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심단결을 강성국가건설의 천하지대본으로 틀어쥐시고
온 사회를 선군혁명동지의 대오로
《온 사회를 동지의 세계로 만들어야 합니다》
21세기 국가건설의 리정표인 사회주의강성국가를 건설하려면 그 담당자인 인민대중의 힘을 하나로 뭉쳐 최대한 발양시켜야 했다. 온 사회의 일심단결은 강성국가건설의 천하지대본이며 일심단결의 위력은 곧 주체사회주의의 정치사상적위력이라고 말할수 있다.
하다면 일심단결의 위력을 강화하기 위한 중요고리는 무엇인가.
그것은 혁명적동지애이다. 온 사회에 혁명적동지애의 미풍을 더욱 활짝 꽃피워나갈 때 수령, 당, 대중의 일심단결이 시대가 요구하는 높이에 올라설것이며 그것이 곧 강성국가건설의 강력한 추동력이 될것이다. …
이것은 새 세기 선군혁명진군길에서 경애하는 장군님의 가슴속에 자리잡은 확고부동한 뜻이였다.
일찌기 동지들사이의 사랑이 곧 단결이며 혁명적동지애로 뭉친 힘보다 더 강한 힘은 없다고 하시면서 숭고한 동지애의 세계를 펼쳐오신 그이께서는 여러 기회에 21세기에도 백두에서 개척된 동지애의 전통, 동지애의 력사를 더욱 빛내여나가실것을 력사앞에 선언하시였다.
새 세기에 조성된 복잡한 정세속에서 사회주의강성국가건설을 성과적으로 해나가자면 그 어느때보다도 동지애의 구호를 높이 추켜들어야 했다.
당시로 말하면 전당, 전군, 전민이 어버이수령님의 생전의 뜻을 받들어 이 땅우에 사회주의강성국가를 일떠세우시려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위대한 구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힘차게 투쟁하고있던 때였다.
한편 미제국주의자들은 사회주의의 보루인 우리 공화국을 압살하려고 온갖 책동을 다하고있었다. 9. 11테로사건이후 미제는 서슴지 않고 대조선침략전쟁을 공공연히 떠들고있었으며 공화국은 이에 초강경대응으로 맞서왔다. 공화국은 사회주의와 제국주의사이의 불꽃튀는 대결의 전초선으로 되여있었다.
결국 생사운명을 같이할 혁명동지의 대부대가 없이는 조성된 난국을 뚫고 사회주의강성국가를 건설할수 없으며 《세계유일의 최강》을 뽐내는 대적의 오만한 간섭과 침략책동을 성과적으로 짓부실수 없었다.
그리하여 이 시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91(2002)년 2월 26일과 3월 20일 그리고 4월 9일과 18일, 5월 5일을 비롯하여 여러차례에 걸쳐 혁명적동지애를 귀중히 여기고 더욱 높이 발양시켜나가야 한다고, 동지적단합을 더욱 튼튼히 다져 동지애로 시작되고 승리하여온 우리 혁명위업을 동지애로 끝까지 완성해나가야 한다고 간곡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우리는 당의 전통적인 동지애의 정신을 높이 발양하여 동지들을 무한히 아끼고 사랑하며 동지를 위해서는 죽음판에도 서슴없이 뛰여드는 참다운 동지애의 기풍이 온 사회에 차넘치도록 하여야 합니다.》라고 가르치시였다.
혁명적동지애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혁명철학, 정치철학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정치의 본질은 사랑이라고 보시며 정치현실은 사랑의 집약이라고 생각하시였다. 그러기에 그이께서 펼치시는 인덕정치, 광폭정치와 함께 선군정치는 주체사상을 구현한 이민위천의 정치, 숭고한 동지애로 일관된 인민에 대한 사랑과 믿음의 정치로 될수 있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주체93(2004)년 4월 7일에 하신 력사적인 담화 《혁명적동지애는 일심단결의 기초이며 우리 혁명의 추진력이다》에서 혁명적동지애와 관련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자신께서 당중앙위원회에서 사업을 시작한지 벌써 40년이 되여온다고 하시면서 지나온 혁명의 길을 돌이켜보면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일들이 수없이 많은데 그가운데서도 제일 감회깊이 추억되는것이 난관과 시련속에서도 변함없이 당을 따라온 혁명동지들에 대한 추억이라고 깊은 감회에 잠겨 말씀하시였다.
년대와 세기를 넘으며 수많은 동지들이 자신을 진심으로 지지해주고 받들어주고 도와주었기때문에 자신께서 오늘까지 혁명사업을 성과적으로 해올수 있었다고, 자신께서는 당에 충실한 혁명동지들을 영원히 잊지 않을것이며 위대한 수령님께서 개척하시고 이끌어오신 주체혁명위업을 동지애로 끝까지 완성할것이라고 엄숙히 천명하시는 장군님의 숭엄한 그 모습은 일군들모두의 마음속 깊은곳에 불세출의 위인을 모신 행복감을 간직하도록 하였다.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혁명을 승리적으로 전진시켜나가자면 동지가 많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동지란 어떤 사람인가, 참다운 동지애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뜻깊은 말씀을 하시였다.
동지는 사상과 뜻을 같이하고 운명을 같이하는 전우이다. 혁명의 한길에서 고난과 시련도 함께 이겨내고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누면서 생사운명을 같이하는것이 혁명동지이다. 동지라는 말은 혁명가들사이에 불리우는 영예롭고 고귀한 칭호이다. 동지가 없으면 혁명이 개척될수도 없고 전진할수도 없다. 이런 의미에서 혁명은 곧 동지이고 동지는 곧 혁명이라고 말할수 있다.
혁명의 길에서는 동지보다 더 가깝고 귀중한 사람이 없다. 동지만 있으면 천만대적도 두렵지 않으며 사나운 광풍도 막아낼수 있다. 동지는 혁명가의 가장 큰 재산이고 밑천이다. 혁명의 길에서 동지들사이에 주고받는 사랑이 다름아닌 혁명적동지애이다. 혁명적동지애는 동지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며 동지를 위하여 모든것을 바치는 자기희생정신이고 동지에 대한 끝없는 헌신이다. 혁명적동지애는 나이나 혈육에 관계없이 사상과 뜻을 같이한다는데 방점이 있다. 동지들사이의 사랑과 믿음, 혁명적동지애에 기초한 단결은 그 어떤 광풍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그 어떤 힘으로도 당할수 없는 위력을 발휘한다. 혁명적동지애를 떠나서는 우리 당의 존재와 강화발전에 대해서도, 우리의 일심단결에 대해서도 말할수 없고 우리 혁명의 승리적전진에 대해서도 생각할수 없다. 혁명적동지애는 일심단결의 기초이며 우리 당의 정신력, 우리 혁명의 추진력이다. …
대하처럼 도도히 흐르는 장군님의 말씀은 그대로 동지애의 철학, 사랑의 철학에 대한 력사적강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계속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찌기 동지를 얻는것으로부터 혁명활동을 시작하시였으며 숭고한 혁명적동지애의 새 력사를 펼치시였다는데 대하여 뜨겁게 회억하시고나서 말씀을 이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광복후 김책동지와 함께 찍으신 한장의 사진을 생애의 마지막까지 거의 반세기동안이나 금고에 소중히 보관하고계시였는데 이것은 만사람의 심장을 격동시켰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말씀을 받아안는 일군들의 가슴은 뜨거워졌다.
그이께서는 어버이수령님께서 뜻밖에 서거하신 후 수령님께서 사용하시던 금고에서 나온 그 한장의 사진, 수령님과 김책동지가 함께 찍은 사진에서 너무나도 큰 감동을 받으시였기때문에 이미 여러차례 말씀하시였지만 또다시 일군들앞에서 목메이는 감회에 잠겨 말씀하시는것이였다.
그이께 있어서 아름다움과 고결함이 비껴있는 그 사진이야말로 동지애의 의미이며 상징이였다.
돌이켜보면 김책은 항일혁명투쟁시기부터 오직 수령님 한분만을 혁명의 령도중심으로, 민족의 태양으로 높이 우러러모시고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로선과 방침을 끝까지 관철한 수령님께 충직한 혁명동지의 한사람이였다.
어버이수령님보다 나이도 많고 혁명년조도 오랜 김책이였지만 그는 언제나 마음속에 수령님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간직하여왔다.
수령님께서 김책과 첫 상봉을 하신것은 1940년 12월 어느날이였다.
첫 순간에 수령님의 사상, 인품, 풍모에서 발산되는 위인적향기에 매혹된 김책은 수령님께 뜻도 마음도 생사운명도 같이할 전사의 맹세를 다지였다.
이날 김책은 수령님께 장군님곁에만 있게 된다면 자신은 군직도 당직도 다 필요없다면서 그러니 자신을 이제부터 성위가 아니라 동무라고 불러달라고, 자신은 장군님의 령을 받드는 군졸이 되고 장군님의 전사, 제자가 되겠다고 절절히 말씀올리였다.
