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모든것을 선군의 요구대로!

 

인민의 복리증진을 위하여

 

1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는 공장이 되여야 한다
 

주체91(2002)년 10월 어느날 선군령도의 길을 이어가시던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참으로 뜻깊은 말씀을 하시였다.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인민생활과 관련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면서 세상에서 제일 좋은 우리 인민을 위하여 더 많은것을 해놓아야 하겠는데 시간이 한초한초 흐르는것이 안타깝다고, 천금보다 귀중한것이 시간이라고, 일군들은 우리 인민을 위하여 분초를 아껴가며 더 많은 일을 하여야 한다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마디마디 뜨거운 정과 사랑이 넘치는 그 말씀은 고난을 이겨낸 인민들에게 하루빨리 행복한 생활을 마련해주실 강렬한 열망으로 끓어번지는 그이의 뜨거운 심중의 토로였고 하루 24시간을 천시간, 만시간으로 쪼개가며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헌신해야 한다는 어버이의 간곡한 당부였다.

이렇듯 경애하는 장군님의 모든 사색과 실천의 중심에는 언제나 인민이 놓여있었다.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는것을 한생의 락으로 여기시며 인민을 위한 복무의 길을 변함없이 걸으시려는것이 경애하는 장군님의 투철한 인생관이다.

삼복의 무더위가 한창이던 주체92(2003)년 8월 어느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개건확장된 평양화장품공장을 찾아주시였다.

몇해어간에 면모를 완전히 일신한 공장은 현대화된 모습을 자랑하고있었다.

뜨겁게 내려쪼이는 한여름의 땡볕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몸소 공장에 나오신 장군님의 안광에는 인민들에게 또 하나의 훌륭한 화장품생산기지를 안겨주게 된 만족의 미소가 어리였다.

공장건물들이 멋있다고, 깨끗하다고, 이 공장은 정말 선군시대의 멋쟁이공장이라고 높이 평가해주신 장군님께서는 그 걸음으로 최신설비들이 일식으로 갖추어진 공장의 여러 생산직장들을 돌아보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로동자들이 일하는 곳이라면 다 보자고 하시며 습도와 열이 높은 세수비누직장 검화작업반에 들리시여 비누반응탕크로부터 수십개의 계단을 오르내리시면서 비누성형공정이며 형타공정, 자동포장공정들을 일일이 다 돌아보시였다.

뜨거운 열풍이 확확 내뿜는 드넓은 공장의 마당을 가로질러 화장품직장에 들리시여서는 사출기의 능력을 헤아려보시고 남는 능력으로 화장품용기를 만들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으며 치약직장의 여러 공정들을 보시고는 치약의 질을 더 높이기 위한 해결방도도 제시하여주시였다.

실로 멋쟁이공장에서 인민들이 쓸 훌륭한 제품이 더 많이 쏟아져나오게 하시려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심혈은 끝이 없었다.

장군님께서 견본실에 들리시였을 때였다.

전시된 제품들을 일일이 보아주시며 화장품의 질을 높일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던 장군님께서는 견본대우에 놓여있는 입술연지케스에서 입술연지 한개를 뽑아드시였다.

입술연지는 한 케스가 10개로 되여있는데 모두 한가지 색갈뿐이였다.

장군님께서는 못내 서운하신듯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지금은 연지를 한두가지 색갈로밖에 생산하지 못하는데 녀성들의 기호와 특성에 맞게 여러가지로 다양하게 생산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화장품을 수요에는 관계없이 몇가지 생산하여 상점에 내놓고 이것밖에 없으니 사다 쓰라는 식으로 생산공급해서는 안됩니다. 이제는 질적수요에 관계없이 량에만 치우치면서 덮어놓고 생산만 하면 된다는 낡은 관점을 털어버려야 합니다. 화장품생산에서는 질이 기본인것만큼 하나를 만들어도 질적으로, 온전하게 만들어 공급해야 합니다.》

그러시면서 분크림과 입술연지, 분 같은 화장품은 호수를 붙여 여러가지 색갈로 다양하게 만들어 녀성들이 자기의 얼굴색과 기호에 맞는것을 사쓸수 있게 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자그마한 화장품 하나를 놓고도 인민을 위한 참된 복무의 정신을 지니도록 깨우쳐주시는 장군님의 높으신 뜻과 뜨거운 사랑이 일군들에게 강렬하게 안겨왔다.

인민을 위한것이라면 자그마한것도 크게 보시며 마음쓰시는 그이의 숭고한 인민적관점과 사랑의 세계에 이끌린 일군들에게는 한해전 6월의 못 잊을 사연이 삼삼히 떠올랐다.

그날 평양일용품공장에 새로 꾸려진 현대화된 치솔직장을 찾아 제품들을 일일이 보아주시는 장군님의 안광에는 따뜻한 미소가 어려있었다.

전선시찰의 길에서 인민군군인들의 세면도구를 몸소 보아주시고 치솔의 질이 높지 못한것이 가슴아프시여 현대적인 치솔생산공정을 꾸리도록 조치를 취해주시고 새 치솔견본이 나왔을 때에는 누구보다 기뻐하시며 친히 《서리꽃》이라는 이름도 달아주신 장군님이시였다.

금방 사출된 뜨거운 치솔대를 손수 만져보기도 하시고 새로 생산하기 시작한 투명한 솔보호갑도 보아주시면서 장군님께서는 솔보호갑이 좋다고, 치솔을 통채로 갑속에 넣지 않고 솔부분만 씌우게 만들었기때문에 경제적으로 보아도 실리가 있을것 같다고 하시며 대단히 만족해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지금까지는 솔보호갑을 만들어쓸 생각을 하지 못하고 치솔을 통채로 넣는 갑을 만들어썼는데 사실 이런것은 해놓고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착상하여 내놓기는 간단하지 않다고 하시면서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는 일군들은 어떻게 하면 인민들이 쓰는 소비품을 보기도 좋고 쓰기도 편리하게 만들겠는가에 대하여 늘 머리를 써야 한다고 간곡히 이르시였다.

장군님의 음성은 비록 높지 않았지만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는 일군들의 관점과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가르쳐주시는 그이의 말씀이 일군들에게 준 충격은 참으로 큰것이였다.

한줌에도 들지 않는 자그마한 치솔과 솔보호갑.

허나 그것은 장군님께 있어서 결코 작은것이 아니였다.

인민들의 생활과 관련된것이여서 치솔은 크고 중요한것이였고 인민들의 건강장수와 직결된 문제여서 그렇듯 관심하시는것이였다.

어린이로부터 늙은이에 이르기까지 각이한 나이의 특성에 맞게 만들어진 질좋은 치솔들을 보시며 보기도 좋고 쓰기도 편리한 이런 고급한 치솔을 인민들에게 충분히 보내주게 되였으니 이제는 한시름이 놓인다고 환하게 웃으시며 하시던 그날의 장군님의 말씀이 격정으로 뜨거워진 일군들의 가슴에 세차게 메아리쳐왔다.

정녕 그이는 인민을 위한것이라면 설사 그것이 자그마한것이라도 품을 들이고 정력을 기울이시며 인민에게 더 좋고 훌륭한것을 안겨주시려 마음쓰시는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다.

이날 일군들은 장군님의 현지지도로정을 따라 걸으며 인민을 위하시는 그이의 사랑이 얼마나 뜨겁고 열렬한것인가를 더 깊이 느낄수 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치약직장건물앞에 꾸려진 화단앞에 이르시였을 때였다.

화단에는 꽃나무들이 가득차있었다.

잠시 꽃나무들을 바라보시던 그이께서는 지금은 화단을 만들고 꽃나무와 키낮은 나무들, 잔디를 심었는데 이렇게 해서 좋을것은 별로 없다고 말씀하시였다.

일군들은 그 말씀의 뜻을 미처 헤아리지 못한채 장군님을 우러러보았다.

일군들을 둘러보신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공장안에 화단을 꾸려놓으면 그것을 가꾸느라고 로동자들에게 부담이나 줄것이라고 하시면서 여기에는 여름철에 로동자들이 뜨거운 해볕을 피해 그늘밑에서 쉴수 있게 나무를 많이 심어야 한다고, 동무들이 키큰 나무를 심으면 공장벽체에 붙인 타일이 나무에 가리워 보이지 않을것 같아 그렇게 한것 같은데 그런 멋따기놀음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화단을 꾸린 자리에 수종이 좋은 키큰 나무들을 많이 심고 휴식터도 잘 만들어놓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몇년 지나서부터는 수림이 우거져 로동자들이 무더운 여름철에 나무그늘밑에서 휴식도 할수 있어 좋을것입니다.》

순간 삼복의 열기보다 더 뜨거운 격정의 파도가 일군들의 가슴에 물결쳐왔다.

자신께서는 삼복의 무더위와 한겨울의 찬눈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온 나라의 공장길, 농장길을 걷고 또 걸으시면서도 로동자들이 따가운 땡볕속에 꽃나무를 가꾸어야 할 수고를 먼저 헤아려주시다니…

인민을 위하시는 그이의 숭고한 뜻, 인민사랑의 세계를 언제면 따를수 있으랴.

일군들은 제품의 질을 높이기 위한 사업도, 공장의 생산문화를 확립하기 위한 사업도 결국은 인민에 대한 관점, 로동계급에 대한 관점이 옳바로 설 때 더 잘해나갈수 있다는 고귀한 진리를 뇌리에 깊이 새기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날 공장을 다 돌아보시고나서 이제는 문화생활에 대한 우리 녀성들의 요구수준이 지난 시기에 비할바없이 높아졌다고 하시면서 그래서 우리는 날로 높아지는 우리 인민들과 녀성들의 문화생활수준에 맞게 질좋은 화장품을 많이 생산공급하기 위하여 나라의 경제형편이 어렵지만 세계적수준의 신의주화장품공장을 새로 건설하였으며 평양화장품공장도 현대적으로 개건하도록 하였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 평양화장품공장은 우리 당의 깊은 관심속에 현대적으로 개건된것만큼 당의 의도에 맞게 여러가지 좋은 화장품을 많이 생산하여 평양시민들에게 공급해야 한다고 간곡히 이르시였다.

