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심단결을 강성국가건설의 천하지대본으로 틀어쥐시고

 

4월의 봄노을 21세기를 비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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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리에 울려퍼진 태양칭송의 메아리

 

력사의 수레바퀴는 21세기에 들어와 두번째 년륜을 새기고있었다.

주체91(2002)년. 이해는 조선인민에게 있어서 평범한 해가 아니였다. 민족사적대경사들이 겹치여 주체혁명이 걸어갈 새 세기의 로정우에 리정표로 우뚝 설 력사의 준봉이였다.

뜻깊은 2월 백두밀영 소백수가의 버들개지에서 움튼 봄기운이 온 나라 강산을 푸르게 단장하는 속에 아흔번째의 태양절이 바야흐로 다가오고있었다.

인민과 민족의 심장속에 깊이깊이 새겨진 영원한 명절 4월 15일은 태양처럼 환히 웃으시는 어버이수령님의 존귀하신 영상을 더욱더 소중하게 간직해가는 영생축원의 봄명절이며 21세기의 태양이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을 높이 모시고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해갈 신념과 의지가 뜨겁게 끓어번지는 민족최대의 경사의 날이다.

《4월의 대축전장을 향하여 힘차게 앞으로!》

사람들의 심장마다에 불덩어리로 간직되여있고 거리와 마을들의 어디에나 나붙어있으며 출판보도물의 지면을 메우며 온 나라를 틀어쥐는 이 구호에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탄생 90돐을 맞는 천만군민의 지향과 의지, 선군조선의 도도한 기상이 함축되여있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 90돐을 민족최대의 경사의 날로 빛내이시려는것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숭고한 구상과 의지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의 탄생일을 민족최대의 경사의 날로 빛내이는것을 사회주의조선의 시조에 대한 충정과 도덕의리로 여기시면서 어버이수령님의 념원을 꽃피우는 중대한 사업으로 틀어쥐고나가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구상과 의지는 이 하늘아래 이 땅우에 주체의 강성국가를 하루빨리 일떠세워 어버이수령님의 념원을 기어이 실현하시려는데 있었다. 그것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다지신 새 세기의 드팀없는 전략적구상이였다.

돌이켜보면 수령님께서 생전에 그렇듯 바라시고 념원하신것은 통일되고 번영하는 사회주의강성국가를 건설하여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우리 인민을 누구보다도 행복하고 잘살게 하시려는것이였다.

만경대의 추녀낮은 초가집에서 인민의 아들로 탄생하시여 인민과 고락을 함께 하여오신 어버이수령님의 80여평생은 오로지 조국과 인민을 위한 끝없는 헌신의 력사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20성상 항일의 혈전만리를 헤치시며 잃었던 조국을 찾아주신것도, 령활한 지략과 강철의 담력으로 미제를 서산락일의 운명에 몰아넣고 전승의 축포를 올리신것도 그리고 80고령에도 공장과 농촌을 쉬임없이 찾으신것도 오로지 인민을 세상에서 가장 존엄높고 행복하고 잘사는 인민으로 되게 하시려는 숭고한 념원의 발현이였다.

하기에 민족의 어버이를 잃은 피눈물의 슬픔이 강산에 무겁게 드리운 그때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수령님께서 그토록 사랑하신 인민의 운명을 지켜주기 위하여 선군의 보검을 더욱 높이 추켜드시고 불철주야 강행군으로 고난과 시련의 언덕을 넘고넘으시며 강성국가건설의 포성을 울리신데 이어 새 세기에 들어와 그 진격로를 활짝 열어놓으시였다.

그 나날 장군님께 힘과 고무가 된것은 어버이수령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마음의 기둥이였고 허리띠를 조이면서도 자신을 하늘처럼 믿고 따르는 인민의 눈물겨운 충정과 절대적인 신뢰였다.

철부지아이들로부터 백발의 늙은이들까지 부르고 또 부르는 노래 《하늘처럼 믿고 삽니다》를 들으실 때마다 그이께서는 인민들의 심장속에 간직된 순결한 진정에 목이 메이군 하시였다. 그럴수록 자신의 어깨우에 얹혀진 무겁고도 영예로운 책임감을 새겨안으시며 선군혁명령도의 천리길, 만리길을 헤쳐가시였다.

령도자는 인민을 굳게 믿고 인민은 령도자를 어버이로 따르는 혼연일체의 생동한 화폭, 이러한 령도자와 인민들사이에 맺어진 끊을래야 끊을수 없는 혈연의 뉴대는 강성국가건설의 초석으로 되였다.

1990년대의 시련속에서 강철처럼 더욱 굳게 다져진 일심단결로 사회주의강성국가를 일떠세우고 우리 조국을 만방에 빛내이는것, 이것이 바로 어버이수령님의 탄생 90돐을 맞으며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심중에서 고패치는 결심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어버이수령님의 탄생 90돐과 조선인민군창건 70돐 기념행사에 특별한 의의를 부여하시고 이를 성과적으로 보장하도록 하신 그 숭고한 결심의 민족사적의의가 여기에 있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2002년에 맞이하게 될 민족사적대명절행사준비에 마음을 써오신것은 여러해전부터였다.

2000년 10월말 그이께서는 어버이수령님탄생 90돐과 조선인민군창건 70돐 행사준비를 지금부터 잘하여야 한다고 하시며 그 방향과 방도를 밝혀주시였고 2001년 1월에는 어버이수령님의 탄생 90돐을 뜻깊게 맞이하기 위한 획기적인 조치도 취해주시였다.

그러한 속에 민족최대의 경사스러운 명절인 태양절을 성대히 기념하기 위한 사업은 2002년에 들어서면서 마지막단계에 들어섰다.