수령님께서는 그의 진실하고 간절한 청을 받아들이시여 《소원이 정 그렇다면 좋습니다. 우리 혁명의 길에서 뜻을 같이하고 생사를 같이하는 혁명동지가 되여 조국의 광복과 인민의 자유, 행복을 위하여 힘껏 싸웁시다. 김책동무!》라고 하시며 우리 서로의 심장과 심장을 얹고 동지적우정과 사랑을 확약한 오늘을 영원히 잊지 말자는 뜻깊은 말씀을 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영원한 동지가 될 맹세를 다진 김책이였기에 항일전의 피바다에서도 건국의 초행길과 전화의 불길속에서도 추호의 변색없이 수령님을 결사옹위하였으며 경제와 기술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였지만 수령님께서 산업을 맡아보라면 산업을 맡아보고 병기생산을 맡아보라면 병기생산을 맡아보았고 수령님께서 걱정하시는 문제에 대하여서는 무슨 일이나 맡아해내군 하였다.
하기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기쁠 때도 슬플 때도 어려울 때에도 항상 김책을 생각하시고 그에 대하여 회고하시였으며 새 조국건설시기에 그와 함께 찍으신 사진을 자신의 몸가까이 두고 사용하시는 금고에 넣고 거의 반세기동안이나 소중히 보관하여오신것이였다.
이에 대하여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2001년 1월에도 일군들에게 원래 금고에는 돈이나 귀중품 같은것을 넣어두지만 수령님께서는 그런것이 아니라 혁명동지와 함께 찍은 사진을 넣어두시였다고, 수령님께 충신이 많았지만 그들가운데서 첫째가는 충신은 김책동지였다고 하시면서 일군들에게 당의 사상과 령도에 끝없이 충실한 김책형의 일군이 될데 대하여 간곡히 당부하시였었다.
이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을 둘러보시면서 혁명은 동지를 얻는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진리는 내가 대를 이어 물려받은 고귀한 유산이라고, 나는 이 유산을 귀중히 여기고 혁명동지들을 제일 사랑하며 나자신처럼 믿는다고 하시면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동지들이 있기에 김정일이도 있고 동지들이 없으면 김정일이도 없다는것이 나의 사상적신조이며 나는 곧 그대이고 그대는 곧 나라는 동지에 대한 믿음, 이것이 나의 동지관입니다.》
일군들은 그이께서 지니신 동지관, 펼쳐가시는 동지애의 세계가 얼마나 열렬하고 심원하며 무한대한것인가를 가슴뿌듯이 절감하였다.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선군시대에 혁명적동지애의 미풍이 더욱 활짝 꽃펴나고있는데 대하여 긍지높이 총화하신 후 혁명적동지애에 기초한 온 사회의 일심단결을 더욱 강화하는데서 나서는 과업에 대하여 밝혀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백두에서 개척된 우리 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혁명의 길은 의연히 멀고 험난하다고 하시면서 우리가 간고한 혁명의 길을 승리적으로 걸어나가자면 동지애의 구호를 더욱 높이 들어야 한다는데 대하여 가르치시고나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오늘 우리앞에 나선 혁명임무와 나라에 조성된 정세는 그 어느때보다도 동지애의 구호를 높이 들것을 요구하고있습니다. … 미제국주의자들은 사회주의의 보루인 우리 공화국을 압살하려고 온갖 책동을 다하고있으며 우리 나라는 사회주의와 제국주의사이의 치렬한 대결장으로 되고있습니다. 생사운명을 같이할 혁명동지의 대부대가 없이는 〈최강〉을 자랑하는 대적과 싸워이길수 없으며 오늘의 엄혹한 난국을 뚫고 사회주의강성대국을 건설할수 없습니다. 우리는 혁명적동지애의 구호를 높이 들고 사회의 모든 성원들을 신념의 동지, 선군혁명동지로 키우며 온 사회를 동지의 세계로 만들어야 합니다.》
사회의 모든 성원들을 선군혁명동지로, 온 사회를 동지의 세계로!
여기에는 지난 세기에 동지애의 구호를 높이 들고 인민대중의 자주위업을 승리적으로 개척하고 전진시켜오신것처럼 21세기에도 혁명적동지애의 구호를 변함없이 높이 추켜들고 나아가시려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확고한 결심이 깃들어있었다.
이날 그이께서는 온 사회를 동지의 세계로 만드는데서 중요한것은 수령과 전사들사이에 맺어지는 사랑이라는데 대하여, 우리 사회에서는 누구나 다 동지적의리를 지켜 서로 믿고 사랑하며 동지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고 동지를 위하여 헌신하여야 한다는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동지애로 개척된 주체혁명을 동지애로 끝까지 완성하시려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높으신 뜻이 담긴 이날의 담화는 혁명적동지애에 대한 력사적교본으로, 21세기에 온 사회를 선군혁명동지의 세계로 만드는데서 틀어쥐고나가야 할 강령적지침으로 되였다.
혁명적동지애에 기초한 당과 군대와 인민의 일심단결의 위력으로 조국과 인민을 수호하시고 사회주의강성국가를 일떠세우시려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위대한 사랑에 의하여 혁명동지의 대부대가 자라고 혁명적동지애에 기초한 혁명대오의 일심단결은 더욱 반석같이 다져졌다.
항일의 전구에 새기신 발자욱
일심단결의 위력, 온 사회의 정치사상적위력을 높이자면 사람들속에서 사회주의교양, 혁명교양을 더욱 강화하여야 한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주체혁명위업수행의 전초선에는 시련을 겪어보지 못한 혁명의 3세, 4세들이 서게 되였다.
혁명의 대가 바뀌여질수록 제국주의반동들은 새 세대들의 혁명의식, 계급의식을 마비시키고 사회주의를 내부로부터 와해시키려고 자본주의사상문화적침투와 심리모략책동을 더욱 악랄하게 감행해왔다.
한때 미국무장관이였던 덜레스는 이전 쏘련을 비롯한 공산국가들을 1세, 2세들의 대에는 허물기 곤난하지만 3세, 4세들의 대에는 얼마든지 허물수 있다고 뇌까린바 있다.
세계 도처에서 사회주의붉은기가 펄펄 나붓기던 당시에는 한갖 망상으로 간주되였던 덜레스의 역설은 오늘날 사람들에게 심각한 교훈을 안겨주는 가슴아픈 현실로 되였다.
미제의 수십년간에 걸치는 이른바 평화적이행전략에 녹아나 이전 쏘련의 크레믈리에서 붉은기가 내리워졌으며 동유럽의 사회주의나라들이 붕괴되였다.
기고만장한 미제는 사회주의의 보루로 서있는 조선에서도 붉은기를 내리워보려고 갖은 발악을 다하고있었다.
사회주의는 사상의 위력에 의하여 존재하며 전진하는 인민대중의 자주위업이다. 사회주의사상이 인민대중의 심장속에 신념으로 깊이 뿌리내릴 때 사회주의는 무엇으로써도 허물지 못한다.
우리의 사회주의사상, 여기에서 혁명전통은 그 초석이며 근간을 이룬다. 혁명전통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따라 사람들이 사회주의를 신념으로 간직하는가 아니면 버리는가가 판가름되며 나아가 사회주의의 운명이 좌우되게 된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장구한 혁명투쟁의 길에서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새 세대들이 혁명의 기본력량으로 등장하는 현실적조건과 주체의 사회주의를 굳건히 지켜나가야 할 시대적요구에 맞게 새 세기에 들어와서도 인민들속에서 혁명전통교양을 강화하는데 커다란 심혈을 기울이시였다.
주체91(2002)년 10월 어느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항일혁명의 발원지인 백두산지구를 혁명전통교양의 전당으로 꾸리는 사업을 현지에서 지도하시기 위하여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혁명사적지건설장을 찾으시였다.
새롭게 시작된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혁명사적지건설은 백두산지구를 혁명전통교양의 중심거점으로 더 잘 꾸리시려는 장군님의 웅대한 구상에 따라 2000년부터 진행되는 사업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삼지연을 찾으신 날에 이곳에는 첫눈이 내리였다.
행운을 예고한다는 첫눈이 내린 바로 그날에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혁명사적지건설자들은 꿈결에도 그리던 경애하는 장군님을 현지에서 만나뵙는 무한한 행복과 기쁨을 받아안았다.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변모된 삼지연읍거리를 부감하시고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혁명사적지들에 대한 종합안내관인 백두관을 돌아보시였다.
백두관은 장군님께서 2년전 3월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들에 대한 현지지도의 나날에 앞으로 백두산지구를 꾸리는 사업도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새롭게 하고 교양사업도 여러가지 형식과 방법으로 참신하게 할데 대하여 주신 말씀을 높이 받들고 새로 건설한 종합안내봉사기지였다.
넓은 홀의 정면에 펼쳐져있는 대형반경화에는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혁명사적지들은 물론 새로 건설한 삼지연지구의 살림집들과 공공건물, 백두산지구의 도로들까지 빠짐없이 반영되여있었으며 반경화밑에 설치된 대형TV화면에서는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혁명사적지에 대한 종합안내》라는 편집물이 방영되고있었다.
반경화와 소개되는 편집물을 깊은 관심속에 지켜보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넓은 홀이 드르릉 울리게 말씀하시였다.
