 생각하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풍모앞에 일군들의 가슴은 감동으로 젖어들었다.
인민들에게 보다 질좋고 쓸모있는것을 안겨주시려 마음쓰신 장군님의 세심한 사랑의 손길은 이에만 그치지 않았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책장앞에 이르시였을 때였다.
책장의 이모저모를 살펴보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책은 큰 책도 있고 작은 책도 있는데 이렇게 칸을 일률적으로 꼭같이 만들어놓은것은 잘못되였다고 그 부족점을 순간에 포착하시고 지적하시였다.
뜻밖의 지적이였다. 사실말이지 그 책장으로 말하면 잘 만들었다고 자부하면서 은근히 자랑하고싶던 책장이였던것이다.
일군들이 당혹감에 잠겨있는데 장군님께서는 이번에는 책장문을 가리키시며 또다시 말씀하시였다.
《책장의 문을 유리로 만든것은 다시 다는것이 좋겠습니다. 문을 돌쩌귀식으로 달아놓으니 책장 량옆에는 책을 넣었다 꺼냈다 하기 불편할것 같습니다.》
책장의 미를 돋군다고 하면서 문을 유리로 해달다보니 접철을 쓰지 못하고 문을 문설주에 고정하는 방법인 돌쩌귀식으로 한것으로 하여 생기는 결함을 대번에 포착하고 하시는 말씀이였다.
순수 외형 일면만을 내세운 자신들의 실책이 확연해지는것을 어쩔수가 없어 얼굴을 붉히는 일군들에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가구는 설계를 쓸모있게 하여 잘 만들어야 한다고 따뜻이 일깨워주시였다.
참으로 그이의 가르치심 하나하나에는 한점의 가구를 만들어도 날로 높아가는 인민들의 기호와 요구에 맞게 편리하면서도 쓸모있게, 독특하면서도 고급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높은 요구가 담겨져있었다.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오랜 시간 공장을 돌아보시면서 모든 가구제품을 시대의 요구와 우리 인민들의 기호에 맞게 잘 만드는데서 나서는 여러가지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책장의 문 하나를 놓고서도 그것을 리용할 인민들의 편의부터 생각하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세심한 사랑을 가슴뜨겁게 절감하면서 이 공장 일군들과 로동계급은 질좋고 쓰기 편리한 목재가구제품들을 더 많이 만들어 인민들에게 보내줄 결의를 굳게 다지였다.
인민들에게 더 좋은것을 하나라도 더 많이 안겨주시려 마음쓰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인민사랑의 화폭은 련이어 찾으셨던 강계고려약가공공장에서도 뜨겁게 펼쳐졌다.
-30℃를 오르내리는 강추위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자기들의 일터를 찾아오신 경애하는 장군님을 맞이하게 된 공장일군들의 가슴은 멀고 험한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는 그이께 다소나마 기쁨을 드릴수 있지 않을가 하는 기대감에 부풀어있었다.
사실 이 공장에서는 몇해전에 모든 고려약을 인민들이 먹기 편리하고 약효를 더 높이기 위해 엑스화할데 대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높이 받들고 그동안 초행길을 헤쳐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진공농축법에 의한 엑스생산을 공업화하고 10여가지의 고려약엑스제품을 비롯하여 수십여종의 고려약제품들을 생산하고있었던것이다.
하지만 경애하는 장군님을 모시고 생산현장을 동행하는 과정에 공장일군들은 그이께 기쁨을 드리자면 아직도 멀었다는것을 절실히 깨닫게 되였다.
제품진렬실에 들려 전시된 고려약제품들을 보아주시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고려약생산부문에서 엑스생산을 공업화한것은 이 공장이 처음일것이라고 치하도 해주시고 하나의 제품을 생산해도 질과 위생성을 철저히 보장하여 인민들의 건강증진에 더 잘 이바지되도록 할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도 주시였다.
일군들은 은근히 기대감을 가지고 실험실이며 약품포장실, 알약생산실에 이어 경애하는 장군님을 엑스생산현장으로 안내해드리였다.
다른 생산공정도 그러하지만 이 농축장은 설계에서 제작에 이르기까지 도내 로동계급의 힘으로 만들어낸 우리 식의 엑스생산공정이 꾸려져있어 공장의 더없는 자랑으로 되고있었다.
그때 현장에서는 가시오갈피엑스생산이 한창 진행되고있었다.
공장일군의 해설을 주의깊게 들으며 생산되여나오는 가시오갈피엑스를 주의깊게 보아주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엑스의 순도를 높일데 대하여 가르쳐주시며 이렇게 말씀을 이으시였다.
《이 공장의 진공농축기로 생산되는 엑스도 질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고는 하지만 제품이 밖으로 나오는것은 위생조건에 맞지 않습니다. 포장까지 밀페된 상태에서 하여야 합니다.》
인민들의 건강을 담보해야 할 약품생산에서는 자그마한 빈틈도 있어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높은 요구가 담긴 그이의 말씀을 듣는 순간 공장일군들은 약품의 위생성에 대해서는 생각지도 못하고 그저 현재상태에서 고려약엑스생산의 공업화를 실현한것만도 큰 전진이라고 자부했던 자신들의 생각이 얼마나 짧은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약초선별실에 가시여서도 누구나 범상히 여기는 약초에 묻은 흙먼지에 대해서까지 무심히 대하지 않으시고 약초는 캘 때부터 위생성을 철저히 보장해야 한다고, 약초에 먼지가 많으면 위생성을 보장할수 없다고, 의약품을 생산하는 공장은 최상의 위생성이 보장되여야 한다고 간곡히 이르시였다.
진정 인민들에게 더 좋고 훌륭한것을 더 많이 안겨주시려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친어버이사랑은 스칠수 있는 빈틈도, 자그마한 허점도 용인하지 않는것이였다.
하기에 강계시민들모두는 북방의 추위도 무릅쓰시고 현지지도의 길에 오르시여 자기들의 행복을 위해 로고를 바쳐가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을 우러러 이제 더는 우리 강계시 인민들의 생활에 대하여 마음쓰지 말아달라고, 장군님의 뜨거운 사랑속에 이제는 우리들이 락원의 행군을 하고있다고 심장의 목소리로 감사의 인사를 드리였다.
하지만 인민을 위한 일에서 만족을 모르신분이 경애하는 장군님이시였다.
2006년 9월초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평안북도의 여러 단위들에 대한 현지지도의 나날에 계시던 때에 있은 일이다.
룡천군 신암협동농장을 돌아보시며 농민들의 가슴마다에 알곡증산의 열기를 북돋아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어 인민생활에 절실히 필요한 신발생산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있는 신의주신발공장을 찾으시였다.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심중하신 어조로 일군들에게 지금 인민생활에서 걸린 문제의 하나가 신발이라고, 신발을 많이 생산하여 상점들에서 사람들이 요구하는대로 팔아주어야 하겠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있다고, 신발공장들에서 생산을 한다고는 하지만 인민들에게 공급되는것이 얼마 없다고 안타까이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인민들에게 신발이 넉넉히 차례지지 못하는것을 얼마나 가슴아파하시는가 하는것을 일군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뼈저리게 느낄수 있었다.
그때 공장일군들은 몇해어간에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을 높이 발휘하여 자체의 힘으로 꾸려놓은 현대적인 사출직장과 구두 및 운동신직장을 돌아보시면 장군님께서 기뻐하실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사출직장에서 생산하는 장화는 맵시있고 질도 괜찮아 사람들속에서 다른 나라의것보다 훨씬 좋다고 평판이 자자한데다가 하나의 흐름선으로 되여있는 구두 및 운동신생산설비는 발전된 최신식설비라고 말할수 있었기때문이였다.
생산설비들과 제품들을 비롯하여 공장의 현대화정형을 구체적으로 료해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렇다할 평가를 주지 않으시였다.
그이께 크게 기쁨을 드릴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공장의 일군들은 착잡한 마음을 금할수 없었다.
다행히도 로동자들을 위한 종합적인 봉사기지로 꾸려진 은정원에 들리시였을 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이곳 봉사자들이 《공장종업원들의 날》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좋은 일을 많이 하여 로동자들이 무척 좋아한다는것을 아시고는 금시 기뻐하시면서 그들의 수고를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어느덧 시간이 어지간히 흐르자 공장의 책임일군은 설비현대화에 대한 그이의 가르치심을 받지 못한 다급한 심정에서 앞으로 설비현대화를 3년동안에 마저 끝내려고 한다는데 대해 서둘러 말씀올렸다.
그이께서는 그가 몹시 조급해한다는것을 헤아리시고 조용히 웃으시며 이렇게 말씀을 이으시였다.
《신의주신발공장에서 신발생산설비를 최신식으로 현대화하겠다고 하는데 설비를 현대화하는 그자체가 기본인것은 아닙니다신발생산설비를 현대화하는것은 필요하며 결심하고 달라붙으면 얼마든지 할수 있습니다. 문제는 일군들이 신발생산설비를 현대화하는 목적을 똑바로 인식하는것입니다. 신발생산설비를 현대화하는 목적은 어디까지나 인민들에게 더 좋은 신발이 더 많이 차례지도록 하자는데 있습니다. 신발생산설비의 현대화를 이런 관점과 립장에서 실현하여야 합니다.》
그제서야 공장책임일군을 비롯한 동행한 일군들모두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어찌하여 새로운 설비들이 가득찬 번듯한 생산현장에서보다 그리 잘 꾸렸다고는 볼수 없는 은정원에 가시여 더 기뻐하셨는지를 똑똑히 깨달을수가 있었다.