이해의 새해공동사설은 2002년을 위대한 수령, 위대한 령도자의 력사와 업적을 끝없이 빛내이기 위한 총돌격의 해, 강성국가건설의 비약의 해로 규정하고 경제강국건설의 자랑찬 성과로 민족최대의 명절을 빛내이자는 구호를 들고 사회주의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새로운 혁명적대고조를 일으켜나갈데 대하여 호소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구상과 의도가 담겨져있는 새해공동사설은 수령, 당, 군대와 인민의 일심단결의 위력을 활화산처럼 폭발시켜 격동의 해, 2002년에 사회주의건설에서 새로운 비약을 일으키게 하는 힘있는 추동력으로 되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뜻깊은 이해 자신의 탄생일마저도 다가오는 태양절행사를 성대히 기념하기 위한 준비사업에 바치시였다.

혁명의 길에 나서신 첫날부터 자신은 수령님의 전사일뿐이라고, 수령님의 혁명위업을 끝까지 실현해나가는것이 자신의 행복의 전부라고 하시며 언제 한번 자신의 생신날을 쇠신적이 없는 장군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뜻깊은 2월의 생신날만이라도 다함없는 축원의 인사를 받아주시기를 온 겨레와 진보적인류는 간절히 바랐건만 장군님을 모신 야전승용차는 눈가루를 기폭처럼 말아올리며 백두산지구에로 달렸다.

하다면 그이께서 어찌하여 찬바람부는 2월의 그 나날 평양을 떠나 머나먼 백두산지구에 선군혁명령도의 자욱을 찍으시였는가.

2월의 명절이 며칠이 지난 어느날 백두산지구에 대한 현지지도의 길에 계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을 만나신 자리에서 자신께서 왜 백두산지구에 오시였는가에 대하여 뜻깊은 말씀을 하시였다.

내가 태여난 고장이여서 그런지 여기에 오면 어버이수령님과 어머님에 대한 생각이 각별해지군 한다. 나는 이번에도 여기에 며칠동안 와있으면서 수령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그처럼 뜻밖에 서거하신것은 80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불철주야로 사업해오신 정신적과로때문이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서거하시기 이틀전에도 하루종일 수많은 문건들을 검토, 비준해주시였고 경제부문 사업을 지도해주시였다. …

이어 그이께서는 어버이수령님께서 하루는 전화로 자신을 찾으시여 조국통일과 관련한 문제들을 이야기하시였다는데 대하여 돌이켜보시고 지금 와서 생각하면 수령님께서는 벌써 그때에 앞날을 예감하신것 같았다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감회깊은 어조로 자신의 심중을 이렇게 터놓으시였다.

《나는 일이 힘들고 생각이 많아질 때면 백두산에 와서 수령님에 대한 추억도 하고 수령님께서 백두밀림에서 개척하신 주체의 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할 굳은 각오도 다지군 합니다.》

주체의 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할 굳은 각오!

이것은 한평생 인민을 사랑하시고 그 길에서 일심단결의 대화원을 가꾸어오신 수령님의 높은 뜻을 받들어 이 땅우에, 이 하늘아래 사회주의강성국가를 반드시 일떠세우고야말 경애하는 장군님의 절대불변의 신념과 의지에 대한 엄숙한 선언이였다.

2월의 백두산에서 언명하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신념과 의지에 따라 어버이수령님탄생 90돐과 조선인민군창건 70돐을 뜻깊게 맞이하기 위한 준비사업은 빈틈없이 진척되여갔다.

마침내 2002년 태양절의 새날이 시작되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조선인민군 지휘성원들과 함께 금수산기념궁전(당시)을 찾으시였다.

어제도 오늘도 백두의 붉은기와 함께 계시는 어버이수령님께 삼가 경의를 드리시는 그이의 안광에는 숙연한 빛이 어려있었다.

온 나라가 뜻밖에 어버이수령님을 잃고 몸부림치던 7월의 그날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이께서는 이곳을 얼마나 찾고찾으시였던가.

기쁘시면 기쁘시여서 힘드시면 힘드시여서 수령님을 만나뵙고 새 힘과 용기를 받아안으시군 하신 장군님.

이날엔 또 수령님과 어떤 마음속대화를 나누시는가.

선군조선은 강성국가건설의 장엄한 뢰성을 울리며 세계를 향해 돌진하고있다고, 수령님탄생 100돐이 되는 태양절에는 김일성조선에 기어이 강성국가의 문패를 달고 승리의 보고를 올리겠다고 아뢰시는가.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장군님의 그 충정의 세계와 만민의 축복속에서 4월의 태양절은 민족적대경사로, 인류사적명절로 밝아왔다.

뜻깊은 태양절을 맞으며 경애하는 장군님을 모시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탄생 90돐기념 중앙보고대회가 성대히 진행되였다. 평양의 풍치수려한 대동강반에서는 김일성김정일화전시관 개관 및 제4차 김일성화전시회가 개막되였다. 또한 금수산기념궁전광장에서는 어버이수령님의 유훈을 높이 받들고 경애하는 장군님의 령도따라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하려는 조선인민군 륙해공군장병들의 례식과 청년전위들의 맹세대회 등이 진행되였으며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과 제20차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을 비롯한 다양한 정치문화행사들의 막이 올랐다.

그로부터 열흘후인 4월 25일, 김일성광장에서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을 모시고 위대한 수령님 탄생 90돐기념, 영웅적조선인민군창건 70돐경축 로농적위대열병식이 성대하게 거행되였다.

오전 9시, 환영곡이 울리는 가운데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광장주석단에 나오시였다.

순간 폭풍같은 만세의 환호성이 터져올랐다.

이윽고 열병식이 진행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초상기를 모신 선두대렬의 뒤를 따라 열병대오들이 보무당당하게 주석단앞을 지나갈 때마다 손을 들어 답례를 보내시였다.

마지막 열병대오가 지나가자 광장바닥을 꽉 채운 군중이 위대한 수령님을 주체의 태양으로 영원히 높이 모시고 경애하는 장군님의 령도따라 주체위업, 선군위업을 끝까지 완성해나가려는 전체 인민의 의지를 담아 《김일성》, 《김정일》, 《선군정치》, 《결사옹위》, 《전민무장화》 등의 대형글자들을 련이어 새기였다.

