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선군길을 병사들과 함께
 

운명도 미래도 다 맡아안으시고

 

1

영웅전사들을 영생의 언덕에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걷고걸으신 선군장정의 길은 인민군군인들의 운명도 미래도 다 맡아안아 보살펴주는 위대한 사랑의 길이였다.

군인들에 대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열화와 같은 사랑은 그들의 운명을 지켜주고 영생을 주는 사랑이다.

군인들의 정치적생명의 보호자이시고 영원한 삶의 은인이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은혜로운 사랑속에 영생의 삶을 빛내이는 군인들가운데는 윁남인민의 반미항전에 참전하여 영웅적조선인민군의 용맹과 기개를 떨치며 국제주의적의무를 다한 자랑스러운 영웅전사들도 있다.

들판에서 오곡이 익어가는 소리가 들려오는듯 사람들의 마음을 싱그럽게 하는 주체91(2002)년 9월 중순 어느날 평양비행장에는 한대의 특별비행기가 착륙하였다. 인민군군악대의 장중한 주악이 울리는 가운데 비행기에서는 성스러운 붉은 기폭에 싸인 조선인민군 렬사들의 유해가 내리워졌다. 윁남인민들의 반미항전을 도와 타향만리 이국땅에서 싸우다 희생된 인민군렬사들의 유해였다.

《영접 들어 총!-》

렬사들의 유해는 명예위병대 대장의 힘찬 구령소리에 따라 숭엄히 경의를 표시하는 조선인민군 명예의장대앞을 지나 인민군영웅렬사묘로 향하였다.

렬사들의 유해를 뒤따르는 유가족들과 전우들은 당과 수령의 뜻을 받들어 싸우다 한목숨 서슴없이 바친 혁명전사들의 한생을 조국과 더불어 영생하는 고귀한 삶으로 빛내주기 위하여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베푸신 한없이 고결한 동지적사랑과 의리에 가슴이 젖어와 뜨거운 눈물을 흘리였다.

며칠전 일요일이였다.

온 나라가 휴식의 하루를 즐기는 그 시각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집무실에서 하나의 문건에 깊은 사색을 모으고계시였다.

문건에는 윁남전선에서 희생된 조선인민군렬사들의 유해를 윁남측으로부터 넘겨받아오는데서 나서는 문제가 적혀있었다. 윁남전쟁에서 희생된 렬사들의 유해는 미제를 반대하여 용감히 싸운 그들의 영웅적위훈을 잊지 못해하는 윁남인민들의 요청에 따라 그 나라에 안치되여있었던것이다.

그때로부터 30년세월이 흘러 이제는 함께 싸우던 전우들의 기억속에서도 희미해졌지만 이국땅 멀리에 외롭게 묻혀있는 그들에게 늘 마음의 한끝을 두고계시는분이 계시였다.

혁명적동지애와 의리의 화신이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이시였다.

이무렵 이역만리에 안치된 렬사들의 유해문제를 료해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영웅전사들의 유해를 가족들이 있는 조국땅에 가져다 안치하자고, 그렇게 하는것이 떠나간 혁명전사들에 대한 숭고한 동지적의리로 된다고 하시면서 해당 부문에 이와 관련한 과업을 주시였던것이다.

일요일의 휴식도 뒤로 미루시고 문건을 한장한장 보아주신 장군님께서는 높은 급의 정부대표단을 파견하여 그들의 유해를 넘겨받아 특별비행기로 실어올데 대한 문제, 조국에 도착하면 인민군영웅렬사묘에 안장하는 의식을 국가적인 행사로 진행할데 대한 문제 등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이렇게 되여 인민군영웅렬사묘에서는 윁남전선에서 영웅적위훈을 세운 전사들의 유해를 안장하는 의식이 엄숙히 거행되게 되였던것이다.

정성들여 다듬어세운 묘비, 영웅들의 생전의 모습을 보여주는 돌사진, 돌사진밑에 새겨진 위훈의 글발들.

한줌 흙이 되여서라도 기어이 돌아오리라던 그들은 이렇게 영원한 영광속에 조국의 품에 안기였다.

그들은 모두 평범한 군인들이였다. 당과 수령의 전사로서, 조국과 인민의 아들로서 자기의 숭고한 본분을 다한 어제날의 영웅전사들이 경애하는 장군님의 숭고한 동지적사랑과 혁명적의리에 떠받들려 사랑하는 조국의 품에 안겨 영생의 삶을 누릴수 있게 된것이다.

이듬해 어느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어느 한 공군부대를 찾으시였을 때 일군들은 정중히 말씀드렸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숭고한 사랑에 의하여 윁남에서 희생된 전투원들의 유해를 가져다 인민군영웅렬사묘에 안치하니 유가족들은 물론 전우들이 정말 좋아한다는데 대하여, 그 소식에 접한 인민군장병들모두가 감격을 금치 못해하며 최고사령관동지를 위해 한목숨바쳐 싸울 각오를 더욱 굳게 가다듬는다는데 대하여…

그러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다소나마 마음의 시름을 덜어놓으신듯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윁남전선에서 희생된 전투원들은 조국의 장한 아들들입니다.

낯선 이국땅에 묻혀있던 그들의 유해를 인민군영웅렬사묘에 안치하니 나도 마음이 놓입니다.》

그이의 안광에는 이국의 전장에 쓰러졌던 친아들들을 영광의 붉은기에 휩싸안아 영생의 언덕에 세워준 위대한 어버이의 따뜻한 미소가 가득 넘치고있었다.

윁남전선의 영웅전사들에 대한 장군님의 은정은 여기에만 머무른것이 아니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어느 한 비행부대를 찾으셨던 주체92(2003)년 6월 어느날이였다.

