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모든것을 선군의 요구대로!

 

경제의 활성화, 현대화의 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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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개건설력사에 없는 기적이라시며
 

선군시대에는 경제건설도 선군의 요구대로 하여야 했다. 그러한 시대적요구를 반영하여 국방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면서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킬데 대한 선군시대 경제건설의 기본로선이 제시되고 그 관철을 위한 투쟁이 힘있게 벌어지고있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로동계급이 이 벅찬 투쟁에서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도록 이끌어주시였다.

경제강국건설의 장엄한 포성이런듯 나라의 여기저기에서 거창한 창조물들이 일떠서고있던 2002년 10월 18일 나라의 관개건설력사에서 처음으로 되는 자연흐름식물길인 개천-태성호물길준공식이 성대히 진행되였다.

전기를 전혀 쓰지 않고 나라의 서부지구의 많은 논밭에 생명수를 보장해주는 새로운 형태의 자연흐름식물길, 일명 제2의 대동강이라고도 부르는 개천-태성호물길이 완공된것은 나라의 농업발전을 떠밀수 있는 하나의 사변이였다.

이 경사스러운 소식에 접하여 주체91(2002)년 12월 18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완공된 개천-태성호물길을 돌아보시기 위하여 현지에 나오시였다.

자연은 한겨울의 추위에 떨고있었지만 거창하게 솟은 대각청년언제와 드넓게 뻗은 물길에서 오래도록 눈길을 떼지 못하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안광에는 봄날처럼 따뜻한 미소가 어려있었다.

물이 논밭으로 저절로 흘러들어 이 땅이 무겁도록 행복의 오곡백과 주렁질 앞날을 그려보시는가, 물에 대한 농민들의 소원을 우리가 풀어주어야 한다고 하시며 샘줄기를 찾아 험한 산비탈길을 오르내리시던 어버이수령님의 잊을수 없는 모습을 회억하시는가.

깊은 감회에 잠기시여 개천-태성호물길의 거창한 흐름을 이윽토록 바라보시던 장군님께서는 설계도 잘되고 시공도 질적으로 보장된 휘황찬란한 창조물인 개천-태성호물길완공은 세상에 자랑할만 한 위대한 변혁이라고 하시면서 반만년민족사에 특기할 경이적인 사변이라는 뜻깊은 말씀을 하시였다.

반만년민족사에 특기할 경이적인 사변!

설계가들도 건설일군들도 그 방대함과 거창함을 많이 말하면서도 찾지 못했던 표현을 순간에 터쳐놓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을 우러르며 일군들모두는 격정을 금치 못해하였다.

물에 대한 농민들의 세기적숙망을 풀어주기 위해 크나큰 로고를 바쳐오신 장군님이시였기에 물길의 가치를 그처럼 정확히 그리고 그처럼 높이 평가해주시는것 아니겠는가.

원래 평안남도를 비롯한 나라의 서부지구는 큰 벌을 끼고있으나 물이 바른 고장이였다. 사흘만 비가 오지 않아도 가물이 들었다는 곳이 바로 해방전의 이 고장이였고 물걱정없이 농사를 지어봤으면 하는것이 그전날 이 고장 농민들의 세기적인 숙망이였다.

지나가는 길손에게 죽대접은 하여도 물대접은 하지 못했다는 황주긴등벌농민들이며 온 마을이 달라붙어 기를 쓰고 《100자우물》을 팠건만 끝내 한방울의 물도 논에 붓지 못했다는 염주벌의 농민들…

이들의 숙망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전후 나라사정이 그처럼 어려웠던 시기 막대한 자금을 들여 인공호수인 연풍저수지를 건설하고 뒤이어 태성저수지를 건설하도록 하심으로써 풀릴수 있었다.

그런데 1990년대 중엽에 이르러 미제의 악랄한 반공화국고립압살책동과 여러해째 계속되는 이상기후현상의 영향으로 나라의 전기사정이 긴장해짐에 따라 양수기들을 제대로 돌리지 못하다보니 물문제는 다시금 심각하게 제기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 지구의 물문제를 해결하는것을 일찌기 우리 나라를 《관개의 나라》로 전변시켜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령도업적을 고수하고 빛내일뿐아니라 달라진 현실적조건에 맞게 농업생산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켜나갈수 있는 중요한 문제로 보시고 나라가 그처럼 어려웠던 고난의 행군시기 거대한 규모의 자연흐름식물길을 건설하실 용단을 내리시였다.

산이 많고 지형기복이 복잡한 우리 나라의 자연지리적조건에서 자연흐름식물길을 건설한다는것은 보통의 담력으로써는 용단을 내리기 어려운 거창한 대자연개조사업이였다.

평남관개의 5배!

이것이 첫 자연흐름식물길인 개천-태성호물길의 규모였다.

공사는 그 투자액만 하여도 천문학적액수에 달하는것이였다.

그에 비해볼 때 자재, 자금, 경험 등 공사의 전반적성과를 좌우하는 제반 조건은 너무도 빈약하였다.

방대한 공사량을 놓고 다른 나라 사람들은 적어도 10년은 걸려야 완공할수 있을것이라고 하였고 일군들도 최소한 6년은 걸릴것으로 타산하고있었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였다.

물길공사를 늦어도 2~3년내에 완공하시려는것이 그이의 구상이고 의지였다.

물길건설의 설계도를 펼쳐주시면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굳게 믿으신것은 당이 결심하면 결사관철의 정신으로 무조건 해내고야마는 군대와 인민의 백절불굴의 투쟁정신과 무궁무진한 창조적힘이였다.

천만산악도 떠옮기고 바다도 메우는 우리 군대와 인민이 있는 한 그 어떤 거창한 대자연개조사업도, 경제활성화의 넓은 길도 열어나갈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이 그이의 심중에 차넘치고있었다.

하여 공화국의 푸른 하늘가에는 전당, 전군, 전민을 물문제해결을 위한 거창한 대자연개조사업에로 부르는 국방위원회명령이 힘있게 울려퍼졌다.

자연흐름식물길공사에서 물길굴공사문제가 관건적고리로 나섰다.

그 어느 구조물공사보다 품이 많이 들고 어려운 분야로 인정되고있는 물길굴공사를 어떻게 해제끼는가에 따라 물길공사의 전반적성과가 좌우된다고 말할수 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이러한 물길굴공사에 전투력있고 파악있는 인민군부대들을 동원하는 혁명적조치도 취해주시였다.

다른 공사는 좀 뒤로 미루더라도 인민생활과 관련되는 개천-태성호물길공사를 하루빨리 끝내야 한다고 하시며 인민군군인들이 물길굴공사를 맡으면 해제낄것이라는 최상의 믿음을 안겨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이시였다.

그 믿음, 그 기대를 높뛰는 심장마다에 새겨안고 조국의 방선을 지켜섰던 철의 사단들이 물길공사장으로 달려왔다.

어느날 물길공사와 관련된 문건을 친히 보아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거기에 활달한 필체로 가슴뜨거운 친필을 남기시였다.

《강하게 내밀어야 할 전선》

물은 농업의 생명선이다. 하지만 물문제는 단순히 농업의 생명수를 보장하기 위한 문제만이 아니였다.

물길공사를 하루빨리 완공하여야 알곡생산에서 획기적전환을 일으켜 인민생활문제를 풀고 나라의 경제전반을 활성화하여 우리 조국을 제국주의자들의 그 어떤 경제봉쇄책동에도 끄떡없는 사회주의의 보루로 튼튼히 다져나갈수 있었다. 다시말하여 물문제는 어버이수령님의 한생의 유산이고 인민의 행복의 요람인 사회주의를 지키느냐, 버리느냐, 혁명의 붉은기를 변함없이 높이 드느냐, 내리우느냐 하는 문제와 직결되여있었던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친히 물길공사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풀어나가시였다.

