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선군길을 병사들과 함께
 

생사운명을 함께 할 총대동지


1

각별한 인연(1)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인민군군인들을 찾아 걷고걸으신 군부대시찰의 길에서는 위대한 선군령장과 병사들사이에 각별한 인연이 맺어지는 감동깊은 화폭들이 수많이 펼쳐져 만사람의 가슴을 뜨겁게 울려주었다.

꽃향기가 봄바람에 실려오는 주체93(2004)년 4월초 어느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어느 한 부대의 녀병사들을 찾아주시였다.

그들로 말하면 인적드문 외진 산중초소에서 어버이수령님 서거이후 10년세월 꽃다발을 엮어 길손들을 통하여 평양의 만수대언덕에 높이 모신 수령님의 동상에 보낸 기특한 소행의 주인공들이였다.

장군님께서는 뜻깊은 4월에 들어서면서 어버이수령님을 더더욱 그리워할 녀병사들의 심정을 헤아리시여 태양절을 앞두고 그들을 찾아주시였던것이다.

장군님께서는 집을 멀리 떠난 딸자식들을 오래간만에 만난 친부모의 심정으로 그들의 건강상태부터 먼저 헤아려주시고 녀성군인들자체의 힘으로 병실을 멋지게 지어놓은 이야기도 들어주시며 오랜 시간 중대군인들과 함께 계시면서 생활의 구석구석을 일일이 보살펴주시였다.

이윽하여 장군님께서는 행복에 겨워 어쩔줄 몰라하는 녀병사들을 대견한 시선으로 바라보시며 《…중대는 이미부터 나와 인연이 있는 중대라고 말할수 있습니다.》라고 하시였다.

순간 중대군인들은 세찬 충격에 휩싸였다. 자기들의 중대를 처음으로 찾아주신 그이께서 자기들과 이미부터 인연이 있다고 말씀하시는것이 아닌가.

인연이란 흔히 어떤 사연으로 사람들사이에 맺어지는 관계를 이르는 말이다.

장군님께서 언제 한번 만나 이야기를 나누신적도 없는 이곳 중대를 가리켜 이미부터 인연이 있는 중대라고 하신 말씀속에는 가슴뜨거운 사연이 깃들어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자신을 우러르는 녀병사들을 둘러보시며 추억깊은 어조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몇년전에 내가 최전연에 나갔다가 평양으로 들어가는데 이 령길우에서 들꽃묶음을 든 녀성군인들이 깍듯이 경례를 하였습니다. 그들을 지나치면서 나는 심심산골 령길에 웬 녀성군인들이 꽃다발을 들고 서있을가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알고보니 그들은 …중대의 군인들이였는데 만수대언덕에 모셔진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에 꽃다발을 보내려고 평양으로 가는 차들을 기다리고있었습니다. 이 중대 군인들은 수령님께서 서거하신 때로부터 지금까지 10년세월 심산속에 피여나는 들꽃들과 자기들이 정성다해 가꾼 꽃으로 다발을 만들어 평양에 올려보냈다고 합니다.》

전선시찰의 길에서 잠간 띄여보신 평범한 녀병사들의 아름다운 소행을 잊지 않으시고 다시금 되새기시는 그이의 말씀에 녀병사들의 두볼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돌이켜보면 산천초목도 비애에 몸부림치던 주체83(1994)년 7월의 그날, 중대군인들은 어버이수령님께서 뜻밖에 서거하시였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에 접하자 수령님을 목메여 부르며 몸부림쳤다.

그때로부터 그들은 어버이수령님을 잃은 비애의 아픔을 안고 꽃다발을 엮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조국의 산중초소를 지켜선 군인들이여서 초소를 비울수가 없었다.

중대군인들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모대기다가 령길에 지나다니는 자동차들을 통하여 피눈물을 흘리며 엮은 꽃다발을 만수대언덕에 높이 모신 어버이수령님의 동상에 보내기로 하였다.

이 일은 날과 달이 가고 해가 바뀌여도 계속되였다.

녀병사들은 산속에 피여나는 꽃만으로는 성차지 않아 참나리꽃을 비롯한 갖가지 꽃들을 중대마당가에 떠옮겨오고 꽃씨도 얻어다 정성껏 심고 가꾸었다. 그것으로 자기들의 뜨거운 마음이 담긴 꽃다발을 정히 엮어 평양으로 올라가는 차들에 보내며 녀성군인들은 목메여 부탁하였다.

《이 꽃을 만수대언덕에 모셔진 어버이수령님의 동상에 진정해주십시오. 우리 초소 군인들의 뜨거운 부탁입니다.》

이렇듯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다함없는 그리움을 안고 송이송이 엮은 꽃다발을 손에 들고 령길우에 서있던 녀병사들을 전선길에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띄여보신것이였다.

어버이수령님의 유훈을 지켜, 사랑하는 조국과 인민의 안녕을 위하여 멀고 험한 전선길을 쉬임없이 달리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 이름없는 녀병사들의 수수한 들꽃향기는 남모르는 힘이 되고 고무가 되였다.

강산이 변한다고 하는 그 10년세월, 기특하고 사랑스러운 녀성군인들이 비록 자기들은 어버이수령님의 동상앞에 서지 못해도 사무치는 그리움의 마음만은 보내고싶어 평양으로 가는 차들을 세워 올려보낸 들꽃다발들은 정녕 그 얼마였던가.

길가에서 넘겨받은 사연깊은 들꽃다발을 소중히 안고와 만수대언덕의 위대한 수령님 동상앞에 정중히 증정하고 처녀병사들의 영생축원의 인사를 삼가 전해올리며 눈물머금은 이름모를 사람들은 또 얼마였던가.

어버이수령님을 그리는 병사들의 그 마음이 눈물겹게 대견하고 뜨거우시여 감사도 보내주시고 이들의 아름다운 소행을 내용으로 한 예술영화도 만들도록 해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이시였다.

민족대국상의 그날로부터 10년세월 중대군인들이 해마다 많은 꽃다발들을 엮어 만수대언덕에 모셔진 어버이수령님의 동상에 보낸것은 수령님의 전사, 제자들의 응당한 도리이고 본분이였다.

그런데도 장군님께서는 중대군인들의 충정의 모습에서 그토록 큰 감동을 받으시고 그들을 내세워주시였을뿐아니라 오늘은 또 중대에까지 찾아오시여 그때의 일을 감회깊이 회고하시며 인연깊은 중대라고 하시니 녀병사들은 북받쳐오르는 격정을 누를수 없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외진 산중초소에서 자나깨나 위대한 수령님을 그리며 꽃다발을 엮어온 중대군인들의 소행이 너무도 기특하여 그들을 꼭 만나보려고 하였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참으로 경애하는 장군님과 심산속 녀병사들사이에 10년세월 소리없이 오고간 하많은 이야기와 쌓이고쌓인 그리움이 크나큰 감격속에 분출되는 뜻깊은 자리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날 심산속에 아담하게 자리잡은 중대의 여러곳을 다 돌아보시고 이 중대는 군인들의 사상정신상태도 좋고 전투훈련도 잘하며 물질문화생활수준도 높은 중대라고 과분한 평가를 주시였다.