부대의 혁명사적교양실을 돌아보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전시된 사적문헌들앞에서 오래도록 발걸음을 옮길줄 모르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당시 윁남전선에 파견되는 비행사들과 담화하시는 력사적화폭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미제침략자들과 어려운 싸움을 벌리는 윁남인민에 대한 숭고한 국제주의적의리를 지니시고 몸소 키우신 공군전투원들을 파견하시며 그들을 고무격려해주시는 어버이수령님의 못 잊을 모습을 숭엄히 바라보시며 깊은 감회에 잠기시였다.

그이께서는 이윽하여 말씀하시였다.

《비행사들이 윁남에 가서 잘 싸웠습니다. 우리 비행사들이 위대한 수령님의 품속에서 무적의 강군으로 자라난 슬기와 용맹을 세상에 힘있게 보여주었습니다.

윁남에서는 우리 비행사들이 발휘한 전투위훈에 대하여 지금도 잊지 않고있습니다.

부대에서는 수령님의 탁월한 령도아래 국제지원에서 무적강군의 위용을 만천하에 떨친 영웅적인 투쟁자료들을 가지고 비행사들과 군인들에 대한 교양사업을 더욱 진공적으로 벌려야 하겠습니다.》

윁남전선에서 용감히 싸운 전사들에게 최상의 영광을 아낌없이 안겨주시고도 미처 다 주지 못한것이 있으신듯 마음쓰시며 그들의 영웅적위훈을 더 높이 내세워주시는 장군님이시였다.

그이께서는 부대연혁실을 돌아보시면서도 윁남전선에서 불멸의 위훈을 세운 영웅비행사들의 사진앞에 오래도록 서계시였다.

부대장이 윁남에서 싸운 그들의 영웅적위훈에 대하여 해설해드리였다.

장군님께서는 부대에는 위대한 조국해방전쟁시기와 윁남전쟁에 참가하여 전투공로를 세운 비행사들이 많다고 하시면서 우리가 윁남전선에서 싸우다 희생된 전투원들의 시신을 내다가 조선인민군영웅렬사묘에 안치하고 돌사진까지 해놓길 잘했다고 하시고나서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말씀하시였다.

《앞으로 먼 후날에 가서도 그들의 위훈은 영원히 빛나게 될것입니다.》

장내에는 지금껏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영웅비행사들의 전투위훈을 선군혁명력사의 갈피에 빛나게 아로새겨주시는 그이에 대한 고마움과 다함없는 감사의 정이 가득 넘쳐흘렀다.

이때였다.

부대장이 윁남전선에서 희생된 한 비행사의 사진을 가리켜드리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직접 주신 과업을 받고 찾은 비행사라고 보고드렸다.

그것은 그해 1월 장군님께서 다른 비행부대를 시찰하실 때 있은 일이였다.

군인회관복도에 게시한 영웅들의 사진판앞에서 누구인가를 찾아보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부대일군들에게 자신께서 알고계시는 어느 한 예술단 배우의 아버지도 비행사로 싸우다가 전사하였다고 하시면서 한번 찾아보라고 이르시였다.

부대지휘관이 한 영웅의 이름을 외우며 그가 아닌가고 보고드리자 그이께서는 아니라고, 그 영웅은 전쟁시기에 배출된 영웅인데 그 동무의 아버지는 윁남에 가서 비행사로 싸우다가 희생되였다고 하시였다.

그때 일군들이 받은 놀라움과 충격은 얼마나 컸던가.

평범한 배우의 아버지를 전선시찰의 길에서 찾아보시느라 남몰래 애쓰시는 어버이의 그 모습도 눈물겨웠지만 많고많은 비행사영웅들중에서 이름만 들으시고도 그가 전쟁시기 영웅이라는것을 순간에 가려보시는 놀라운 기억력에 경탄하지 않을수 없는 그들이였다.

영웅들의 이름은 물론 투쟁위훈까지 환히 꿰들고계시는 장군님의 숭고한 세계는 정녕 기억이라는 말로는 도저히 다 설명할수 없는 숭고한것이였다.

무릇 어머니는 수많은 사람들속에서도 자기가 낳은 자식을 인차 알아본다. 그것은 혈연적본능의 귀결이다.

장군님께서는 바로 그런 혈연의 뜨거운 정으로 영웅전사들 한명한명을 잊지 않고계시였던것이다.

그렇게 찾고찾으시던 윁남전선의 영웅비행사를 비로소 이 부대에서 찾게 되신 장군님의 심중에는 기쁨이 그득 차올랐다.

《어디 한번 봅시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비행사의 사진과 이름을 보고 또 보시였다.

그러시고는 영웅의 이름과 배우의 성을 외우시다가 반가움에 겨워 말씀하시였다.

《옳구만. 배우동무가 이걸 안다면 좋아할것입니다.》

한 배우의 아버지를 찾아주게 된것이 너무 기쁘시여, 그 아버지가 윁남의 반미결전장에서 미국놈들을 전률케 한 영웅비행사라는 사실이 너무 대견하시여 환히 웃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

그 모습이 눈물겹게 안겨와 일군들은 정말 배우가 기뻐 어쩔줄 모를것이라고 말씀드리고는 그만 목이 메여버리고말았다.

혁명전사들 한사람한사람의 삶을 조국과 더불어 영생하는 삶으로 빛내주기 위하여 마음쓰시는 장군님의 사랑은 이렇듯 한없이 고결하고 뜨거운것이였다.

이윽고 장군님께서는 윁남전쟁당시 하노이상공에서 진행된 공중전투략도를 깊은 관심속에 보아주시였다.

그러시고는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말씀하시였다.

《적기 32대, 아군비행기가 8대, 력량상 엄청나게 차이가 있는 어려운 공중전에서 우리 비행사들이 단 한명의 희생자도 없이 12대의 적기를 쏴떨구었으면 대단한 승리로 됩니다.

