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한 통일언론으로

 

6. 15공동선언발표 11돐을 맞으며 남조선인터네트신문 《자주민보》에는 6. 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 다음과 같은 글이 실리였다.

《2000년 새로운 년대기를 맞이한 한반도의 6월은 격정 그자체였다. 분단의 사슬에 묶여 전쟁의 총구에서 언제 뿜어나올지 모르는 화구에 긴장해야만 했던 배달겨레 한민족은 물론 하늘도 땅도 바다도 감동했다. 김대중대통령과 김정일국방위원장께서 만나 분단의 장벽을 무력화시키고 화약냄새풍기는 총구를 막고 평화의 새싹을 틔우는 력사적인 6. 15남북공동선언을 발표하였기때문이다.

이후 금단의 땅으로 여기며 왕래도 피줄의 흐름도 끊겼던 남과 북은 바다길, 하늘길에 이어 륙로와 철길도 이어져 마음만 먹으면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오가며 뜨거운 동포의 정을 느꼈다. 대결에서 협력으로, 미움에서 화해로, 분렬에서 일치로, 막힘에서 교류로, 전쟁에서 평화로의 변화는 60년 단절과 분단의 세월을 훌쩍 뛰여넘어 한민족, 한형제임을 세계만방에 과시하며 단일민족의 우수성을 알렸다.》

이 글에서 볼수 있는것처럼 북남수뇌상봉과 6. 15공동선언의 채택, 언론사대표단의 평양방문을 비롯한 충격적인 사변들은 온 남조선사회를 삽시에 통일분위기로 들끓게 하였다.

남조선인민들속에서 통일열기가 높아지고 다양한 통일운동이 대중적지지속에 활발히 벌어졌다.

남조선의 한 인터네트회사는 10억원의 상금을 걸고 《통일의 알아맞히기》라는 홈페지를 만들었는데 평양상봉소식이 전해진 불과 2~3일동안에만도 수백명이 접속하여 대다수가 《남북화합의 분위기로 통일이 앞당겨질수 있다고 하면서 5년안에 통일이 될것》이라고 예측했다.

이것은 2000년초에 응답자의 55%가 통일이 10~20년이내에, 20%정도가 50~100년사이에 실현될것이라고 한 여론조사때와 완전히 대조되는것이였다.

남조선의 대학들에서 통일운동이 활기를 띠고 전지역적범위에서 《통일한마당》, 《온 겨레 평화대행진》과 같은 여러가지 통일문화행사들이 크게 벌어졌다.

인터네트에 통일관련 홈페지들이 많이 개설되여 가입자들이 《분계선철조망을 예약판매하자》, 《6월 13일을 력사적인 날로 기념하자》, 《비무장지대를 남북문화예술특구로 만들자》는 등의 글을 올려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였다.

남조선인민들의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여 북남관계문제, 통일문제에 대한 남조선언론의 편집형식에서도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으며 남조선인민들의 통일의식발전에 큰 영향을 미치였다.

대표적인 실례가 《사회교육방송》의 대북동향변화이다.

《사회교육방송》은 《KBS》에 소속된 방송으로서 이전에는 반북모략선전을 악랄하게 진행하여왔었다. 그러나 력사적인 6. 15공동선언발표이후 대결지향에서 점차적으로 통일지향으로 변화되면서 2002년 10월말부터는 반북선전을 해오던 고정프로를 없애고 대신 《통일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라는 프로그람을 새로 선정하였다.

그리고 이 편집물에 당국의 《통일정책담당자》나 어용학자들이 아니라 백두산에서 야생화를 사진에 담아온 야생화전문가나 북에서 영화촬영준비를 하고있는 영화감독 등 경제계, 사회계, 문화계 등 각 분야에서 크게 관심을 끌지는 못하지만 통일의 초석을 하나하나 쌓아가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선발하여 출연시켜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6. 15이후부터 남조선신문계의 북에 대한 보도기사량은 종전의 2배로 증가하였다.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대북보도수단은 《중앙일보》의 통일문화연구소와 《련합뉴스》의 민족뉴스취재본부였는데 《련합뉴스》의 민족뉴스취재본부는 북과 관련한 기사를 하루에 평균 50건이상 소개하였다.

우에서도 언급하였지만 남조선중앙일간지들인 《대한매일》에는 《통일플라자》, 《한겨레》는 《한반도》, 《한국일보》에는 《남북포커스》와 같은 북소개고정란들이 설정되여 통일문제에 대한 견해들을 전문 다루었다.

남조선언론은 북남공동선언을 지지환영하는 남조선의 각계각층 지지여론과 국제적문건들도 공개선전하였다.

