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모든것을
선군의 요구대로!
인민군대는 선군혁명의 주력군이다
혁명의 주력군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명
새 세기 선군의 기치높이 강성국가의 령마루를 향하여 힘차게 나아가는 총진군대오의 앞장에는 언제나 인민군대가 서있었다.
인민군대는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지키고 사회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투쟁에서 전초병으로서의 임무를 훌륭히 수행해나갔을뿐아니라 사회주의건설의 주공전선들마다에서 진격의 돌파구를 열고 영웅적희생정신과 백절불굴의 투쟁기풍으로 빛나는 위훈을 창조하였다.
인민군대의 역할이 비상히 강화됨에 따라 그 영향으로 경제와 문화를 비롯한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비약과 혁신의 불바람이 세차게 일어번지고 온 나라에 영웅적투쟁의 대서사시적화폭이 펼쳐졌다. 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해 고귀한 피와 땀을 아낌없이 바쳐가는 인민군군인들의 혁명적군인정신과 투쟁기풍은 전체 인민의 심장마다에 애국의 투쟁열기가 끓어번지게 하였다. 그로 하여 선군혁명대오는 한층더 굳게 결속되였으며 온 사회를 선군사상으로 일색화하고 사회의 모든 분야를 선군의 요구대로 개변하기 위한 투쟁이 새로운 높은 단계에서 벌어지게 되였다.
인민군대의 선도자적역할에 의하여 선군위업수행의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전진이 이룩되고있던 이러한 력사적시기에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주체92(2003)년 1월 29일 일군들과 담화를 하시였다.
이날에 하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력사적인 담화가 바로 불후의 고전적로작 《선군혁명로선은 우리 시대의 위대한 혁명로선이며 우리 혁명의 백전백승의 기치이다》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담화에서 선군정치가 력사의 준엄한 시련을 통하여 검증된 필승불패의 정치이며 혁명승리를 위한 만능의 보검이라는데 대하여 과학적으로 밝혀주시고 전당, 전군, 전민이 선군령도를 받들어나가는데서 나서는 과업들을 제시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이날에 완벽한 해명을 주신 중요한 문제의 하나가 바로 혁명의 주력군에 관한 문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우리 당의 선군정치는 혁명의 주력군에 관한 문제를 새롭게 과학적으로 해명하고 빛나게 해결한 독창적인 사회주의정치방식이라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 당은 시대의 발전과 변화된 사회계급관계를 깊이 분석한데 기초하여 혁명운동력사에서 처음으로 선군후로의 사상을 내놓고 인민군대를 혁명의 핵심부대, 주력군으로 내세웠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말씀은 일군들의 눈앞에 전혀 새롭고 과학화된 진리를 펼쳐보이고있는것으로 하여 그들을 흥분시켰다.
일군들의 뇌리에는 제국주의의 포위속에서 끊임없는 군사적위협을 받으면서도 우리 조국을 굳건히 고수해온 잊을수 없는 나날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생각해보면 그 긍지높은 승리를 이룩할수 있은것은 우리에게 강력한 인민군대가 있기때문이였다.
더우기 어버이수령님을 잃고 피눈물의 언덕을 헤쳐넘어야 했던 지난 세기 90년대 중엽 조국과 인민이 그 어떤 광풍이 불어와도 사회주의붉은기를 높이 추켜들고 끄떡없이 승승장구할수 있은것도 역시 총대를 앞세웠기때문이였다.
그 나날 장군님께서는 선군후로의 원칙에서 인민군대가 혁명의 기둥, 주체위업완성의 주력군이라는데 대하여 한두번만 강조하지 않으시였다. 아아한 철령과 칼벼랑의 오성산, 적과의 접촉지점인 최전연의 초도와 판문점 등 인민들이 눈물로 되뇌는 선군길을 끊임없이 이어가시며 이 위대한 진리를 묵묵히 체득시켜주시였다.
그런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또다시 선군시대의 요구에 맞게 혁명의 주력군문제에 대하여 사상리론적으로 전면적인 해명을 주시는것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우선 혁명의 주력군문제에 대한 선행한 로동계급리론의 제한성에 대하여 밝혀주시였다.
선행리론에서는 유물사관의 원리로부터 출발하여 계급관계를 기본으로 주력군문제를 다루면서 로동계급을 혁명의 령도계급, 주력군으로 규정하였다. 이것은 당대 자본주의사회의 현실을 반영한 리론이였다. 그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로동계급을 주력으로 하여 사회주의혁명이 승리하고 사회주의건설이 진행되였으며 그리하여 사회주의위업수행에서는 로동계급을 핵심으로, 주력으로 하여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을 벌리는것이 어길수 없는 혁명의 공식처럼 인정되여왔다. 그러나 혁명의 주력군문제는 계급관계의 견지에서만 볼 문제가 아니다. 시대는 멀리 전진하였으며 계급관계에 기초하여 모든 혁명리론을 전개한 맑스-레닌주의리론은 현실에 맞지 않게 되였던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시대가 전진함에 따라 로동계급의 생활적기초가 달라지고 사회계급구성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고있다는데 대하여, 자본주의가 발전하는데 따라 독점자본에 의한 지배가 강화되고 반동적인 부르죠아사상문화가 범람하게 되며 이것은 로동계급의 계급적각성과 의식화, 혁명화를 억제하는 강한 작용을 하게 된다는데 대하여, 이러한 변화된 시대적환경과 현실적조건은 혁명의 주력군문제를 새롭게 해명할것을 요구하고있다는데 대하여 밝혀주심으로써 선행리론의 제한성을 명철하게 론증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또한 현실발전의 요구에 맞게 선군정치가 혁명의 주력군문제자체를 종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견해와 관점에서 보고 해명한데 대하여서도 가르쳐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우리 당이 선군정치를 펴면서 로동계급이 아니라 인민군대를 혁명의 주력군으로 내세운것은 혁명의 주력군문제, 혁명과 건설에서 혁명군대의 역할문제에 대한 새로운 견해, 새로운 관점에서 출발한것이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을 이으시였다.
《사회의 어느 계급, 계층 또는 어느 사회적집단이 혁명의 주력군으로 되는가 하는것은 그가 혁명과 건설에서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 그의 혁명성과 조직성, 전투력에 의하여 규정됩니다. 혁명의 주력군에 관한 문제는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어떤 혁명에서나 고정불변한것으로 될수 없으며 계급관계에 기초해서만 해결할 문제도 아닙니다.》
인민대중의 자주위업수행을 위한 지나온 력사를 철의 론리로 분석하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을 일군들은 숭엄한 자세로 우러러보는데 열정에 넘치신 장군님의 음성은 더욱 힘있게 울리였다.
《우리 당이 인민군대를 혁명의 주력군으로 내세우는것은 현시기 우리 혁명에서 인민군대가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로 보나 군대의 혁명적기질과 전투력으로 보나 주체혁명위업수행의 필수적요구입니다.》
오늘 우리 혁명의 제일생명선을 지켜선 혁명대오는 인민군대이다. 인민군대는 제국주의강적과 직접 맞서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을 총대로, 목숨으로 수호하고있다.
이것은 로동계급도 다른 어느 사회집단도 대신할수 없는 인민군대의 숭고한 사명이며 가장 무겁고도 영예로운 혁명임무이다.
인민군대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혁명적이고 전투적이며 가장 위력한 혁명집단이다. 혁명성과 조직성, 전투력에 있어서 인민군대보다 더 강한 집단은 없다.
이렇게 인민군대의 지위와 역할에 대하여 언급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당과 수령의 옳바른 령도를 떠나서는 그 어떤 혁명의 핵심부대도 키울수 없고 광범한 대중을 각성시켜 혁명대오에 묶어세울수도 없다고 하시면서 긍지높이 말씀하시였다.