부대의 비행사들은 수령님께서 밝혀주신 주체적인 공군전법을 능숙히 활용하였기때문에 전쟁사에 드문 공중전의 모범을 보일수 있었습니다.》

윁남의 하노이상공에서의 이 공중전은 8대의 인민군비행대가 《팬톰》기를 비롯하여 32대의 대편대로 덤벼드는 미제공중비적들과 맞서 12대를 격추하고 1대를 격상시키는 혁혁한 승리를 거둠으로써 조선인민군의 용맹과 기상을 미국놈들에게 정신이 번쩍 들게 보여준 대표적인 전투였다.

그 공중전투가 있은 다음부터 윁남사람들은 조선인민군 비행사들이 세상에서 제일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미제침략군비행사들은 수화기에서 조선말이 들리기만 하여도 기수를 돌려 줄행랑을 놓군 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윁남에서 수령님께서 키워주신 우리 비행사들의 전투위훈에 대하여 널리 선전하면서 연구하고있는데 대하여 들려주시고나서 부대지휘관들에게 동무들은 공로있는 부대의 일군이라는 높은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모든 비행사들을 펄펄 나는 싸움군으로 튼튼히 준비시키기 위해 적극 노력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이날 그이께서는 관하비행부대를 찾으시여서도 우리 비행사들이 3년동안 윁남에 가서 수적, 기술적우세를 자랑하던 미제의 거만한 코대를 꺾어버리고 영웅적조선인민군 공군의 본때를 보여준데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우리 비행사들이 윁남전쟁에서 세운 자랑찬 전투위훈은 무적의 공군사와 더불어 영원히 빛날것이라고, 부대에서는 비행사들속에서 윁남전쟁에서 발휘한 영웅비행사들의 위훈을 통한 교양사업을 잘하여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장군님의 말씀은 인민군지휘성원들과 부대일군들을 격동시켰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윁남전선의 영웅비행사들의 유해를 조국으로 안아오신것을 어찌 이국의 타향에 묻혀있던 그들을 부모처자가 기다리는 고향의 가족들곁으로 데려다준데만 그 의의가 있다고 말할수 있으랴.

미제공중비적들을 본때있게 족쳐 조선의 기상을 떨친 영웅전사들을 세상이 다 알도록 내세워줌으로써 그들과 같은 영웅들이 수많이 배출되도록 하시려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숭고한 뜻이 바로 거기에 뜨겁게 어려있는것이였다.

영웅전사들을 영생의 언덕에 세워주시고 그들의 영웅적위훈이 대를 이어 빛나게 계승되도록 이끌어주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은혜로운 손길아래 총쥔 병사들, 선군혁명의 주력군인 인민군군인들은 수령결사옹위의 제일선에서 청춘도 생명도 아낌없이 바치는 열혈충신들로 억세게 자라났다.
 

2

《군대와 인민이 제일 사랑하는 배우였습니다》
 

혁명전사들에 대한 수령의 숭고한 사랑과 의리가 고즈넉이 흐르고있는 애국렬사릉에는 군복을 입은 한 배우의 묘비도 세워져있다.

그가 바로 공훈국가합창단의 관록있는 가수였던 인민배우 석지민이다.

그가 애국렬사릉이라는 영생의 언덕에 오르게 된데는 만사람의 심장을 격동시키는 참으로 가슴뜨거운 사연이 깃들어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공훈국가합창단 배우 석지민의 사망과 관련한 비보에 접하신것은 주체94(2005)년 11월 어느날이였다.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인민군지휘성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인민군공훈국가합창단 배우 석지민이 사망하였는데 정말 아까운 사람을 잃었습니다. 그는 보기 드문 저음가수로서 우리 군대와 인민이 제일 사랑하는 배우였습니다. 그는 음량도 크고 음색도 특이하였습니다. 노래 〈정일봉의 우뢰소리〉와 같은것은 그만큼 부르는 사람이 없을것입니다.》

충실한 선군나팔수집단의 한 성원으로 경애하는 장군님의 선군장정을 종군하며 준엄한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함께 돌파해온 미더운 전사, 혁명의 수뇌부의 사상과 의도를 대변하는 힘찬 혁명군가로 천만군민의 심장에 불을 달아주며 선군혁명의 장엄한 총진군을 추동해온 열정의 가수를 잃으신 그이의 안색은 매우 침통하시였다.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속에서 《정일봉의 우뢰소리》, 《대홍단 삼천리》와 같은 노래와 더불어 지울수 없는 인상을 남긴 석지민이 혁명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 뜻하지 않은 사고로 중태에 빠진것은 20여일전이였다.

전선시찰을 이어가시는 길에서 이에 대한 보고를 받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어떻게 하나 그를 살려내기 위해 할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 취해주시였다.

하루에도 몇차례씩 그의 치료정형에 대한 보고를 받으시며 필요한 대책을 세워주시고 노래로 혁명에 이바지하고 노래로 만사람에게 알려진 그였건만 설사 노래를 못한다 하더라도 생명만 살려낼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고 자신의 진정을 터놓으신 장군님이시였다.

실로 그이께서 쏟아부으시는 석지민에 대한 관심과 보살핌은 노래에도 있는것처럼 돌우에도 꽃을 피울 위대한 사랑이였다.

국방위원회의 명의로 외국의 이름있는 치료집단도 긴급초청해오도록 하셨건만 끝내 소생하지 못한 전사…

그것이 너무도 가슴아프시여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날 한 일군에게 그의 한생을 영생의 절정에 빛내여주시려 은정어린 가르치심을 주고 또 주시였다.

