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선군조선의 존엄과 기상을 더 높이 떨치시려
삼천리를 넘어 세계에 메아리친 선군승리의 대축전
제2의 6. 15열풍을 불러
력사적인 6. 15북남공동선언이 채택발표된 때로부터 어느덧 다섯번째 해가 밝아왔다.
고통과 불행을 안고 반세기를 넘기며 흘러온 민족분렬의 세월속에서 5년이라는 시간이 차지하는 시공간은 비록 짧은것이라고 할수 있지만 그것이 우리 민족의 통일애국력사에 새긴 흔적은 너무나 큰것이였다.
이 나날에 불신과 대립으로 랭랭하던 북남관계의 동토대에는 민족화해의 빛이 따스히 비쳐들고 그 결과 북남사이에 지난 시기에는 상상조차 할수 없었던 극적인 사변들이 련이어 펼쳐져 세상을 놀래웠다.
북과 남은 분렬의 장벽을 뚫고 열려진 래왕의 길을 오고가면서 민족의 단합을 위한 수많은 공동행사들을 진행하였다. 정치무대뿐아니라 경제, 문화예술, 체육에서도 민족의 단합을 도모하고 통일에 이바지되는 좋은 일들을 해놓았다. 이 과정에 6. 15공동선언의 정당성과 생활력이 남김없이 과시되여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이 전민족적인 리념으로 되고 북남사이에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가 나날이 고조되여갔다.
6. 15가 가져온 이 놀라운 현실을 실감하면서 온 겨레는 6. 15공동선언이야말로 자주통일의 대강이며 그를 철저히 리행하는 길에 통일의 곧바른 길이 있다는것을 확신하게 되였다.
력사적인 평양상봉과 6. 15북남공동선언발표 5돐 그리고 조국해방 60돐이 되는 2005년은 조국통일위업수행에서 보다 큰 전진을 이룩해야 하는 참으로 중요한 해였다.
공동선언의 기치아래 통일에로 향한 전진의 힘찬 발걸음소리가 높아갈수록 력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려보려는 내외반통일세력의 준동도 그만큼 극심해졌다.
그해 년초에 재집권한 2기 부쉬 미행정부는 내외의 한결같은 요구를 무시하고 대조선고립압살책동의 도수를 더한층 높였고 이에 편승하여 남조선의 극우보수세력들은 어떻게 하나 6. 15시대를 말살해보려고 반민족적인 외세공조에 집요하게 매여달리면서 반공화국대결소동에 광분하였다.
그것으로 하여 북남사이의 관계발전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게 되였다.
현실은 6. 15공동선언의 기본정신인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밑에 민족공조의 단합된 힘으로 반통일세력들의 악랄한 책동을 짓부셔버리고 북남관계발전과 통일애국운동에서 한걸음 더 크게 내디뎌 새로운 발전적국면을 열어나갈것을 절실히 요구하였다.
이러한 현실적요구에 맞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민족자주공조, 반전평화공조, 통일애국공조의 3대공조를 확고히 실현하기 위한 거족적인 투쟁을 줄기차게 벌려나가도록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였다.
여기서 주목할만 한 성과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6. 15공동선언발표 5돐기념 민족통일대축전을 명실공히 북과 남의 당국대표들까지 참가하는 전민족적인 회합으로 되게 함으로써 이를 계기로 삼천리강토에 우리 민족끼리의 열풍이 거세차게 일어번지게 하고 2005년을 조국통일사에 자랑찬 한페지를 아로새기는 뜻깊은 해로 빛내여주신것이다.
이해 6월 평양에서는 내외의 커다란 관심과 기대속에 6. 15공동선언발표 5돐기념 민족통일대축전이 성대히 진행되였다.
대축전의 다채로운 행사들을 통하여 온 겨레는 6. 15의 생활력을 다시금 절감하였다.
특히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주체94(2005)년 6월 17일 민족통일대축전에 남측당국대표단 단장으로 참가한 남조선 《대통령》의 특사인 통일부 장관을 만나주신것은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밑에 북과 남이 함께 하는 민족공조의 새로운 장을 열어놓으시려는 그이의 의지를 뚜렷이 보여준 중요한 계기로 되였다.
뜻깊은 석상에서 먼저 경애하는 장군님께 특사가 남조선《대통령》의 구두친서를 정중히 전해드리였다.
장군님께서는 이에 사의를 표시하시고 특사와 따뜻한 담화를 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남측특사에게 그가 평양에 처음으로 왔지만 우리는 하나의 피줄을 이은 동족이여서 구면같이 생각된다고 하시며 이야기의 서두를 떼신데 이어 통일부 장관으로 평양을 방문한것은 중요한 사명을 띠고 왔다는것을 의미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긴장된 마음을 풀어주시려는 장군님의 아량이 넘친 말씀을 접하게 된 특사는 국방위원장님께서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고맙게 생각한다고 정중히 례의를 표시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날 특사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시면서 나라의 통일문제를 자주적으로 풀어나가며 민족공동의 번영과 발전을 이룩하는데서 나서는 문제들에 대한 귀중한 말씀을 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특히 핵문제와 6자회담에 대한 공화국의 원칙적인 립장을 밝히시고 북남관계에서 당면하게 제기되는 문제들과 남측이 제기한 문제들에 대하여 전면적이고 명백한 해답을 주시였다.
남측에서 신경을 쓰고있던 공화국의 핵보유문제와 관련하여 장군님께서는 우리에게 핵은 필요없다, 우리의 핵은 어디까지나 미국의 위협을 억제하기 위한것이다, 미국이 우리의 제도를 전복하려는 의도를 가지고있기때문에 억제력으로 핵을 가지고있는것이지 다른 리유가 없다고 천명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그이께서는 우리가 핵을 가지는것은 불가피하게 취한 조치이며 남쪽인민들을 대상해서는 그것을 절대로 쓰지 않는다고, 이에 대해 남조선인민들에게 꼭 전달해주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시였다.
자자구구에 철의 론리와 애국애족의 피가 흐르고 부정할수 없는 진실이 담겨진 말씀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서해상에서의 분쟁문제를 어떻게 풀겠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그 자리에서 즉시 해결책을 제시하시였다.
서해상에서의 분쟁문제는 당시 북남간에 군사적대치상태가 제일 격화되였던 문제들중의 하나였다.
이 분쟁문제로 하여 지난 몇년어간 서해상에서는 두차례의 불미스러운 무장충돌까지 발생하였고 해상경계선에 대한 남측의 억지주장으로 하여 문제해결을 매듭짓지 못하고있었던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맞서있는 륙지에서도 분쟁이 없는데 군사분계선도 없는 서해상에서 분쟁이 일어난다는것은 말도 안된다고 하시면서 그곳에서 북남어업협력을 하는것이 좋겠다, 이를 위해서 회담을 하라고 가르쳐주시였다.
서해해상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방도를 대번에 밝혀주시는 장군님의 비범성에 특사는 더더욱 놀라움을 금치 못해하였다.
그이께서는 또한 북과 남으로 흩어져 사는 가족, 친척상봉을 어떻게 하면 더 많이 할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서도 직접상봉을 많이 할수 없다면 지금이 정보화시대인데 그에 맞게 동영상상봉을 조직하는것이 좋겠다고 하시며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해결방도까지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였다.