《우리 인민군대는 위대한 수령, 위대한 당의 령도에 의하여 참다운 혁명무력으로, 무적필승의 군대로 강화발전되였으며 혁명의 핵심부대, 주력군으로서의 영예로운 사명과 임무를 훌륭히 수행할수 있게 되였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무력건설에 쌓으신 불멸의 업적은 수령님의 혁명업적가운데서도 가장 귀중한 업적이며 그것은 오늘 우리가 인민군대를 더욱 강화하며 선군정치를 펴나가는데서 튼튼한 토대로, 고귀한 밑천으로 되였다고 하시면서 우리 당은 수령님의 위대한 건군업적에 토대하여 인민군대를 선군혁명의 기수로, 주력군으로 내세우고 군대를 강화하는데 모든 힘을 집중하였다, 우리 당의 정력적인 령도에 의하여 인민군대의 정치사상적풍모와 투쟁기풍에서 새로운 전환이 일어나고 우리 군대의 전투력과 위력은 그 어느때보다도 더욱 강화되였다고 강조하시였다.
장군님의 말씀에는 주체의 혁명무력건설사상을 제시하시고 인민군대를 혁명군대의 전형으로, 무적의 강군으로 꾸려주신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다함없는 칭송이 담겨져있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인민군대를 선군혁명의 기수로, 핵심부대, 주력군으로 내세워 사회주의위업을 고수하고 승리적으로 완성해나가실 그이의 굳센 의지가 어려있었다.
력사상 처음으로 되는 혁명의 주력군문제에 대한 독창적이고도 완벽한 사상리론적해명, 이것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지니고계시는 인민군대에 대한 절대적믿음의 뚜렷한 증시였다. 이것은 또한 총대의 위력을 더 높이 떨쳐 조국과 인민의 존엄과 무궁한 번영을 기어이 이룩해나가시려는 장군님의 위대하고도 열렬한 사랑의 발현이였다.
인민군대를 혁명의 주력군으로 내세워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그 사랑, 그 믿음은 새 세기에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수호하고
사회주의강성국가건설위업을 수행하는데서 그 정당성과 생활력이 남김없이 발휘되였다.
사상사업에서도 키잡이가 되여야 한다
인민군대가 혁명의 주력군으로서의 자기의 사명과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나가자면 인민군군인들을 사상정신적으로 더욱 튼튼히 준비시켜야 하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안에서 군인들에 대한 정치사상교양을 강화하기 위한 사업을 현명하게 이끄시면서 특히 인민군대가 사상사업에서도 사회의 키잡이가 되도록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인민군대의 사상사업강화를 무엇보다 중시하시며 여기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는것은 다름아닌 인민군대에 대한 크나큰 사랑과 믿음에서 출발한것이였다.
주체91(2002)년 10월말 어느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선군령도의 바쁘신 속에서도 인민군지휘성원들을 몸가까이 부르시였다.
이날 그이께서는 우리 당의 선군정치는 인민군대가 사상정신적풍모와 투쟁기풍에서 시대의 본보기가 되며 모든 면에서 모범이 될것을 요구하고있다고, 그러자면 인민군대안의 당정치사업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데 대하여 강조하시면서 인민군대안의 당사상사업은 본질에 있어서 군인들의 마음과의 사업입니다, 다시말하여 군인들의 사상과 의지, 감정과의 사업입니다라고 인민군대에서 진행하는 당사상사업의 본질을 새롭게 정식화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인민군군인들의 사상과 의지, 감정에 맞게 정치사상교양사업을 더욱 참신하고 실속있게 해나가도록 그 원리와 형식, 방법론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을뿐아니라 인민군부대들에 대한 끊임없는 시찰의 길마다에서 군대내 정치사상사업이 명실공히 시대를 주도해나가는 사업으로 전환되도록 걸음걸음 이끌어주시였다.
산과 들에 신록이 짙어가던 주체93(2004)년 봄 어느 일요일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멀고 험한 길을 달리시여 외진 곳에 자리잡고있는 어느 한 인민군부대를 찾아주시였다.
온 나라가 휴식의 한때를 보내는 그 시각 꿈결에도 뵙고싶던 장군님을 자기들의 부대에 모시게 된 부대지휘관들은 격정에 목이 메여 인사도 변변히 드리지 못하였다.
그이께서는 부대지휘관들과 인사를 나누시고 잠시의 휴식도 없이 그길로 어서 부대를 돌아보자고 하시며 곧바로 군인회관으로 향하시였다.
부대에서는 군인회관 홀과 복도에 군인들의 사상교양사업에 필요한 여러가지 직관판들을 규모있게 게시해놓고 그를 통한 교양사업을 실속있게 진행해나가고있었다.
하나하나의 직관판들을 주의깊게 보시던 장군님께서는 한쪽벽면에 게시된 《수령결사옹위는 우리의 생명!》이라는 선전화앞에서 걸음을 멈추시였다.
준엄한 결전의 시각이 오면 항일혁명선렬들과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의 영웅전사들의 뒤를 이어 혁명의 수뇌부를 한목숨바쳐 총대로 끝까지 사수해갈 부대장병들의 불타는 맹세가 힘있게 맥박치고있는 그림이였다.
한동안 그림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시던 그이께서는 일군들에게 물으시였다.
《이건 누가 그린 그림입니까?》
일군들이 부대의 한 초기복무사관이 그린것이라고 말씀드리자 그이께서는 재간둥이들은 다 인민군대에 있는것 같다고, 인민군대에 와야 이런 그림을 볼수 있다고 하시면서 그옆에 걸려있는 족자에로 시선을 돌리시였다.
족자 《총칼을 사랑하라》 역시 혁명하기 좋아하고 투쟁하기 좋아하는 군인들의 고상한 사상감정과 전투적기질을 그대로 담고있었다.
서예작품을 유심히 살펴보시던 그이께서는 《직관물들이 내용도 좋고 직관수준도 높습니다. 선전화 〈수령결사옹위는 우리의 생명!〉과 족자 〈총칼을 사랑하라〉는 그림도 잘 그리고 글도 잘 썼습니다.》라고 치하의 말씀을 주시였다.
그러시면서 군인회관에 게시한 이 직관판들만 보아도 부대에서 군인들에 대한 사상교양사업에 힘을 넣고있다는것을 알수 있다고, 내가 여러 부대들을 현지시찰하면서 보면 인민군대의 사상교양사업이 사회보다 확실히 앞서 나가고있다고 못내 만족해하시였다.
그이의 말씀을 받아안으며 부대일군들은 이름할수 없는 격정에 휩싸였다.
인민군대의 사상교양사업이 사회보다 앞서 나갈수 있게 된것은 일찌기 사상교양사업에서도 인민군대가 사회의 앞장에 서야 한다고 하시며 걸음걸음 이끌어주신 장군님의 사랑과 믿음의 손길이 있었기때문이였다.
이날 일군들은 경애하는 장군님께 군인들이 준비한 예술소조공연을 보여드리면서도 인민군대가 사상사업에서 사회의 앞장에 서야 한다는 그이의 높으신 뜻을 다시금 새겨안게 되였다.
부대군인들이 준비한 소박한 예술소조공연종목가운데는 독창 《나는 알았네》도 있었다.
조선예술영화 《월미도》의 주제가인 이 노래에는 월미도의 영웅전사들이 목숨바쳐 조국의 해안초소를 끝까지 지켜낼 맹세가 불타고있었다.
깊은 감명속에 노래를 들으신 그이께서는 군인들의 가슴속에 불타고있는 열렬한 조국애를 진실하게 잘 형상하였다고, 구분대군인들이 예술소조공연을 잘한다고 치하를 아끼지 않으시였다.