인민군대에서 석지민배우의 장례를 잘해줄데 대한 문제, 그의 시신을 서장회관에 안치할데 대한 문제, 석지민의 묘를 신미리애국렬사릉에 쓸데 대한 문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로동신문》과 인민군신문에 석지민의 부고를 잘 내도록 하여야 하겠다고, 부고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인민무력부의 명의로 내야 한다고, 그저 인민무력부라고만 하여서는 당에서 그를 얼마나 중시하였는가 하는것이 잘 알리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뜨거운 어조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석지민에 대한 부고를 낼 때 그가 노래 〈결전의 길로〉의 가사를 비롯하여 좋은 노래가사를 쓴 유명한 창작가 석광희의 아들이라는것과 아버지의 뒤를 이어 수많은 전선부대들을 찾아 혁명적이며 전투적인 노래들을 많이 불러 우리 군인들과 인민들을 조국보위와 사회주의수호전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는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군인들과 인민들의 사랑을 받는 재능있는 인민배우였다는것을 밝혀야 하겠습니다.》

순간 일군의 가슴에는 불덩어리같은것이 뭉클 솟구쳐올랐다.

그것은 한 전사의 생애를 더욱 값높이 해주고 부고에 밝혀야 할 내용까지 일일이 가르쳐주시는 그 은정에 목이 메여서만이 아니였다.

가렬처절한 조국해방전쟁시기 인민군장병들을 원쑤격멸에로 불러일으킨 명가사들을 써내여 널리 알려진 화선작가의 생이 선군시대의 가수로 한생을 빛내인 아들과 더불어 위대한 선군령장의 심장속에 영원히 새겨짐을 벅찬 흥분속에 절감하게 되기때문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날 인민군지휘성원들에게도 석지민의 아버지 석광희는 노래 《결전의 길로》를 비롯하여 좋은 노래가사를 많이 창작한 공로있는 창작가라고, 그가 전화의 불비속에서 지은 노래 《결전의 길로》는 오늘도 우리 군대와 인민을 투쟁과 위훈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고있다고 말씀하시면서 그의 묘도 아들과 함께 애국렬사릉에 안치하여야 하겠다고 가르쳐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심장속에 뜨겁게 간직되여 영생의 삶을 받아안게 된 인민배우 석지민.

그가 장군님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해온 나날들은 그대로 전사들과 최고사령관사이에 맺어지는 사랑의 세계, 동지애의 세계가 얼마나 심원한가 하는것을 웅변으로 말해준다.

공훈국가합창단성원들 한명한명이 다 그러하지만 그중에서도 석지민은 그야말로 경애하는 장군님의 선군나팔수로서 자기의 영예로운 한걸음, 한걸음을 그이의 각별한 사랑과 보살피심속에 긍지높이 새겨온 가수들중의 한사람이였다.

그가 받아안은 사랑과 믿음이 얼마나 큰것이였는가를 전해주는 이런 가슴뜨거운 이야기가 있다.

주체94(2005)년 2월 어느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공훈국가합창단의 공연을 관람하시였다.

그런데 이날의 공연은 뜻밖에도 그이께 기쁨을 드리지 못하였다. 전반적인 노래들을 기백이 없이 불렀던것이다.

바로 그날 밤이 퍼그나 깊어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석지민을 친히 곁으로 불러주시였다.

그러시고는 그날 공연에서의 기본결함과 원인을 다시금 지적해주시고나서 말씀하시였다.

《지난 시기 공훈국가합창단은 선군시대의 나팔수로서 우리 군대와 인민에게 승리의 신심을 안겨주고 그들을 투쟁에로 불러일으키는데서 커다란 역할을 하였습니다.

우리 군대와 인민은 공훈국가합창단의 혁명군가를 들으며 현시기 최고사령관이 무엇을 의도하고있으며 무엇을 호소하고있는가를 느끼군 하였습니다.》

그러시면서 공훈국가합창단 지휘성원들과 창작가, 예술인들은 이에 대하여 무거운 책임을 느껴야 하며 선군시대의 나팔수, 최고사령부의 나팔수로서의 자기의 지위를 되찾아야 한다고, 혁명적군인정신이 맥박치는 시대의 합창명곡으로 우리 군대와 인민을 힘있게 불러일으키는것이 바로 공훈국가합창단의 전통이라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합창단의 책임일군도 아닌 평범한 가수를 불러 그토록 심혈을 기울이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모습을 뵈오며 일군들은 그를 선군나팔수집단의 핵심으로 키워가시는 그이의 남다른 보살피심에 무한히 감동되였다.

그러니 장군님 몸가까이에서 그이의 고귀한 지침을 받아안는 석지민의 심정이야 얼마나 감격스러웠겠는가.

그때로부터 며칠후 인민군지휘성원들은 공훈국가합창단 창작가, 예술인들과 함께 경애하는 장군님을 모시고 국립교향악단공연을 관람하게 되였다. 그것은 단순히 관람이라기보다 공훈국가합창단성원들이 합창형상수준을 한계단 더 높이도록 하기 위해 그이께서 친히 마련해주신 성장과 발전의 중요한 계기였다.

그날 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몇명의 공훈국가합창단 배우들과 함께 석지민을 또다시 몸가까이 불러주시였다.

《공연을 본 공훈국가합창단성원들의 반영이 어떻습니까?》

그이의 물으심에 석지민은 국립교향악단이 경애하는 장군님의 정력적인 지도와 뜨거운 사랑속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고, 연주에서 높은 예술성이 보장되고 특히 지휘를 아주 잘한다는 반영이 제기되고있다고 보고드리였다.

공연을 본 모두의 소감도 그와 다를바 없었다.

《옳소, 오늘 국립교향악단이 공연을 예술성있게 잘하였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 석지민은 자책어린 목소리로 이렇게 아뢰였다.

오늘공연을 보면서 정월대보름명절공연을 잘하지 못한데 대하여 다시금 돌이켜보았다고, 그리고 공훈국가합창단도 국립교향악단처럼 공연을 높은 수준에서 진행하도록 적극 노력하겠다고…

최고사령관의 선군나팔수로 내세워주신 크나큰 믿음과 사랑에 반드시 보답하고야말리라는 충정의 맹세가 넘치는 자리였다.

