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모든것을 선군의 요구대로!
선군시대 새 문화의 창조자로
선군시대 새 문화의 빛나는 모범
선군시대는 사람들의 문화생활조건과 환경도 새로운 높이에 올라설것을 요구하였다.
혁명의 주력군인 인민군대를 앞세워 혁명적이며 전투적인 문화를 창조하며 그것을 온 사회에 파급시켜 선군시대의 새 문화가 만발하게 하시려는것이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구상이고 의도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높은 뜻을 받들고 인민군군인들은 항일유격대의 투쟁기풍, 생활기풍을 본받아 병실은 물론 문화시설들과 후방시설들을 정신이 번쩍 들게 잘 꾸려놓았으며 생활도 문화정서적으로, 윤택이 나게 해나갔다.
인민군군인들속에서 발휘되는 문화창조열풍에서는 선군시대의 기상과 정신이 맥박치고 전투적랑만과 풍만한 정서가 넘쳐났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에서 창조되는 사회주의생활문화의 아름다운 화폭을 더없이 소중히 여기시며 그것을 온 나라가 따라배워야 할 모범으로, 본보기로 내세워주시였다.
주체91(2002)년 7월 어느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의 어느 한 군관학교를 찾아주시였다.
류례없이 간고했던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 자체의 힘으로 학교의 물질적토대를 튼튼히 꾸리고 생활문화와 교육환경을 높은 수준에서 보장하여 수많은 지휘관들을 키워낸 군관학교의 문화교양 및 후방시설들은 어디를 보나 훌륭하였다.
그이께서는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정말 훌륭하다고, 학교를 아주 잘 거두었다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나는 보다보다 이렇게 잘 꾸린데는 처음 보았습니다.》
그이께서는 이런데서 교육을 받는 학생들은 앞으로 졸업하고 구분대들에 나가서 자기가 학교생활기간 배우고 보고 체험한대로 구분대관리를 잘하기 위하여 노력하게 될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군인회관안에 들어가시여 훌륭히 꾸려진 홀이며 좌석수와 방음장치까지 료해하신 그이께서는 군인회관이 정말 훌륭하다고, 이렇게 건물을 잘 짓고 보수도 잘하면 후세에 떳떳이 남길수 있다고 높이 평가하시고 식당에 들리시여서는 부대들에서 군사복무를 하다가 이런데 와서 식사를 하면 얼마나 좋아하겠는가고 하시며 식탁곁에 있는 의자를 꺼내시여 자리에 앉아보기도 하시였다.
보시는것 하나하나가 다 그이의 마음에 꼭 들게 꾸려져있었다.
콩나물재배장과 취사장도 돌아보시면서 친히 남새가공방법도 가르쳐주시고 학교의 후방기지리용정형도 료해하신 장군님께서는 학교일군들과 교직원, 군인들이 고난의 행군시기 허리띠를 졸라매며 후방기지들을 꾸렸다고 하는데 이제는 그 덕을 톡톡히 볼수 있게 되였다고 하시며 못내 기뻐하시였다.
장군님으로부터 분에 넘치는 치하를 받은 지휘관들의 눈앞으로는 고난의 행군, 강행군의 어려운 시기에 무릎까지 빠지는 진펄을 파제끼고 양어장을 건설하던 일이며 실패를 거듭하면서 토끼종축장과 버섯재배장을 꾸리던 일, 현대적인 교직원살림집들까지 련이어 일떠세우던 날과 달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그 나날에 이들은 모든것이 부족하였지만 장군님의 가르치심대로만 투쟁한다면 잘살수 있다는 신념, 어떻게 하나 교육단위의 면모를 손색없이 갖추어나가겠다는 일념으로 모두가 떨쳐일어나 뛰고 또 뛰였다.
교직원들과 학생들의 간고분투의 투쟁정신과 노력을 누구보다 깊이 헤아리시고 치하해주시는 장군님이시였다.
이윽고 그이께서는 일군들을 둘러보시면서 기분이 좋은데 걷자고 하시며 살구나무가 줄지어 늘어선 구내중심도로를 천천히 내리시였다.
걸음을 옮기시면서도 그이께서는 경치가 아주 좋다고, 이 학교는 지형도 좋고 학교관리운영도 잘하였다고 또다시 그들의 수고를 치하하시였다.
그러시다가 그이께서는 《나는 구내중심도로를 따라 들어오면서 잘 꾸려진 주위환경과 현대적인 군인회관건물을 보고 우리가 새로 건설한 어느 한 중앙기관청사구내로 들어서는듯 한감을 느꼈습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바람에 유쾌한 웃음이 터져올랐다.
참으로 크나큰 기쁨과 행복이 넘쳐흐르는 감격의 순간이였다.
시간도 퍼그나 흘러 정오를 가까이 하면서 내려쬐는 7월의 뙤약볕에 구내길은 달아오를대로 달아올라 더운 기운을 확확 뿜어올렸다.
모두가 땀에 젖어드는 장군님의 옷자락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며 마음을 조이는데 그이께서는 오늘 날씨가 대단히 무덥고 옷은 땀에 젖었지만 외부와 내부를 휴양소처럼 정결하게 꾸려놓은 학교를 돌아보니 정신이 번쩍 들고 하나도 힘든줄 모르겠다고 하시며 일군들과 이윽토록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장군님께서는 군관학교가 지금까지 시찰한 단위들가운데서 제일 훌륭하다는 최상의 평가를 주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군관학교는 가장 어려웠던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에 선군시대 새 문화의 빛나는 모범을 창조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 인민군대의 혁명적군인정신이 낳은 또 하나의 고귀한 산물입니다.》
선군시대 새 문화의 빛나는 모범.
자기들을 격동적인 선군시대 문화창조의 앞자리에 내세워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치하의 말씀은 일군들의 가슴을 벅찬 흥분으로 들먹이게 했다.
학교의 직속구분대까지 돌아보시며 병사들의 생활을 세심히 보살펴주신 장군님께서는 구분대의 외부와 내부를 휴양소처럼 정결하게 꾸리고 살림살이를 깐지게 하고있는데 대하여 커다란 만족을 표시하시면서 군인들속에서 발휘되고있는 숭고한 애국정신을 높이 평가하시였다.
비록 그것이 세상을 놀래우는 기적적인 일은 아닐지라도 인민군군인들의 지성과 땀이 슴배여있고 본보기로 될만 한것이라면 더없이 만족해하시며 애국심의 발현으로 값높이 평가해주시고 내세워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이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전군, 전국이 이 군관학교의 부대관리모범과 투쟁기풍, 생활기풍을 따라배우기 위한 사업을 힘있게 벌릴데 대하여 가르쳐주시고 친히 참관대상과 참관조직에서 나서는 구체적인 문제들까지 일일이 가르쳐주시였다.
그로부터 며칠후 인민군지휘성원들과 자리를 함께 하신 장군님께서는 군관학교가 모든것이 부족하고 어려웠던 고난의 행군시기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자체의 힘으로 이악하게 투쟁하여 학교의 교육환경은 물론 물질생활토대와 문화후생시설들을 최상의 수준에서 갖추어놓고 잘 관리한데 대하여 치하하시면서 이런 뜻깊은 말씀을 하시였다.
《내가 …군관학교를 높이 평가하고 내세워주는것은 학교에서 인민군대가 선군시대 새 문화의 창조자라는것을 과시하였다는 사정과도 관련됩니다. 나는 최근에 지난 시기에는 로동계급이 새 문화의 창조자라고 하였지만 선군시대에는 인민군대가 새 문화의 창조자라는 사상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군관학교에서 이 사상의 정당성을 실천으로 증명하였습니다.》
선군시대의 새 문화를 창조해가는 인민군대의 투쟁기풍에 대한 커다란 만족감이 어린 가르치심이였다.
이렇듯 새 문화창조의 불바람을 일으켜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선군시대 새 문화창조의 주인공들인 인민군군인들을 찾아 끊임없는 시찰의 길을 이어가시였다.
어느해 가을 인민군대의 한 부대를 찾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안광에는 부대에 처음 들어서실 때부터 기쁨이 실려있었다.
규모있게 둘러앉은 지휘부청사며 여러 건물들, 가을계절의 풍치를 한껏 돋구는 수림화된 병영…
마치 훌륭하게 꾸려진 휴양소이런듯 풍치도 기막히지만 부대일군들과 군인들의 생활기풍을 엿볼수 있게 하는 생활설비들 또한 멋들어지기 그지없었다.