참으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남측특사와의 접견시에 복잡하게 얽혀졌던 북남관계문제를 대범하고도 명철하게 밝혀주신것은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도모하고 조국통일을 앞당기는데서 커다란 의의를 가지는것으로 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석상에서 북남사이에 통일행사들을 계속 진행해나갈데 대하여서도 귀중한 말씀을 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특사일행을 향해 여러분들이 6. 15공동선언발표 5돐기념행사에 온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사실 6. 15공동선언의 내용은 훌륭하다고, 민족의 운명을 결정할수 있는 선언이라고 하시며 이번에 평양에서 가진 6. 15민족통일대축전에 이어 8. 15에 서울에서 또 한차례의 통일축전을 벌리면 세계의 분위기상 과속이 아니냐고 놀랄 정도로 북남관계가 잘될수 있을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8. 15에 우리 대표단을 내보내겠다고, 이번에 남쪽에서 온 당국대표단규모에 맞추어 대표단을 구성하여 내보내겠다고 확언하시였다.
6. 15북남공동선언의 기치밑에 통일운동을 더 세차게 벌려 북남관계를 새로운 단계에로 발전시키실 원대한 구상이 담겨져있는 뜻깊은 말씀이였다.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남측특사일행과 평양상봉연고자들, 문익환목사의 부인을 위하여 오찬을 마련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남측성원들에게 북남대화와 접촉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킬데 대한 강령적인 말씀을 하시였다.
《북과 남이 마주앉아 회담하는것도 시대가 달라지는데 맞게 바뀌여야 합니다. 리성적으로 해야지 더이상의 체면유지놀음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이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우리 민족은 하나이라고, 우리는 빨리 통일을 해야 한다고 절절히 이르시면서 북남관계에서 절대로 주관주의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고 힘주어 강조하시였다.
주관주의, 체면주의를 없앨데 대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허심탄회한 말씀은 참가자모두의 흉금을 울리였다.
한없이 숭고한 풍모와 따뜻한 동포애, 파격적이고 거침없는 언변으로 사람들의 가슴을 뜨겁게 격동시키는 그이의 경이로운 대화술에 탄복하여 남측성원들은 흥분된 어조로 어쩌면 그리도 모든 말씀을 가슴이 시원하게 하시는가고, 막혔던 속이 다 내려간다고 하면서 그이의 비범한 위인적풍모에 다시금 탄복하여마지 않았다.
이날의 오찬분위기에 대해 남조선신문 《한겨레》(2005. 6. 20)는 《<하하하>, <껄껄껄> 웃음꽃 질새 없던 140분》이라고 하면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거침없는 말솜씨와 시원시원한 행동으로 분위기를 이끌어가신데 대해 상세히 소개하였다.
오찬에 참가하였던 남조선의 한 인사는 《김정일국방위원장님은 아주 솔직하고 유모아가 넘쳤으며 거침이 없었다. 국내외지도자를 많이 만났는데 김정일국방위원장님만큼 가식없는 지도자는 드물다.》라고 자기의 솔직한 심정을 고백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뜻깊은 상봉을 기념하여 남측 《대통령》특사와 기념촬영을 하시였으며 북남수뇌상봉의 연고자들인 전 정보원 원장, 전 통일부 장관, 전 한겨레신문사 사장, 전 정보원 차장 그리고 전 상지대학교 총장,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문익환목사의 부인을 접견하시고 그들과도 기념촬영을 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남측특사일행을 만나주시고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밑에 조국통일운동을 더욱 힘있게 벌려나가기 위하여 북남관계에서 새로운 전환을 가져올데 대한 강령적인 말씀을 주신 6월 17일은 조국통일운동사에서 하나의 획을 긋는 격동적인 사변의 날로 기록되였다.
장군님을 만나뵙고싶던 소원을 성취한 특사는 정말 힘이 생긴다고, 자기는 돌아가서 국방위원장님의 말씀을 꼭 지키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남조선통일부 장관을 접견하신 소식은 남조선에 제2의 6. 15열풍, 김정일열풍을 일으켰다.
남측대표단이 저녁에 인천비행장에 도착하자 오전부터 대기하고있던 200여명이나 되는 내외기자들이 저저마다 몰려와 경애하는 장군님을 만나뵈온데 대해 질문공세를 들이대였다.
남측당국대표단 단장은 기자회견에서 경애하는 장군님을 만나뵈온 석상에서 이룩된 중요한 합의들이 그이의 결단에 의한것이라는것을 강하게 시사하였으며 특히 《김정일국방위원장은 현장에서 결정할것은 즉각 결정하는 시원시원하고 결단력있는 지도자》이라고 하는 등 장군님의 위인상에 매혹된 자기의 심정을 그대로 터놓았다.
남조선의 주요신문들은 장군님께서 남측특사일행을 접견해주신 소식을 앞을 다투어 보도하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이 남측정부대표단을 직접 만난것은 남북관계정상화에 강한 의지가 있음을 강하게 보여주었다.》, 《장시간에 걸친 단독면담결과는 매우 의의있는 성과》, 《… 남북관계전진과 한반도평화증진에 일대 돌파구를 연 중대한 사건이였다.》
이렇듯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6. 15공동선언발표 5돐기념 민족통일대축전을 계기로 남측특사를 접견하여주시고 북남관계발전의 밝은 전망을 열어놓으신것은 그이의 한없는 민족애가 낳은 귀중한 결실이였으며 6. 15의 궤도를 옳바로 타고 조국통일운동이 힘있게 전진할수 있게 한 추동력으로 되였다.
《아리랑》통일잔치와 더불어
2005년 8월 풍치수려한 릉라도의 5월1일경기장에서는 조선로동당창건 60돐과 조국해방 60돐을 맞으며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이 내외의 커다란 관심과 기대속에 성황리에 개막되였다.
보다 더 세련되고 완벽한 모습으로 다시금 세상에 빛을 보인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은 막을 올린 첫 시작부터 전례없는 관람열기를 불러일으켰다.
온 세계가 평양을 진원지로 하는 《아리랑》열풍에 휩싸였다.
나라의 방방곡곡에서 남녀로소 누구라 할것없이 공연관람을 위해 구름처럼 평양으로 몰려왔고 아시아와 유럽을 비롯한 세계의 여기저기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평양행에 몸을 실었다.
민족의 자랑, 인류의 재보로 만사람의 경탄을 자아내는 기념비적걸작에 대한 관심은 남녘땅에서도 하루가 다르게 높아만 갔다.
한없이 넓으신 도량과 따뜻한 동포애의 정으로 남녘동포들의 이 소원을 누구보다 깊이 헤아리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아리랑》관람의 넓은 길을 열어주시여 민족화해의 새로운 화폭을 펼쳐놓으시였다.
끊임없는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던 어느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해당 부문의 한 책임일군을 전화로 찾으시고 남녘동포들에게 《아리랑》공연을 보여줄데 대해서 가르쳐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그들이 오면 우리가 대우를 잘해주면서 구경을 시켜주고 하루밤 재워서 보내면 다 좋아할것입니다.》
일군은 놀라움과 격정을 금할수 없었다.
사실 실무적으로 볼 때 선뜻 결심하기 어려운 일이였다.
6. 15통일시대가 열린 때로부터 적지 않은 남녘동포들이 평양을 다녀갔지만 그때와는 달리 공연관람자들로 이루어진 대규모집단을 한꺼번에 받아들이고 내보내고 하는 일을 매일이다싶이 반복해야 했던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실무적인 타산이나 계산에 앞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뜨거운 민족애, 동포애의 립장에서 《아리랑》공연을 보고싶어하는 남녘인민들의 소망을 깊이 헤아리시고 이렇듯 대범한 조치를 취해주시는것이였다.
그것은 단순히 동포애의 정에서 출발한 특혜라고만 볼수 없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 조치에는 《아리랑》공연관람을 계기로 화해와 단합의 분위기를 더한층 고조시킴으로써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밑에 6. 15자주통일시대를 힘차게 전진시켜나가기 위한 거족적인 통일열풍을 안아오시려는 깊은 의도가 담겨져있었다.