주체94(2005)년 3월 어느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날 인민군지휘성원들과 함께 공훈국가합창단의 공연을 또다시 보아주시였다.

공연이 끝나자 그이께서는 대단히 만족해하시였다.

《인민군공훈국가합창단이 오늘 공연을 아주 잘하였습니다. 대만족입니다. 전번 공연을 보고 크게 실망하였댔는데 그때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공훈국가합창단이 자기의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그이께서는 일군들을 둘러보시였다.

《동무들 생각엔 어떻습니까.》

《막 힘이 솟습니다. 전번 공연과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정말 잘합니다.》

일군들은 저저마다 공연에서 받은 강렬한 느낌에 대하여 두서없이 말씀드리였다.

그러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옳다고, 공훈국가합창단이 자기의 모습을 되찾았다고 다시금 치하하시였다. 그러시고 지난 시기 인민군공훈국가합창단은 우람차고 위엄있는 혁명군가로 천만군민의 심장에 불을 달아주었고 온 나라를 들었다놓았다고 감회깊이 말씀하시였다.

우람차고 위엄있는 기백과 위풍, 공훈국가합창단은 잃을번 했던 그 얼굴, 그 모습을 되찾은것이다.

그날 밤 합창단의 창작가, 예술인들과 자리를 같이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감회깊은 추억을 더듬으시였다.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 나는 전선시찰을 나갈 때 공훈국가합창단을 직접 데리고 나갔습니다. 공훈국가합창단 성원들이 그때 나를 따라다니느라고 수고를 많이 하였는데 어느 한 부대에 가서는 배우들이 무더위속에서 공연하다가 졸도까지 한적이 있습니다. 공훈국가합창단 성원들은 나의 전선시찰이 얼마나 험준하였는가를 누구보다 잘 알고있을것입니다.》

장군님의 말씀을 받아안으며 합창단의 창작가, 예술인들은 잊지 못할 그날이 어제런듯 떠올랐다.

그날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뜻깊은 전승절을 최전연장병들과 보내시기 위해 인민군지휘성원들과 공훈국가합창단 성원들을 이끄시고 전선을 찾으시였던 주체86(1997)년 7월 어느날이였다.

그해의 중복날인 이날은 날씨가 너무 무더워 웬만한 사람들은 그냥 서있기조차 힘들었다.

더구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인민군장병들과 함께 공훈국가합창단의 전승절경축공연을 보시기로 되여있는 어느 한 부대 군인회관의 관람석은 온도가 너무 올라 숨이 막힐 지경이였다.

그래서 일군들은 그이께 군인회관이 너무 더워 모실수 없다고 간절히 말씀드렸다.

하지만 그이께서는 그 찌는듯 한 무더위속에서 야전복을 땀으로 흠뻑 적시면서 장병들과 함께 경축공연을 관람하시였다.

바로 그날의 행사공연을 성과적으로 보장하기 위하여 공훈국가합창단 성원들은 서로 팔을 끼고 부축해주면서 한시간나마 노래를 불렀는데 합창대에 섰던 한 배우는 장군님께서 공연을 다 보시고 회관에서 나가시자 정신을 잃고 쓰러지기까지 했던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석지민을 만날 때마다 자주 그때의 일을 회고하군 하시였다.

그때마다 그는 듬직하고 말이 적은 자기를 잊고 흥분에 휩싸여 영원히 그날의 정신으로 최고사령관동지의 선군나팔수답게 한생을 빛내갈 결의를 이렇게 굳게 가다듬군 했다.

(내 언제나 비가 와도 눈이 와도 경애하는 장군님의 선군장정을 걸음걸음 따르는 영원한 가수가 되리라.)

오직 이 하나의 일념으로 심장을 불태우던 열정의 총아, 순결의 동지가 쓰러졌으니 그이의 쓰리고 아프신 그 심중이 과연 어떠하시였겠는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선군혁명동지의 의리로 영생의 언덕에 석지민과 함께 화선작가였던 그의 아버지도 세워주시였다.

자신께서 몸소 자자구구 내용까지 불러주신 석지민의 사망과 관련한 부고가 당보와 군보를 비롯한 출판물들에 실린 그날,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나는 이번에 석지민을 애국렬사릉에 안치할 때 그의 아버지 석광희도 그 릉에 안치하도록 하였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다시금 뜨겁게 외우시였다.

석광희는 《결전의 길로》와 《수령이시여 명령만 내리시라》를 비롯한 좋은 가사를 쓴 이름있는 작가이다. 그가 조국해방전쟁시기 창작한 가요 《결전의 길로》는 높은 사상성과 호소성으로 하여 정의의 싸움에 떨쳐나선 우리 군대와 인민을 원쑤격멸에로 힘있게 불러일으켰다. 1960년대에 창작된 노래 《수령이시여 명령만 내리시라》도 우리 인민의 사상감정과 시대정신을 잘 반영한 훌륭한 노래이다.

계속하여 그이께서는 그러고보면 석광희는 우리 나라 음악사에 자기의 흔적을 뚜렷이 남긴 공로있는 작가라고 말할수 있다고, 사람은 누구나 석광희처럼 사회와 인민앞에 생의 흔적을 남겨야 한다고, 제아무리 재부와 권세를 자랑하며 백년을 살았다고 하여도 사회와 인민을 위하여 아무것도 해놓은 일이 없는 사람은 생을 값있게 보냈다고 말할수 없다고 하시며 이들부자의 생을 값높이 내세워주시였다.

진정 경애하는 장군님의 품속에서 영생의 단상에 오른 화선작가와 가수의 빛나는 삶은 조국과 인민앞에 남기는 생의 흔적이란 어떤것인가 하는것을 웅변으로 말해주고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남다른 사랑과 은정속에 뚜렷한 삶의 자욱을 남긴 배우들가운데는 조선인민군4. 25예술영화촬영소 인민배우였던 오미란도 있다.