《내가 보기에는 우리 나라 군대의 생활기풍을 따를 군대는 세상에 없다고 봅니다.》
갱도식랭동고를 돌아보시며 만족을 표시하신 장군님께서는 최근에 인민군대에서 자기들이 사는 부대, 구분대병영을 알뜰히 꾸리고 자체로 생활문제를 풀기 위하여 군종, 병종에 관계없이 모두 한마음한뜻이 되여 노력하고있는것은 아주 좋은 일이라고 하시면서 인민군대의 어느 단위에 가보아도 군인들이 병영을 꾸리고 관리하는데 모두가 주인답게 참가하고있으며 선군시대의 새 문화를 창조하는데서 한몫하고있다고 인민군군인들의 로력적투쟁을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이어 그이께서는 격조높은 어조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혁명군대인 우리 인민군대가 오늘 선군정치시대의 새 문화를 창조하고있다고 볼수 있습니다.
지난 시기에는 로동계급이 하이칼라문화를 창조하였다면 우리 나라는 지금 선군정치시대이기때문에 군대가 우리 시대의 문화를 창조하고있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대단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 보게 해야 합니다.
전군, 전사회가 이 동무들의 투쟁정신, 투쟁기풍과 살림살이방법을 따라배워야 하겠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얼마나 기쁘시였는지 벽에 성에가 하얗게 불린 갱도식랭동고안에 그대로 서시여 군인들의 성과를 치하하시였다.
부대일군에게 최고사령관의 특별표창을 하도록 할데 대해 말씀하신 그이께서는 다시금 《특별표창이요.》라고 찍어서 강조하시였다.
순간 일군들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전투훈련에서 공적을 세운것도 아니고 부대병영을 훌륭히 꾸리고 생활조건을 본때있게 갖추어놓은 일군에게 최고사령관표창을, 그것도 특별표창을 하시겠다고 하시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천천히 밖으로 나오시던 장군님께서는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시더니 그 일군에게 다시금 대견한 시선을 보내시며 대단하다고,최고사령관권한으로 감사를 준다고 말씀하시였다.
북받쳐오르는 격정을 애써 누르고있던 부대의 책임일군은 끝내 격정의 눈물을 쏟고야말았다.
형언할수 없는 감동의 격류가 그 자리에 참가한 모두의 가슴속에 세차게 흘러넘쳤다.
일군들은 선군시대의 새 문화가 바로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러한 분에 넘친 사랑과 믿음속에서 창조되는것이구나 하는 강렬한 느낌을 금할수 없었다.
선군시대의 새 문화창조의 앞장에 인민군대를 내세워주시고 믿음과 사랑으로 이끌어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크나큰 심혈과 로고속에 인민군대의 새 문화창조열풍은 온 나라에 타번져갔다.
선군시대의 새 문화가 창조되던 나날은 경애하는 장군님과 인민군장병들사이에 끊을래야 끊을수 없는 혈연의 정이 뜨겁게 흐른 사랑과 충정의 날과 달이기도 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92(2003)년 2월의 어느날 어느 한 군관학교를 찾으시였다.
울창한 수림으로 뒤덮인 병영이며 교육기관의 특성에 맞게 여러가지 상식들과 공식판들로 교육환경을 조성한 야외휴식장…
군관학교의 전경은 누구나 감탄할만큼 훌륭하였다.
장군님께서는 군관학교에 들어서니 정신이 번쩍 들고 기분이 대단히 좋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저기를 보시오. 학교구내에 수림이 울창하니 얼마나 희한합니까?
인민군대는 정치사상적으로, 군사기술적으로 튼튼히 준비되여있을뿐아니라 살림살이도 깐지게 하고있습니다.》
만면에 환하신 미소를 지으시고 학교전경을 오래도록 부감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군인회관앞마당에 이르시여 다시금 걸어오신쪽을 바라보시며 《최고야 최고.》라고 하시며 엄지손가락을 흔드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오늘 대단히 만족하다고, 교직원들에게 내가 높이 평가한다는것을 알려주라고 거듭 말씀하시였다.
그토록 만족해하시는 장군님을 우러르는 일군들의 눈앞에는 교직원들과 학생들이 땀흘려 학교구내를 수림화하고 공원과 같이 꾸려온 일들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들은 장군님께서 평가해주신 단위의 경험을 빠짐없이 본받으며 그이께서 하라고 하고 좋다고 평가하신 모든것을 100% 그대로 받아들이고 구현하는것을 목표와 기준으로 삼고 투쟁하였다. 그 나날에 밤길도 웃으며 달려갔고 한번 해서 안되면 두번, 세번, 열번을 고쳐하면서 오늘의 성과를 가져왔다.
학교의 일군들로부터 그에 대한 보고를 받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못내 감동되시였다.
《…교직원, 학생들이 자나깨나 나를 기다리며 내가 인민군부대들과 군사교육기관들을 현지시찰하면서 좋다고 평가한것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고 학교를 오늘과 같이 꾸렸다고 하는데 그들의 정신세계가 정말 훌륭합니다.》
사람도 산천도 선군의 모양대로 가꾸어가는 선군시대의 새 문화.
정녕 장군님은 병사들을 제일로 믿고 사랑하시고 병사들은 장군님만을 우러러따르는 그 위대한 믿음과 충정이 인민군대를 선군시대 새 문화의 창조자, 향유자로 되게 한 원동력이였다.
온 사회에 세찬 파문을 일으키며 번져간 인민군대의 새 문화창조열풍은 선군시대의 한페지를 아름답게 장식한 또 하나의 풍경이였다.
선군시대 군중문화예술의 본보기-군인가족예술소조공연
주체93(2004)년 5월, 평양에서는 제7차 군인가족예술소조경연이 진행되고있었다.
평범하고 소박한 군인가족들이 밝고 화려한 극장무대에서 수많은 관중의 박수갈채속에 노래와 춤을 펼쳐보인 경연무대.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 커다란 감화력과 견인력, 생활력으로 하여 군대와 인민에게 승리의 신심과 락관, 창조와 투쟁의 희열과 랑만을 안겨준 군인가족예술소조경연은 어느덧 7번째의 년륜을 아로새기고있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 한달동안에만도 무려 3차례에 걸쳐 제7차 군인가족예술소조경연에 참가한 단위들의 공연을 관람하시였다.
공연에서 군인가족예술소조원들은 혁명적이며 전투적인 노래와 춤, 생활적인 이야기와 높은 수준의 기악연주를 생동하게 펼쳐보이면서 남편들과 나란히 조국보위초소에서 혁명의 수뇌부를 결사옹위해가는 자기들의 확고한 신념과 의지를 격조높이 구가하였다.
공연은 예술적기량도 훌륭하였지만 사상적내용에 있어서도 사회의 그 어디에서도 볼수 없는 훌륭한것이였다.
경연에 참가한 여러 단위들의 공연을 보아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인민군지휘성원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군인가족예술소조공연은 선군시대 군중문화예술의 본보기이라는 내용의 담화를 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이번에 공연을 대단히 잘하였다고, 《군중문화예술로서는 최고의 최고입니다.》라고 과분한 평가를 주시고나서 감회깊이 말씀하시였다.
《군인가족예술소조경연은 내가 고난의 행군시기에 발기한 선군예술축전입니다. 군인가족예술소조공연은 해마다 경연을 전통화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였으며 그 사상정신적영향력과 뚜렷한 개성으로 하여 선군시대 군중문화예술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그이의 음성은 군인가족예술소조경연이 탄생의 고고성을 울리던 고난의 행군시기에 대한 추억과 오늘에 올라선 비약적인 발전면모, 거대한 생활력에 대한 자부로 하여 일군들의 가슴을 뜨겁게 적셔주면서 격동적으로 울리였다.
《지금까지 7차에 걸쳐 진행한 군인가족예술소조경연은 예술을 대중화할데 대한 당의 방침의 정당성과 생활력, 선군시대에 창조된 새 문화의 자랑찬 면모를 뚜렷이 과시하였습니다. 특히 이번 공연은 지난 기간 쌓아올린 성과들을 토대로 하여 높은 사상예술성과 군중성, 뛰여난 예술적기량을 완벽하게 보여준것으로 하여 선군시대 군중문화예술의 훌륭한 본보기로 됩니다.》
선군시대 군중문화예술의 본보기.
참으로 깊은 뜻이 담겨져있는 말씀을 받아안는 일군들에게는 한해전 그이께서 제6차 군인가족예술소조경연에서 당선된 단위들의 공연을 보아주시던 날의 못 잊을 추억이 되살아났다.
그때 머나먼 전선길에서 두개 단위의 군인가족예술소조공연을 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에서 이번까지 군인가족예술소조경연을 6차 하였는데 그사이에 공연수준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고 못내 만족해하시였다.