어느해 태양절에는 공사를 맡은 일군들을 몸가까이 불러주시고 물길공사에 필요한 설비와 자재문제를 해결할 방도를 찾아주시였고 어느해 정초에는 물길공사정형을 구체적으로 알아보시고 공사를 빨리 다그쳐 끝내기 위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인민군부대들에 대한 현지시찰의 길에서 맞으신 새 세기의 첫 건군절에도 건설자들이 째놓은 흙물길을 도로삼아 지나가시면서 많은 일을 하였다고 고무격려해주시고 흙물길을 만년대계의 물길로 완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도도 가르쳐주신 그 정력적인 령도는 그대로 공사장들에 기적과 비약이 나래치게 한 결정적요인으로 되였다.

공사의 나날 물길을 한치 또 한치 열어간것은 위력한 기계수단이나 기발한 공법이기에 앞서 경애하는 장군님의 믿음과 사랑에 충정으로 보답하려는 건설자들의 정신력이였다.

아무리 어렵고 방대한 공사라도 전당, 전군, 전민이 달라붙으면 능히 할수 있다고 신심을 주시며 인민을 믿고 시작하신 개천-태성호물길공사의 나날은 그 하루하루가 경애하는 장군님의 뜨거운 믿음과 사랑으로 이어졌다.

물길공사가 첫걸음을 뗐던 그해의 태양절날에는 공사를 맡은 일군을 몸가까이 부르시여 건설자들의 식량공급정형을 알아보시고 몸소 대책을 세워주시였고 인민군부대들에 대한 현지시찰의 길에서 건설자들에게 공급할 남새와 기름공급문제까지 토론해주시였다.

조국과 민족의 운명수호전이 심각하게 론의결정되는 최고사령부 작전탁우에 물길공사에 동원된 착암수, 발파공가족들을 위한 식량과 땔감문제가 올라있었다는것을 세상사람들은 알지 못하였다.

물길은 이렇듯 뜨거운 사랑과 그것이 낳은 무한대한 건설자들의 충정의 힘에 의해 열리고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 하루빨리 완공의 보고를 올리겠다는 결사의 각오를 안고 산악같이 일떠선 물길건설자들.

불치의 병으로 이제 자기에게 남아있는 생명이 백여시간밖에 안된다는 사실앞에서 어느 한 자동차운전사는 언제에 한대분의 혼석이라도 더 나를수 있게 자기의 마지막 생의 시간표를 최대한으로 쪼갰고 갑자기 일어난 붕락으로 굴안에 갇힌 돌격대원들은 생사를 가늠하기 어려운 그 순간에조차 착암기를 놓지 않았다.

공사장에서 희생된 남편의 뒤를 이어 어린 자식들을 시부모의 손에 맡긴채 공사장으로 달려나온 녀인도 있었고 남편과 함께 공사장에서 위훈떨친 가정부인들도 있었다.

장군님의 크나큰 사랑과 믿음을 심장에 새겨안은 인민군군인들과 물길건설자들의 이렇듯 헌신적투쟁에 의하여 물길건설공사는 첫 발파소리를 울린 그때부터 2년 남짓한 기간에 계획을 훨씬 앞당겨 끝내는 자랑찬 성과를 거두었다.

예로부터 전해오는 말에 《물과 산을 잘 다스림은 나라의 근본》이라고 하였고 《물을 다스리는자 천하를 다스린다.》고도 하였다. 그만큼 물은 인간의 힘과 의지가 가닿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 점령할수 없는 자연의 한 부분으로 간주되여왔다.

새 세기에 들어선 오늘까지도 물은 여전히 점령하기 어려운 분야로 남아있다.

문명을 자랑하는 도시들에서도 물문제만은 해결하지 못하여 물배급제를 실시하고있고 국제기구는 해마다 《물의 날》을 정하고 물대회까지 진행하고있다. 이것이 바로 물을 통해 본 오늘의 세계이다.

그러나 경애하는 장군님의 구상과 의도를 피끓는 심장마다에 새겨안은 인민군군인들과 물길건설자들은 보통상식으로는 10년이 걸려도 하기 어렵다던 공사를 2년 남짓한 짧은 기간에 불이 번쩍나게 해제끼고 선군시대에 또 하나의 기적을 창조하였던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물길건설자들의 투쟁을 값높은 애국의 자욱으로 높이 불러주시며 그들에게 고귀한 정치적생명도 안겨주시였고 대를 두고 길이 전할 사랑의 선물들도 보내주시였다.

세계적으로 가장 길고 구조물수가 제일 많은 반면에 가장 짧은 건설속도를 기록한 개천-태성호자연흐름식물길.

그것은 일심단결의 힘만이 안아올수 있었던 세기적인 기적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렇듯 많은 사연이 깃든 개천-태성호물길을 이윽토록 바라보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물길공사계획도를 보니 개천-태성호물길이 대단하다고 하시면서 물길설계를 아주 잘하였다고 제일먼저 설계가들의 수고를 치하해주시였다.

《…수백리에 달하는 물길을 따라 대동강물이 자연흐름그대로 흐르게 물길을 설계한것을 보면 우리 설계가들이 기특합니다.》

일군들은 한없는 격정의 소용돌이속에 잠겨들었다.

개천-태성호물길공사의 원대한 구상을 펼쳐주시면서 대동강물이 저수지들에 저절로 흘러들어가게 물길을 째면 많은 전기를 절약하면서 관개용물을 보장할수 있다고 하나하나 가르쳐주신분은 바로 경애하는 장군님이시였다.

물을 잡을 언제의 위치와 물길도 몸소 잡아주시고 설계력량이 부족하다는것을 아시고는 실력있는 대학졸업생들로 설계집단도 무어주신 그이께서 완공의 그날에는 이 자랑찬 성과의 주인공들로 설계가들을 내세워주시는것이였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개천-태성호물길건설에 동원된 건설자들이 일을 많이 하였다고 그들의 수고도 깊이 헤아려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우리 나라 관개건설력사에 없었던 가장 큰 규모의 자연흐름물길공사를 2년 남짓한 짧은 기간에 완공한것은 대혁신이며 기적이라고 하시면서 이것은 애국의 열정에 불타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무궁무진한 힘이 가져온 자랑스러운 결실이며 강성대국건설을 위한 투쟁에서 우리 인민이 이룩한 빛나는 승리라고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날 물길공사에 참가한 군인들과 건설자들의 로력적위훈을 후세에 영원히 전하도록 대각청년언제옆에 개천-태성호물길건설기념탑을 세울데 대한 은정깊은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세상을 둘러보면 제노라하는 위인의 업적을 찬양하여 세워진 기념탑들이 적지 않다. 허나 그 어디에 건설자들의 위훈을 빛내이려 기념탑을 세운 례가 있던가.

기념비적창조물을 일떠세운 건설자들의 위훈을 영원토록 빛내주시려는 장군님의 사랑은 이렇듯 웅심깊고 뜨거운것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어 앞으로 백마-철산물길공사를 끝내고 련이어 황해북도의 례성강물길공사를 완공할 구상을 펼쳐주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이제 황해북도와 함경남도, 개성시의 토지정리를 마저 하고 평안북도와 황해북도를 비롯한 여러 지역의 자연흐름물길공사까지 완공하면 우리 농업의 현대화와 농업생산발전을 위한 만년토대를 튼튼히 닦아놓는것으로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농업부문에서 일대 변혁이며 말그대로 천지개벽입니다.》

이 말씀에는 나라의 관개체계를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완성하여 농업의 현대화와 농업생산발전의 만년토대를 기어이 마련하실 그이의 불타는 애국의 의지가 맥박쳐흐르고있었다.

전국의 돌격대원들과 건설자들은 장군님의 숭고한 뜻을 높이 받들고 개천-태성호물길을 완공한 기세로 백마-철산물길공사에 용약 떨쳐나섰다.

백마-철산물길공사를 하루빨리 완공하여 경애하는 장군님께 또다시 승리의 보고를 드리자!

그 맹세를 심장에 새겨안고 낮과 밤이 따로 없는 전투를 벌려온 건설자들은 드디여 주체94(2005)년 10월 2일 백마-철산물길준공식을 진행하였다.

기름진 선군대지를 쭉 가르며 기세좋게 뻗어간 자연흐름식물길들은 조국과 인민에 대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헌신적사랑과 열정이 낳은 고귀한 결실이다.