길지 않은 생의 기간에 예술영화 《축포가 오른다》, 《도라지꽃》, 《생의 흔적》, 다부작예술영화 《민족과 운명》을 비롯하여 무려 20여편의 영화에 주역으로 출연하여 개성적인 연기로 관중들을 매혹시켰으며 실지 생활을 보는것과 같은 나무랄데 없는 훌륭한 역형상으로 세계영화축전에서도 대절찬을 받은 인민배우 오미란, 그의 남다른 재능은 결코 타고난것이 아니였다.

누구도 주목하지 못했던 한 신인배우의 연기에서 새 싹을 찾으시고 창조의 나래를 활짝 펼치도록 따뜻이 손잡아 이끌어주신분은 바로 경애하는 장군님이시였다.

예술영화 《축포가 오른다》의 주역출연으로 영화창조의 길에 첫발을 들여놓은 때로부터 배우의 성장의 걸음마다에는 장군님의 각별한 사랑과 뜨거운 보살피심이 어려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가 새로운 역형상을 창조해낼 때마다 연기를 제일 잘한다고 평가해주시며 역형상창조에서 지침으로 삼아야 할 귀중한 가르치심도 주시였고 그처럼 배우고싶어하던 그의 소원도 헤아리시여 평양영화대학(당시)에서 공부하도록 은정깊은 조치도 취해주시였다.

그후 오미란은 예술영화 《도라지꽃》창조과정에 세련된 연기술을 남김없이 발휘하였으며 제1차 쁠럭불가담 및 기타 발전도상나라들의 평양국제영화축전에서 그가 주인공으로 출연한 예술영화 《도라지꽃》은 축전의 최고상인 《홰불》금상을, 주인공역을 한 오미란은 금연기상을 수여받았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가 예술영화 《생의 흔적》에서 전투임무를 수행하다 영웅적으로 전사한 남편의 뒤를 이어 쌀로써 당을 받들어가는 길에 뚜렷한 생의 자욱을 새겨가는 주인공의 연기형상을 훌륭히 창조하였을 때에는 또다시 배우를 몸가까이 불러주시고 그의 역형상을 누구보다 높이 평가해주시면서 관객을 마음대로 쥐였다놓았다 하는 간단치 않은 배우, 젊은 녀성배우로서는 대표적인 배우라는 높은 평가를 안겨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은정깊은 사랑은 그의 가정에도 따사로운 해살로 비쳐들었다.

그의 아버지 오향문으로 말하면 해방전 서울의 한 극단에서 배우생활을 하다가 인민군대의 서울해방과 함께 의용군에 입대하여 공화국의 품에 안긴 때로부터 장군님의 남다른 관심속에 참다운 예술활동으로 빛나는 생의 자욱을 남긴 공화국의 이름있는 배우였다.

장군님께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들부녀를 몸소 가까이 불러주시여 과분한 치하도 안겨주시고 그들의 정치적생명의 보호자가 되여주시여 영화창조의 길에서 빛나는 생의 자욱을 새겨가도록 이끌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과 믿음은 이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이께서는 오미란배우가 군복을 입고 영화예술창조활동에 참가하게 되였을 때에는 군복입은 그의 모습도 보아주시면서 오미란동무의 군복이 몸에 맞지 않는다고, 4. 25예술영화촬영소에 녀성인민배우가 한명밖에 없는데 군복을 잘해입혀야 하겠다고 이르시였다. 그리고 그가 병에 걸려 치료를 받고있다는 보고를 받으시고는 인민배우는 아무 사람이나 대신할수 없다시며 나라의 권위있는 의료일군들로 강력한 의료진을 무어주시고 외국의 이름있는 병원에 가서 최상급의 치료를 받고 오도록 해당한 조치까지 취해주시였다.

혁명동지를 위해서라면 돌우에도 꽃을 피우고 하늘의 별이라도 따오실 그이의 은혜로운 사랑을 불사의 명약으로 안고 병치료를 받고있던 주체91(2002)년 봄 어느날이였다.

오미란은 침상에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예술영화 《생의 흔적》의 속편인 《이어가는 참된 삶》을 만들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는 소식을 전해듣게 되였다.

그의 가슴은 세찬 흥분으로 높뛰였다.

사실 예술영화 《생의 흔적》의 속편인 《이어가는 참된 삶》으로 말하면 어버이수령님께서 오래전에 친히 제목을 달아주시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줄거리까지 밝혀주신 작품이였다.

그것을 너무도 잘 알고있는 그로서는 더는 침상에 누워만 있을수 없었다.

하여 오미란은 촬영기앞에 다시 나섰다.

불치의 병으로 수술까지 받은 상태에서 한편의 영화에 주역으로 출연한다는것은 상상을 초월하는것이였다. 그것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과 믿음에 기어이 보답하겠다는 불굴의 정신력이 낳은 기적이였다.

그는 모진 동통을 이겨내며 마침내 예술영화 《이어가는 참된 삶》을 완성하고야말았다.

한해도 저물어가던 주체91(2002)년 12월 어느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최근 인민군대에서 인식교양적의의가 큰 좋은 영화들을 잘 만들어내놓고있는데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인민군4. 25예술영화촬영소에서 만든 예술영화 《이어가는 참된 삶》은 선군시대 영화예술의 본보기라고 높이 평가하시였다.

그러시던 장군님께서는 문득 오미란동무가 수술후에 경과가 어떤지 모르겠다고 하시면서 그를 만나본지가 몇해 잘되였다고 절절한 음성으로 뇌이시였다.

그토록 품들여 명배우로 키워오신 영화예술인, 이 세상 만복을 다 안겨주시며 애지중지 아껴오신 녀배우가 한창나이에 불치의 병에 걸린것이 너무도 가슴아프시여 각별히 마음쓰시는 장군님이시였다.