이렇듯 남녘동포들의 《아리랑》관람길을 열어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 사업이 성과적으로 진행되도록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시였다.
공연을 보러 오는 참관단의 명칭을 《평양참관단》으로 부르도록 해주시고 그들을 받아들이는 통로도 정해주시고 체류기일, 참관장소도 확정해주시였으며 초청영접안내에서 나서는 크고작은 문제들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세심한 관심과 은정어린 조치에 의하여 남녘동포들의 《아리랑》관람조직사업이 성과적으로 추진되였으며 2005년 9월 26일부터 하루에 수백명의 남녘동포들이 평양에 와서 1박2일간에 걸쳐 《아리랑》공연을 관람하고 여러곳을 참관하게 되였다.
바로 5년전 력사적인 6. 15북남공동선언채택으로 조국통일의 새로운 전환적국면을 열어주시고 이번에는 《아리랑》으로 화해와 단합의 화원을 온 남녘땅, 아니 온 삼천리에 펼쳐주시는 장군님의 그 하늘같은 사랑을 가슴에 안고 남녘동포들은 너도나도 평양방문의 길에 올랐다.
비행기에서 내려서는 순간 참관단성원들은 한결같이 평양방문이 실현된 꿈같은 현실에 흥분을 금치 못해하였다.
참관단의 한 성원은 우리는 평양에 《아리랑》을 관람하러 떠나기 전에 3일동안 너무 기뻐 잠을 자지 못했다, 이제 《아리랑》대잔치판이 펼쳐질것이다, 5년전 6. 15처럼 김정일국방위원장님께서 《아리랑》이라는 폭죽을 터뜨려 온 남녘땅을 빨갛게 물들여놓았다, 이남민중의 마음을 한순간에 련북으로 돌려놓으신 김정일국방위원장님은 참으로 뛰여난분이시라고 흥분에 겨워 자기의 심정을 토로하였다.
평양에 온 남녘동포들의 감동과 흥분은 《아리랑》공연관람에서 최절정을 이루었다.
《아리랑》공연이 진행되는 5월1일경기장은 련일 동포애의 뜨거운 정, 통일의 열기로 달아올랐다. 북녘인민들이 《우리는-》 하고 구호를 웨치면 남녘동포들은 《하나다!》라고 화답하고 뒤이어 또다시 《조국-》 하면 《통일》 하고 화답해나섰다.
서로 손을 흔들어주고 울고웃으며 손을 맞잡는 모습은 민족의 통일념원이 얼마나 열렬한가를 페부로 절감하게 하였다.
경기장에서 울려퍼진 그 함성은 그대로 삼천리강산에 굽이친 우리 민족끼리의 메아리였고 민족의 화해와 통일의 뜨거운 열기였다.
난생처음으로 민족이 낳은 기념비적걸작을 직접 보고난 남녘동포들은 저저마다 놀라움과 경탄을 금치 못해하며 찬사를 터놓았다.
민족의 향취짙은 대표적민요인 《아리랑》을 주제가로 하여 단 1시간 20분 남짓한 길지 않은 시간에 우리 민족의 100년사를 훌륭한 예술적화폭으로 펼쳐보이는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
지난날 약하고 힘이 없어 수난과 설음속에 눈물의 《아리랑》을 불러야만 했던 조선민족이 어떻게 되여 오늘과 같이 세계를 굽어보는 힘있는 민족이 되여 행복의 《아리랑》, 강성부강의 《아리랑》을 부르고있는가를 기백넘치는 집단체조와 아름답고 우아한 노래와 군무, 황홀한 교예, 신비한 배경대 등을 통해 완벽하게 구사하는 《아리랑》공연은 실로 인류문화예술발전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대성공작이며 민족의 더없는 자랑이였다.
《대단히 훌륭하다. <아리랑>은 예술적으로 아주 걸작중의 걸작일뿐아니라 그 내용의 심오성에 있어서도 완전무결하다.》, 《<아리랑>공연은 세계 그 어느 나라도 흉내조차 낼수 없는 대걸작이다. 여기에는 북의 집단주의정신, 조직성과 규률성이 집대성되여있다. 이 모든것은 김정일국방위원장님에 의해 산생된것이다.》, 《공연을 보면서 아리랑민족의 슬기와 지혜, 위대함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게 되였다. 이런 대걸작을 창작한다는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오직 김정일국방위원장님을 모신 이북인민만이 창조할수 있는 위대한 걸작품이다.》 …
이러한 격동된 목소리는 공연관람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는 뻐스안에서도 호텔에서도 끊임없이 울려나왔다.
참관단성원들은 저마끔 공연소감을 피력하며 북에 오기를 천만번 잘했다고, 공연이 너무 감동적이여서 눈물없이 볼수 없었다고 하면서 남쪽에 돌아가 북녘동포들의 마음을 널리 전하고 통일운동을 더욱 힘있게 벌려나갈 결의들을 다지였다.
남조선신문들도 《<아리랑잔치> 분단을 잊었다》, 《화려한 교예, 흥겨운 연주 <강성한 나라>열망 <꿈틀>》,
《지구최고의 마술, <아리랑>》 등의 제목들을 달고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에 대한 소개에 지면을 아끼지 않았다.
폭풍같은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아리랑》공연은 시간이 갈수록 온 남녘땅을 뜨겁게 달구어놓았다.
너도나도 평양으로 마음이 쏠리고 발걸음이 향해졌다.
《아리랑》공연을 보고싶어하는 남녘동포들의 소원을 빠짐없이 다 들어주고싶으신것이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심정이였다.
평양참관단성원들을 숙식시키기로 했던 양각도국제호텔에 조선로동당창건 60돐 경축행사에 참가할 국내대표들을 들이는 문제가 제기되였을 때였다.
이때 해당 부문의 일군들은 당창건 60돐 경축행사를 보장해야 하는 조건에서 이것은 할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평양참관을 주관하는 남측의 여러 단체들에 숙소관계로 10월 5일경부터 12일까지는 《아리랑》공연관람이 어려울것 같으므로 평양참관단일정을 조절해줄것을 통지했다.
그러자 그들은 당창건 60돐 경축행사기간에 평양에 오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특히 많다고, 자기들은 양각도국제호텔 1개 방에 4명이나 6명이 들어도 좋고 복도를 침실로 해서 한개 층에 수십명씩 숙식하거나 5월1일경기장에서 천막을 치고 자도 좋다고 하면서 평양참관을 계속해줄것을 거듭 간청했다.
이 사실을 보고받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양각도국제호텔에 들기로 예정되였던 당창건 60돐 경축행사 국내대표들을 모두 다른 곳에 들도록 하고 양각도국제호텔과 보통강려관을 통채로 남측참관단이 리용하도록 하는 은정깊은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그리하여 남녘동포들의 평양참관은 중단함이 없이 계속 이어지게 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에 의해 남녘땅에 일어번진 《아리랑》열풍은 참으로 일찌기 볼수 없었던 놀라운 현실을 펼쳐놓았다.
지난 시기 공화국에 대한 적대감을 품고있던 사람들도 평양에 오지 못해 안달이 나서 몰래라도 오려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열심히 공작하는 희극이 벌어졌다. 지어 평양참관단에는 우익보수인물들도 적지 않게 망라되였고 정보원에서 오래동안 일한 사람도 있었다.
