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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6. 15의 메아리 통일언론열풍

 

나라가 분렬되여 처음으로 이루어진 2000년 6월 북남수뇌상봉과 6. 15공동선언의 발표는 반세기이상 지속되여온 분렬과 대결의 력사를 화해와 단합, 통일의 력사로 바꾸고 새 세기 우리 민족의 통일대강을 환히 밝혀준 일대 사변으로서 온 겨레와 전세계를 커다란 충격과 열광, 환호와 경탄으로 끓어번지게 하였다.

외세에 의하여 갈라져 반세기이상을 살아왔던 우리 민족이 6월의 그 나날처럼 마음도 지향도 하나로 뭉쳐 그토록 애타게, 그토록 사무치게 우리 민족끼리를 웨쳤던적이 과연 있었던가.

6. 15가 안아온 경이적인 북남관계발전은 우리 민족끼리 손을 잡으면 이 세상에 그 무엇도 못해낼 일이 없으며 우리 민족의 주체적힘으로 얼마든지 대결과 분렬의 장벽을 마스고 평화와 통일을 이룩할수 있다는것을 내외에 널리 과시하였다. 더우기 6. 15의 열풍이 지속되는속에서 2007년에 또 한차례 수뇌상봉이 진행되고 10. 4선언이 발표된것은 평화와 통일, 번영의 시대를 열어놓으려는 우리 민족의 확고한 의지와 저력, 슬기를 세계만방에 남김없이 보여준 장엄한 쾌거이다.

6. 15가 우리 민족의 조국통일운동과 북남관계발전에 미친 영향은 실로 거대하며 그 불멸의 업적은 6. 15통일언론열풍과 더불어 민족사에 빛나게 아로새겨져있다.

2

대결과 불신의 장막에 파렬구를 내게 하다

 

력사적인 평양상봉이전까지만 하여도 남조선사회에 깊이 뿌리박힌 숭미사대주의사상과 반공화국대결의식은 군사분계선에 구축된 콩크리트장벽처럼 굳어져있었다.

분렬통치배들은 이를 지탱점으로 하여 반북대결의 선견대로 길들여진 남조선언론으로 하여금 한피줄을 나눈 동족을 주적으로 몰아대고 분렬의 근원이며 통일의 주되는 방해자인 미국을 동맹자로 선전하도록 하였다. 이로 하여 쌓여지는 북남사이의 오해와 불신, 반목과 대결의식은 북남관계를 개선하고 조국통일을 이룩하는데 커다란 부정적영향을 미치고있었다.

민족의 영구분렬만을 꾀해온 남조선의 통치배들은 동족끼리 모여앉아 통일문제를 해결하려는 우리 민족의 조국통일념원을 외면하고 통일을 지향하는 남조선인민들의 정의로운 애국투쟁에 칼부림하면서 소수일지라도 정의와 진실을 대변하여나선 진보적언론에 파쑈의 자갈을 물리였다.

허나 남조선사회의 자주화, 민주화와 함께 통일을 바라는 북과 남, 해외의 한결같은 지향은 무엇으로써도 가로막을수 없는것이였다.

1980년대부터 남조선의 진보적인 언론들은 《지난날의 죄과를 반성하고 오욕과 암흑의 언론사를 뛰여넘어 민주화와 민족통일을 념원하는 국민대중의 표현수단이 되여야 한다.》고 하면서 언론이 《민주언론, 민족언론, 민중언론으로 다시 태여나야 한다.》고 촉구하였다.

진보적언론을 망라하여 남조선사회의 각계층속에서 일어난 북바로알기운동은 인민대중주체의 자주적통일을 바라는 겨레의 통일운동에 실려 1990년대말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2000년 4월 8일 북남수뇌상봉에 관한 북남합의서의 발표를 계기로 남조선의 정치정세가 특히 출판언론계가 일시에 달라졌다. 평양바람이 일어번진것이다.

민족분렬이후 처음으로 있게 되는 6월상봉을 앞두고 사회의 각계각층속에서 북의 현실을 알고싶어하는 북바로알기운동은 하나의 풍조처럼 되여갔다.