《좋아, 잘했소! 훌륭해! 훌륭해!》
그러시고는 그전에 어느 한 나라의 도시에 가보니 거기서는 도시전경을 사판으로 형상하였는데 여기에서는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혁명사적지를 대형반경화로 형상하였다고, 생각을 아주 잘하였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백두관을 백두산지구의 혁명전적지와 혁명사적지답사자들을 위한 종합안내봉사기지로 새롭게 꾸린것은 잘하였습니다. 삼지연지구에 그런 종합안내봉사기지가 있어야 합니다.》
백두관에 꾸려진 안내실들을 돌아보시며 만족한 미소를 지으시는 장군님을 우러르는 일군들의 마음은 그이께 다소나마 기쁨과 만족을 드린것으로 하여 몹시 흥분되였다.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백두관이 혁명전통교양의 안내봉사기지로서의 사명을 다할수 있도록 부족점들도 바로잡아주시고 답사자들에 대한 교양사업을 목적지향성있게 하기 위한 방향과 방도도 환히 밝혀주시였다.
이윽하여 밖으로 나오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마당에 서시여 백두관의 전경을 오래도록 보고 또 보시다가 흐뭇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백두관이 아주 멋있습니다. 백두관건물형태를 장군봉과 향도봉, 해발봉, 천지의 모양을 따서 해놓으니 마치 삼지연읍에 백두산을 옮겨온것
같습니다. 착상을 엉뚱하게 잘하였습니다. 설계도 잘하였고 건설도 짧은 기간에 잘하였습니다.》
만면에 미소를 가득 담으신 장군님의 모습을 우러르는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혁명사적지건설자들의 눈굽에는 뜨거운것이 고여올랐다.
장군님의 말씀은 치하이기 전에 믿음이고 기대와 고무격려였다. 그리고 뜨거운 사랑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백두산지구를 새롭게 꾸리도록 이끌어주셨기에 백두관은 혁명전통교양의 요구에 맞게 자기의 체모를 훌륭히 갖출수 있게 된것이다.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항일혈전사가 깃든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혁명사적지를 꾸리는 목적이 혁명전통교양장소로서의 사명을 다하도록 하자는데 있음을 일군들의 가슴에 새겨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혁명사적지뿐아니라 여러곳에 있는 혁명전적지와 혁명사적지들도 더 잘 꾸리고 그를 통한 혁명전통교양을 강화하도록 하는 사업에도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91(2002)년 6월 함경남도를 현지지도하시면서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녀사의 혁명활동사적이 깃들어있는 함경남도 북청군 송전혁명전적지를 찾으시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국내정치공작임무를 받으시고 1937년 7월과 9월 두차례 여기에 나오시여 국내혁명가들과 혁명조직들의 활동을 지도해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사적건물과 구호나무에 대한 보존관리를 잘하고 송전혁명전적지를 통한 교양사업도 잘할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또한 그해 10월에는 평안북도 창성군에 있는 창골혁명사적지를 찾으시여 사적지를 공원화하지 말데 대한 문제, 사적지를 철저히 원상대로 꾸리고 보존할데 대한 문제 등 사적지를 꾸리고 그를 통한 교양사업을 강화하는데서 나서는 귀중한 지침을 주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온 나라 방방곡곡에 꾸려진 혁명전적지, 혁명사적지들을 찾으시여 혁명전통교양에서 나서는 방향과 방도들을 환히 밝혀주시는 나날에 혁명전통을 고수하고 빛내여나가는 길에 몸과 마음을 다 바치고있는 강사들의 소행도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주체92(2003)년 7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자강도안의 혁명사적지의 하나인 강계객주집을 찾아주시였을 때 있은 일이다.
강계객주집은 어버이수령님께서 1919년 초가을 부모님과 함께 만경대에서 중강으로 가실 때와 1923년 3월 조선을 배우기 위하여 팔도구에서 만경대로 나오시며 배움의 천리길을 걸으실 때 그리고 1925년 만경대에서부터 광복의 천리길을 걸으실 때 들려가신 사연깊은 집이였다.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으시며 활달하신 걸음으로 객주집에 들어서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 연풍혁명사적관 녀성관장이 인사를 올리자 그이께서는 이 동무 어디서 본 동무라고 하시며 그를 정겹게 바라보시였다.
동행하였던 일군으로부터 1999년 9월 연풍혁명사적관을 돌아보실 때 만나주셨던 사적관 관장이라는 보고를 받으신 장군님께서는 맞다고 하시면서 환하게 웃으시였다.
선군혁명령도의 나날에 만나주신 각계각층의 수천수만의 사람들속에서 잠간 만나주신 자기를 대번에 알아보시는 장군님의 비상한 기억력에 관장은 놀라움과 함께 기쁨을 금치 못해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 관장이 이곳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5차례나 다녀가신 집이라고 해설해드리자 그이께서는 감회깊이 말씀하시였다.
《강계객주집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처럼 못 잊어하시던 사적입니다. 강계객주집에 대한 이야기는 수령님으로부터 많이 들었지만 오늘 이곳에 처음 와봅니다.》
그러시고나서 안방에 모셔져있는 위대한 수령님의 사진들과 사적물들을 바라보시면서 수령님께서 강계객주집에 주체63(1974)년과 주체80(1991)년에 오시여 두번이나 독사진을 찍으시였다는데 사진을 보니 감회가 더욱 깊다고 절절하게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계속하여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우리 수령님은 어리신 나이에 혁명의 길에 나서시여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으시면서 오로지 조국의 광복과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위하여 한평생을 바치신 절세의 애국자, 위인중의 위인이시였습니다. 우리 수령님처럼 한생을 혁명에 바친 위대한 혁명가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수령님께서 계시였기에 오늘의 사회주의조선이 있고 우리 인민들의 행복이 있는것입니다. 조국과 혁명앞에 쌓아올리신 수령님의 혁명업적은 영원불멸할것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이날 객주집의 내외부를 세심히 보아주시고 관장과 강사의 해설을 하나하나 주의깊게 다 들어주시였다.
너무나도 소탈하고 인자하신 장군님의 모습에 감동되여 관장은 어려움도 잊고 그이께 말씀올렸다.
《경애하는 장군님, 우리 수령님께서 남기신 독사진을 우러러볼 때마다 장군님의 영상을 함께 모시고 후대들에게 교양하고싶은것이 우리들의 간절한 소원입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관장의 무랍없는 청을 탓하지 않으시고 수령님의 불멸의 자욱이 어려있는 객주집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자고 하시면서 수령님의 사진을 배경으로 기념독사진을 찍으시였다.
나라의 방방곡곡을 끊임없이 현지지도하시는 나날 인민군군인들을 비롯한 인민들과 함께 영광의 기념사진들을 찍어주시면서도 굳이 자신의 독사진만은 남기지 않으시던 장군님이시였다.
기념독사진을 찍으신 장군님께서는 다같이 사진을 찍자고 관장과 강사를 불러주시고 영광의 기념사진을 찍어주시였다.
잠시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객주집을 다시한번 둘러보시면서 《오늘 강계객주집에 와보니 인상에 남습니다.》라고 하시면서 깊은 감동을 표시하시였다.
장군님을 우러르며 관장은 장군님께서 무리하지 마시고 여기 물맑고 공기좋은 자강땅에서 쌓이신 피로를 풀어달라고 간절히 말씀올리면서 자기가 시를 읊겠다고 청을 드리였다.
시는 길지 않고 현란한 구절도 없었지만 글줄마다에는 이 세상에서 오직 장군님 한분만을 믿고 따르려는 인민들의 한마음이 흐르고있었다.
관장이 읊는 시를 끝까지 들어주신 장군님께서는 오늘 관장동무가 자신의 건강을 바라는 시를 읊었는데 고맙다고 말씀하시고 혁명사적지관리를 잘하기 위하여 나서는 강령적과업을 밝혀주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떠나시기에 앞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연풍혁명사적관 관장동무와 강사동무가 강계객주집에 대한 해설을 잘하였습니다. 앞으로 일을 더 잘하여야 하겠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떨어지기 아쉬워하는 관장과 강사들을 정겹게 바라보시며 그럼 가겠다고, 잘 있으라고 거듭 인사를 보내주시며 강계객주집의 대문을 나서시였다.
이렇듯 주체혁명의 만년재보인 혁명전적지와 혁명사적지들을 끊임없이 찾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위대한 헌신의 자욱이 있어 항일혁명사적지들은 인민들에 대한 혁명전통교양에 더욱더 훌륭히 복무하게 되였다.
해마다 수많은 답사자들이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와 혁명사적지에 대한 답사를 하며 백두의 혁명정신을 가슴속깊이 새기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헤쳐가신 백두의 행군길을 따라 끊임없이 답사길을 이어가는 답사자들의 모습은 그대로 백두의 혁명전통을 견결히 옹위하고 계승해나가며 우리의 사회주의사상을 튼튼히 지켜가는 믿음직한 선군혁명대오의 모습이였다.
몸소 초대하신 광부들의 표창관람
주체91(2002)년 6월초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함경남도의 여러 부문에 대한 현지지도의 길에 오르시였다.
함경남도는 조국의 부강발전과 인민생활향상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공장, 기업소들이 많이 집중되여있기때문에 장군님께서 언제나 깊은 관심을 돌리시는 도들중의 하나이다. 때문에 일군들은 그이께서 함경남도의 경제사업때문에 현지지도길에 오르시는것으로 생각하였었다.
하지만 현지지도에 앞서 일군들에게 하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말씀은 뜻밖이였다.
《이번에 검덕광산과 룡양광산, 대흥청년광산에 가서 그곳 광부들을 만나보려고 합니다.》
나라일이 그처럼 바쁘신 가운데서도 평범한 광부들을 만나시려고 일부러 머나먼 현지지도의 길에 오르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이시였다. 그이를 제일먼저 모시는 영광은 검덕의 광부들에게 차례졌다.