그리고 중대를 떠나실 때에는 중대이름을 머리속에 기억하고 가겠다고, 이 중대는 이름자체가 인상적이여서 외우기도 좋다고 하시며 감나무중대와 함께 유명한 중대가 또 하나 생겨났다고 뜻깊게 말씀하시였다.

장군님께서 인연이 있는 중대라고 뜻깊게 불러주신 그 말씀에는 중대군인들이 꽃다발과 더불어 빛나는 어제날처럼 오늘도 래일도 변함없이 혁명의 꽃으로 활짝 피여나기를 바라시는 그이의 간곡한 당부가 담겨져있었다.

이날 인민군지휘성원들과 자리를 함께 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중대를 돌아본 소감에 대하여 이야기하시면서 중대의 녀성군인들이 수령님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과 열화같은 흠모의 정을 안고 10년동안 꽃다발을 마련하여 만수대언덕에 모셔진 수령님의 동상에 보내고있는데 그들의 소행이 기특하다고, 그곳 중대는 감나무중대, 다박솔중대와 함께 들꽃중대로 우리 군대와 인민의 기억속에 남아있을것이라고 뜨거운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들꽃중대!

경애하는 장군님의 크나큰 사랑과 믿음속에 그이와 각별한 인연을 맺은 이곳 중대는 그후 위대한 선군령장의 기억속에 살고 조국과 인민이 다 아는 들꽃중대로 그 이름 널리 알려지게 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과 인연을 맺은 병사들속에는 어제날의 들꽃소녀 김명희도 있다.

그는 애어린 소녀시절 어버이수령님의 현지지도표식비앞에 들꽃묶음을 드려 장군님과 인연이 맺어진 녀병사이다. 어제날의 그 들꽃소녀가 총대로 경애하는 장군님을 결사옹위하는 녀병사로 어엿하게 자란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군부대시찰의 바쁘신 길에서도 그를 만나주시였다.

그날은 주체92(2003)년 1월 어느날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자기를 만나주신다는 뜻밖의 소식에 접한 녀병사의 가슴은 한없이 울렁이였다. 얼마나 뵙고싶던 장군님이신가.

변변히 인사도 올리지 못하고 서있는 그를 보시며 장군님께서는 환한 미소를 담으시고 오늘 김명희동무를 만나니 반갑다고 다정히 말씀하시며 일군들에게 친히 그를 소개하시였다.

《이 동무가 바로 몇해전 …비행장에 있는 위대한 수령님의 현지지도표식비에 들꽃묶음을 드렸던 동무입니다.》

빨갛게 상기된 병사의 얼굴에는 어느덧 두줄기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고있었다.

잊지 못할 7년전 들꽃으로 인연이 맺어진 애어린 소녀를 아직도 잊지 않고 찾으시여 동무라 불러주시며 내세워주시는 그 사랑에 감격의 눈물을 짓는 병사를 정깊은 눈길로 바라보시던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추억깊은 이야기를 들려주시였다.

《나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비행장을 현지지도하신지 44돐이 되는 날에 …비행장을 현지시찰하면서 수령님의 현지지도표식비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발길이 잘 미치지 않는 외진 곳에 세워놓은 현지지도표식비앞에 희한한 꽃다발이 아니라 들판에 흔히 있는 꽃을 가지고 만든 들꽃묶음이 놓여있었습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나는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그리움이 더해져 눈물이 나오는것을 어쩔수 없었습니다. 들꽃묶음을 놓은것을 보니 어른이 아니라 어린이들의 소행같았습니다. 그래서 더 눈물이 났습니다. 그때 김명희동무와 어린이들은 현지지도표식비앞에 들꽃묶음을 놓고 인사를 한 다음 거기에서 놀다가 승용차들을 타고 온 간부들이 표식비앞에 서있는 광경을 나무뒤에 숨어서 다 보았다고 합니다. 나는 며칠후에야 그 소행의 주인공이 바로 당시 11살밖에 안되던 김명희동무와 그의 동생 그리고 한마을에서 사는 어린 처녀애라는 보고를 받고 철부지인 그들이 너무도 대견하여 모두에게 천연색텔레비죤수상기와 손풍금, 록음기를 선물로 보내주도록 하였으며 그 소행을 널리 소개선전하도록 하였습니다.》

한다발의 들꽃묶음에서 애어린 소녀의 그지없이 소박하고 깨끗한 그리움의 그 마음을 찾아보시고 그리도 값높이 내세워주신 전설같은 이야기를 받아안는 일군들의 눈가에도 깊은 감동이 어리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병사가 된 어제날의 들꽃소녀를 만나신것이 못내 기쁘신듯 이렇게 말씀을 이으시였다.

《그런 김명희동무가 이제는 인민군대에 입대하여 …복무한다니 정말 기쁩니다.》

그러시면서 자신께서는 동무가 앞으로 군사복무를 잘하여 훌륭한 병사가 되기 바란다고 하시며 그의 앞날을 축복해주시였다.

녀병사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베푸시는 사랑에 감격하여 몸둘바를 몰라했다.

어릴 때의 그 일로 하여 경애하는 장군님으로부터 분에 넘치는 치하의 말씀과 함께 대를 두고 길이 전해갈 사랑의 선물까지 받아안은 그로서는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하여 총을 잡은 군대가 된것이 너무나 응당한 일이였다.

그런데 장군님께서는 그의 소행을 잊지 않으시고 또다시 높이 평가해주시는것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후 전선시찰의 길에서 잠시 만나시였던 들꽃소녀를 잊지 못해하시며 그의 얼굴이 튼것을 걱정하시여 사랑의 고급화장품을 일식으로 보내주시였다.

이 나라의 그 어디에서나 흔히 볼수 있는 한 녀병사의 어제와 오늘을 그토록 귀중히 여기시며 마음속 깊은 곳에 각별한 인연으로 간직해주신 경애하는 장군님.

참으로 어버이수령님을 그토록 사무치게 그리며 병사시절의 순간순간을 충정과 위훈으로 빛내여가는 병사들에게 열, 백의 사랑을 더 주고싶으신것이 경애하는 장군님의 심정이였다.

 

2

각별한 인연(2)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못 잊어 추억하여주신 군인들가운데는 감나무중대와 더불어 각별한 인연을 맺으시고 혁명적군인가정의 본보기로 온 나라에 내세워주신 엄복순군인가정도 있다.

고난의 그 나날 자식들을 조국보위초소에 내세운 자랑스럽고 미더운 엄복순가정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언제나 잊지 않고계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멀고 험한 전선시찰의 길에서 그의 자녀들을 만나주시고 그들모두가 총대가정의 영예를 빛내여나가도록 믿음을 주시고 사랑을 베푸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어느 한 부대의 녀성중대를 찾으시였던 주체92(2003)년 6월이였다.