이에 대해서 남조선의 어느 한 단체의 관계자는 당국이 북으로 달리는 민심에 제동을 걸어보았지만 저들도 《아리랑》에 마음이 끌리는것을 어쩔수 없어 정보원에서는 오래동안 일한 공로있는 사람들만 골라 표창으로 《아리랑》공연관람을 보낸다고, 이제 조금만 있으면 정보원만이 아니라 《국회》의원들도 떼를 지어 들어오고 《대통령》까지 변성명하고 들어올것 같다고 하였다.
뿌리깊은 반공화국적대의식에 사로잡혀 북에서 하는 일을 덮어놓고 비난해오던 사람들도 공연의 황홀함에 심취되여 저도 모르는 사이에 박수를 치고 노래를 따라부르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였다. 그들은 이런 세계적인 작품을 결코 그 어떤 강제나 돈으로는 만들어낼수 없다고, 북이 이처럼 강대한줄은 몰랐다고, 통일되면 우리 나라가 단연 우수하고 위대한 최강국으로 될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였다고 속생각을 터놓았다.
수십명의 공무원들이 집단적으로 와서 공연을 관람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들도 공연과정에 자기를 잊고 출연자들에게 열광적인 박수를 보내면서 《이밤이야말로 일생에 단 한번밖에 없는 행운의 기회》, 《황금을 주고도 보지 못할 천궁의 공연》, 《배경대에 눈 두개, 하늘에 눈 두개를 걸어놓고 보아야 할 공연》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아리랑》공연관람길에 오른 남녘동포들가운데는 자기들의 소원을 풀어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에 대한 감사의 정을 담아 지성어린 선물을 준비해가지고 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비록 《아리랑》공연시간은 길지 않았으나 민족분렬 60년간 반목과 불신으로 얼어붙었던 마음들을 신비한 예술의 힘, 따뜻한 동포애로 녹여내는 화해와 단합의 순간이였다.
《아리랑》축전기간에 분렬 60년이래 평양산원에서 첫 남녘아기가 태여나는 반갑고도 희한한 일이 생겨나 온 겨레를 기쁘게 하였다.
범청학련 남측본부 《한총련》대표로 1998년 평양을 방문한바 있는 황선(통일련대 대변인)녀성이 10월 10일 저녁 공연관람도중 갑자기 오는 진통으로 하여 평양산원에 구급으로 입원하게 되였다.
원래 그는 해산예정일이 이미 지난 몸이였다. 그러나 그는 시어머니까지 모시고 《아리랑》공연관람길에 올랐다.
그는 입원한지 1시간도 못되여 밤 10시에 딸(몸무게 3. 36㎏)을 순산하였다. 평양산원개원이래 처음으로 남조선녀성이 옥동녀를 낳았다는 소식은 삽시에 전국에 퍼졌고 모두가 평양에서 첫 고고성을 울린 통일동이의 미래를 축복하였다.
남녘동포들에게도 이 소식이 전해졌다. 평시에 《아리랑》공연에 대해 침묵하던 남조선의 일부 언론들도 《평양에서 출산한 최초의 남한녀성》, 《황씨가 통일동이를 낳게 되였다》 등으로 이 소식을 크게 보도하였다.
황선녀성은 입원해있는 기간 무상치료제혜택으로 산후치료는 물론 종합적인 의료봉사를 받았으며 공화국의 모든 산모들과 꼭같이 산꿀과 귀중한 보약제, 영양제들을 공급받았다.
산모의 건강상태와 아기의 발육상태는 대단히 좋았다.
10월 25일 아기와 함께 건강한 몸으로 퇴원하게 된 황선녀성은 평양산원에서 보낸 보름동안의 나날들을 감회깊이 돌이켜보며 감격과 기쁨을 금치 못해하였다.
평양산원 의료일군들의 뜨거운 환송속에 산원문을 나서면서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뜻밖의 행운으로 평양산원에서 몸을 풀고 귀한 통일동이를 받아안게 되였다. 꿈만 같은 오늘의 이 경사를 안아온 6. 15에 감사를 드린다. 6. 15는 민족통일의 현실도 반드시 안아올것이다. 나는 이것을 확신한다. 그리고 동포애의 정으로 저와 딸애를 극진히 보살펴주고 돌보아준 의사선생님들과 간호원들에게 저의 진심으로 되는 인사를 드린다.》
남조선에 돌아간 후 황선부부는 아기에게 우리 겨레는 하나라는 뜻에서 《윤겨레》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처럼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은 평양을 방문한 남녘동포들속에서 폭풍같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온 남녘땅을 《아리랑》열풍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게 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남녘땅에서 날로 높아가는 《아리랑》관람열기를 헤아리시여 10월말까지 계속 남녘동포들을 평양으로 받아들이도록 해주시고 그 방도까지 하나하나 밝혀주시였다. 그리고 남조선에서 통일운동에 한생을 바쳐 싸워온 비전향장기수들을 비롯한 통일운동가들을 《아리랑》공연관람에 초청하도록 깊은 관심을 거듭 돌려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비범한 예지와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10월 17일이후에도 남녘인민들의 《아리랑》공연관람사업은 계속 진행되였으며 10월말까지의 한달 남짓한 기간에 무려 8 500여명의 남녘동포들이 평양에 들어와 공연을 관람하는 류례없는 통일잔치마당이 펼쳐질수 있었다.
참으로 온 남녘땅에 휘몰아친 2005년의 《아리랑》열풍은 남녘인민들을 반세기에 걸친 반공화국악몽에서 흔들어깨우고 북과 남 온 겨레가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여준 통일열풍, 제2의 6. 15열풍, 김정일숭배열풍이였다.
선군이 안아온 9. 19공동성명
10월의 대축전장으로 향한 선군혁명총진군은 결코 유리한 환경이나 조건속에서 진행된것은 결코 아니였다. 그것은 미제의 무모한 반공화국고립압살책동이 날로 가증되는 최악의 역경속에서 나라와 민족의 존엄과 자주권을 수호하기 위해 벌린 치렬한 반미대결전의 련속이였고 천출명장의 담력과 배짱, 탁월한 령도에 의해 련전련승의 통장훈을 부른 자랑찬 승리전이였다.
2005년에 들어와 부쉬정권의 재집권을 계기로 미국의 전횡과 강권은 더욱 횡포해졌다. 그만큼 미국을 비롯한 세계도처에서 그에 대한 규탄배격의 목소리가 세차게 울려나왔다. 미국내에서는 대통령취임식을 계기로 격렬한 반부쉬투쟁이 벌어졌으며 그에게 침을 뱉고 미국을 떠나 이민을 가는 사람들의 수가 급격히 늘어나 세계적인 화제거리가 되였다.
영국 BBC방송이 세계 여러 나라의 2만 1 953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여 진행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과반수가 부쉬의 재선으로 세계가 더 위험해졌다고 대답하였다.
이에 대해 로씨야의 한 신문은 《부쉬를 세계에 위험한 인물로 인정》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16개 나라에서 평균 58%의 응답자들이 부쉬의 재선이 세계를 위태롭게 한다고 하였다.》고 지적하였다.
남조선의 언론들에서도 《테로와의 전쟁, 선제공격, 북정권교체, 외교적일방주의를 추구해온 부쉬의 재선은 세계나 한반도에서나 불운이 아닐수 없다.》는 분석으로 부쉬의 재집권이 가져올 재앙에 대한 불안감을 표시하였다.
하지만 세계적인 우려와 규탄에 부쉬행정부는 시대착오적인 패권주의정책을 보다 로골화하는것으로 도전해나섰다.
그것은 대조선정책에서 보다 적라라하게 드러났다.