잠시후 광장에서는 화려한 꽃바다가 물결치는 가운데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와 《김정일장군의 노래》가 장중하게 울려퍼졌다.

주석단로대에 나오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열광적으로 환호하는 군중들에게 손을 들어 답례를 보내시였다.

인민들은 장군님을 우러러 또다시 하늘땅을 뒤흔드는 환호성을 터뜨렸다.

그것은 령도자의 두리에 전체 인민이 하나로 굳게 뭉친 일심단결의 대화폭이였다.

열병식장에 차넘치는 이 혼연일체의 모습을 목격한 외국의 인사들은 찬탄과 부러움을 금치 못하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초상화를 모시고 힘차게 전진하는 열병대오는 일심단결된 조선의 참모습을 보여주고있다. 김정일장군님을 결사옹위할 맹세가 로농적위대원들의 얼굴마다에 어려있다. 그 름름한 모습을 보면서, 열병대오의 힘찬 발구름소리를 들으면서 오늘의 조선을 일떠세워주시고 빛내여주신 김일성주석의 업적이 되새겨져 그이에 대한 그리움으로 마음을 진정할수 없었다.》

김일성광장을 지나는 열병대오를 보면서 위대한 김정일각하의 두리에 굳게 뭉친 조선인민의 힘을 당할자는 이 세상에 없다는것을 다시한번 절감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세계의 감탄을 자아낸 로농적위대열병식을 위해 바쳐오신 선군령장의 로고를 다는 알수 없었다.

사실 어버이수령님의 탄생 90돐과 조선인민군창건 70돐을 맞으며 진행할 로농적위대열병식을 발기하신분은 경애하는 장군님이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선군사상을 창시하시고 전민무장화의 인류사적모범을 창조하신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을 후손만대에 길이 전하고 선군의 기치밑에 군대와 인민이 하나로 뭉친 일심단결의 위력을 과시하기 위하여 로농적위대열병식을 발기하시고 그 준비에 깊은 관심을 돌려오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숭고한 뜻과 의도를 가슴깊이 새겨안은 열병식훈련참가자들은 눈내리는 날이나 비오는 날이나 낮과 밤을 이어 훈련에 열중하였으며 몰려드는 피로를 이겨내며 구슬땀을 흘리였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들이 흘리는 그 땀방울의 무게를 장군님께서 얼마나 무겁게 여기시는지 미처 다 알지 못했다.

4월의 명절이 가까와오고있던 2002년 3월말의 어느날이였다.

이날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여러가지 문제들에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 탄생 90돐과 조선인민군창건 70돐을 맞으며 진행할 로농적위대열병식훈련에로 화제를 옮기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열병식훈련에 참가한 성원들의 수고를 깊이 헤아리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 경공업부문에서 책임지고 수령님의 탄생 90돐, 조선인민군창건 70돐경축 로농적위대열병식훈련에 참가한 성원들에게 창광원에서 목욕도 시키고 옥류관과 청류관을 비롯한 시안의 이름있는 식당들에서 국수를 먹이도록 조직하여야 하겠습니다.》

순간 일군들은 장군님의 다심한 사랑에 그만 감격해서, 또 자기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장군님께서 돌보아주신다는 자책으로 하여 고개를 숙이였다.

그때 열병식훈련참가자들은 장군님의 은정속에 충분한 생활조건을 보장받으며 훈련의 땀방울을 바쳐가고있었다. 그래서 훈련을 책임진 일군들은 훈련강도를 높이는데만 신경을 쓰고있었다.

하지만 장군님께서는 열병식훈련에 참가한 성원들이 흘리는 그 땀방울이 그리도 대견하고 기특하시여 자식들을 생각하는 친부모도 미처 관심하지 못하는 보살피심으로 그들모두에게 뜨거운 사랑을 베풀어주시는것이였다.

며칠후 열병식훈련참가자들을 실은 차량들이 시내를 누비며 창광원과 옥류관, 청류관으로 들어서는 이채로운 광경이 펼쳐졌다.

문화후생조건이 훌륭히 갖추어진 창광원에서 훈련의 피로를 한껏 풀고 옥류관과 청류관을 비롯한 이름난 식당들에서 특별봉사를 받으며 휴식의 한때를 보내는 열병식훈련참가자들의 얼굴마다에는 장군님의 사랑에 보답할 맹세가 한껏 어리여있었다.

이렇듯 로농적위대열병식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손길아래 선군조선의 일심단결과 전민무장화의 장한 모습을 과시하는 열병식으로 완성되였던것이다.

그런데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태양절행사준비를 이끄신 자신의 로고는 뒤로 밀어놓으시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탄생 90돐기념, 영웅적조선인민군창건 70돐경축 로농적위대열병식을 아주 잘하였다고, 군중들이 환호를 열광적으로 한것은 우리 당과 인민의 일심단결을 힘있게 시위한것으로 된다는 은정어린 말씀을 주시였다.

그 말씀을 전달받은 열병식참가자들과 인민들의 얼굴마다에는 힘든 일은 자신께서 맡아안으시고 모든 영예는 자기들에게 안겨주시는 장군님의 친어버이사랑에 감격과 고마움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터져오른 감사의 환호성은 푸르른 조국의 하늘가에 오래도록 울려퍼졌다.

4월의 봄명절에 울려퍼진 태양칭송의 메아리!

정녕 그것은 영원히 경애하는 장군님의 두리에 굳게 뭉쳐 일심단결의 위력으로 사회주의강성국가를 일떠세울 선군조선의 웨침이였다.

그것은 바로 어버이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을 빛내이고 수령님의 필생의 념원을 기어이 실현하고야말 은혜로운 사랑의 태양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드팀없는 의지의 천명이였다.