눈부신 아침해살을 함뿍 받으시며 중대마당에 들어서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중대지휘관의 인사를 받으시고 중대정치지도원에게 다가서시다가 그를 알아보시고 못내 반가와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군인가정의 본보기로 내세워주신 엄복순의 둘째딸 손경순이였던것이다.

전연초소에서 그이를 또다시 만나뵙게 된 너무도 크나큰 감격에 몸둘바를 몰라하던 중대정치지도원 손경순은 가까스로 마음을 다잡으며 정중히 인사를 올리였다.

그이께서는 뜻밖에 그를 만나신 기쁨이 크신듯 엄복순동무의 둘째딸이 어떻게 여기에 왔는가고 하시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시였다.

그를 대신하여 부대의 한 일군이 그가 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전연초소에 서겠다고 하여 여기에 왔다고 말씀드렸다.

장군님께서는 환하게 웃으시며 온 나라가 다 아는 군인가정의 딸이 확실히 다르다고, 어제날의 감나무중대 병사가 전연초소의 어엿한 중대정치지도원으로 자라난것을 보니 감개무량하다고, 감나무중대에 있을 때보다 얼마나 숙성하였는지 이제는 잘 몰라보겠다고 저으기 뜨거운 감회를 터치시였다.

사실 장군님께서는 엄복순군인가정과 더불어 그 집안의 둘째딸인 손경순이와도 인연이 깊으시였다.

몇해전 장군님께서는 엄복순군인가정을 만나주시고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시다가 감나무중대에서 복무하던 언니인 손경실이가 군관학교에 가게 되고 동생 손경순이가 그 자리에 몹시 서고싶어한다는것을 알게 되시였다. 그때 손경순은 갓 입대하여 다른 구분대에서 복무하고있었다.

그이께서는 어머니와 언니의 뒤를 이어 영광의 감나무초소에서 총대계주봉을 굳건히 지켜가려는 그의 마음이 더없이 기특하시여 한동안 사랑스러운 시선을 그에게 주시다가 좌중을 둘러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경실이가 올해 김일성정치대학에 가면 동생인 경순이가 감나무중대에 가서 군사복무를 하여야 하겠습니다.》

순간 그는 막 꿈을 꾸는것 같았다.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다녀가신 영광의 초소, 처녀시절 어머니의 복무의 자욱이 찍히고 언니가 대를 이어 지킨 초소, 그리고 장군님께서 온 나라에 높이 내세워주시는 초소에 서기를 얼마나 절절히 소망하였던가.

그이께서는 소원이 성취된 기쁨에 어쩔줄을 몰라하는 그에게 경순이가 그 중대에 가면 언니를 대신하여 벽보주필사업을 맡아하는것이 좋겠다고 이르시였다.

손경실이가 맡아하던 중대벽보주필사업을 그의 동생이 계속해나가도록 하여 두 자매를 감나무중대의 자랑으로 끝없이 내세워주시려는 웅심에서 나온 가르치심이였다.

손경순은 《알았습니다.》의 힘찬 대답이 마음속에서 세차게 용솟음쳤으나 잠시 머뭇거리지 않을수 없었다.

언니는 벽보를 잘 만들어 그이께 기쁨까지 드렸건만 그자신은 붓글씨가 별로 곱지 못했던것이다.

그이께서는 이에 대하여 보고받으시고 나어린 병사의 마음에 비낀 그 한점의 그늘도 가셔주시려고 우렁우렁한 음성으로 이렇게 고무해주시였다.

《경순이는 붓글을 잘 쓰지 못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배우면 됩니다. 무슨 일이나 마음먹고 달라붙으면 못해낼 일이 없습니다.》

그는 신심이 차넘치는것을 온몸으로 느끼며 큰소리로 《알았습니다.》라고 힘차게 대답올렸다. 이렇게 되여 그는 감나무초소에 서게 되였던것이다.

그렇듯 다심한 사랑과 힘을 주어 감나무중대에 보냈던 그 병사가 어느새 세월이 흘러 이제는 전연초소의 중대정치지도원으로 몰라보게 성장하였으니 그이의 감회가 어찌 크지 않을수 있으랴.

그이께서는 바쁜 현지지도의 길이였지만 부모들의 안부도 알아보시고 그의 희망도 친근하게 물으시며 중대의 맏누이구실을 잘해나가도록 또다시 힘을 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후 전선시찰의 길에서 엄복순의 아들도 만나주시였다.최전연시찰의 길을 이어가시던 장군님께서 그가 복무하고있는 구분대를 찾아주신 그날은 주체94(2005)년 11월 어느날이였다.

그 구분대는 해발 1 300m가 넘는 고지, 전연에서도 맨 막바지인데다가 바람이 세차고 땅이 척박하기 그지없는 험한 곳에 자리잡고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전방지휘소에 왔던 기회에 병사들을 만나보려고 들렸다고 하시며 전초선병사들의 생활형편을 일일이 보살펴주시고 걸리는 문제들도 풀어주시였다.

그러시던 그이께서는 뜻밖에도 름름하기 그지없는 구분대정치지도원이 다름아닌 온 나라에 군인가정으로 소문난 엄복순의 아들이라는것을 알게 되시였다.

대견함을 금치 못하는 뜨거운 표정이 장군님의 만면에 어리였다.

《최전연의 고지에서 엄복순의 아들 손경호동무를 만나니 반갑습니다. 동무가 최전연에서 제일 높고 험한 고지에서 대대정치지도원을 하고있는 모습을 보니 대견합니다.》

그이께서는 《세 자식을 모두 전연부대의 정치일군으로 내세운 동무의 부모들도 괜찮습니다.》라고 하시며 그의 미더운 모습을 보고 또 보시였다.

자식들모두를 보다 더 어렵고 힘든 전연부대에 자진하여 보내고 온 나라에 소문난 군인가정의 영예를 빛내여나가고있는 엄복순군관부부에 대한 믿음과 만족이 그이의 안광에 뜨겁게 흐르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그의 등을 두드려주시며 말씀하시였다.

《우리가 총대가정의 본보기로 내세운 엄복순가정은 응당 그래야 합니다. 총대가정의 맏이답게 앞으로 일을 잘하여야 하겠습니다.》

총대가정의 영예를 꿋꿋이 이어가도록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주시고 오늘은 또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시는 장군님의 사랑에 그는 끝내 목메여 흐느끼였다.

평범한 군인들과 맺으신 각별한 인연을 언제나 잊지 않으시고 믿음과 사랑을 거듭거듭 안겨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을 우러르며 일군들은 위대한 선군령장의 사랑의 세계, 심원한 혈연의 의미가 안겨와 진정 가슴벅차오름을 금치 못하였다.