당시 새로 구성되는 제2기 부쉬행정부의 국무장관으로 지명된 라이스는 1월 중순 미국회 상원인준청문회에서 우리 공화국을 《폭정의 전초기지》라고 헐뜯는가 하면 부쉬는 제2기 대통령취임식때 세계에서 《폭정》을 종식시키는것이 미행정부의 최종목표라고 떠들면서 필요하다면 군사력행사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폭언하였다.
특히 부쉬는 2005년도 미국의 대내외정책방향을 밝히는 년두교서에서도 그 누구의 《핵무기야망을 포기시키기 위해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과 협력하고있으며 우리 시대의 위험을 타승하기 위한 련합전선을 형성》하겠다고 력설하였다.
이것은 결국 미국의 새 행정부가 우리 공화국과는 절대로 평화적으로 공존하지 않겠다는것을 정책화하고 이전보다 대조선고립압살정책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흉심을 명백히 드러내놓은것이였다.
미국의 이러한 무분별한 침략적인 망동은 선군혁명총진군의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 우리 군대와 인민에 대한 참을수 없는 도전으로서 커다란 민족적분노를 폭발시켰다.
선군조선의 아량과 참을성에도 한계가 있는것이다.
무분별한 미제와는 언제나 강경고압자세로 맞받아나가야 한다는 철의 의지를 지니시고 탁월한 정치군사적지략으로 반미대결전을 승리에로 이끌어오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공화국의 《제도전복》을 목표로 한 미국의 대조선고립압살정책을 단호한 초강경선언으로 쳐갈기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미제의 그 어떤 위협과 공갈도 나에게는 통하지 않습니다.
우리 민족은 자존심이 강한 민족이며 누구도 우리를 건드리는것을 용서치 않습니다. 미제가 어쩌구저쩌구하여도 우리 조국의 풀 한포기도 건드릴수 없습니다.》
날로 더해가는 미국의 대조선적대시압살정책으로부터 나라와 민족의 최고리익을 고수하시려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무비의 담력과 배짱, 철의 신념을 담아 2005년 2월 10일 핵보유를 선언하는 공화국의 외무성성명이 발표되였다.
성명에서는 미국이 공화국을 적대시하다못해 《폭압정권》이라고 하면서 전면부정해나선 조건에서 미국과 회담할 명분조차 사라졌으며 우리가 더는 6자회담에 참가할수 없게 되였다는것, 우리는 회담참가명분이 마련되고 회담결과를 기대할수 있는 충분한 조건과 분위기가 마련될 때까지 불가피하게 6자회담참가를 무기한 중단할것이라는 공화국의 원칙적이고도 강경한 립장이 표명되였다. 또한 부쉬행정부의 날로 증대되는 대조선고립압살정책에 대처하여 이미 자위를 위해 핵무기를 만들었다는것을 정식 선포하고 부쉬행정부가 핵몽둥이를 휘두르면서 우리 제도를 없애버리겠다는 기도를 드러낸 이상 우리 인민이 선택한 사상과 제도,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핵무기고를 늘이기 위한 대책을 계속 취해나갈것이라는것을 내외에 천명하였다.
공화국의 외무성성명이 발표되자 세계가 삽시에 들끓었다.
미국신문 《뉴욕 타임스》는 《북조선의 핵무기보유선언은 부쉬행정부가 북조선을 고립에로 몰아가면서 실책을 범했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지금까지 북조선에 대한 부쉬행정부의 대응은 비리성적이였으며 따라서 앞으로의 접근책에서 근본적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부쉬정권의 무분별한 대조선정책을 비난하였다.
세계의 여론들은 《미국이 동북아시아의 단독패권국가였던 시절은 2005년 2월 10일을 계기로 종언을 고하고말았다.》라고 하면서 부쉬행정부의 대조선정책의 실책을 조소하고 공화국이 취한 조치와 원칙적립장에 대해 지지와 련대성의 목소리를 높이였다.
남녘동포들도 《북의 핵은 민족의 자존심》이라고 하면서 공화국의 핵보유선언을 적극 지지하였고 그 무슨 제재를 떠들며 복닥소동을 벌리는 미국과 친미보수세력들을 조소규탄해나섰다.
온 행성을 놀래운 공화국의 핵보유선언!
이는 공화국의 존엄을 건드리는자는 그 누구도 용서치 않겠다는 선군조선의 초강경폭탄선언이였다.
100년전만 해도 국력이 쇠약했던탓에 식민지노예의 운명을 강요당해야 했던 조선이 100년후에는 자력으로 핵억제력을 보유하고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을 당당히 수호하는 존엄높은 강국으로 만방에 위용을 떨친 반만년력사에 일찌기 없었던 민족사적장거였다.
뿐만아니라 무모한 대조선적대시정책으로 조선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한사코 방해해나서며 날뛰던 미국이 다시금 패자의 고배를 마시지 않으면 안되게 한 쾌거였다.
핵무기보유의 선언으로 하여 천만군민의 가슴가슴마다는 한없는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으로 차넘치였고 선군으로 존엄높은 내 나라, 내 조국을 이 세상에서 가장 부강하고 발전된 나라로 건설해나갈 애국의 열기는 더한층 고조되였다.
천만군민은 기세충천하여 선군혁명총진군에 박차를 가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핵보유선언이후 선군의 보검을 더욱 추켜드시고 미국의 악랄한 반공화국핵대결책동을 초강경대응으로 분쇄해나가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94(2005)년 2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대외련락부장을 접견해주신 자리에서 우리는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견지할것이며 대화를 통하여 평화적방법으로 해결하려는 립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하시면서 우리는 6자회담을 반대한적도 없으며 회담의 성공을 위하여 할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였다는데 대하여 밝히시였다.
계속하여 장군님께서는 우리는 앞으로 유관측들의 공동의 노력으로 6자회담의 조건이 성숙된다면 그 어느때든지 회담탁에 나갈것이라고 하시면서 미국이 믿을만 한 성의를 보이고 행동하기를 기대하고있다고 말씀하시였다.
조미사이의 핵문제해결의 조속한 해결을 요구하는 국제사회계의 목소리가 날로 높아지자 바빠난 부쉬행정부는 교활하게도 자기들에게는 북조선을 《침공할 의사가 없고 공격할 의도가 없다.》느니, 《전제조건없이 6자회담에 나와야 한다.》느니 하면서 세계여론을 기만하며 파렴치하게 나왔다.
미국의 교활한 술책에 대처하여 3월초에 6자회담이 재개되지 못하고 조미사이의 핵문제해결이 지연되고있는것은 철두철미 미국때문이라는것과 공화국이 왜 6자회담참가명분과 조건이 마련되여야 회담에 나가겠다고 하는가를 구체적으로 까밝히는 외무성비망록이 발표되여 부쉬행정부를 다시금 호되게 다불리였다.
그후 공화국의 적극적인 외교공세와 강경조치로 하여 미국은 실제상 핵무기전파방지조약을 붕괴에로 몰아간 주범으로 궁지에 몰리우게 되였다.
바로 이러한 때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6월 중순 평양을 방문한 남측 특사를 접견하신 자리에서 미국이 회담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겠다는것이 확인되면 7월중에라도 6자회담에 나갈것이라는 아량있는 립장과 핵문제를 해결하려는 정치적의지를 보여주심으로써 교착상태에 있던 6자회담재개의 돌파구를 열어놓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남측 특사접견을 계기로 공화국의 공명정대한 립장과 아량이 부각되고 공화국을 《핵범인》으로 몰아 국제적압력을 가해보려던 미국의 흉계가 여지없이 파탄되게 되였다.
결국 미국은 어쩔수없이 6자회담재개에 응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그리하여 2005년 7월 26일부터 8월 7일까지 그리고 9월 13일부터 19일까지 제4차 6자회담이 베이징에서 진행되였다.
