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통일은 어디서 시작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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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철과 김명호는 3일만에 영향력을 가지고있는 정당, 단체, 파벌들과 주요 정객들에 대한 자료를 보고하여왔다.

정시명은 자료를 받아안자 일체 바깥출입을 하지 않고 자기 방에 들어박혀 시간을 보냈다. 자료연구를 심화시키면서 방대하면서도 상세하게 정계의 안팎을 파헤친 전우들의 일솜씨에 무척 놀라기도 하고 흡족하기 그지없었다.

한주일에 걸치는 자료연구를 마치자 남조선의 정치구도를 앞으로의 투쟁전망과 결부시켜 그려나가기 시작하였다.

김일성장군님의 뜻깊은 가르치심부터 먼저 떠올랐다.

《외세가 없고 평화롭고 자주적인 인민의 통일국가를 세워 삼천리강토우에 인민의 부강한 락원을 세우자.》

새겨갈수록 자자구구 뜻이 깊어지고 가슴이 뜨거워오군 한다.

정시명은 자신과 흥국상회의 존재가 바로 이 가르치심을 떠나서는 무익하다는것을 걸음마다 명심하고있었다. 바로 이 전략적인 구호로부터 모든것이 출발되고 총화되여야 한다. 당면임무도 전략도 전술도 여기로부터 흘러나와야 한다. 갈피를 잡기 힘든 혼탁한 정치판에서 적아를 식별하고 사업대상을 확정하는 작업도 이 구호에 따라 벌려야 했다. 이 구호를 그대로 받아물었다면 동지가 될것이고 이 구호에 도전해나선다면 원쑤의 진영으로 구분해놓고 징벌의 포화를 들씌워야 한다. 그리고 크나작으나 이 구호에 리해관계를 가지고있고 구호가 명시한 목표달성을 부분적이나마 자기 위업으로 받아들인다면 비록 정견이 다르고 신앙이 다르고 계급이 달라도 애국의 길에 끌어들여야 할 대상으로 인정하여야 한다. 인정할뿐더러 힘에 부쳐도 손을 내밀고 새 조국건설에 함께 나서도록 이끌어주어야 한다.

정시명은 우선 하지와 미군정청을 첫째가는 대결대상으로 정해놓았다. 이제부터 벌려나가야 할 정치전의 기본대상은 하지를 대표로하는 미군의 현지집행기관으로 설정하는것이 옳다고 결론하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쩐지 마음이 무거워졌다. 미국놈들과의 정면대결인것이다.

그 다음에 떠오른것은 리승만의 몰골이다.

리승만은 두말할것없이 불태워버려야 할 매국노이다.

련이어 떠오른것이 김구와 김규식이다.

그의 생각은 더욱 무거워졌다.

김구의 얼굴이 불시에 그의 눈앞에 얼른거리면서 그를 두고 하시던 장군님의 간곡한 말씀이 떠올랐던것이다.

김구와 김규식을 끝내 하지의 품에 밀어붙여야 하겠는가.

지금도 김구나 김규식은 여전히 반동으로 규정되여있다. 좌익이 내놓은 구호에도 《김구, 리승만을 타도하라》고 될 정도로 김구, 김규식세력은 애국력량의 첫째가는 표적이 되여 규탄을 받고있다.

정시명은 차마 하지와 그들을 동렬에 세울수가 없었다. 어느 정도로는 정시명에게 파악이 있는 인물들이였다.

사상과 정견을 제쳐놓고보면 미우면서도 정이 가는 인물들이였다.

김구만 봐도 리승만과는 달리 벌써 10대의 홍안시절부터 의분에 불을 질러 화승총을 메고나서 압제자들을 징벌하는 싸움에 나선 사람이다. 20대에 들어서서는 부모처자 다 버리고 세상천지를 숨차게 뛰여다니며 왜놈의 정수리에 살을 날리고 폭탄을 던지고 또 옥살이는 얼마나 치르었는가. 고난에 찬 그의 인생행로를 반공이라는 리념때문에 매국으로 몰아붙이면 력사의 정의앞에서 매우 온당치 않고 무책임한것이 아니겠는가.

정시명은 종시 결심을 굳히지 못하고 그들에 대한 분석자료를 다시 들추기 시작하였다. 좋은 소리도 많지만 나쁜 소리가 더 많다.

그러니 거기에서는 김구나 김규식을 다르게 종합적으로 평가할수 있는 요소는 찾을수가 없었다.

답답한 생각에 눌려 담배를 피워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방문을 열고 뒤뜰안에 있는 정자나무밑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생각을 가다듬어 적진을 다시 마음속으로 훑어보기 시작하였다.