어이하여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인민군장병들과 맺으신 각별한 인연을 그토록 귀중히 여기시며 크나큰 사랑과 믿음을 거듭거듭 안겨주시는것인가.

병사들에 대한 선군령장의 대해같이 넓고 은혜로운 사랑의 세계를 어찌 인연이라는 평범한 말로 다 헤아릴수 있겠는가.

경애하는 장군님과 인민군장병들사이의 관계는 사상의 피, 생사운명을 함께 할 숭고한 뜻을 나눈 혈연중에서도 특이한 혈연의 관계였다.

주체93(2004)년 태양절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사랑에 대한, 혈연의 관계에 대한 참으로 뜻깊은 말씀을 하시였다.

수령님께서 교시하신바와 같이 사랑에는 부자간의 사랑, 부부간의 사랑, 친우들간의 사랑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사랑이 있지만 그가운데서도 동지들사이의 사랑이 제일 귀중하다. 지난 시기 일부 사람들은 수령님과 나의 관계를 부자간의 관계라고 하였는데 수령님과 나의 관계는 부자간의 관계이기 전에 수령과 전사의 관계, 동지적관계이다. … 수령님께서는 나를 항상 한가정의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로가 아니라 혁명동지로 대하시였다.

위대한 사랑과 혈연의 세계가 동지라는 성스러운 이름으로 천만심장을 울려주는 그 자리에서 그이께서는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인민군대안의 모든 장병들은 그가 병사이건 사단장이건 다 나의 귀중한 혁명동지들입니다.》

인민군지휘성원들도 나어린 병사들도 다 최고사령관의 혁명동지!

바로 그것이였다. 최고사령관과 인민군장병들사이의 혈연은 장령에게나 애어린 병사에게나 꼭같이 맺어진 위대한 선군혁명동지애의 혈연이였다.

불보다 뜨거운 그 혈연의 세계에서 인민군군인들은 오늘도 변함없는 믿음과 영광을 누려가고있으니 그들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3

《친한 동무 대할 때처럼…》
 

주체92(2003)년 7월 어느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멀고 험한 전선길을 달리시여 어느 한 부대를 찾아주시였을 때의 일이다.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부대의 종합훈련강실에 들리시여 군인들의 훈련정형을 료해하시였다.

그이께서는 한 군인의 송수신훈련을 이윽토록 보아주시고 대단히 만족하시여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잘 두드리누만. 잘해, 뭐니뭐니해도 군인들의 첫째가는 혁명임무야 훈련을 잘하는것이 아니겠소. 그렇지 않습니까?》

군인들의 훈련모습을 보아주신 장군님께서는 미덥고 대견한 자식들을 만나신듯 정겨운 시선으로 둘러보시며 그들과 허물없이 담화를 하시였다.

나이는 몇살인가, 언제 입대하였는가, 군대에 나와 키는 얼마나 컸는가. …

그러시다가 곁에 있는 부분대장에게 물으시였다.

《동무는 몇살입니까?》

《스무살입니다.》

《키는 얼마입니까?》

그런데 부분대장은 그이의 물으심을 미처 알아듣지 못했는지 아니면 당황했는지 이번에도 스무살이라고 대답하는것이였다.

《아니, 키가 얼마나 됩니까?》

《1m 80cm입니다.》

《1m 80cm? …》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고개를 저으시며 미소를 지으시였다. 척 보기에도 그렇게까지는 돼보이지 않았던것이다.

그러자 부대의 일군이 이 동무가 지금 당황해서 대답을 제대로 드리지 못하는것 같다고 말씀드리였다.

그이께서는 호탕한 웃음을 터치시였다.

《그렇게 당황해할것이 없습니다.

그저 친한 동무 대할 때처럼 하면 됩니다.

최고사령관이라고 해서 뭐 별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시고는 부분대장의 긴장한 마음을 풀어주시려는듯 한 일군에게 저 동무옆에 가 서보라고 하시였다. 그 일군이 부분대장옆에 가 서자 그이께서는 다시 물으시였다.

《키가 얼마라구?》

그제서야 그 군인은 마음이 안정되였는지 1m 75cm라고 대답올리는것이였다.

일군도 자기의 키가 1m 75cm라고 보고드리자 장군님께서는 《그럼 어디 좀 봅시다.》라고 하시며 몸소 그들의 키를 가늠해보시였다.

그러시고는 아직도 다소 당황함을 풀지 못하고있는 부분대장에게 마음이 가시여 인자하신 어조로 다시금 이야기를 시작하시였다.

《동무는 집이 어디에 있습니까?》

《황해북도 황주군 흑교리입니다.》

《오, 황주! 그래, 부모들은 다 잘 있소?》

《다 잘 있습니다.》

《고향에 편지랑 합니까?》

《예, 자주 합니다.》

《초소소식이랑 자주 전해주라구.》

그제서야 부분대장의 얼굴에 밝은 미소가 피여올랐다.

강실안의 모든 군인들이 이날의 행운을 독차지한 자기를 부럽게 바라보니 은근히 으쓱해하는듯싶었다.

장군님께서는 그의 어깨에 다정히 손을 얹으시였다.

《오늘 부분대장이 내가 물어보는 말에 당황하여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는데 그렇게 어려워할것은 없습니다.

최고사령관도 인민들속에서 나왔으며 병사들과 고락을 같이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병사들과 사소한 간격도 없이 지내고있으며 그들의 귀속말도 다 들어주고있습니다.》

《알았습니다, 장군님.》

그이께서는 그제서야 마음이 놓이시는듯 강실을 나서시였다.

허나 감격에 휩싸인 군인들은 오래도록 움직일줄 몰랐다.

《그저 친한 동무 대할 때처럼 하면 됩니다.》

아까는 미처 다 헤아리지 못했던 이 한마디 말씀이 안고있는 하늘처럼 무한대한 사랑과 동지애의 세계가 젊은 심장들의 피를 뜨겁게 끓어번지게 하였던것이다.

세상에는 령도자도 많고 최고사령관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름없는 병사들과 말그대로 친한 동무처럼 아무 간격도 허물도 없이 어울리시며 뜨거운 애정을 기울이신 장군님 같으신분이 또 어데 있으랴.

정녕 그이는 위대한 겸손성, 위대한 평범성, 아니 인간의 그 어떤 언어로도 표현할수 없는 그러한 위대성을 지니신분이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전선시찰의 길은 바로 이런 위대한 사랑과 믿음속에 이어졌으니 전군을 하나의 동지로 만드시고 병사들과 생사고락을 같이하신 위대한 선군령장의 품속에서 키도 마음도 자라난 인민군장병들은 보람찬 군사복무의 길을 힘차게 걸어나갈수 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전선길에는 천만군민의 심장을 울려주는 이런 사랑의 이야기가 수많이 새겨져있다.