언제나 인민들부터 생각하고 그들에게 좋은 신발을 더 많이 보내주자는 립장에서 설비현대화를 해야 한다는 그이의 웅심깊은 의도가 뚜렷이 안겨올수록 일군들은 현대화의 목적을 바로세우지 못했던 자신들을 심각히 돌이켜보지 않을수 없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번쩍거리는 설비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그것이 실지 인민생활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것이라면 반가와하지 않으시였고 보기에 현란하지는 못해도 철저히 인민들에게 복무하는것이라면 만시름을 놓으시며 제일로 기뻐하시였다.
이런분이시였기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다음날 구성닭공장을 찾으시여서는 생산물공급정형을 알아보시고 생산물을 시민들에게 먼저 공급하여야 한다고, 구성닭공장은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는 공장이 되여야 한다고 간곡히 당부하시였고 공장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가지고 국수집을 잘 운영하면 인민들이 좋아할것이라고 일군들의 가슴에 인민에 대한 복무정신을 깊이 새겨주시였다.
정녕 그이께 있어서 흘러가는 시간의 순간순간은 인민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헌신으로 수놓아지는 숭고한 복무의 련속이였다.
이민위천을 생의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사색과 실천의 첫자리에 언제나 인민을 놓으시고 인민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바쳐가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인민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은 이 세상 모든 어머니들의 사랑을 다 합쳐도 비길수 없는 위대한 어머니의 가장 열렬하고 뜨거운 사랑이였고 헌신이였다.
새집들이한 농장마을을 찾으시여
주체95(2006)년 1월말, 새 세기에 들어와 처음으로 평양에서 전국농업대회가 진행되였다.
대회에서는 열띤 토론들이 있었는데 토론자들은 한결같이 경애하는 장군님의 의도대로 알곡생산목표를 기어이 점령하며 전반적인 농업생산을 획기적으로 늘일 불타는 결의들을 다지였다.
그리고 전체 농업근로자들의 한결같은 마음을 담아 경애하는 장군님께 드리는 맹세문을 채택하였다.
전체 대회참가자들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선군혁명령도를 높이 받들어 경제건설의 주공전선을 담당한 농업근로자로서의 책임과 본분을 다함으로써 농업생산에서 일대 비약을 이룩할 드높은 열의에 넘쳐있었다.
대회참가자들에 대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각별한 믿음과 사랑은 그들모두의 심장마다에서 애국의 더운 피가 더욱 끓게 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대회참가자들의 참관일정과 예술공연관람문제, 숙식조건과 렬차수송, 뻐스리용문제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보살펴주시였으며 대회참가자모두에게 사랑의 선물도 보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두터운 신임과 은정에 고무된 농업대회참가자들을 비롯한 전국의 농업근로자들은 그이께 다진 맹세대로 농업생산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켜나갈 일념을 안고 알곡증산투쟁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섰다.
다시한번 농사에 총동원, 총집중할데 대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호소를 받들고 나라의 방방곡곡 전야마다에서는 온 한해 알곡증산을 위한 영농전투의 불길이 꺼질줄 모르고 세차게 타번지였다.
농업근로자들이 포전마다에 뿌려가는 애국의 구슬땀은 그대로 훌륭한 결실을 안아왔는데 그해 대홍단군에서는 보기 드문 감자소출을 냈는가 하면 평안북도와 황해남북도의 여러 농장들에서는 지원로력을 받지 않고 자체의 힘으로 농사를 알심있게 지어 알곡생산계획을 넘쳐 수행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전국의 농업근로자들이 나라의 쌀독을 책임진 주인의 본분을 다해갈수록 그들을 위하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친어버이사랑은 더욱 깊어만졌다.
농민들의 심정을 구석구석 그 누구보다 깊이 헤아리시며 그들에게 더 좋은 생활조건을 마련해주시려 마음쓰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다심한 사랑이 낳은 하많은 이야기중에는 이런 이야기도 있었다.
주체95(2006)년 11월 중순 어느날, 함경남도안의 여러 부문사업을 현지에서 지도하시던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함주군에서 건설한 농민휴양소를 돌아보시였다.
휴양소에 들어서시여 전경을 바라보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남의 식을 본따 휴양각의 지붕을 뾰족하게 시공한 부족점을 지적하시고나서 농민휴양소 3호각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2층으로 되여있는 휴양각들에는 한층에 2개 호실씩 배치되여있었다.
복도 오른쪽 1호실에 들어서신 장군님께서는 이불과 침대를 비롯한 가구와 비품들, 방들의 전기난방화상태에 대해 료해하시다가 문득 창문밖으로 시선을 보내시였다.
창문으로는 마당에 꾸려놓은 배구장이 환하게 내다보였다.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맑은 유리를 넣으니 방안의 사람들이 옷을 벗고있는것이 밖에서 다 보이겠다고 웃으며 말씀하시였다.
순간 일군들은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제딴에는 휴양소를 특색있게 꾸린다고 하면서 품을 들이느라 하였지만 실지 여기서 생활할 휴양생들의 견지에서 깐깐하게 일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러한 그들의 심정을 헤아리신듯 다정한 음성으로 창문에 맑은 유리보다도 곰보유리나 흐린유리, 브론즈유리 같은것을 넣으면 들여다보이지 않아서 좋을것이라고 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다음으로 들리신 곳은 오락장이였다.
탁구장을 거쳐 윷놀이장으로 들어서시며 장군님께서는 가벼운 웃음을 지으시는것이였다.
원래 당구판이였던것을 개조해 설치한 윷놀이판이 눈에 띄였기때문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그것을 모르실리 없었다.
사실인즉 오락장을 꾸릴 때 이왕 품을 들이던바에 당구장까지 꾸려놓으면 일정하게 품위가 있어보일것 같은 생각에 탁구장과 함께 당구장을 꾸려놓았었다. 그후 인민들속에서 윷놀이와 장기를 비롯한 민속놀이를 장려할데 대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아안고 윷놀이장으로 고쳐 바로잡았던것이다.
이러한 사연을 보고받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웃음섞인 어조로 농민들속에 당구칠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고 물으시고나서 말씀하시였다.
《농민휴양생들은 당구를 치게 하기보다는 윷놀이나 꼬니 같은것을 많이 하게 하는것이 좋습니다.》
그러시고는 윷놀이 같은것은 한번에 한 20명씩 빙 둘러서서 와와 하면서 하는데 참 재미있다고, 윷놀이, 장기, 꼬니 같은 민속놀이를 많이 하게 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놀이방법까지 차근차근 설명해주시였다.
한 일군이 장군님께 장기판과 꼬니판들을 밖에 만들어 놓았다고 말씀드렸다.
장군님께서는 조용히 미소를 머금으시고 물론 밖에 만들어놓는것도 좋지만 비가 오는 날에 할수 있게 실내에 만들어놓는것도 좋다고 말씀하시였다.
일군들은 또다시 머리를 숙이지 않을수 없었다.
휴양기간에는 비가 오는 날도 있을수 있고 또 말그대로 농민들을 위한 휴양소인것만큼 농번기가 아닌 겨울철에 주로 운영하게 되여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농민들의 휴양생활에 대해 깊은 생각이 없이 밖에다 장기판과 꼬니판을 꾸려놓고 멋이나 부렸으니 큰 충격이 아닐수 없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휴양소 식당안을 돌아보실 때에도 벽면에 걸려있는 상식판 하나에도 깊은 주의를 돌리시며 콩나물 기르는 방법이나 김치 담그는 방법 같은것도 소개하여 사람들이 휴양하러 왔다가 한가지 상식이라도 정확히 배워가게 하도록 따뜻이 일깨워주시였다.
그날 휴양소의 구석구석 자그마한것에 이르기까지 그것을 리용할 농민들의 편리부터 먼저 생각하시며 마음쓰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을 우러르며 일군들의 생각은 깊어만 갔다.
사실 휴양소가 완공된 후 농민휴양생들은 휴양소생활에 대단한 만족을 느끼면서 너나없이 기뻐하였다. 그래서 휴양생들이 생활에서 불편해하는것이 없는가에 대해서는 알아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자신들이였던것이다.
하지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당사자인 농민들조차 생각하지 못했던 사소한 생활상불편에 이르기까지 헤아려주시니 그끝도 깊이도 알수 없는 그이의 무한한 사랑의 세계를 언제 가면 다 알수 있겠는가.
누구도 따를수 없는 그이의 열렬한 인민사랑이야말로 자신들이 본받고 구현해나가야 할 귀감임을 뜨겁게 새겨안으며 일군들은 인민의 참된 복무자로 일해나갈 결심을 다시금 새로이 다지였다.
경제강국건설의 주공전선의 담당자들인 농업근로자들을 아끼고 위하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다심한 사랑의 이야기는 황해북도 사리원시 미곡협동농장에서도 전설같이 꽃피여났다.
2006년 5월 미곡협동농장은 흥겨운 노래소리, 웃음소리로 들썩하였다. 한날한시에 미곡리사람들이 새로 지은 수백동의 살림집들로 이사를 가는 큰 경사가 났던것이다.
온 마을이 들썩하게 농악소리 높이 울리며 새집들이 하는 흥겨움에 한껏 벅차오른 미곡리사람들의 가슴가슴은 마을에 경애하는 장군님을 모시고싶은 간절한 소원으로 설레였다.