검덕땅을 처음 찾으신 27년전 그때로부터 그곳 광부들을 늘 마음속에 묻어두고계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검덕광산을 찾으시였을 때는 동터오는 이른새벽녘이였다.
지난밤에도 당과 군대, 국가사업에서 제기되는 크고작은 일들을 처리하시느라 렬차에서 꼬박 지새우신 장군님이시였건만 그이께서는 자신의 피로는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그길로 광산의 여러곳을 돌아보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 광산의 한 일군이 삼가 말씀드렸다.
《장군님, 우리 영웅광부들이 장군님을 뵙고저 기다리고있습니다.》
그이께서는 반가와하시며 금골분광산 4. 5갱 채광3소대원들이 대기하고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시였다.
자나깨나 그리웁던 경애하는 장군님을 자기들의 일터에서 만나뵙게 될줄을 생각지 못했던 4. 5갱 채광3소대원들은 끓어오르는 환희와 격정을 안고 그이께 정중히 인사를 올리였다.
이들소대(작업반)는 어버이수령님께서 주체50(1961)년 4월 5일 검덕광산을 찾으신 해에 태여난 새 세대들로 1980년 7월에 조직된 단위였다. 수령님의 령도업적을 옹호고수하고 길이 빛내이려는 일념으로 조직된 소대는 지난 20여년간 해마다 맡겨진 광물생산계획을 넘쳐 수행하여 장군님의 감사를 여러차례 받는 영광을 지녔으며 높은 급의 국가수훈자들을 수많이 배출하였다.
미더운 눈길로 그들을 둘러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4. 5갱 채광3소대원들이 일을 잘한다고 치하하시였다.
《4. 5갱 채광3소대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검덕광산을 현지지도하신 해인 주체50(1961)년에 태여난 사람들로 조직되였는데 그들가운데서 많은 동무들이 영웅이 되고 소대는 영웅소대로 되였습니다. 부모들의 뒤를 이어 혁명초소를 굳건히 지키고있는 채광3소대원들의 소행이 기특합니다.》
장군님께서는 소대장에게 나이는 몇살이며 자식들은 몇명이나 되는가 등을 알아보시였다.
그때 4. 5갱 채광3소대 영웅광부들의 자식들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은정으로 만경대혁명학원과 강반석혁명학원에서 부럼없이 배우며 생활하고있었다.
만경대혁명학원과 강반석혁명학원은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한없이 숭고한 동지애와 의리의 손길아래 혁명렬사들과 애국렬사들의 유자녀들을 혁명의 대를 잇고 조국의 앞날을 떠메고나갈 핵심골간으로 키워내는 기지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러한 영광스러운 혁명학원의 교정에 이름없는 광부의 자식들을 불러주시였던것이다.
평범한 광산로동자들을 나라의 영웅으로 키워주신것만도 분에 넘치게 고마운데 자식들을 주체의 혈통을 이어나갈 계승자들의 전위대오에 세워주신 장군님의 그 믿음과 사랑에 눈물의 바다를 펼치였던 그날이 엊그제의 일같이 뇌리에 생생하게 떠올라 다시 눈시울을 적시는 영웅광부들이였다.
혁명학원제복을 입은 광부자녀들의 름름한 모습을 눈앞에 그려보시는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만족하신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4. 5갱 채광3소대 영웅광부들의 아들딸들이 만경대혁명학원과 강반석혁명학원에 가서 공부하고있으면 좋습니다.》
이어 이 소대에서 지난 5월 23일까지 년간광물생산계획을 넘쳐 수행하였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기뻐하시던 그이께서는 문득 그들이 올해계획을 앞당겨 수행하느라고 너무 무리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걱정하시였다.
한 일군이 이 동무들이 막장에서 나오지 않고 침식을 하면서 일하기때문에 애를 먹고있다고 말씀드리였다.
그이께서는 조용한 어조로 이전에도 말했지만 로동자들이 갱에서 침식을 하면 안된다고, 일을 끝내고는 갱밖에 나와서 가족들과 함께 문화생활을 하게 해야 한다고 뜨겁고도 엄하게 이르시였다.
천만금보다 자기들의 건강을 더 귀중히 여겨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말씀에 감격의 눈물을 머금는 광부들의 심중에는 장군님께서 검덕땅에 사랑의 첫 자욱을 새기신 27년전인 1975년 7월의 잊을수 없는 그날이 되새겨졌다.
그때 지하막장에만은 들어가실수 없다고 앞을 막아서는 일군들에게 여기까지 왔다가 착암기를 돌리는 광부들을 보고 가야지 갱안에 들어가지 않을바에야 우리가 무엇때문에 왔겠는가, 우리의 귀중한 로동자들이 일하는 곳이라면 아무리 멀고 험한 곳이라도 들어가보아야 한다고 하시며 광부들이 리용하는 수수한 싸리안전모를 쓰시고 수천척 지하의 막장을 찾으신 장군님이시였다.
그날 장군님께서는 광부들이 오래동안 막장에서 침식을 하면 안된다고, 우리가 막장에서 전투를 벌리는것도 바로 로동계급을 위해서이라고 하시며 로동자들을 공기가 나쁜 막장에서 재우지 말고 꼭 밖에 내보내여 자기 집에서 자도록 하게 하라고 간곡히 이르시였다.
수십년전의 그 사랑은 년대와 년대를 넘고 세기와 세기를 넘으며 변함없이 이어지고있는것이다.
친부모의 심정으로 광부들을 보살펴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에 고무된 영웅소대장의 격동적인 결의를 들으신 장군님께서는 《채광3소대장동무가 더 많은 유색금속광물을 생산하여 인민생활향상에 이바지하겠다고 하는데 결의가 좋습니다. 그 결의가 실현되기를 바랍니다.》라고 고무해주시였다.
검덕의 광부들에게 안겨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이날 영웅광부들과 함께 광산기동예술선동대공연을 보아주시고 밖으로 나오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문득 걸음을 멈추시였다.
잠시 생각에 잠기시였던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4. 5갱 채광3소대원들을 나의 초대로 평양에서 진행하는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을 보여주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은 표창관람입니다.》
자신께서는 사나운 눈보라와 찌물쿠는 무더위를 무릅쓰고 온 한해동안 현지지도의 길을 한순간의 쉼도 없이 초강도로 이어가시면서도 이름없는 광부들의 휴식을 위해 몸소 자신의 명의로 표창관람에 초대하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에 검덕의 로동계급은 샘처럼 솟구치는 눈물을 훔치고 또 훔치였다.
장군님께서는 그들이 평양에 올라오면 청류관에서 연회도 차려주고 시안의 중요참관대상들과 그밖의 필요한 곳들도 참관시키는것이 좋겠다고, 4. 5갱 채광3소대원들을 위한 연회에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군이 참가하여 그들을 고무해주도록 하여야 하겠다고 자세히 이르시였다.
그로부터 며칠후 평양에 올라온 검덕광산 4. 5갱 채광3소대원들과 가족들은 즐거운 휴식의 한때를 보내게 되였다.
대동강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경치좋은 호텔의 고급호실들과 현대적인 편의봉사기지인 창광원의 목욕탕과 미용실, 옥류관과 청류관의 푸짐한 진수성찬이 그들을 위해 특별히 준비되여있었다.
또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이 진행되는 5월1일경기장에 가면 특별초대석에 안내되였고 국제친선전람관과 룡문대굴, 평양시내의 참관지들에 가면 수많은 사람들이 떨쳐나 광부들을 귀빈으로 환대해주었다.
검덕의 광부들은 한가슴에 받아안기에는 너무도 벅찬 사랑과 배려에 담겨져있는 장군님의 뜻, 인민의 요구를 새기고 또 새기였다. 그것은 지하막장의 광석을 더 많이 이 땅우에 쌓아올릴 신념과 의지였다.
주체91(2002)년 6월초 함경남도의 여러 부문에 대한 현지지도의 길에 새겨진 검덕광부들에 대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은 대흥청년광산(당시)과 룡양광산의 광부들에게도 봄빛처럼 따사로이 흘러들었다.
고산지대에 자리잡고있는 대흥청년광산을 찾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곳 광부들은 오직 나라의 부강발전을 위하여 높은 산정에서 엄혹한 자연의 횡포를 꿋꿋이 이겨가며 간고한 투쟁을 벌리고있다고 그들의 수고를 치하하시면서 그들에게 앞으로 광산개발을 적극 다그치고 광물생산을 끊임없이 늘여나가도록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시였다.
그리고 룡양광산에 가시여서는 이곳 광산에서 광물생산을 획기적으로 늘일수 있는 튼튼한 토대를 닦아놓은데 대하여 높이 평가하시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교시하신바와 같이 이곳 돌산은 금산이며 돈산이라고, 룡양광산에서는 광산을 잘 운영하여 백금산이라고 하신 수령님의 교시를 빛내여나가야 한다고 룡양의 광부들을 고무해주시였다.
이날 그이께서는 평양에서 자원진출한 룡양광산 금산갱7호굴착기 영웅소대의 녀성선동원도 만나주시고 그의 소행이 기특하다고 분에 넘치는 치하도 안겨주시였다.