자연흐름식물길들이 련이어 완공됨으로써 나라의 곳곳에 새로운 관개망들이 쭉쭉 뻗어나가고 국토의 면모가 새롭게 일신되였으며 새 세기 나라의 농업부문에서는 통장훈을 부를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되였다.

 

2

《전기화에 대한 인식을 바로가져야 합니다》

 

아득한 옛날 사람들은 전기적현상인 번개를 신의 조화로 보고 몹시 무서워했다.

그러했던 인류가 전하들의 존재, 호상작용 및 그것들의 운동과 관련된 현상들의 총체인 전기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돌리고 리용하기 시작한것은 불과 300년밖에 되지 않는다.

오늘날 전기는 현대공업의 기본동력으로서 인민경제 모든 부문에서뿐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널리 쓰이며 없어서는 안될 필수적인것으로 되고있다.

하기에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경제강국건설의 설계도를 펼쳐주시면서 제일 많이 마음쓰시고 심혈을 바쳐오신 문제의 하나는 전기문제였다.

전기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공업을 비롯한 인민경제 여러 부문의 생산을 활성화하고 인민들에게 보다 유족하고 문명한 생활조건을 마련해주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려나갈수 없었다.

그래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멀고 험한 길을 걸으시며 나라의 거의 모든 발전소건설장들을 다 찾아주시고 일군들과 발전소건설자들이 로력적위훈을 세우도록 믿음을 주시고 힘과 고무를 안겨주시였다.

전기문제를 기어이 해결하여 새 세기 경제발전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놓으시려는것이 경애하는 장군님의 경제강국건설구상이고 확고한 의지였다.

온 나라에 수력발전소건설의 불바람이 일어번졌다.

도처에서 대규모와 중소형수력발전소건설이 힘있게 벌어지고 적지 않은 발전소들이 완공되여 전기를 생산하기 시작하였으며 례성강발전소와 원산청년발전소를 비롯한 수많은 발전소건설이 적극 추진되여나갔다.

주체91(2002)년 10월 중순, 강원도와 함경남도에서 여러개의 발전소가 완공되였다는 보고를 받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여러날에 걸쳐 발전소들을 현지지도하시였다.

먼저 안변청년2호발전소를 돌아보시고 잠시의 휴식도 없이 차를 달리신 장군님께서는 다음날에는 완공된 금진강6호청년발전소와 건설을 갓 시작한 어느 한 언제건설장을 현지지도하시였다.

금진강6호청년발전소 전망도앞에서 건설정형에 대한 보고를 들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어 우람하게 일떠선 언제를 부감하시였다.

발전소언제는 강바닥으로부터 층층으로 올라가며 띠를 두른듯 쌓아올린 장석들과 그 사이사이에 일매지게 드러난 토언제가 서로 엇바뀌며 하늘을 치받들고 웅장하게 일떠서 장쾌하기 이를데 없었다.

장군님께서는 하나의 큰 산을 통채로 옮겨놓은듯 한 웅장한 언제를 가리키시며 금진강제6호청년발전소의 언제가 대단하다고 말씀하시고나서 감회깊은 어조로 여기에 처음 왔을 때에는 도로도 없이 강바닥을 거쳐 언제우에 올라갔댔는데 그때에는 기계수단도 없이 등짐으로 흙을 날라다 언제를 쌓고있었다고, 그런데 오늘은 정평군에서 이렇게 훌륭한 언제를 건설하여 세상사람들을 놀래우는 기적을 창조하였다고, 여기에 와보면 누구나 사람의 힘이 얼마나 크고 무서운가 하는것을 똑똑히 알게 될것이라고 하시면서 큰일을 하였다고 거듭 치하해주시였다.

바로 두해전 초겨울의 진눈까비 흩날리던 어느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금진강발전소 언제건설장을 찾으시였을 때는 공사가 절반정도로 진척되고있었다.

그때 언제우에서는 강바닥 여기저기에 무수히 파헤쳐진 토장들과 뭉청뭉청 허리잘리운 산릉선들, 수백개의 청년돌격대병실들이 그대로 한눈에 드러나보였었다.

그때로부터 1년 반나마 지난 이날에는 그 모든것들이 자취를 감추고 우람한 언제만이 하늘을 치받으며 솟아난것이다.

장군님께서는 그처럼 거창한 일을 등짐으로부터 시작하여 해낸 건설자들의 일본새가 하도 대견하시여 대단하다고, 대기적을 창조하였다고 못내 기뻐하시였다.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물관리를 잘하여 금진강6호청년발전소를 잘 운영할데 대하여, 경치좋은 호수가에 농민휴양소를 건설하고 언제아래쪽 강바닥자리에서 새로 얻은 수십ha의 땅을 잘 정리할데 대한 문제를 비롯하여 당면하게 나서는 문제들에 대하여 구체적인 해결방도를 밝혀주시였다.

그러시고 특히 주민세대들의 전기화를 잘할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

군의 한 일군이 장군님께 발전소에서 생산하는 전기를 리용하여 정평읍소재지의 조명을 보장하고 군도자기공장 생산능력을 늘이겠다고 보고올리였을 때였다.

그이께서는 다정한 음성으로 그것도 나쁘지 않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도자기생산이 중요한것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지방들에서 인민들이 동원되여 건설한 발전소에서 생산하는 전기는 인민생활을 개선하는데 쓰는것을 기본으로 하여야 한다고 지적하시였다.

그러시고 이런 말씀을 하시였다.

지금 일군들이 고난의 행군시기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데로부터 전력을 생산하여 조명이나 보장하고 TV나 보게 하면 주민세대들에 대한 전기화가 다되는것처럼 생각하고있는데 인민들이 전기불이나 보고 TV나 본다고 하여 전기화가 다되였다고 볼수는 없다. 중소형발전소를 건설하여놓고도 전기불이나 보면서 겨울에는 추운 방에서 떨게 하면 그것이 무슨 전기화이겠는가. 전기로 밥도 지어먹고 난방도 보장해야 전기화가 되였다고 볼수 있다. 일군들이 전기화에 대한 인식을 바로가져야 한다.

이제는 전기로 밥을 지어먹고 난방도 하게 하여 전기화수준을 한단계 높여야 한다. …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성과적으로 이겨낸 인민들에게 보다 훌륭한 생활조건을 마련해주시려는 어버이사랑이 깃든 말씀이였다.

그전날 안변청년2호발전소를 찾으시였을 때에도 앞으로 강원도에서 큰 능력의 발전소를 하나 더 건설하여 원산시의 조명문제와 난방문제를 풀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시고 제기되는 문제들을 다 풀어주신 장군님이시였다.

장군님의 전기화의 참뜻, 인민에 대한 참사랑을 가슴깊이 새겨안는 일군들의 눈굽은 축축히 젖어들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날 인민들이 전기불을 보게 할뿐아니라 전기로 밥도 지어먹고 난방도 하게 하는것이 주민세대들에 대한 전기화의 최종목표이라고 거듭 강조하시면서 금진강의 계단식발전소들을 2004년 4월 15일까지 완공할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 다음날 함경남도 덕성군에서 건설한 여러개의 중소형수력발전소를 현지지도하시면서도 전기화의 높은 목표를 제시해주시였다.

덕성군안의 인민들은 산골군의 유리한 자연지리적특성을 옳게 리용하여 많은 중소형발전소들을 자체 힘으로 일떠세워 긴장한 전력수요를 풀기 위한 투쟁을 줄기차게 벌리고있었다.

그들은 덕성군으로 흘러내리는 여러개의 하천과 작은 강들이 합쳐내리는 남천강의 물을 한방울도 허실없이 리용할 결심밑에 자그마한 락차고와 물량이 있는 수십개소에 중소형발전소를 계단식으로 건설할 전망계획을 작성하고 이미 몇십개를 완공하여 그 덕을 보고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날 덕성군 보성청년발전소를 돌아보신데 이어 남천1호발전소를 찾아주시였다.

남천1호발전소에 들리신 장군님께서는 이곳 일군들로부터 군내 중소형발전소건설정형에 대한 보고를 받으시며 물량이 어떤가고 물어주시고 발전소건설에 떨쳐나 많은 성과를 거두고있는 군안의 일군들과 근로자들의 로력적투쟁을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이어 장군님께서는 몸소 발전기실에 들리시여 우람차게 돌아가는 발전기들을 일일이 보아주시였다.