그이께서는 공장을 떠나시기에 앞서 일군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평양화장품공장은 명실공히 인민의 사랑을 받는 공장으로,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는 공장으로 되여야 합니다.》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는 공장으로 되라!

이 간곡한 당부속에는 하나의 제품을 만들어도 인민들이 좋아하고 인민생활에 철저히 이바지하는 제품을 만들어내며 모든 일군들이 인민을 위하여 참답게 복무하는 값높은 인생관을 지녀야 한다는 높은 뜻이 새겨져있었다.

인민을 위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과 헌신의 자욱은 나라의 곳곳에 꾸려진 지방산업공장들에도 새겨졌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창성군 지방산업공장들을 찾아주신 그날은 주체91(2002)년 10월 어느날이였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군안의 여러 단위를 련이어 찾으시고 지방공업을 발전시키는데서 틀어쥐고나가야 할 원칙적인 문제들을 다시금 명확히 밝혀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먼저 들리신 곳은 창성식료공장이였다.

그때 공장에서는 기초식품생산공정을 꾸려놓고 간장, 된장을 생산하고있었다.

이것을 아시게 된 장군님의 심중은 몹시 무거우시였다.

그이께서는 창성군에 흔한 산열매를 가지고 식료품을 생산하는 공정을 꾸려야지 콩을 원료로 하는 기초식품생산공정을 꾸린것은 창성의 실정에 맞지 않는다고 일군들을 깨우쳐주시였다.

그제서야 일군들은 도처에서 기초식품공장을 꾸려놓고 벅적 떠들고있는 때에 절세의 위인들의 발자취가 어린 자기들의 고장에 그런것이 없어서야 되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자기 고장의 실정에 대한 고려도 없이 기초식품생산공정을 꾸려놓은것이 잘못된 처사라는것을 깨닫게 되였다.

일군들로부터 농장들이나 개인들에게서 콩을 수매받아 된장, 간장을 얼마가량 만들어주고있는데 대해 료해하신 그이께서는 섭섭하신 어조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창성군의 산들에 머루와 다래, 돌배를 비롯하여 지방산업공장을 돌리는데 필요한 원료원천이 많기때문에 《황금산》이라고 하시였는데 그 《황금산》에는 콩이 없다고 말씀하시였다.

잠시 말씀을 멈추시였던 장군님께서는 지방공업의 우월성과 생활력은 지방에 있는 원료원천을 최대한으로 동원리용하여 자기 지방 인민들의 생활을 높인다는데 있다고 다시금 강조하시였다.

지방산업공장은 철두철미 인민생활에 실질적으로 이바지하는 공장으로 되여야 한다는 깨우침이 담긴 가르치심이였다.

그이께서는 이날 산골인민들이 느끼게 될 생활상불편을 먼저 생각하시며 창성식료공장에 기초식품생산공정을 꾸려놓은 이상 그것을 돌리기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하시면서 콩원료를 보장하기 위한 대책을 즉석에서 세워주시였다.

그날 장군님께서는 련이어 여러 단위들을 돌아보시면서도 지방공업발전에서 지침으로 되는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어떻게 하면 산간지대인민들을 남부럽지 않게 잘살게 하겠는가 늘 마음쓰시는 장군님이시였다.

바로 그러하신 장군님이시기에 창성종이공장을 돌아보시며 느끼신 그이의 만족과 기쁨은 실로 큰것이였다.

공장의 로동계급이 자체의 원료원천기지와 생산설비를 마련해놓고 종이생산을 정상화하고있었던것이다.

공장의 실태를 료해하신 장군님께서는 이들이 자체의 힘으로 근 200정보에 달하는 원료기지를 꾸려놓고 종이생산을 진행하고있는것이 너무도 기쁘시여 공장일군의 등을 두드려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이 공장은 종이생산에서 성공하였다고 볼수 있다고 하시면서 온 나라가 창성군을 따라배워야 한다고, 다른 군들에서도 다 창성군처럼 종이를 생산하면 얼마나 좋겠는가고, 그렇게 되면 지방에서 종이문제가 풀릴것이라고 하시며 기쁨에 넘쳐 말씀하시였다.

《이 공장은 정말 지방산업공장답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창성군 지방산업공장들에 대한 현지지도는 온 나라의 모든 공장, 기업소들이 인민생활에 필요한 제품을 꽝꽝 생산해내는 명실공히 인민을 위한 공장, 인민생활에 실질적으로 이바지하는 공장으로 되여야 한다는 귀중한 진리를 다시금 페부에 깊이 새겨준 뜻깊은 현지지도였다.

이렇듯 경애하는 장군님의 인민에 대한 헌신적사랑에 떠받들려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현대화된 경공업공장들과 지방산업공장들에서는 인민생활에 이바지하는 생활필수품들이 꽝꽝 생산되게 되였으며 인민들은 그 덕을 누리며 보다 행복한 생활을 꽃피워나갔다.

 

2

《인민들이 좋아합니까?》
 

인민들의 식생활을 개선하는데서 나서는 중요한 문제는 간장, 된장, 기름을 비롯한 기초식품을 원만히 생산보장하는것이다.

고난의 행군, 강행군의 그 어떤 어려움도 참고 이겨낸 인민들에게 보다 훌륭한 식생활조건을 마련해주실 숭고한 구상을 안으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그 무엇보다먼저 마음쓰신것이 바로 기초식품문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나라의 기초식품생산기지들을 현대화하고 기초식품생산을 높은 수준에서 정상화하는데서 본보기를 마련하기 위하여 주체91(2002)년 7월 어느날 삭주식료공장을 찾으시였다.

수백㎡의 드넓은 발효실에 설치된 18개의 밀페된 발효탕크를 2명의 발효공이 감시하는 현대적인 이 공장은 간장, 된장생산에서 원료가 들어가는 첫 공정으로부터 완성된 제품이 나오는 마지막공정까지 모두가 사람의 손이 닿지 않고 진행되도록 밀페식생산공정으로 설계되여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삭주식료공장은 이미 있던 공장인데 몇해전에 왔을 때보다 많이 달라졌고 깨끗하다고 만족을 표시하시면서 새로 건설된 생산공정들을 일일이 돌아보시고 공장에서 기초식품생산공정을 잘 꾸려놓은데 대하여 높이 평가하시였다.

공장을 다녀가신 이틀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삭주식료공장 기초식품생산공정은 손로동이 없게 완전히 밀페식으로 꾸린 생산공정이라고, 식료품공장들은 삭주식료공장처럼 꾸려야 한다고 하시였으며 이 공장 기초식품생산공정을 전국의 기초식품공장들에 일반화하도록 하여야 하겠다고 크나큰 믿음의 말씀을 하시였다.

장은 우리 인민의 식생활과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는 가장 필수적인 기초식품의 하나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바로 민족의 전통적인 식생활풍습이 체현되여있는 장을 공업적방법으로 훌륭히 생산하여 인민들에게 공급하기 위해 이미 각 도, 시, 군들마다에 꾸려져있는 장공장, 기초식품공장들을 기술개건하고 새로 기초식품공장들을 일떠세우도록 조치를 취하시고 그 실현을 위해 그렇듯 심혈을 기울이시는것이였다.

그로부터 몇달후인 주체91(2002)년 10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함흥기초식품공장을 찾아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먼저 공장에서 생산한 간장과 된장을 비롯한 기초식품들이 전시되여있는 제품전시장에 들리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전시품들을 일별하시며 여기에 놓여있는 제품들이 이 공장에서 생산한것인가고 물으시였다.

공장일군으로부터 그렇다는 대답을 들으신 그이께서는 앞에 놓여있는 간장병 하나를 드시고 흔들어보시며 려과상태를 알아보시고나서 그옆에 있는 된장봉투 하나를 또 손에 드시였다.

그때 공장일군이 장군님께 제15차 인민소비품품평회에서 공장에서 생산한 된장이 1등을 하여 금메달을 받았다는데 대해서와 경공업과학원에서 내려온 과학자들과 공장기술자들이 힘을 합쳐 균배양을 종합적으로 실현한 결과 생산을 완전히 정상화할수 있게 되였다고 보고올리였다.

오래간만에 찾아온 친정아버지에게 집안의 크고작은 일을 아뢰는 철부지딸처럼 자랑을 섞어가며 말씀드리는 일군을 대견한듯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장생산방법에 대한 그의 설명을 들어주시던 장군님께서 이렇게 물으시였다.

《그래 장맛이 어떻습니까?》

《장군님, 장맛이 향기롭고 감칠맛이 있습니다.》

그러자 장군님께서는 이 공장에서 생산하는 장이 향기롭고 감칠맛이 있다는데 장의 질이 좋은가 나쁜가 하는것은 먹어보아야 알수 있다고 하시면서 일군들에게 어서 맛을 보고 평가하자고 말씀하시였다.

일군들이 전시장에 진렬되여있는 장봉투를 들고 저저마끔 맛을 보기 시작했다.

맛을 보고난 일군들은 대번에 얼굴에 웃음기가 번지면서 이 공장제품이 정말 향기롭고 맛이 좋다고 이구동성으로 그이께 말씀드리였다.

그런데 장군님께서는 장맛이 향기롭고 좋다고 하는데 따로 내놓은것이나 먹어보아서는 진짜맛을 알수 없다고 하시면서 저장탕크에 있는 장을 가지고 가서 맛을 보자고, 그래야 진짜 장맛을 알수 있다고 말씀하시는것이였다.