그이께서는 합창도 잘하고 소품들도 좋다, 5병창이야기 《배우자》는 아주 특색있게 잘한다, 실화시극 《우리도 병사로 산다》도 잘한다, 주인공역을 하는 동무가 노래도 잘한다고 치하해주시였다.
화술도 좋고 노래도 잘하는 군인가족, 그는 바로 병사시절 장군님을 모시고 노래를 불러드린 깊은 인연을 간직하고있는 녀성이였다.
일군들이 그에 대해 말씀드리자 장군님께서는 누구보다 첫눈에 벌써 그를 알아보신듯 못 잊을 그날의 사연을 가슴뜨겁게 외우시였다.
내가 어느 한 공장을 현지지도할 때 그를 만나본 일이 있다. 나는 그날 공장을 료해하는 과정에 내가 감나무중대에 갔을 때 화력복무훈련을 보아준 포성원들이 공장에 와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래서 그들을 불러 화력복무훈련을 시켜보고 앞으로 훌륭한 녀성해안포병이 되라고 고무하여주었다. 화력복무훈련이 끝나자 귀엽게 생긴 한 군인이 내앞에서 노래를 불러보겠다고 하였다. 그가 바로 《우리도 병사로 산다》에서 주인공역을 한 동무이다. 지금도 내앞에서 눈물을 머금고 맑고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던 그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흘러간 그날의 이름없는 평범한 녀병사를 잊지 않으시고 군인가족예술소조경연무대에서 다시 보게 된것이 그리도 기쁘시여 깊은 감회속에 추억해주신 경애하는 장군님.
그이의 추억은 흘러간 나날의 못 잊을 사연에 대한 단순한 회고가 아니였다. 그것은 군인가족들에 대한 장군님의 날로 뜨거워만 가는 믿음이였고 살같이 흐르는 세월도 실어갈수 없는 그이의 소중한 사랑의 세계였다.
경연에 참가한 군관의 안해들이 두고 온 부업밭에 씨붙임을 못해 걱정할세라 사랑의 전신명령을 내리신분도, 주역을 맡았던 한 군인가족이 산원에서 장군님을 모시고 공연한 소식을 듣고 잠 못 든다는것을 아시고는 그가 얼마나 섭섭해하겠는가고 하시며 어서 찾아가 위로해주라고, 아기이름을 《경연》이라고 한다는데 아기를 축복해서 옷도 보내고 그 어머니에게도 공연참가자들과 꼭같이 선물을 안겨주도록 친어버이의 정을 베풀어주신분도 경애하는 장군님이시였다.
군인가족들을 최고사령부의 작식대원이라 불러주시며 화려한 극장무대에도 세워주시고 순회공연을 다니는 군인가족예술소조원들을 위하여 국가행사때 쓰는 렬차를 전용으로 쓰도록 은정어린 조치도 취해주신 그 나날에 군인가족예술소조공연은 선군시대의 자랑으로, 군중예술의 본보기로 발전했던것이다.
뜨거움에 젖어있는 일군들의 심금을 울리며 장군님의 말씀은 계속되였다.
《제7차 군인가족예술소조공연은 수령결사옹위, 결사관철의 총대정신, 총대기상이 차넘치는 공연입니다. 한마디로 말하여 공연의 사상적대가 뚜렷합니다.》
장군님께서는 이어 작품들의 실례를 하나하나 들어가시며 분석해주시였다.
대화시들인 《우리는 못 잊습니다》, 《장군님 야전복 잊지 않으리》와 같은 작품들에는 나와 함께 고난의 행군, 강행군길을 헤쳐온 그 나날들을 영원히 잊지 않고 앞으로도 최고사령부 작식대원, 선군시대 녀성혁명가답게 살며 싸워가려는 군인가족들의 철석같은 의지가 반영되여있다. 이번 공연무대에 내가 인민군부대들을 현지시찰할 때 있었던 실재한 사실들에 기초하여 만든 작품들도 많이 내놓았는데 감회가 새롭다. 거기에는 예술적허구가 별로 없다. 대화시 《사랑의 불빛》은 내가 최전연에 위치한 어느 한 군부대에 풍력발전기를 놓아준 사실을 작품에 담았고 대화시 《장군님과 비행사가족》은 내가 갈마휴양소에서 만났던 비행사부부의 가정을 찾은 이야기를 그대로 작품에 재현해놓은것이다. 대화시 《사랑과 믿음의 절정에서 우리 삽니다》와 《사랑의 보금자리》도 실지 있은 사실을 가지고 작품을 엮었는데 그 어떤 시련속에서도 최고사령관만을 믿고 당의 선군혁명령도를 받드는 길에 한목숨 기꺼이 바쳐갈 군인가족들의 신념과 의지를 잘 보여주었다. 이번에 거의 모든 단위들이 가요 《내 나라의 푸른 하늘》을 가지고 작품들을 만들어 내놓았는데 형상수준이 아주 높다. …
열정적으로 말씀하시는 그이의 눈빛에는 군인가족들에 대한 뜨거운 정이 어려있었다.
어이하여 그이께서는 선군령도로 분망하신 속에서도 연 3일에 걸쳐 여러 단위의 군인가족예술소조공연을 보아주시고 오랜 시간을 바쳐 개별적인 작품들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분석해주시는것인가.
최고에 최고의 군중문화예술이라고 하시며 군인가족예술소조공연을 선군시대 군중예술의 본보기로 그토록 내세워주시는 까닭은 어데 있는가.
일군들의 이런 생각에 명백한 대답을 주시는듯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말씀을 이으시였다.
《제7차 군인가족예술소조공연을 보면 현시기 당의 사상과 의도가 명백히 안겨옵니다. 그 어느 작품에서나 우리 당의 군사중시, 총대중시사상과 선군시대 인간들이 지녀야 할 혁명적수령관, 혁명적인생관에 대하여 깊이있게 반영하고있는 여기에 군인가족예술소조공연이 선군시대 군중문화예술의 본보기로 되는 주요한 근거가 있습니다.》
당의 사상과 의도, 선군시대 인간들이 지녀야 할 사상정신적지향을 예술적화폭으로 깊이있게 반영한 여기에 본보기로서의 가치가 있다는 심오한 가르치심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제7차 군인가족예술소조공연은 예술의 대중화측면에서도 군중문화예술의 요구를 훌륭히 구현하고있다고 하시면서 예술이 대중화되자면 대중과 호흡이 맞아야 한다, 다시말하여 통속적이여야 한다, 군인가족예술소조공연은 언제 보아도 진실하고 구수하며 생동하고 열정적이여서 좋다, 이번 공연에 내놓은 작품들도 모두 통속적이고 흙냄새가 난다고 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특히 어느 한 군부대를 짚으시며 군인가족예술소조원들이 자기 단위의 특성을 살리면서 통속적으로 공연을 잘하였다고 하시고나서 사연깊은 시선으로 일군들을 둘러보시였다.
사실 그 군부대 군인가족예술소조공연은 제1차 군인가족예술소조경연때 경애하는 장군님으로부터 화학빨래를 한것처럼 너무 말쑥하다는 지적을 받았었다.
하지만 7차때에는 군인가족들의 생활을 생동하고 진실하게 반영한 작품을 만들어 공연한것이 그리도 기쁘시여 장군님께서는 이번에는 공연을 통속적으로 잘하였다고, 비유하여 말한다면 향수내 풍기던 신사멋쟁이가 흙냄새나는 푸수한 농사군이 되였다고, 자신께서 바라는 군중문화예술은 바로 이런것이라고 해학적인 비유를 담아 치하해주시였다.
그이께서 말씀하시는 흙냄새, 바로 여기에는 군인들을 위해 한생을 묵묵히 바쳐가며 거기에서 참된 삶의 보람과 긍지를 느끼는 군인가족들이기에 예술공연에서도 진실하고 소박하며 용감하고 강인담대한 군인들의 생활정서가 그대로 반영되여야 한다는, 훈련에서 흘린 땀으로 사시장철 마를새 없는 병사들의 군복에서 풍겨오는 전투적이고 혁명적인 군복냄새가 풍겨야 한다는 깊은 뜻이 담겨져있다.
향수내 풍기는 신사멋쟁이와 흙냄새나는 푸수한 농사군.