이러한 열기를 타고 남조선의 많은 신문, 방송들이 경애하는 장군님의 존귀하신 영상을 크게 모시고 그이의 혁명활동과 령도업적에 대하여 대서특필하였으며 출판계에서는 《김일성저작집》과 《김정일선집》 등을 기본자료로 한 《김정일총비서의 생각읽기》, 《현대북한의 지도자 김일성김정일》을 비롯하여 경애하는 장군님을 소개하는 책들이 새로 출판되고 이전에 나왔던 수십종의 북관련 책자들도 재판되여 나왔다.

교보문고, 종로서적을 비롯한 남조선의 큰 책방들에서는 북과 관련한 책들을 전시하는 특별매장을 따로 내왔는데 이곳을 찾는 독자들속에서 경애하는 장군님을 소개하는 도서가 특별히 인기를 끌었다. 김대중까지도 서울교육대학교에서 《감명깊게 읽은 책이 무엇이냐?》고 묻는 학생들의 질문에 경애하는 장군님에 대해 서술한 《곁에서 본 김정일》이라는 책이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남조선학계는 지난 시기 반공, 대결로 일관되여온 북에 대한 연구자세를 《이북바로보기》로 전환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북과 관련한 학술토론회들을 전례없는 규모로 준비하였다.

북문제전문가들은 그동안 공화국의 신문, 방송에 대한 분석을 소홀히 해왔다고 하면서 북의 정책방향이나 민족의 동질성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북의 신문과 방송에 주목해야 한다고 하였다.

합의서발표이후 통일에 대한 관심도 비상히 높아져 출판계, 학계, 언론계에서뿐아니라 대학들에서 각종 통일운동조직들과 리념소조들의 활동이 눈에 띄게 활발해지고 그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부쩍 높아졌다.

이에 대해 언론들은 《한동안 즘즘했던 대학가의 통일관련 동아리와 학술모임이 남북합의서발표이후 활기를 띠고있으며 대학생들사이에서 통일바람이 일고있다.》고 보도하였다.

남조선인민들의 이러한 민심을 반영하면서 언론의 이목은 드디여 6월수뇌상봉이 진행되게 될 평양으로 집중되였다.

김대중이 평양으로 떠나기 전인 6월 11일에 벌써 서울의 롯데호텔에 있는 중계소에는 270여개의 통신과 방송, 신문사들에서 온 1 300여명의 기자들이 본격적인 취재활동을 위해 모여들었다.

남조선언론이 한결같이 평한것처럼 이렇게 많은 기자들이 평양상봉취재를 위해 모인적은 이전에 없었다고 한다.

6월 13일 아침 롯데호텔 2층에 설치된 기자쎈터는 평소보다 2~3시간 일찍 출근한 내외신기자들로 붐비였으며 오전 10시경부터 기자들은 누가 영접나오겠는지 궁금해하면서 술렁대기 시작하였다.

2000년 6월 13일 오전 10시 35분.

수천명의 환영군중이 터쳐올리는 폭풍같은 《만세!》의 환호성과 환영곡이 하늘땅을 진감하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일군들과 함께 비행장에 들어서시는 모습이 대형전광판에 비쳐지자 일순간 롯데호텔 기자쎈터는 감동의 도가니가 되여버렸다.

내외신기자들의 입에서 《와!》 하는 탄성과 함께 박수갈채가 터졌으며 이 순간을 놓칠세라 수십명의 촬영기자들이 촬영기샤타를 눌러대는것과 동시에 수십대의 촬영조명이 불을 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비행기에서 내리는 김대중《대통령》과 악수를 나누시며 인사를 하시는 장면, 같은 차에 함께 오르시는 파격적인 모습이 대형전광판에 련이어 비쳐지자 환호의 눈물, 감격의 박수소리는 또다시 터져올랐다.

과연 이 순간은 암흑의 《자유세계》, 모략으로 진실을 가리우고 중상으로 정의를 어지럽혀온 남조선언론계에 광활한 해빛이 비쳐지는 력사의 순간이였다.