순간 일군들은 가슴이 뜨거워짐을 금할수 없었다.

언제나 사색과 실천의 첫자리에 인민을 먼저 놓으시는 장군님이시기에 장맛까지도 전시한것이 아니라 인민들이 실지 먹는것을 가지고 평가하시려는것이였다.

동안이 지나도록 전시된 제품들을 보아주신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장생산에서는 질을 높이는것이 중요합니다.》

어떻게 하나 생산을 늘이고 인민들에게 정상적으로 공급만 해주어도 큰것으로 여겨오던 일군들에게 그이의 말씀은 자그마한 성과에 자만하지 말고 더 맛좋은 장을 생산하여야 한다는 경계이며 당부였다.

이어 장생산에 대하여, 장의 질문제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료해하시던 장군님께서는 《여기서 생산한 된장, 간장을 함흥시주민들에게 공급합니까?》라고 물으시였다.

공장의 일군이 함흥시와 흥남시주민들 그리고 도안의 여러 단위들에 공급한다고 말씀드리자 장군님께서는 련이어 물으시였다.

《인민들이 좋아합니까?》

일군들을 만나실 때나 현지지도의 길에서 장군님께서 의례히 하시는 물으심이였다. 이 길지 않은 두마디의 물음에는 인민의 행복과 기쁨을 하나라도 더해주고싶어하시는, 그래서 그들에게 행복한 생활만을 안겨주고싶어하시는 자애로운 친어버이의 사랑이 한껏 어려있었다.

하기에 공장의 일군은 된장의 맛과 향기가 독특하여 한번 맛을 본 사람들은 좀처럼 그 맛을 떼기 힘들어하고 지어는 전국을 상대하는 국가품질감독위원회 일군들조차 전국의 된장맛을 다 보았는데 함흥장처럼 독특한 맛을 가진 장은 처음이라는 호평까지 하였다고 자랑스럽게 말씀드리였다.

이윽고 된장수분함량에 대하여 물어주신 장군님께서는 된장은 좀 되게 만들어야 풋고추나 파 같은것을 찍어먹기 좋다고 하시며 장을 여러가지로 만들어 인민들에게 공급할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

인민이 좋아하는것, 인민생활을 실질적으로 향상시키는것이라면 거기에 필요한 모든것을 최상의 수준에서 보장해주고싶어하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은 그렇듯 지극하고 열렬한것이였다.

인민들의 식생활을 향상시키시려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관심은 기초식품만이 아니라 여러가지 식료가공품생산을 늘이고 그 질을 높이는데도 돌려졌다.

주체93(2004)년 1월 어느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삼라만상을 얼어붙게 하는 한겨울의 추위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인민군군인들이 새로 건설한 식료종합가공공장을 찾아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인민들에게 현대적인 식료가공공장을 또 하나 안겨주게 된것이 기쁘시여 시종 환하신 미소를 짓고계시였다.

기초식품직장에 들어서시여 생산능력에 대한 설명을 들으신 장군님께서는 잠시 무엇인가를 생각하시다가 조용히 자신께서는 고난의 행군시기에 우리 군인들과 인민들이 질이 높지 못한 기초식품마저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는것이 너무도 가슴이 아파 나라의 경제형편이 매우 어려웠지만 많은 자금을 내여 인민군대의 기초식품문제부터 해결하고 그 경험을 전국에 일반화하도록 하였다고 말씀하시였다.

언제인가 장군님께서 전연고지에 가셨을 때 병사들이 질이 좋지 못한 간장과 소금을 먹는것을 보시고 너무 가슴이 아파 며칠동안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셨던 일을 잊으실수 없어 벌써 몇번째나 외우시는 말씀이였다.

그 가슴저린 말씀을 새길수록 일군들은 목메이는 감동에 잠겨 기어이 그이께서 바라시는대로 일을 잘하리라 굳게 마음다지였다.

돌이켜보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이어가신 장장 수천만리의 전선시찰의 길에 들리시였던 초소의 식당과 취사장은 얼마이고 병사들을 위해서 세워주신 식료공장과 양어장, 닭공장, 목장들은 그 얼마인가.

지구상에 수백개의 나라가 있고 나라마다 군대가 있어 사령관이라고 하는 장군들이 많고많지만 군부대시찰의 길에 식당을 찾아 병사들이 먹는 밥과 찬, 기초식품을 두고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그런 이야기는 그 어디서도 찾아볼수 없다.

세상에서 오직 한분, 지휘관을 위하여 병사들이 있는것이 아니라 병사들을 위하여 지휘관이 있고 최고사령관도 있다는 관점을 지니신 장군님께서만이 병사들의 식생활을 위해 그토록 온넋을 기울이신것이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의 후방사업을 단순한 물자공급사업이 아니라 정치사업, 군사사업과 함께 3대기둥의 하나로 내세울데 대한 참으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말씀을 높이 받들고 인민군대에서는 군인들의 식생활을 보다 개선해나가기 위한 된바람이 일어났다. 인민군대의 모범을 본받아 새 세기의 경공업전선에서는 인민에 대한 헌신과 복무의 서사시가 창조되여나갔다.

인민이 좋아한다면 돌우에도 꽃을 피워야 한다.

인민이 좋아하는 모든것을 인민에게 최우선적으로 안겨주어야 한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러한 신조로 군대와 인민들에게 그렇듯 뜨거운 정과 사랑을 안겨주시며 위대한 헌신의 길을 이어가시였다.

인민에 대한 숭고하고도 열렬한 사랑이야말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정치의 핵이고 력사에 있어본적이 없는 가장 빛나는 사랑의 정화였다.

 

3

강계땅을 찾으시여
 

열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역시 엄지손가락을 대신할 손가락이 없는것처럼 선군조선이라는 대가정의 어버이이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마음속에는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 연 6 000여리의 강행군을 단행하시여 락원에로의 길을 열어주신 때로부터 깊은 인연을 맺고계시는 자강도사람들이 나라의 맏아들로 자리잡고있었다.

주체92(2003)년 7월초 장군님과 사연깊은 인연을 맺고있는 자강땅에 감격의 열풍이 일어번졌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삼복철을 앞둔 무더위속에 멀고먼 험한 길을 달리시여 또다시 강계땅을 찾아주신것이다.

대인공호수로 전변된 장자강의 량안에 번듯하게 단장한 거리들과 새로 일떠선 선군시대의 창조물들, 랑만과 희열에 넘쳐 일터로 오가는 시민들의 활기넘친 모습들…

경애하는 장군님의 각별한 은정속에 락원의 도시로 전변된 강계시는 인민의 보람찬 생활모습을 펼쳐보이고있었다.

강계땅에 이룩된 놀라운 전변을 볼 때면 사람들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얼음버캐가 차창을 가리운 야전승용차를 타신채 강계땅을 찾아주시였던 다섯해전의 그날을 생각하군 한다.

주체87(1998)년 1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자강도의 험준한 고개길도, 휘몰아치는 북방의 사나운 눈보라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몸소 강계땅을 찾아주시였다.

그때 강계사람들은 장군님을 좋은 날, 좋은 때도 아니고 정월의 엄혹한 강추위속에 모시고 변변치 못한 자기들의 살림살이때문에 걱정을 끼쳐드리게 되였다는 죄책감으로 하여 오열을 터뜨렸다.

하지만 장군님께서는 오히려 그처럼 어려운 조건에서도 발전소를 건설하는 강계사람들을 보니 힘이 난다고 하시며 일군들을 고무격려하여주시였다.

북변땅의 맵짠 추위속에서 그들이 간고분투하며 건설하는 크지 않은 발전소들을 하나하나 보아주시며 발전량까지 가늠해보신 장군님께서는 어려운 시기에 발전소를 건설하는것자체가 대단하다고 그들의 투쟁열의를 치하해주시였다. 그러시고 강계사람들은 난관앞에서 주저앉은것이 아니라 배를 곯으면서도 발전소를 건설하였다고, 이제는 고난의 행군이 아니라 락원의 행군을 하게 되였다고 깊은 의미를 담아 말씀하시였다.

당의 의도를 받들고 견인불발의 의지로 일떠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건설한 크지 않은 발전소들에서 이 땅에 펼쳐질 래일의 휘황한 전변을 내다보시며 강계정신의 창조자들이라는 고귀한 칭호를 안겨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이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준엄했던 1950년대에 강선을 내세우신것처럼 자신께서는 1990년대에 강계를 내세우겠다고 하신 말씀을 전해들은 강계사람들모두가 억제할수 없는 격정에 눈물을 흘리며 경애하는 장군님 만세를 목청껏 웨치고 또 웨치였었다.

그때로부터 5년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강계땅을 찾으신것은 몇차례였던가.

강계시에 대한 그이의 현지지도의 길은 늘 이른새벽에 시작되여 깊은 밤에로 이어지군 하였고 현지지도기간에 렬차안에서 때늦게 드시는 식사는 말하기조차 가슴아픈 강냉이죽이나 남새빵 몇개가 전부였다.

인민의 운명을 지켜주고 행복을 창조하기 위해 그 어떤 고생도 달게 여기시며 걷고걸으신 위대한 헌신의 자욱우에서 강계시는 희망이 흐르는 락원의 도시로 전변되였고 모진 곤난과 시련이 휩쓸었던 자강땅에서는 말그대로 천지개벽이 이루어졌던것이다.

자강도에서의 전변의 력사는 계속 이어져나갔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92(2003)년 7월 강계시를 찾으신 그날에도 끊임없는 현지지도로 낮과 밤을 보내시였다.

이날 하루에만도 흥주닭공장을 돌아보신 다음 강계토끼종축장을 현지지도하신데 이어 흥주청년2호발전소를 찾아주시고…

자강도인민들이 발휘하고있는 애국적열의에 대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기쁨과 만족은 새로 건설된 강계토끼종축장에 그대로 이어졌다.