병사들을 위해서는 그 무엇도 아끼지 않으시며 그들의 생활을 육친의 정으로 따뜻이 보살펴주시고 그들과 고락을 함께 나누시는 장군님의 사랑은 찾으시는 모든 초소마다에 뜨겁게 어려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어느 한 인민군부대를 찾으시였던 주체93(2004)년 4월 어느날이였다.

부대지휘관들의 안내를 받으시며 새로 건설한 종합훈련장 감시대에 오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현대전의 특성과 주체전법의 요구에 맞게 설비된 훈련장의 전경을 이윽토록 만족하게 굽어보시였다.

《감시대에서 보니 종합훈련장전경이 한눈에 안겨옵니다.

…부대에서 종합훈련장을 정말 멋있게 건설하여놓았습니다.》

이윽고 훈련장에서는 관하부대들이 중대별로 진행하는 각이한 훈련이 시작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을 훈련장에 모시고 그이께 자기들의 훈련모습을 보여드리게 된 군인들은 일당백기상과 용맹에 넘쳐 실전의 분위기속에서 훈련동작을 수행해나갔다.

그런데 훈련이 한창 진행될 때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후둑후둑 비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다행히도 경애하는 장군님을 감시대안에 모신 까닭에 마음이 놓인 일군들은 밖에 내리는 봄비에 대하여서는 별로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군인들의 훈련만 지켜보고있었다.

그런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는것이 아닌가.

《비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는데 군인들이 훈련하는것을 감시대밖에 나가서 봅시다. 군인들이 밖에서 찬비를 맞으며 훈련하는데 우리가 어떻게 감시대안에서 훈련을 보겠습니까.》

일군들과 부대지휘관들은 불시에 솟구쳐오르는 뜨거운것을 삼키지 않을수 없었다.

훈련하는 군인들이 비를 좀 맞는것이 무슨 큰일이라고 전선시찰의 그 기나긴 세월 한겨울의 세찬 눈보라와 마가을의 찬비를 수없이 맞으신 그이께서 일부러 밖에 나오시여 함께 비를 맞으신단 말인가.

일군들이 거듭 만류하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나의 건강을 념려하는 동무들의 마음은 알만 하다고 하시며 그러나 군인들이 비를 맞으며 훈련할 때에는 최고사령관도 함께 비를 맞아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야전복이 비에 젖는것도 아랑곳없이 군인들의 훈련동작을 바라보시며 군인들이 훈련을 잘한다고, 훈련을 만족하게 보았다고 높이 평가하시는 장군님의 모습을 일군들과 병사들은 뜨거운 격정속에 우러르고 또 우러렀다.

정녕 그이의 모습은 그 무엇에도 비길수 없는 병사들에 대한 사랑을 지니신 어버이의 모습이였고 싸움의 그날 포화의 불비속도 병사들과 함께 헤쳐갈 위대한 백두령장의 모습이였다.

언제인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인민군지휘성원들에게 《앞으로 인민군부대들을 현지지도할 때 병사들을 많이 만나보려고 합니다. 노래에도 있는것처럼 나는 병사들과 함께 있을 때가 제일 기쁩니다.》라는 말씀을 하신적이 있다.

군복을 입은 병사들과 함께 있는것을 제일 기뻐하시는 그이께서는 이러한 말씀도 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부대에 나가시면 병사들과 허물없이 마주앉아 담화를 하군 하시였다, 전화의 그날에도 수령님께서는 영웅 및 모범전투원들을 만나 그들의 위훈담이며 노래까지 들어주시였다. …

그러시면서 그이께서는 군부대시찰의 길에 새겨진 못 잊을 하나의 사연을 추억에 떠올리시였다.

얼마전에 나는 전사들과 함께 한때를 즐기고싶어 차에 노래반주기재를 싣고 어느 한 구분대를 찾아갔댔다. 전사들은 내가 노래반주기재를 직접 동작시켜주면서 노래를 부르게 하니 성수가 나서 목청을 뽑았다. 그날 나는 오전시간을 전사들과 함께 보냈다. …

동서고금의 력사에는 국가령도자나 군통수권자들도 많고 그들의 행적을 찬미하는 덕행의 일화들도 적지 않게 전해오고있다.

허나 그것은 많은 경우 평범한 인민이나 군사들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참다운 덕의 발현이 아니라 그들을 끌어당기고 세상을 현혹시키기 위한 정치적분장에 지나지 않는것이였다.

병사들과 함께 전호속에서 흙냄새, 화약냄새도 같이 맡으시며 생사운명을 함께 하신 경애하는 장군님.

병사들이 그리우시여 낮에 밤을 이으시며 사계절 전선길에 계시였건만 그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다시금 보지 않고는 견딜수 없으시여 조국과 민족의 운명이 실린 야전차에 노래반주기재를 싣고 찾아가군 하신 경애하는 장군님.

병사들을 모두 불러오게 하시여 그 자리에서 친히 노래반주기재를 동작시켜주시며 마음껏 노래를 부르게 하시고는 군직의 차이도 다 잊고 마치 친부모앞에 자랑하듯 목청을 뽑는 그들과 함께 계시는것이 더없이 즐거우시여 만시름을 잊고 웃음지으시던 장군님과 같은 덕망높은 령도자가 과연 이 세상 그 어느 나라 력사에 있었던가.

장군님은 병사들이 그리워 찾아가고 병사들은 장군님을 따르고 받들어온 감동깊은 이야기속에는 사랑과 충정의 세계가 아름답고 뜨겁고 진솔하게 어려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가꾸어주신 숭고한 사랑과 그리움의 화원에서는 혼연일체의 꽃이 사시장철 더 활짝 피여났다.
 

4

《세월과 더불어 길이 전해질것입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인민군구분대들을 시찰하시면서 천금같은 시간을 바쳐 사랑의 기념사진을 찍으시였다.

마치도 병사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천리도 넘는 전선길을 달려오신듯, 최전연초소에 찾아오신것이 다름아닌 전사들과 상봉의 화폭을 남기기 위해서인듯 찾으시는 부대, 구분대들마다에서 장군님께서는 잊지 않고 반드시 기념촬영을 하군 하시였다.

그 나날들에 새겨진 사연들은 또 얼마나 가슴뜨거운것인가.

비가 온다고 하여 그냥 가면 군인들이 몹시 서운해할수 있다고, 군인들이 비를 맞으면서 기다리고있는데 빨리 가서 사진을 찍자고 하시며 내리는 비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사랑의 기념사진을 찍으신 이야기도 있고 날이 어두워지는데 중대를 더 돌아보는것은 그만두고 사진부터 빨리 찍는것이 좋겠다고, 날이 어두워지면 사진이 잘되지 않는다고, 내가 여기까지 왔다가 기념사진을 찍지 않고 그냥 가면 군인들이 서운해할수 있다고 하시며 걸음을 멈추시고 군인들과 기념사진부터 찍으신 눈물겨운 사연도 있다.