이윽하여 밖으로 나오신 장군님께서는 방수로우에 놓인 다리우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며 방수로를 따라 힘차게 흐르는 물을 굽어보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덕성군에서 발전소를 잘 건설하였습니다.》라고 과분한 치하를 주시였다.

순간 일군들은 나라의 방방곡곡을 끊임없이 현지지도하시며 전기화의 불길을 지펴주신 자신의 로고는 잊으신채 모든 성과를 자기들에게 다 돌려주시는 장군님의 크나큰 사랑에 가슴이 뜨거워올랐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크나큰 격정에 휩싸여있는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일군들이 전기화에 대한 인식을 바로가져야 합니다. 내가 말하는 전기화는 전기를 생산하여 전기불이나 보고 텔레비죤이나 보게 하자는것이 아니라 밥도 지어먹고 난방까지 하게 되여야 한다는것입니다. 전기불이나 보고 텔레비죤이나 보게 되여서는 전기화를 실현하였다고 할수 없습니다.》

일군들은 얼굴이 붉어졌다. 그 옛날 사람 못살 고장으로 불리워오던 산골군이 이런 정도로 전기덕을 보면 대단하다고, 이만하면 전기화가 다된것처럼 여겨온 그들이였던것이다.

그들은 지난날 장군님의 높으신 뜻을 헤아리지 못한데로부터 수십개의 발전소건설을 계획하고 내밀면서도 그저 조명이나 보장하고 일부 지방산업공장들에 전력을 보장하면 되는것으로 생각했던 자기들의 좁은 생각을 심각히 반성했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남천3호발전소를 돌아보실 때에도, 건설중에 있는 남천4호발전소의 능력에 대해 알아보실 때에도 일군들이 전기화에 대한 인식을 바로가져야 한다고, 이제는 전기화수준을 한계단 높여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남천3호발전소를 돌아보실 때 그곳 일군들은 발전소를 자체의 힘으로 건설하여놓고 리안의 천여세대의 살림집들에 조명용전기를 보장하고 제분과 탈곡을 비롯하여 리에 필요한 동력문제를 해결한데 대하여 보고드리였다.

장군님께서는 남천1호발전소를 돌아볼 때에도 말하였지만 일군들이 전기화에 대한 인식을 바로가져야 한다고, 고난의 행군시기에는 발전소를 건설하여 전기불이나 보게 하고 TV나 보게 하면 다된것처럼 생각하였지만 지금은 그에 만족할수 없다고, 이제는 전기화수준을 한계단 높여야 한다고, 전기로 밥도 지어먹고 난방도 하여야 전기화가 되였다고 할수 있다고 간곡히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 중소형발전소를 많이 건설하게 한것은 주민들에게 전기불이나 보장해주기 위해 하는것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중소형발전소를 건설하여놓고 여름 한철에만 전기불을 보게 하고 겨울에는 추운 방에서 떨게 한다면 그것이 무슨 전기화인가고, 전기로 밥도 지어먹고 난방도 하게 하여야 한다고 하시였다.

아직은 나라의 형편이 어려웠던 시기였지만 인민생활을 위한 일에서는 요구수준을 최대로 높여야 한다는것이 장군님의 뜻이였던것이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발전소건설은 실리를 따져가며 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많은 세멘트와 발전기를 들이밀어 발전소를 건설하여놓고도 주민들이 추운 방에서 떨게 하면 실리를 보장한것이라고 할수 없다고, 발전소를 하나 건설하여도 인민들이 실지 덕을 볼수 있게 건설하여야 한다고 발전소건설에서 나서는 원칙적인 문제를 다시한번 가르쳐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주신 이날의 가르치심은 전기문제를 하루빨리 해결하여 인민들에게 보다 훌륭한 문화생활조건을 마련해주시려는 확고한 결심과 의지의 선언이였으며 긴장한 전력문제를 풀기 위한 투쟁에서 항구적으로 틀어쥐고나가야 할 강령적지침이였다.

이렇듯 전기화의 높은 목표를 제시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끊임없는 현지지도로 그 실현을 위한 사업을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정력적인 령도와 불면불휴의 헌신으로 하여 새 세기 나라의 전력생산은 부쩍 늘어나게 되였고 전력문제해결에서는 밝은 전망이 열리게 되였다.

일군들과 근로자들속에서도 전기문제를 자체의 힘으로 얼마든지 풀어나갈수 있다는 확고한 신심이 생기고 용기가 백배해졌다.

 

3

씨리카트벽돌의 용도를 바로잡아주시며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경제의 활성화를 위한 투쟁을 정력적으로 이끄시는 나날에 공업의 현대화수준을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올려세우기 위한 사업에도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인민경제 여러 부문의 공장, 기업소들을 찾고 또 찾으시며 현대화를 위한 일군들과 로동계급의 로력적투쟁을 고무해주시였으며 공업의 현대화가 명실공히 인민을 위한것으로 되도록 이끌어주시였다.

주체92(2003)년 4월 중순 어느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공업도시 함흥을 찾으시고 시내의 공장, 기업소들을 현지지도하시였다.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먼저 찾아주신 곳은 함흥씨리카트벽돌공장이였다.

공장일군들과 인사를 나누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공장전경도와 생산공정도앞에서 공장의 규모와 생산공정에 대하여 료해하시였다.

전경도에는 성천강에서 모래를 파는 준첩선들과 공장건물들의 위치와 형태, 구내도로들 그리고 생산공정도에는 모래를 파서 저장하는것으로부터 벽돌을 생산하여 보관, 상차하는 공정에 이르기까지 한눈에 알아볼수 있게 그려져있었다.

공장의 한 일군이 경애하는 장군님께 설명을 해드리려고 벽돌생산공정도앞으로 다가섰다.

그러자 장군님께서는 문득 나직한 어조로 이렇게 말씀하시는것이였다.

《성천강에서 파낸 모래를 선별, 저장, 분쇄공정을 거쳐 성형장까지 보내주는데 대하여서는 알고있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생산공정을 이미 잘 알고계신다는것은 이 공장을 안중에 두시고 깊이 관심하신다는것이 아니겠는가. 공장이 그이의 안중에 오래전부터 자리잡고있다는 사실에 일군들의 마음은 숭엄해졌다.

근 20년전 몸소 씨리카트벽돌공업을 창설할데 대한 구상을 펼치시고 공장의 건설 전과정을 세심히 보살펴주신 장군님께서는 온 나라가 시련을 겪던 고난의 행군시기에도 농촌살림집을 더 많이 건설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씨리카트벽돌생산설비들을 기술적으로 개조하고 현대적인 설비들도 마련하도록 일군들을 일깨워주시였다.

공장에 깃든 어버이사랑을 가슴뜨겁게 되새기는 일군들에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번에 보충한 공정이 어느것인가고 따뜻한 어조로 물으시였다.

도의 한 일군이 장군님의 가르치심에 따라 강제식혼합기를 가져다 설치하였다고 말씀드렸다.

강제식혼합기는 모든 작업조종이 콤퓨터화된 현대적인 설비로서 이미 있던 기계보다 배합이 잘되여 혼합물의 질도 매우 높았다.

장군님께서는 만족하신듯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성형청년직장으로 걸음을 옮기시면서도 공장을 아주 잘 꾸렸다고, 공장이 깨끗하고 환하다고 거듭 말씀하시였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프레스작업반에 전시해놓은 제품들도 보아주시였다.

전시된 씨리카트벽돌의 무게와 질도 가늠해보시고 공장로동계급이 자체의 힘으로 생산한 마모판과 새로 연구제작하여 생산에 받아들인 로라분쇄기를 보아주신 장군님께서는 로력과 자재를 절약하면서도 유해로동을 없앤데 대하여 높이 평가하시였다.