토끼종축장을 찾으신 장군님께서는 많은 우량품종의 새끼토끼들을 받아 농촌들에 보내줌으로써 토끼기르기를 전군중적운동으로 힘있게 벌릴수 있는 튼튼한 물질기술적토대를 축성한데 대하여 커다란 만족을 표시하시였다.

그러시고 강계토끼종축장은 생산공정이 현대적인 과학기술에 기초하여 꾸려졌을뿐아니라 공고한 사료기지까지 갖춘 실리있게 건설된 목장이라고 하시면서 보다 좋은 우량품종들을 더 많이 길러 도안의 시, 군 목장들에 보내줄데 대한 과업도 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자강도에서는 토끼나 소뿐아니라 염소와 돼지종축체계도 잘 세워놓고 좋은 품종의 집짐승새끼들의 수를 부쩍 늘이고있는데 여러곳을 돌아보아도 자강도에서처럼 종축기지를 그쯘하게 꾸려놓은데는 없다고, 종축기지들은 전국적으로 자강도에서 제일 잘 꾸렸다고, 모든 단위들에서 자강도처럼 종축기지들을 잘 꾸려놓고 관리를 잘하여 축산업발전에 이바지하여야 하겠다고 강조하시였다.

그 다음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강계기초식품공장을 현지지도하시였다.

공장의 일군들과 로동자, 기술자들은 장군님의 의도를 높이 받들고 불꽃튀는 투쟁을 벌려 짧은 기간에 공장을 개건하는 방대한 공사를 성과적으로 끝내고 30여가지의 간장과 20여가지의 맛좋은 된장 그리고 기름과 술 등 여러가지 제품들을 생산해내고있었다.

질좋은 간장, 된장, 기름을 비롯한 갖가지 기초식품들이 쏟아져나오는 흐뭇한 광경을 바라보시는 장군님의 존안에는 기쁨의 미소가 떠날줄 몰랐다.

그이께서는 자체의 힘으로 기초식품공장을 훌륭히 건설하였으며 생산문화를 높은 수준에서 보장하고있는데 대하여 만족을 표시하시면서 인민들의 식생활개선을 위하여 지혜와 정열을 다 바쳐가고있는 공장로동계급의 수고를 높이 치하하시였다.

이어 제품견본실에 들리신 장군님께서는 공장에서 만든 기초식품견본들을 하나하나 보아주시다가 건간장견본품이 있는 곳에서 걸음을 멈추시였다.

건간장의 상표며 포장상태를 구체적으로 료해하시던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건간장봉지를 가리키시면서 《이것을 하나 가지고 갑시다. 가지고 가서 한번 먹어봅시다.》라고 말씀하시였다.

공장일군은 어떻게 일반주민들에게 공급하는 건간장을 장군님께 올리랴싶어 그이께 공장을 현대화하고 첫 제품으로 생산한 건간장을 단지에 넣어 보관해둔것이 있는데 그것을 올리겠다고 말씀드리였다.

그러자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특별히 만든 건간장이 아니라 인민들에게 공급하는것을 가져다 그대로 먹어보겠습니다.》

장군님의 모습은 가정의 식탁과 찬거리를 걱정하는 자상한 어머니의 모습 그대로였다. 어느 시인이 《어머니》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나온다고 노래했듯이 우리 인민들은 《장군님》이라는 존귀한 부름을 듣기만 해도 장군님의 로고를 떠올리며 눈물짓는다.

그렇듯 인민을 위해 가는 걱정, 오는 걱정, 모든 근심걱정을 안고계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이 얼마나 뜨겁고 열렬한것인가를 일군들은 강계인풍려관에 대한 그이의 현지지도로정에서 또다시 절감하였다.

장자강반의 경치좋은 곳에 터를 잡고 새로 훌륭히 꾸려진 강계인풍려관은 인민의 봉사기지로서의 면모를 그쯘히 갖추고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려관의 식당, 주방, 침실 등 내부시설들을 일일이 돌아보시면서 려관운영정형을 구체적으로 료해하시였다.

려관식당에 들리신 장군님께서는 식사인원과 식사시간에 대해 하나하나 알아보시다가 문득 식당안의 난방은 어떻게 보장하는가고 물으시였다.

뜻밖의 물으심인지라 일군들은 어리둥절한 눈길들을 서로 주고받았다.

그때는 무더운 여름철이여서 난방문제가 첫 화제에 오르리라고는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것이다.

이윽하여 한 일군이 머뭇거리며 전기방열기로 보장하게 되여있다고 말씀올렸다.

그이께서는 식당안을 가늠해보시며 잠시 말씀이 없으시다가 식당안의 난방을 전기방열기로 보장한다는데 식당규모로 보아 방을 덥히기 어려울것 같다고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의아해하는 일군들에게 다시금 전기방열기만 가지고서는 추운 겨울에 식당안의 온도를 보장하기 힘들것이라고,그러니 잘 따져보고 그 대책을 세워야겠다고 간곡히 당부하시였다.

전기방열설비를 어느 정도 갖추어놓고 그에 만족해하고있던 일군들은 그만 얼굴이 붉어졌다.

우리 나라 속담에 《집을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이 있다.

사실 사람들이 집을 떠나 외지에서 생활하느라면 어느정도의 불편은 누구나 다 겪게 되는것이다.

더우기 당시는 나라사정이 의연히 어렵고 긴장한 때여서 출장자들은 어느 누구나 식사질이 좀 낮고 숙박조건이 다소 불편해도 잠자리만 뜨끈하면 되는것으로 여기고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려관식당은 손님들이 자는 방도 아니고 그저 식사할 때 잠간 들리군 하는 곳이였다. 그렇기때문에 일군들은 식당안에 전기방열기를 놓은것만도 괜찮은 수준이라고 생각했을뿐 그것을 가지고 겨울철에 식당안의 온도를 제대로 보장할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에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었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집을 떠나 려관에서 숙식을 하는 그 짧은 기간마저도 려관리용자들에게 따뜻한 방에서 더운 국을 후후 불며 식사하던 집에서처럼 몸에 익은 환경과 조건을 마련해주어 객지생활의 조그마한 불편도 없게 하시려고 마음쓰시는것이다.

이어 장군님께서는 주방칸쪽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하루 세끼 많은 손님들을 치르어야 하는 려관식당의 주방칸은 늘 뜬김이 서려있고 바닥이 마를 날이 없는 곳이다.

그런 곳에 허물없이 들어서신 장군님께서는 허리를 굽혀 전기로 밥을 짓게 되여있는 화로안을 들여다보기도 하시고 음식가지수를 손수 세여도 보시며 그 가격이 얼마인가에 대하여서도 하나하나 물으시였다.

그러시고는 이 려관에서 산간지대의 특성에 맞게 산나물을 가지고 여러가지 료리를 만들어주는것은 대단히 좋은 일이라고 하시면서 려관에 드는 손님들에게 잘 먹이고 불편이 없는 생활조건을 보장해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2층으로 올라가시는 층계에서도 장군님께서는 려관에서 전기는 얼마나 쓰는가고 물으시고 전기가 넉넉해야 추운 겨울에 손님들이 아무런 불편도 없이 지낼수 있다고 가르쳐주시였고 손님방들을 돌아보시면서도 설비와 비품들을 최상의 수준에서 마련하도록 은정깊은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2층홀에 들리시여 강계시의 풍경을 부감하시면서 2층홀에서 장자강을 내려다보니 멋이 있다고, 발전소의 언제를 쌓아 시안에 대인공호수가 생겨나니 강계시가 아주 보기 좋다고, 한폭의 그림같다고, 여기에 와보고는 누구도 자강도를 산골이라고 말하기 어려울것이라고 하시며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그 웃음속에는 인민들에게 훌륭한 생활조건을 마련해주게 된 그이의 크나큰 만족과 기쁨이 넘쳐흐르고있었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통하여 천백배로 억세여진 자강도사람들은 도안의 모든 도시와 마을들을 제힘으로 행복의 락원으로 꾸리였다고 하시면서 견인불발의 의지로 희망찬 새 세기를 열어나가는 강한 개척자들인 도내 전체 일군들과 근로자들의 애국적열의를 높이 평가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혁명의 진군가가 높이 울리고있는 자강도에서는 날에날마다 세인을 경탄시키는 눈부신 기적과 혁신이 창조되고있다고 하시면서 이 자랑찬 현실은 강계정신이 낳은 빛나는 결실이며 우리 인민의 무한대의 정신력의 표현으로 된다고 거듭 말씀하시였다.

이틀간에 걸쳐 강계시에 대한 현지지도를 마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깊은 밤 다음로정으로 향하시기 위하여 렬차에 오르시였다.

하루밤만이라도 숙소에서 편히 쉬시고 아침에 떠나시라고 일군들이 간절히 아뢰였건만 그이께서는 이들의 청을 들어주실수 없으시였다.

나라의 크고작은 일들이 그이를 기다리고있었던것이다.

자강도에 오면 떠나고싶지 않다고 하시면서도 시간이 너무도 없으시여 오실 때마다 분초를 쪼개가며 긴장하게 일을 보시고 총총히 밤길을 떠나시는 장군님이시였다.

다문 며칠, 아니 하루만이라도 경치아름답고 공기와 물도 좋은 곳에 모실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날도 장군님을 모신 렬차는 자강도사람들의 간절한 소원을 뒤에 남긴채 밤깊어 떠나갔다.

사랑의 기적소리를 오래도록 울리며…

경애하는 장군님의 강계시에 대한 현지지도에 고무된 인민들은 전국 도처에서 자기가 사는 도시와 마을을 제힘으로 행복의 락원으로 꾸리기 위한 투쟁을 더욱 힘차게 벌려나갔다.