그때로부터 오미란은 날과 달이 갈수록 뜨겁게 이어지는 은정속에 현대의학의 진단을 거슬러 3년 반이라는 생을 더 연장할수 있었다.

선군령도의 길에서 그의 사망에 대한 보고를 받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비통함을 금치 못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인민군4. 25예술영화촬영소 인민배우 오미란이 사망하였는데 참 아까운 배우를 잃었습니다. 그는 우리 나라 영화배우들가운데서 가장 인기있는 배우들중의 한사람이였습니다. 그의 병을 고쳐주려고 많이 노력하였지만 종시 살려내지 못하였습니다.

주실수 있는 사랑과 믿음을 다 안겨주시고도 그를 잃은것이 너무도 가슴이 아프시여 그리도 애석해하시는 장군님이시였다.

군대와 인민의 사랑과 추억속에 영생하는 예술인들의 빛나는 생은 은혜로운 사랑의 태양의 품속에서만 인간의 재능도 활짝 꽃펴나고 혁명전사들의 값높은 삶도 영원히 이어질수 있다는 삶의 진리를 가슴뜨겁게 새겨주고있다.
 

3

《치료를 잘 받고 돌아오기 바랍니다》
 

주체94(2005)년 12월 어느날 평양비행장에 착륙한 비행기에서는 희고 갸름한 얼굴에 마치 천성적으로 타고난듯 밝은 미소를 담은 한 녀성이 내렸다.

그가 바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은혜로운 사랑속에 아름다운 얼굴모습을 되찾은 김영옥녀성이였다.

인민군지휘성원들이 뜨겁게 마중하고 가족들과 친척들이 감격적으로 포옹하였다.

녀성의 가슴에 꽃다발들이 벅차게 안겨지고 그 화폭을 저저마다 담고저 숱한 촬영기와 사진기들이 그를 에워쌌다.

바로 그날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내가 그전에 …부대에 갔을 때 그를 만나보았는데 얼굴에 난 화상흔적을 보니 가슴이 아팠다고, 그래서 그를 외국에 보내여 치료를 잘해주어 원래 모습보다 더 곱게 해주라고 하였다고 하시며 마치도 잃었던 제모습을 되찾고 돌아온 딸을 맞이한 친부모인양 만시름이 다 놓이시는듯 환히 웃으시며 그가 돌아온 소식을 알려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어느 한 해군부대의 구호문헌보존교양실을 찾으시고 화상당한 강사 겸 관리원들에게 친어버이의 뜨거운 사랑을 부어주신 그날은 주체93(2004)년 12월 어느날이였다.

멀고 험한 전선길에서 17명의 수령결사옹위투사들의 위훈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무재봉의 한 인민군부대를 찾으신 장군님께서는 이 부대 구호문헌보존교양실에서 강사 겸 관리원으로 사업하고있는 김영옥, 김중걸, 김관빈을 만나주시였다.

장군님을 만나뵈옵는 감격은 컸지만 그들은 얼굴의 화상자리로 하여 고개를 들지 못하고있었다.

온 산판을 뒤덮은 화염속에서도 끝끝내 물러서지 않고 구호나무들을 지켜낸 그들은 심한 화상을 당했던것이다.

비록 그 당시 집중적인 치료를 받은데다가 몇년이라는 세월이 흘러서 상처는 다 아물었지만 화상자리가 심했던탓에 얼굴에는 그 흔적이 남아있었다.

꿈결에도 그리던 장군님앞에 섰건만 그러지 않아도 마음쓰실 일이 많으신 그이께 어떻게 심려를 끼쳐드린단 말인가.

어찌할바를 몰라하는 그들을 여겨보시는 장군님의 안광에도 어두운 빛이 숙연히 흐르고있었다.

《구호나무를 구원하다가 화상을 입은 김영옥, 김중걸, 김관빈동무들을 만나보니 모두 얼굴이 불에 데여 몹시 상하였습니다.》

그이께서는 녀성강사가 화상을 입은 이후 치료를 받고 부대관하 구분대청년지도원으로 사업하다가 지난해 제대되였지만 우리 당의 령도업적을 널리 소개선전하기 위하여 고향으로 가지 않고 지금 구호문헌보존교양실에서 강사로 일한다고 하는데 정말 기특하다고, 두 남성강사 겸 관리원들이 1990년도부터 구호문헌보존교양실에서 사업하였으면 오래 하였다고, 쉽지 않은 동무들이라고 치하해주시고나서 뜨거운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나는 우리 혁명의 만년재보인 구호문헌들을 희생적으로 지켜낸 이 동무들의 영웅적소행을 높이 평가합니다.

… 우리는 고난의 행군시기에 수령결사옹위의 빛나는 모범을 보여준 이 동무들을 잘 치료해주어 세상에 떳떳하게 내세워야 합니다.》

정녕 격정의 눈물없이는 받아안을수 없는 사랑의 말씀이였다.

이어 구호문헌보존과 관련한 가르치심을 주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다시금 녀성강사의 얼굴을 찬찬히 보시며 그동안의 치료정형에 대하여 물어주시였다.

부대일군으로부터 그에 대한 대답을 들으신 장군님께서는 아직 저 동무들의 얼굴과 손에 화상자리가 적지 않게 남아있는데 다른 나라에 보내서라도 꼭 원상대로 회복시켜주어야 하겠다고, 저 동무들이 다 곱게 생긴 동무들인데 얼굴의 화상자리를 완전히 없애야 하겠다고 하시면서 곁의 한 일군에게 외국에 알아보고 인차 보내여 원상대로 아예 곱게 만들어가지고 나오도록 할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순간 일군들은 저으기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이께서 그들을 잘 치료해주자고 하실 때까지만 해도 어느 한 중앙병원을 념두에 두었지 다른 나라에까지 보내여 치료받게 할 생각을 하고계시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것이다. 더우기 외국에서의 정형수술은 그 돈이 엄청나서 보통사람들은 엄두를 내지 못하는 치료가 아닌가.