하지만 미국은 7월에 시작된 1단계회담에서 파렴치하게도 공화국의 공명정대한 제안들을 외면하면서 오히려 모든 핵계획을 포기할것을 강요해나섰다.
더우기 부쉬행정부는 주권국가의 자주적권리에 속하는 공화국의 평화적핵활동권리를 부인하면서 우리가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 탈퇴하였고 국제원자력기구성원국이 아니라는 근거로 어떤 경우에도 경수로를 제공할수 없다고 고집하였다.
미국의 이러한 부당한 립장에 대처하여 공화국은 조미사이의 핵문제해결의 기초는 조성된 두 나라사이의 불신을 청산하는데 있으며 서로의 신뢰성을 위한 물리적기초는 다름아닌 경수로제공이라는것을 명백히 하였다. 그리고 미국이 경수로제공을 통하여 공화국으로 하여금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 탈퇴하도록 만든 근원을 제거할것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미국측의 불성실한 행동으로 하여 10여일나마 진행되여오던 제4차 1단계 6자회담은 응당한 결말을 보지 못한채 휴회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후 공화국의 주동적인 성의와 노력에 의해 2단계회담이 9월에 다시금 열리게 되였다.
2단계회담에서 공화국은 조선반도비핵화라는 총적목표를 어떻게 하나 실현하려는 원칙적이고 공명정대한 립장과 아량을 가지고 인내성있게 그리고 진지하게 회담에 림함으로써 끝내 모든 도전을 이겨내고 공화국의 경수로제공요구가 담긴 9. 19공동성명이 발표되게 되였다.
9. 19공동성명의 기본은 미국이 우리 공화국의 자주권을 존중하고 평화적으로 공존하며 우리 나라를 공격하거나 침공할 의사가 없다는것을 공약하고 공화국이 핵에네르기의 평화적리용권리를 가지고있다는것을 인정하고 공화국에 대한 경수로제공문제를 토의하기로 합의하였다는것이다.
결국에 있어서 9. 19공동성명은 미국에 대조선적대시정책의 완전포기와 가장 근본적문제에서의 동시행동원칙과 보상의무를 부여한것이였다.
이렇게 9. 19공동성명이 공정하게 채택됨으로써 6자회담마당을 통해서 공화국을 고립시켜보려던 부쉬행정부의 대조선정책은 결국 물거품이 되고말았으며 미국은 공화국이 주장하는대로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원칙을 받아물지 않을수 없게 되였다.
제4차 6자회담이 끝난것과 관련하여 발표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대변인담화에서는 신뢰조성의 물질적담보인 경수로제공이 없이는 우리가 이미 보유하고있는 핵억제력을 포기하는 문제에 대해 꿈도 꾸지 말라는것이 지심깊이 뿌리박힌 천연바위처럼 굳어진 우리의 정정당당하고 일관한 립장이라는것, 우리는 지금까지 미국의 강경파를 대상하여 정책을 세웠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할것이라는것, 미국이 앞으로 《행동 대 행동》단계에서 실지 어떻게 움직이겠는가 하는것은 두고보아야 하겠지만 또다시 《선핵무기포기, 후경수로제공》주장을 고집해나선다면 조미사이의 핵문제에서는 아무것도 달라질것이 없을것이며 그 후과는 매우 심각하고 복잡할것이라는것, 만일 미국이 이번에 한 약속을 어기는 길로 나간다면 우리는 우리의 신념이며 표대인 선군로선이 가리키는 길로 단 한치의 드팀도 없이 나아가게 될것이라는 강경립장이 천명되였다.
제4차 6자회담에서 9. 19공동성명이 발표되자 세계는 또다시 끓어번졌다.
일본의 《니홍게이자이신붕》은 《공동성명을 통해 북조선은 현시점에서 얻을수 있는것을 거의다 얻었다. 조선이 요구하는 내용들이 다 들어있다. 조선정전협정을 대신하는 항구적인 평화협정을 수립하기 위한 협상은 미국과의 새로운 대화통로로 될수 있다.》고 보도하였다.
또한 외신들은 이번 6자회담공동성명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핵무기라는 문구가 들어가고 미국을 비롯한 대국들이 수표했다는것은 세계가 명실공히 북조선을 핵무기보유국으로 인정했다는것을 의미한다고 평하였다.
특히 남조선의 언론들은 저저마다 공동성명에 대해 대서특필하였다.
치렬하게 벌어진 조미핵대결과정을 커다란 관심속에 주시해온 남조선언론들은 한결같이 《김정일정권은 더 강해졌다.》, 《평양은 <꽃놀이패>를 쥔 격이며 미국은 북을 압박할 현실적수단들이 마땅치 않다.》, 《표류하는 미국의 대북정책》, 《딜레마(미궁)에 빠진 미국》 등의 평가를 내리였다.
남조선신문 《한겨레》는 9월 19일 제4차 2단계 6자회담에서 발표된 공동성명은 《성공적인 핵전략을 구사한 김정일국방위원장의 통쾌한 승리》라고 하였고 남조선의 어느 한 잡지의 글에서는 《북은 특히 미국의 핵위협제거와 한반도비핵화, 북미관계정상화, 경제적보상문제 등 6자회담을 통해 얻으려고 했던 대부분을 챙긴것으로 평가된다.》고 지적하였다.
남조선인민들도 《김정일국방위원장은 공동성명에서 얻어낸것이 많다.》, 《북은 최대의 수혜국》이라고 하면서 장군님의 뛰여난 선군지략에 경탄과 탄복을 금치 못해하였다.
위대한 선군정치의 위력으로 제국주의자들의 집요한 침략책동을 여지없이 짓부셔버리며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수호해나가신 길에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또다시 이룩하신 빛나는 결실은 민족사에 불멸할 공적으로 아로 새겨졌다.
선군승리의 열병식
선군혁명총진군의 기상이 차넘치는 이 땅우에 주체94(2005)년 10월의 아침이 밝아왔다.
영광스러운 조선로동당이 장장 60년이라는 자랑찬 력사의 년륜을 새기게 되는 뜻깊은 10월.
새 조국건설의 첫 기슭에서 근로인민의 진정한 전위대로 자기의 창건을 선포한 력사의 그날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60성상 조선로동당은 자기의 붉은 기폭에 오로지 승리만을 아로새기며 백승을 떨쳐왔다.
돌이켜보면 지난 60년동안 조선로동당은 국제적으로 별의별 사조가 다 나돌고 시련도 많았지만 단 한번의 로선상과오나 정책상착오가 없이 인민들을 곧바른 승리의 한길로 이끌어왔다.
그 백전백승의 향도가 있었기에 지난날 힘이 약해 렬강들의 총칼에 유린당해야 했던 조선이 오늘은 그 어떤 대적도 건드릴수 없는 무적의 군사강국으로 세계우에 솟구쳐올랐고 가난하고 불행했던 조선인민은 가장 존엄높고 행복한 인민으로 그 위용을 온 세상에 떨치게 되였다.
더우기 가장 엄혹했던 20세기 90년대 중엽부터 오늘에 이르는 기간 조선로동당은 나라에 조성된 준엄한 정세에 대처하여 선군의 기치를 높이 들고 혁명대오의 일심단결을 백방으로 강화하였으며 군사적억제력을 튼튼히 다져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의 운명, 주체의 사회주의를 굳건히 수호하고 강성국가건설의 튼튼한 도약대를 마련해놓았다.
실로 그것은 조선로동당이 조국과 인민앞에 쌓아올린 커다란 업적이였다.