참으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끊임없이 이어가신 현지지도의 길은 전국, 전민을 강성국가건설에로 힘있게 불러일으켜 하루빨리 인민들에게 보다 윤택하고 문명한 생활을 마련해주시려는 위대한 사랑의 길이였다.

 

4

강질화된 경질유리그릇으로
 

인민을 위하시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사랑은 경질유리그릇에도 뜨겁게 어려있다.

예로부터 음식맛은 그릇맛이라고도 한다.

하기에 우리 인민들은 그릇 하나에도 남다른 마음을 쓰며 깨끗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지향해왔다. 세상에 널리 알려진 고려청자기도 이러한 식생활문화의 자랑스러운 유산이다.

인민들이 집기류생활에서 오래전부터 품어온 문화적지향과 시대적요구를 누구보다 깊이 헤아려주신분은 바로 경애하는 장군님이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경질유리그릇에 대한 구상을 펼쳐주시였을 때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때로 말하면 모든것이 다 부족했던 어려운 시기였던것이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누구보다 고생을 많이 한 인민들에게 맛좋고 영양가높은 식료품을 훌륭한 그릇에 받쳐 안겨주고싶으시였다.

주체89(2000)년 7월 어느날, 삼복의 무더위속에서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던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경질유리그릇은 땅바닥에 떨구어도 깨여지지 않는다고, 우리 인민들의 밥상우에 이런 그릇을 그쯘히 차려놓으면 희한할수 있다고 하시면서 자신께서는 경질유리그릇공장을 인민들에게 안겨주기로 결심하였다고 말씀하시였다.

온 나라 가정의 수자를 몸소 꼽아보시면서 몇해면 한가정에 유리그릇이 얼마나 차례지고 또 몇해면 매 사람에게 몇개씩 차례질것인가를 계산해보시는 다심한 그이의 모습은 아들딸들을 하나하나 세여보며 좋은것을 빠짐없이 안겨주려고 마음쓰는 자식많은 어머니의 자애로운 모습 그대로였다.

삼복더위가 계속되는 그해 8월의 어느날에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우리는 인민을 위하여 복무한다는 구호만 부를것이 아니라 실지 인민들이 쓸 그릇 한개라도 깨끗하고 질적으로 만들어주어야 한다고 또다시 이르시고 한시바삐 우리 인민들에게 식사도구를 그쯘하게 갖추어주어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찬바람이 불어오던 11월의 전선길에서도 장군님께서는 우리 인민들이 남부럽지 않게 잘살게 하려면 푸짐한 밥상과 함께 식사도구문제를 해결해주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자신께서는 경질유리그릇을 생산하여 인민들에게 공급하기 위한 사업을 직접 지휘하려고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경질유리그릇공장은 이렇듯 장군님의 다심한 정과 간곡한 가르치심에 떠받들려 짧은 기간에 첨단기술로 장비된 현대적인 공장으로 훌륭히 일떠서게 되였다.

인민들에게 훌륭한 유리그릇들을 안겨주게 된것이 너무도 기쁘시여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93(2004)년 11월 어느날 쌀쌀하게 불어치는 마가을바람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경질유리그릇공장을 몸소 찾아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만면에 가득 웃음을 담으신채 새로 꾸린 공장건물을 이윽히 바라보시며 자그마한 산골도시에 현대적인 공장을 아담하게 일떠세운 공장일군들과 로동계급의 비상한 각오와 이악한 노력을 가슴뜨겁게 헤아리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먼저 2층의 종합조종실에 들리시여 즐비하게 늘어선 현대적인 조종반들을 일별해보시고 제품들이 놓여있는 진렬대앞으로 다가가시였다.

거기에는 소담하게 피여난 꽃같기도 하고 정교하게 다듬은 세공품같기도 한 새하얀 경질유리그릇들이 진렬되여있었다.

손수 그릇들을 집어드시고 이리저리 돌려가며 찬찬히 살펴보시는 장군님의 존안에는 행복의 웃음꽃을 피워가는 인민들의 모습을 생각하시는듯 기쁨의 미소가 떠날줄 몰랐다.

다시금 그릇가지들을 자세히 여겨보시던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물으시였다.

《그릇이 깨지지 않소?》

이때 동행하던 한 일군이 엉겁결에 《떨구지만 않으면 깨지지 않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 대답에 장군님께서는 어이가 없으신듯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말씀하시였다.

《떨구어도 깨지지 말아야지 떨구지 않으면 깨지지 않는것이 안 깨지는것이요.》

그이의 말씀이 얼마나 해학적이였던지 일군들모두가 즐거운 웃음을 터뜨렸다.

원래 경질유리그릇이라고 하면 그 첫째가는 우점이 떨구어도 깨지지 않는것이다. 떨구어서 깨진다면 그것은 경질유리그릇이 아니다.

그런데 당시 생산하던 그릇은 그릇의 강도를 높여주는 기술을 원만히 해결하지 못하여 생산되는 제품들중에서 깨여지는것이 없지 않았다.

장군님께서는 옆에 놓여있던 국사발을 손에 들고 자세히 살펴보시고는 여기에다 비지를 담아 먹으면 인민들이 참 좋아하겠다고 하시면서 말씀을 이으시였다.

《문제는 강질유리그릇으로 만들어 던져도 그릇이 깨지지 말아야 한다는것입니다. 내가 바라는것은 그런 강질화된 경질유리그릇입니다.》

인민을 위한 모든것이 최상의 질을 보장한것이여야 한다는것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지니신 인민에 대한 확고한 관점이고 립장이였다.

하기에 장군님께서는 이날 여러 생산공정을 돌아보시며 일군들이 미처 대책하지 못했던 문제, 관심밖에 두었던 문제들에 이르기까지도 구체적으로 헤아려주시였다.

그이께서 먼저 들리신 작업장은 공장에서도 가장 중요한 공정의 작업이 진행되는 곳이였다.

생산현장에서 열처리흐름선을 타고 흘러나오는 제품들이며 현장의 온도 그리고 설비들의 가동정형을 일일이 료해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걱정어린 안색으로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이 공장에 이빠진 공정이 있는것 같다고 말씀하시는것이였다.

공장일군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떨구었다.

실지 공장의 일군들이 설비를 들여올 때 국가의 자금을 절약한다고 하면서 그릇의 강도를 더욱 높여주는 공정을 비롯한 일부 공정을 들여오지 않았던것이다.

전문가들이 아니면 쉽게 가늠할수 없는 이 공간을 장군님께서 순간에 포착해내신것이였다.

나라에 부담을 적게 준다는것이 도리여 그이께 걱정을 끼쳐드린것으로 하여 일군들은 무거운 자책에 잠겨들었다.

그러는 일군들을 둘러보시던 장군님께서는 이빠진 공정을 보충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주시고 또 제기되는것이 없는가고 물으시였다.

다정하신 그 물으심에 일군들은 어려움도 잊고 경질유리그릇생산을 정상화하고 그 질을 높이는데서 걸리고있는 문제들을 말씀드리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경질유리그릇공장을 만부하로 돌리는데 필요한 조건을 충분히 보장해주도록 은정깊은 대책을 세워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릇포장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포장작업이 진행되는 곳으로 향하시였다.

작업장에 이르시여 포장설비의 가동정형을 이윽히 지켜보시던 장군님께서는 유리그릇은 중량이 무겁기때문에 종이지함을 쓰면 몇번 못쓸것이라고, 유리그릇들이 손상이 가지 않게 하자면 포장설비를 현대화하고 그릇들을 반드시 포장하여 팔아야 한다고 일깨워주시였다.

이어 장군님께서는 앞으로 제품들을 부부용, 가정용으로도 포장하고 개별포장도 하여 평양시와 전국의 상업망들에 꼭 포장된 제품을 내갈데 대한 문제, 밥그릇뚜껑은 필요에 따라 일정한 시간 밥을 깨끗하게 보관하기 위한것이기때문에 그릇의 뚜껑을 일률적으로 다 만들지 말데 대한 문제, 앞으로 아이들이 쓸수 있는 경질유리숟가락도 만들데 대한 문제 등 이 공장이 인민들의 생활상요구를 보다 훌륭히 충족시켜주는데서 나서는 세부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제품창고에 들리신 장군님께서는 가득히 쌓여있는 제품들을 일별하시고 공장에서는 제품을 쌓아놓을것이 아니라 상업망에 빨리 내보내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생산현장에 가시여서는 인민들에게 보내줄 그릇이여서 떨구어도 깨지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하시고 포장공정을 보시고는 그릇이 상하지 않은채로 인민들에게 가닿아야 하기때문에 포장을 잘해야 한다고 이르신 그이께서 제품창고에 오시여서는 제품을 창고에 쌓아두지 말고 인민들에게 빨리 보내주어야 한다고 강조하시니 오로지 인민만을 생각하시는 장군님의 그 진정이 사랑의 바다가 되여 일군들의 가슴에 사품쳐왔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순간의 휴식도 없이 열기와 소음이 엉켜돌아가는 현장에 오래동안 계시면서 생산과 경영활동에서 나서는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공장에 대한 현지지도를 마치시고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께서 생존해계실 때 이 공장을 세웠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고 갈리신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격해지는 마음을 애써 누르고있던 한 일군이 《경애하는 장군님, 그래서 첫 경질유리그릇이 나온 그날 로동자들은 어버이수령님이 그리워 그릇을 들고 공장구내에 모신 수령님의 태양상앞으로 달려가 목놓아 울었습니다.》라고 말씀드리였다.

한동안이나 묵묵히 어딘가를 바라보시던 장군님께서는 갈리신 음성으로 수십년전 언제인가 수령님께서는 인민들이 가정에서 밥상이 없어 신문지를 펴놓고 식사하고 밥사발, 국사발이 부족하여 불편을 느끼고있다는것을 료해하시고 자신께서 이런것을 위해 혁명을 했는가고 두고두고 외우셨다고 말씀하시였다.