 

2

일심단결의 상징-《아리랑》

 

세상사람들은 조선민족을 가리켜 아리랑민족이라고 부른다. 그만큼 아리랑은 리랑과 성부의 눈물겨운 전설과 더불어 쓰라린 망국노의 눈물이 배인 한과 슬픔의 노래로 불리워져오면서 민족의 상징처럼 되였다.

그러한 《아리랑》이 선군시대인 오늘날에는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의 제명으로 되여 일심단결의 위력을 세계만방에 떨치고있다.

2002년의 태양절을 앞둔 평양에서는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창조사업이 막바지에서 한창 진행되고있었다.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창조과정이 완성되여가면서 황홀감을 넘어 신비감을 자아내는 그 전모가 드러나기 시작하자 우리 인민들은 물론 남조선과 해외동포사회, 세계언론의 눈길이 평양으로 쏠렸다.

2002년 2월 남조선의 인터네트신문 《자주민보》는 《민족이 함께 부르는 <아리랑>, 10여만이 참가하고 세계가 본다》라는 제목으로 오는 4월말부터 평양의 5월1일경기장에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이 진행되게 된다는 소식을 알리면서 작품소개를 크게 하였다.

글에서는 평양에서 《아리랑》공연준비가 한창인데 언급하여 《이번 공연은 명망높은 배우와 예술가,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친 체육선수들을 비롯한 청년학생 등 10여만명이 참가하는 가운데 황홀한 배경미술, 현대적인 장치들과 조명수단을 총동원하여 진행하는 종합예술작품으로 알려지고있다.》고 썼다.

그리고 《이북의 집단예술공연은 단순한 문화예술공연을 뛰여넘어 국가행사로 나라의 대내외정책과 깊은 련관을 맺고있다.》고 하면서 미국에 의해 《테로지원국》명단에 올라있는 이북은 미국의 전쟁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세계인을 대상으로 하는 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을 지난해부터 준비해왔다, 이번 《아리랑》공연은 《테로와의 전쟁》으로 21세기 첫해부터 세계가 전쟁의 공포속에 있는 가운데 이북이 우리의 민족적주제를 가지고 화합과 평화의 내용을 전세계인을 대상으로 전달하고저 하는것이다, 미국은 전쟁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만들어가지만 이북은 문화예술공연을 통해서도 자신의 존재가치를 높여가고있다, 공연을 보기 위해 평양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은 누가 《테로국가》이고 《페쇄국가》인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기회로 될것이라고 자기의 주장을 폈다.

글은 또한 우리 민족이 함께 부를수 있는 노래가 있다면 무엇을 꼽을수 있을가? 이렇게 문제를 제기하고 다음과 같이 썼다.

아마도 단연코 《아리랑》일것이다, 남북은 물론 해외동포사회 어디에서나 불려지고있고 우리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교포3세들까지도 《아리랑》만은 유일하게 부를수 있는 노래이다, 또한 외국인들에게도 《아리랑》은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노래로 잘 알려져있다, 우리 민족의 슬픔과 기쁨, 웃음과 행복의 력사가 다 함축되여있는 《아리랑》, 그래서 우리는 《아리랑》을 말할 때 《민족의 노래》 또는 《우리들의 노래》라고 말해왔다, 《아리랑》은 지난 시기 정든 고향을 등지고 타향으로 떠날 때, 수난많던 때 부르던 노래였다, 과거 수난을 겪은 우리 민족이 남북공동선언이후 오늘의 긍지를 안고 당당히 살고있는 모습을 형상하는데서 가장 적합한 노래는 《아리랑》일것이다, 한세기전의 《아리랑》이 외세에 나라를 빼앗긴 서러움을 안고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며 불러야 했던 《통한의 아리랑》, 《눈물의 아리랑》이였다면 6. 15공동선언이 발표되고 남북의 통일의지가 넘쳐나는 지금 우리가 함께 부르는 《아리랑》은 분명 《통일의 아리랑》, 《행복의 아리랑》이 될것이다. …

아직은 공연의 막이 오르지 않았건만 세계적판도에서 《아리랑》의 인기는 날이 갈수록 높아져갔다.

2002년 4월 26일, 드디여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창작가들과 출연자들, 관람자들은 영광의 시각을 맞이하게 되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공연을 보아주시려고 5월1일경기장에 나오신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주석단에 나오시자 《만세!》의 환호성이 하늘땅을 진감하고 온 경기장에 환희의 꽃물결이 파도쳐 설레이였다.

온 장내에 경애하는 장군님을 모신 끝없는 격정이 굽이치는 가운데 나라를 잃고 살길을 찾아 고향을 떠나는 동포들을 눈물속에 바래워주는 아리랑고개장면이 펼쳐지고 그 처량한 화폭과 애절한 선률이 급격히 변화되면서 서장의 배경에 붉은 태양이 솟아오르는 속에 《아리랑》이라는 제명이 빛을 뿌리며 새겨졌다.

장내에 우뢰와 같은 박수갈채가 터져올랐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서장의 배경에 붉은 태양이 솟아오르면서 〈아리랑〉이라는 제명이 새겨지게 하였는데 형상을 아주 훌륭하게 잘하였습니다.》라고 하시면서 다시금 출연자들에게로 시선을 보내시였다.

이윽고 《아리랑》장면들이 조화를 이루며 펼쳐졌다.

수난의 력사가 흐르는 《두만강을 넘어》에 이어 위대한 수령님께서 민족의 태양으로 솟아오르신 《조선의 별》장면과 항일혁명투쟁을 내용으로 한 《사향가》, 조국의 해방과 공화국의 창건을 노래한 《빛나는 조국》…

씩씩하고 랑만적인 체조동작과 아름답고 황홀한 음악무용, 천변만화하는 배경대와 배경대를 가득 채운 영사화면, 희한한 빛세계의 독특한 형상언어가 결합된 공연은 계속되였다.