드디여 그 소원이 풀리는 날이 왔다.
2006년 12월초 어느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새집들이를 한 마을을 돌아보시기 위해 미곡협동농장을 찾아주시였던것이다.
환한 미소를 담으시고 차에서 내리시는 장군님의 색바랜 야전복에는 초겨울의 찬 기운이 그대로 스며있었다.
일요일의 휴식도 잊으시고 자기들의 농장을 찾아주신 그이를 뵙는 순간 농장일군들은 눈굽이 젖어와 감사의 인사도 변변히 올리지 못하였다.
먼저 이 농장에 세워진 위대한 수령님의 현지지도사적비에 대한 해설을 들으시고나서 혁명사적관을 돌아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한참동안 마을전경을 바라보시다가 미곡협동농장에서 여러가지 형태의 살림집을 새로 많이 지었다고 하시며 만족한 표정을 지으시였다.
마을에 건설한 새 집은 세가지 형태가 있었는데 하나는 2층으로 된 다락식살림집이였고 다음은 은정리식살림집이라고 부르는 3칸짜리 조선식살림집이였다. 그리고 다른 한 형태로서는 방앞에 널직하게 외랑을 만들어 거기서 식사도 하고 유희오락도 할수 있게 설계한 살림집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다락식으로 건설한 한 농장원의 살림집부터 들리시였다.
오늘이면 오실가 래일이면 오실가 기다리고기다리던 경애하는 장군님을 뜻밖에도 자기 집에 모시게 된 기쁨으로 하여 이 집 부부와 아이들은 어쩔줄 몰라하였다.
그들이 올리는 인사를 받으시며 살림집에 들어서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집주인이 제대군관이라는것을 아시고 몹시 반가와하시며 언제 결혼했는가, 군사복무는 어디서했는가, 아이들은 공부를 잘하는가 일일이 물으시고나서 그가 군사복무를 할 때 장군님을 모시고 찍은 기념사진까지 보아주시였다.
새집들이한 자식의 집에 찾아오신듯 허물없이 살림방을 둘러보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물으시였다.
《이 살림집의 결함이 무엇이요?》
자기가 살고있는 살림집을 더없이 만족하게만 생각하고있던 집주인은 한참 머뭇거리다가 이렇게 말씀올리였다.
《위대한 장군님, 집이 정말 좋습니다. 살림방이 4칸이고 2중벽으로 되여있어 겨울에 외풍이 없고 춥지 않습니다.》
그러자 장군님께서는 《살림집을 옛날 지주집 부럽지 않게 잘 지었습니다.》라고 하시며 환한 미소를 지으시였다.
이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방안에 놓여있는 TV수상기를 보시고는 전기가 잘 오는가도 물으시고 부엌에 가시여서는 알른알른 윤기도는 부엌세간들이 그쯘하게 정돈되여있는 정갈한 모습에서 이 집 주부의 알뜰한 일솜씨도 가늠하시며 못내 만족해하시였다.
밖에 나오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살림집 여기저기를 살펴보시다가 금년도 장마철에 비는 새지 않았는가고 다정히 물으시였다.
집주인이 비가 한방울도 새지 않았다고 대답올리자 장군님께서는 비가 새는지 안 새는지는 래년 장마까지 겪어보아야 알수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친어버이의 심정그대로 자기들의 살림살이를 위해주시는 장군님앞에 이 집 부부는 뜨거운 눈물을 삼키고야말았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뜨락을 나서시려 하자 집주인은 그이앞으로 나서며 《장군님, 장군님께서 우리 집을 찾아주시였는데 장군님을 모시고 사진을 찍고싶은것이 저희들의 최대의 소원입니다.》라고 어려움도 잊고 간절히 청을 드리였다.
그러자 장군님께서는 우리모두 가족과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시며 아담한 문화주택을 배경으로 대를 두고 길이 전할 영광의 기념사진을 찍어주시였다.
그의 집을 나서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살림집옆에 꾸려놓은 민속놀이장도 돌아보시고 미곡협동농장에서 쉬는 날에 윷놀이도 하고 장기와 꼬니도 둘수 있게 민속놀이장을 잘 꾸려놓은데 대하여 대단히 만족해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다음으로 들리신 곳은 은정리식 살림집이였다.
감격에 겨워 정중히 올리는 집주인들의 인사를 받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집구경을 하러 왔다고 허물없이 말씀하시면서 아래방과 웃방을 하나하나 주의깊게 돌아보시였다.
TV를 정상적으로 보는가 알아도 보시고 부엌에 가시여서는 메탄가스콘로의 불길도 가늠하시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친부모의 정에도 비길수 없는 다심한 사랑으로 살림살이형편을 구석구석에 이르기까지 세심히 보살펴주시였다.
이어 집밖으로 나오시여 수십마리의 살찐 토끼들이 꽉 들어찬 큼직하면서도 아담한 토끼우리도 보아주신 장군님께서는 문밖을 나서시다가 문득 담벽에 걸어놓은 문패에서 시선을 멈추시였다.
거기에는 집주인의 이름이 멋들어지게 씌여있었다.
그것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은정으로 남들이 부러워할 집을 쓰고산다는 이 마을사람들의 자랑과 긍지가 한껏 어린 문패였다.
한동안 생각깊은 시선으로 문패를 바라보시던 장군님께서는 지금은 문패에 집주인의 이름만 써놓았는데 이렇게 하면 다른 지방에서 온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는 만날 사람을 찾기 곤난할것이라고 혼자말씀처럼 외우시는것이였다.
그러시고는 일군들에게 문패만 보고도 집주소까지 정확히 알수 있게 되여야 하겠는데 지금은 그렇게 되여있지 못한데 대해 말씀하시고나서 사람들이 편지를 보낼 때 봉투에 받을 사람주소를 정확히 써야 그 편지가 제대로 갈수 있는것처럼 문패도 잘 만들어 달아야 사람들이 자기가 찾는 집을 정확히 찾아갈수 있다고, 앞으로는 문패에 몇인민반 누구라고 써넣어야 한다고 하시였다.
자그마한 문패에도 그토록 관심을 기울이시는 장군님의 세심한 사랑앞에서 집주인도 동행하던 일군들도 무한히 감복되였다.
농민들을 현대적인 살림집에서 세상에 부럼없이 잘살게 해주시려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의 손길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문패와 관련한 사랑넘친 말씀을 주시고 밖으로 나오시여 규모있게 늘어선 살림집들을 흐뭇한 시선으로 바라보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살림집옆으로 낸 차길을 가리키시며 여기서는 차길을 잘 뽑았다고, 이렇게 살림집과 살림집사이에 차길을 내니 얼마나 좋은가고 하시는것이였다.
일군들모두가 살림집을 지으면서 2동건너마다에 낸 평범한 차길을 보고 장군님께서 왜 그리도 기뻐하시는지 영문을 알수 없어 의아해하였다.
그러는 그들에게 장군님께서는 자식들을 세간 내보낼 때 자동차나 뜨락또르에 이사짐을 싣고 나를 경우까지 헤아리시며 농촌살림집을 지으면서 집들사이에 차길을 내는것이 중요하다고, 앞으로 농촌들에서 살림집을 한두채 짓지 못하고 부침땅이 좀더 들더라도 살림집들사이에 차길을 내주도록 하여야 한다고 이르시였다.
일군들모두가 불시에 눈시울이 젖어들었다.
도로를 낸 당사자들도 그저 살림집들사이에 도로를 내면 주변이 훤히 트이고 집들이 규모있게 보일수 있다는 건축학적요구를 담아 그렇게 시공한것이지 농민들의 생활상편의를 보장하여주는 문제로까지는 생각도 못했던것이였다.
그런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 문제를 농민들의 생활상편의를 보장해주는가 못해주는가 하는 관점문제로, 인민성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로 보신것이였다.
모든것을 인민들의 생활에 최대로 편리하게! 이것이 경애하는 장군님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잡고있은 인민사랑의 뜻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바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형식의 살림집까지 다 보아주시였다.
그러시고는 떠나시기에 앞서 천지개벽한 미곡리의 전경을 한눈에 바라볼수 있는 곳에 가시여 끝간데 없이 펼쳐진 미곡벌과 한폭의 그림과도 같은 살림집지구를 다시금 부감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오늘 미곡협동농장 혁명사적관과 살림집을 돌아보니 대단히 만족하다고, 정말 일을 많이 하였다고 하시면서 믿음을 담아 말씀하시였다.
《앞으로 미곡협동농장이 농사도 잘하고 살림집을 꾸리는데서도 전국의 앞장에 서기 바랍니다.》
한겨울에 오시여 미곡리사람들의 가슴마다에 남기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봄빛같이 따사로운 사랑, 친어버이의 다심한 정은 그대로 이곳 농민들만이 아닌 온 나라 전체 농업근로자들을 알곡증산투쟁에로 고무추동하는 거대한 힘의 원천으로 되였다.
축산기지들마다에 새겨진 사랑의 자욱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자주 찾아가신 대상들가운데는 인민들의 먹는 문제해결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축산기지들도 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95(2006)년, 이 한해에만도 기승을 부리는 2월의 맵짠 추위를 헤치시며 자강도의 흥주닭공장을 찾으시였고 초가을의 뙤약볕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평안북도의 구성닭공장을 돌아보시였다. 그리고 마가을의 찬바람을 맞으시며 전해에 이어 또다시 함경남도의 광포오리공장을 비롯하여 온 나라의 축산기지들을 찾고찾으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개건된 흥주닭공장을 찾아주신것은 2006년 2월초 어느날이였다.