일군들은 그 비유에서 그이께서 바라시는 선군시대 군중문화예술의 진짜 향기를 피부로 느낄수 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좌중의 격양된 분위기를 느끼신듯 이번에 진행된 군인가족예술소조공연이 정말 잘되였다고, 선군시대의 요구에 맞게 인민군대가 모든 면에서 사회의 본보기가 될데 대한 당의 의도대로 선군시대 새 문화창조에서 군인가족들이 훌륭한 모범을 보여준것으로 하여 이번 공연의 인식교양적의의는 매우 크다고 격조높이 말씀하시였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자신께서 보아준 군부대의 전체 군인가족예술소조원들에게 감사를 전달해줄데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이번에 군인가족예술소조원들이 평양시를 한번 들었다놓아야 하겠다고 하시며 그와 관련한 은정어린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제7차 군인가족예술소조경연에 참가한 군인가족들에게 대를 두고 전해갈 귀중한 선물과 함께 연회도 차려주도록 하시고 그들이 돌아갈 때에는 그동안 헤여졌던 남편들에게 가는데 어떻게 빈손으로 가겠는가, 아이들한테도 그냥 갈수 없다시며 식료품을 가슴가득 안겨주시였다.
장군님의 심중에 차넘치는 군인가족들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크고 뜨거운것인가를 다시한번 절감하는 일군들의 귀가에는 언제인가 어느 한 군부대 군인가족들의 예술소조공연을 보아주신 장군님께서 절절한 음성으로 하시던 말씀이 들려왔다.
나는 오늘 군인가족들의 열렬한 사상정신세계가 반영된 공연을 보면서 이렇게 훌륭한 우리 인민을 위하여 더 많은 일을 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시금 굳게 다지였다. 어떤 때는 너무 힘들어 좀 쉬고싶은 생각도 들지만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저런 인민을 생각하면 순간도 휴식할수가 없다. 우리는 인민을 위하여 우리 대에 한가지라도 더 많은 일을 하여야 한다. …
훌륭한 우리 인민을 위하여!
바로 절세의 위인의 이런 헌신적이고 열렬한 사랑의 손길이 소박하고 평범한 군인가족들을 명배우로 키워내고 고난의 그 나날 누구도 생각지 못한 군인가족들의 예술소조공연이라는 화려한 무대를 펼쳐놓았으며 선군시대 군중문화예술의 본보기를 창조하였던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은정깊은 지도와 각별한 보살피심속에 선군시대 군중문화예술의 본보기-군인가족예술소조공연은 그후에도 계속 자기의 만점짜리 화폭을 세상에 펼쳐놓고있다.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높여주시려
민족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 우수한 전통은 대를 두고 길이 전해갈 귀중한 문화유산이며 재보이다.
민족의 자랑이고 재보인 민족문화유산을 선군시대의 요구에 맞게 더욱 빛내주시려는것이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결심이고 의지였다.
그이의 심장을 가득 채운 조국과 민족에 대한 열렬한 사랑은 력사문화유적들마다에 뜨겁게 어려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오랜 력사문화유적의 하나인 량천사를 찾아주신것은 주체91(2002)년 6월초 어느날이였다.
함경남도 고원군 고원읍에서 서쪽으로 약 5㎞정도 떨어져있는 동흥산기슭의 묘한 골안에 자리잡고있는 량천사는 753년에 건설된것으로서 천수백여년의 력사를 자랑하고있다.
량천사는 석가모니불상을 앉힌 대웅전을 중심으로 여러채의 건물로 된 비교적 큰 사찰이였으나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미제의 야수적폭격으로 많은 건물이 타버리고 현재는 대웅전, 만세루, 무량수전 3개의 건물만 보존되여있다.
이에 대한 해설을 주의깊게 들어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절이 아주 크다고 하시면서 천천히 대웅전 돌계단을 오르시였다.
장군님을 높은 돌계단으로 모시는것이 죄송스러워 관리원이 계단이 좀 높다고 말씀드리자 그이께서는 대웅전의 계단이 높은것은 본래 그렇게 만든것일거라고 소탈하게 말씀하시며 그 높은 돌계단을 성큼성큼 오르시여 대웅전에 들어서시였다.
대웅전에는 크고작은 불상들과 함께 복숭아를 쟁반에 받쳐든 두 녀인을 중심으로 20여명의 인물들이 북과 징, 피리와 퉁소, 가야금과 소라 등 민족악기를 연주하며 춤추는 장면을 형상한 무악도를 비롯한 많은 그림들이 천수백여년전의 원색그대로 보존되여있었다.
대웅전의 특색있는 그림들을 하나하나 보아주신 장군님께서는 대웅전 천정에 그려놓은 무악도를 비롯한 그림들을 아주 잘 그렸다고, 천정에 그린 장생불로하는 신선물이라는 복숭아를 쟁반에 받쳐들고있는 두 녀인의 눈이 사람들이 이쪽저쪽으로 왔다갔다 할 때 같이 움직이는것 같다고 하시며 인물을 형상한 그림이 이렇게 립체감이 나는것은 여기밖에 없을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많은 세월이 흐른 오늘까지도 원색그대로 보존되여있는 그림들을 하나하나 주의깊게 보아주시며 옛날의 오랜 그림들을 잘 보존했다고 치하해주시였다.
이어 장군님께서는 만세루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만세루는 산경사지에 터를 닦지 않고 자연적인 주추돌우에 아름드리 돌기둥을 다듬어서 세우고 나무기둥을 련결한 다음 그우에 수평으로 나무마루를 깔고 그우에 다시 키높은 20개의 나무기둥을 세워서 웅장하고 경쾌한 겹처마합각지붕을 떠받들게 한 독특한 건축물이다.
앞으로 보면 2층다락으로 되여있고 뒤로 보면 단층으로 된 만세루는 원래 승려들이 글쓰는 장소로 리용하던 곳인데 리조시기에 와서 불교가 유교에 밀려 배척당한 이후로부터 량반들의 놀음터로 되여왔다.
만세루에 들어서신 장군님께서는 말씀하시였다.
《만세루가 큽니다.》
그이께서는 우리 나라의 절루정으로서는 제일 큰것 같다고 하시며 전망을 부감하시였다.
동쪽으로 150리앞이 탁 틔여있어 고원벌, 천내벌, 금야벌이 한눈에 바라보이고 로동당시대의 빛나는 창조물로 태여난 광명성제염소까지 멀리 륜곽적으로 안겨오고있었다.
원산만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시며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여기 량천사에 거점을 두고 용감하게 싸운 고원인민유격대의 투쟁이야기도 들어주시고 버릇없이 올리는 육담까지도 나무람없이 들어주신 장군님께서는 이어 무량수전까지 돌아보시며 그 건축학적특성에 대하여 명철하게 밝혀주시였다.
이날 선조들의 슬기와 재능이 깃들어있는 량천사를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돌아보신 장군님께서는 단청보색을 비롯하여 민족문화유산보존관리에서 나서는 원칙적문제들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우리 나라에는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귀중한 유적들이 많은데 그것은 우리 민족의 자랑이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력사문화유적들을 잘 보존관리하고 사람들속에서 그를 통한 교양을 잘하는것은 주체성과 민족성을 고수하고 애국심을 높여주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집니다. 력사문화유적들에는 우리 인민의 우수한 건축술과 뛰여난 예술적재능이 깃들어있는것만큼 보존관리사업에 특별한 관심을 돌려야 합니다.》
그러시면서 력사문화유적들을 원상대로 복구하는것도 우리 민족의 슬기와 문화적재보들을 후대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인민들의 가슴마다에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높여주시려 그토록 마음쓰시는 장군님의 애국, 애족의 뜻이 어려와 모두가 숭엄한 격정에 잠겨있는데 그이의 음성이 또다시 울리였다.
《모든 부문에서 력사문화유적들을 비롯한 우리 인민의 우수한 민족문화유산들을 옳게 살리고 빛내여나가기 위한 사업을 잘하여 인민들에게 조선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을 더욱 높여주어야 합니다.》
이렇듯 민족문화유산보존관리사업이 가지는 중요성을 명철하게 밝혀주신 장군님께서는 량천사에 보존되여있는 그림들이 아주 멋있고 특색있다고 다시금 평가하시면서 그것을 화첩에 담아 널리 소개하도록 해주시였다.
그리고 량천사는 로동당시대에 와서 인민들의 즐거운 문화휴식터로 되고있다고 하시면서 량천사가 보존되여있다는것을 알면 불교를 믿는 동포들과 다른 나라 사람들이 오겠다고 할수 있는데 와보게 하여야 한다고 은정어린 말씀도 하시였다.
어느덧 시간은 퍼그나 흘러 장군님께서 떠나실 시간이 되였을 때였다.
그런데 대웅전과 만세루, 무량수전을 다 돌아보신 장군님께서 력사유적해설문판쪽으로 걸음을 되돌려 옮기시는것이였다.