관람자들은 너나할것없이 넋을 잃고 연방 《야!》, 《야!》 하고 탄성을 올리였다.

해외동포들은 감동된 나머지 앉은자리에서 흥에 못이겨 춤가락을 펼쳐놓기도 했다.

공연은 어느덧 종장 《강성부흥아리랑》에 이르렀다.

체조수들의 씩씩한 춤률동에 맞추어 대형지구가 솟아오르고 축포와 레이자의 신기한 빛발에 싸여 물결쳐나온 출연자들이 강성국가를 건설하는 인민의 기상을 담아 우아하고 박력있는 춤동작을 펼칠 때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제일먼저 박수를 보내주시며 말씀하시였다.

《종장 〈강성부흥아리랑〉장면도 잘 형상하였습니다. 종장이 대단히 황홀합니다.》

장군님의 이 말씀은 《아리랑》공연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인 동시에 모든 창작가들과 출연자들에게 보내신 최대의 감사였다.

축포의 꽃보라가 아름답게 펼쳐진 경기장상공과 황홀경의 극치를 이루는 종장의 바닥무용을 만족하게 보시며 자리에서 일어서신 장군님께서는 전체 출연자들의 공연성과를 축하하여 답례를 보내시였다.

공연이 끝난 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흥분속에 있는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은 바늘구멍만 한 틈도 없는 완전무결한 작품입니다. 나무랄데없이 성공한 작품입니다. 흠잡을데가 하나도 없는 만점짜리입니다.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은 세계적인 대걸작입니다.》

잠시 동안을 두신 장군님께서는 이번에 《아리랑》을 새 시대에 맞게 훌륭하게 창조완성하였다고, 《아리랑》작품은 새 세기를 대표하는 새로운 걸작품이라고 다시금 높이 평가하시였다. 그러시고나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을 창조하느라고 수고를 많이 하였다고 하시면서 이 작품을 창조완성한 전체 창작가들과 출연자들에게 당중앙위원회와 국방위원회명의로 감사를 주시였다.

사실 시대의 걸작으로 완성되여 세계를 뒤흔들어놓은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의 대성공을 두고 제일먼저 감사를 받으셔야 할분은 다름아닌 장군님이시였다.

2000년 10월 하순 어느날이였다.

그날 당창건 55돐을 맞으며 진행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백전백승 조선로동당》을 보아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해당 일군들에게 어버이수령님의 탄생 90돐기념작품을 《백전백승 조선로동당》보다 더 훌륭히 만들어 내놓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미리부터 잡도리를 잘하여 대걸작품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간곡히 이르시였다.

그때 한 일군이 장군님께 늘 가슴에 품고있던 한가지 소망을 아뢰였다.

《장군님, 4월명절기념작품과 함께 2월명절경축작품도 잘 준비하겠습니다.》

순간 장군님의 안광에 엄한 기색이 어렸다.

잠시후 그이께서는 일군에게 2월명절작품이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나는 2월명절을 모릅니다, 4월명절만을 압니다, 다른 생각말고 90돐작품을 훌륭히 준비해야 합니다라고 자신의 뜻을 밝히시였다.

그후에도 장군님께서는 2월의 명절 경축행사들을 준비하지 못하도록 막으시면서 모든것을 수령님탄생 90돐을 기념하는 행사준비에 복종시키도록 하시였다.

이로부터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작품을 반만년민족사에서 처음으로 높이 모신 어버이수령님의 영광찬란한 혁명력사를 민족의 운명사속에서 서사시적으로 펼쳐나갈 창작구상을 지니시고 당초에 《태양의 노래》로 되여있던 작품의 제명을 민족성이 짙은 《아리랑》으로 바꾸도록 하시였을뿐아니라 그 형상방도에 이르기까지 세심히 밝혀주시면서 작품에 높은 철학성과 예술성을 부여해주시였다.

일군들과 창작가들은 그때부터 아리랑민족이 받아안은 수령복을 주제로 하여 진지한 탐구와 기발한 착상으로 작품의 장과 경을 꾸미였다.

거기에다 경기장바닥과 배경대면 그리고 경기장상공을 포함한 거대한 공간을 무대로 하여 음악과 무용, 체조, 교예, 배경, 미술, 무대장치를 비롯한 백수십여가지의 형상수단들과 레이자조명, 특대형영화와 환등, 전면적인 전광장치까지 도입되여 작품의 사상예술성은 최상의 경지에 이르게 되였다.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출연자들은 출연자들대로 작품이 담고있는 사상예술적요구를 높은 수준에서 형상하기 위해 한겨울의 추운 날씨속에서도 훈련의 하루하루를 바쳐갔다.

창작가들도, 출연자들도 오직 《아리랑》공연의 성과적보장만을 생각하며 애쓰고있던 2001년 12월 어느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준비사업을 책임진 한 일군을 부르시였다.

그 일군은 선군령도의 바쁘신 속에서도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창조사업정형을 헤아려주시는  장군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안고 《아리랑》창조에서 발휘되고있는 여러 성과들을 말씀드렸다.

공연의 성과적보장을 위해 낮과 밤이 따로없이 훈련에 열중하고있는 출연자들의 기특한 모습을 그려보시는듯 밝은 미소를 지으신채 그의 보고를 주의깊게 듣고계시던 장군님께서는 하루에 훈련시간은 얼마나 되는가, 훈련장소가 부족되지는 않는가, 훈련생들에게 간식은 정상적으로 공급되는가를 자세히 물으시였다.

일군은 장군님의 깊은 관심속에 훈련조건이 원만히 보장되고있다고 말씀올렸다.

한동안 생각에 잠겨계시던 장군님께서는 우리 일군들이 선차적관심을 돌려야 할 문제는 훈련생들의 건강이라고 일깨워주시였다.

그제야 장군님께서 자기를 찾아주신 까닭을 깨달은 일군은 가슴이 후더워올랐다.