어떤 환경속에서도 《객관적기록자》로서의 랭정함을 잃지 않는다는 《자유세계》기자들의 모습은 TV를 시청하며 울고웃는 남조선 전지역의 일반대중의 모습과 다를바 없었다.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이 영접할것을 예상해 미리 기사를 본사에 보냈던 외신기자들은 《기사계획을 전부 다시 짜야 한다.》며 부산스레 움직였다. AFP 등 세계 주요통신기자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한 표정으로 《김정일위원장이 직접 영접나왔다.》는 한줄을 긴급기사로 타전했으며 일부 기자는 쓰는것도 잊은채 아연한 표정으로 대형전광판만 뚫어지게 지켜보았다.

평양비행장에서의 상봉으로부터 시작된 력사적인 평양수뇌상봉은 남조선언론계의 모습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북에 대한 비난색채가 사라진것은 물론 온 남조선땅에 위인숭배를 핵으로 하는 언론열풍을 몰아왔다.

대결시대에 남조선언론은 해빛을 막는 구름이였다. 지금껏 남조선인민들은 언론의 외곡된 악선전과 맹목적인 비난전으로 하여 민족의 령수의 참모습을 볼수가 없었다. 언론인들자체도 마찬가지였다.

6. 15의 해빛은 이 반공의 검은구름을 일시에 밀어내고 온 남녘땅에 정의와 진리의 참모습이 비끼게 하였다.

민족의 태양에서 발산되는 그 정의롭고 위대한 빛발은 반세기를 넘게 쌓아온 대결과 불신의 장벽을 물먹은 담벽마냥 허물어버렸고 어제까지도 외곡과 비난전에 열을 올리던 언론인들을 반공의 잠에서 깨여나게 하였던것이다.

남조선의 주요신문, 통신, 방송이 편집중심을 경애하는 장군님에 대한 보도내용으로 일관시키고 경쟁적으로 관련기사들을 내보내는 이변이 일어났다.

만사람의 심장을 끌어당기는 장군님의 우렁우렁한 음성이 전파공간을 타고 남조선의 라지오방송과 TV의 방영시간을 꽉 채웠으며 그이의 활달하신 몸가짐과 표정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소개하며 절세의 위인에 대한 경탄과 매혹을 쏟아놓는 글들이 신문편집과 편성의 전반내용을 이루었다.

6월 14일 아침 남조선의 신문들은 일제히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김대중《대통령》과 악수하시는 장면을 1면에 크게 편집하였다.

그중에서도 《경향신문》은 이 장면사진을 1면에 전면편집하면서 아무런 해설글이나 사진설명도 달지 않았다.

신문의 사진편집에 해설글이나 사진설명글을 첨부하는것은 문자를 표현방식으로 하는 신문편집의 고정된 형식으로서 화면과 대화, 소리를 표현방식으로 하는 TV나 라지오와 구별되는 특성이다.

그러나 《경향신문》은 이 형식을 깨뜨리고 북남수뇌분들의 감격스러운 상봉모습을 한장의 사진으로 편집함으로써 수백수천마디의 감동의 말을 대신하였던것이다.

6. 15이전시기에 남조선출판물들은 주로 북이 출판선전한 백두산위인들의 영상사진을 수집하여 출판물에 싣군 하였다. 그러나 6. 15직후부터는 대부분 자기들이 직접 촬영편집한 위대한 장군님의 영상사진들을 신문에 모시였다.

6월상봉을 다루는 남조선출판물들에서 경애하는 장군님의 영상사진은 언제나 지면의 중심을 차지하였으며 심지어 김대중《대통령》과 함께 계시는 영상인 경우에도 대부분 장군님을 중심으로 편집되군 하였다.

《중앙일보》 6월 14일부의 편집과 관련하여 한양대학교의 어느 한 교수는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중앙일보>가 1면에 김대중대통령과 김정일위원장이 만나는 장면을 전면사진으로 실은것은 아마 한국신문업의 새로운 획을 그은 파격적인 편집이 아닌가 한다. 접힌 신문을 펼쳐들면서 깜짝 놀란것도 무리가 아니였다.