강계닭공장에 이어 자강도 강계땅에 현대적으로 개건된 흥주닭공장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의 손길에 이끌려 은을 내고있는 훌륭한 가금기지였다.
이미 새 세기초에 흥주닭공장을 개건할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고 공장의 현대화를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몇해전에는 공사중에 있는 이 공장을 찾아오시여 자기의 모습을 완전히 일신한 닭공장건물들을 보시고는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든다고, 21세기의 요구에 맞게 설계도 잘하고 건설도 질적으로 잘했다고 높이 치하해주시고 닭공장설비조립에 필요한 조치들을 취해주시였었다.
그후 흥주닭공장은 먹이가공으로부터 닭관리와 고기가공, 닭알수집 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산공정이 최신식설비로 갖추어지고 그 면모가 몰라보게 전변되였다.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공장에 도착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마중나온 일군들에게 그새 잘 있었는가고 허물없이 물으시고나서 흥주닭공장을 현대화하였다고 하기에 보려고 왔다고 하시며 전경도들에 대한 설명을 들어보자고 이르시였다.
공장의 한 일군이 나서서 전경도에 대한 해설을 시작하였다.
새 세기에 들어와 현대적으로 꾸려진 흥주닭공장은 여느 닭공장들과 달리 상자식으로 된 알낳이호동을 내놓고는 어버이수령님께서 보내주신 흥주닭을 키우는 닭호동이며 여름철에 밖에서 닭을 기를수 있는 야외닭호동들, 종금닭호동, 비육닭호동들이 다 평사식으로 되여있었다.
이에 대한 해설을 들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강계닭공장과 흥주닭공장 생산량에 대하여 알아보시고 그만하면 괜찮다고 만족해하시면서 알낳이닭호동으로 들어서시였다.
호동안에 설치된 알수집기에서는 마치 경애하는 장군님께 보여드릴 날을 무척 기다렸던듯 닭알들이 줄줄이 흘러나오고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안색은 기쁨으로 해빛처럼 밝아졌다.
《알수집기에서 닭알들이 폭포처럼 쏟아져나오는데 대단합니다. 정말 보기 좋습니다.》
이때 한 일군이 닭알 한알을 그이께 가져다 드리였는데 그 알은 무게가 무려 100g이나 되였다.
닭알을 보아주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큰소리로 자강도에 오면 이런것을 볼수 있어 올 재미가 있다고 자신의 진정을 터놓으시였다.
이어 다음대상인 알낳이실에 들어서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문득 이 공장에는 닭병이 들어오지 않았는가고 물으시였다.
들어오지 않았다는 공장일군의 대답을 들으신 장군님께서는 아직 닭병이 생기지 않았으면 위생방역사업을 잘하고있는것 같다고 하시고는 말씀을 끊으셨다가 표정을 바꾸며 우리도 원래 여기에 들어와서는 안된다고, 어서 나가자고 하시면서 급히 걸음을 돌리시였다.
공장일군이 멋있게 꾸려진 알낳이실을 보여드리지 못하는것이 안타까와서 그이께 일없다고 황급히 말씀을 드리자 장군님께서는 닭공장에서는 위생방역사업을 잘하는데 선차적인 주의를 돌려야 한다고 하시며 굳이 밀막으시였다.
공장일군들이 아쉬운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있는데 호동안의 닭우리에서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한마리의 닭이 빨간 변두를 쳐들고 다가오는것이였다.
그 모습을 띠여보신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의 마음을 풀어주시려는듯 《닭 1마리가 나와 돌아다니는데 닭도 자유주의를 하는것 같습니다.》라고 하시며 순간에 웃음바다를 만들어놓으시였다.
모두들 즐겁게 웃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알낳이실에서 되돌아나오신 그이의 걸음에 실린 인민사랑의 무게를 뿌듯이 절감하고있었다.
알수집실로 다시 나오시여 공장에서 키우는 닭품종이며 종자알보장문제, 먹이보장문제에 대해 료해하시고 필요한 대책도 세워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어 다른 호동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그 닭호동에서 키우고있는 흥주닭은 인민들에게 더 많은 고기와 알을 먹이기 위해 그토록 마음쓰신 어버이수령님의 사랑이 깃들어있는 귀중한 품종이였다.
1960년에 어느 한 나라의 대통령은 어버이수령님을 열렬히 흠모하는 자신의 심정을 담아 좋은 품종의 닭알을 그이께 삼가 선물로 올리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 닭알전부를 깨워 이 공장에 보내주시였을뿐만아니라 그후 닭의 이름까지 지어주시였다.
공장에서는 어버이수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불멸의 업적을 길이 전하기 위해 흥주닭을 지난 40여년동안 기념닭품종으로 보존하면서 지금까지 길러오고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 닭공장에서 흥주닭품종을 계속 보존하고있는것은 아주 좋은 일이라고 하시면서 우리 나라 가금업을 발전시키는데서 이룩하신 수령님의 령도업적을 빛내이기 위하여서라도 흥주닭품종을 잘 보존하여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얼마후 마당에 나오시여 다시금 공장구내를 만족하게 바라보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만하면 괜찮다고 하시며 물으시였다.
《조업식을 언제 했소?》
공장일군이 준공검사는 몇년전에 받았지만 종업원들모두가 경애하는 장군님을 공장에 모시기 전에는 할수 없다고 하여 아직 조업식을 하지 못한데 대해 말씀드리였다.
공장종업원들의 절절한 진정이 가슴에 뜨겁게 미쳐오시는지 얼마간 말씀없이 계시던 장군님께서는 공장일군들과 종업원들이 내가 올 날을 기다리며 조업식을 미루었던것만큼 오늘이 조업식날로 되는셈이라고 나직이 말씀하시였다.
공장일군들은 장군님의 그 말씀에 너무도 기뻐서 《우리는 오늘을 장군님 모시고 진행한 조업식날로 하겠습니다.》라고 감사의 뜻을 아뢰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공장정문에 세워놓은 화강석에 공장이름을 새겨넣지 못하고있다는것을 아시고는 대뜸 흥주라는 말이 좋으니 흥주닭공장이라고 새겨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공장일군들이 그이께 자기들은 닭고기와 알을 가져가는 시민들에게서 고맙다는 인사를 받군 하는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받으셔야 할 인사를 받자니 송구스럽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것은 동무들이 일을 잘하고있기때문이라고 하시면서 《동무들은 강계시민들이 인사를 하는것을 앞으로 일을 더 잘하기 바란다는 부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라고 의미깊은 말씀을 하시였다.
일군들이 인사에 담긴 인민의 부탁을 무게있게, 정직하고 성실하게 받아들이고 말보다는 행동으로 이신작칙하는 인민의 심부름군이 되여야 한다는 깊은 의미가 담긴 말씀이였다.
공장을 다 돌아보시고나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오늘 대단히 만족하다고, 자강도에서 소문없이 일을 잘하고있다고, 그래서 자강도에 오면 언제나 기분이 좋다는 믿음어린 말씀을 남기시고 공장을 떠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공장을 떠나신 후 종란공급대책을 비롯하여 고기와 알생산을 높은 수준에서 정상화할수 있는 대책적인 문제들을 다 풀어주시였다.
장군님의 현지지도를 계기로 하여 흥주닭공장의 현대화수준은 더욱 높아지고 고기생산량도 날을 따라 더욱 늘어나게 되였다.
강계땅 그 어디서나 닭고기와 닭알을 한가득 사안고 환해진 얼굴로 상점문을 나서는 녀인들의 모습이 례사로운 풍경으로 펼쳐지게 되였다.
온 나라의 이르는 곳마다에서도 축산기지들을 더 많이 꾸려놓고 인민들에게 고기공급을 정상화하기 위한 투쟁이 힘차게 벌어지고있었다.
축산기지들이 은을 내여 인민들이 그 덕을 본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누구보다도 기뻐하시며 천리라도 찾아가시여 더 높이 비약하도록 힘과 용기를 안겨주시였다.
2006년 11월초 어느날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강원도 법동군의 해발 1 000여m나 되는 비암산기슭에 자리잡은 원산목장을 찾아주시였다.
함흥시 청년염소목장을 현지지도하시면서 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말씀을 높이 받들고 강원도인민들은 한사람같이 떨쳐나서 불과 몇해사이에 비암골계곡을 훌륭한 축산기지로 전변시켜놓았다.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목장을 구체적으로 돌아보시면서 가장 높이 평가하신것은 모든것을 실리가 나게 하려고 애쓴 목장일군들과 종업원들의 이악한 노력이였다.
인공풀판과 자연풀판을 합리적으로 리용할데 대한 그이의 가르치심을 받들고 이 목장에서는 먹이원천을 따라가며 염소우리들을 배치하는 분산사육방법을 받아들이였다. 결과 젖생산을 늘이는데서뿐아니라 염소사양관리에서 중요한 문제의 하나인 방역사업에서도 실질적인 성과를 거둘수 있게 되였다.
특히 이 목장에서는 전국적으로 토끼를 대대적으로 기를데 대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의도를 관철하기 위해 통이 크게 일판을 벌렸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세계적추세에 맞게 우리 나라에서도 경제적수익성이 높은 토끼기르기를 장려할데 대한 구상을 펼치시고 그 본보기를 인민군대에서 창조하시였다.