평양상봉이전까지만 하여도 남조선의 일부 사람들속에서는 지금 시점에서는 통일보다도 《평화공존》이 급선무이기때문에 통일문제를 론의하는것이 현실성이 없다고 하면서 그 누구의 《통일시기상조론》에 공감하는 견해가 적지 않게 류포되여있었다. 그리고 남조선강점 미군에 대해서도 외세가 아니라고 하면서 통일후에도 미군이 동북아지역의 세력균형을 위해 남조선에 계속 주둔해야 하며 미군철수주장은 현실을 무시하는것이라고 보는 경향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평양상봉에서 북과 남이 민족자주와 련방제통일을 지향한다는 공동선언이 발표되자 사회전반의 통일의식이 급격히 고조되고 자주통일, 련방제통일에 대한 각계각층의 사회적관심은 비상히 높아져 론의자체가 금기시되여오던 미군철수문제가 전면적으로 상정되고 민족문제를 동족끼리 자주적으로 해결해나가야 한다는 주장들이 언론을 통하여 거리낌없이 터져나왔다.

《한겨레》신문 2000년 6월 16일부는 《남북이 통일문제를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나가기로 한것은 뜻이 깊다.》고 하였으며 《한국일보》 6월 14일, 17일부도 《6. 15공동선언에서 밝힌 자주는 두말할 필요없이 외세불간섭이라는것이 북의 리해》이라고 하면서 《지금이야말로 남북을 합친 자주적력량이 동북아시아와 세계의 새로운 질서우에서 힘을 발휘하는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지정학적숙명을 이기려면 주변강대국의 리기적전략에 매몰되지 않는 독자적의식이 필요》하며 《통일된 한반도의 대외로선은 남보다 북의 외교를 닮아야 한다는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라고 하였다.

고려대학교 정치학교수도 《우리는 민족통합의 모델로 삼을수 있는 훌륭한 력사적모델을 가지고있다. 고려를 보면 한민족통합이 보일것이다. 고려모델에 기초하여 민족의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고 함으로써 사실상 우리의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을 지지하였다.

2000년 7월 21일 일본의 오끼나와에서 열린 주요8개 나라(영국, 프랑스, 일본, 카나다, 이딸리아, 도이췰란드, 미국, 로씨야) 수뇌자회의에서는 평양에서 열린 수뇌회담의 력사적중요성을 강조하며 북남공동선언의 성실한 리행과정이 북남관계의 새시대를 열어 《한》반도의 긴장을 감소시키는것을 진심으로 희망한다는 내용의 《한반도문제에 관한 특별성명》이 발표되였다.

《중앙일보》 7월 22일부는 이 특별성명의 의의를 강조하면서 《향후 남북대화가 더욱 탄력을 얻을것, 북을 긍정적으로 평가한것》이라고 지면에 공개선전하였다.

《한겨레》 2000년 7월 28일부는 7월 27일 타이의 방코크에서 열린 제7차 아시아지역 안보연단에서 《평양에서 개최된 북남지도자들간의 력사적인 정상회담을 환영하고 1945년 조선반도분단이후 두 지도자들이 서명한 최초의 합의문인 북남공동선언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의장국성명을 실었다.

《한겨레》 9월 7일부는 2000년 9월 세계 189개 나라와 지역의 수반 및 대표들이 참가한 가운데 뉴욕에서 열린 《유엔새천년수뇌자회의》에서 북과 남의 《두 정상이 합의한 공동선언을 한반도평화와 안정, 통일을 위한 중요한 진전으로 환영한다. 남북이 대화과정을 계속 발전시킴으로써 이 지역과 세계평화 및 안전에 기여하면서 궁극적인 평화통일에 이르기를 희망한다.》고 발표된 공동의장성명을 《남북관계진전을 환영하는 최초의 유엔성명》이라고 론평하였다.

이밖에도 6. 15공동선언에 대한 지지와 환영은 서울에서 진행된 제3차 아시아, 유럽수뇌자회의에서 발표된 선언문과 제55차 유엔총회에서 발표된 조선문제와 관련한 결의문에서도 표명되였다.

6. 15공동선언에 대한 세계적인 지지와 환영뿐아니라 이것을 지지하는 언론계의 립장들도 남조선신문들과 잡지들에 그대로 반영되였다.

