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언론의 갈팡질팡

 

사회력사발전에서 진보와 보수의 대립은 불가피한것이다.

그것은 진보세력과 보수세력과의 대립이 새것과 낡은것의 대결이며 기존의 낡은 질서, 낡은 전제군주제도나 파쑈독재체제를 개혁변혁해나가려는 진보세력의 투쟁에 의하여 보수세력의 지지기반이 흔들리고 저들의 생사존망이 위협을 당하기때문이다.

남조선에서 보수세력이라고 하면 단순히 낡은 제도를 고집하는 세력만이 아니라 민족의 리익은 안중에 없이 개인의 안락만을 추구하는 세력, 민족을 중심에 놓고 통일문제를 보지 않고 전적으로 개인과 특권집단의 리해관계에 기초하여 민족문제나 통일문제를 대하는 세력이라고 말할수 있다. 이들은 분렬이 지속되여야 생존할수 있으므로 진정한 민족통일을 외면하고 외세를 등에 업고 저들의 권력이 유지되는 방향에서의 이른바 《통일》, 《자유민주주의체제하의 통일》만을 추구하고있다.

이렇게 놓고볼 때 남조선사회에서 보수세력이란 곧 분렬매국세력, 파쑈독재세력을 의미한다.

력사적인 6. 15북남공동선언이 발표된 이후 남조선사회에서 그에 대한 립장과 태도는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명백한 기준으로 되였다.

남조선에서 보수우익세력들은 그동안 미제국주의자들과 식민지독재정권의 적극적인 비호속에 사회전반에 자기의 영향력을 확대하여왔다. 군부독재정권이 존재하였던 1980년대 중엽까지 보수우익세력들은 괴뢰통치집단의 중추를 이루고 반공파시즘적인 체제를 유지하여왔다.

이들은 외세에 기반한 파쑈독재적인 통치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저들의 손아귀에 언론을 철저히 틀어쥐고 지면과 방송수단을 통해 저들의 대결정책, 분렬정책을 합리화하였다.

남조선사회내부에서 수구언론 즉 보수언론이라고 일컫는 대표적인 일간지인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는 남조선사회에서 보수세력의 립장을 철저히 대변하는 신문으로서 분렬이래 독재집단의 권력유지수단으로, 인민들에 대한 사상탄압의 도구로 되여온 신문들이다.

당시까지만 하여도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남조선의 전체 신문발행부수의 80%를 차지하는 거대신문으로서 남조선사회의 여론을 주도하는 언론이라고 말할수 있었다.

이 보수언론들은 남조선의 보수세력의 리익을 철저히 대변하면서 미제의 식민지지배에 아부굴종하고 공화국에 대한 부르죠아사상문화적침투와 민족의 영구분렬을 위한 반공, 반통일어용수단으로 리용되여왔다.

특히 외곡보도와 편파보도, 비방과 중상으로 민족의 통일념원을 실현하기 위한 북의 성의있는 제안과 정책에 대해 사사건건 트집을 잡으며 그 실현에 방해를 놀았다.

그러나 력사적인 평양상봉과 6. 15공동선언채택은 이러한 보수언론진영에도 큰 혼란과 변화를 가져왔다.

남조선잡지 《월간중앙》 2000년 8월호에는 이런 문구가 실렸다.

《신문도 변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는 수뇌회담을 계기로 일제히 <국방위원장>이라고 호칭하기 시작했다. 정부가 아니라 남쪽사회스스로 김정일위원장의 실체와 지위를 인정했다는 신호였다.》

보수언론들의 큰 변화를 립증하는 하나의 실례였다.

6. 15가 가져온 보수언론의 혼란과 변화는 북에 대하여서는 덮어놓고 비방과 중상만을 일삼던 이 신문들이 경애하는 장군님에 대한 보도에서 저들이 받은 충격을 느낀 그대로 반영한데서 나타났다.