삼복의 무더위가 한창이던 그해 8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인민군부대의 어느 한 토끼목장을 돌아보시면서 토끼의 생리적특성에 맞게 굴형식으로 개조한 토끼우리를 보시고 대단히 만족해하시며 그것을 온 나라에 일반화할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이 소식에 접한 목장의 일군들과 종업원들은 대담하게 결심하고 상자식으로 되여있던 토끼사를 굴형식으로 훌륭하게 개조해놓았을뿐아니라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과학기술에 의거하여 알파먹이와 균사료를 비롯하여 먹이문제를 원만히 해결해놓았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곳 목장종업원들을 비롯한 강원도인민들의 땀과 지혜와 열정이 깃든 창조물들을 하나하나 보아주시면서 못내 만족해하시였으며 그들이 거둔 성과에 대해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클로렐라배양장에 가시였을 때였다.
클로렐라는 1㎏당 ㎈가 소고기 18㎏에 들어있는 ㎈와 맞먹는것으로 하여 세계적으로 놓고볼 때 클로렐라로 사람들의 생활과 건강에 필요한 여러가지 식료품을 만드는것과 함께 축산업에도 도입하기 위한 대대적인 연구가 벌어지고있었다.
세계적인 발전추세를 깊이 파악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여러 목장과 양어장들을 현지지도하시면서 먹이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품을 들여 축산과 양어기지들을 건설한 보람이 없게 된다고, 이제는 생풀이나 알곡먹이만 가지고서는 안된다고 하시면서 먹이첨가제문제를 풀데 대하여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이곳 일군들은 목장건설을 내밀면서도 먹이문제를 과학기술적으로 풀기 위한 사업을 선차적인 과업으로 내세우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무어주신 강력한 연구기술집단의 방조밑에 이악하게 노력한 결과 마침내 클로렐라를 배양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그 배양공정을 과학기술적으로 완비한 결과 지난 시기에 비해 배양기일을 훨씬 줄여 클로렐라를 더 많이 배양할수 있게 해놓았다.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 생산공정들과 클로렐라제품들을 보아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정말 강원도가 많은 일을 했다고, 클로렐라를 배양하기 위한 사업을 강원도가 완성했다고, 알파먹이와 균처리한 가공먹이를 생산하여 집짐승먹이를 해결하고있는것이 이 목장에서 제일 좋은 점이라고 치하에 치하를 거듭하시였다.
마가을의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오랜 시간 목장의 여러곳을 돌아보시면서 착유기를 비롯한 현대적인 젖가공설비도 일식으로 갖추어주도록 하시고 앞으로 목장을 계속 활성화하는데서 나서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건설로력도 얼마 없는 강원도에서 원산목장을 아주 잘 건설하였다고, 다른 도들에 새로 건설한 목장들을 볼 때마다 강원도가 목장같은것을 건설하는데서는 다른 도들에 짝지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하였는데 원산목장을 손색이 없이 훌륭하게 건설해놓았다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염소를 비롯한 집짐승들을 과학기술적으로 기를수 있는 시설들이 충분히 갖추어져있는 원산목장은 실리주의원칙을 구현하여 전망성있게 건설한 자랑할만 한 창조물입니다.》
인민들에게 고기와 알, 젖제품이 더 많이 차례지게 하는데 이바지할 또 하나의 축산기지가 훌륭하게 일떠선것이 기쁘시여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목장전경을 오래도록 바라보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날 원산목장관리운영에 필요한 물문제해결을 위해 목장주변에 있는 분광산의 운영을 중지하도록 하는 대담한 조치까지 취해주시였다.
원산목장안의 전체 일군들과 종업원들은 이미 이룩한 성과에 자만하지 말고 목장을 꾸리던 그때의 그 기세, 그 기백으로 집짐승사양관리에 박차를 가하여 다음해부터는 더 많은 젖제품과 고기를 꽝꽝 생산해내야 하겠다고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시고 목장을 떠나 또다시 현지지도의 길에 오르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을 오래도록 바래워드리며 보답의 맹세를 마음속으로 다지였다.
심심산골의 목장에까지 찾아오시여 인민생활향상을 위해 온갖 심혈을 다 바쳐가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렇듯 뜨겁고도 지극한 헌신이 있어 인민들의 생활에서는 날을 따라 행복의 웃음소리 높아갔고 세상이 보란듯이 잘살 사회주의강성국가의 풍요한 래일은 하루하루 앞당겨졌다.
값높은 칭호-진주보석
애국은 조국과 인민에 대한 헌신이고 투신이다.
조국과 인민의 부름앞에서 말로써가 아니라 한몸을 서슴없이 내대는것이 충실한 애국자의 자세인것이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선군시대의 참된 애국자는 내 나라, 내 조국을 더없이 사랑하고 사회주의조국을 부강하게 하려는 애국의 한마음을 안고 공민적의무를 다하는 사람이라고 하시며 그런 참된 애국자들을 제일로 사랑하시고 시대의 전형으로 내세워주시였다.
그들가운데는 진주보석이라는 값높은 칭호와 더불어 선군시대에 새로운 인간전형으로 태여난 함주군의 평범한 건설자들도 있었다.
함주군 흥봉리에서 산골짜기를 따라 얼마간 올라가느라면 금진강흥봉청년발전소가 자리잡고있다.
몇년전까지만 하여도 중중첩첩 막아선 험한 산발들과 물소리, 새소리만 들려오는 깊은 골짜기에 불과하였던 이곳에 수천㎾능력의 아치식 사석언제발전소가 들어앉아 이전의 모습은 찾아볼수 없이 전변되였다.
깊은 산골짜기를 통채로 가로막고 솟아오른 언제와 푸른 물 출렁이는 대인공호수, 기묘한 바위와 넓게 퍼진 소나무사이로 보이는 산뜻하게 꾸려진 발전기실, 산천의 정서에 어울리게 일떠선 아담한 문화주택들과 숲속에 들어 앉은 농민휴양소…
주체95(2006)년 11월 어느날 함경남도의 인민경제 여러 부문에 대한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던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천지개벽한 이곳을 찾아주시였다.
먼저 발전소전경도앞에서 발전소의 전반적인 실태와 전망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들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함주군에서 소문도 없이 발전소를 실속있게 건설하였다고 만족을 표시하시였다.
이윽하여 발전기실에 들리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전기주파수상태도 세심히 알아보시고 질좋은 전력을 정상적으로 생산하고있는것을 아시고는 대단하다고, 이 발전소는 기술적으로 완비된 손색이 없는 발전소이라고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발전소주변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전망대에 이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주변경치를 부감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발전소주변경치가 참 좋다고, 이곳으로 오면서 주변경치가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전망대에 올라와서 보니 더욱 장관이라고 하시며 환하게 웃으시였다.
그토록 만족해하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모습을 우러르는 일군들의 생각은 너나없이 발전소를 일떠세우던 그 잊지 못할 나날에로 흘러갔다.
돌이켜보면 발전소건설을 발기하신분도 그리고 군자체의 힘으로 끝끝내 발전소건설을 완공할수 있도록 걸음걸음 힘을 주시며 이끌어주신분도 다름아닌 경애하는 장군님이시였다.
2000년 11월 금진강발전소언제공사장을 돌아보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금진강상류에도 언제공사를 하여야 한다고 하시며 그 지역이 함주군에 속해있는것만큼 발전소를 함주군사람들의 힘으로 건설할데 대한 대담한 목표를 제시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가르치심대로 금진강상류에 언제를 막게 되면 새로운 인공호수가 형성되는데 그 물을 리용하여 전기생산은 물론 수천정보의 땅을 적실수 있는 관개용수와 함주읍지구의 음료수문제를 완전히 풀수 있었다.
이 소식을 전달받고 온 함주군이 떨쳐일어났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우리를 믿으신다, 금진강에 발전소를 멋들어지게 세우고 우리 함주군사람들의 힘으로 했다고 장군님께 기쁨의 보고를 드리자!
이 한가지 일념밑에 돌격대가 무어지고 50년이래 제일 추운 강추위가 몰아치는 엄혹한 환경속에서도 《적기가》의 노래높이 울리며 착공의 첫삽을 박았다.
온갖 난관을 뚫고 공사가 벌어지고있던 2002년 10월 어느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선군령도의 그 바쁘신 가운데서도 언제건설정형을 알아보시기 위하여 몸소 공사장을 찾아주시였다.
보기만 해도 어수선하기 그지없는 공사장이였다.
하지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전반적인 공사실태를 구체적으로 료해하시고나서 일을 통이 크게 벌렸다고 건설자들의 수고부터 헤아려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오늘 흥봉언제건설장에 와보니 함주군에서도 통이 크게 일판을 벌렸습니다. 옛날 같으면 이런 큰 공사를 군자체로 한다는것은 상상도 하지 못하였을것입니다. 확실히 통이 큽니다.》
이제 시작에 불과한 자그마한 성과였지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어떻게 해서나 자체의 힘으로 발전소를 일떠세우려는 이곳 군내 인민들의 결사의 각오와 담대한 배짱을 값높이 여겨주시며 힘과 용기를 주시는것이였다.