《통일한국》 2000년 7월호는 북남수뇌회담을 두고 《남북사이의 현안문제중의 하나인 정전체제의 평화체제에로의 전환문제, 북의 핵, 미싸일개발문제 등 단기간내에 해결하기 어렵거나 껄끄러운 문제에 대한 심도있는 론의는 뒤로 미루고 통일원칙과 방안에 대한 론의에 집중함으로써 이번 정상회담의 성격은 <통일회담>이였다고 할수 있다.》고 평하였으며 《동아일보》 2000년 6월 15일부는 《김대통령과 김정일국방위원장이 합의서명한 통일문제의 자주적해결, 남북통일방안의 공통점모색, 리산가족상봉과 경제, 사회 등 다방면의 교류협력 및 당국간 대화계속 등 5개 항은 <우리도 할수 있다. 통일을 이룰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었다.》고 하였다.

《주간한국》 2000년 6월 29일부도 《6. 15공동선언은 과거의 7. 4공동성명이나 남북기본합의서보다 실천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고 할수 있다.》고 하면서 그 리유는 《과거의 합의서가 지도부에 의해 위임받는 형식이였다면 이번의것은 량측 최고지도자가 직접 그리고 최초로 력사적인 담판을 했기때문》이며 《세계가 주목하고 남북의 모든 우방국이 격려, 지원한 문자그대로 세기의 회담》이였기때문에 《6. 15공동선언은 그만큼 국제정치적구속력도 갖고있다고 할수 있다.》고 하였다.

《경향신문》 6월 16일부도 《김대중대통령과 김정일국방위원장간 6. 15남북공동선언채택으로 남북은 새 질서를 맞이하게 됐다. 반목과 대립, 대결로 지나온 불행과 과거력사를 떨치고 화해와 협력, 나아가 통일로 이어지는 디딤돌을 마련했다.》고 하면서 《여태껏 관심밖에 멀리 떨어져있는듯 했던 통일이 가깝게 다가온 느낌이다.》고 하였다.

《동아일보》 6월 15일부는 6. 15공동선언의 우리 민족끼리에 대하여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하자는것은 통일문제가 남북공동의 노력을 통해서만이 해결될 사안임을 강조한것이다. 자주적통일문제는 오히려 남북이 통일과정에서의 걸림돌을 직접적으로, 적극적으로 제거하겠다는것으로 해석된다.》고 평하였다.

남조선언론인들속에서 지난 시기의 《편파적이고 대결지향적인 보도행태》에서 벗어나 민족의 화해와 협력, 통일에 도움이 되는 언론활동을 적극 벌리는 가운데 성균관대학교 언론학교수는 평양상봉후 발표한 《정상회담연기와 언론의 자기반성》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언론들이 지난 시기 대북보도에서 무조건 적대적이였으며 비방론조가 많았다고 하면서 앞으로 언론은 북남관계개선에 도움이 되는 보도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북과의 화해와 협력을 추구하는 《정부》의 정책을 비난하고 북에 대해 로골적으로 비방중상하는 보수언론들의 적대시적인 보도자세를 비판하였으며 북에 대한 외곡보도로 언론의 신뢰성을 떨어뜨리거나 북남관계를 악화시키지 말고 일부 언론사와 언론인들이 《정부》의 보수세력과 대북전문기관의 반공화국모략선전의 앞잡이가 되여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이런 사회적분위기를 대변하여 북남관계문제와 통일문제를 전문 다루는 진보적인 출판보도매체들도 속속 출현하였다.

6. 15이전시기에도 통일문제를 다루는 전문적인 언론매체들인 신문 《한겨레》와 잡지 《말》이 있었다.

이 신문과 잡지는 언론의 민주화를 강령으로 내세운 진보적인 언론운동단체인 민주언론운동협의회에 의하여 창간되였던것만큼 이 신문사의 주축을 이루는 여러 기자, 편집원들이 거의다 진보적경향을 가지고있다.

민주, 민족, 통일을 창간목적으로 내세운 신문 《한겨레》는 6. 15이후 언론사대표단 단장으로 왔던 최학래의 글 《평양을 다녀와서》를 비롯하여 남조선인민들속에 북을 소개하고 북의 실상을 알리는 글들을 많이 실은 진보적인 신문이다.

《한겨레》신문은 남조선의 그 어느 언론보다 미국과 그에 추종하는 남조선우익보수세력에 대한 비난의 도수를 높이고 통일문제토의를 여론화하였다.

지금도 《한겨레》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신문의 론조로 하여 남조선에서 신뢰도가 높은 신문으로 인정받고있다.

남조선에서 《한겨레》와 함께 진보적시사종합잡지로 지칭되는 《말》도 민주화운동의 산물이다.

이와 함께 6. 15를 계기로 창간된 대표적인 진보언론매체는 인터네트신문 《자주민보》이다.

2000년 5월부터 월간지로 발행된 《자주민보》는 2002년 9월 제호를 《우리》로 바꾸었다가 2003년 3월부터 일간지 인터네트신문으로 되면서 《자주민보》로 개칭되였다.