이어 그이께서는 날씨가 추워지는 조건에서 훈련생들이 한명이라도 앓게 하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절절한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아리랑》창조에서 획기적인 전환을 일으키기 위한 몇가지 방도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밝혀주신 다음에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무엇보다 관심해야 할 문제는 추운 날씨에 훈련생들의 손발이 얼지 않도록 하는것이라고 다시금 간곡히 당부하시였다.

《아리랑》훈련참가자들의 건강을 념려하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은 날이 갈수록 더더욱 뜨거워만 갔다.

그때로부터 몇달이 지난 2002년 2월의 어느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준비를 책임진 일군을 또다시 불러주시고 그 기간 《아리랑》훈련에서 놀라운 성과를 이룩한데 대하여 높이 평가하신 다음 창작가들과 훈련참가자들이 추운 겨울날에도 밤늦게까지 훈련한다고 하는데 그들의 사상적각오가 대단히 좋다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내밀어 감기에 걸리지 않게 해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날씨가 추워지는데 맞게 훈련장의 난방대책도 세워주시고 전체 출연자들에게 겨울신발과 폭신한 털내의까지 보내주시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으시여 이날에는 감기에 걸릴가봐 또다시 념려하시는 어버이장군님이시였다.

사실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에 참가한 10만명의 출연자들이 하나와 같이 움직인다는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많은 학생들과 청년들이 하나의 대본에 따라 움직이는 하나의 흐름, 하나의 률동을 창조할수 있은 비결은 자기들을 친어버이심정으로 보살펴주시는 장군님의 사랑과 믿음에 반드시 보답하려는 그들의 높은 사상적각오에 있었다.

사랑에 고무된 심장은 기적을 낳는 법이다.

한겨울의 세찬 눈보라속에서도 한점의 찬바람이 스며들세라 따뜻이 보살펴주시는 장군님의 사랑속에 봄날의 꽃처럼 《아리랑》도 뜻깊은 4월에 향기풍기며 활짝 피여났던것이다.

《아리랑》창조과정을 돌이켜보고있는 일군들을 일별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아리랑〉을 보고나면 마음이 시원하고 상쾌해지며 크나큰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시면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에 참가한 창작가, 예술인들과 청소년학생들이 정말 기특하다고 몇번이나 거듭 치하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4월에 이어 그해 7월과 8월에 《아리랑》공연을 또다시 보아주시고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은 우리 인민의 높은 혁명성과 조직성과 규률성, 문화성의 발현이며 일심단결의 상징이라고 평가하시였다.

실로 김일성민족의 기상과 위력을 세상에 떨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은 수령, 당, 군대와 인민이 일심단결을 이룬 선군조선에서만이 창조될수 있는 민족의 재보였다.

세계는 조선의 《아리랑》바람으로 설레였다.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은 2002년 한해에만도 90여회에 걸쳐 성황리에 공연되였다. 그 기간 연 400여만명의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 해외동포들 그리고 60여개 나라와 국제기구들에서 온 외국인들이 비길데 없이 아름답고 민족적색채가 짙은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을 관람하였다.

《아리랑》을 관람한 수많은 외국인들은 자신들의 격정을 이렇게 토로하였다.

김일성주석과 김정일장군님께서 조선인민과 인류에게 심어주신 위대한 넋과 사상, 업적을 심장으로 체득하였다.

눈물의 <아리랑>이 김일성주석과 김정일장군님에 의해 <강성부흥아리랑>으로 되였다는것을 보여주는 <아리랑>작품이야말로 걸작중의 걸작이다. 위대한 수령, 위대한 령도자를 모신 조선인민은 앞으로도 영원히 존엄높은 태양민족으로 온 세상에 빛을 뿌릴것이다.》

 

3

신념과 의지의 력사를 새겨주시여

 

주체91(2002)년 11월 25일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 항일혁명투쟁시기 남패자에서 진행된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회의에서 《조성된 난국을 타개하고 혁명을 계속 전진시키자》라는 력사적인 연설을 하신지 64돐이 되는 날이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날 일군들과 함께 위대한 수령님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계승본) 제7권에 수록되여있는 고난의 행군내용을 영화로 옮겨 만든 회고록기록영화 《조국광복을 위하여》 제17부를 보아주시였다.

고난의 행군은 1938년 12월초부터 이듬해 3월말까지 몽강현 남패자에서 장백현 북대정자에 이르는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의 간고한 행군이였다.

1938년 가을 조선혁명앞에는 엄중한 난관이 조성되였다.

일제는 관동군주력사단들의 대부분과 위만군, 지방무장경찰대까지 총동원하여 압록강, 두만강연안의 군사전략상 중요지대들에 배치하고 항일무장부대들에 대한 《토벌》을 더욱 악착하게 감행하였다. 적들은 군사적공세만으로는 목적을 달성할수 없게 되자 《사상공작》, 《귀순공작》, 《치본공작》 등을 골자로 하는 《문화토벌》을 대대적으로 벌렸으며 혁명조직들을 파괴하고 혁명가들과 애국자들에 대한 검거, 투옥, 학살만행을 악랄하게 감행하였다.

한편 국제당이 강요한 좌경모험주의적인 열하원정의 후과로 하여 남만의 중국인항일련군부대들이 커다란 손실을 입게 됨으로써 조선인민혁명군은 백두산서남부일대에 증강된 일제의 대병력과 거의 단독으로 맞서싸우지 않으면 안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러한 조성된 정세하에서 1938년 11월 몽강현 남패자에서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회의를 소집하시고 조성된 난국을 타개하고 혁명을 계속 전진시키기 위한 주동적인 대책을 세워주신데 이어 그해 12월초 개편된 제2방면군을 친솔하시고 압록강연안 국경지대에로의 력사적인 고난의 행군을 개시하시였다.

혁명가요의 선률이 비장하게 울리는 가운데 고난의 행군과정을 력사적자료에 기초하여 생동하게 그려보이는 화면들이 펼쳐지고있었다.