그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명안으로 공사를 앞당길수 있는 방도도 가르쳐주시고 굴착기와 대형화물자동차들을 보내주시는 은정어린 조치도 취해주시였다. 그리고 앞으로 2년안으로 언제공사를 완공하겠다는 결의를 적극 지지해주시면서 공사를 힘있게 벌려 흥봉언제를 기념비적창조물로 되게 할데 대한 크나큰 믿음을 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그날의 현지지도는 건설자들의 심장마다에 산도 떠옮기고 바다도 메울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언제공사장에서는 총진격의 북소리가 드세차게 울렸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믿음이 그대로 힘이 되여 낮에는 언제를 쌓고 밤에는 농민휴양소도 꾸리고 금진강의 돌들을 하나하나 다듬어서 양어못을 만들고 염소우리를 지었는가하면 도로와 산주변에 꽃나무들을 정성껏 심어가꾸며 애국의 더운 땀을 뿌려온 건설자들이였다.
참으로 흥봉청년발전소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안겨주신 절대적인 믿음과 사랑, 그에 보답하려는 함주군인민들의 결사의 각오와 의지가 낳은, 한마디로 사상의 힘으로 일떠선 기념비적창조물이였다.
전변의 그 나날을 가슴뜨겁게 돌이켜보던 군의 한 책임일군이 경애하는 장군님께 이것이 다 장군님의 덕분이라고 감사의 인사를 드리였다.
그러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시더니 금진강흥봉청년발전소를 훌륭하게 건설할수 있은것은 나의 덕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우리 당의 선군사상이 위대하고 우리 식 사회주의가 위력하기때문이라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금진강흥봉청년발전소를 일떠세운것을 보면 사상의 위력이 얼마나 큰가 하는것을 잘 알수 있습니다. 사상의 힘은 핵무기보다 더 위력합니다.》
발전소건설에 기울이신 자신의 로고보다도 먼저 건설자들의 위훈에 대하여 높은 평가를 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을 우러르는 일군들의 가슴은 말할수 없는 격정으로 뜨거워났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날 아름답게 변모된 금진강반을 오래도록 걸으시면서 애국적위훈을 세운 건설자들의 고결한 정신세계를 값높이 평가해주시였다.
높이 솟아오른 언제로부터 호수가와 새 마을에 이르기까지 위훈의 창조물들마다에서 류달리 하얗게 부각되여 보이는 무수한 돌들을 보시면서 그 많은 돌들을 날라오려니 얼마나 고생을 많이 하였겠는가, 먹을것도 부족하고 입을것도 부족한 속에서 이것을 하느라고 얼마나 수고가 많았겠는가고 목갈린 음성으로 말씀하시며 그들의 투쟁모습을 그려보신 경애하는 장군님.
돌격대원으로 발전소건설에 참가하였던 제대군인부부의 집에 들리시여서는 벽에 걸려있는 한장의 사진을 보시고 이 사진을 보시오, 돌격대제복을 입고 상을 받지 않았는가고, 우리 시대 청년들의 리상이 얼마나 고결하고 혁명적인가고 치하해주시고 새 생활의 기쁨이 넘치는 아담한 집뜨락에서 사진도 찍어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이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몸소 손으로 하나하나 꼽아가시며 국토관리를 잘하여 전기덕을 보니 좋고, 먹는물문제를 푸니 좋고, 관개용수를 해결하니 좋고, 홍수를 방지하니 좋고 이렇게 하면 일거사득인데 경치 또한 얼마나 좋은가고 하시며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발전소건설에 바쳐진 군내 인민들의 고귀한 애국의 땀을 값높이 여기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금진강흥봉청년발전소를 건설한 함주군사람들에 대하여 크게 보도하여 전국이 그들을 알고 그들의 일본새를 따라배우도록 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모두가 그이의 치하에 감격해하는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우렁우렁한 음성으로 하시는 말씀이 일군들의 가슴을 세차게 울리였다.
《금진강흥봉청년발전소를 일떠세운 건설자들은 진주보석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진주보석.
그이의 이 말씀은 발전소건설자들의 영웅적위훈에 대한 가장 값높은 평가였고 그 누구도 쉽게 지닐수 없는 최대의 믿음과 영광이였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깊은 바다의 진주조개에서 애써 채취한 진주보석을 보석중의 제일보석으로 일러왔다.
바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비록 외모는 평범하고 소박하지만 불굴의 의지를 지니고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힘을 발휘하여 인적드물던 골안에 선군시대의 또 하나의 빛나는 창조물을 보란듯이 일떠세운 이곳 건설자들을 진귀하고 아름다운것의 대명사로 불리워온 진주보석처럼 아름답고 귀중한 보배들로 여기시였던것이다.
하다면 너무도 평범하고 소박한 이들이 어떻게 되여 조국을 위해 모든것을 다 바치며 자신들의 삶을 진주보석과 같이 아름답게 빛내일수 있었던가.
그것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한없이 은혜로운 사랑의 품, 더 없는 믿음의 해발이 있었기때문이였다.
허기지고 힘에 지쳐 쓰러지면서도 마치와 정대를 놓치 못한 애어린 돌격대원의 작은 가슴에도, 터지려는 제방을 구원하기 위해 사품치는 물속으로 한몸을 서슴없이 던진 돌격대원들의 결사의 모습에도, 돌격대제복을 입고 일생에 한번밖에 없는 결혼식상을 받은 청춘남녀의 행복한 얼굴에도 고이 간직된것은 다름아닌 장군님께서 함주군사람들에게 안겨주신 사랑과 믿음이였으며 그 사랑과 믿음에 기어이 보답하려는 깨끗한 마음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그 믿음과 사랑이 있었기에 금진강의 진주보석들이 태여날수 있었다.
일군들은 장군님을 우러르며 심장의 목소리로 아뢰였다.
(저희들은 오로지 장군님만을 믿고 따랐을뿐입니다.)
격정에 목메여 가슴들먹이는 일군들을 지켜보시던 장군님께서는 금진강흥봉청년발전소건설에 동원된 건설자들에게 천연색TV를 주자고, 그들모두를 평양에 데려다 견학도 시키고 예술공연도 보여주며 식사도 잘 시키고 특별대우를 해주자고 하시면서 금진강흥봉청년발전소를 훌륭하게 건설한 함주군안의 전체 인민들에게 나의 감사를 전달하여야 하겠다고 은정어린 말씀을 하시였다.
주실수 있는 사랑, 베푸실수 있는 은정을 다 주시고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을 잘한 사람들과 기념사진을 찍자고, 기념사진은 전망대를 배경으로 해서 찍을것이 아니라 함주군사람들이 땀흘려 건설한 언제와 호수를 배경으로 하여 찍는것이 좋겠다고, 그래야 그 사진이 더욱 의의있게 되여 후세에 길이 전해질수 있다고 하시며 일군들과 나란히 영광의 기념사진을 찍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러한 사랑과 믿음속에서 금진강의 진주보석뿐만아니라 온 나라의 곳곳에서 수천수만의 진주보석들이 태여났다.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찾아볼수 없는 사랑과 믿음이 낳은 진주보석, 경애하는 장군님만을 믿고 걸음걸음 그이를 따를 때 행복의 만리가 온다는것을 삶의 진리로 새겨안고 순간순간을 애국의 구슬땀으로 빛내이는 선군시대의 진주보석들이 발산하는 창조와 위훈의 그 눈부신 빛발과 더불어 강성국가의 려명은 광휘롭게 밝아오는것이였다.
《아버지장군님!-》
미래를 사랑할줄 모르는 사람은 미래를 위한 투쟁에 자기 한몸을 다 바칠수 없다.
《미래를 사랑하라!》
후대들을 위하여 헌신하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한없이 숭고한 후대관과 위대한 인간적풍모가 이 금언속에 뜨겁게 어리여있다.
돌이켜보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형언할수 없는 고난과 시련의 언덕을 철의 의지로 넘고 헤치시여 강성대국의 밝은 려명을 안아오실수 있은것도 다 미래의 주인공들인 후대들에게 휘황한 래일을 기어이 안겨주시려는 그 열화의 사랑과 열정으로 심장을 불태우시였기때문이 아니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조국번영의 앞날을 위해 끝없이 이어가신 애국헌신의 장정, 그것은 누구보다도 미래를 사랑하시며 미래의 주인공들을 위해 천만금도 아끼지 않으시고 모든것을 다 마련해주신 위대한 어버이의 하늘같은 후대사랑의 장정이기도 하였다.
나라의 과학기술인재양성의 원종장인 김책공업종합대학에 훌륭히 일떠선 전자도서관이 바로 그것을 뚜렷이 실증해주고있다.
새해공동사설을 받아안고 온 나라가 더 높이 비약할 결의에 충만되여있던 주체95(2006)년 1월초 어느날이였다.
이날 대동강기슭에 자리잡은 김책공업종합대학의 교정에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대학에 새로 일떠선 전자도서관과 체육관을 돌아보시려 나오신다는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삽시에 온 교내가 크나큰 기쁨과 감격의 파도로 설레이였다.
그처럼 간절히 기다리며 그리워마지 않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새해 현지지도의 첫 자욱을 자기 대학의 교정에 찍으신다니 솟구치는 격정과 흥분은 너무도 당연한것이였다.
그이께서 타신 승용차가 전자도서관앞마당에 도착하였다.
차에서 내리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마중 나온 일군들과 차례로 인사를 나누시고나서 한동안 마당에서 전자도서관의 전경을 바라보시였다.
《새로 건설한 전자도서관이 멋있습니다. 첫눈에도 마음에 들어보입니다.》
그이의 말씀대로 전자도서관은 척 보기만 해도 현대적인 건축미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있었다.
만족해하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 대학의 책임일군이 도서관의 마크에 대한 설명을 해드리였다.