력사유적해설문판앞에 이르신 그이께서는 량천사가 753년에 세워진 절로서 정방산의 성불사나 구월산의 월정사보다 훨씬 더 먼저 세워졌는데도 원상대로 보존되여있다고 거듭 만족을 표시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떠나시기에 앞서 관리원에게 오늘 해설을 잘하였다고 과분한 치하의 말씀을 주시고 앞으로 공부를 많이 하여 량천사에 대한 해설을 더 잘하겠다는 그의 결의도 들어주시며 건강하여 일을 더 잘하기 바란다고 고무격려하여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량천사를 다녀가신 후에도 귀중한 민족문화유산을 더 잘 보존관리하도록 필요한 모든 대책을 다 세워주시는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한점의 력사유물도 귀중히 여기시며 그를 통한 애국주의교양을 강화하도록 하신데는 인민들이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문화를 가진 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을 간직하고 자기 대에 후세에 길이 남을 민족적재부를 더 많이 창조하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려나갈것을 바라시는 높은 뜻이 담겨져있었다.
거기에 바로 조국과 민족을 누구보다도 열렬히 사랑하신 절세의 애국자로서의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고결한 위인상, 위인적풍모가 있는것이다.
이렇듯 열렬한 조국애를 지니신 장군님이시기에 끊임없는 현지지도의 길에서 력사문화유적들을 찾고 또 찾으시며 민족의 우수한 문화유산이 선군시대에 그 빛을 더욱 찬연히 뿌리도록 하시였다.
주체92(2003)년 2월 어느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평안북도 박천군의 봉린산중턱에 위치하고있는 심원사를 소문없이 찾아주시였다.
꿈결에도 그리던 장군님을 이 외진 곳에서 만나뵙게 된 관리원은 미처 인사도 변변히 올리지 못하였다.
《수고합니다.》
이렇게 장군님께서는 외진 산골에서 한생을 묵묵히 바쳐가는 관리원의 수고를 먼저 헤아려주시였다.
이윽고 그이께서는 심원사의 연혁에 대한 해설을 들으시였다.
동창천 맑은 샘물이 흘러나오는 깊은 산골짜기에 있는 사찰이라는 뜻에서 이름지어진 심원사는 고려시기인 9세기경에 건설된 이후 14세기에 대보수를 하고 그후에 못쓰게 된 기와를 다시 얹은 다음 오늘까지 한번도 손을 대지 않은 원상 그대로의 사찰로서 선조들의 높은 건축술과 뛰여난 예술적재능을 보여주고있다.
특히 심원사의 보광전은 정방산에 있는 성불사의 응진전, 황해북도 연탄군 심원사의 보광전,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사의 무량수전과 함께 창설년대가 무려 1 000여년의 력사를 기록하고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날 고색창연한 사찰의 내부와 외부를 주의깊게 돌아보시였다.
보광전에는 불상을 비롯하여 가마, 목탁, 초대 등 적지 않은 유물들이 보존되여있었다.
관리원으로부터 각종 유물들에 대한 해설을 들으시며 몸소 가까이도 가보시고 좀 떨어져서 보기도 하시며 그것들을 유심히 살펴보시던 그이께서 천정으로 눈길을 보내시였을 때였다.
천정에는 불교의 례식때 쓰이던 운판을 비롯하여 봉황새와 룡을 부각한 각종 금단청문양들과 조각들이 옛 모습그대로 있었다.
관리원은 장군님께 그것을 가리켜드리며 심원사에 력대적으로 보존되여오는 중요한 유물의 하나이라는데 대하여 말씀드렸다.
그이께서는 천정의 금단청문양과 조각들을 한동안 주시하시고나서 문득 관리원에게 물으시였다.
《심원사를 9세기경에 건설하였다고 하는데 그때에 벌써 금장식을 할수 있었겠소?》
장군님께서 의문을 표시하신것처럼 심원사의 건설년대는 9세기초이지만 이 금단청은 지금으로부터 근 700년전인 14세기에 사찰을 대보수할 때 한것이였다.
전문가들도 미처 헤아려보기 힘든 우리 나라 유색금속가공발전력사와 심원사건설년대를 순간에 대비하여보시고 하시는 그이의 물으심에 관리원은 구체적인 해설을 못해드린 송구스러움으로 하여 어쩔줄을 몰라하였다.
그가 심원사에 있는 비석에 금단청을 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때가 14세기라고 다시 말씀드리자 장군님께서는 머리를 끄덕이시며 그런가고, 그후에는 다시 손질하지 않았겠소라고 다시 물으시였다.
그이께서 신명을 돋구어주시는 바람에 관리원은 어려움도 잊고 《경애하는 장군님! 이 금단청은 그후 근 700년동안 단 한번의 수복도 하지 않은 진품입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이께서는 뒤짐을 지시였던 두손을 량허리에 얹으시며 쩌렁쩌렁 울리는 음성으로 자, 보시오, 얼마나 훌륭하오, 우리 선조들이 재능이 있었거든라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보광전 내부에 한 단청은 14세기에 대보수할 때 한것으로서 한 700년정도 되였지만 그대로 보존되여온다는데 아주 훌륭합니다. 우리 선조들의 단청술이 대단히 높았습니다.》
하나의 유적을 놓고서도 그것에 비낀 민족의 슬기와 우수성을 헤아려보시며 그렇듯 천만금의 가치를 부여해주시는 장군님이시였다.
잠시후였다.
보광전을 나서시여 심원사의 우물에 깃든 유래를 들어주시고 주위를 둘러보시던 장군님께서는 얼마쯤 떨어져보이는 커다란 은행나무에서 시선을 멈추시였다.
그 나무가 심원사에서 자라게 된데는 유래가 있었다.
시종 사색적인 안색을 지으시고 그에 대한 관리원의 해설을 다 들어주신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수긍해주시였다.
《심원사의 뒤산 봉우리들의 모양이 봉황새가 나래를 편것과 비슷하고 산에 있는 바위들의 모양이 누워있는 기린같다고 하여 산이름을 봉린산이라고 하였고 봉황새가 오동나무나 은행나무에 깃을 들이고 산다고 하여 심원사앞에 은행나무를 심었다고 한다는데 그럴듯합니다.》
심원사의 유물은 물론 그 주변 나무 한그루도 무심히 보지 않으시고 선조들이 이룩한 모든것을 귀중히 여기시는 그이를 우러르는 일군들은 저도 모르게 머리가 숙어졌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청풍루의 유래에 대한 관리원의 소박한 해설도 들어주시고 청풍루의 대들보에 걸려있는 목어(나무로 만든 고기)를 보시고서는 절을 돌아보던중 이런것은 처음이라고, 좀 늦더라도 이에 대한 해설을 마저 듣고 가자고 하시며 그 유래에 대해서까지 구체적으로 헤아려주시였다.
오랜 시간을 바쳐가시며 심원사의 유적유물들을 세심히 보아주신 그이께서는 이 심원사는 국보적의의가 큰 절이라고, 자신께서는 이 절에 금단청과 꽃무늬조각을 비롯하여 력사유물들이 원상대로 보존되여있는것이 무엇보다 기쁘다고 말씀하시였다.
떠나시기에 앞서 관리원에게 오늘 심원사에 와서 해설을 잘 들었다고,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와보게 해야 한다고 하신 장군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주시였다.
《우리 나라에는 문화유적이 많습니다. 우수한 민족문화유산을 귀중히 여기고 옳게 살려나가며 우리 인민들에게 그를 통한 교양을 잘하는것은 주체성과 민족성을 고수하고 애국심을 키워주는데서 큰 의의를 가집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렇듯 인민들의 가슴마다에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안겨주시려 선군령도의 그 바쁘신속에서도 력사문화유적들을 찾아주시고 민족문화유산을 보존관리하고 빛내이는데서 나서는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는것이였다.
민족의 우수한 문화유산을 귀중히 여기고 옳게 계승발전시켜가시려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정력적인 령도의 자욱은 함경남도 금야군 동흥리에 자리잡고있는 안불사에도 새겨져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오랜 사찰의 하나인 안불사를 찾아주신것은 심원사를 돌아보신지 두달후인 4월 어느날이였다.
안불사는 1393년에 세워진 오랜 건축물로서 우리 선조들의 슬기와 재능이 깃들어있는 귀중한 문화유적이다.
안불사의 내외부를 다 돌아보고나신 그이께서는 단청을 새로 한것 같은데 사찰같은 건물은 옛 모습대로 둬두어야지 단청을 다시할 필요가 없다고, 단청을 다시하면 옛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일깨워주시였다.
단청을 다시하면 보기에 좋을것이라고 생각하였던 일군들의 단순한 생각에 충격을 주는 말씀이였다.