공연이 끝난 후 밖으로 나오신 장군님께서는 이자 우리가 예술소조공연에서도 보았지만 군인들을 수령결사옹위정신으로 무장시키자면 조국애를 통한 교양사업을 강화해야 한다고, 특히 여기에서 문학예술을 통한 교양사업이 그중 감화력이 크고 생동하다고 가르쳐주시였다.
그러시고 장군님께서는 현시기 조국애를 통한 교양사업이 중요하기때문에 자신께서는 인민군대에서 이 사업을 힘있게 밀고나가도록 하였으며 조국애를 주제로 한 군인들의 공연을 사회사람들에게도 보여주어 그것을 온 나라에 일반화하도록 하였다고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이어 우리가 수령결사옹위의 구호를 내놓고 그에 대하여 많이 말하고있는데 수령결사옹위정신의 기본바탕은 조국애라고 할수 있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구체적으로는 영화에서 나오는 영옥이의 노래에도 있는것처럼 자기가 나서자란 고향산천의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 흙 한줌도 끝없이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 그 소중한 모든것을 원쑤들의 침해로부터 굳건히 지켜내겠다는 결사의 각오로부터 조국애가 나오고 수령결사옹위정신이 나오게 됩니다.》
그러시면서 지금 사상사업에서 허공에 뜬 빈소리를 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고, 다른 모든 사업에서와 마찬가지로 사상교양사업을 실속있게 벌려나가는데서도 인민군대가 사회의 본보기가 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힘주어 강조하시였다.
《앞으로 인민군대에서는 사상사업에서도 사회의 키잡이가 되여야 합니다.》
사상사업에서의 키잡이!
무릇 키잡이란 배가 가는 방향을 잡는 일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머나먼 항해길에서 키잡이를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배가 자기의 항로를 따라 곧바로 달리는가 그렇지 못하는가 하는것이 좌우된다.
장군님의 이 말씀은 배의 키잡이와 마찬가지로 인민군대가 당과 수령만을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는 견결한 사상의식으로 시대와 인민을 곧바른 선군의 항로로 이끌어나가야 한다는 깊은 뜻이 담겨진 가르치심이였다.
일군들모두가 크나큰 흥분에 휩싸여있는데 그이께서는 인민군대에서 사상교양사업을 보다 실속있게 진행하여 수령결사옹위가 그저 빈 구호가 아니라 행동의 구호, 실천의 구호로 되게 해야 한다고, 이런 측면에서 놓고볼 때 해당 단위 정치부가 어떻게 일하는가 하는것은 예술공연 하나만 보아도 잘 알수 있다고 하시였다.
그러시고 전번에 가본 중대나 이 중대처럼 부대정치부가 키잡이를 잘하면 써클내용에도 정책적요구가 제때에 민감히 반영되고 모든 측면에서 당의 의도가 쭉쭉 관통되는 법이라고, 그러고보면 이 부대 정치부가 확실히 일을 잘하는것 같다는 치하의 말씀을 거듭 주시였다.
장군님의 말씀은 인민군대의 정치일군들이 당의 사상과 의도를 군인들의 심장마다에 새겨주는 사상사업을 옳은 방법론을 가지고 심도있게 진행해나갈 때 그 생활력이 남김없이 발휘되게 된다는 간곡한 당부이기도 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후에도 인민군부대들에 대한 현지시찰의 길마다에서 사상사업강화를 위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여 인민군대가 사회의 앞장에서 키잡이로서의 역할을 원만히 수행해나가도록 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사상사업이 참신하고 실속있는 사업으로 되도록 하는데서 형식주의를 철저히 없애는것을 중요한 문제로 보시고 이 사업에서도 인민군대가 앞장서 나가도록 이끌어주시였다.
모든 사업을 집행할 때에 진리를 탐구하지 않고 문제를 심중히 분석하여보지 않으며 사업을 치밀하게 조직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조잡하게 처리하며 내용이 없고 겉치레만 하는 사업작풍을 가리켜 형식주의라고 한다.
어느해 여름 어느 한 부대를 찾으신 장군님께서는 군인회관에 전시해놓은 직관교양판리용정형을 친히 료해하시였다.
부대의 일군으로부터 강연회를 비롯하여 군인들이 모이는 기회마다 해설도 해주고 웅변모임도 조직한다는 보고를 받으신 장군님께서는 대중교양장소들에 여러가지 교양판들을 잔뜩 만들어놓고도 잘 리용하지 않고있는것은 형식주의라고 가르쳐주시면서 부대정치일군에게 군인들에 대한 정치사상교양사업에서는 절대로 형식주의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데 대하여 력점을 두어 말씀하시였다.
인민군군인들에 대한 사상교양사업에서 지켜나가야 할 원칙적문제를 다시금 가슴속깊이 새겨주시는 그이의 말씀에는 인민군대의 정치일군들이 사상사업강화를 위한 투쟁에서 맡겨진 임무를 훌륭히 수행해나갈것을 바라시는 기대가 담겨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믿음과 기대를 불타는 심장마다에 새겨안은 인민군대안의 모든 정치일군들은 선군시대의 요구에 맞게 군인들에 대한 사상교양사업을 실속있게 진행하기 위한 투쟁을 더욱 힘있게 벌려나갔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정력적인 지도와 보살피심속에 인민군대의 정치사상사업은 선군시대의 요구에 맞게 시대와 인민을 앞장에서 주도하는 실속있는 사업으로 더욱 강화되였으며 인민군대는 선군혁명대오의 사상적기수, 전위대로 억세게 자라났다.
인민군대에서 창조된 사상교양사업의 훌륭한 모범과 성과들은 그후 온 사회에 널리 일반화되여 커다란 생활력을 나타내게 되였다.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사상사업이 명실공히 사람들을 혁명적으로 개조하고 그들의 심장을 발동하는 산 사업으로 일관되였으며 새 세기 사상사업에서는 근본적인 전환이 일어나게 되였다.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강령이 선포된지 30돐이 되는 뜻깊은 해인 주체93(2004)년 2월에는 전당사상일군대회가 성과적으로 진행됨으로써 당사상사업을 선군시대의 요구에 맞게 진행하여 온 사회를 선군사상으로 일색화하고 강성국가건설을 추동하는 힘있는 정치사업으로 강화발전시켜 나갈수 있게 한 획기적인 전환이 일어났다.
인민군대를 선군시대를 주도해나가는 사상적기수, 전위대로 키워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과 믿음의 손길이야말로 온 사회를 선군사상으로 일색화하고 천만군민의 사상정신적힘을 총발동하여 강성국가건설을 더욱 과감히 벌려나갈수 있게 한 힘의 원천이였다.
무재봉영웅전사들의 위훈은 영원불멸할것이다
주체93(2004)년 12월 어느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의 어느 한 해군부대를 찾아주시였다.
아득히 펼쳐진 바다우에 흰 갈기를 일으키는 파도가 그 무슨 사연을 속삭이듯 끝없이 기슭을 치는 군항.
이날 부대를 시찰하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특별히 꾸려진 구호문헌보존교양실에 들리시였다.
아무 부대에서나 흔히 볼수 없는 이 특이한 교양실은 지난 세기 90년대말 뜻밖의 산불로 위험에 처한 구호나무들을 구원하고 청춘의 삶을 아낌없이 바친 무재봉의 17명 영웅들의 위훈을 전하기 위하여 군인교양장소로 꾸려진 곳이였다.
그이께서 구호문헌보존교양실에 들어서시자 대기하고있던 강사 겸 관리원들이 정중히 인사를 올리였다.