 그러시고 마모판을 자체로 생산하고 그 수명을 늘임으로써 국가에 많은 리득을 주고있는것은 좋은 일이라고, 다른 나라에서 사오던 마모판을 자체로 만들어쓰니 실리를 보장하는 측면에서도 좋고 공장이 현대화되니 보기에도 좋고 깨끗하여 좋다고 치하해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고난의 행군시기 공장의 로동자들이 고열탄보이라를 개조하여 저열탄을 쓸수 있게 만들어 생산을 보장하였다는 보고를 받으시고서는 그들의 수고를 헤아려주시며 조국의 부강번영에 크게 기여하였다고, 이제는 씨리카트벽돌을 더 많이 생산하여 농촌문화주택과 살림집들을 많이 건설할수 있게 된것만큼 공장이 은을 내도록 하여야 하겠다고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시였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이 미처 생각지 못하고있던 생산과 공급에서 나서는 여러가지 문제들도 환히 밝혀주시였다.

그이께서 성형청년직장에 이어 어미대차실에 들리시였을 때였다. 이곳에서는 프레스에서 성형된 벽돌을 어미대차에 실어 고압가마에 장입하는 공정이 진행되고있었다.

고압가마에 씨리카트벽돌을 장입하는 모습과 고압가마에서 씨리카트벽돌을 꺼내는 모습을 지켜보시며 벽돌생산의 마지막공정까지 해설해드리는 한 일군의 설명을 주의깊게 들어주시던 장군님께서는 그 일군에게 이 벽돌을 어떻게 공급하는가고 물으시였다.

씨리카트벽돌에 대한 수요가 높은 조건에서 공장에서는 대체로 도내의 살림집건설장들에 우선적으로 공급해주고 여유가 있을 때 기타 단위들에도 공급해주고있었다.

공장일군의 보고를 받으시는 그이의 안광에는 심중한 빛이 어리였다.

그이께서는 타이르시듯 일군들에게 나직이 말씀하시였다.

《원래 씨리카트벽돌공장은 농촌문화주택을 짓기 위하여 건설한것이므로 씨리카트벽돌은 농촌문화주택을 비롯한 살림집을 짓는데 써야 합니다. 그래야 씨리카트벽돌공장을 건설한 보람이 있습니다.》

언제나 인민들의 생활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며 현대화된 공장에서 생산되는 모든 제품들이 그들에게 먼저 차례지도록 마음쓰시는 장군님이시였다.

하기에 그이께서는 성형청년직장 프레스작업반에 들리시였을 때에도 생산되여나오는 벽돌 한장한장에 그토록 마음기울이신것이 아니였던가.

그때 씨리카트벽돌이 생산되여나오는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시던 그이께서는 문득 손을 드시고 어느 한 곳을 가리키시였다.

일군들이 그이께서 가리키시는 곳을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별다른것은 감촉하지 못하였다. 그저 벽돌 한장의 모서리가 약간 떨어진것이 눈에 띄울뿐이였다.

설마? … 하고 일군들은 생각했다.

그렇지만 장군님께서 손짓하신것은 바로 그 벽돌이였다.

비록 그이께서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였지만 그때 일군들이 받은 충격은 참으로 컸다.

공장에 나오는 수많은 일군들도, 생산자들도 벽돌의 흠에 대해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물론 벽돌모서리가 좀 떨어졌다고 하여 못쓴다는 법은 없다. 그러나 씨리카트벽돌인 경우 이것은 심중한 문제이다. 왜냐면 이 벽돌로 지은 건물은 미장을 하거나 외장재를 바르지 않기에 흠집이 그대로 드러나게 되기때문이다.

일군들도 생산자들도 미처 생각지 못했던 이 문제를 장군님께서는 말씀없이 행동 하나로 깨우쳐주신것이였다.

농민들에게 완벽한 살림집을 마련해주시려고 벽돌 하나에도 그토록 마음기울이시는 그이의 숭고한 풍모는 천만마디의 비판보다도 더 강한 힘으로 이곳 일군들의 거친 사업태도에 경종을 울려주었다.

일군들은 비로소 그이께서 지니신 현대화의 참뜻을 깊이깊이 깨달을수 있었다.

공장을 다 돌아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씨리카트벽돌공장을 언제 한번 보자고 했는데 오늘에야 보게 되였다고 하시면서 이만하면 대단하다고, 공장이 현대화되였으니 농촌문화주택을 더 많이 건설할수 있게 되였다고 못내 기뻐하시며 환히 웃으시였다.

그토록 만족해하시는 장군님께 일군들은 어려움도 다 잊고 씨리카트벽돌생산에서 애로되는 사소한 문제들까지 모두 말씀올리였다.

장군님께서는 그들의 심정을 다 헤아려주시면서 씨리카트벽돌생산에 필요한 자재공급이 원만히 이루어질수 있게 즉석에서 대책을 세워주시고 공장에 대한 지도체계도 새롭게 세우도록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씨리카트벽돌공업의 창설로부터 현대화에 이르기까지 걸음걸음 이끌어주시고 오늘은 공장의 관리운영과 생산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들을 현지에서 풀어주시며 농촌문화주택건설을 위해 끊임없는 사랑과 은정을 베풀어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

이제는 농촌문화주택을 많이 지을수 있게 되였다고 하시며 만시름을 놓으신듯 환하게 웃으시는 그이의 모습에서 일군들은 더욱더 좋아질 농촌의 앞날을 그려보았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날 새로 건설된 5월20일대성공장(당시)도 찾아주시였다.

여러가지 고무제품을 생산하는 이 공장은 원료투입으로부터 제품완성에 이르는 모든 생산공정이 고도로 자동화된 현대적인 공장이다.

공장에 도착하시여 생산공정에 대한 그곳 일군의 설명을 다 들어주신 장군님께서는 생산현장으로 걸음을 옮기시다가 문득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물으시였다.

《이 공장에 공해가 없습니까?》

장군님께서 공장에 오시여 하신 첫 물으심이였다.

공해가 전혀 없다는 한 일군의 대답을 들으신 장군님께서는 파다이야를 분쇄하여 여러가지 고무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인데 공해가 없다니 마음이 놓인다고, 또 생산공정을 콤퓨터로 조종하게 되여있는것이 좋다고 만족을 표시하시였다.

이어 그이께서 고무가루로 만든 제품들이 전시되여있는곳으로 가시였을 때였다.

고무가루제품생산의 세계적인 추세를 한눈에 알아볼수 있게 꾸려놓은 제품전시대앞에 다가서시여 여러가지 신발류들과 고무호스, 고무보도블로크, 흑색고무판 등을 일별하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물으시였다.

《이 제품들이 다 파다이야가루로 만든것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한 일군의 대답을 들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머리를 가볍게 끄덕이시며 손수 전시대우에 놓여있는 신발 한컬레를 드시고 찬찬히 살펴보시였다.

이때 도의 한 일군이 태양절을 맞으며 이 공장에서 고무가루로 만든 신발을 함흥시안의 소학교로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학생들에게 한컬레씩 공급하고있다고 말씀드렸다.

공장에 오시여 보시는것 들으시는것 하나하나가 다 마음에 드시여 장군님께서는 환히 웃으시며 말씀하시였다.

《5월20일대성공장은 21세기의 요구에 맞는 현대적인 공장입니다.》

세계적으로도 하나의 심각한 문제로 되고있는 공업페기물처리.

공업생산의 장성속도에 따라 페기물의 량이 급격히 늘어나는데다 이것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환경오염을 가져오는것으로 하여 지금 세계의 많은 나라들에서 공업페기물처리문제는 매우 중시되고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공업페기물을 버릴것이 아니라 재생리용하여 미처 따라서지 못하는 원료보장문제도 풀고 환경오염도 방지하자는데로 관심을 모았다. 이렇게 생겨난것이 바로 페기물처리공업이며 이것은 새 세기 경제분야에서 무시할수 없는 하나의 흐름으로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있었다.

바로 이 공장은 세계경제발전의 이러한 요구와 추세를 반영한 현대적공장으로 일떠섰던것이다.

천리혜안의 예지로 발전하는 시대의 요구를 명철하게 꿰뚫어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89(2000)년 5월 20일 최신식설비를 갖춘 고무가루생산공정을 우리 나라에 꾸리도록 현명한 조치를 취해주시고 공장건설에 필요한 모든 문제를 다 풀어주시였다.