《조선일보》 2000년 6월 19일부는 《요즘 우리 주변은 마치 김정일위원장의 마술에라도 걸린것 같은 분위기이다. 신문과 방송보도는 물론 일상의 대화에까지 김정일국방위원장이 뉴스와 화제의 중심에 서있다. 김정일위원장에 대한 기존의 부정적인상은 사라지고 아주 친근한 이메지로 우리앞에 불쑥 다가선듯 한 착각을 준다.

지금 우리의 기존인식과 관념들은 허물어져가고있는듯한데 무엇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을지 아직 분명히 말할수 없는 그런 혼돈속에 사로잡혀있다고 할수 있다. 마치 우리 대북관의 판도라상자가 열린듯 누구도 통제하기 힘든 흐름들이 우리에게 닥쳐오고있는듯 한 느낌이다.》라고 실었다.

《중앙일보》는 2000년 6월 14일부에서 《특히 시민들의 시선을 끈것은 김정일위원장의 건강하고 여유있는 동작이다. 이밖에 편안한 자세와 웃음, 일일이 김대통령을 안내하는 자연스러운 손짓, 김대통령과 함께 동행하는 자세 등은 그동안 시민들이 갖고있던 김정일위원장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기에 충분히 파격적이였다.》고 하였다.

《동아일보》 2000년 6월 15일부도 《북과 그 지도자 김정일위원장의 참모습은 무엇인가. 력사적남북수뇌회담을 지켜보며 우리 사회가 북에 대한 전례없는 인식의 혼란을 겪고있다. TV를 통해 우리에게 생생하게 다가온 김정일국방위원장과 북의 모습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지만 큰 충격을 던져준것은 사실이다.》고 솔직한 심정을 토로하였다.

남조선잡지 《시사져널》 2000년 6월 29일호는 《김대중대통령이 평양비행장에 도착해 비행기승강대를 내려설 때부터 김정일국방위원장과 작별인사를 나누며 포옹할 때까지의 3일간은 그야말로 수십년간 남쪽의 생각을 지배해온 악성비루스가 박멸되는 순간의 고통이였다.

도대체 그 악성비루스는 언제, 어떻게, 누구에 의해 우리 몸에 침투한것일가? 분렬과 랭전체제의 산물임은 분명하지만 이 물음앞에서 떳떳할수 없는것이 언론이다. 통이 크고 소탈하고 거침이 없고 례의가 바른 김정일위원장의 새로운 모습을 대서특필하는 언론의 지난날을 돌아보지 않을수 없다는 말이다.》라고 평하였다.

보수언론의 이러한 혼란과 변화는 북의 사회주의와 정치체제에 대한 극단한 편견과 외곡보도행태에서 벗어나 객관적보도에 비중을 두는 방향으로 기울어진 사실을 통하여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남조선의 《국방일보》는 남조선보수언론의 대표적인 일간지이며 반동의 아성으로 꼽혀져왔다.

이러한 《국방일보》가 2001년 1월부터 《북한의 오늘》이라는 고정란을 내오고 여기에 관영통신인 《련합뉴스》가 내보내는 북관련 보도들을 그대로 실어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다음은 2001년 3월 22일부에 실린 혁명가극 《피바다》에 대한 소개기사내용이다.

《국방일보》는 《혁명가극 <피바다> 1 500회 공연》이라는 제목을 달고 북에서 하는 선전내용을 그대로 옮겨실었다.

국방홍보원에서 남조선군의 정신교육을 목적으로 발간하는 《국방일보》가 력대 《정권》들이 북의 《체제선전용》이라고 절대로 허용하지 않던 혁명가극 《피바다》에 대해 《김일성주석이 창작지도한 혁명연극》, 《주체사상을 구현한 완벽한 명작》이란 자체평가까지 달며 소개선전한것은 이례적인 일이였다.