또한 종합훈련에 참가한 두개 구분대 군인들과 기념사진을 한번에 다같이 찍을것을 계획한것을 아시고 두번에 나누어 찍어야 하겠다고 하시며 대대마다 대대장과 대대정치지도원이 다 있는것만큼 병사들도 자기의 지휘관, 정치일군, 자기 대대의 전우들과 같이 사진을 찍는것을 좋아할것이라고, 우리는 기념사진을 하나 찍어도 군인들의 심리를 잘 고려하여 그들이 섭섭해하지 않게 해주어야 한다는 후더운 말씀으로 군인들의 가슴에 격정의 눈물이 끝없이 고여오르게 했던 날도 있었다.

그리고 군인들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것을 헤아려보시고 그들이 나와 사진을 찍는것을 몹시 고대하였겠는데 얼굴이 가리워진 사진을 받게 되면 얼마나 섭섭해하겠는가고 하시며 기념촬영을 여러번 하시느라 천금같은 시간을 바쳐 오래도록 기다려주신 이야기도 있다.

어찌하여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인민군군인들과 찍으시는 기념사진에 그토록 중대한 의의를 부여하신것인가.

영광의 기념사진촬영은 인민군장병들의 한생의 소원을 풀어주시는 위대한 선군령장의 크나큰 사랑과 은정이였다.

허나 여기에는 어버이사랑만이 담겨져있지 않았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머나먼 전선길을 달리시여 최전연부대를 찾아주시였던 주체92(2003)년 10월말 어느날이였다.

그날은 마가을날씨치고는 드물다고 할만치 추웠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밤에 비가 와서 그런지 날씨가 몹시 추워졌다고, 새벽녘까지 번개가 치고 우뢰가 요란하게 울면서 비가 억수로 쏟아졌는데 이제는 날씨가 좀 개였다고 하시며 부대지휘관들의 손을 다정히 잡아주시고나서 일군들과 군인들의 건강한 모습을 보니 멀고 험한 길을 달려오느라고 쌓인 피로가 다 풀리는것 같다고 하시며 환한 미소를 지으시였다.

이날 부대를 다 돌아보신 그이께서 군인들과 기념사진을 찍으시려 촬영대가 있는 곳으로 가실 때였다.

아까부터 알릴듯말듯 눈송이를 떨구던 하늘에서 제법 그해 겨울의 첫눈이 소담하게 쏟아져내리기 시작하였다.

온 한해를 인민군부대들에 대한 시찰의 길에서 보내시고 최전연에서 맞으시는 첫눈!

눈내리는 전선의 산발들을 굽어보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말씀하시였다.

《눈이 좀 오지만 사진을 찍는데는 지장이 없겠습니다. 최전연에 나와 첫눈을 맞으니 감회가 깊어집니다. 우리모두 신심드높이 일을 더 잘하여 하루빨리 조국을 통일하고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주체의 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합시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흰 눈내리는 최전연에서 선군혁명위업완성의 의지를 다시금 굳게 가다듬으시며 전선장병들과 찍으신 영광의 기념사진, 그것을 어찌 전사들의 간절한 소원을 풀어주는 어버이사랑이라고만 하랴.

자신께서 안고 가시는 사진에는 인민군장병들의 모습을 새겨두시고 인민군장병들이 심장에 간직한 사진에는 자신의 모습을 남기시여 최고사령관과 총쥔 병사들이 언제나 함께 있는 기념사진.

여기에는 선군혁명천만리길을 영원히 함께 걸어가자는 선군령장의 위대한 심장의 호소와 혈연의 화폭이 담겨져있다.

하기에 장군님께서는 온 나라 방방곡곡의 인민군부대들을 손금보듯 아시고 인민군장병들과도 끊을수 없는 인연을 맺으셨건만 못 가보신 부대와 구분대를 하나라도 남길세라 찾고 또 찾아주시고 이미 찾으셨던 곳에는 두번세번 사랑의 자욱을 덧찍으시며 영광의 기념사진을 남기신것 아니겠는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93(2004)년 2월 어느날 인민군지휘성원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뜻깊은 말씀을 하시였다.

《내가 인민군부대들에 자주 나가는것은 부대, 구분대들의 전투준비상태와 군인들의 물질문화생활정형을 료해하고 걸린 문제들을 풀어주어 인민군대를 필승불패의 혁명무력으로 더욱 강화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와 함께 애젊은 나이에 군복을 입고 청춘시절을 고스란히 조국보위에 바치고있는 우리의 미더운 군인들과 기념사진도 찍고 그들을 고무격려해주자는데도 목적이 있습니다.》

인민군부대들에 대한 시찰의 목적이 군인들과 기념사진을 찍는데도 있다고 하시니 일군들은 못 잊을 사연들이 한꺼번에 되새겨지면서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이의 감회깊은 음성이 계속하여 울리였다.

《지금 우리 군인들은 군사복무기간에 최고사령관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것을 제일 큰 영광과 행복으로 여기고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인민군부대들에 나갈 때마다 군인들과 꼭꼭 기념사진을 찍군 합니다.》

참으로 깊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말씀이였다.

돌이켜보면 경애하는 장군님의 선군장정의 길은 총쥔 군인들을 자신과 생사를 같이할 동지로 믿으시고 그들과 상봉의 화폭을 남기신 기념사진촬영의 장정이기도 하였다.

인민군군인들과 언제나 함께 계시며 그들과 생사운명을 같이하신 선군령장의 뜨거운 동지애가 바로 장병들과 함께 찍으신 기념사진에 어려있고 위대한 어버이의 품에 안긴 천만장병들의 끝없는 희열과 행복의 노래가 그 영광의 기념사진에서 메아리치고있다.

장군님께서는 군부대시찰의 목적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그날 일군들에게 이렇게 가르쳐주시였다.

내가 인민군부대들에 자주 나가 기념사진을 찍는것은 후방가족을 비롯한 사회사람들을 교양하는데도 좋다. 후방가족들이 군대에 나간 자기 아들딸들이 최고사령관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을 받아보거나 텔레비죤으로 방영되는 모습을 보게 되면 자기들도 군대에 나간 자식들에게 뒤지지 않고 사회주의부강조국건설에서 한몫 하겠다는 굳은 각오를 가지게 될것이다. 예술영화 《어머니의 행복》에서 어머니가 아들의 학교에서 교장으로부터 군대에 나간 아들이 최고사령관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을 수여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런 기념사진은 부모형제들뿐아니라 그들과 련관되여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준다.

그러시면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격조높은 어조로 확언하시였다.

《최고사령관과 군인들이 함께 찍은 기념사진은 령도자의 두리에 군대와 인민이 하나로 일심단결된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축도로서 세월과 더불어 길이 전해질것입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이어가신 인민군부대들에 대한 시찰회수는 세월과 더불어 더욱 늘어났으니 그 나날에 군인들과 함께 찍으신 기념사진은 또 얼마였던가.

주체93(2004)년 12월 어느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말씀하시였다.