하여 이곳 일군들과 로동계급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은덕을 대를 두고 길이 전하기 위하여 공장의 이름을 5월20일대성공장으로 명명하였던것이다.

한치라도 헛나갈세라 길을 밝혀주시고 잘못된 일은 제때에 바로잡아주시며 언제나 친근한 스승이 되여 이끌어주신 장군님.

그이의 빛나는 예지와 로고를 생각하며 일군들이 깊은 감동에 젖어있는데 사색어린 안색으로 제품들을 하나하나 돌아보시던 장군님께서는 고무가루를 어떤 나라에 파는가고 물으시였다.

한 일군이 아직 다른 나라에 파는것은 없고 처음 생산한 고무가루를 인민군대와 도안의 신발공장들에 보내주었으며 지금 생산하여놓은 고무가루도 그렇게 보내주려 한다고 말씀드렸다.

장군님께서는 대뜸 그것 참 잘한 일이라고, 그래야 한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이 공장에서 이런 고무가루를 생산하여 인민군대와 도안의 신발공장들에 적지 않게 보내주었으면 잘하였습니다.》

그러시고는 기쁨에 넘치신 음성으로 5월20일대성공장은 확실히 실리에 맞는 아주 훌륭한 공장이라고 거듭 뇌이시였다.

그이께서는 이어 공장의 전력소비량에 대해서도 알아보시고 그 정도면 전기를 얼마 쓰지 않는 편이라고 하시며 5월20일대성공장은 실리에 맞고 생산문화도 잘 보장된 아주 훌륭한 공장이라고 또다시 치하하시였다.

공장운영을 위한 강령적과업을 주시고 떠나시기에 앞서 다시금 공장을 둘러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5월20일대성공장을 만부하로 돌리면 많은 인민소비품을 생산하여 인민들에게 안겨줄수 있다고, 때문에 설비관리, 기술관리에 특별한 관심을 돌려 생산을 끊임없이 늘여야 한다고 간곡히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생산을 끊임없이 늘이는것은 간고한 투쟁속에서 피로써 쟁취한 우리 공화국정권과 사회주의제도를 사랑하고 빛내이는 성스러운 애국투쟁입니다.》

(애국투쟁…)

그이의 말씀을 음미해보는 일군들에게는 그날 장군님께서 만족해하셨던 일들이 돌이켜졌다.

공해가 전혀 없다는 사실, 깨끗한 환경의 작업장, 실지 인민들에게 돌아간 생산품, 적게 드는 전력소비량…

모두 나라와 인민을 위한 문제였다.

정녕 나라의 부강번영과 인민생활에 실제적으로 리익을 줄수 있는것, 그 무엇이든 이러한 목적과 지향에 맞는것이 실리로 된다는것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지니신 우리 식 실리의 기본관점이고 요구이며 또한 현대화의 의지였다.

그래서 장군님께서는 공장에 오시여 제일먼저 공해문제부터 알아보시였으며 깨끗한 환경에서 즐겁게 일하는 로동계급의 모습을 보셨을 때와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게 적은 전기를 가지고 많은 제품을 생산하여 해외시장보다 먼저 인민생활에 돌렸다는 사실을 아셨을 때 제일 기뻐하시였던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날의 가르치심은 일군들에게 사회주의적과학기술혁명의 의미, 애국과 실리의 참뜻을 다시 한번 깨우쳐준 경제강국건설의 지침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로부터 얼마후 일군들에게 씨리카트벽돌의 질을 결정적으로 높여 질좋은 씨리카트벽돌들을 더 많이 생산공급할데 대한 강령적인 과업을 주시였다.

그리고 5월20일대성공장과 같은 공장은 세계적으로 몇개 나라밖에 없다고 하시면서 공장, 기업소 지배인, 기사장들에게 5월20일대성공장과 함흥씨리카트벽돌공장을 보여주어 실리라는것이 어떤것인가 하는것을 똑똑히 알게 할 필요가 있다는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함흥씨리카트벽돌공장과 5월20일대성공장에 대한 현지지도는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사회주의경제건설을 다그치며 인민경제 모든 부문들에서 공장을 실리적으로 꾸리고 관리운영하기 위한 열풍을 안아왔다. 그리고 경제강국건설에서 하나의 전환을 마련한 중요한 계기로 되였다.

나라의 곳곳마다에 21세기의 요구에 맞는 현대적인 공장들을 꾸려주시고 일군들모두를 참된 애국의 한길로 따뜻이 이끌어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대하같은 사랑의 품속에서 나라의 경제는 나날이 활성화되여나갔다.
 

4

《나는 대홍단군에 오늘과 같은 날이 오리라고 믿었습니다》
 

주체91(2002)년 8월 어느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나라의 북단에 위치한 대홍단군에서 전에없이 좋은 감사농사작황을 마련하였다는 반가운 소식을 보고받으시였다.

대홍단군에서는 그해에 감자농사를 과학기술적으로 짓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려 좋은 작황을 마련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기쁨을 금치 못하시며 올해에 대홍단군의 감자농사가 잘되였다고 하시면서 일군들에게 내가 지난 2월에 대홍단군의 감자농사실태와 관련하여 한 말이 옳았다는것이 실증되였다고 뜻깊은 말씀을 하시였다.

대홍단의 감자농사를 위하여 그이께서 바쳐오신 크나큰 심혈이 일군들의 가슴을 적셔주는 말씀이였다.

일군들에게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그해 2월 대홍단감자가공공장을 찾으시여 오랜 시간에 걸쳐 공장의 모든 생산공정을 구체적으로 돌아보시면서 공장설비들을 현대화, 자동화할데 대하여서와 공장의 관리운영에서 나서는 원칙적문제들을 밝혀주시고 감자농사를 철저히 과학화할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신 가슴뜨거운 사연이 되새겨졌다.

주체91(2002)년 2월 어느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대홍단을 찾아주시였을 때는 아직 겨울해가 대홍단벌을 비치기도 전인 아침 7시 10분경이였다.

새로 확장된 대홍단감자가공공장을 찾아주신 장군님께서는 수백리길을 새벽추위속에 달려오신 피로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대홍단인민들을 잘살게 하기 위해 이렇게 먼길을 왔다고 하시며 마중 나온 일군들의 인사를 반갑게 받아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맵짠 날씨에 차디찬 랭동실안에까지 들어가보시고 모든 생산공정을 일일이 보아주시며 무려 2시간 30분나마 감자가공과 저장에서 나서는 문제를 비롯하여 공장앞에 나서는 과업들을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대홍단인민들을 위해 공장을 건설하였다고 하시면서 자신께서 대홍단에 무엇때문에 자주 오는지 아는가고, 그것은 수령님의 령도업적이 깃들어있는 대홍단군에서 사는 인민들을 잘살게 하기 위해서라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공장의 농마, 엿, 술생산공정을 일일이 돌아보시며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오늘은 이 공장을 돌아보려고 온것만큼 감자농사문제에 대하여서는 말하지 않으려고 하였지만 요즘 이러저러한 의견들이 제기되고있기때문에 좀 말하려고 한다고 하시면서 지난 기간 대홍단군에서 당에서 보내준 《라야》감자종자를 풍토순화시켜 많이 심기 위한 사업을 잘하지 못하고 농사를 토배기식으로 지은데 대하여 지적하시였다.

아직도 감자농사에서 과학기술적요구를 옳게 구현해나가지 못하고있는데 대한 지적의 말씀이였다.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 나라의 농업생산을 추켜세우기 위한 방도의 하나를 감자농사에서 찾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고산지대인 량강도 대홍단군에서 그 시범을 창조하기 위해 여러차례에 걸쳐 이곳을 찾아주시고 감자농사혁명의 불길을 지펴주시였다.

그 나날에 장군님께서는 대홍단군에 혁명적군인정신의 체현자들인 제대군인들과 함께 화물자동차와 뜨락또르를 비롯한 여러가지 현대적인 기계설비들도 보내주시고 《라야》를 비롯한 좋은 감자종자와 현대적인 설비들을 보내주시여 대홍단군이 감자농사에서 전국의 앞장에서 나갈수 있는 모든 조건들을 다 지어주시였다.