어제는 나라형편이 어려운 속에서도 경질유리그릇공장건설을 발기하시고 오늘은 공장을 찾으시여 우리 인민들에게 질좋은 경질유리그릇을 더 많이 안겨주기 위해 기울이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진정은 한평생을 오로지 인민의 부럼없는 생활을 위해 그리도 마음써오신 어버이수령님의 숭고한 념원을 이 땅우에 활짝 꽃피우실 그 하나의 일념에 바탕을 두고있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제일로 사랑하신 인민들의 밥상에 현대적공장에서 생산한 질좋은 유리그릇들을 놓아줄수 있게 된것을 그리도 기뻐하신 경애하는 장군님.

경질유리그릇공장이 전하는 사랑의 이야기는 이뿐이 아니다.

그로부터 몇해후 공장의 일군들과 로동계급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맡겨주신 긴급과업을 받아안게 되였다.

어느 한 중요단위에 보내줄 일정한 량의 경질유리그릇을 생산하는것이였다.

장군님의 크나큰 믿음을 받아안은 공장의 로동계급은 긴장한 전투를 벌려 제기일내에 성과적으로 그릇생산을 끝내였다.

포장까지도 깨끗이 하고 제품을 올려보내려고 막 서두르던 그들은 뜻밖의 일에 부닥치게 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그릇값을 내려보내주시였던것이다.

뜨거운 눈물로 두볼을 적시던 그들은 경애하는 장군님께 공장로동계급의 심정을 담은 편지를 삼가 올리였다.

《…장군님과 한피줄로 이어진 우리 로동계급의 량심은 그것을 받아들일수 없습니다.

세상에 자기를 키워 내세워주신 아버지에게서 그릇값을 받는 자식도 있습니까. …》

그들은 편지에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공장로동계급의 소박하고 진정에 넘친 청을 꼭 받아주시기를 아뢰였다.

그런데 편지를 올린 때로부터 불과 얼마후 공장의 로동계급은 경애하는 장군님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친필회답을 받아안았다.

《동무들의 심정을 알만 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러시고도 장군님께서는 한 일군을 전화로 찾으시여 그곳 일군들과 로동계급들이 그릇값을 받을수 없다고 하면서 도로 올려보냈는데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하시면서 간곡히 당부하시였다.

경질유리그릇값을 다시 내려보내니 공장운영에 쓰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공장운영을 위한 자금이 한푼이라도 곯아서는 안된다는 그이의 말씀을 전달받고 공장로동계급은 너무도 감격하여 장군님께서 계시는 평양하늘을 우러러 뜨거운 눈물을 삼키였다.

인민을 위해 주실수 있는 모든것을 다 안겨주시고도 자신을 위해서는 그 어떤 특전과 특혜도 허용하지 않으시는 어버이장군님.

그이의 이렇듯 숭고한 인민사랑에 떠받들려 생산된 갖가지 경질유리그릇들이 오늘 인민의 행복넘친 생활을 더욱 윤택하고 아름답게 장식해주고있다.

 

5

상자식이냐 평사식이냐
 

인민들의 식생활을 더욱 풍만하게 하기 위한데서 가금업의 발전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나라의 가금업을 높은 수준에 끌어올리기 위하여 많은 심혈을 기울이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몸소 가금전문가가 되시여 생산실천에서의 실험도 진행하도록 해주시고 나라의 가금업계에서 틀어쥐고나가야 할 과학적방향과 방도도 밝혀주시며 인민들에게 더 많은 고기와 알이 차례지도록 하기 위한 사업을 완강하게 밀고나가시였다.

주체91(2002)년 5월 어느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구성닭공장을 찾으시였다.

그때 공장은 이미 있던 낡은 닭호동들을 대담하게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 평사식으로 된 호동들을 새롭게 일떠세운 뒤였다.

평사식호동이란 말그대로 바닥에서 닭을 기르게 되여있는 우리를 말한다. 이전에는 상자식(상자처럼 된 닭우리를 주런이 2단, 3단으로 설치하고 닭을 기르는 방법)으로 닭을 길렀는데 평사식닭기르기방법이 나오게 되면서 평사식을 이 공장에서 받아들이고 건물을 새로 지었던것이다.

콤퓨터종합지령실에서 공장의 현대화정형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료해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어 현대화된 호동쪽으로 걸음을 옮기시며 평사식호동에서 닭고기 1㎏을 생산하는데 사료가 얼마나 드는가, 사료는 어떻게 해결하는가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보시였다.

새로 지은 평사식호동은 이전시기에 널리 리용되고있던 상자식호동에 비해 시원한것은 말할것도 없고 주변환경과 조건이 매우 깨끗하고 리상적이였다.

한동안 호동안을 주의깊게 살펴보시던 장군님께서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시며 평사식살찌우기호동이 좋은것 같다고, 이런 호동은 건설하기도 쉬울것이라고 평사식호동을 꾸리고 닭사양관리를 새롭게 진행하고있는데 대해 긍정해주시였다.

평사식호동은 건물을 지은 다음 닭을 바닥에 놓아기르기때문에 상자식호동을 건설하는데 비해 원가가 훨씬 적게 들었다.

평사식살찌우기호동은 건설하기도 쉽지만 전기를 적게 쓰며 물공급과 먹이공급, 온도, 환기를 자동적으로 조절하기때문에 닭들이 깨끗한 환경에서 사육되고 페사률도 적었다.

새로 건설한 평사식호동의 좋은 점에 대하여 말씀드리는 공장일군의 해설을 들어주시며 장군님께서는 무엇인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으면 되묻기도 하시고 때로는 긍정도 하시며 그 일군의 설명을 끝까지 다 들어주시였다.

공장의 여러곳을 돌아보시며 닭고기와 알생산을 늘이는데서 나서는 문제들에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며 많은 시간을 보내신 장군님께서 어느덧 떠나실 시간이 되였을 때였다.

떠나시려고 승용차가 있는데로 가시던 장군님께서 다시 공장일군들에게로 되돌아오시는것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영문을 몰라하는 일군들에게 앞으로 구성닭공장에서는 《로만》종 닭을 평사식으로도 길러보아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공장일군으로부터 꼭 그렇게 하겠다는 대답을 들으신 장군님께서는 함께 온 일군들에게 그럼 종자를 보내주어야겠다고 이르시고 이렇게 강조하시였다.

《먹이공급을 비롯하여 꼭같은 조건에서 〈로만〉종 닭을 호동바닥에서 길러보면서 상자식으로 기르는것과 어느것이 좋은가 하는것을 대비하여보는것이 좋겠습니다. 〈로만〉종 닭알을 주겠으니 대비시험결과를 보고하여야 합니다.》

일군들은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

당시 가금업계에서는 닭기르기에서 상자식이냐, 평사식이냐 하는 문제를 놓고 서로 엇갈린 주장들을 펴고있었다. 어느 방법이나 다 고기와 알을 많이 생산하자는데 있는것만큼 나름대로의 일정한 근거가 있었고 생산실천에서의 증명도 따라서지 못한것으로 하여 그 어느쪽도 지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라일로 바쁘신 장군님께서는 바로 이 문제를 두고 오래동안 마음써오신것이 아닌가.

그 순간 일군들에게는 언제인가 책에서 보았던 이야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중학시절에 탐독하신 수많은 책들중에 《닭기르기》라는 책도 있었다는 사실이 불쑥 상기되였다. 그이의 서가에 정치, 경제, 력사, 철학, 법학 등 사회과학분야만이 아니라 자연과학계통의 책들도 수많이 꽂혀있는것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던 한 학생이 다른 책들은 몰라도 《닭기르기》와 같은 기술서적들은 전문가도 아닌데 읽어서 무엇하시는가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장군님께서는 《닭기르기》를 읽는것은 수령님께서 인민들에게 흰쌀밥과 고기국을 먹이시려고 닭기르는 방법을 연구하고계시기때문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이런 사실이 돌이켜지면서 일군의 가슴이 뭉클 젖어왔다.

이날 일군들모두의 가슴가슴은 모든것이 과학화, 현대화된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가금업에서도 새로운 전환을 가져오시려 떠나시던 걸음마저 멈추시고 서로 다른 닭사양방법의 대비시험까지 마련해주시는 장군님의 웅심깊은 사랑에 보답할 일념으로 끓어번졌다.

장군님께서 다녀가신 후 구성닭공장의 일군들과 종업원들은 그이의 현지말씀관철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섰다.

장군님께서는 여러차례 구성닭공장에서 진행하고있는 대비시험정형에 대하여 료해하시고 필요한 모든 조건을 다 풀어주시였다. 그리하여 이곳 일군들은 대비시험을 성과적으로 진행하고 평사식호동이 상자식호동에 비해 우월할뿐아니라 육성률과 증체률을 비롯한 여러가지 지표들도 훨씬 높다는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였다.

그때로부터 4년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구성닭공장을 또다시 찾아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공장의 일군들과 기술자들이 대비시험에서 성공한 후 현대화된 평사식호동을 여러개나 더 건설하고 많은 닭고기를 생산할수 있는 확고한 토대를 마련한데 대해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그이께서는 함께 온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이 동무들이 《로만》종 닭을 상자식호동과 평사식호동에 넣고 기르면서 대비시험을 한 결과 평사식호동에 넣고 기르는것이 상자식호동에 넣고 기르는것보다 육성률과 증체률이 높고 고기 1㎏당 먹이소비량과 페사률은 적다는것을 증명하였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평사식호동이 우리 나라 실정에 맞습니다.》

만시름이 풀리신듯 허리에 두손을 얹고 환히 웃으시는 그이의 안광에는 닭고기로 푸짐하게 차려놓은 식탁을 마주하고 기뻐할 인민들의 모습이 어린듯 따스한 빛이 넘쳐흘렀다.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는 평사식호동!