그 하나하나가 위대한 수령님께서 회고록에서 고난의 행군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엄혹한 자연과의 투쟁, 극심한 식량난과 피로와의 투쟁, 무서운 병마와의 투쟁, 간악한 적들과의 투쟁이 하나로 엉켜진것이였다고 쓰신 그대로였다.

일제는 《동변도토벌작전》이란 명목밑에 《대소탕전》의 주되는 목표를 조선인민혁명군 사령부에 두고 방대한 《토벌》력량을 인민혁명군 주력부대에 총집중하였으며 비행기까지 동원하여 2중3중의 포위망을 형성하고 맹렬한 공격에 검질긴 추격을 배합한 《맹공장추전술》의 기본인 《다니전술(진드기전술)》을 쓰면서 악착스럽게 달려든다.

적들의 집요하고 끊임없이 계속되는 추격과 포위, -40℃를 오르내리는 강추위와 설한풍속에서 쉬지도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행군하면서 매일같이 적들과 싸우는 조선인민혁명군대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모든 시련과 엄혹한 난관을 강철의 의지와 백절불굴의 혁명정신으로 과감히 헤쳐나가시면서 령활한 령군술과 림기응변의 유격전술로 적들에게 련속 타격을 가하신다.

1939년 1월초 장백현 7도구치기에 이르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오를 대부대활동으로부터 분산활동으로 이전시키고 따돌리는 전술, 선손을 써서 타격하는 주동적인 공격전술 등 림기응변의 유격전술로 적을 피동에 빠뜨리고 그해 3월 장백현 북대정자에 이르도록 하시여 마침내 100여일간의 고난의 행군을 승리적으로 결속하신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직지휘하신 고난의 행군은 부대의 이동을 위한 단순한 행군이 아니라 옹근 하나의 전역과 맞먹는 규모가 큰 군사작전이였으며 항일무장투쟁의 축도였다.

고난의 행군의 승리는 위대한 수령님의 주체적인 유격전법과 탁월한 령군술의 빛나는 승리였으며 숭고한 혁명정신과 혁명적동지애에 기초하여 령도자의 두리에 굳게 뭉친 혁명대오의 강철같은 통일단결, 혁명전사들의 백절불굴의 의지와 혁명적락관주의정신이 가져온 고귀한 결실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시였다.

《고난의 행군과 같은 행군을 한 위대한 력사를 가진 인민들에게는 불가능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런 행군의 력사를 유산으로 가지고있는 인민은 어떤 힘으로써도 정복하지 못합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이 커다란 여운으로 되여 귀전을 울리는 가운데 영화는 끝났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 자리에 참석한 일군들과 담화를 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오늘 동무들과 같이 회고록기록영화 제17부를 보았는데 새로 느껴지는것도 많고 감흥도 크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나는 정세가 복잡하고 어려울 때마다 수령님의 혁명력사를 되새겨보면서 새로운 힘과 용기를 얻군 합니다.》

계속하여 장군님께서는 오늘도 기록영화를 보면서 수령님께서 지니신 혁명승리에 대한 드놀지 않는 신념과 배짱, 불굴의 혁명정신에 대하여 다시금 절감하게 되였으며 앞으로 그 어떤 시련과 난관이 앞을 막아나서도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하겠다는 결심을 더욱 굳게 다지시였다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자자구구 심금을 울리는 장군님의 말씀을 받아안으며 일군들은 숭엄한 감정에 휩싸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신념과 의지, 배짱에서 우리 수령님을 따를만 한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고 하시면서 수령님은 탁월한 사상리론가, 위대한 정치가, 강철의 령장이시였을뿐아니라 신념과 의지의 제일강자, 제일배짱가이시라는데 대하여 되새겨주시였다.

이어 장군님께서는 고난의 행군의 간고성에 대하여 언급하시면서 참으로 고난의 행군은 조국광복을 위한 성스러운 우리 혁명이 주저앉느냐, 전진하느냐 하는 력사의 판가리싸움이였다고, 그러나 수령님께서는 그처럼 엄혹한 시련속에서도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담대한 배짱과 승리에 대한 확고한 신념, 억천만번 죽더라도 기어이 원쑤를 치고 조국을 광복하고야말겠다는 강의한 의지로 부닥친 난관을 뚫고 고난의 행군을 승리적으로 결속하시였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신념과 의지의 력사, 배짱의 력사라고도 말할수 있는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력사를 돌이켜보시면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결연히 말씀하시였다.

《혁명은 신념이고 의지이며 배짱입니다. 신념과 의지가 굳세지 못하고 배짱이 없으면 온갖 풍파를 헤치며 나가야 하는 혁명을 할수 없습니다. 이것은 수령님을 잃은 다음 내가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책임지고 피눈물의 언덕을 넘으며 가슴에 새긴 철의 진리입니다.》

심장에서 울려나오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말씀은 일군들의 생각을 깊어지게 하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개척하신 주체혁명은 의연히 간고한 행군길을 이어가고있다. 항일무장투쟁시기에는 수십만의 일본군이 조선인민혁명군을 포위하고 추격하였지만 오늘은 포악한 제국주의련합세력이 우리 공화국을 압살하려고 하고있다. 한마디로 백두에서 시작된 고난의 행군은 오늘에도 계속되고있다고 할수 있다.

이 난국을 뚫고나갈수 있는 유일한 방도는 일군들모두가 장군님께서 체현하신 그 신념, 그 의지, 그 배짱을 그대로 지니는것이다. 다시말하여 오직 항일의 불바다, 백두의 설한풍속에서 발휘된 자기 위업의 정당성에 대한 투철한 신념, 그 승리를 안아오려는 강의한 의지, 그 어떤 고난도 기어이 이겨내려는 배짱을 지니는것이다.