1면 하단에 들어가는 광고는 물론 기사도 따로 싣지 않고 전체를 두 수뇌분이 평양비행장에서 악수하는 장면으로 꾸며 회담성사의 중요성을 영상적인 방식으로 과감하게 처리, 물론 회담의 내용을 우측 하단에 간단하게 설명해 내용을 보충하고있으나 그럼에도 사진을 위주로 이날의 주요뉴스를 독자들이 판단하도록 한것은 충격적인 방식이라 하지 않을수 없다.

이러한 파격적이고 기발한 편집방식은 보는 신문(읽는 신문이 아니라)의 전형을 보여준것이라고 할수 있다. 어떤 보도기사보다도 한장의 사진이 담아내는 영상적위력의 극대화가 회담의 력사적의미를 독자들에게 전달하는데 더 효과적이였다고 생각한다.》

남조선교수가 말한것처럼 이것은 남조선신문계의 많은 사람들이 갖고있던 편견이나 관념을 바꿔놓는데서 기존의 신문이라는 매체가 가질수 있는 한계를 훨씬 뛰여넘게 하였으며 그 시도도 매우 성공적이였다고 평가할만한것이였다.

이러한 파격적인 편집방식은 라지오와 TV방송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KBS》와 《MBC》, 《SBS》의 공동시청률조사에 의하면 평양상봉과 관련한 각 TV방송국의 보도시청률은 보통때의 2~4배로서 당시의 최고기록을 돌파하였다.

《제1라지오》와 《MBC》를 비롯한 방송들은 《김정일국방위원장님의 육성이 전세계로 전파되였다.》고 하면서 모든 프로그람을 중지하고 경애하는 장군님의 육성을 하루 24시간중에서 시청률이 제일 높은 《황금》시간에 보도하였다.

심지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김대중《대통령》과 단독회담을 하시는 15분간의 록화물가운데서 경애하는 장군님의 육성부분(5분정도)만을 뽑아 밤늦게까지 10여차례나 반복하여 방송하였다. 이렇게 재방송을 많이 한것은 남조선방송력사상 처음 있는 일이였다고 한다.

남조선언론계는 세기의 분기점에서 특기할 사변을 마련하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위인상에 매혹되여 장군님을 《2000년 올해의 인물》로 발표하였으며 2000년 한해동안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영상사진들을 정중히 모신것만 하여도 주요신문 11종과 잡지 14종에 총 1 030여상에 달하였다.

그후 6. 15공동선언발표 5돐이 되는 2005년까지 5년간 남조선의 주요출판물들에 모셔진 경애하는 장군님의 영상사진은 무려 3 300여상이나 되며 위대성소개기사와 반향자료들은 4 000여건이나 되였다.

력사적인 북남상봉을 계기로 남조선언론계는 북에 대한 보도내용과 편집방식에서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남조선신문과 방송에서 북과 관련한 기사내용들, 방송프로들이 늘어나고 내용에서도 반북, 랭전시기의 고정적인 틀에서 벗어나 북의 사회현실에 대하여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보도하려는 경향을 보이였다.

북남최고위급회담과 관련한 북남합의문이 발표되기 전까지만 하여도 남조선신문들의 북에 대한 보도규모는 북남관계에서 특별한 계기가 있어야 한두건의 짤막한 보도기사를 싣는것이 고작이였다. 또한 보도론조에서도 거의 모든 신문들이 북을 비난하는것으로 일관되여있었다.

그러나 평양상봉이후에는 북을 비난하는 고정란을 아예 없애버리고 매일과 같이 북과 관련한 보도기사들을 실었으며 그 내용도 비교적 객관성을 보장하도록 서술하였다.

남조선의 주요신문들인 《중앙일보》가 《신 남북시대》, 《한겨레》가 《한반도, 한민족》, 《대한매일》이 《통일플라자》, 《한국일보》가 《남북포커스》 등 북과 관련한 전문보도란들을 내오고 북의 정책과 교육, 문화, 체육실태 등을 소개한 기사들을 객관적인 립장에서 소개선전하였다.

보도나 기사게재의 회수에서도 지난 시기에 비해 3~4배 지어는 10배이상으로 늘어나고 그 내용도 대부분 북을 비난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소개하였다.