그들의 인사에 답례하시는 장군님께 부대정치위원이 이 동무들이 바로 몇해전 불속에서 구호문헌을 지켜내기 위한 결사전에 참가했던 동무들이라고 보고드리였다.
그이께서는 몹시 반가와하시며 그들을 유심히 바라보시였다.
꿈결에도 그립던 경애하는 장군님을 몸가까이 뵙게 된 감격에 휩싸여 눈물이 글썽해진 녀성강사가 그때 구호문헌을 보위하는 전투에서 희생된 17명이 모두 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받았다고 말씀드리였다.
부대정치일군이 그때 구호문헌보존관리원으로 있던 남성강사 겸 관리원 두명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표창장을 받고 구분대청년지도원을 하던 녀성강사동무는 김일성청년영예상을 받았다고 잇달아 보고드리였다.
그러자 장군님께서는 《그것이, 어느해던가?》 하고 혼자말처럼 나직이 말씀하시였다.
몰라서 물으시는것이 아니였다.
불사신의 영웅전사들을 언제나 심장에 안고계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인민군군인들이 선군조선의 수령결사옹위정신이 어떤것인가를 다시한번 온 세상에 똑똑히 보여준 그날을 어찌 잊으실수 있겠는가.
그날의 영웅적인 결사전에서 위훈떨친 강사 겸 관리원들을 대견하게 바라보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다 영웅이야, 영웅!》이라고 하시고나서 구호문헌을 지켜내기 위하여 목숨을 바친 17명은 모두다 선군시대가 낳은 영웅들이라고 하시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그들은 불길속에 서슴없이 뛰여들어 구호나무들을 목숨으로 지켜냈습니다. 그들은 구호나무들이 불타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타래치는 불길속에서 구호나무들에 진흙을 발랐으며 마지막에는 우리 혁명의 만년재보인 구호나무들을 목숨으로 지키자는 구호를 높이 부르면서 자기 몸으로 구호나무들을 감싸안고 장렬한 최후를 마쳤습니다. 수령결사옹위의 투철한 신념과 의지가 없이는 절대로 그렇게 행동할수 없습니다.》
세월은 어느덧 퍼그나 흘렀으나 영웅전사들이 생의 마지막순간에 시대와 력사앞에 남긴 그 장렬한 최후의 군상들을 잊지 않고 회고하시는 그이의 음성은 저으기 갈리였다.
그 모습을 우러르느라니 일군들의 눈앞에도 세월의 흐름에 결코 실려보낼수 없는 영웅불사신들의 결사의 투쟁모습이 우렷이 떠올랐다.
…
1998년 3월 어느날이였다.
보초교대를 마치고 돌아오던 이곳 부대의 군인들은 그 누구인가의 다급한 웨침소리를 듣게 되였다.
《불이야!》
눈을 들어 바라보니 귀중한 구호나무들이 서있는 혁명사적지구역의 산에 불길이 일고있었다.
《동무들! 구호나무가 위험하오. 자, 빨리!》
더 생각할 사이없이 그들은 산으로 내달렸다. 여기에 다른 구분대군인들도 합세하였다.
구호나무가 있는 산정에 오르니 이글거리는 불길에 의해 천년고목들이 소리내며 불에 타 넘어지고 굳은 암반들이 탕탕 튀며 부서져나갔다.
누구인가 찌렁찌렁하게 웨쳤다.
《동무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우리 혁명의 만년재보라고 하신 혁명적구호문헌들을 한목숨바쳐 보위합시다.》
심장의 목소리로 그에 화답한 군인들은 필사적인 전투를 벌리였다.
숨막히는 불길에 얼굴이 타고 살점이 떨어졌으나 그들은 초인간적인 힘을 발휘하여 구호나무들에 진흙을 바르고 보호철판을 씌웠다.
하지만 뜨거운 불길에 보호철판마저 벌겋게 달아올라 연덩어리처럼 녹아내릴것 같았다.
군인들은 너무도 안타까와 몸부림을 쳤다.
《안된다, 안돼. 이 구호나무만은 절대로 태울수 없다. 절대로…》
최후를 각오한 그들은 모두가 옷을 벗어 구호문헌들을 정히 감쌌다. 그리고 마지막힘을 모아 나무를 꽉 그러안았다.
…
이것은 한갖 회상이 아니였다. 삶의 아득한 높이였고 처절한 감동이였다.
일군들모두가 17명 무재봉용사들의 영웅적최후를 그려보며 눈시울을 적시고있는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말씀을 이으시였다.
《그들이 발휘한 높은 희생정신은 선군시대 우리 군인들의 사상정신상태가 얼마나 숭고한 높이에 이르렀는가 하는것을 잘 보여주고있습니다. 우리 당과 인민은 혁명의 만년재보이며 자랑인 구호문헌을 지키기 위하여 꽃나이청춘을 바친 무재봉의 영웅전사들을 영원히 잊지 않을것입니다.》
참으로 그 순간은 무재봉영웅들의 불멸의 위훈이 천만군민의 삶과 투쟁의 사상정신적표대로 되여 시대앞에 더더욱 높이 솟아오르는 감격과 격동의 순간이였다.
사상과 신념이 투철하고 애국의 마음으로 불타는 이런 인민군대가 있음으로 하여 그 어떤 천지풍파가 닥쳐오고 고난이 겹쌓여도 공화국의 존엄과 위력은 더욱 굳세여지는것이며 선군혁명의 최후승리는 확정적인것 아니겠는가.
장군님께서는 선군시대가 낳은 영웅전사들의 모습에서 그것을 더욱 굳게 확신하시였기에 그들의 불멸의 위훈을 그렇듯 값높이 내세워주시는것이였다.
수령결사옹위의 길, 애국의 길에 청춘도 생명도 서슴없이 바친 무재봉전사들의 영웅적위훈을 새 세기에도 영원히 빛내주시려 마음쓰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높으신 뜻이 일군들의 가슴마다에 뜨겁게 안겨왔다.
이윽하여 구호문헌보존교양실의 리용정형을 알아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사람들에게 구호문헌을 실물그대로 보여주는데도 의의가 있지만 그 구호문헌을 구원하기 위하여 17명의 영웅전사들이 세찬 화염속에서도 위대한 수령님의 초상휘장을 손에 꼭 감싸쥐고 구호문헌을 그러안은채 순직한 그 위훈적인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다는데 대하여 간곡히 말씀하시였다.
장군님께서 구호문헌보존교양실을 사회에다 잘 지어놓고 로동당시대에 우리 군인들이 구호문헌들을 어떻게 구원하고 꽃다운 청춘을 바쳤는가 하는것을 우리 인민들도 다 알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실 때 일군들의 눈에는 가슴속에서 뭉클하게 치밀어오르는 격정으로 물기같은것이 핑 어리였다.
인민군군인들과 인민들에 대한 사상교양에서 구호문헌을 통한 교양적의의를 그토록 중시하시는것과 함께 구호문헌을 지켜 영웅적투쟁을 벌린 17명 수령결사옹위전사들의 사상정신세계를 따라배우기 위한 사업을 강화하도록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는 장군님의 높으신 뜻이 그들의 심금을 울리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날 무재봉의 영웅전사들의 위훈을 더욱 빛내여주시려 그들의 이름으로 빛나는 로인덕영웅중대도 찾아주시였다.
영웅들의 뜨거운 숨결을 느끼시며 중대의 여러곳을 다 돌아보신 장군님께서는 이윽하여 17명 영웅들의 사진이 게시된 직관판앞에 이르시였다.
《저것이 구호문헌을 구원한 무재봉영웅들의 사진입니까?》
《그렇습니다.》
그이께서는 꽃나이영웅들의 사진을 한장한장 눈여겨보시였다.