마크에는 전자도서관이라는 의미에서 책과 CD판을 형상하고 그 중심에 《2001. 9. 19》라는 날자를 월계수로 받쳐주고있었다.
마크에 새겨진 《2001. 9. 19》라는 날자에 전자도서관과 더불어 시작된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의 력사가 그대로 집약되여있었다.
5년전 이날 김책공업종합대학을 찾아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전경사판을 보아주시다가 어려운 사정으로 하여 중단된 도서관건설실태를 료해하게 되시였다. 안색을 흐리시고 잠시 생각에 잠겨계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 대학의 도서관은 전자도서관으로 건설하여야 한다고, 전자도서관을 자신께서 지어주겠다고 하시면서 설계도 다시하고 멋있게 지어 아시아에서 제일 훌륭한 전자도서관으로 건설하자고 말씀하시였다.
모두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사실 대학의 일군들이 바란것은 일반도서관이라도 하루빨리 완공하여 과학교육사업에 이바지하였으면 하는것이였고 그때까지만 하여도 전자도서관이란 말만 들었지 그 표상조차 가지고있지 못했던 그들이였다.
더우기 콤퓨터와 콤퓨터망을 통하여 전자매체로 된 자료들을 입력, 수집, 처리, 보존하여 리용자들에게 시공간적제한성이 없이 정보봉사를 진행하는 전자도서관을 꾸리자면 엄청난 자금이 필요하였다.
건설은 제쳐놓고라도 정보통신망과 정보봉사체계의 구축 등에 들어가는 투자량이 너무 약차한것으로 하여 일부 발전된 나라들에서도 종전의 도서관에 정보설비들을 얼마간 들여놓는 식으로 전자도서관을 꾸리는것이 보통이였다.
그런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건설로부터 설비에 이르기까지 일식으로 아시아에서 제일 훌륭한 전자도서관으로 꾸릴것을 구상하고계시였던것이다.
푼전도 아껴써야 하는 어려운 때에 이런 엄청난 첨단도서관을 건설할데 대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발기는 하나의 대용단이였다.
대학을 다녀가신 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전자도서관건설사업을 포치하시고 건설력량은 물론 여기에 드는 자재와 자금, 설비와 장서문제에 이르기까지 제기되는 모든 문제를 일일이 다 풀어주시였다. 그리고 도서관의 형성안은 몇몇 설계가들에게만 맡기지 말고 권위있는 설계가들을 다 망라시키도록 가르쳐주시고 설계가 완성되였을 때에는 국가의 주요간부들과 해당 부문 일군들이 다 나가보고 합평하여 좋은 안을 골라 제기하도록 하시였다.
이뿐만이 아니였다. 이 대학일군들이 여러차례나 세계에서 유명한 전자도서관들을 돌아보며 견문도 넓히고 관리운영에서 나서는 과학기술적문제들을 배워오도록 은정어린 조치도 취해주시였다.
강성국가의 미래를 떠메고나갈 주인공들을 위해 그 무엇도 아끼지 않으시려는 절세위인의 이렇듯 뜨거운 사랑에 떠받들려 마침내 전자도서관이 훌륭히 일떠서게 되였던것이다.
마크에 대한 설명을 마지막까지 다 들어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마크가 특색이 있다고, 전자도서관의 성격에도 맞게 잘 형상하였다고 치하하시고 현관문을 향하여 걸음을 옮기시였다.
도서관의 1층에 설치된 대형플라즈마표시판앞에 이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도서관의 총부지면적이며 전자열람실들, 그 기능과 관리운영방법, 독자수용능력과 장서능력에 대한 구체적인 해설을 들으시였다.
대학의 일군으로부터 봉사기자료기지의 기억용량은 얼마이며 자료전송속도는 어떤가에 대해 료해하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다매체자료는 얼마나 되는가고 물으시였다.
아직 얼마 넣지 못했다는 대답을 들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 도서관이 정보산업발전에 이바지하려면 자료기지에 전자도서자료뿐아니라 동화상자료들도 많이 입력시켜야 한다고 그 구체적인 실례까지 들어주시였다. 그러시면서 앞으로 공장, 기업소들에 대한 자료를 다매체편집물로 만들어가지고 이 전자도서관 자료기지에 넣어 누구나 여기에 오면 그것을 동화상으로 볼수 있게 하여야 한다고, 그래야 이 도서관이 특색있는 전자도서관으로 될수 있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을 이으시였다.
《김책공업종합대학이 공과대학으로서의 자기의 특성을 살리고 위력을 나타내자면 교수교양사업에서 동화상자료를 많이 리용하여야 합니다.》
계속하여 장군님께서는 도서관에 동화상으로 된 세계적인 과학기술자료들을 전적으로 보장해주며 필요하다면 다른 나라에 가서 해당한 자료들을 직접 촬영해다 보장해주어야 한다고, 과학영화도 새로 나온것은 물론 전후복구건설시기부터 지금까지 력사적으로 내려오면서 만든것을 다 보장해주어야 한다고 하나하나 가르쳐주시며 2층에 있는 봉사기실로 향하시였다.
봉사기들에 대한 설명을 들으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자료보관은 어떻게 하고있는가에 대해 물으시였다.
누구도 선뜻 대답을 드릴수가 없었다.
사실 대학에서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자료들을 확보하고 입력시키겠는가 하는데만 신경을 썼지 그 보관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지 못하고있었다.
순간에 도서관실정을 헤아려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봉사기자료기지의 자료를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하시며 그 필요성과 방도에 이르기까지 전문가들이상으로 하나하나 일깨워주시였다.
그이의 명철한 가르치심을 받으면서 대학의 교원들은 물론 동행한 일군들모두가 교육자들도 무색케 할 콤퓨터전문지식을 소유하고계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비범한 예지에 감탄을 금치 못해하면서 나라의 과학기술발전을 위하여, 후대교육사업을 위하여 그이께서 얼마나 마음쓰시는가 하는것을 다시금 절감하게 되였다.
이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전자열람실과 원격강의실, 선물도서열람실들 그리고 3층에 꾸려진 외국문열람홀이며 1층에 있는 국제과학기술교류실까지 구체적으로 돌아보시였다.
오랜 시간에 걸쳐 도서관을 돌아보신 그이께서는 뭔가 부족하신듯 자리를 뜰념을 하지 않으시다가 일군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전자도서관을 마저 완비하여야 하겠습니다. 오늘 돌아보니 도서관을 정보산업시대의 요구에 맞게 전망성이 있게 더 잘 꾸려야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시고는 봉사기실과 열람실들에 기술장비들을 더 보강하고 내부망체계를 더욱 완성하며 봉사기자료기지의 기억용량도 더 늘일데 대한 문제로부터 전자도서관으로서의 성격에 맞게 인터네트를 리용할수 있도록 해줄데 대한 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도서관을 완비하는데서 나서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참으로 김책공업종합대학 도서관을 새 세기 정보산업시대의 요구에 맞는 높은 수준의 전자도서관으로 완비해주시려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마음에는 끝이 없었다.
어느덧 사위는 어둑어둑해지고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대학의 일군들에게 이제는 도서관을 잘 리용하여 강성대국건설에서 한몫 단단히 할수 있는 쓸모있는 과학인재들을 꽝꽝 키워내야 하겠다고 하시며 오늘 전자도서관을 돌아보니 기분이 정말 좋다고, 새해의 첫 현지지도로 이 대학에 나왔는데 그렇게 하기 잘하였다고 못내 만족해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내가 새해 정초에 김책공업종합대학에 먼저 나온것은 바로 강성대국을 건설해나가는데서 이 대학이 차지하는 위치와 역할이 중요하기때문이며 대학에서 쓸모있는 과학기술인재들을 더 많이 키워낼데 대하여 강조하고싶어서입니다.》
그로부터 얼마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외국방문의 길에서 돌아오시자마자 일군들에게 김책공업종합대학 전자도서관의 봉사능력을 더 높이기 위한 타산안을 세울데 대한 과업부터 주시였고 나라사정을 고려해 작성하여 올려보낸 타산안을 보시고는 왜 이렇게 소극적으로 세웠는가, 나라사정이 어렵다 하더라도 앞을 내다보고 전자도서관을 세계의 첨단으로 꾸려야 하지 않는가고 하시며 몸소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통이 큰 타산안을 세워주시였다.
하여 두달후 김책공업종합대학 전자도서관은 기술장비에서나 봉사운영에 있어서 보다 완벽하게 자기의 모습을 첨단수준으로 일신시킬수 있게 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손길아래 최첨단수준에서 일떠선 전자도서관은 정녕 부강번영하는 조국의 미래를 떠메고나갈 주인공들을 위해 그 무엇도 아끼지 않으시고 다 돌려주신 그이의 고매한 후대사랑이 낳은 결정체였다.
새해의 첫 현지지도로 김책공업종합대학을 찾아주신 그이의 현지지도소식으로 모두가 흥분과 감동에 쌓여있는데 곧이어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신의주시본부유치원의 뛰여난 재간둥이들을 만나주시고 그들의 앞날을 축복해주셨다는 감격적인 소식이 련이어 전해져 온 나라가 격정으로 설레였다.
김책공업종합대학에 대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지지도가 있은 그 다음날이였다.
신의주시본부유치원의 6살 난 구대홍, 김혁일어린이들과 그들의 담당교양원들은 이제 자기들앞에 얼마나 크나큰 영광과 행복의 순간이 기다리고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있었다.