조선로동당은 60년의 투쟁을 통하여 더욱더 세련되고 로숙한 당으로, 인민대중속에 깊이 뿌리박고 인민을 위하여 충실히 복무하는 어머니당으로 강화발전되였다.
조선로동당의 세련된 령도를 받으며 혁명하는것을 최대의 영광으로 행복으로 간주하고있는 전체 군대와 인민은 가장 존엄높고 위대하며 가장 자애롭고 친근한 어머니당의 예순번째 창건일을 크나큰 민족사적대경사로 맞이하기 위한 총진군길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섰다.
총진군의 기세드높이 나라의 경제발전과 인민생활향상에서 커다란 의의를 가지는 중요대상공사들이 완공되고 기념비적창조물들이 도처에 수많이 일떠섰다.
그리하여 당창건 60돐을 계기로 100여개 대상의 건설 및 현대화가 실현되고 전국의 수많은 공장, 기업소들에서 년간계획을 완수하는 등 사회주의건설의 모든 부문에서 전례없는 성과들이 이룩되였다.
그 벅찬 나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당창건 60돐을 조국력사에서 일찌기 있어본적이 없는 자랑찬 승리자의 대축전으로 빛내이기 위한 총진군을 진두지휘하시며 온갖 정력과 심혈을 다 쏟아부으시였다.
조국의 존엄을 더 높이 떨치고 나라의 경제전반을 확고한 상승궤도에 올려세우기 위하여 새해의 벽두부터 대소한의 추위와 삼복철의 무더위도 가릴새없이 줄곧 현지지도의 길에 계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그 길우에 깡그리 쏟아부으신 불보다 뜨거운 애국애민의 헌신은 곧 혁명적대고조의 열풍을 낳게 한 열원이였고 세상을 놀래우는 기적과 혁신의 원천으로 되였다.
더우기 특기할것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뜻깊은 이해에 각별한 관심과 현명한 령도로 조중친선의 뉴대를 더욱 공고히 다지시여 당창건 60돐경축의 의미를 더한층 올려세우신것이였다.
후진타오를 총서기로 하는 중국의 새 중앙령도집단은 중조 두 나라 로세대령도자들에 의하여 맺어지고 가꾸어진 조중친선을 대를 이어 계승발전시켜나가는데 특별한 관심을 돌리였다.
특히 후진타오총서기는 경애하는 장군님을 만나뵙고 두 당, 두 나라사이의 관계문제와 국제적으로 제기되는 일련의 문제들에 대한 의견을 나누려는 념원으로부터 우리 나라 방문을 희망하였고 중국당에서는 총서기의 우리 나라 방문실현을 선차적인 문제로 내세웠다.
그리하여 이미 2005년 2월 중국공산당 대외련락부대표단이 우리 나라를 방문하였으며 여기에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초청에 의하여 후진타오총서기가 당창건 60돐을 맞는 10월의 편리한 시기에 우리 나라를 방문하도록 하는 문제가 합의되였다.
중국당과 정부는 조선로동당창건 60돐에 즈음하여 고위급의 정부대표단을 보내왔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10월 8일 우리 나라를 방문한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이며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부총리를 단장으로 하는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대표단을 접견해주시였다.
석상에서 대표단단장인 국무원 부총리는 경애하는 장군님께 보내온 후진타오총서기의 구두친서와 중국의 당과 정부의 지도간부들의 축하의 인사를 전해드리고 자신이 준비해온 선물을 드리였다.
이렇게 우리 인민과 진보적인류의 다함없는 축원속에 마침내 조선로동당창건 60돐경축 대축전의 막이 올랐다.
주체94(2005)년 10월 9일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을 모시고 조선로동당창건 60돐경축 중앙보고대회가 5월1일경기장에서 의의있게 진행되였으며 저녁에는 조선로동당창건 60돐경축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의 황홀한 화폭이 5월1일경기장에 펼쳐졌다.
다음날인 경사스러운 10월 10일, 수도 평양의 김일성광장에서는 영광스러운 조선로동당창건 60돐경축 조선인민군 륙해공군부대들과 로농적위대, 붉은청년근위대열병식이 내외의 커다란 관심속에 성대하게 거행되였다.
열병광장에는 탁월한 선군사상을 구현하여 자주, 독립, 사회주의를 위한 혁명투쟁을 승리적으로 조직령도하고 불패의 군력으로 전진하는 민족적륭성의 새시대를 펼치며 주체혁명위업을 백승에로 향도하는 로숙하고 세련된 혁명의 참모부 조선로동당에 대한 신뢰심이 뜨겁게 굽이치고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당과 군대, 국가의 간부들과 함께 열병식이 진행될 김일성광장 주석단에 나오시였다.
열병식시작을 알리는 신호나팔소리가 랑랑히 울려퍼지자 열병행진대오가 도도히 흐르기 시작하였다.
《수령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시네》의 노래가 장중하게 주악되는 가운데 어버이수령님의 초상기가 조선인민군 륙해공군기들의 호위를 받으며 광장에 들어섰다. 전체 열병식참가자들은 조선로동당과 혁명무력의 창건자, 건설자이시며 사회주의조선의 시조이신 민족의 위대한 어버이를 우러러 《영접들어 총!》을 하며 일제히 경례를 하였다.
이어 군악이 울리고 위대한 당의 령도따라 선군혁명위업을 무력으로 담보해갈 영웅적조선인민군의 철의 신념과 의지, 혁명적기상이 굽이치는 가운데 조선인민군 각급 군사학교종대들과 인민군근위부대종대들, 륙해공군종대들, 조선인민경비대종대들의 장엄한 행진이 시작되였다.
로농적위대 및 붉은청년근위대종대들과 혁명학원종대들도 힘있는 군가에 발걸음을 맞추며 주석단앞으로 씩씩하게 행진해나갔다.
경애하는 장군님을 모시고 영광의 열병식장에서 승리자의 발구름높이 지축을 흔들며 나아가는 열병대오마다에는 하늘과 땅, 바다 그 어디에서 그 어떤 강적이 덤벼들어도 일격에 소탕할수 있는 위력한 공격수단과 방어수단을 갖추고 조국의 수호자, 선군혁명의 기수로서의 숭고한 사명을 다해나가는 일당백초병들의 전투적기백이 용솟음쳤다.
전체 열병대원들은 경애하는 장군님에 대한 열화같은 흠모와 신뢰의 정을 안고 주석단에 서계시는 장군님을 우러러 최대의 경의를 드리였으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열병부대들이 주석단앞을 지나갈 때마다 환히 웃으시며 답례를 보내시였다.
열병종대들의 행진이 끝나자 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 《김정일장군의 노래》의 장중한 선률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군악대가 승리와 영광의 상징인 원수별을 형상하면서 만세의 환호소리는 더욱 힘차게 터져오르고 광장은 꽃물결로 파도쳤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석단로대에 나오시여 해빛같은 미소를 지으시고 열광적으로 환호하는 군중들에게 손을 높이 들어 답례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사상과 위업을 받들어 전당, 전군, 전민을 승리와 영광의 한길로 향도하시여 사회주의강성대국의 창창한 미래를 열어나가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을 우러러 천만군민이 터치는 다함없는 흠모와 충정의 웨침인양 우렁찬 환호성은 하늘땅을 진감하며 끝없이 메아리쳤다.
참으로 이날의 경축열병식은 조선로동당의 령도따라 필승불패의 군력을 튼튼히 다지고 선군혁명총진군을 다그침으로써 조국통일과 사회주의강성국가건설위업을 반드시 성취하고야말 군대와 인민의 철석의 신념과 불굴의 의지를 내외에 힘있게 과시한 장엄한 철의 흐름이였다.