금시라도 불사신의 영웅전사들이 환생하여 자신의 품에 안길것만 같으시여 그이께서는 발걸음을 떼지 못하시였다.
그이께서는 거듭 깊은 감동을 표시하시였다.
《당과 수령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심을 지닌 동무들이였기에 삼단같은 불길속에 서슴없이 뛰여들어 목숨으로 구호나무를 구원해낼수 있었습니다.》
그러시면서 그이께서는 부대에서 일상적으로 군인들에 대한 정치사상교양사업을 잘하였기때문에 이런 수령결사옹위정신을 지닌 육탄, 자폭영웅들이 나올수 있었다고 다시금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무재봉의 영웅전사들이 수령결사옹위의 길, 애국의 한길에서 발휘한 영웅적희생정신은 결코 하루아침에 저절로 생긴것이 아니였다.
그것은 그들이 평시에 정치사상교양사업을 통하여 경애하는 장군님의 위대성에 매혹되고 장군님의 선군사상을 자기들의 뼈와 살로 만들기 위하여 꾸준히 노력하였기때문이였다.
그 과정에 투철한 수령결사옹위의 전위투사로, 그 누구보다 조국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간직한 참된 애국자들로 성장할수 있었던것이다.
일군들모두가 경건한 마음에 휩싸여있는데 그이께서는 인민군군인들이 무재봉 17명 영웅들의 위훈을 잘 알아야 영웅들을 따라배워 수령결사옹위정신을 더 높이 발양해나갈수 있다고 간곡하게 이르시였다.
모든 인민군장병들을 무재봉의 17명 영웅들과 같은 수령결사옹위의 전위투사로, 전군의 모든 중대들을 로인덕영웅중대와 같은 수령결사옹위의 전위대오로 만드시려고 그리도 마음쓰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이시였다.
그이를 우러르는 일군들의 귀전에는 타래치는 불길속에서 결사전을 벌린 영웅전사들의 투쟁위훈을 회고하실 때 하신 장군님의 말씀이 메아리치며 울려왔다.
《세계적으로 이런 실례는 없을것입니다. 이런 집단주의적영웅정신은 오직 우리 인민군대에서만 찾아볼수 있는 아름다운 소행이며 영웅적인 행동입니다.》
오직 자기 수령, 자기 조국만을 아는 투철한 사상과 신념의 강자, 영웅의 대부대를 가지고있는 위대한 선군령장의 긍지와 자부가 넘치는 말씀이였다.
수령결사옹위를 삶의 근본으로 간직하고 애국의 한길에서 영웅적투쟁과 위훈을 창조해가는 인민군대의 높은 사상정신적풍모는 실로 세계에 자랑할만 한것이다.
하기에 공화국을 방문하였던 어느 한 나라 국방성의 고위관리는 조선방문소감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였다고 한다.
《조선을 방문한 소감이라 할가, 조선군대의 정신적특징이라고 할가, 어쨌든 나의 생각을 그대로 말하겠다.
지금 조선에서는 주권국가의 존엄을 지키는데서 중핵이라고 할수 있는 수령옹호보위를 제일차적인 구호로 내세우고 실현하고있다. 그 앞장에는 의연히 조선인민군이 서있다.
조선의 병사들은 가장 어려웠던 시련의 시기에 자기 수령을 목숨으로 보위하자는 신념의 구호를 제일 선참으로 들었고 령도자의 거듭되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장군의 노래>를 자기들의 병영에서 남먼저 부른, 말하자면 국민들중의 핵심국민이라고 말할수 있다.
그들은 수령보위를 가장 성스러운것으로, 그 길에서 육탄영웅, 자폭용사가 되는것을 더없이 신성하고 영예로운것으로 간주하고있다.
평범한 보통군인들이 터지는 수류탄을 한몸으로 막는것이라든가, 타래치는 불속과 사품치는 물속에도 주저없이 뛰여들어 꽃나이청춘을 아낌없이 바치고있는것은 그 실례라고 볼수 있다. …》
인민군군인들속에서 발휘되는 투철한 수령결사옹위정신에 대한 깊은 감동과 찬탄의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는 세상사람들 누구나가 경탄하는 인민군군인들의 수령결사옹위정신과 불타는 애국심의 원천이 무엇인가 하는것을 다는 알수 없었다.
평범한 인민군전사들이 세계를 놀래우는 기적과 위훈의 창조자로 되고 조국과 인민의 참된 아들로 죽어서도 영생하는 삶을 누릴수 있게 하는 그 영웅성의 원천은 어디에 있는가.
전군을 조국과 인민, 당과 수령을 위하여 한목숨 서슴없이 바치는 영웅의 대부대로 억세게 키워가는 위대한 힘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인민군대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사랑으로 선군의 새시대를 열어가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위대한 령도의 손길이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펼치신 선군이야말로 이 세상 가장 열정적이고 가장 강한 사상과 신념을 가진 새시대의 인간들을 키운 위대한
사랑인것이다.
선군시대 농업혁명의 개척자, 선구자로
예로부터 농사는 천하지대본이라고 하였다.
그만큼 먹는 문제가 사람들의 생활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는것을 의미한다. 더우기 경제강국건설을 위한 힘찬 투쟁을 벌려나가자면 농업생산에서 결정적전환을 가져와야 한다.
농사가 잘되여야 인민들의 식량문제를 원만히 풀고 하루빨리 모든것이 흥하고 전체 인민이 남부럽지 않게 잘사는 사회주의강성국가를 건설할수 있다.
농업생산에서 획기적인 변혁을 일으킬 확고한 결심을 지니시고 독창적인 농업혁명방침을 제시하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그 관철을 위한 투쟁의 앞장에도 인민군대를 내세우시였다. 여기에는 선군혁명의 주력군인 인민군대를 농업생산을 위한 투쟁에서도 앞장에 내세우고 그 모범으로 전체 인민을 불러일으켜 경제강국건설의 넓은 길을 열어나가시려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깊은 의도가 담겨져있었다.
인민군대를 선군혁명의 주력군으로 내세워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크나큰 사랑과 믿음을 안고 인민군군인들은 련이어 겹쳐드는 자연재해와 류례없이 어려운 환경과 조건에서도 결코 주저앉거나 물러서지 않고 완강하게 일어나 혁명적군인정신을 남김없이 발휘해나갔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안의 농장들을 찾으실 때마다 이러한 인민군군인들의 로력적투쟁을 크게 고무해주시였다.
주체92(2003)년 6월 4일 이른아침 두벌농사에서 앞장서나가고있는 어느 한 인민군부대산하 농장을 찾아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흐뭇한 눈길로 벌을 바라보시였다.
허리치게 자란 밀보리들이 바다처럼 설레이고 무성한 감자숲이 이랑을 꽉 덮은 이곳 농장의 두벌농사작황은 정말 볼만 하였다.
관수설비들에서 뿜어올리는 물보라에 의해 칠색무지개가 비끼고 농기계들의 경쾌한 동음이 청신한 대지를 뒤흔드는 농장벌의 아침은 약동하는 사회주의농촌풍경을 그야말로 한폭의 그림처럼 펼쳐보이고있었다.
농장벌을 돌아보시며 예상수확고에 대해 료해하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안광에는 시종 기쁨의 빛이 떠날줄 몰랐다.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이번에 농장에서 좋은 작황을 마련할수 있은것은 당의 두벌농사방침과 농사를 과학기술적으로 지을데 대한 방침을 절대적인 진리로 받아들인데 있다고 하시면서 《경험은 당의 방침을 절대적인 진리로 받아들이고 혁명적군인정신을 높이 발휘할 때 못해낼 일이 없다는것을 보여주고있습니다.》라고 이들의 성과를 값높이 평가해주시였다.