이 기사내용에서 혁명가극 《피바다》가 《주체사상을 구현한 사상적내용의 철학적심오성과 폭넓은 생활반영으로 혁명적대작의 참다운 품격을 완벽하게 갖춘 명작으로 평가되고있다.》는 등으로 북의 선전내용을 마치 저들의 견해처럼 소개하였지만 기사가 나간지 한달이 되여도 남조선군 일반사병들속에서는 아무런 문제도 제기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당시 《한나라당》과 남조선신문 《조선일보》, 《문화일보》 등 악질보수세력들은 신문발행을 담당한 국방부 국방홍보원에 대한 전면적인 《보안감사》를 주장하면서 《<국방일보>인가, <로동신문>인가.》,

《장병들이 겪는 사상적혼돈은 어떠하겠는가.》라고 남조선당국을 공격해나섰다.

그런데 가관은 남조선당국이 이에 대해 《예술작품을 통해 북실상을 알리고 옳바른 대북관을 정립》시키기 위한것이였다느니, 《북주장을 표시하는 인용부호가 빠졌다.》느니 하며 맞대응한것이다.

《국방일보》는 혁명가극 《피바다》에 대한 소개기사만이 아니라 3월 28일에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탄생일에 즈음한 기사와 사진을 함께 실어 보수세력들속에서 《이럴바에는 북의 <로동신문>을 그대로 가져다 장병들에게 보여주는게 낫다.》는 비명소리까지 울려나오게 했으며 남조선군부내에서도 그동안 북을 《적의 개념》으로 맞서왔는데 이제는 《신세대 장병들에게 어떤 식으로 정신무장을 시켜야 할지 난감하다.》는 탄식이 터져나오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혼란은 남조선사회 각계에서 보수언론의 아성이라 할수 있는 《조선일보》를 비롯하여 6. 15의 흐름을 거역하여나선 언론을 반대하는 운동이 확산되여나간 사실에서도 드러났다.

친미사대주의에 물젖은 《조선일보》 상층은 6. 15의 흐름에 역행하면서 여전히 북에 대한 비난선전에 열을 올렸으며 다른 일부 우익보수언론들도 북남관계에서 간혹 비난기사를 싣는 등 불손한 언론태도를 보이군 하였다.

《조선일보》와 《월간조선》의 보수언론인들은 력사적인 평양상봉과 북남공동선언, 북의 련방제통일방안을 악랄하게 헐뜯고 반대하면서 당시 《한나라당》패거리들과 야합하여 김대중《정권》의 대북정책에 대해서도 사사건건 트집을 걸었다.

2000년 9월 한달만 해도 《조선일보》는 21건의 대북관련 사설을 싣고 비전향장기수송환문제와 쌀지원문제, 북남군사당국자회담 등을 걸고 북과 김대중《정권》을 비난해나섰다.

《조선일보》의 이러한 반통일적이며 반민족적인 행위는 사회 각계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켰으며 41개의 시민, 사회단체가 참가한 《조선일보》반대시민련대가 구성되여 《조선일보》를 비난하는 시위가 련일 벌어졌다. 다른 언론매체들도 《조선일보》를 비난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남조선의 《MBC》방송은 《조선일보》반대운동에 대한 방송토론회를 1시간 40분이나 진행하여 사회적여론을 불러일으켰으며 《대한매일》과 《한겨레》 등도 《매체비평》란을 통해 《조선일보》를 비난하는 각종 기사를 실었다.

사회여론의 흐름을 눈치채고 다른 우익보수언론들은 북을 정면으로 비난했다가는 《조선일보》와 같은 처지에 빠질수 있다는데로부터 사설과 론평 등 저들의 립장을 밝히는 글에서 북을 비난하는 내용을 극력 자제하기도 하였다.

《조선일보》는 남조선 각계에서 《국민을 수치스럽게 하는 신문》으로 락인되여 2002년에는 《조선일보》구독거부운동까지 벌어져 조선일보사 사장자신이 신문사 경영관리일군들을 모아놓고 경영위기까지 토의할 지경에 이르게 된적도 있었다.