이러한 신념과 의지, 배짱은 자기 령도자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지니고 령도자와 사상도 뜻도 함께 할 때 생기게 된다. 다시말하여 자기 령도자를 높이 모시고 받들며 어떤 역경속에서도 령도자의 사상을 옹호고수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견결히 투쟁하는 사람, 자기 령도자와 생사운명을 같이할 각오가 되여있는 사람만이 신념이 확고하고 의지가 강의하며 배짱이 굳건한것이다.

그런데 그런 면에서 우리들의 수준은 과연 얼마나 뒤떨어져있는가, 이렇게 일군들은 스스로 자책하지 않을수 없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렇듯 자신들을 랭철하게 돌이켜보는 일군들을 뜻깊은 눈길로 둘러보시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나는 지금 죽음을 각오한 사람을 당할자 이 세상에 없다는 필승의 신념과 배짱을 가지고 혁명과 건설을 이끌어나가고있다. 원쑤들이 칼을 빼들면 장검을 휘두르고 원쑤들이 총을 내대면 대포를 내대는것이 우리 당의 신념이고 의지이며 배짱이다. 우리가 그처럼 치렬한 반미대결전에서 승리를 이룩하고 사회주의를 굳건히 지켜낼수 있은것도 그런 신념과 의지, 배짱을 가지고 싸웠기때문이다. …

계속하여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힘주어 강조하시였다.

《적들과의 대결은 신념과 의지, 배짱의 대결이라고도 말할수 있습니다. 억센 신념과 의지, 배짱을 가지면 이 세상에 무서울것이 없으며 못해낼 일이 없습니다.》

일군들의 눈앞에는 장군님의 신념과 배짱, 의지로 제국주의련합세력의 고립압살책동을 짓부시고 사회주의와 인민의 운명, 민족의 존엄을 지켜낸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의 나날들이 새로운 의미를 가지고 떠올랐다.

뜻밖에 민족의 어버이를 잃은 대국상, 계속되는 자연재해, 때를 기다린듯 달려드는 제국주의무리…

어버이수령님의 투철한 신념과 불변의 의지, 강인담대한 배짱을 그대로 닮으신 경애하는 장군님이 아니시였다면 열백번도 쓰러질 최악의 고난과 시련을 어떻게 이겨낼수 있었으랴.

어버이수령님 그대로이신 경애하는 장군님을 모시였기에 우리 조국은 사회주의강국으로, 우리 민족은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존엄높은 민족으로, 우리 인민은 세상이 부러워하는 긍지높은 인민으로 자랑떨치고있는것이 아닌가.

보다 휘황찬란할 우리 조국과 더욱 무궁번영할 우리 민족, 우리 인민의 앞날을 그려보는 일군들은 어찌하여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수령님의 회고록내용을 담은 한편의 기록영화를 보시고 신념과 의지, 배짱에 대하여 그토록 강조하시는가를 깨닫게 되였다.

고난과 시련은 어제도 있었고 오늘도 계속되고있다.

제국주의자들과 전쟁호전광들은 2002년에 들어와서만도 이해를 《전쟁의 해》로 선포하고 우리 공화국에 대해 《악의 축》이니 핵공격대상이니 뭐니 하는 망발을 늘어놓으며 조선반도《유사시》를 가상한 북침전쟁광증을 한해동안 이어오다못해 년말을 가까이 하며 제2의 핵위기사태로 조선반도정세를 악화시키고있었다.

지금의 정세는 어찌 보면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걸고 강도 일제와 고난의 행군으로 맞섰던 항일의 그 나날과 비슷하다고 할수 있었다.

하다면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지니시였던 그러한 신념과 의지, 담력과 배짱을 우리들의 가슴마다에 심어주시려고 오늘의 자리를 마련하신것이 아니신가.

이러한 생각에 잠겨있는 일군들을 바라보시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신심에 넘치신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온 나라 전체 인민이 수령님께서 지니시였고 우리 당에 의하여 계승되는 신념과 배짱을 그대로 닮는다면 우리는 적들의 그 어떤 도전도 짓부시며 반드시 이 땅우에 사회주의강성대국을 건설하고 주체혁명위업을 완성할수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전체 일군들과 인민들이 어버이수령님의 강인담대한 신념과 의지, 배짱을 그대로 닮을것을 바라고계시였다. 그러한 신념과 의지, 배짱으로 군대와 인민을 튼튼히 무장시킨다면 반미대결전에서도, 강성국가건설에서도 그 승리는 확정적인것이다.

인민대중에게 자주위업수행을 위한 참다운 사상뿐아니라 그것을 지켜나갈 투철한 신념을 안겨주고 굳은 의지를 심어주며 담대한 배짱을 키워주는것은 주체위업승리의 담보이며 따라서 그것은 령도자가 인민에게 주는 최대의 사랑으로 된다.

군대와 인민을 어버이수령님께서 지니시였던 신념과 의지, 배짱을 그대로 닮은 영웅적인 군대, 영웅적인 인민으로 키우시려는것이야말로 경애하는 장군님의 숭고한 뜻이였다. 하여 선군조선은 새 세기에 들어와 미국의 대조선고립압살책동을 초강경으로 맞서 여지없이 짓부셔버릴수 있었다.

- 2002년 12월 미국이 중유중단조치에 들어간것과 관련하여 공화국정부가 핵시설들의 동결해제 및 재가동조치를 취하기로 결정, 동결된 핵시설들에 대한 봉인과 감시카메라해제작업 즉시 개시.

- 2003년 1월 핵무기전파방지조약으로부터의 탈퇴를 선언하는 공화국정부성명 발표.

- 2005년 2월 핵무기보유를 전세계에 공식선언.

- 2006년 10월 지하핵시험의 성공.

- 2009년 4월 《광명성2》호의 성과적발사와 같은 해 5월 제2차 지하핵시험 성공.

실로 이 나날은 령도자와 전체 군민이 하나의 신념과 의지를 지니고 꼭같은 배짱으로 일심단결된 선군조선의 위력을 온 세상에 남김없이 과시한 력사의 나날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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