두벌농사의 알찬 결실을 위해 바쳐진 인민군군인들의 순결한 량심과 높은 정신세계를 깊이 헤아리시여 하시는 장군님의 그 말씀에 부대일군들의 가슴은 격정으로 설레이였다.
부대안의 모든 군인들과 종업원들은 모두가 농업혁명의 담당자, 두벌농사의 주인이라는 자각을 안고 일떠나 알곡 대 알곡으로 하는 두벌농사가 어렵다고 하던 기성의 관념을 대담하게 벗어던지고 모두가 두몫, 세몫씩 해제끼며 돌각담도 쳐내고 포전도 정리하였으며 해종일 농장원들과 함께 씨를 뿌리고 김을 매기도 하였다.
그것은 그대로 혁명적군인정신의 발현이였다. 돌우에도 꽃을 피울 이악한 투지와 노력으로 척박한 땅우에 기어이 훌륭한 작황을 마련한 그 불굴의 정신력과 의지를 장군님께서는 속속들이 다 헤아리고계시는것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가 지난해에 두벌농사에서 장훈을 부른데 이어 올해 또다시 두벌농사의 본보기를 창조한것은 아주 좋은 일이라고 치하하시면서 우리의 선군은 인민군대가 사회적으로 우대를 받는것이 아니라 사회생활의 모든 면에서 모범을 창조하고 그를 본보기로 하여 온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선군이라고 참으로 깊은 뜻이 담긴 말씀을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인민군대에서는 오늘의 성과에 자만하지 말고 더욱 분발하여 두벌농사에서도 계속 앞장서나가도록 하여야 한다고 당부하시였다.
당의 농업혁명방침을 결사관철의 의지로 받들어나가는 인민군대에 대한 믿음의 말씀에 부대의 일군들은 자기들의 심중으로 파고드는 크나큰 행복감과 자부심으로 가슴을 들먹였다.
장군님께서는 이곳 부대의 훌륭한 농사작황 하나를 통하여서도 인민군군인들의 무한한 충실성과 그 어떤 시련과 난관도 끄떡없이 이겨나가는 혁명적군인정신을 강렬하게 느끼시며 그렇듯 만족해하시는것이였다.
그후 이곳 부대농장에서의 두벌농사경험을 전국에 일반화하는 사업이 진행되였다. 련이어 온 나라에 두벌농사혁명의 북소리가 더욱 높이 울려퍼졌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가 콩농사에서도 전국의 앞장에 서도록 이끌어주시였다.
예로부터 콩은 사람들의 식생활에서 떼여놓을수 없는 중요작물로 일러오고있다.
콩으로는 조선고유의 장과 함께 두부와 순두부, 비지와 콩나물을 비롯하여 다종다양한 콩음식을 만들수 있을뿐아니라 그 맛과 영양가가 매우 높다. 콩은 또한 좋은 기름작물로서 콩농사를 잘하면 먹는기름문제도 얼마든지 풀수 있다.콩농사의 우월성을 깊이 헤아리시고 이미 오래전부터 수확고가 높은 콩종자를 만들어내도록 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콩농사에서도 인민군대가 앞장에 서야 한다고 하시면서 인민군부대들에서 콩재배시험들을 널리 진행하게 하시는 등 여러가지 적극적인 대책들을 취하여주시였다.
장군님의 크나큰 믿음에 보답하기 위하여 인민군대에서는 군부대들이 운영하는 농장들의 넓은 면적에 수확고가 높은 새로운 콩종자를 심어 2003년에 지금까지 심어오던 콩보다 몇곱절이나 높은 수확을 거두었다.
이 사실을 보고받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 92(2003)년 9월 3일 일군들에게 인민군대에서는 두벌농사의 본보기를 창조하고 그 모범과 경험을 사회에 일반화하였을뿐아니라 좋은 밀보리종자도 많이 생산하여 보내주었고 높은 수확을 낼수 있는 좋은 콩종자도 수만정보에 심을수 있는 많은 량을 생산하는 좋은 일을 하였다고 하시면서 그렇게 높은 수확을 거둘수 있게 되였으니 이것은 콩농사에서 하나의 혁명이라고 기쁨에 넘쳐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우리 나라에서는 콩을 정보당 3t이상만 내여도 콩문제를 풀수 있다고, 콩은 단백질과 기름함유량이 많기때문에 많이 생산하면 인민들의 식생활에서 제기되는 단백질식품과 먹는기름문제를 다같이 풀수 있다고, 인민군대에서 인민들의 식생활문제를 푸는데 중요한 콩문제의 해결전망을 열어놓았는데 아주 큰일을 하였다고 거듭 치하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후에도 인민군대에서 시험포전에 심은 콩농사작황을 현지에서 료해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의 후방부문 일군들이 우리 당의 선군정치를 맨 앞장에서 받들어나가는 기수, 돌격대답게 혁명적군인정신을 높이 발휘하여 당의 방침관철에서 빛나는 모범을 창조하여 우리 당의 선군혁명사상의 정당성과 생활력을 실천행동으로 부각시켰다고 하시면서 그들에게 최고사령관의 감사를 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크나큰 믿음과 각별한 보살피심속에 마련된 콩농사의 불길은 온 나라에 타번져갔다.
장군님께서는 콩농사에서도 기본은 종자라고 하시면서 선군길에서 몸소 마련하신 다수확품종의 콩종자를 온 나라 농촌들에 보내주시였다. 그리고 콩을 논두렁만이 아니라 기본작물로도 심고 두벌농사의 뒤그루로도 심으며 콩농사면적도 대대적으로 늘이도록 하여주시였다.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콩종자를 받아안은 온 나라의 사회주의협동벌들에서는 콩농사의 열풍이 일었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끌리는 콩종자를 받아안고 정성껏 보관관리하는 관리공들의 얼굴에도, 콩종자가 움트고 자라 이 땅우에 콩더미가 높이 솟을 가을철을 그리며 농사일을 다그치는 농장원들의 얼굴에도 기쁨이 가득차있었다.
하여 나라의 콩농사면적이 일년사이에 수배로 부쩍 늘어났는가 하면 콩농사방법에서도 새로운 전환이 이룩되였다.
오랜 세월 물려주고 물려받으면서 진행하여온 콩농사에서 말그대로 일대 혁명이 일어났다.
이 나날에 만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도 수많이 꽃펴났다.
주체94(2005)년 12월 어느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어느 한 구분대군인들이 삼가 올린 편지를 받게 되시였다.
편지에는 그해 봄에 장군님께서 찾아주시였던 부대군인들의 자랑이 한껏 담겨져있었다.
군인들은 편지에서 자기들이 그해 콩농사를 본때있게 지어 매일 군인 한명당 콩을 200g씩 먹을수 있게 된 사연을 자랑스럽게 보고드리였다.
그날 인민군대의 한 일군을 부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해 봄 그 구분대를 찾으시였던 때의 일을 회고하시며 말씀하시였다.
《나는 봄에 … 그곳 군인들에게 콩농사를 잘하여 매일 콩을 200g씩 먹을수 있게 되면 나에게 편지를 쓰라고 하였습니다. …군인들이 올해 콩농사를 잘 지어 매일 콩을 200g씩 먹을수 있게 되였다고 하면서 나에게 편지를 보내여왔습니다. 그들이 편지를 소박하면서도 감동깊게 생활적으로 잘 썼습니다.》
아직도 사랑하는 병사들의 편지에서 받으신 감동에 잠겨계시는듯 그이의 음성은 뜨거움에 젖어있었다.
이름할길 없는 격정이 소리없이 가슴가득 차올라 일군은 아무런 말씀도 드리지 못하였다.