보수언론의 혼란은 보수세력의 든든한 지지기반이였던 《보안법》의 존재위기와 철페문제가 언론에 공공연히 흘러나온데서도 표현되였다.

당시 남조선에서는 《북이 변한것이 아니라 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이 변하였다.》는 소리들이 왕왕 터져나왔으며 지식인들은 력사적인 평양상봉으로 하여 조선반도에 지배해오던 랭전적인 《전후질서》가 이제는 《정상회담이후질서》로 변화되고있다고 하면서 이러한 정세변화에 따라 마땅히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고 《보안법》이 페지되여야 한다고 내놓고 말하였다.

유네스코 석좌교수는 《과거에는 북을 찬양하면 안되였는데 지금은 반대로 북을 비판하면 안되는 분위기로 변화되였다.》고 하였으며 령남대학교의 한 교수는 《<보안법>은 페지되여야 한다. 공산주의사상도 리념의 형태로 있는 한 존중되고 보호되여야 한다.》고 말하였다.

반공, 반북모략기구로 악명을 떨쳐온 남조선의 정보원이 북남관계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허우적대고있는 가운데 괴뢰검찰은 2000년 6월 북남수뇌상봉시 서울대학교와 고려대학교, 경북대학교 등 남조선 10여개 대학 총학생회가 공화국기발을 대학구내에 내걸었던 문제를 《보안법》에 걸어 사법처리하려 하였으나 남조선사회 각계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쳐 나중에는 체포구속조치를 취소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이에 대하여 당시 남조선경찰관계자들은 《사회전체가 남북정상회담을 축하하는 분위기였고 학생들의 행동도 그런 분위기의 연장선상에서 볼수 있기에 본격수사를 하더라도 그 성과가 의심되는 상황이였다.》고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정부의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처벌할수 있지만 사회여론을 잘못 건드릴가보아 체포구속조치를 취소하였다.》고 고백하였다고 한다.

이즈음 남조선검찰은 통일애국투쟁에 나선 한양대학교 총학생회장을 《보안법》에 걸어 체포하였으나 《공권력은 사회의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수밖에 없으며 숙명적으로 정치적이라는 지적을 받을수밖에 없다.》,

《<보안법>은 우리가 처해있는 상황에 따라 그 적용이 달라질수 있다.》고 하면서 그를 석방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두고 남조선법무부와 검찰내부에서는 《이제는 <보안법>을 위반한쪽에서 더 큰소리를 치고있다.》고 하면서 《행위만을 가지고 판단하던 과거와는 달리 급변하는 북남관계에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수 없다.》, 《답답하다.》는 아우성소리가 연방 터져나왔다.

보수언론에 반영된 이러한 혼란은 6. 15이후 보수세력의 심각한 내부모순에서 산생된것이였다.

남조선의 언론들이 《이 땅의 주인노릇을 해온 보수세력, 그들의 견고했던 위상이 하루아침에 크게 흔들리고있다.》, 《지난 50여년동안 이 땅에서 가장 안정적인 직업에 속했던 멸공, 반북랭전주의자들이 바야흐로 정신병자로 공식 분류될 상황에 놓이게 되였다.》고 한탄한것처럼 6. 15이전까지 남조선사회의 지배층을 형성하고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고있던 보수세력들의 대부분이 력사적인 평양상봉이후 일대 혼란에 빠져 허우적대였다.

당시 보수진영에서는 지금 우리의 기존인식과 관념들은 허물어져가고있다, 무엇을 판단기준으로 삼을지 알수 없는 혼돈속에 사로잡혀있다, 누구도 통제하기 힘든 흐름들이 우리에게 닥쳐오고있다, 세상이 바뀌고있다는 아우성들이 왕왕 울려나왔으며 이전 《한나라당》대변인이라는자는 요즘 신문을 보면 모두 북의 《로동신문》같다고 하면서 보수세력들의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위인상에 매혹된 남조선사회의 각계각층이 북을 비난하고 반북대결에 광분하는 보수세력들을 통일과 북남관계발전에 역행하는 정신병자집단으로 몰아댔다. 《정부》의 정책을 《친북》적이라고 비난하면서 기존보수리념을 주장한 극우익보수세력들은 구시대적인 청산대상, 시대의 썩은 오물로 되여 모든 활동에서 온갖 규제를 받게 되였다.