북변의 평범한 광부들이 받아안은 이 은정은 인간사랑의 최고화신이신 경애하는 장군님을 높이 모신 조선의 로동계급만이 받아안을수 있는 하늘같은 믿음과 사랑이며 생명수였다. 마를줄 모르는 샘물처럼 흘러넘치는 그이의 사랑은 주체의 강성국가건설에서 세인을 놀래우는 기적과 혁신을 낳는 원천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과 믿음을 심장에 새겨안고 온 나라 로동계급은 일터마다에서 혁신의 불길을 세차게 지펴올렸다.
활활 타오르는 혁신과 기적의 그 불길은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선군혁명령도를 마치로 굳건히 받들어나가는 선군혁명동지들의 신념의 화답이였다.
지식인이기 전에 열렬한 애국자, 혁명가가 되여야 한다시며
21세기는 지식경제시대이다.
첨단과학기술이 한 나라와 민족의 흥망을 결정하는 시대가 도래하였다.
오늘날 사회발전과 인간생활에서 과학기술이 노는 역할은 날을 따라 증대되고 얼마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환상으로만 그려보던 꿈이 현실로 펼쳐지고있다.
나라의 과학기술발전의 성과여부는 그 직접적담당자들인 과학자, 기술자들이 어떠한 사상적각오를 가지고 능력을 발휘하는가에 따라 좌우된다.
이로부터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과학자, 기술자들을 조국과 인민, 강성국가건설을 위하여 과학을 연구하고 기술을 개발하는 참다운 선군혁명동지로 키우기 위해 언제나 마음을 써오시였다.
주체91(2002)년은 어버이수령님께서 과학원(당시)을 창립하신지 50돐이 되는 뜻깊은 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해 5월 과학원창립 50돐을 맞으며 과학기술발전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키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도 세워주시고 온 나라가 과학원사업을 적극 도와주도록 하는 조치도 취해주시였다.
여기에는 어버이수령님께서 주체과학발전에 쌓아올리신 불멸의 업적을 길이 빛내이며 사회주의강성대국건설을 다그쳐나가기 위한 투쟁에서 과학자, 기술자들이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도록 하게 하시려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숭고한 의도가 담겨져있었다.
선군령도의 길을 이어가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과학원 함흥분원을 찾으신것은 주체91(2002)년 6월 어느날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분원의 과학자들이 이룩한 과학연구성과들을 하나하나 보아주시고 좋은 일을 하였다고 높이 치하해주시였다.
《최근년간 함흥분원 과학자들은 당의 령도를 높이 받들고 고심어린 탐구와 피타는 노력으로 과학연구사업에서 많은 성과들을 이룩하였습니다. 이 귀중한 연구성과들은 나라의 과학기술발전과 부강조국건설에 크게 이바지하게 될것입니다.》
애국의 마음을 안고 과학연구사업을 진행하는 과학자, 기술자들을 굳게 믿으시는 장군님이시기에 과학원 함흥분원 과학자들이 이룩한 과학연구성과를
두고 그이께서는 그처럼 높이 평가해주시는것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계속하여 기대가 담긴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과학자들은 지식인이기 전에 열렬한 애국자, 혁명가가 되여야 합니다. 과학자들은 불타는 애국의 열정을 안고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헌신해야 하며
혁명적인 연구기풍을 세워 인민경제 여러 부문에서 제기되는 과학기술적문제들을 제때에 풀어야 합니다.》
과학자들은 지식인이기 전에 열렬한 애국자, 혁명가가 되여야 한다!
이 말씀은 과학자들의 인생길에 리정표를 세워주고 사업의 초석을 마련해주는 마음의 기둥이였다. 그것은 또한 과학자들이 강성국가건설에 참답게 이바지하는 영원한 선군혁명동지가 될것을 바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불변의 믿음이였다.
이렇듯 과학자들에게 자기의 사명과 현시대의 요구에 맞게 더욱 분발하도록 힘과 용기를 안겨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어느 한 방에 들어서시였을 때였다.
장군님께 분원의 한 일군이 이 동무들이 우리 분원에서 일하는 두쌍의 부부박사들이라고 소개해드렸다.
《부부박사동무들을 만나니 반갑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부부박사들이 올리는 인사를 반갑게 받으시고나서 그들에게 어느 대학을 나왔는가, 전공은 무엇인가 하나하나 물으시였다.
한 박사가 지난 기간 진행한 연구사업정형과 성과에 대하여 보고드렸다.
장군님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며 동행한 일군들에게 이것 보라고, 인재, 인재가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매우 만족해하시였다.
그러시고나서 일군들이 과학자들을 잘 돌봐주고 연구조건도 잘 보장해주어야 한다고 이르시였다.
이때 분원의 한 일군이 장군님께 한 박사부부를 가리키며 이 박사의 가정은 딸, 사위, 자식들 세명이나 학사인 과학자집안이라고 말씀올리였다.
그이께서는 부부가 박사일뿐아니라 딸과 사위, 자식들 셋이 다 학사라는데 대단하다고 하시였다.
이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동무들은 로동당시대의 박사로서, 당원으로서 일을 더 잘하여야 하며 과학자가정의 영예를 더욱 빛내여야 합니다. 자체의 실력을 끊임없이 높일뿐아니라 후비들도 많이 키워내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박사부부들은 장군님께 앞으로 후비육성사업을 잘하겠다고 자기들의 결의를 말씀올렸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들이 올리는 인사를 받으시고나서 다음로정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며 이곳 일군들에게 말씀하시였다.
《과학연구기관의 당, 행정일군들이 과학자들과의 사업을 잘하여야 합니다. 과학인재들은 나라의 재부이며 민족의 자랑입니다. 그들을 잘 발동하면 강성대국건설에서 큰 힘을 발휘할수 있습니다.》
마당에 나오시여 걸음을 멈추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변을 둘러보시며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과학연구사업에서도 사상이 기본이고 사상은 모든 문제해결의 열쇠입니다. 과학자들이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일하는가 하는데 따라 과학연구성과가 좌우됩니다. 아무리 좋은 과학연구설비를 가지고있다고 하여도 그것을 리용하는 사람들이 사상적으로 준비되지 못하면 은을 낼수 없습니다.》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는 심오한 철학에 기초하여 사상이 과학연구사업에서의 기본이고 성과의 열쇠라는것을 과학자들의 심장속에 새겨주는 귀중한 가르치심이였다.
그후 국가과학원 함흥분원의 과학자들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지말씀을 높이 받들고 이룩한 많은 과학연구성과들을 현실에 적극 도입하기 위한 사업 그리고 우리 식의 프로그람을 개발하고 새로 꾸려진 현대적인 새 재료개발기지가 하루빨리 은을 내게 하기 위한 사업을 힘있게 벌려나갔다.
함흥분원의 과학자들만이 아닌 온 나라 과학자, 기술자들모두가 자기들을 과학기술을 떠맡은 인재로, 나라의 재부로, 민족의 자랑으로 내세워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과 믿음에 보답할 일념을 안고 수많은 과학기술적문제들을 해결하여 강성국가건설에 이바지하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어디에 가시여도 과학기술발전문제를 헤아려보시며 우리의 과학자, 기술자들이 첨단을 돌파하고 세계를 향해 당당히 나가도록 고무해주시였다.
주체91(2002)년 7월 어느날이였다.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CNC기계를 들여놓은 어느 한 공장을 찾으시였다.
그이께 공장지배인이 CNC맛을 알게 된 기쁜 소감을 안고 새로 설치한 CNC기계에 대하여 설명해드리였다.
지배인의 설명을 들으신 장군님께서는 《이런 공장에 못해도 이런 설비 10대씩, 10대씩만 주면 될것 같은데…》라고 혼자말로 외우시였다.
《예, 10대만 있으면 소재를 투입하자마자 생산물이 쭉쭉 나올것 같습니다.》
CNC기계가 더 있었으면 하는 소망을 담아 올리는 지배인의 이야기를 들으신 장군님께서는 다시 뇌이시였다.
《한 공장에 10대씩은 채워주어야 해.》
이어 지배인은 다른 기계에 대하여 설명해드리였다.
《이 기계는 <련하기계>동무들이 만든것입니다.》
장군님의 안광이 번쩍 빛났다.
《〈련하〉? 이것이 〈련하〉것이요?》
이렇게 물으신 그이께서는 흥미를 가지고 구체적으로 물어보시였다.
《잘되오?》
장군님의 물으심에 지배인은 좋다고, 아예 그저그만이라고 대답올렸다.
그이께서는 세계적으로 앞선 다른 나라의 CNC기계들과 우리의 《련하기계》를 대비적으로 고찰해보시면서 우리것이 빠진데 없이 훌륭하다는것을 느끼시였다.
지배인의 설명을 주의깊게 듣고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보시오. CNC기계도입이 현장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 우리는 결정적으로 CNC화를 해야 하오.
이것은 우리의 자립적민족경제를 새시대의 지향에 맞게 발전시킬수 있는 전략적방도요.
물론 아직까지는 CNC화의 초기단계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온 나라의 CNC화를 여러 단계에 걸쳐 발전시킴으로써 기계공업전반을 현대적으로 개조해나가야 합니다. 그것도 우리 나라에서 개발하고 생산하는 우리의 CNC기계로 말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개발하고 생산하는 우리의 CNC기계, 이것은 과학자, 기술자들의 높은 창조적능력을 떠나 생각할수 없다.
하지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믿으신것은 나라의 자립적민족경제발전을 과학과 기술로써 받들어나가는 과학자, 기술자들의 불타는 애국심이였다.