상자식으로부터 더 많은 고기와 알을 생산할수 있는 평사식호동에로의 방향전환!

이것은 그 어떤 과학기술이 안받침되여 밝혀진 가금리론이나 방법이기 전에 경애하는 장군님의 인민에 대한 뜨겁고도 열렬한 사랑, 다심하고도 웅심깊은 친어버이의 사랑이 안아온 귀중한 결실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닭고기생산에서의 새로운 전환을 마련해주시는 한편 현대적인 오리생산기지건설도 발기하시고 인민들이 그 덕을 보도록 완공시켜주시였다.

룡지오리공장이 그 대표적실례이다.

병사들과 인민들에게 닭고기와 함께 오리고기도 정상적으로 먹이자는것이 경애하는 장군님의 확고한 결심이고 의지였다.

선군령도의 길에서 이러한 결심을 더욱 굳게 하신 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에서 현대적인 닭공장을 건설하여본 경험도 있는것만큼 오리공장건설을 본보기로 잘해보라고 믿음어린 과업을 주시고 공장건설부지와 그 규모, 현대적인 생산설비를 갖추는 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 나날에 새겨진 이야기는 또 얼마나 가슴뜨거운것인가.

오리공장기초공사가 거의 끝나가던 주체91(2002)년 12월 중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어느 한 인민군부대를 찾으시였을 때였다.

이날 일당백의 기상이 차넘치는 군인들의 훈련모습을 보아주신 장군님께서는 오늘 보니 군인들의 훈련강도가 높은데 고기를 정상적으로 먹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군인들이 …훈련을 한번 하면 오리고기 한마리를 다 먹어도 성차하지 않아할것입니다.

…군인들에게 고기를 보내주겠습니다.》

이어 그이께서는 일군들에게 현재 하고있는 오리공장건설을 빨리 다그쳐 군인들에게 오리고기를 정상적으로 공급해주도록 하자고 간곡하게 이르시였다.

시찰을 마치고 돌아오시여 인민군지휘성원들과 자리를 함께 하신 장군님께서는 오리공장건설정형을 다시금 알아보시고 건설을 앞당겨 끝낼수 있는 방향과 방도를 환히 밝혀주시였다.

병사들과 인민들에 대한 장군님의 사랑은 정녕 오리공장건설에 동원된 군인건설자들과 종업원들이 낮과 밤이 따로 없는 전투를 벌릴수 있게 한 힘의 원천이였으며 공장건설을 앞당겨 끝낼수 있게 한 근본비결이였다.

이렇듯 경애하는 장군님의 정력적인 지도와 세심한 보살피심에 의하여 오리고기생산에서 일대 전환을 가져오게 할 현대적인 오리공장이 선군시대의 새 모습을 자랑하며 훌륭히 일떠서게 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93(2004)년 10월 어느날 친히 현지에 나오시였다.

새로 건설된 오리공장은 종금직장으로부터 시작하여 부화기계통, 비육과 고기를 랭동하는데 이르기까지 모든 공정이 하나의 흐름식으로 되여있고 매 호동들의 건물배치와 전기 및 물보장상태 그리고 수의방역대책 등 모든것이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과학기술적으로 되여있는 현대적인 공장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설비는 어떤것들이 들어갔는가, 종금보장상태는 어떻게 되여있는가 등을 자세히 알아보시고 감개무량하신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인민군대에서 이번에 현대적인 오리공장을 건설함으로써 우리 인민군군인들과 인민들에게 맛좋고 영양가높은 오리고기를 생산공급할수 있는 또 하나의 귀중한 재부가 마련되게 되였습니다.》

기쁨을 금치 못해하시는 그이께 한 일군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과업을 주시고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여 공장이 오늘과 같이 현대적으로 일떠서게 되였다고 진정을 담아 말씀드리였다.

이것은 그 일군만이 아닌 군인건설자들모두의 한결같은 심정이기도 했다.

격정의 빛이 어린 일군들의 모습에서 그 속마음을 다 헤아려보신 장군님께서는 겸허하신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인민군지휘성원들과 공장책임일군들이 이 오리공장은 당의 관심과 배려속에 마련된 창조물이라고 하는데 당에서 많은 관심을 돌리고 자재와 설비들을 보장하여주었다고 하여도 군인건설자들과 공장종업원들이 주인다운 립장에서 이악하게 노력하지 않았더라면 공장을 이렇게 훌륭하게 건설하고 관리하지 못하였을것입니다.》

자신께서 바쳐오신 끝없는 심혈에 대해서는 생각지 않으시고 이룩된 모든 성과를 전사들의 공로로 빛내여주시는 분에 넘치는 말씀에 일군들의 눈굽은 쩌릿해졌다.

장군님께서는 새로 건설된 공장의 이름을 지어주시였으면 하는 이곳 일군들의 소원을 헤아리시여 몸소 《룡지오리공장》이라고 그 이름도 지어주시고 이 공장은 선군시대에 마련된 현대적인 본보기오리공장이라는 값높은 영예도 안겨주시였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공장을 돌아보시며 전문가이상의 해박한 지식으로 오리의 생리적특성을 잘 알고 사양관리를 과학적으로 해나갈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아안으며 일군들은 오리사양관리에 관한 그이의 높은 전문지식에 경탄과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

사랑하는 병사들과 인민들에게 풍성한 식탁을 마련해주시려 달리는 야전차에서 쪽잠마저 미루어가시며 가금학과 관련한 자료들을 깊이 연구하시였을 그이의 로고가 사무쳐와 눈시울이 젖어들었다.

장군님께서는 공장을 떠나시기에 앞서 다시금 공장구내를 둘러보시며 만족하신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룡지오리공장은 선군시대에 마련된 현대적인 본보기오리공장입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과학적인 지도와 가르치심에서 일군들은 오리공장에 대한 그이의 커다란 관심과 기대 그리고 자신들에 대한 고무와 격려를 가슴벅차게 느낄수 있었다. 하여 일군들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현지지도에서 주신 과업을 무조건 관철하여 선군시대 본보기공장의 영예를 빛내여갈 불타는 맹세를 말씀드리였다.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아주시며 그 결의를 반드시 실천하기 바란다는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시고 귀로에 오르시였다.

그후에도 장군님께서는 룡지오리공장의 관리운영정형에 대하여 거듭 알아보시며 현대적인 수의방역설비들도 보내주시고 사료보장을 비롯하여 걸린 문제들을 다 풀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렇듯 헌신적로고와 심혈속에 나라의 가금업발전에서는 커다란 성과가 이룩되였으며 현대적으로 꾸려진 가금공장들에서 생산되여나오는 수많은 고기와 알들은 인민들의 식탁을 더욱 풍성하게 하였다.

 

6

《새 세기를 상징하는 황홀한 풍경입니다》
 

인민들의 생활향상과 복리증진을 위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정력적인 령도는 나라의 이르는 곳마다에 사회주의선경을 펼쳐놓았다.

장자강의 불야경과 범안리의 선경, 한드레벌의 지평선, 대홍단의 감자꽃바다…

사랑의 그 자욱은 황해북도 봉산군 은정축산전문협동농장에도 찍혀졌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이곳을 찾아주신것은 주체92(2003)년 6월 어느날이였다.

이른아침 산촌의 이슬길을 밟으시며 농장을 찾아주신 장군님께서는 먼저 은정마을입구에 건립된 어버이수령님의 현지지도표식비를 돌아보시였다.

이곳은 40년전 1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찾아주시였던 뜻깊은 곳이였다.

대소한의 추위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당시 도적으로 제일 못사는 이 농장을 찾아주신 수령님께서는 눈덮인 포전길을 걸으시며 산골농민들의 생활을 향상시킬 방도들을 하나하나 밝혀주시였다.

잊을수 없는 력사의 날에 있은 가슴뜨거운 사적을 감회깊이 추억하시는 장군님의 안광에는 한평생 인민의 행복을 위해 수천수만리 헌신의 길을 이어가신 수령님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이 어려있었다.

얼마후 장군님께서는 전망대에 오르시여 한폭의 그림같은 농장의 풍경을 부감하시였다.

아늑한 골안에 100여리의 방목도로를 따라 눈뿌리가 모자라게 펼쳐진 진록색풀판이며 푸른 주단우에 수를 놓은듯 빨갛고 파란 지붕을 떠이고 골짜기마다에 들어앉은 염소우리와 가공건물들, 산중의 경치를 그대로 비껴닮은 맑은 저수지들, 저 멀리 산기슭에 새로 일떠선 문화주택들…

장군님께서는 몰라보게 전변된 산촌의 풍경을 바라보시며 만족하신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정말 풍치가 좋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새 세기를 상징하는 황홀한 풍경입니다.》

번영하는 조국의 축도인양 드넓은 산판과 골짜기마다에 장쾌한 모습을 드러내며 즐비하게 일떠선 창조물들을 바라보시는 장군님께서는 만족과 기쁨의 미소를 지으시였다.

고난을 이겨낸 인민들에게 행복의 락원, 사회주의의 무릉도원을 안겨주게 된것이 그리도 기쁘시여 환하게 웃으시는 장군님,조국땅 곳곳마다 선군시대의 사회주의선경을 펼쳐주시고 인민이 누려가는 행복에서 기쁨을 찾으시는 장군님이시였다.

이어 장군님께서는 현대적으로 꾸려진 축산분장을 돌아보시였다.

분장은 염소를 과학기술적으로 기를수 있는 모든 시설들이 충분히 갖추어지고 사료기지가 전망성있게 꾸려졌을뿐아니라 젖가공시에 나오는 부산물과 집짐승배설물을 효과적으로 리용하여 많은 오리와 게사니, 돼지를 치고 양어도 할수 있게 실리적으로,리상적으로 꾸려져있었다.