일부 보수세력들은 시대의 흐름에서 밀려나 생존위기까지 겪게 되자 겉으로나마 반북, 반통일적행위에서 벗어나 민족의 화해와 협력, 통일에 동조하는 변화를 시도하기도 하였다.

전쟁시기 미제의 대포밥으로 고용되였던 악질반공분자들, 군출신들로 구성되여 반북대결소동에 앞장서왔던 재향군인회가 6. 25를 계기로 계획하였던 《전쟁 50주년기념식》이라는 반북모략선전깜빠니야를 취소하고 력사적인 평양상봉을 지지하는 환영행사를 벌려놓으며 북과의 《화해, 협력, 통일의 대도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고 력설해나섰다.

대표적반공보수단체로 알려진 자유총련맹도 6. 15이후 반북모략선전공세가 더이상 통하지 않고 사회여론이 북으로 쏠리게 되자 평양상봉을 환영하는 선전구호판을 내걸었는가 하면 지지성명발표놀음을 벌려놓는것과 같은 변신술을 쓰지 않을수 없었다. 그리고 저들의 기관지 《자유공론》 앞표지에 조선반도를 중심으로 북과 남이 굳게 손을 맞잡은 그림을 내고 《세계상황에 대한 판단력을 갖추지 못한 극우익보수세력은 시대착오적지능지체아(정신적 및 육체적불구자)》라는 한양대학교 교수의 글을 실었는가 하면 북과 남은 대결이 아니라 화해, 협력에로 나가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비롯하여 《보안법》의 개정 또는 철페를 요구하는 사회내부의 의식구조실태 등을 싣기까지 하였다.

뿐만아니라 《통일환경변화에 따른 통일준비교육의 새 방향》을 주제로 대토론회를 열거나 북남관계발전에 맞게 《통일교육교사연수프로그람》을 새로 운영하는가 하면 《북남대화정치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를 내기도 하였다.

반공련맹의 후신으로 가장 대표적인 극우익보수단체로 존재해왔던 자유총련맹까지 자금난과 인물난으로 사무처조차 운영할수 없을 정도로 쇠퇴해지자 《반공에서 안보로, 다시 민주와 통일로 시대에 따른 변화》를 시도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회상을 두고 대표적인 보수우익언론인 《월간조선》은 《보수진영에서의 자생력확보를 위한 몸부림이 눈물겹다.》고 자탄하였는가 하면 대표적인 보수학자인 서강대학교 교수는 《지난 시기 이 나라의 주류를 이루며 한국의 리념체제를 수호해오던 자유민주주의세력은 반동보수세력으로 밀려났고 드러내놓고 자기주장을 펴기 어려웠던 사회주의변혁세력이 진보라는 이름으로 사회주류로 나서게 되였다.》고 비명을 질렀다.

한마디로 보수우익세력들은 반공, 반북 등의 기본리념의 유지는 고사하고 대세에 눌리워 숨도 크게 못 쉬는 완전히 보잘것없는 세력으로 간신히 유지되였다.

이처럼 보수세력유지의 기틀이라고 하던 《보안법》이 유명무실해지고 북남화해와 통일이 대세의 흐름으로 되면서 권력에 아부하고 자기 리속만을 채우기에 급급하던 보수세력과 그 대변지인 보수언론들이 극도의 수세에 몰리는 등 놀라운 사변이 벌어지게 된것은 전적으로 6. 15공동선언이 안아온 결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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