그이께서는 력사문화유적의 보존관리에서 단청이 가지는 의의에 대하여 강조하시고 문화유적은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여야 사실주의원칙을 지킬수 있다고 하시면서 단청을 다시하는 경우에는 원상대로 고전미가 나게 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단청을 잘하려면 붓도 단청할 때 쓰는것을 써야 한다고 그 방도까지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안불사에 심어놓은 은행나무에도 깊은 주의를 돌리시였다.
금야은행나무로 불리우는 이 나무는 옛 기록에 의하더라도 2 000년정도 자란것으로서 세계적으로도 제일 오랜 은행나무이다.
나무에는 지금도 한해에 300㎏정도의 열매가 달린다.
이에 대해 료해하신 장군님께서는 여기에 있는 금야은행나무를 언제 심은것으로 보겠는가에 대한 고증을 해당 부문 일군들이 와보고 하도록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그로부터 며칠후 장군님께서는 또다시 이 나무에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함경남도의 인민경제 여러 부문에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던 그이께서는 금야군 안불사에 있는 은행나무가 2 000년 자란것인데 은행나무로서는 세계적으로 제일 오랜 나무라고 한다, 설명문에 1 500년 자란 나무라고 씌여져있는데 아마 사찰을 지을 때 떠다심은 나무라고 하다보니 그렇게 된것 같다, 옛 기록에도 그 나무가 2 000년 자란것으로 되여있다고 한것을 보면 안불사를 세우기 전부터 있는 나무일수 있다고 일깨워주시였다.
그러시면서 장군님께서는 국토부문에서 천연기념물을 비롯하여 우리 선조들의 슬기와 재능을 보여주는 문화유적유물에 대한 선전을 널리 할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애국애족의 마음은 조국의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도 귀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자그마한 마음에서부터 싹트고 자라난다는 심오한 철리를 새겨주는 귀중한 가르치심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각별한 관심속에 잃어버렸던 나이를 되찾은 금야은행나무는 오늘도 한그루의 오랜 나무를 통해서도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더욱 높여주시려 마음쓰시는 그이의 숭고한 애국심을 전하며 푸르러 설레이고있다.
선군시대에 자기의 모습을 한껏 떨치게 된 량천사와 심원사, 안불사와 더불어 이 땅에 뿌리박은 수많은 력사유적들마다에는 이렇듯 애국애족애민의 숭고한 뜻을 안으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은혜로운 사랑의 손길이 닿아있다.
력사문화유적을 선군시대인 오늘날 더욱더 빛내주시려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령도는 절승을 자랑하는 조국땅 이르는 곳마다에 가슴뜨거운 사랑의 이야기도 수많이 새겨놓았다.
언제인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함경남도 영광군에 자리잡고있는 백운산명승지를 찾아주시였을 때였다.
새 세기에 들어와 더욱 면모를 일신한 백운산명승지에는 수백년의 력사를 자랑하는 룡흥사라는 사찰이 있다.
먼저 룡흥사에 들리시여 사찰의 유래에 대하여 알아보시고 사찰을 원상대로 보존관리할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신 장군님께서는 그아래 새로 건설한 휴양각이 있는 산기슭으로 내려오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상쾌한 기분으로 주변경치를 한참이나 바라보시며 백운산명승지에 있는 나무들이 아주 멋있다고, 나무들이 크고 꼿꼿하게 자랐는데 희한하다고, 명승지에 수림이 우거져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좋아할것이라고 기쁨을 금치 못해하시고 산주폭포가 흘러내리는 개울의 구름다리우에 올라서시여서는 물이 많아야 찾아오는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하시면서 내물의 량도 가늠해보시였다.
한그루의 나무를 보시고도, 흘러내리는 한줄기의 내물을 보시고도 인민들을 먼저 생각하시는 장군님이시였다.
이어 정각 무도장에 이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곳에 놓인 TV를 보시면서 영광군 소재지에서 멀리 떨어진 백운산기슭의 휴양각에까지 전기를 끌어 휴양생들이 문화정서생활을 마음껏 즐길수 있게 한것을 두고 못내 만족해하시였다.
잠시 생각에 잠겨계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저 우에서도 텔레비죤을 보는가고 물으시였다. 사찰의 바로 뒤쪽에 관리원부부가 어린 딸애를 데리고 사는 살림집이 있었는데 바로 그것을 두고 하시는 말씀이였다.
일군들은 인차 대답을 드릴수가 없었다. 그이께서 가리키신 룡흥사 관리원부부의 집에는 전기가 들어가지 않았기때문에 TV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였기때문이였다. 일군들은 이 사실을 보고드리면서 이제 축전지를 놓아주어서라도 그들이 텔레비죤을 보도록 하겠다고 말씀드리였다.
그러자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룡흥사에 전기가 들어오지 못하여 관리원부부가 사는 집에서 텔레비죤을 보지 못하기때문에 군에서 축전지를 놓아주어서라도 텔레비죤을 보게 하겠다고 하는데 내가 〈아리랑〉텔레비죤수상기를 보내주겠습니다.》
일군들은 젖어드는 눈길로 그이를 우러렀다.
해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고많았지만 산천의 아름다움과 력사고적에 심취되여 즐거운 한때를 보냈을뿐 관리원부부가 어떻게 사는지, 더우기 그들이 TV를 보는지 헤아려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관리원부부자신도 TV를 보고싶은 생각은 간절하였지만 이곳은 깊은 산중이라 어쩔수 없는것이라고 생각하고있었다.
하지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들의 이러한 생각과 자그마한 불편까지 속속들이 헤아리시여 다심한 은정을 베풀어주시는것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이곳을 다녀가신 후 이들 관리원부부에게 TV와 함께 보기에도 좋고 쓸모있는 그릇들과 모포, 솜옷, 양복천, 옷, 여러가지 내의류 지어 화장비누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생활필수품을 선물로 보내주시였다.
뒤이어 국가과학원의 과학자들이 달려와 태양빛전지와 저락차충동식수력발전기를 설치하여 관리원의 가정에서 조명은 물론 TV도 마음껏 볼수 있게 해주었다.
낳아준 친부모도 생각지 못한 그들의 고적한 생활을 그리도 깊이 헤아리시고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 부부가 이곳에 스스로 찾아와 10여년세월 사찰을 관리해온 그 수고도 귀중히 여겨주시며 크나큰 은덕을 베풀어주신 장군님의 사랑은 선군시대의 또 하나의 백운산전설을 낳았다.
이 감동적인 이야기가 생겨난 때로부터 룡흥사를 찾는 사람들은 명승지의 풍경이나 사찰구경에 앞서 관리원부부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고 한다.
사람들은 오늘도 사랑의 불빛, 행복의 랑만이 흘러넘치는 집안팎을 돌아보며 은혜로운 사랑의 품을 굳건히 지키고 더욱 꽃피워갈 결의를 가슴깊이 다지고있다.
이렇듯 경애하는 장군님의 뜨거운 사랑과 정력적인 령도밑에 민족의 우수한 전통과 문화를 계승발전시켜나가기 위한 전사회적분위기가 전례없이 고조되여나갔으며 전체 인민의 가슴마다에는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이 비할바없이 높아지게 되였다.
인민의 유원지로 꾸려놓으시고
행복과 랑만이 넘쳐나는 인민의 문화생활을 위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현지지도의 길은 황해남도에 새로 꾸려진 장수산명승지에도 이어졌다.
그날은 주체92(2003)년 6월 어느날이였다.
장수산은 선군시대에 새 모습을 드러낸 수많은 명승지들중의 하나이다.
재령군안의 인민들은 지난 3년간 장수산 첫굽이에서부터 열두굽이까지 관광도로를 새로 내고 장수식당과 장수각, 농민휴양소를 비롯한 큰 건물 7동과 전망대, 야외매대와 야외위생시설을 건설하고 수십여개의 명소를 새로 발굴하는 등 장수산의 면모를 완전히 일신시켰다.
명승지안내도가 세워져있는 첫굽이의 입구앞에 도착하시여 일군들과 따뜻이 인사를 나누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옛 추억을 더듬으시는듯 산봉우리들을 한동안 둘러보시였다.
근 30년전 장수산을 찾아주셨던 그날 장군님께서는 장수산은 경치도 좋지만 력사 또한 짙은 명산이라고, 앞으로 장수산의 풍치를 손상시키지 말고 잘 보존하여 인민의 명산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리고 예로부터 오래 산 사람들이 많아서 장수산이라고 불러오는데 여기에 농민휴양소를 짓고 농민들을 휴양시키면 우리 농민들이 백년은 문제없이 살것이라고, 앞으로 장수산전체를 하나의 보호지역으로 선정하고 장수산의 풍치를 더욱 돋구어야 한다고 간곡히 이르시였다.