《라야》감자품종은 현대과학기술에 의하여 육종된 좋은 다수확품종이다.

그래서 장군님께서는 몇해전 대홍단군에 가시였을 때 《라야》는 좋은 감자라는것과 일부 나라들에서는 그 감자를 심어 ha당 80t씩 내고있다는것을 알려주시면서 우리 나라에서도 당장 그 나라들만큼 낼수는 없지만 적게 잡아서 60t은 낼수 있다고 일깨워주시였던것이다.

그러시고 《라야》를 심어 ha당 60t 내는것을 목표로 내세우고 종자가 확보되는데 따라 첫해에는 20t씩 내고 다음해에는 30t씩 내며 그 다음에는 40t씩 내는 식으로 수확고를 점차 높여야 한다고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였었다.

감자농사에서 전환을 일으키려면 《라야》와 같은 다수확품종감자를 받아들이고 장려하여야 하며 그러자면 감자종자를 우리 나라의 기후풍토에 순화시키기 위한 연구사업에 힘을 넣어 빨리 파악있는 좋은 종자를 완성하여야 하였다.

그런데 일부 일군들은 이 감자품종에 대하여 신심을 가지고 달라붙지 못하였다. 그들은 지난날 부대기농사를 하던 토배기농민들의 말을 듣고 다수확감자품종인 《라야》가 역병에 잘 걸리며 토종보다 못하다고 하면서 그것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그러다나니 ha당 감자수확고를 더 높일수 있는것도 높이지 못하였던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죄책감으로 하여 머리를 들지 못하고있는 이곳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감자농사를 과학기술적으로 하여 다시한번 새로운 전환을 일으키기 위한 과업과 방도들을 환히 밝혀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이날 감자농사에서 새로운 전환을 이룩하기 위하여 《라야》감자품종을 우리 나라의 기후풍토에 맞게 빨리 순화시키는데 힘을 넣으면서 그것을 많이 심을데 대한 문제, 《라야》를 비롯한 우량품종의 채종체계를 바로세울데 대한 문제,《라야》재배를 대홍단군에서만 하게 하지 말고 포태지구와 백암지구에도 《라야》재배기지를 꾸려 《라야》를 가지고 서로 경쟁하게 할데 대한 문제, 물거름을 많이 생산하고 농기계를 비롯한 설비관리를 잘할데 대한 문제를 비롯하여 감자농사를 과학기술적으로 하여 감자생산에서 전환을 가져오기 위한 과업과 방도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시였다.

장군님께서 이날에 하신 말씀은 일군들이 당정책에 대한 태도와 립장을 어떻게 가져야 하며 당의 감자농사혁명방침을 높은 과학적안목을 가지고 관철하기 위하여서는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를 현실과 결부하여 명철하게 밝혀준 귀중한 가르치심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후에도 여러차례에 걸쳐 감자농사의 과학화에 각별한 관심을 돌리시였다. 그리고 3월에는 대홍단군에 《라야》를 비롯한 수확성이 높은 감자품종의 무비루스종자와 감자비루스검정시약도 보내주도록 하시였다.

이러한 조치들은 그 하나하나가 모두 장군님의 심혈과 로고가 깃든 과학적탐구와 인민에 대한 지극한 사랑에 의하여 마련된것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지말씀을 받아안은 대홍단사람들은 감자농사를 과학기술적으로 착실히 진행할 결심밑에 하나같이 떨쳐나섰다.

그들은 감자농사에서 기본은 종자라고 하신 장군님의 말씀을 명심하고 종자보관과 처리, 싹틔우기를 잘하여 모든 밭들에 좋은 종자를 심었다. 농장의 감자농사를 과학기술적으로 하도록 하기 위하여 학술토론회도 조직하고 《라야》감자품종에 대한 기술지도서도 만들어 보급하는 등 여러가지 대책들을 빈틈없이 취하였다. 그리고 《라야》를 심은 감자밭을 비롯한 모든 감자밭의 북주기와 중경제초를 잘하여 감자생육에 유리한 리상적인 조건을 지어주는 한편 온 한해 여름 감자의 생육상태에 대한 과학기술적관리를 잘해나갔다.

고난의 행군시기 농기계부속품과 기름이 부족한 속에서도 어떻게 하나 백두고원에서 남들이 보란듯이 농사를 지으려고 인력가대기까지 끌지 않으면 안되였던 대홍단사람들은 이해에 과학농사, 기계농사의 기쁨을 가요 《대홍단삼천리》의 가락에 담아 노래하며 좋은 작황을 마련하기 위한 영농전투에 떨쳐나섰다.

그리하여 감자농사에서 전에 없는 좋은 작황을 마련하고 풍년든 대지에 장군님을 모시고싶은 간절한 마음을 담아 그이께 감자농사작황을 보고드리였던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선군혁명령도로 그토록 바쁘신 속에서도 그로부터 두달후인 10월 어느날 대홍단군에로 차를 달리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이날 군안의 여러 농장들을 돌아보시면서 감자농사에서 커다란 성과를 이룩한데 대하여 높이 평가하시였다.

눈뿌리 아득하게 펼쳐진 기름진 옥토속에서 주먹만 한 감자알들이 우쩍우쩍 크는 소리가 금시 귀전에 들려오는것만 같으시여 장군님의 안광에는 시종 기쁨의 미소가 어려있었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홍암농장포전에서 감자종합수확기와 물거름을 뿌리는 액비차를 비롯하여 현대적농기계들의 가동상태를 일일이 보아주시고 홍암농장 제4작업반의 감자농사작황을 보아주시였다.

그이께서는 한알의 무게가 1㎏이나 되는 《라야》감자알을 손수 드시고 감자가 멋이 있다고, 감자를 심으려면 이런 감자를 심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올해농사를 통하여 《라야》가 좋다는것이 완전히 실증된셈이라고, 이제는 누구나 다 《라야》감자종자에 대하여 확신을 가질것이라고 뜻깊은 말씀을 하시였다.

그러시고 장군님께서는 감자농사의 밝은 전망을 그려보시는듯 만면에 환하신 미소를 지으시며 말씀하시였다.

《나는 대홍단군에 오늘과 같은 날이 오리라고 믿었습니다.》

기쁨에 넘치신 그이의 말씀이 온 들판에 쩌렁쩌렁 메아리쳐 울려갔다.

기계화되고 과학화된 대홍단의 감자농사를 위하여 그토록 마음써오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기쁨과 만족이 모두의 가슴속에 격정의 설레임으로 파도쳐오는 참으로 감격적인 순간이였다.

이날을 위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얼마나 대홍단에 걸음을 많이도 하시였던가.

그이의 로고가 뜨겁게 되새겨져 일군들은 한동안 아무 말씀도 올리지 못하다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대홍단군에 우량종감자종자와 현대적인 농기계들을 보내주시고 과학적인 감자농사방법을 가르쳐주시였기때문에 감자농사가 잘되였다고 솔직히 말씀드리였다.

그러자 장군님께서는 이것이 바로 대홍단식이라고 하시면서 농사는 과학을 알고 과학적으로 지어야 한다고, 과학을 무시하고 토배기농사군들의 말만 들어가지고서는 감자농사를 잘 지을수 없다고 확언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윽고 마을방향으로 돌아서시여 현대적으로 새로 건설된 제대군인살림집들을 바라보시다가 제대군인들이 일을 잘하는가고 물으시였다.

제대군인들이 감자농사에 대해 완전히 파악하고 농장의 주인이 되여 일을 잘한다는 한 일군의 보고를 들으시고 일을 잘한다니 좋다고 하시며 만족해하시던 장군님께서는 문득 여러해전에 찾아주셨던 제대군인부부의 가정생활형편에 대해 물어주시였다.

대홍단제대군인들의 행복한 생활을 위하여 모든 조건을 다 마련해주시고 바로 두해전에는 어느 한 제대군인부부에게 새로 태여날 아기의 이름까지 지어주시여 대홍단의 밝은 미래를 축복해주신 장군님의 해빛처럼 따사로운 사랑과 은정을 되새기며 이곳 일군은 그에 대한 대답을 올리였다. 그리고 군안의 제대군인가정 아이들중 홍단이라고 이름지은 아이가 12명이고 대홍이라고 이름지은 아이가 8명이라고 말씀드리였다.