남조선의 주요신문들과 잡지들을 조사한데 의하면 북남합의서발표이전인 3월 한달동안에 북과 관련한 기사들을 평균 7. 5건(그중 사설은 평균 3.5건)을 실었다면 9월과 10월에는 사설만 해도 한달에 평균 10건으로서 3일에 한번정도 실었으며 기타 시론, 론평 등은 거의 매일 싣다싶이 하였다.

남조선의 《KBS》는 《사회교육방송》을 통해 1980년부터 진행하여온 북에 대한 비난방송 고정란을 6월 20일부터 아예 페지하였으며 《탈북자》들과 악질반공분자들을 내세워 북을 비난하던 방송프로들도 없애고말았다.

또한 《MBC》와 《SBS》 등도 북을 비난하던 고정란들을 없애고 론조들을 객관적으로, 긍정적으로 개선하였다.

《한겨레》신문 2000년 6월 14일부가 전한것처럼 《북을 대하는 남조선언론의 태도는 매우 호혜적이고 정중해》졌으며 TV에서는 북의 여러 모습을 특집으로 만들어 호의적으로 방송하였고 북영화도 잇달아 방영하였다. 북남수뇌상봉과 관련한 좌담회들에서는 북의 실상이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언급되였다.

력사적인 평양상봉은 남조선언론이 북에 대한 보도에서 객관적이고 공정한 역할을 하게 하였으며 이것으로 하여 남조선인민들의 머리속에 남아있던 오해와 불신의 장막은 서서히 가셔지기 시작하였다.

서울중심에 위치한 서점에서는 북과 사회주의에 관한 책주문이 급증해 판매사원들이 시간외 근무를 섰는가 하면 백화점과 류행매장에서는 장군님께서 쓰시고 입으시였던것과 같은 색안경과 인민복이 날개돋친듯이 판매되는 이전에는 상상도 할수 없었던 광경이 펼쳐졌다.

북남수뇌상봉보도와 함께 북의 풍경과 광경, 영화 등이 련일 TV로 방영되여 시청자들의 시선을 집중시켰으며 북관련 서적, 음악매체들이 대량적으로 팔리였다.

대규모시위나 집회가 하루에 평균 5건이상 벌어진다고 하는 남조선에서 평양상봉이 진행되던 6월 13일부터 15일까지 사이에 단 한건의 시위도 일어나지 않은것은 남조선인민들의 이목이 평양상봉에로 집중되였다는것을 보여주는 좋은 실례이다.

외풍이 범람하는 서울의 거리들에 6. 15통일시대를 상징하듯 《통일서점》, 《통일가게》, 《통일화원》 등 《통일》이라는 우리 글로 된 간판들이 버젓이 등장하는 풍경도 펼쳐졌다.

당시 미국신문 《뉴욕 타임스》는 자기들이 진행한 여론조사결과에 의하면 응답자의 대부분이 《북과 김정일위원장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게 됐다고 대답했다.》고 하면서 《이런 뜻밖의 열풍을 어떻게 생각할것인가는 한국국민들이 수십년간 북을 불구대천의 적으로 간주하던 랭전개념을 재평가하지 않을수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참으로 평양상봉은 반세기가 넘도록 지속된 북에 대한 불신과 대결구조가 일시에 허물어지는 력사적인 순간이였으며 6. 15공동선언의 채택은 조선반도는 물론 동북아지역정세에 엄청난 파장과 충격을 몰아온 일대 사변이였다.

민족분렬사상 처음으로 북남수뇌상봉이 진행되고 조국통일에 대한 겨레의 지향과 념원을 반영한 6. 15공동선언이 채택된것은 온 겨레의 가슴마다에 단합과 통일에 대한 신심과 열정을 북돋아주고 자주통일의 새시대를 열어놓은 특기할 사변이였으며 남조선언론이 진정으로 민심을 반영한 공정한 언론으로서의 지위를 차지하고 역할을 할수 있게 하는데서 전환적계기로 되였다.

삼천리강토에 차넘치던 6월의 감격과 환희의 언론열풍은 세월이 흘러도 우리 겨레의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을 영원한 화폭으로 새겨져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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