하여 오늘날 인민의 휴양지로 훌륭히 꾸려진 장수산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조국의 아름다운 명산인 장수산이 선군시대에 와서 인민의 휴양지로 새롭게 변모된것이 기쁘시여 밝은 미소를 지으시였다.
이어 층암절벽을 이룬 첫굽이의 기묘한 바위들을 둘러보시던 장군님께서는 여기 어디에 사찰이 있지 않은가고 물으시였다.
한 일군이 사찰이 있는 곳을 가리켜드리며 저우에 현암이 있다고 말씀드렸다.
장군님께서는 그쪽을 유심히 바라보시다가 우리 나라에 저런 사찰은 여기밖에 없다고, 금강산의 보덕암도 현암보다는 못하다고 하시며 아찔한 벼랑중턱에 자기의 모습을 드러내고있는 현암을 이윽토록 바라보시였다.
《저기로 올라가는 길이 있소?》
장군님의 물으심에 일군은 현암은 높이가 120m나 되는 아찔한 벼랑가운데 건설한 사찰인데 벼랑아래서 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거의다 가서 마지막구간은 쇠사슬다리를 타고 바위짬으로 올라가게 되였다고 설명해드리였다.
그이께서는 잠시 사찰과 그 높이를 가늠해보시였다.
《현암에 사람들이 올라가보오?》
《장군님, 젊은 사람들은 물론이고 예순살이 지난 로인들도 현암에 올라가보아야 장수산에 와보았다고 말할수 있다고 하면서 기를 쓰고 올라가봅니다.》
밝은 미소를 지으신 장군님께서는 좋은 일이라고 하시면서 장수산의 제일 좋은 경치가 어느 계절인가고 다시 물으시였다.
예로부터 계곡미의 녀왕으로 세상에 널리 이름난 황해금강 장수산은 계절마다 자기의 독특한 미를 자랑해왔다.
봄이면 진달래꽃과 철쭉꽃이 온 산을 붉게 물들인다고 하여 홍악, 여름이면 기묘한 바위들과 푸른 숲이 조화를 이룬다고 하여 청악, 가을이면 붉게 타는 단풍이 층암절벽을 이룬다고 하여 풍악, 겨울이면 눈덮인 나무들과 우뚝 솟은 바위들이 온통 흰색으로 보인다고 하여 백악으로 불리워오고있다.
그가운데서 풍악인 가을철의 장수산경치가 제일 좋다는 일군의 대답을 들으신 장군님께서는 장수산은 가을철도 좋지만 겨울철의 설경이 더 좋다고, 장수산은 서리꽃이 피는 겨울경치가 멋있다고 말씀하시는것이였다.
굳이 겨울경치를 선참으로 꼽으시는 장군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일군들은 가슴이 뜨거워났다.
백두의 설한풍속에서 성장하시면서 사나운 눈보라에 익숙되시고 눈꽃과 서리꽃에 더 깊은 정을 들이신 장군님.
백설의 서정과 아름다움을 열렬히 사랑하시는 장군님의 정서에서 바탕을 이루는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여 순수함이고 강함이다.
그것이 곧 장군님의 열정의 상징이고 혁명성의 상징이다.
자연의 4계절중에 백설로 뒤덮인 겨울이야말로 장군님의 이러한 성격, 기질, 정서와 가장 부합된다. 그래서 울긋불긋 꽃계절의 장수산보다도 백악의 장수산에 더 마음을 두시는것이리라.
장군님께서는 이날 장수산의 첫굽이로부터 열두굽이까지의 긴 로정을 다 돌아보시며 아름다운 명소도 찾아주시고 훌륭히 꾸려진 명승지를 인민들이 많이 찾도록 할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이께서 다섯굽이의 휴식터에 이르시였을 때였다.
장군님께 한 일군이 이곳이 제일 극치를 이루는 굽이이며 넓은 공지가 완만하게 펼쳐져있어 계단식으로 식사터와 야회장을 만들기도 좋고 《300년수》로 일러오는 샘까지 있어 휴식터로 꾸렸다고 말씀드리자 그이께서는 《인민들이 많이 올라오오?》라고 물으시였다.
장수산을 돌아보시면서 세번째로 되는 같은 물으심이였다.
두굽이 막바지에 있는 1층정각에 오르시여 깎아지른듯 한 검붉은 기암절벽들이 키돋움을 하며 아찔하게 솟은 절경을 부감하시면서도 장군님께서 물으신 첫 물음은 여기에 사람들이 올라오는가 하는것이였다.
현암을 보시면서도 사람들이 올라가보는가고 물으시였던 장군님.
결국 경애하는 장군님의 관심은 명소의 경치보다 그렇게 경치좋은 명소를 인민들이 얼마나 리용하고있는가 하는 거기에 있었던것이다.
인민을 위하시는 장군님의 사랑에 일군들은 눈굽이 저릿해졌다.
많은 사람들이 올라온다는 대답을 들으신 장군님께서는 인민들이 여기 와서 식사도 하고 오락회도 하면서 즐겁게 놀다 가면 좋을것이라고, 인민들이 명절날이나 쉬는날에 경치좋은 장수산에 찾아와 마음껏 놀다 가는것은 좋은 일이라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명승지라고 해도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으면 명승지라고 할수 없습니다. 우리가 여러곳에 명승지를 잘 꾸려놓는것은 명절날이나 쉬는날에 인민들이 마음껏 즐기며 놀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경치가 좋아서만 명승지가 아니라 인민이 그 경치를 마음껏 즐겨야 진짜 명승지라는 명승지의 참의미를 깨우쳐주는 말씀이였다.
어느덧 시간이 퍼그나 흘러 장군님의 현지지도로정은 열두굽이의 마지막주차장에 이르렀다.
시내물소리가 정답게 들려오는 푸른 등판을 흐뭇한 미소를 지으시고 한동안 바라보시던 장군님께서는 한 일군으로부터 석동려관과 농민휴양소의 운영정형에 대해 보고받으시고 또다시 이렇게 물으시였다.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오?》
아마도 다음로정이 더 있었더라면 또다시 물을수도 있는, 인민에 대한 그이의 사랑처럼 언제까지나 계속될 물으심이였다.
그 일군은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휴식한다고 젖어드는 목소리로 말씀드렸다.
그이께서는 좋은 일이라고 하시며 《황해남도에서 장수산을 인민의 유원지로 잘 꾸려놓았습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산판을 쩌렁쩌렁 울리는 그이의 음성은 일군들의 심장을 세차게 울려주었다.
조국의 명산이 인민을 위한 또 하나의 문화유원지로 꾸려진것을 그리도 기뻐하시는 장군님.
명승지의 참의미도 인민과 결부시켜 깨우쳐주시고 인민을 위한 모든것을 제일로 내세워주시며 이룩한 모든 성과를 아낌없이 돌려주시는 그이를 우러르며 일군들은 뜨거운것을 삼켰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등산길을 더 연장하여 참관자들이 장수산에 와서 한 사흘동안 돌아보게 하는것이 좋겠다고 이르시면서 인민들이 더 많이 찾아와 마음껏 놀다 갈수 있게 장수산을 인민의 유원지로 더 잘 꾸리고 보존관리하여야 한다는 귀중한 말씀을 남기시였다.
조국산천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함께 그것이 인민의 행복이 되고 기쁨이 되길 바라시는 장군님의 숭고한 뜻에 받들려 인민의 문화유원지로 훌륭히 꾸려진 황해금강 장수산명승지.
진정 이것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조국과 인민에 대한 끝없는 헌신과 열렬한 사랑, 위대한 령도가 안아온 창조물이였다.
인민들에게 훌륭한 문화휴식장소를 더 많이 마련해주시려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사랑의 손길은 북방의 칠보산에도 어려있다.
주체93(2004)년 12월 어느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칠보산을 인민의 문화유원지로 더 훌륭히 꾸리기 위한 사업을 지도하시기 위하여 새 세기에 들어와 두번째로 이곳을 찾으시였다.
칠보산이 인민의 문화휴양지로서의 자기의 웅자를 한껏 드러내놓게 된데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정력적인 령도의 손길이 뜨겁게 어려있다.
장군님께서 칠보산을 찾아주신것은 나라가 그처럼 어려웠던 고난의 행군시기였다.
옛날사람들이 칠보산을 5대명산에 포함시키지 않은것은 잘못되였다고 보아야 한다시며 옛날사람들이 5대명산을 꼽았다면 오늘 로동당시대에는 6대명산을 꼽고 칠보산을 단연 첫자리에 놓아도 손색이 없을것 같다고 아름다운 조국의 명산에 대한 사랑을 한껏 터치신 장군님.