자신과 뜻과 정을 나누는 혁명동지로, 애국자로 믿고 내세워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믿음에 고무된 과학자, 기술자들은 장군님의 강성대국건설구상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 한사람같이 일떠섰다.
21세기에 들어와 10년동안에만도 우리 조국은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련합세력의 악랄한 경제봉쇄속에서도 자체의 힘, 자체의 기술로 인공지구위성을 우주에 쏴올리고 CNC열풍으로 과학기술의 최첨단을 돌파해나갔으며 주체철과 주체섬유, 주체비료가 폭포처럼 쏟아지는 자랑찬 모습을 세계앞에 보여주었다.
이것은 과학자, 기술자들을 주체의 피, 애국의 열로 불태우는 선군혁명동지로 내세워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위대한 동지애의 세계가 안아온
빛나는 결실이였다.
영웅소개판앞에서
사회주의강성국가건설이 전면에 나서고있는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일심단결의 대, 선군혁명의 대를 굳건히 잇는 문제는 혁명의 운명, 민족의 장래와 직결되는 중대한 일이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자라나는 새 세대들이 선행세대들이 창조하고 고수해온 혁명의 정신적유산을 옳바로 이어나가도록 하는데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주체92(2003)년 7월 어느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영웅강계장자산제1중학교를 찾아주시였다.
장자강기슭에 자리잡은 이 학교에는 어버이수령님께서 전후의 어려운 시기에 몸소 터전을 잡아주시고 건설이 다 끝났을 때에는 친히 이곳에 나오시여 학교교육사업을 강화하기 위한 과업을 밝혀주신 뜻깊은 사적이 깃들어있다.
지난 기간 이 학교는 학생들에 대한 교수교양사업을 실속있게 하여 무려 19명의 공화국영웅들과 로력영웅들을 배출하고 2중영예의 붉은기를 쟁취한 영웅중학교라는 남다른 자랑을 안고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먼저 《학교연혁소개자료실》에 들리시여 근 50년간 학교가 걸어온 자랑찬 로정을 료해하시고 그동안 일을 많이 했다고 교직원들을 높이 치하해주시고나서 복도에 게시된 《우리 학교에서 배출된 영웅들》이라는 글이 씌여진 영웅소개판을 보시였다.
영웅소개판에는 조국보위초소에서 공을 세운 군인도 있고 로력혁신자도 있었으며 과학자영웅, 공화국2중영웅도 있었다. 그리고 영웅소개판의 19번째 영웅사진옆에는 《20번째 영웅은?》이라는 의미있는 직관판도 있었다.
학교일군들은 장군님께 지난 기간 학교에서 공화국영웅이 10명, 로력영웅이 9명 배출되였는데 저저마다 20번째 영웅은 자기가 되겠다고 하면서 모든 학생들이 영웅들의 모습에 자기를 비추어보며 학습과 생활을 잘하고있다고 말씀드렸다.
이 하나의 직관판을 통해서도 학생들에게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을 위한 숭고한 영웅심을 키워주기 위해 그들의 나이와 심리적특성에 맞게 교양사업을 잘해나가고있는 학교교직원들의 수고를 헤아려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못내 기뻐하시였다.
《학교에서 영웅소개판을 만들어놓고 그것을 통하여 학생들을 교양하고있는것은 좋은 일입니다. 이 학교에서 공부한 사람들가운데서 공화국2중영웅 1명과 공화국영웅 9명, 로력영웅 9명 하여 영웅이 모두 19명 나왔고 지금 학생들이 저마다 20번째 영웅이 되겠다고 한다니 얼마나 좋습니까. 학생들에게 영웅심을 키워주고있는것은 아주 좋은 일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누구나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일을 특출하게 잘하고 위훈을 세우면 영웅이 될수 있습니다.》
이렇게 학교교직원들이 새 세대들을 선군시대의 영웅들로 키우기 위한 사업을 더 잘해나가도록 그들을 따뜻이 고무해주신 장군님께서는 이어 소년단실에 들리시여 지난 기간 학교에서 배출한 7. 15최우등상수상자들과 최우등생들을 소개한 직관판도 보아주시였다.
이어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학생들이 공부하고있는 어느 한 교실로 향하실 때였다.
학교교장은 경애하는 장군님께 그 교실이 어버이수령님께서 48년전 몸소 들리시였던 교실이라는것을 말씀드리면서 학교에서는 학과학습에서 1등을 한 학급만 여기에서 공부하는 영예를 지니도록 규정해놓고 그것을 전통화하고있는데 대해 설명해드렸다.
장군님께서는 《수령님께서 다녀가신 교실에서는 학교적으로 학과학습에서 1등을 한 학급이 공부하게 되여있으면 학생들이 그 교실에서 공부해보기 위하여 애써 노력할것입니다.》라고 하시면서 교실에서 학생들이 수업을 받고있으면 들어가 참관해보자고 하시였다.
그이께서 교실에 들어서시자 물리수업을 하고있던 학생들은 일제히 일어나 씩씩하게 큰소리로 인사를 드렸다.
어버이수령님을 모시였던 교실에 또다시 경애하는 장군님을 모시게 된 학생들과 교원들의 기쁨은 이를데 없었다.
장군님께서는 고맙다고, 앉아서 어서 공부를 하라고 이르시고는 학생들의 수업에 지장이 될세라 아무 말씀도 없이 교원의 물리교수안을 한장한장 번져보기도 하시고 칠판에 써놓은 글도 눈여겨보시며 교수실태를 료해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날 학교에서 학생들을 선군시대의 요구에 맞게 조국보위정신으로 튼튼히 무장시키기 위한 사업을 잘해나갈데 대하여서도 간곡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당시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조국보위정신을 키워주기 위해 《초소에서 보내온 소식》이라는 직관판을 만들어놓고 초소에 선 제자들의 영예사진과 평가내용, 부대에서 받은 표창장, 초소에서 보내온 졸업생들의 소식을 받아본 학생들의 느낌과 결의를 써붙여놓고있었다.
장군님께서 인민군부대들을 시찰하실 때 조국보위초소에 선 인민군군인들과 함께 사진을 찍어주시며 그들의 모습을 찍은 사진을 모교에도 보내주도록 하신 말씀을 받들고 이곳 학교일군들이 직관판을 통한 교양을 진행해왔던것이다.
이것은 조국보위초소에서 보내오는 졸업생들의 실감있는 자료를 가지고 학생들의 수준과 준비정도에 맞게 조국보위사상과 혁명적군인정신을 깊이 심어주는데서 실효가 큰 좋은 교양방법이였다.
이것을 료해하신 장군님께서는 못내 만족해하시며 말씀하시였다.
《이 학교에서 〈초소에서 보내온 소식〉이라는 직관판을 만들어놓고 군사복무를 잘하는 졸업생들을 사진과 함께 소개하는 방법으로 학생들에게 조국보위정신을 키워주고있는것은 좋은 일입니다. 학생들에 대한 교양은 이렇게 하여야 합니다.》
학교의 여러곳을 돌아보시며 선군시대의 요구에 맞게 학교교육이 나아갈 방향과 방도를 밝혀주신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영웅강계장자산제1중학교는 학생들을 지덕체를 갖춘 나라의 역군으로 키워 영웅을 많이 배출한 모범적인 학교이므로 전국의 모든 학교들에서 이 학교를 따라배우도록 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학교를 떠나시기에 앞서 교장, 부교장을 몸가까이 부르시여 사랑의 기념사진까지 찍어주시고 차에 오르시여서도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기시였다.
《이 학교에서 지난 기간 영웅들을 많이 키워냈는데 앞으로도 영웅들을 많이 키워내야 합니다. 이 학교에서 영웅이 얼마나 더 나오는가를 두고보려고 합니다.》
영웅강계장자산제1중학교에 대한 장군님의 관심과 사랑은 이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날 저녁 학교교장을 또다시 만나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자신께서 학교에 콤퓨터와 피아노를 보내주겠다고, 그 콤퓨터와 피아노들이 평양을 출발했으니 이제 도착할것이라고 하시며 거듭되는 은정을 돌려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영웅강계장자산제1중학교를 돌아보시면서 하신 말씀은 선군시대의 요구에 맞게 학교교육사업을 끊임없이 개선강화하여 학생청소년들을 선군시대의 영웅으로 키워나갈 방도를 환히 밝혀준 강령적지침이였다.
이 학교의 전체 교직원들뿐아니라 온 나라의 교육부문 일군들과 교직원들은 먼 북변의 중학교에까지 몸소 찾아오시여 학교교육이 나아갈 앞길을 환히 밝혀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높은 뜻을 받들어 청소년학생들에 대한 교육교양사업을 더 잘해나감으로써 그들을 선군시대 영웅으로 튼튼히 준비시켜나갈 맹세를 굳게 다지였다.
이렇게 경애하는 장군님의 따사로운 사랑과 현명한 가르치심속에서 선군시대 청년전위로, 장군님의 선군혁명동지로 억세게 준비된 우리 청년들이
있기에 선군조선의 앞길에는 희망차고 창창한 미래가 열려져있다.
영예군인동무들이 보고싶어 찾아왔다고 하시며
혁명의 꽃을 계속 피워나가야 한다, 이것은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조국수호의 제일선에 서있다가 부상을 입고 제대된 영예군인들이 의기를 잃지 말고 사회주의건설에서나 생활에서나 혁명가로서의 본분을 지켜나가도록 그들의 심장속깊이에 새겨주신 좌우명이다.