이날 저녁 김일성광장에서 성대히 진행된 당창건 60돐경축 청년학생들의 야회와 홰불행진 《위대한 선군의 기치따라 백승을 떨치는 불패의 조선로동당》으로 하여 경축의 분위기는 더한층 고조되였다.
독창적인 청년중시사상과 령도로 피끓는 청춘들을 위훈의 창조자, 청년영웅으로 키워주고 내세워준 조선로동당에 대한 다함없는 감사와 신뢰심으로 충만된 청년학생들의 야회가 시간이 갈수록 성황을 이루는 가운데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김일성광장주석단에 나오시였다.
이어 불야경을 이룬 광장에 《우리는 혁명의 계승자》의 노래가 장중하게 울려퍼지면서 어버이수령님의 영상을 모신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기발을 선두로 한 청년전위들의 장엄한 홰불행진이 시작되였다.
승리의 대축전장으로 달려온 청춘들의 기백과 열정의 분출인양 불의 대하를 이룬 김일성광장바닥에 백두산모형과 붉은기 등이 련이어 홰불로 새겨지는가 하면 위대한 당의 선군령도를 충직하게 받들어갈 수백만 청년학생들의 피끓는 맹세의 불길인양 《김일성》, 《김정일》, 《조선로동당》, 《선군정치》, 《일심단결》, 《강성대국》 등의 글발을 새긴 홰불대오가 용용히 굽이쳐갔다.
장하고 믿음직한 청년들의 기백넘친 홰불행진대오를 대견하게 바라보시면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 형상수준이 매우 높은데 대하여 높이 평가해주시고나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홰불행진참가자들이 주체혁명위업계승의 홰불봉을 높이 들고 당의 령도따라 선군혁명천만리를 걸어갈 혁명적의지와 불굴의 기상을 과시하였는데 우리 청년학생들이 정말 장합니다. 다른 나라들에서는 홰불행진을 우리 나라에서처럼 할 엄두도 내지 못할것입니다. 오늘 홰불행진과 같은 멋있는 행사는 오직 당에 끝없이 충직한 우리 청년학생들만이 할수 있습니다.》
그이의 높은 뜻을 가슴깊이 새겨안은듯 활활 타오르는 홰불봉을 억세게 틀어쥔 청년학생들은 이번 홰불행진을 통하여 조선로동당을 선군혁명의 강위력한 향도적력량으로 건설하시고 부강조국의 존엄과 불패의 국력을 만방에 떨쳐가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불멸의 업적을 장쾌한 불의 흐름속에서 서사시적화폭으로 펼쳐보이였다.
청년학생들의 야회 및 홰불행진이 끝나자 폭풍같은 《만세!》의 환호성이 울려나오고 경축의 축포가 터져올라 10월의 밤하늘을 환희롭게 장식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열광적으로 환호하는 행사참가자들에게 손을 들어 답례를 보내시였다.
조선로동당창건 60돐을 성대히 경축한 이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당, 군대, 국가책임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조선로동당창건 60돐을 성대히 경축한것은 우리 당과 선군조선의 필승불패의 위력을 과시한 력사적사변이다》라는 력사적인 담화를 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담화에서 당의 선군혁명령도밑에 나라와 민족의 존엄을 높이 떨치며 사회주의강성대국건설을 위한 총진군운동을 힘있게 다그쳐나가고있는 력사적시기에 조국해방 60돐을 기념한데 이어 당창건 60돐을 맞이한것은 우리 당과 인민에게 있어서 류례없는 대경사이라고 하시면서 조선로동당이 걸어온 60년의 투쟁력사를 총화하시였다.
그리고 온 나라가 혁명적앙양과 열정으로 들끓고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있는 속에서 영광스러운 조선로동당창건 60돐 경축행사들이 성대히 진행된데 대하여 그 하나하나를 높이 평가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번에 진행된 당창건 60돐경축 열병식과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 청년학생들의 야회와 홰불행진들은 그 규모와 내용, 형식에 있어서나 조직성과 규률성, 사상예술성에 있어서 최상의 수준이였으며 그 어느것이나 다 우리 나라에서만 펼쳐보일수 있는 빛나는 화폭들이였다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오늘 진행된 조선인민군 장병들의 열병식이 아주 잘되였습니다. 내가 이미 말하였지만 당창건 60돐을 맞으며 진행하는 행사들가운데서 열병식이 기본입니다. 열병식을 잘하는것은 우리 당의 선군정치의 위력, 혁명적무장력의 위력을 내외에 힘있게 시위하는데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집니다. …
오늘 열병식에 참가한 조선인민군 장병들과 조선인민경비대, 로농적위대, 붉은청년근위대 대원들, 혁명학원 학생들이 열병식을 높은 수준에서 진행하여 혁명의 수뇌부두리에 굳게 뭉친 우리 당과 군대와 인민의 일심단결의 위력과 필승불패의 군력을 온 세상에 다시한번 힘있게 시위하였습니다.》
이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청년학생들의 홰불행진도 아주 잘되였다고, 콤퓨터로 형상한것보다도 나은것 같다고 치하하시면서 특히 바닥대렬성원들이 더 잘한다고, 바닥대렬에 참가한 학생들을 높이 평가해주어야 하겠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또한 당창건 60돐을 경축하여 진행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이 아주 훌륭하다고 하시면서 공연이 조금도 나무랄데가 없고 흠잡을데가 없는 훌륭한 작품, 그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대걸작이라는데 대하여 세부적인 내용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지적해주시였다.
그러시면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창작성원들과 출연자들이 올해에 국가적인 중요명절들을 계기로 진행된 행사들을 보장하느라고 정말 수고를 많이 하였다고 은정어린 말씀을 하시였다.
조선로동당창건 60돐 경축행사 참가자들에 대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믿음과 사랑은 여기에만 그치지 않았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전체 열병식 참가자들에게 친히 감사를 보내주시고 은정넘친 선물도 안겨주도록 하시였을뿐아니라 홰불행진참가자들의 수고를 높이 평가하시고 그들에게도 감사를 주시였다.
그러시고도 주신 사랑이 적으신듯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10월말 어느날에는 청년들이 혁명의 홰불봉을 받아안은 때로부터 10돐이 되는것을 계기로 홰불행진기념메달을 새롭게 제정하여 당창건 60돐경축 홰불행진참가자들에게 수여할데 대한 은정어린 조치를 취해주시였고 얼마후 친히 홰불행진기념메달도안도 보아주시며 세심히 지도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크나큰 믿음과 사랑에 의하여 수만명의 청년학생들에게 홰불행진기념메달이 수여되였다.
조선로동당창건 60돐을 승리자의 대축전으로 빛나게 장식한 여러가지 성대한 경축행사들을 통하여 선군조선은 다시한번 선군의 위력, 일심단결의 위력으로 강성국가를 향하여 힘차게 전진하는 담찬 모습을 온 세상에 남김없이 과시하였다.
아직도 당창건 60돐경축의 열기가 굽이치고있는 10월말 후진타오총서기의 우리 나라에 대한 공식친선방문이 진행되였다.
후진타오총서기의 평양방문은 력사의 온갖 시련을 이겨낸 전통적인 조중친선을 세기를 이어 더욱 공고발전시키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였으며 뜻깊은 사변들을 안고있는 2005년을 빛나게 장식하는 력사적계기로 되였다.
천만군민은 커다란 민족적긍지와 자부심, 주체위업승리의 신심을 다시금 가다듬으며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선군혁명령도를 받들어 강성국가의 그날을 앞당겨나가기 위한 총진군의 발걸음을 더욱 힘차게 내디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