전군에 력사에 류례없는 콩농사의 불길을 지펴주시고 수많은 구분대들을 찾으시여 과학적인 콩농사방법도 몸소 하나하나 알려주시고 더 좋은 콩종자가 마련되였을 때에는 그것이 너무도 기쁘시여 전선시찰의 길에서 구분대지휘관들에게 친히 그 반가운 소식을 알려주신 경애하는 장군님.
그 모든것이 군인들에게 콩음식을 많이 먹이여 건강한 몸으로 군사복무를 하게 하자는것이여서 이름없는 병사들과 그런 약속까지 하신 장군님이시였다.
일군이 이런 생각에 잠겨있는데 장군님께서는 군인들이 나에게 올려보낸 편지를 래일호 인민군신문에 내도록 하라고, 군인들의 편지가 인민군신문에 나가게 되면 다른 부대, 구분대일군들과 군인들에게 큰 감동을 줄수 있고 콩농사를 더 잘하여야 하겠다는 열의를 북돋아주게 될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최고사령관과 평범한 병사들사이에 오고간 사랑의 약속과 편지에 깃든 이 감동적인 사연은 그후 인민군신문을 비롯한 출판보도물들을 통해 온 나라에 전설처럼 전해져 만사람의 심장을 뜨겁게 달구어주었다.
이렇듯 경애하는 장군님의 정력적이고 뜨거운 사랑의 령도로 하여 나라의 곳곳에서는 두벌농사, 콩농사의 불길이 세차게 타오르고 먹는 문제해결에서 또 하나의 큰걸음을 내디디게 되였다.
농업생산을 위한 투쟁에서도 언제나 인민군대가 앞장서도록 이끌어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 경험을 온 나라에 일반화하도록 하시기 위하여 다수확품종품평회를 조직하시고 주체93(2004)년 8월과 9월 당과 군대, 국가의 책임일군들과 함께 현지에 나오시였다.
여러가지 품종의 작물들을 보아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현지일군들에게 다수확품종들을 이렇게 훌륭히 육종해내느라고 수고가 많았다고 하시며 인민군군인들의 로력적투쟁을 높이 평가하시였다.
가슴을 후덥게 적셔주는 장군님의 다심한 정에 일군들이 두눈을 슴벅이는데 그이께서는 당과 수령에 대한 보답의 한마음을 안고 당정책관철에서 절대성, 무조건성의 정신을 높이 발휘하여 끝장을 보고야마는 인민군대가 아니고서는 오늘과 같은 현실을 안아오지 못하였을것이라고 재삼 평가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인민군대는 선군시대의 농업혁명의 개척자이며 선구자입니다.》
선군시대의 농업혁명의 개척자, 선구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불러주신 이 값높은 칭호속에는 당의 농업혁명방침관철에서 선봉대적역할을 훌륭히 수행해나가는 인민군대에 대한 크나큰 믿음이 어려있었고 앞으로 농업전선에서 계속 선구자적역할을 해나갈것을 바라시는 그이의 간곡한 기대가 담겨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그렇듯 극진한 사랑과 믿음에 떠받들려 인민군대는 농업혁명의 개척자, 선구자로서의 영예를 빛내이기 위한 투쟁을 더욱 힘있게 벌려나갔으며 인민들의 식량문제, 먹는 문제해결에서 돌파구가 마련되게 되였다.
《우리 나라에는 이런 총대가정이 많습니다》
선군시대는 혁명의 대를 꿋꿋이 이어가는 미더운 총대가정을 수많이 낳았다.
그 가정들에 온 나라 군대와 인민의 참모습이 비껴있었고 위대한 선군시대의 높이가 어리여있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끊임없이 이어가시는 선군령도의 길에서 이러한 총대가정을 만나게 되는것을 더없이 기뻐하시며 그들을 나라의 기둥으로 내세워주시였다.
주체91(2002)년 6월 중순 어느날 선군령도의 첫 자욱을 새기셨던 부대를 또다시 찾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군관가족들이 어떻게 사는가를 알아보시려고 어느 한 군관의 집을 찾아주시였다.
친자식의 집에 오신듯 인자한 미소를 지으시고 마당으로 들어서신 장군님을 뜻밖에 뵈옵게 된 군관의 안해와 딸은 그이앞으로 달려가 머리숙여 인사를 드리였다.
장군님께서는 《주인들과 인사를 나누어야지.》라고 반가운 어조로 말씀하시며 그들의 인사를 받으시였다.
장군님께서 찾아주신 그 군관의 살림집은 그이께 있어서 깊은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사연있는 집이였다.
주체49(1960)년 8월 25일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이 부대를 찾으신 장군님께서 당시 부대장이 살고있던 이 집에 들리시여 잠시나마 수령님의 휴식을 보장해드리시였던것이다.
40여년만에 다시 이 집을 찾아주신 장군님께서는 감개무량하시였다.
그렇게도 뵙고싶던 그이를 자기 집에 모시게 된 군관가족의 심중에도 뜨거운것이 차올랐다.
장군님을 우러르는 순간 군관의 안해는 눈앞이 뿌옇게 흐려짐을 어쩔수 없었다. 전선길을 쉬임없이 이어가시며 온 나라를 돌보시는 그이의 모습에 너무도 크나큰 로고와 심혈의 흔적이 력력했던것이다.
군관안해의 심중이 헤아려지셨지만 장군님께서는 흔연한 안색으로 《가정방문입니다. 들어가봅시다.》라고 하시며 부엌에 먼저 들어서시였다.
그이께서는 몸소 허리를 굽히시고 부뚜막도 짚어보시고 찬장이며 부엌세간들을 세세히 살펴보시였다.
이어 그이께서는 아래방, 웃방을 차례로 돌아보시면서 군관가족들의 생활을 친어버이의 심정으로 보살펴주시였다. 매 방들에 불이 다 잘 드는가, 땔감은 어떻게 보장하며 부식물은 또 어떻게 공급받는가를 일일이 알아보시면서 부대일군들이 군관가족들의 생활에 깊은 관심을 돌릴데 대하여 간곡하게 일깨워주시였다.
평범한 군인가정을 방문하시여 군관가족들의 생활을 구석구석 보살펴주시는 장군님을 우러러 모두가 격정에 목이 메여하는데 그이께서는 안주인에게 자식들이 몇인가고 물으시였다.
그는 자식이 3명인데 맏아들은 군관으로, 둘째아들은 병사로 복무하고있다고 그이께 말씀올리였다.
순간 그이의 안색은 대번에 기쁨으로 환해졌다.
《총대가정이구만.》
곁의 일군들을 둘러보며 하시는 그이의 우렁우렁한 음성은 온 집안을 쩌렁쩌렁 울리였다.
이어 그이께서는 쌓인 피로가 다 풀리시는듯 환하게 웃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우리 나라에는 이런 총대가정이 많습니다. 나는 총대가정을 많이 가지고있는것을 자랑으로 여기고있습니다.》
참으로 온 식솔이 혁명의 총을 잡은 애국적인 가정들을 많이 가지고있는데 대한 긍지와 자부가 한껏 넘치는 말씀이였다.
이름없는 한 군관의 가정을 총대가정이라는 값높은 칭호로 불러주시고 긍지와 자부심을 안겨주시는 장군님께 군관의 안해는 무슨 말로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할지 몰랐다.
그가 감격에 마음을 진정하지 못하고있는데 그이께서는 마당을 천천히 거니시며 집주위를 빙 둘러보시고 집을 잘 거두었다고 치하해주시였다.