《나는 앞으로도 인민군부대, 구분대들을 현지시찰할 때마다 군인들과 함께 사진을 찍으려고 합니다.》

군인들과 함께 찍으신 기념사진.

그것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불비가 쏟아져내리나 끝까지 함께 가야 할 선군의 길에서 다진 맹세 변치 않을 총쥔 병사들에게 안겨주시는 위대한 선군령장의 뜨거운 정과 사랑이였다.

그 무형의 정과 사랑은 언제나 산도 허물고 강도 메우는 유형의 힘으로 전환되여 혁명과 건설의 위대한 추동력으로, 기적과 혁신의 원동력으로 되였다.

력사에 불멸의 화폭으로 새겨진 그 기념사진들은 영원히 이 땅의 사람들의 넋을 사로잡으며 세월과 더불어 길이 전해질것이다.

 

5

《병사들을 위한 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군부대시찰의 대부분은 군인들의 물질문화생활조건을 더욱 훌륭하게 보장하도록 하는데 바쳐졌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병사들의 물질문화생활을 개선하는데서 무엇보다 부대지휘관들이 자기들이 맡고있는 임무의 중요성을 깊이 자각하고 병사들을 위해 더욱 헌신적으로 일해나갈것을 중요한 요구로 제시하시였다.

그이께서 강조하신 군인생활문제의 해결을 위해 인민군대의 지휘관들은 적극 분발하여나섰다.

전군적으로 부업경리를 잘하여 병사들의 물질문화생활수준을 한계단 높임으로써 경애하는 장군님의 높은 치하를 받은 부대들이 날을 따라 늘어났으며 모든 부대들에서 병사들에 대한 지휘관들의 사랑이 담긴 《병사들을 위한 날》이 잘 운영되여나갔다.

고난의 행군시기에 창조되여 날이 갈수록 더더욱 활발히 진행되여온 《병사들을 위한 날》은 오늘에 와서 인민군대의 고귀한 전통으로 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인민군지휘성원들과 함께 어느 한 부대를 찾아주셨던 주체92(2003)년 섣달 어느날에 있은 일이다.

군인들의 식생활을 따뜻이 보살피시며 식당을 돌아보고 전실로 나오신 그이께서는 벽에 써붙인 《병사들을 위한 날》운영계획을 오래도록 보아주시였다.

찾으시는 부대마다 식당에 들리면 의례히 보시게 되는 운영계획이고 또 그 과정에 사람들을 감동시키며 수없이 꽃펴난 미담들도 많이 들어오신 그이이시여서 한명한명 이름과 날자를 더듬으시는 따뜻한 시선에는 깊은 감회가 어려있었다.

《병사들을 위한 날이라. …

이런것은 우리 나라밖에 없습니다. 다른 나라 군사특사들이 와도 보여줄만 한것입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나서 곁에 있는 구분대장에게 《…동무는 언제입니까?》라고 물으시였다.

그이의 뜻밖의 물으심에 구분대장이 미처 대답을 못 드리자 부대장이 운영계획의 날자를 가리켜드리며 구분대장의 《병사들을 위한 날》운영날자가 경애하는 장군님의 탄생일인 2월 16일이라고 보고드리였다.

《2월 16일…

…정치지도원동무는 올해 마지막날이로구만.

9월 9일에도 있구만. 병사들이 좋아합니까?》

《좋아합니다. 병사들이 늘 기다리는 날로 되고있습니다.》

부대정치위원이 올리는 대답이였다.

고개를 끄덕이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래서 우리 인민군대의 군관과 자본주의나라 군대 장교가 본질적으로 다른것이라고 하시면서 군관들과 그 가족들이 《병사들을 위한 날》을 운영하고있는것은 세상에 자랑할만 한 일이라고 말씀하시였다.

《병사들을 위한 날》은 그 운영계획에 따라 군인들에게 성의껏 준비한 음식을 차려주는 병사들에 대한 사랑의 날로서 그 누구보다도 군인가족들의 수고와 노력, 정성을 전제로 하고있다.

어느 부대장이 안해가 맡은 《병사들을 위한 날》을 《병사잔치날》이라고 부르며 새벽까지 망돌을 돌린다, 절구질을 한다 여념이 없다가 아침에는 아무 일도 없었던듯이 장령복을 입고 부대를 사열했다는 일화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직접적인 담당자, 주인은 군인가족들인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날도 구분대를 돌아보시며 남새문제와 고기문제해결에서 군인가족들이 한몫 단단히 하고있는데 대해 료해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우리 군인가족들처럼 근면하고 조국보위정신이 강한 군인가족들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군인가족들은 선군혁명의 제2나팔수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그때 일군들에게는 몇달전 경애하는 장군님을 모시고 어느 한 부대에 갔을 때의 일이 더듬어졌다.

지금 군인가족들이 남새농사도 하고 집짐승도 기르며 《병사들을 위한 날》도 운영하느라 수고를 많이 한다고, 남편들이 늘 야외훈련장에 나가살다싶이 하는 이 부대 군인가족들의 경우에야 더 말해 뭘 하겠는가고 하시며 그들의 남모르는 노력과 수고를 따뜻이 헤아려주시던 그날 그이께서는 자신의 뜨거운 심중을 이렇게 터놓으시였다.

《나는 …군인가족들이 최고사령부 작식대원답게 깊은 산골에 살면서도 아무런 타발도 없이 남편들의 혁명사업을 성심성의껏 도와주고 나의 병사들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쳐가고있는데 대하여 매우 대견하게 생각합니다. 이런 훌륭한 군인가족, 이런 녀성혁명가들의 대부대가 있기때문에 인민군대가 강하고 선군정치의 위력이 더욱 높이 발휘되고있는것입니다.》

그때를 돌이켜보며 감회에 젖어있던 일군들은 장군님께서 말씀을 이으시자 현실로 돌아왔다.

그이께서는 다른 나라 군대에서는 지휘관들과 그 가족들이 자기 집에서 여러가지 맛있는 음식을 해다 군인들에게 먹인다는것은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이라고 하시였다.

일군들의 가슴에는 뜨거운 격정의 파도가 일렁이였다.

사실 인민군대에서 《병사들을 위한 날》이 창조되고 그것이 전군에 일반화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민군군관들과 군인가족들은 그것이 경애하는 장군님께 그토록 크나큰 기쁨과 만족을 드리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다.

나라가 준엄한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하는 속에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나의 아들딸들, 나의 병사들이라고 하시며 끝없이 아끼고 사랑하시는 군인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먹이고싶고 고향집에서처럼 한번이라도 특식을 해주고싶어 성의를 고인것이 전부였다. 고난의 그 세월 군인가족들이라고 해서 무엇이 남들보다 더 넉넉하고 풍족했겠는가.