어버이수령님의 애틋한 정과 마를줄 모르는 배려가 깃들어있는 이 사랑의 좌우명을 가슴에 안고 사는 온 나라의 영예군인들은 손에서 일을 놓지 않고 《영예군인》이라는 높은 칭호를 안고 힘차게, 락관적으로, 아름답게 살며 일해왔다.
그들은 남조선과 자본주의나라들의 거리에서 생의 의욕을 잃고 불행에 떨며 방황하는 《상이군인》과는 본질적으로 다르게 비록 군복은 벗었지만 한생 군인이라는 혁명가의 영예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라는것을 실천으로 증명해왔다.
영예군인들이 혁명의 꽃을 계속 피워나가도록 보살펴주신 어버이수령님의 사랑은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에 의하여 그대로 이어졌다.
주체92(2003)년 4월 15일, 뜻깊은 태양절에 함흥영예군인수지일용품공장에서는 경사가 났다.
어버이수령님의 모습그대로 해빛같은 환한 웃음을 지으시며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이곳 영예군인들을 찾아오시였던것이다.
영예군인들은 끝없는 환희와 격정으로 설레이였다.
《오늘은 민족최대의 명절인 태양절이지만 영예군인동무들이 보고싶어 공장에 찾아왔습니다. 뜻깊은 태양절을 맞는 동무들을 축하합니다.》
공장에 도착하시여 하신 장군님의 첫 말씀은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그리움을 달랠수 없어 가슴을 부둥켜안고있던 영예군인들의 감정을 분출하는 활화산마냥 터쳐놓았다.
어쩌면 자기들의 속마음을 그리도 잘 아실가.
어버이수령님이 뵙고싶고 장군님이 뵙고싶어 그리움과 기다림의 날과 달을 보내온 그들이였다.
그런데 그이께서도 태양절을 맞고보니 영예군인들에 대한 생각이 더 나고 보고싶으시여 불원천리 달려오신것이 아니신가.
그러고보면 장군님과 영예군인들은 그리움으로 하여 마음과 마음이 하나로 잇닿아있는 친혈육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류다른 그리움을 안으시고 다른 날도 아닌 경사스러운 태양절에 이곳 영예군인들을 찾아주신것은 그들이 혁명의 꽃을 계속 피워나가도록 이끌어주기 위한 웅심깊으신 뜻에서였다.
영예군인들은 장군님의 현지지도의 자욱자욱에서 그것을 페부로 느낄수 있었다.
연혁소개실을 돌아보시기 위해 어느 한 건물에 들어서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전쟁로병영예군인들이 서있는 앞에 이르시여 두손을 앞으로 모아잡으시고 걸음을 멈추시였다.
그이께서는 공장의 전쟁로병영예군인들이 정중히 올리는 인사에 두번이나 손을 들어 답례하시며 말씀하시였다.
《조국해방전쟁에 참가한 영예군인들을 만나니 반갑습니다. 조국해방전쟁에 참가한 영예군인들은 전쟁로병이며 영예군인의 1세대입니다.》
그이께서는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에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을 높이 받들고 싸우던 화선병사의 정신과 신념, 의지로 당의 선군령도를 받들고 일해나가겠다는 전쟁로병영예군인들의 결의를 들어주시고 다음과 같이 강조하시였다.
《영예군인공장에서는 조국해방전쟁참가자들인 1세대 영예군인들이 기본입니다. 영예군인공장에서는 1세대 영예군인들을 적극 내세우고 당과 수령에게 충성다한 그들의 사상정신과 투쟁기풍으로 모든 영예군인들이 살며 일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 말씀에는 전화의 나날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을 결사관철하기 위하여 한목숨을 서슴없이 바쳐 싸우다가 부상당한 인민군군인들을 그들의 한생이 다하도록 따뜻이 보살펴주고 사회적으로 내세워주신 수령님의 고결한 동지애의 력사를 영원히 빛내이시려는 숭고한 뜻이 어려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사회주의건설에서 혁명의 꽃을 계속 피워온 1세대 영예군인들의 사상정신과 투쟁기풍이 오늘도 그대로 일터마다에 차넘치게 하시려는 깊은 뜻이 담겨져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전쟁로병영예군인들에게 《모두 건강하여 일을 계속 잘하기 바랍니다.》라고 따뜻한 고무의 말씀을 해주시였다.
짧은 한마디이지만 그 말씀속에는 세월의 썰물이 생명력을 다 안고가버린듯 로쇠한 그들에게 힘을 주고 용기를 주고싶으신 장군님의 심정이 어려있었다.
이러한 심정을 안으시고 연혁실을 돌아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가방직장앞에 이르시였다.
그이께 공장의 한 일군이 장군님께서 다녀가신 가방직장이라고 아뢰였다.
깊은 생각에 잠기신채 걸음을 멈추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오늘은 휴식일인데 자신께서 직장에 들리면 영예군인들이 휴식을 못하지 않는가고 말씀하시였다.
공장일군은 뜨거운 격정에 울먹이며 그이께 말씀드렸다.
《장군님, 오늘 장군님을 공장에 모신것은 저희들에게 있어서 몇천날 휴식한것보다 더 큰 휴식으로 됩니다.》
그이께서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시면서도 그 자리를 인차 뜨지 못하시였다.
이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가방직장, 합성수지직장 등 공장의 여러곳을 돌아보시면서 공장관리운영에서 제기되는 문제들도 몸소 풀어주시고 영예군인들이 보다 문화적인 환경에서 일하도록 세심히 보살펴주시였다. 그리고 나라의 살림살이에 조금이라도 보탬을 주려는 애국의 일념으로 애써 일하고있는 그들의 소행도 자상히 헤아리시여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영예군인이라는 고귀한 칭호에는 영예군인들에 대한 우리 당과 인민의 높은 존경과 뜨거운 사랑이 담겨져있다고, 우리 나라에서처럼 부상당한 군인들을 영예군인으로 존경하고 내세우며 우대하는 나라는 없다고 하시며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청춘도 생명도 아낌없이 바쳐싸운 영예군인들은 꽃방석에 앉히고 존대해야 할 귀중한 혁명동지들입니다. 영예군인들은 우리 당이 아끼고 사랑하는 핵심이고 전상자, 공로자들인것만큼 그들을 잘 돌봐주어야 합니다.》
그이께서는 아직 모든것이 부족하고 어려운 때이지만 국가적으로 영예군인들의 작업조건과 생활조건, 휴식조건을 잘 보장해주어 그들이 아무런 불편이 없이 일하며 생활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애로되는것이 있으면 무엇이나 서슴없이 제기하라고 하시였다.
영광의 시각은 너무도 빨리 흘러갔다.
영예군인들은 인제는 그이와 헤여져야 한다는 생각에 온몸에 휘감겨드는 작별의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러는 그들에게 다정히 말씀하시였다.
《오늘은 태양절인것만큼 우리가 공장에서 빨리 떠나야 영예군인들이 마음놓고 쉴수 있을것입니다.》
오실 때엔 태양절을 맞는 영예군인들이 보고싶으시여 오시였고 가실 때엔 영예군인들이 쉬지 못하는것만 같으시여 총총히 떠나시려는 장군님.
장군님께서는 우리가 떠나간 다음 종업원들이 명절을 잘 쇠도록 하여야 한다고 공장일군들에게 간곡히 당부하시며 떠나시기에 앞서 신심과 용기를 안겨주시였다.
《나는 함흥영예군인수지일용품공장 영예군인들이 당의 령도를 높이 받들고 1세대 영예군인들의 사상정신과 투쟁기풍으로 혁명의 꽃을 계속 피워나가리라고 믿습니다.》
정녕 경애하는 장군님은 해빛을 안고 오시여 현지지도의 순간마다, 걸음마다 사랑의 세계를 펼쳐주시고 가실 때마저도 뜨거운 은정을 남겨두고 떠나시는 영예군인들의 자애로운 어버이, 은혜로운 태양이시였다.
돌아가시여 베풀어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은 더더욱 따사로왔다.
함흥영예군인수지일용품공장을 떠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자신때문에 영예군인들이 명절날 쉬지도 못해 참 안되였다고 뇌이시면서 그들이 이제라도 명절을 잘 쇨수 있게 소고기와 닭고기를 보내주자고 말씀하시였다.
그날 저녁식사때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깊은 생각에 잠기시여 오래도록 수저를 들지 못하시였다.
무엇때문에 그러실가?
일군들은 그이께서 낮에 만나본 함흥영예군인수지일용품공장의 영예군인들때문에 그러시는줄은 생각지 못하였다.
이윽하여 그이께서는 영예군인들이 일하던 모습을 그려보시듯 갈리신 음성으로 정말 가슴아프다, 그들을 다 꽃방석에 앉혀야겠는데라고 하시더니 그들에게 뭘 좀 보내주어야겠다, 그럼 명세를 한번 짜보자고 하시였다.
그러시고 손수 천연색TV와 내의, 그릇 등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품종을 하나하나 꼽아가시다가 더 줄것이 없겠는가고 물으시였다.
한 일군이 《솜옷이 있기는 한데 이젠 날씨가 따뜻해져서…》라고 말을 얼버무리였다.