하지만 혁명적구호문헌을 지켜내기 위해 한몸을 불속에 서슴없이 내던진 영웅들을 천만금을 들여서라도 본래의 제 모양을 되찾아 시대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내세우시려는 장군님의 의지는 확고하시였다.

구호문헌보존교양실을 다 돌아보시고 밖으로 나가시려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강사 겸 관리원들의 모습을 다시 돌아보시며 일군들에게 이들이 꼭 자기들의 얼굴을 원상대로 회복하도록 할데 대하여 다시금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안면수술이라는것은 높은 기술이 필요하다고, 우리가 외화를 좀 써서라도 이 동무들의 안면수술을 손색없이 하도록 하여야 하겠다고, 이 동무들에게도 다 자녀들이 있겠는데 본래의 얼굴로 돌아온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을 꼭 보여주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하시고나서 녀성강사를 가리키시며 말씀하시였다.

《특히 이 동무는 녀성의 몸으로 키를 넘는 불길속에 뛰여들어 우리 당의 귀중한 혁명재보인 구호문헌들을 구원한 20세기의 녀성영웅인데 아낄것이 없습니다.》

그러시면서 해당 일군에게 거듭 이르시였다.

《꼭 그렇게 조직하여야 하겠습니다.》

일군들모두의 눈시울이 축축히 젖어들었다.

지난 기간 10여차례의 수술을 진행하여 본래의 모습에는 비길수 없지만 할수 있는껏 했다고 생각해온 그들이였다.

하지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수령결사옹위의 길에 한몸 서슴없이 내댄 그들의 모습은 정신뿐아니라 겉모습까지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와야 한다고 생각하시는것이 아닌가.

눈물이 글썽해진 녀성강사는 걸음을 옮기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 친딸처럼 허물없이 자기가 얼마전에 딸을 낳았는데 이름을 선정이라고 지은 사실에 대해서까지 무랍없이 말씀드리였다.

《오, 우리 당의 선군정치를 반영하여 선정이라고 지었구만.》

그이께서는 환하게 웃으시며 부대정치위원에게 저 동무가 화상을 당한 다음 결혼을 했는가, 남편은 뭘 하는가 물으시고 강사동무의 남편이 기특하다고, 쉽지 않은 동무라고 치하해주시였다.

위대한 어버이의 눈물겨운 사랑과 은정을 받아안은 강사 겸 관리원들은 그만 뜨거운 눈물을 쏟으며 허리굽혀 인사를 드리였다.

《장군님, 정말 고맙습니다. 부디 건강하십시오》

《감사하오. 치료를 잘 받고 돌아오기 바랍니다.》

이렇게 되여 이곳 해군부대의 이름없는 강사 겸 관리원들은 사랑의 비행기를 타고 외국으로 치료의 길에 오르게 되였다.

장군님께서는 외국에서 치료를 받고있는 사랑하는 전사들을 늘 잊지 않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전선시찰의 바쁘신 속에서도 그간 치료정형에 대하여 해당 일군들에게 구체적으로 알아보시고 필요한 대책을 다 취해주시였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치료가 잘되고있다는 보고를 받으시였을 때에는 전사들의 모습을 그려보시며 기뻐하시였다.

그 나라 의사와 간호원들은 엄청난 치료비를 지불하며 근 1년간이나 고급호실에서 입원치료를 받는 그들을 보면서 어쩌면 한 나라의 최고령도자께서 평범한 전사들의 치료에 그처럼 크나큰 관심과 은정을 돌려주실수 있는가고 경탄을 금치 못해하였다.

그러던 주체94(2005)년 4월 어느날 전선시찰의 길에서 어느 한 부대를 돌아보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들에 대한 치료정형을 료해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지난해 나는 …부대에 가서 타래치는 불길속에 뛰여들어 귀중한 구호나무들을 구원하고 장렬하게 희생된 17명의 공화국영웅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속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강사들도 만나보았습니다. 우리 당의 귀중한 만년재보인 구호나무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온몸에 심한 화상을 당하면서도 불속에서 뛰쳐나오지 않은 그들의 소행은 정말 감동적이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때 얼굴과 손을 비롯하여 몸에 심한 화상을 입은 그들을 다른 나라에 보내여 정형수술을 잘해주도록 하였습니다.》

바로 그렇게 떠나보내신 사랑하는 전사들이 자기의 원래 모습을 되찾고 두 남성강사 겸 관리원들이 먼저 조국으로 돌아온데 이어 근 1년간의 치료를 마친 녀성강사도 드디여 위대한 어버이의 품으로 돌아온것이였다.

김영옥이 치료를 마치고 조국에 돌아온다는 보고를 받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못내 기뻐하시며 일군들이 비행장에서 그를 맞이하도록 하시고 달라진 그의 모습을 사진찍어오도록 이르시였다.

얼마후 그를 비롯한 세 강사의 모습을 찍은 사진을 받으신 장군님께서는 보고 또 보시며 이것은 기적이라고, 대단히 기쁜 일이라고, 이 사진을 보니 처녀때 모습보다 더 곱게 되였다고 기쁨을 금치 못하시였다.

은혜로운 태양의 빛발을 받아안고 화상당하기 전보다 더 아름다와진 얼굴본색을 되찾은 그들의 모습이야말로 선군시대 수령결사옹위전사들의 참모습이였다.

인간육체의 선천적인 미는 부모에게서 물려받지만 영웅의 아름다움은 위대한 령도자가 베풀어주는것이다.

정녕 이 나라 천만군민모두의 운명을 맡아 전적으로 책임지고 보살펴주신 영원한 삶의 태양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품속에서 수많은 유명무명의 전사들이 시대의 영웅으로 빛나는 모습을 새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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