《자주민보》는 창간초기부터 통일시대를 개척하는 방향타, 조타수가 되겠다는것을 사명으로 내세우고 심층취재와 객관분석에 기초한 대북보도를 많이 하고있으며 특히 북남관계에서 제기되는 사건과 정보들의 배경 및 전망에 대한 예측분석에 특별한 힘을 넣고있다.

《자주민보》는 2000년 5월 북남수뇌상봉분위기가 고조되자 제일먼저 경애하는 장군님의 위대성소개기사를 대대적으로 실었으며 중국 동북지방을 취재하여 어버이수령님의 항일혁명투쟁력사를 전면적으로 소개선전하였다.

그리고 북이 핵보유를 선언할것이라고 예측하는 보도기사를 선참으로 내보냈고 핵시험이후에는 북핵보유의 정당성을 적극 론증해나섰으며 재일군사평론가의 론문을 독점게재하면서 조미관계문제를 진보적립장에서 분석고찰하고있다.

또한 미군기지로 인한 피해지역들을 취재하여 남조선강점 미군의 범죄행위들을 낱낱이 고발하고있으며 인터네트방송인 《청춘》과 함께 조선전쟁시기 미군의 량민학살만행과 관련한 동화상을 만들어 《KBS》로 방영함으로써 반미감정을 고조시켰다.

리명박《정권》이 들어선 후 진보언론들에 대한 악랄한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선군정치의 정당성, 사회주의강성국가건설을 위한 북인민들의 투쟁을 지지하고 고무하는 기사들을 계속 집중보도하고있다.

2000년 5월 15일에 신문, 방송, 홈페지운영을 전문으로 하여 설립된 인터네트언론 《민중의 소리》도 남조선의 대표적인 진보언론이다.

《통일뉴스》도 6. 15북남수뇌상봉이후 변화된 조선반도정세와 북남관계소식을 가장 빠르고 옳바르게 전하는 6. 15통일시대언론으로 2000년 10월에 설립된것으로서 남조선에서 유일하게 통일언론으로 지칭되는 인터네트언론이다.

《통일뉴스》는 재미동포학자의 글, 통일학연구소 소장의 글을 비롯한 여러 글들을 통하여 《천안》호사건의 주범을 미국으로 락인하고 남조선보수패당이 떠드는 《북관련설》의 허황성을 폭로하면서 리명박보수정권의 반공화국대결책동과 미국의 대조선적대시정책을 반대하는 언론활동을 적극적으로 벌리고있다.

2001년 9월 24일 설립된 진보적인 인터네트일간종합신문 《프레시안》도 통일문제를 긍정적으로 론하는 언론이다.

북남언론기관들사이의 합의에 따라 북과 남의 기자, 언론인들사이에 교류와 협력도 활성화되면서 2001년 3월에는 북남, 해외의 동포들을 독자로 하는 진보적시사종합잡지인 《민족21》이 창간되였다.

《민족21》은 《남북이 함께 쓰고 함께 읽는 언론과정을 통해 7천만겨레의 마음을 잇는 경의선이 되고저》 북의 통일잡지인 《민족대단결》, 총련의 《조선신보》와 기사교류 및 민간교류를 함께 하는 언론매체로서 6. 15통일시대가 낳은 민족화해와 단합의 산아였다.

6. 15이후 10여년동안 북과 남이 한자리에 모여 진행하는 행사장들, 교류와 협력의 현장에 언제나 《민족21》의 기자들이 있었다.

《민족21》은 북에 대한 사진과 소개기사, 북남관계문제에 대한 시사보도를 비롯하여 60여편의 통일신보사의 기사를 받아 잡지에 실었으며 공화국에 대한 적극적인 취재활동을 벌리고 철저한 객관보도를 진행함으로써 남조선인민들속에 오래동안 자리잡힌 북에 대한 외곡된 편견과 반목의식을 바로잡고 남조선사회전반에 통일문제를 여론화하는데서 일정한 역할을 하고있다.

그로 하여 리명박보수정권의 탄압과 모해를 제일 많이 받으면서도 《민족21》은 자기의 주장과 론조를 잃지 않고 잡지를 중단없이 발간하고있다.

이처럼 남조선에서 진보적인 언론매체들이 민족자주정신과 민족의 단합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언론활동을 벌리면서 통일문제, 북남관계문제를 다루는 진보적인 통일언론이 주류언론으로 당당히 자리잡고 남조선사회에서의 반북의식, 대결의식이 련북의식, 통일의식에로 전환되고있었던것은 다 6. 15시대가 안아온 획기적인 사변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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