그러시고 총대가정에 못다 주신 사랑이 있으신듯 유치원교양원으로 일하는 딸에게도 일을 잘하라고 고무해주시였다. 그러시고는 군관안해에게 남편이 지금 백두산전적지답사를 갔다고 하는데 오늘 그가 있었더라면 좋았을걸 그랬다고, 남편이 돌아오면 자신께서 집을 잘 보고 갔다고 인사를 전해주라고 다정하게 이르시며 만나보지 못한 전사의 심정까지 헤아려주시였다.
또 하나의 총대가정을 알게 된것이 그리도 기쁘시여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시종 환하신 미소를 짓고계시였다.
나라를 지키는 일을 공민의 신성한 의무로 간직하고 조국보위의 길에 자식들을 내세우는것은 선군시대에 사는 이 나라 모든 가정의 애국적가풍이다.
돌이켜보면 전체 군대와 인민의 가슴마다에 조국보위의 참된 정신을 심어주시고 온 나라 가정을 참된 애국의 가정으로 키워주신분은 다름아닌 경애하는 장군님이시였다.
총대가정이라는 새로운 표현이 력사에 기록되고 그 시원이 마련되던 나날은 조국이 전례없는 시련을 겪고있던 준엄한 시기였다.
이전 쏘련을 비롯한 동유럽사회주의나라들에서 사회주의가 련이어 무너지고 미제를 비롯한 제국주의자들이 사회주의보루인 우리 공화국을 고립압살하기 위해 미쳐날뛰던 그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평범한 조선인민군 군관들인 박용철8형제가 총대로 혁명의 수뇌부를 결사옹위해갈 자기들의 결의를 담아 삼가 올린 편지를 받게 되시였다.
그들은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 저희들은 이 세상에 그 어떤 광풍이 불어오고 하늘, 땅이 열백번 뒤집혀진다 하여도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만을 믿고 따르며 최고사령관동지와 운명을 같이하겠습니다.
영원히 혁명의 총대를 틀어잡고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를 무장으로 옹호보위하는 8형제군관으로 한생토록 살고싶은것이 저희들의 신념입니다. 만약 준엄한 시련의 시기가 닥쳐온다면 우리 군관 8형제는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를 결사옹위하는 성새가 되고 방패가 될것이며 원쑤들을 무찌르는 격전장에서는 <김정일동지 만세!>를 높이 부르며 목숨을 내대고 용감무쌍하게 싸울것입니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를 보위하는 여덟자루의 총이 되고 여덟개의 폭탄이 되자!>, 이것이 저희들의 신념이며 맹세입니다.》
이들이 경애하는 장군님께 올린 편지의 구절구절은 그대로 8형제모두의 심장에서 우러나온 신념의 맹세였다.
그때 장군님께서는 그들이 올린 편지를 보시고 커다란 감동을 받으시였다. 또 한번 힘과 용기를 얻으시고 선군혁명의 의지를 굳히시였다.
하여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친히 그들에게 《동지들과 같이 당과 혁명위업에 무한히 충실한 전사들을 가지고있는 우리 당은 필승불패입니다.》라는 크나큰 믿음이 담긴 친필서한을 보내주시였다.
그러시고 일군들에게 당과 수령의 두리에 굳게 뭉친 이런 군대와 인민의 힘은 이 세상 그 누구도 꺾을수 없다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그후 온 나라에는 선군시대 가정들의 빛나는 모범인 박용철8형제군인가정을 따라배우기 위한 열풍이 일어번졌다.
한식솔모두가 군복을 입은 총대가정, 애국자가정이 수풀처럼 자라났다.
벽이 모자라게 주런이 걸려있는 형제, 자식들의 군모와 군복이 그 어떤 황금재부와도 비길바 없는 총대집안의 제일재부로 되였다.
초소에 오신 경애하는 장군님을 모시고 찍은 기념사진이 집집의 가보로 되고 자식들의 조선인민군입대증이 한가정의 제일 자랑거리로 되였으며 이 땅 어디서나 《우리 집은 군인가정》이라는 노래가 울려퍼졌다.
이것이 선군조선의 어디서나 볼수 있는 총대가정의 참모습이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총대가정을 키워주시고 내세워주신 그 나날에 새겨진 이야기들은 또 얼마나 가슴뜨거운것인가.
어느해 2월의 뜻깊은 명절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엄복순군인가정을 몸가까이 불러주시고 한식솔의 정을 나누시였다.
어머니가 병사시절 수령님께 꽃다발을 드렸고 그 딸이 어머니가 심은 감나무에서 딴 감을 들고 자신과 함께 사진을 찍은것은 하나의 훌륭한 소설감이라고 하시며 이 가정의 소행에 대해 몇번이고 외우신 경애하는 장군님이시였다.
선군장정의 길에서 엄복순가정을 몸가까이 부르신 장군님께서 자신들뿐만아니라 딸자식들도 모두 초소에 세운 그 소행이 너무도 대견하시여 분에 넘친 치하의 말씀도 해주시고 선물도 가슴가득 안겨주시면서 그들과 함께 한집안식구마냥 뜻깊은 명절을 보내신 그날의 이야기는 온 나라 가정에 전설처럼 전해졌다.
바로 이 화폭에서 전체 군대와 인민은 총대가정을 자신의 가까운 한식솔로 여기시며 시대의 보배로 내세워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각별한 사랑을 후덥게 느낄수 있었다.
전선시찰의 길에서 군복입은 쌍둥이형제나 자매들, 군복입은 영웅의 동생, 영웅의 안해를 만나시게 되면 무척 반가우시여 사진도 찍어주신 장군님.
그이께서는 세쌍둥이군인들을 모두 몸가까이 부르시여 사랑의 손목시계도 채워주시였고 총대가정들이 삼가 올린 편지들에 믿음의 친필을 새겨주시였으며 자신보다 나라와 혁명을 먼저 생각하는 군인가족들을 비롯한 혁명적인민들을 가지고있기에 우리 조국은 금성철벽이며 우리의 선군혁명위업은 필승불패이라고 믿음의 말씀도 해주시였다.
선군시대에 자신과 숨결을 같이해나가는 총대가정에 대한 장군님의 애착과 믿음은 이렇듯 큰것이였다.
하기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93(2004)년 1월 17일 일군들에게 또다시 박용철8형제총대가정에 대한 뜻깊은 말씀을 하시였다.
《인민군군관들인 박용철의 8형제는 우리 나라 총대가정의 시원입니다. 1990년대초에 그들이 혁명의 수뇌부를 결사옹위하는 여덟자루의 총이 되고 여덟개의 폭탄이 되겠다는 결의를 담은 편지를 보내여왔댔습니다. 나는 그 편지를 보고 큰 힘을 얻었으며 그들에게 친필서한을 보내주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그때 일을 돌이켜보고있는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지금 자라나는 새 세대들은 그들에 대하여 잘 모를것이라고,박용철8형제에 대하여 신문과 방송으로 다시 소개하여 그들이 지닌 높은 정신세계를 따라배우도록 할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하여 우리 인민들속에서는 새로운 추억과 흥분속에 박용철8형제군관들에 대한 이야기꽃이 다시금 피여나게 되였고 전군에 박용철8형제가 지닌 투철한 수령결사옹위정신을 따라배우기 위한 열풍이 세차게 일어번졌다.
전체 군대와 인민의 마음속에는 총대이자 애국이고 애국이자 총대라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위대한 애국의 진리가 깊이 새겨졌다. 장군님께 모든 운명을 전적으로 의탁하고 변함없이 신뢰하며 끝까지 따를 신념의 맹세가 원쑤들을 전률케 하는 뢰성이 되여 이 나라의 강산에 메아리쳤다.
정녕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이어가신 선군혁명령도의 날과 달은 선군혁명대오의 혼연일체의 아름다운 화폭이 수놓아진 사랑과 충정의 날들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