그때로 말하면 누구나 할것없이 4월의 따뜻한 해빛을 함뿍 받으며 봄계절옷차림을 하고 다니던 계절이였다. 그러니 일군이 그런 말씀을 올린것도 무리는 아니였다.
그러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아니요, 우린 일없지만 영예군인들은 아직도 쌀쌀할게요, 그리고 솜옷은 다음해 겨울에도 입으면 될게 아닌가고 하시며 솜옷까지 적어넣으시고 그 명세를 무려 네번씩이나 수정하여 다시 써넣어주시였다.
이렇게 마련된 사랑의 선물은 이 공장 전체 종업원들에게 가슴가득 안겨지게 되였다.
봄날처럼 따뜻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육친적사랑은 그들이 불굴의 의지로 일어서게 한 불사약이였다.
육체적조건에 굴복하지 않고 명랑하고 쾌활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영예군인들의 삶의 자세는 만사람들에게 진한 감동을 남겼다.
오늘도 영예군인들은 뜻깊은 태양절에 자기들의 일터를 찾아오시여 삶의 빛과 열을 한껏 부어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자애로운 사랑을 불타는
심장마다에 새겨안고 혁명의 꽃을 계속 피워나가고있다.
영광과 축복을 안겨주시여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선군혁명동지의 대오속에는 남조선의 감옥에서 30~40년동안이나 고초를 겪으면서도 혁명적신념과 의리를 지켜낸 비전향장기수들도 있다.
2002년 4월 만수대의사당에서는 조국의 품에 안긴 비전향장기수들에게 공민의 최고영예인 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하는 의식이 엄숙히 진행되였다.
수여식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이 발표되고 비전향장기수모두의 가슴에 공화국영웅의 금별메달이 수여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동지적사랑과 의리에 의하여 해빛 한점 들지 않는 남쪽의 차디찬 감방에서 페인이 되였던 비전향장기수들이 신념과 의지의 강자로 불리우고 조국통일상에 이어 공화국영웅의 금별메달을 빛내이며 인생말년에 만복을 누리게 된것이다.
빛나는 금별의 영웅메달을 쓸어보고 또 쓸어보던 비전향장기수들은 북받쳐오르는 격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오열을 터뜨렸다.
수십년간 0. 75평의 비좁은 감방속에 갇혀 《숨쉬는 화석》, 《인간페기품》, 《먹방인생》으로 살아온 비전향장기수들은 모진 악형속에 눈물마저 메말라버렸다.
하지만 조국의 품에 안긴 그들은 눈물이 제일 많은 사람들로 되였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하며 조국의 품에 안기여서 울고, 남쪽의 감방에서 페인이 된 자기들의 병구완을 위해 최상의 치료대책에 갖가지 보약까지 안겨주어서 울고, 애국의 참다운 삶을 빛내였다고 조국통일상수상자로 내세워주어서 울고…
실로 조국의 품에 안긴 후 비전향장기수들이 흘러보낸 날과 달들은 고마움의 눈물, 감사의 눈물을 흘리고 또 흘린 나날들이였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크게 해놓은 일이 없이 그저 적들의 모진 고문과 악행을 이겨내고 신념을 지킨것밖에 없는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것을 소중히 여기시고 높이 평가하시여 영광의 단상우에 올려세워주시였던것이다.
온 세상이 다 아는 신념과 의지의 강자, 불굴의 통일애국투사들로 내세워주시니 격정으로 솟구치는 눈물을 그들이 어찌 막을수 있으랴.
실로 조국의 품에 안긴 후 비전향장기수들이 흘리고 또 흘린 고마움의 눈물은 이루 다 헤아릴수 없었다.
사랑하는 전사들에게 하나를 주면 열백을 더 주고싶어하시는 장군님의 은정은 날이 갈수록 더해만 갔다.
앞가슴에 조국통일상과 공화국영웅메달이 번쩍이는 총각할아버지들은 만사람의 축복속에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결혼식상에 앉은 의젓한 신랑으로 되였고 백두산, 묘향산으로의 신혼려행과 경치좋은 바다가에서의 가족휴양은 그들을 세상에 둘도 없는 행복자들로 변모시켰다.
잃었던 청춘과 인생을 되찾은 즐거움이 꿈속에서처럼 흘러가는 가운데 2002년 7월 평양의 하늘가에 새 생명의 울음소리가 랑랑히 울려퍼졌다.
비전향장기수 리재룡이 환갑나이에 이르러 딸자식을 본것이다.
궁궐같은 집에서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자식복까지 받아안고보니 운명의 구세주이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인자하신 영상이 못견디게 그립고 그이께
자기들의 가슴속소원을 간절히 아뢰이고싶은 충동이 솟구쳐올라 리재룡부부는 경애하는 장군님께 삼가 편지를 올렸다.
《은혜로운 태양이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
삼가 드립니다
꿈결에도 뵙고싶은 어버이장군님!
불볕쏟아지는 무더위에도 강성대국건설과 조국통일성업을 위한 선군령도의 길을 끊임없이 이어가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 첫 자식복을 받아안은 다함없는 기쁨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삼가 이 글월을 올립니다.
어버이장군님께서 배필을 무어주시여 저희들부부는 장군님의 따사로운 사랑의 보금자리에서 난생처음 자식을 보았습니다.
환갑나이가 다되여 첫 자식을 보게 된것만도 기쁜 일인데 어버이장군님께서는 이를 크게 여기시여 당보와 TV를 통해 세상이 다 알게 하여주시였으니 그 고마움을 무엇으로 다 아뢰일수 있겠습니까.
…
어버이장군님의 대해같은 은덕으로 행복의 보금자리에서 처음으로 꽃같은 딸자식을 보게 되니 이름을 어떻게 지을가 하는 생각으로 망설이고 망설이던 끝에 저희부부는 무엄한줄 알면서도 자애로운 어버이장군님께 딸애의 이름을 지어주시였으면 하는 소청을 정중히 드립니다.》
복받은 삶을 누리게 된 감사의 정이 담긴 소박한 편지였건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강성국가건설을 위한 끊임없는 현지지도로 바쁘신 나날을
보내시는 속에서도 그들부부의 간절한 소청을 헤아려 사랑의 친필을 보내주시였다.
《온 나라 인민들의 축복속에 태여난 애기이름을 축복이라고 지어줍시다
김정일
2002. 7. 23.》
축복, 이것은 한 아기의 이름이기 전에 비전향장기수 한사람한사람의 운명을 끝까지 책임지고 보살펴주시는 위대한 어버이의 축복이였다. 비전향장기수들의 대를 이을 새 생명에 축복의 꽃다발을 얹어주었으니 그것은 정녕 비전향장기수들의 참삶에 대한 례찬이기도 하였다.
비전향장기수들을 위하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은 푸른 하늘처럼 끝이 없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비전향장기수들에게 값높은 존엄과 삶을 안겨주시고 인생의 진미를 한껏 맛보도록 해주시고도 수십년간의 감옥생활로 하여 언제 한번 생일을 쇠여본적이 없는 그들에게 70돐, 80돐생일상도 보내주시였다.
2002년부터 2004년에만도 비전향장기수 류연철이 생일 아흔돐상을 받아안았고 비전향장기수들인 리세균, 김명수, 박문재, 한장호, 전진, 김용규, 황용갑, 김영만, 류운형이 생일 80돐상을, 함세환, 오형식, 김용수, 김동기, 김영달, 장병락, 김창원, 리공순이 생일 70돐상을 받아안았다.
날이 가고 달이 바뀔수록 더해만 가는 장군님의 사랑을 가슴넘치게 받아안은 비전향장기수들의 마음속에 커가는 생각이 있었으니 그것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은정에 어떻게 하면 보답하겠는가 하는것이였다.
하여 비전향장기수들은 로동계급과 농업근로자들, 근로청년들과 해외동포들과의 상봉모임을 통하여 경애하는 장군님의 숭고한 동지애의 세계를 세상에 전하고 장군님만 믿고 살면 반드시 이긴다는 신념과 의지의 억센 기둥을 심어주는 사업을 줄기차게 진행하였다.
비전향장기수서화전시회도 그러한 열의속에 마련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한없는 사랑과 믿음에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보답할수 있을가 하고 사색을 이어가던 비전향장기수 리경찬, 김은환, 양정호, 최선묵, 최하종, 안영기들은 미숙하나마 자기들이 감옥에서 심장의 피로 익힌 서예로 천만군민의 심장에 신념의 불을 지펴주는 글발들을 새기자는데로 의견을 모았다.
장군님께서는 비전향장기수들의 마음을 헤아려보시고 이들이 자기들의 재능을 활짝 꽃피울수 있도록 비전향장기수서화전시회를 열도록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이렇게 되여 2003년 2월에 막을 올린 비전향장기수서화전시회는 해를 거듭하며 평양은 물론 청진, 함흥, 신의주, 혜산, 사리원, 개성에 이르기까지 온 나라의 이르는 곳마다에서 10여차에 걸쳐 진행되였다.
시대의 격동에 발을 맞추어 몸도 마음도 더 젊어지고 신념과 의지가 더욱더 벼려지는 참으로 소중한 나날들이였다.
참으로 경애하는 장군님의 그 위대한 동지애의 세계속에서 온 사회의 일심단결은 하나의 사상과 신념, 동지적사랑과 의리에 기초한 전당, 전군, 전민의 일심단결로 공고발전되여 선군조선의 정치사상적위력은 비할바없이 더욱 강화되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