일군의 대답을 들으시며 더더욱 흥해갈 대홍단의 앞날을 그려보시는듯 만면에 환한 미소를 담으신 장군님께서는 홍단이, 대홍이가 많을수록 좋다고 기쁨에 넘쳐 말씀하시였다.

감격의 그 순간 일군들에게는 두해전 대홍단을 찾아주신 장군님께 스스럼없이 태여날 애기의 이름을 지어주시였으면 하는 청을 드렸던 제대군인 안해의 모습이 떠올랐다.

대홍단군종합농장 서두분장을 찾아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어느 한 제대군인가정에 들리셨을 때였다.

제대군인부부가 정중히 올리는 인사를 반갑게 받아주신 장군님께서는 그들이 언제 결혼하였는가를 다정히 물어주시였다.

군의 한 책임일군으로부터 그에 대하여서와 지금 제대군인의 안해가 임신중이라는 대답을 들으신 장군님께서는 무척 기뻐하시였다.

이날 그이께서는 남편에게 어느 부대에서 복무하였는가도 물어주시고 친부모의 심정으로 이불장, 옷장들을 하나하나 다 열어보시며 가구들의 질도 가늠해보시면서 그들의 살림살이형편을 구체적으로 료해하시였다.

이불과 옷가지에 이르기까지 세세히 마음쓰시는 그이께 그들부부는 아버지장군님께서 아담한 새 집에 TV와 부엌세간들까지 다 보내주셨는데 무슨 불편이 있겠는가고, 더는 제대군인부부들때문에 걱정하시지 말아달라고 간절히 말씀드리였다.

그렇지만 그이께서는 낯선 고장에 와서 새살림을 폈는데 왜 불편이 없겠는가고 하시면서 평양에서 살다가 당의 호소를 받들고 대홍단에 달려와 제대군인과 가정을 이룬 안해가 더없이 기특하신듯 그를 한동안 바라보시다가 조용히 물으시였다.

《그래 해산달이 언제냐?》

그는 친정아버지에게 아뢰듯 어려움도 없이 말씀올리였다.

《장군님, 7월입니다.》

《아들을 낳을수 있지?》

《꼭 아들을 낳겠습니다. 장군님.》

그의 대답을 들으신 장군님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일군들도 그만 참지 못하고 웃음바다를 펼쳤다.

온 방안에는 화기애애한 가정적분위기가 가득 넘쳐흘렀다.

정말이지 친아버지를 모시고 한가정이 모인것만 같은 즐거운 시간이였다.

그래서인지 제대군인의 안해는 무랍없이 장군님의 손을 꼭 잡으면서 한가지 소원이 있다고 말씀올리였다.

《무슨 소원이냐?》

인자하신 음성, 소탈하신 모습에 용기를 얻은 그는 장군님께 귀속말로 이 뜻깊은 날에 아이이름을 지어주셨으면 좋겠다고 스스럼없는 청을 올리였다.

그러자 장군님께서는 그의 등을 가볍게 다독여주시며 아들인지 딸인지도 모르고 어떻게 이름을 지어주겠나, 그때에 가서 이름을 지어주겠다고 따뜻이 이르시였다.

그날 밤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이야기를 나누시던 장군님께서는 제대군인가정에 들리시였던 일을 상기하시고 조용히 웃으시였다.

일군들이 의아해하자 장군님께서는 《오늘 가정방문을 한 제대군인의 안해가 보통 걸작이 아닙니다. 그는 내가 방에 들어가니 마치 친정아버지가 온것같이 내 손을 잡고 귀속말로 7월에 애기를 낳게 되는데 아이이름을 지어달라고 하였습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못내 아쉬우시여 원래 아이이름은 아버지가 짓게 되여있어 그때는 지어주지 못했는데 아무래도 이름을 지어주어야겠다고, 제대군인 안해의 간절한 부탁인것만큼 그들의 미래를 축복해주는 의미에서 우리가 이름을 지어주자고 하시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아들을 낳게 되면 대홍이라고 하고 딸을 낳게 되면 홍단이라고 하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계속하여 두 이름을 합치면 대홍단이 되는데 아버지의 성이 민가이므로 아들이면 민대홍, 딸이면 민홍단이라고 부르면 뜻이 있고 좋을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 일군들에게 오늘 보니 제대군인 안해들가운데 애기를 낳게 된 녀성들이 많다고 하시면서 평양산원에서 이동봉사의료대를 무어 대홍단군에 내려와 해산방조를 잘해주도록 할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은정넘친 말씀을 받아안던 날 제대군인부부들은 쏟아지는 눈물을 걷잡지 못했다.

이름없는 부부의 소박한 청을 귀중히 여기시여 태여날 아기의 이름도 지어주시고 제대군인 안해들의 해산문제까지 세심한 관심을 돌리시며 은정깊은 조치를 취해주신 장군님.

정녕 그이께서 안겨주신 사랑과 은정은 대홍단의 오늘과 함께 더더욱 살기 좋은 락원으로 전변될 대홍단의 래일을 열어주는 친어버이의 축복이였다.

그후 경애하는 장군님의 말씀을 받들고 대홍단에 달려온 평양산원 해산방조의료대의 정성어린 보살핌과 온 나라의 관심속에 서두분장의 그 제대군인가정에서는 홍단이가 태여났고 대홍단의 수많은 제대군인부부들이 귀여운 옥동자를 받아안게 되였다.

온 나라가 다 아는 홍단이네 집에서는 새로 태여난 아기가 또 딸이여서 아쉽게도 대홍이라고 짓지는 못하였지만 장군님께서 베풀어주신 그 행복을 영원히 간직하라고 둘째딸애의 이름을 복단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이때의 일을 떠올리며 일군들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계시여 대홍단은 오늘과 마찬가지로 래일도 선군시대 감자농사혁명의 자랑으로, 더욱더 살기 좋은 락원으로 되리라는 확신을 굳게 가지였다.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대홍단군의 농장포전에서 오랜 시간을 바쳐가시며 감자농사의 과학화방도를 하나하나 밝혀주신 다음 구운 감자 몇알로 끼니를 에우시고 몸을 녹이실 사이도 없이 그길로 농업과학원 감자연구소를 찾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연구소의 과학자, 기술자들이 감자연구를 폭넓고 깊이있게 진행할수 있는 과학기술적인 토대를 마련하여놓고 감자농사를 과학기술적으로 하도록 뒤받침하기 위하여 많은 일을 해놓았다고 높이 평가하시면서 이제는 감자농사에서 결정적인 전환을 가져올수 있다는 신심이 생긴다고 대단히 만족해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후 10월 13일에도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에게 이번에 대홍단군을 현지지도하면서 보니 이제는 《라야》감자를 우리 나라의 기후조건에 맞게 풍토순화시켜놓고 안전한 수확을 낼수 있게 되였다고 기쁨에 넘쳐 말씀하시였다.

이렇듯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와 각별한 보살피심속에 대홍단군을 비롯한 우리 나라 북부지방의 이르는 곳마다에서는 감자농사에 대한 파악과 자신심을 가지고 정연하게 세워진 감자종자생산체계와 과학기술적생산방법의 안받침밑에 농사를 과학기술적으로 해나갈수 있게 되였으며 나라의 감자농사에서는 새로운 전변이 이룩되였다.

하여 우리 선조들이 《북저》라고 부르며 감자를 이 땅에 심은 때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오늘에 와서 대홍단벌에는 무변광대한 감자꽃바다가 펼쳐지는 희한한 광경이 생겨났다.

그전시기 뙈기밭에서나 볼수 있었던 감자꽃이 바다를 이룬 대홍단벌의 풍치는 선군조국의 아름다움을 한껏 돋구어주는 절경의 하나로 그 이름 떨치게 되였다.

대홍단의 감자꽃바다.

정녕 그것은 조국과 인민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안으시고 헌신과 로고의 길을 이어가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정력적이고 현명한 령도가 안아온 고귀한 결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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