그이께서는 여러차례 칠보산을 찾으시고 수십리가 넘는 전구간의 참관로정을 직접 답사하시면서 개발방향을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였으며 칠보산이 인민의 유원지로 훌륭히 꾸려지도록 이끌어주시였다.
그리하여 칠보산을 인민의 유원지로 꾸리기 위한 대규모적인 건설공사가 다름아닌 고난의 행군시기에 시작되게 되였다.
장군님의 높은 뜻을 받들고 함경북도안의 근로자들은 수십리 참관도로를 번듯하게 닦아놓았고 정각들과 승선대차집을 비롯한 건물들을 특색있게 지어놓았다.
칠보산이 선군시대의 새 모습을 자랑하며 그 웅자를 드러내던 새 세기 첫해의 11월 어느날에도 이곳을 찾아주신 장군님께서는 칠보산을 더 훌륭히 꾸리는데서 나서는 과업과 방도들을 환히 밝혀주시였다.
이 시기 건설자들은 칠보산을 인민의 훌륭한 유원지로 더 잘 꾸릴데 대한 장군님의 말씀을 높이 받들고 칠보산개발에서 많은 성과들을 이룩하고있었다.
여러곳에 칠보산의 절경을 부감할수 있는 정각들을 짓고 참관에 필요한 수십여㎞의 도로들을 새로 닦았으며 개심사의 력사문화유적들을 원상대로 복구하고 많은 후생시설들을 건설함으로써 칠보산의 면모를 일신시켰다.
장군님께서는 면모를 일신한 칠보산을 돌아보시며 오랜 세월 빛을 잃었던 칠보산이 로동당시대에 와서 드디여 자기의 독특한 경치를 한껏 펼치게 되였다고, 수령님께서 생전에 칠보산을 인민의 유원지로 전변시키시기 위하여 심혈을 기울여오시였다고, 수령님의 유훈을 철저히 관철하여 후대들에게 귀중한 만년재부를 물려주어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칠보산의 훌륭한 경치를 마음껏 부감하며 즐거운 문화휴식을 할수 있게 하기 위하여서는 바다가에 숙소와 봉사시설들을 잘 꾸려놓아야 한다고, 칠보산을 먼 후날에 가서도 손색이 없게 훌륭히 꾸리는것은 우리 인민들에게 보다 유족하고 문명한 생활을 안겨주기 위한 중요한 사업인것만큼 중앙과 도에서 이 사업을 적극 도와주어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그리하여 세월의 안개속에 묻혀있던 칠보산은 명산으로, 선군시대의 또 하나의 절승으로 솟아 빛나게 되였던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날 칠보산을 돌아보시면서 일군들과 《칠보산은 세상에 자랑할만 한 명산이다》라는 담화를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담화에서 칠보산을 세계적인 명산으로 잘 꾸려야 하겠다고 하시면서 칠보산을 더 잘 꾸릴데 대한 과업과 방도를 구체적으로 밝혀주시고 그 관리운영을 잘할데 대하여 다시금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이렇듯 칠보산은 절세의 애국자의 사랑의 손길에 받들려 세상에 자랑할만 한 우리 나라 6대명산의 하나로, 인민들에게 삶의 즐거움과 행복을 안겨주는 또 하나의 명승지로 빛을 뿌리게 되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사랑의 손길은 지하명승 송암동굴에로의 참관길도 열어놓았다.
주체91(2002)년 4월 어느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새로 발굴정리된 송암동굴을 돌아보시기 위하여 현지에 나오시였다.
오래전부터 용해, 용식작용을 받아 석회암의 석수가 천태만상의 조화를 이루어놓은 천연동굴인 송암동굴에는 수천m의 원굴과 수십개의 가지굴이 있으며 석순과 석화로 형성된 꽃문동, 폭포동, 기암동, 설경동, 백화동을 비롯하여 황홀하고 신비로운 명소들이 무려 수십여개소에 펼쳐져있어 마치 지하궁전을 방불케 하였다. 웅장함과 화려함, 우아함과 아름다움이 집약된 기기절묘한 천만가지의 지하절경들을 다 볼수 있는 송암동굴은 세계에서 보기 드문 희귀한 동굴로서 자기의 모습을 드러내놓고있었다.
동굴의 여러곳을 돌아보시며 장군님께서는 군인들이 송암동굴공사를 아주 잘하였다고, 길닦기를 비롯하여 전반적인 동굴공사를 멋있게 하였다고, 군인들이 동굴의 명소들을 본래의 모습그대로 보존하기 위하여 암반을 정대와 함마로 까내고 통로를 냈을뿐아니라 세멘트와 모래를 비롯한 물동을 등짐으로 나르면서 공사를 하였다는데 기특하다고, 참관로정을 따라 맨몸으로 걸어다니기도 힘든데 군인들이 무거운 짐을 지고 다니면서 공사를 하자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고 하시며 그들의 수고를 깊이 헤아려주시였다.
류례없이 간고하였던 고난의 그 나날 송암지구 자연동굴개발을 발기하신분도 장군님이시고 그 과업을 인민군대에 맡겨주시고 공사를 훌륭히 완공하도록 이끌어주신분도 장군님이시였다. 하지만 그이께서는 이 모든 성과를 인민군군인들에게 돌려주시는것이였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동굴을 돌아보시는 과정에 이곳 지하명승에서 꽃펴난 청춘남녀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알게 되시였다.
처녀강사의 해설을 주의깊게 들어주시며 만족해하시는 그이께 한 일군이 그 강사가 동굴개발공사의 나날에 한 청년과 사랑을 약속한데 대하여 말씀드리였던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자애로운 미소를 보내시며 《… 내가 완공된 동굴을 돌아본 다음 결혼식을 하기로 하였다는데 그 이야기를 여러 사람들앞에서 다시 해보아야 하겠습니다.》라고 다정히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 어찌나 소탈하게 대해주시는지 처녀는 마치 친아버지앞에 선 딸의 심정인양 어려움도 부끄러움도 잊고 그 사연에 대하여 말씀드렸다.
《어버이장군님, 저희들은 동굴안에서 작업을 하면서 서로 알게 되였습니다. 군인동무들이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에 얼마 안되는 강냉이밥을 먹으면서 작업을 했는데 그때 우리는 강냉이 닦은것을 가지고 그들을 찾아갔습니다. 군인들에게 한줌한줌 나누어주었는데 그만 마지막 한사람분이 모자랐습니다. 전사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는데 부소대장견장을 단 사관이였습니다.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때부터 만나면 그 동무는 저에게 강냉이 빚진것을 안물어주는가고 물었는데 그것이 인연이 되여 만났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뒤늦게야 수집은듯 고개를 소곳이 숙인 처녀강사를 대견하게 바라보시였다.
이 나라의 그 어디에서나 흔히 볼수 있는 평범하고 소박한 처녀, 하지만 선군시대를 빛내이는 보람찬 투쟁에서 청춘의 참된 사랑과 행복을 찾을줄 아는 티없이 순결한 마음을 지닌 기특한 처녀였다.
처녀강사의 이야기를 들으신 그이께서는 못내 대견하신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시며 동무들은 당과 조국을 받드는 길에서 선군시대 청춘남녀들의 고상한 정신세계를 보여주었다고, 강사동무는 선군시대에 청춘의 아름다운 사랑을 꽃피운 행복한 녀성이라고 높이 치하해주시였다.
그러시고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이 동무들에게 결혼상을 보내주고 결혼식을 잘해주자고 하시며 처녀강사와 함께 사랑의 기념사진도 찍어주시였다.
그후 처녀강사는 온 나라의 축복속에 약속한 청년과 한가정을 이루었다.
명소의 아름다움보다 그 아름다움을 지키고 가꾸기 위해 어려운 길을 택하고 난관을 웃으며 뚫고나간 군인들의 수고를 헤아려주시고 그 길에서 아름다운 사랑을 꽃피운 새 세대 청춘들을 축복해주신 경애하는 장군님.
정녕 그이의 사랑은 새 세기의 새 절경을 이 땅에 펼치고 이 나라 사람들의 아름다움을 보다 훌륭한 새 모습으로 가꾸어가는 위대한 사랑이였다.
인민에게 훌륭한 문화정서생활조건을 마련해주시려고 그토록 마음쓰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에 떠받들려 조국땅 곳곳에는 인민들에게 기쁨과 랑만의 웃음을 듬뿍 안겨줄 명승지들이 더욱 빛나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