군인가족들속에는 자기들의 소행이 온 나라에 소리칠 자랑거리로, 세상사람들에게 널리 선전할 그런 미풍으로 되리라고 생각해본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다만 끊임없는 전선길을 이어가시며 선군령도의 하루하루를 깡그리 병사들을 위한 날로 수놓아가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뜻을 조금이라도 받들고저 진정을 바쳤을뿐이였다.

바로 그런 군관들, 그런 군인가족들이였기에 군부대시찰의 이르는 곳마다에서 그들을 대하게 되시는 장군님의 만족과 기쁨, 대견함은 그리도 크시였던것이다.

전선길 여기저기에 아지랑이가 피여나던 주체93(2004)년 어느 따스한 봄날이였다.

선군장정의 길에서 또다시 어느 한 부대 식당에 들리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였다.

《식당전실에 〈병사들을 위한 날〉운영에서 모범적인 가족들과 그들이 군인들을 위하여 준비한 음식들을 사진을 찍어 붙였는데 마치 결혼식상같습니다.》

그 말씀에 끌려 사진을 보던 일군들은 진정 감탄을 금할수 없었다. 잔치상이라도 이건 정말 보통잔치상이 아니였던것이다.

사진속에 이곳 부대장과 부대정치위원 안해들의 모습도 있다는것을 아시게 된 그이께서는 부대책임일군가족들이 《병사들을 위한 날》운영에서 앞장서고있는것 같다고, 군인들이 《병사들을 위한 날》운영계획을 보면서 책임일군가족들의 차례가 오기를 은근히 기다릴것이라고 하시고나서 감회깊은 어조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항일혁명투쟁시기부터 지휘관들은 항상 대원들과 한가마밥을 먹어야 한다고 간곡하게 가르쳐주시였고 생의 마지막시기에 인민군지휘성원들에게 하신 교시에서는 관병일치, 상하일치에 대하여 중요하게 강조하시였다. 인민군대에서 관병일치, 상하일치를 강화할데 대하여 주신 수령님의 교시를 받들고 《병사들을 위한 날》과 같은것을 좀더 일찌기 시작하였더라면 보다 좋은 성과를 거두었을것이다. 부대들에서 지휘관들뿐아니라 가족들까지 군인들을 위하여 헌신하면 군인들은 자연히 그들을 친부모, 친형제처럼 따르게 될것이고 그렇게 되면 관병일치, 상하일치가 안될래야 안될수 없다.

장군님께서는 이어 평범한 병사들을 위하여 부대책임일군들과 그 가족들까지 헌신하는 모습을 어느 한 나라의 군관구사령관이 와본다면 아마 깜짝 놀랄것이라고 하시면서 지금 다른 나라 군대들에서는 장교들과 그 가족들이 사병들에게 공급되는 물자를 사취하여 치부할 생각이나 하지 사병들을 위해준다는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있다고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데는 까닭이 있었다.

언제인가 인민군부대들과 구분대들을 방문하게 된 그는 시종 경탄을 금치 못해하였다. 특히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마련해주신 한 땅크부대의 표준병영을 돌아본 그는 놀라움을 금치 못해하면서 탄복을 련발하였다.

이렇게 희한한 건물을 최고사령관이 직접 땅크병들을 위해 마련해주시다니…

더우기 그 건물에서 장교들이 아니라 평범한 로동자, 농민의 자식들인 병사들이 생활하고있는 현실은 자기의 눈을 의심하게 할 정도였다.

《나는 한생을 군복을 입고있지만 한 나라의 최고사령관이 병사들을 위하여 이렇게까지 깊은 관심을 돌리고있는것은 조선에 와서 처음 목격하였다. 최고사령관이 병사들을 이렇게 아껴주고있으니 병사들이 왜 자기의 최고사령관을 따르지 않겠는가.조선인민군의 총폭탄정신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가를 잘 알게 되였다.》

그는 이렇게 말하며 연신 엄지손가락을 내흔들었다 한다.

이듬해 이곳 땅크부대를 찾으시여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가 여기에 와보고 탄복은 하였지만 그는 내가 왜 병사들을 그처럼 아끼고 사랑하는가 하는것을 다는 모를것이라고 하시면서 나는 병사들을 친자식으로 생각하고있으며 생사운명을 같이할 동지로, 전우로 믿고있다고 따뜻한 정을 담아 말씀하시였다.

바로 그렇듯 탄복에 탄복으로 이어지는 방문일정을 마치고 돌아간 그가 다시 우리 나라를 방문하여 자기와 같은 장령들을 포함한 부대책임일군들이 가족들까지 동원하여 병사들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본다면 그 놀라움과 경탄이 또 얼마나 크겠는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우렁우렁한 음성으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병사들을 위한 날〉은 선군시대 우리 인민군대의 크나큰 자랑입니다.》

수많은 군인들을 통솔하는 부대장과 정치일군을 비롯한 장령, 군관들이 다름아닌 병사들을 위하여 안해들과 더불어 밤새껏 떡을 치고 여러가지 료리를 만들며 땀을 흘리는것은 진정 인민군대가 아니고서는 생각도 할수 없는 일이다.

《병사들을 위한 날》의 그 의의가 병사들에게 한끼 푸짐히 먹이는 그자체에 머무르는것이라면 경애하는 장군님의 만족이 그렇게까지 크시지 않았을것이다.

군인들을 배불리 잘 먹이는것은 인민군대후방사업의 기본이다. 그것은 《병사들을 위한 날》을 운영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해결할수 있다. 하건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인민군부대들에서 운영하고있는 《병사들을 위한 날》에 대해 그토록 기뻐하시며 높이 평가하시는것은 바로 여기에 인민군대에서 발휘되고있는 아름다운 미풍이 그대로 비껴있기때문이였다.

주체93(2004)년 8월 어느날 전선길을 이어가시던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깊은 뜻을 담아 일군들에게 이렇게 가르쳐주시였다.

《〈병사들을 위한 날〉은 관병일치의 날이면서도 군민일치의 날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물론 군인가족들은 혁명가의 안해이며 군대나 다름없는 전투원이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사민이므로 그들이 병사들을 위하여 별식을 해내오는것은 인민이 군대를 위하는 일로 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병사들을 위한 날〉을 통하여 남편들은 관병일치를 꽃피우고 안해들은 군민일치를 꽃피운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관병일치와 군민일치를 동시에 꽃피우는 날!

바로 여기에 《병사들을 위한 날》의 뜨거운 의미가 있다.

인민군대의 전통적미풍이 한꺼번에 활짝 꽃펴나는 《병사들을 위한 날》의 활발한 운영을 두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어찌 만족해하시지 않을수 있었겠는가.

정녕 한평생의 날과 날, 그것을 이루는 순간순간을 깡그리 병사들을 위해 바쳐가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위대한 사랑은 《병사들을 위한 날》의 뿌리이고 자양분이였다.

바로 그 뿌리에서 군사복무의 하루하루를 충정과 위훈으로 빛내여갈 인민군장병들의 육탄, 자폭의 성스런 맹세가 꽃으로 피여나고 열매로 맺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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