분장에서 기르는 염소는 무게가 보통 60~80㎏이상 되고 한마리에서 짜내는 젖량이 하루에 6ℓ정도나 되는 우량종으로서 몇해전 장군님께서 현대적인 젖가공설비들과 함께 보내주신 수백마리의 종자염소를 번식시킨것이였다.

그 염소들이 번식하고 자라 서로 엉키여돌아가는 모습을 기쁨속에 둘러보신 장군님께서는 젖가공실에 들리시여 먹음직스러운 젖가공제품들을 보시고서 우리가 허리띠를 조이며 애쓴 보람이 있다고, 인민들에게 실지로 우유와 치즈를 먹일수 있게 됐다고 기뻐하시였고 가공사료전시장에 들리시여서는 그쯘히 갖추어진 사료생산체계에 커다란 만족을 표시하시였다.

그 옛날 산이 많아 산골이라고 한탄소리만 높던 이곳이 살기 좋은 락원으로 전변된데 대한 장군님의 기쁨은 축산분장에 새로 일떠선 마을에도 이어졌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제손으로 행복을 창조하고 향유해가는 이곳 농장원들의 생활도 알아보시려 농장의 3작업반에서 일하는 한 농장원의 가정을 찾아주시였다.

《잘들 있었소?》

장군님께서는 집주인들을 향해 소탈하고 다정하신 음성으로 인사를 건네시였다.

그들부부는 꿈같은 현실앞에서 당황한 나머지 어쩔줄을 몰라했다.

황망히 인사를 올리는 그들을 정겹게 바라보시며 장군님께서는 세대주에게 군사복무를 하였는가, 어느 부대에서 복무했는가,지금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가고 다정히 물으시였다.

그러시고는 친어버이의 심정으로 지붕이며 나무울타리, 집짐승우리들을 차례로 살펴보고나서 집을 아담하게 잘 지었다고 하시며 천천히 집안으로 들어서시였다.

문화적으로 꾸려진 살림방들을 둘러보시며 살림살이형편을 하나하나 알아보시던 장군님께서는 겨울에 춥지 않았는가, 땔감은 무엇으로 하는가고 물어주시였다.

염소목장을 꾸리며 주변산들을 풀판으로 전환시켰으니 땔감이 바르리라는것을 걱정하여 하시는 말씀이였다.

소탈하고 정넘치는 물으심에 농장원부부는 그만 어려움도 잊고 춥지 않았다고, 산에서 나무를 해다 땐다고 번갈아 말씀드렸다.

그러나 여전히 걱정을 놓지 못하시며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되뇌이시였다.

《지난 겨울에 춥지 않게 지냈다는데 땔감을 어떻게 보장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불시에 이들부부의 가슴속에서는 뜨거운것이 솟구쳐올랐다.

그들이 새집들이를 한이래 숱한 일군들과 손님들, 일가친척들이 다녀갔으나 모두들 무릉도원같은 이곳 마을에서 살고있는 그들을 부러워하고 함께 기뻐하면서도 누구 하나 땔감을 두고 걱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곳에서 살고있는 그들자신도 이 좋은 살림집을 쓰고사는것만도 큰 복인데 좀 먼데 가서 땔감을 해오는것쯤 무슨 대수랴 하고 생각하고있었다.

그런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복에 복을 덧안겨주고싶으신 심정에서 아무도 걱정하지 않는 땔감을 두고 그리도 마음을 쓰시는것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여기는 주변산들이 다 풀판으로 되여있으므로 땔감문제가 결정적으로 걸릴수 있다고 하시면서 농촌살림집들에서는 메탄가스화를 하여 땔감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간곡히 말씀하시였다.

친부모보다 더 웅심깊고 다심한 어버이사랑에 집주인들만이 아닌 일군들모두가 두눈을 슴벅이고있는데 그이께서는 그 집의 딸애를 띄여보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딸애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시며 다심하신 어조로 이렇게 물으시였다.

《오늘은 일요일도 아닌데 왜 학교에 안 갔느냐?》

그이의 자애넘친 모습에 저도 모르게 이끌린 소녀는 그제서야 학교에 가지 않은 잘못을 느꼈는지 장군님을 뵙고싶어 학교를 뚜꺼먹었다고 기여들어가는 소리로 대답올렸다.

《학교에 가지 않고 뚜꺼먹으면 되나.》

짐짓 나무라시는 어조로 말씀하시다가 호탕하게 웃으시는 그이의 음성이 온 방안에 쩌렁쩌렁 울리였다.

어린 소녀의 말과 거동에서 아버지장군님을 뵙고싶어하는 어린이들의 동심과 간절한 소원을 헤아려보신듯 그이께서는 허리를 굽혀 그애의 어깨를 다독여주시였다.

학교에도 잘 가고 공부도 잘해서 꼭 최우등생이 되겠다는 소녀의 결의를 들으시고 장군님께서는 그들부부에게 이 애가 내가 온다고 학교에 가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래서는 안된다고, 학생은 수업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고, 이애가 공부를 잘해서 최우등생이 되겠다고 하는데 학교에도 잘 다니고 공부도 잘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이르시였다.

자식의 창창한 앞날을 바라는 부모의 진정이 어린 한없이 고맙고 따뜻한 장군님의 말씀은 그들모두의 심장을 뜨겁게 울려주었다.

산간마을인민들의 생활향상을 위해 어제는 눈덮인 포전길을 걸으시고 오늘은 보다 훌륭한 사회주의선경마을로 꾸려주시고도 주신 사랑 적으신듯 평범한 한 가정에 들리시여 생활의 구석구석 지어는 땔감에 이르기까지 마음쓰시는 경애하는 장군님.

친어버이사랑으로 인민을 돌보시며 사랑의 자욱자욱을 이어가시는 절세의 위인을 우러러 일군들은 솟구쳐오르는 격정을 금치 못하였다.

주체92(2003)년 12월 28일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황해남도 계남목장을 찾아주시였다.

그해 6월 17일 계남목장에 찾아오시여 축산의 전문화를 실현할데 대한 과업을 주신 장군님께서 한해가 다 저물어가는 12월에 또다시 목장에 사랑의 자욱을 새기신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지말씀을 받들고 짧은 기간에 개건확장공사를 완성한 계남목장의 전경은 볼수록 황홀하였다.

목장이 자리잡고있는 그 지구로 말하면 원래 산과 산들이 맞붙어있고 땅이 척박하기로 소문난 곳이였다.

그러나 도안의 일군들과 인민들이 축산을 전문화할데 대한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들고 전에 소우리로 건설하였던 건물들을 개조하는것과 함께 새 품종돼지우리와 새 품종염소우리, 젖가공공장과 사료가공실을 비롯한 생산건물들과 보조건물들을 백수십동이나 번듯하게 일떠세웠다.

목장은 또한 산간지대의 특성에 맞게 축산에 필요한 물문제도 자연수로 해결할수 있게 현대적으로 꾸려져있었다.

장군님께서는 개건확장된 분장들을 돌아보시면서 화보에 나오는 한폭의 그림과 같다고, 이 목장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보여주어도 손색이 없을것 같다고 커다란 만족을 표시하시였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새로 지은 집짐승우리도 보아주시고 새 품종의 돼지와 염소를 기르는데서 나서는 과학기술적인 문제들도 가르쳐주시면서 많은 시간을 목장에서 보내시였다.

지난 6월에도 목장의 축산전문화방향을 밝혀주시며 돼지를 전문화해야 한다고, 돼지를 기르면 물거름이 많이 나와서 농사도 잘 지을수 있다고, 농사를 잘 지어야 종업원들의 식량과 집짐승먹이문제도 해결할수 있다고 간곡히 가르쳐주신 장군님.

자신께서 시험해보고있는 돼지의 생태학적특성에 대해서도 일일이 가르쳐주시고 그런 돼지를 한번 길러보고싶다는 이곳 일군들의 요청도 기꺼이 들어주시며 떠나가신 후 우량종의 종자돼지, 종자염소들과 함께 젖가공설비를 일식으로 보내주신 장군님이시였다.

벌방사람들도 부러워할 선경마을을 가꾸시려 그토록 크나큰 심혈을 바쳐가시는 장군님을 우러르는 일군들의 눈굽은 쩌릿이 젖어들었다.

장군님께서는 목장의 과학화, 현대화를 실현하기 위한 사업을 꾸준히 실속있게 진행하여 젖생산을 급격히 늘이고 일터를 휴양소처럼 알뜰하게 꾸린 이곳 일군들과 종업원들이 못내 기특하게 여겨지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오늘 보니 계남목장은 전망이 좋다고, 이 목장은 집짐승우리들이 밀집되여있지 않고 분장마다 널려져있는데다 풀판도 좋은것만큼 규모를 얼마든지 더 늘일수 있다고 하시며 계남목장을 인민의 복리에 참답게 이바지하는 목장으로 꾸려나가도록 일군들을 고무격려해주시였다.

정녕 오늘만이 아니라 보다 훌륭히 변모될 목장의 래일을 위하여, 보다 윤택해질 인민의 행복한 생활을 위하여 마음을 쏟아부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이시였다.

일군들은 가셔야 할 곳도 많고 만나주셔야 할 사람도 많은 장군님께서 어찌하여 한해에 두차례나 이곳을 찾아주시고 온갖 심혈을 기울이시는가를 심장으로 느끼며 그이의 말씀을 기어이 관철해갈 불타는 맹세를 다지고 또 다지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처럼 가시는 곳마다에서 일군들의 심장에 불을 지펴주시고 비약의 나래, 창조의 열정을 안겨주시여 행복의 무릉도원을 가꿔가시였다.

나라의 이르는 곳마다에 펼쳐지는 새 세기를 상징하는 황홀한 풍경, 정녕 이것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숭고하고도 열렬한 인민사랑의 대화원속에서 날로 꽃펴나는 인민의 행복한 모습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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