어느 한 건물의 휴계실로 안내되여 들어서던 그들은 그만 자기들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다.
정갈하게 꾸려진 그 방에 글쎄 얼마전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잠시나마 쌓이고쌓인 피로를 푸시며 기뻐하셨으면 하는 념원에서 그이께 삼가 올린 재간둥이들의 서예족자와 그림작품집이 있었던것이였다.
이때 휴계실문이 조용히 열리더니 그토록 뵙고싶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만면에 환한 웃음을 담으시고 방으로 들어서시였다.
꿈인지 생시인지 도무지 분간할수 없는 현실앞에서 담당교양원들은 어리둥절해있는데 두 어린 재간둥이들이 약속이나 한듯이 장군님께로 막 달려가 《아버지장군님, 새해에도 부디 건강하십시오.》 하며 큰절을 올리였다.
《오, 너희들이 왔구나.》
두팔을 벌려 어린이들을 한품에 안으신 장군님께서는 뒤미처 올리는 담당교양원들의 인사를 반갑게 받아주시고 다정하신 음성으로 한 어린이에게 물으시였다.
《그래, 아버지는 어디에 다니느냐?》
《신의주시 남송인민보안소 보안원입니다.》
《오, 보안원.》
그에 뒤질세라 다른 어린이도 큰소리로 말씀드렸다.
《우리 아버지는 신의주철도분국 주택건설대 로동자입니다.》
자신께서 물으시기도 전에 또랑또랑 말씀올리는 어린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던 그이께서는 《오, 로동자.》 하시며 못내 대견해하시였다.
만시름을 다 잊으신듯 어린이들을 한품에 안으시고 환하게 웃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모습을 우러르는 담당교양원들의 눈굽은 저도 모르게 촉촉히 젖어들었다.
잠시후 장군님께서는 이애들이 붓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것을 좀 보자고 정답게 말씀하시였다.
두 어린이는 자기들의 재간을 보아주시겠다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말씀에 접하자 제각기 솜씨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앞에서 자기들의 재간을 마음껏 펼쳐보이는 어린이들의 재롱스럽고도 대견한 모습은 마치 저 하늘의 밝은 해님과 그 빛을 받아 한껏 피여나는 어여쁜 꽃송이들을 눈앞에서 보는듯 한 눈부신 화폭이 아닐수 없었다.
두 어린이가 붓글쓰기와 그림그리기에 열중하고있는 동안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들의 담당교양원들과 이야기를 나누시면서 신의주시본부유치원에서는 그전에도 재간둥이들을 키워냈는데 이번에 또 훌륭한 어린이들을 키워냈다고 치하도 해주시고 재간둥이들을 어떻게 키우는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료해하시였다.
재간둥이들을 키우는데서 천성적인것이 7이라면 교육이 3이라고 하는 담당교양원의 견해를 긍정해주시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곁에 있던 일군들에게 인재교육 특히 수재양성에서는 반드시 천성적인 재능을 기본으로 보아야 한다고, 천성적인 재능의 싹을 잘 찾아내고 전문교육과 체계적인 교육을 통하여 그것이 활짝 꽃펴나게 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잠시후 붓글을 잘 쓰는 어린이가 《백두산호랑이》이라는 글을 썼을 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만족한 표정으로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흘림체붓글을 잘 썼다고, 특히 《랑》자를 잘 썼다고 거듭 치하하시면서 앞으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의 제명에서 《랑》자는 이 어린이가 쓴 《랑》자를 그대로 옮겨다 쓸수 있을것이라고 과분한 평가를 해주시였다.
이제 불과 6살 난 어린이의 붓글이 기념비적대걸작품의 제명에 오르다니!
어느 누구도 상상조차 할수 없었던 일이였다.
하지만 뛰여난 재간둥이가 나온것이 너무도 기쁘시여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아직은 미숙하기 그지없는 유치원어린이의 솜씨를 그렇듯 값높이 여겨주시는것이였다.
밝은 미소를 지으시고 어린이가 쓴 붓글을 한참이나 보아주시던 그이께서는 문득 한 일군을 부르시더니 무엇이라고 나직이 이르시는것이였다.
잠시후 그 일군이 큼직한 함을 하나 안고 들어왔다.
고급서예도구가 일식으로 꽉 들어찬 그 함안에서 손수 제일 큰 붓대를 하나 꺼내드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잠시 생각깊은 안색으로 붓을 만져보시다가 붓글을 잘 쓴 어린이에게 수령님께 드리자고 마련하여 보관해두었던 서예도구일식을 선물로 주겠다고, 앞으로 공부도 잘하고 붓글도 더 잘 써야 하겠다고 정담아 말씀하시였다.
그저 좋아할줄만 알았던 철부지어린이재간둥이는 눈가에 물기를 머금고 떠듬거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아뢰였다.
《아버지…원수님, 정말 고맙습니다. … 나는 앞으로 붓글을 잘 쓰는 … 장군님군대가 되겠습니다.》
어린 마음에 간직된 포부와 결심이 너무도 대견하시여 장군님께서는 어린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며 다른 어린이들 같으면 대학에 가서 공부를 잘하겠다고 하겠는데 인민군대가 되겠다고 하는것을 보니 정말 용타고 못내 기뻐하시였다.
이어 장군님께서는 호랑이를 그리고있는 어린이곁으로 다가가시였다.
잠시 그림을 내려다보신 그이께서는 채 완성되지 않았지만 그림을 잘 그리는것이 알린다고 하시며 그의 그림작품집 《장군님 받드는 인민군대 될래요》를 몸소 보아주시였다.
어린이의 작품집을 한장한장 펼쳐보시며 호랑이를 좋아하고 잘 그리는 그의 남다른 재능도 헤아려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림들이 다 신통하다고, 잘 그렸다고, 그림을 잘 그리는 어린이에게는 그림도구들과 그림종이로 쓸 학습장들을 선물로 주겠다고 하시였다.
한 일군이 큼직한 선물함을 들고오자 장군님께서는 어린이가 무거워서 들지 못한다고, 바닥에 놓으라고 이르시고는 손수 함뚜껑을 여시고 그림학습장 한권과 연필 한통을 꺼내시더니 어린이의 가슴에 안겨주며 다정히 말씀하시였다.
이 그림학습장에 그림을 그려라. 그리고 이 함에 들어있는 학습장들과 그림도구들은 모두 네가 쓰거라.
그 어린이도 친부모도 줄수 없는 장군님의 분에 넘치는 사랑과 은정이 얼마나 고마운것임을 알았는지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꼭 인민군대화가가 되겠다고 말씀올렸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대단히 만족하시여 두 어린이가 다 재간이 뛰여나고 결심도 좋다고 하시면서 애들의 장래문제에 대해서까지 일일이 의논해주시였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경애하는 장군님과 헤여져야 할 때가 되였다.
재능있는 어린이들을 더 많이 키워내겠다고 결의다지는 담당교양원들의 손을 다정히 잡아주신 장군님께서는 어린이들의 볼을 다독여주시고는 천천히 출입문쪽으로 향하시였다.
이때였다.
뜻밖에도 글쎄 한 어린이가 큰소리로 《아버지장군님!-》 하고는 막 달려가 그이에게 매여달리며 엉엉 소리내여 울기 시작하였다.
너무도 돌발적인 행동이였으나 그것은 장군님과 헤여지지 않으려는 강렬한 동심의 폭발이였다. 이제 여섯살밖에 안된 철부지의 그 부름에 담겨있는 호소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대번에 포착하시였다.
모두들 어찌할바를 몰라 당황해하는데 장군님께서는 《그래, 그래, 찍자.》라고 하시며 어린이의 손목을 잡으시고 되돌아오시였다.
장군님께서 소리내여 우는 어린이의 얼굴에서 읽으신것은 기념사진을 찍고싶어하는 간절한 심정이였던것이다.
그들의 소원대로 기념사진을 찍자고 하시며 두 어린이들을 량옆에 꼭 껴안으시는 그이의 눈가에도 물기가 어리였다.
아이들도 담당교양원들도 무한한 행복감에 휩싸여 흐르는 눈물로 두볼을 적시는데 장군님께서는 울지 말라고, 울면 사진이 잘 안된다고 갈리신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하지만 끝내는 어린이들과 담당교양원들이 감격에 눈물짓고 장군님께서도 젖은 눈빛으로 서계시는 쉽지 않은 사진이 세상에 남아 전해지게 되였다.
이 뜻깊은 사진이 신문과 TV를 통해 전해졌을 때 온 나라 전체 군민은 그처럼 바쁘신 속에서도 김책공업종합대학을 찾아주신데 이어 또다시 뛰여난 재간둥이들에게 태양의 사랑과 축복을 안겨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후대사랑에 고마움의 눈물, 감격의 눈물을 쏟았다.
미래를 위해 바쳐가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을 어찌 한두가지 사실로 다 이야기할수 있겠는가.
현대적미감을 갖추고 웅장하게 일떠선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에도, 정보산업시대의 요구에 맞게 정보화를 빛나게 실현한 함흥화학공업대학과 청진광산금속대학에도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의 손길이 뜨겁게 어리여있다.
부강조국의 앞날이 후대들에게 달려있기에 그들을 훌륭하게 키우는 일이라면 그 무엇도 아끼지 않으시고 주실수 있는 모든것을 다 안겨주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태양의 품속에서 선군조선의 후대들은 강성대국의 래일을 떠메고나갈 주인공들로 름름하게 자라날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