당시 미군정청이 관심을 두고있는 반동상층은 주로 3개파로 나뉘여져 있었다.

남조선반동세력이 광복후 맨 처음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련합하여 등장한것은 한국민주당(《한민당》)세력이였다.

국내의 지주, 예속자본가, 친일파, 일제시기 관료배들로 무어진 이 당은 극우익반동집단으로서 세상에 삐여나오자마자 미제의 턱찌끼를 받아먹으면서 미제의 식민지예속화정책에 적극 추종하였다.

그러나 이 집단은 여러 계층과 계파들을 망라하고 대중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있으므로 자기의 세력을 크게 확장하지 못하고 리승만에게 추파를 던지고있었다.

리승만도 이 당에 장덕수를 비롯한 손때묻은 측근들을 지도적인 자리들에 많이 침투시켜 놓고있다.

《한민당》은 내부를 분렬시켜 지리멸렬되도록 하는것이 상책일것 같았다.

두번째 세력은 리승만이 남조선에 기여들어 조직한 《독립촉성중앙협의회》(독촉)세력이였다.

이 세력은 리승만처럼 대체로 미국에서 길들여진 친미적인 인물들이 핵심적역할을 하는 매국집단이였다.

이 무리는 미국의 힘을 떠나서는 생존할수 없고 제놈들의 리해관계를 철두철미 미국의 리권과 일치시키는 역적들의 집합체였다.

그러므로 정시명은 이 패거리는 정치권에서 철저히 고립, 박멸해나가야 한다고 다시금 결단을 내렸다.

세번째로 편성된 우익세력이 김구, 김규식을 비롯한 상해림시정부(《림정》)세력이였다.

우익세력중에서 대중의 호응을 받고있는것은 이 《림정》이였다. 미군정청이 《림정》을 무시해버리고싶어도 주저하는것은 리승만이나 《한민당》세력이 인민들의 미움을 사고있는 반면에 《림정》은 조선의 독립정신의 맥을 이어왔다는것으로 하여 국민의 사랑을 받고있는것이였다.

이 세 집단은 다같이 《반공》을 부르짖으면서도 그 내부에 서로 융합되기 어려운 심각한 모순과 알륵이 있었다. 리승만과 《한민당》세력이 정권에 대한 야망과 일신의 부귀영화를 위한 일이라면 나라와 민족의 리익은 안중에도 없이 마구 덤벼들었다면 김구, 김규식세력은 미국에 은근히 기대를 걸면서도 나라의 존엄과 독립과 통일에 대하여 주장해나선것이다.

거기에다가 리승만과 《림정》사이의 뿌리깊은 알륵과 적대감이 권력쟁탈을 위한 상호간의 맹렬한 책동으로 날을 따라 커가기만 했던것이다.

이 모순을 리용하지 않고 김구, 김규식을 리승만과 나란히 세워 하지에게 달아놓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정시명은 하지를 만나던 일이 되살아났다. 친미세력권을 확대하기 위해 바재이던 하지의 몰골이 떠오르자 정시명은 자신이 기본문제에서 탈선되고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의 야망대로 그들을 하나의 링안에 몰아넣는다고 하자. 나라의 분렬을 고착시키려는 미제의 움직임에 보조를 맞추는격으로 된다.

분명한것은 그들속에서 최대한의 력량을 떼내여 매국의 집단을 최소화시키는것이다.

그러면 어느 집단이 애국의 길에 가까운 세력인가?

두말할것없이 김구, 김규식의 세력이다. 공산주의에 칼을 물고 덤벼들기는 해도 자주의 넋이 있고 애국애민의 얼이 있다. 정치력도 리승만이나 《한민당》세력에 비할바가 아니다. 김구세력만 떼여낸다 해도 미제는 남조선에서 강력한 정치적지반을 잃게 될것이며 반공우익집단은 크게 약화될것이다.

이것은 현 정세의 요구이며 애국의 요구이다.

정시명은 이렇게 사색이 정리되자 김구나 김규식은 손을 잡아야 할 대상으로 눌러놓고 《한민당》을 리승만의 곁에 세워놓았다.

김승원은 《한민당》은 미련을 가질만 한 일고의 가치도 없노라고 단언하였다.

김승원은 《한민당》에 대한 평가자료에 이렇게 썼다.

…《〈한민당〉패거리들은 그 체질로 보아 일제시기부터 민중의 행복과 나라의 부강을 위해서는 민족의 족보에서 제거되여야 할 쓰레기들이다. 이놈들은 광복이 되자 음지에 쑥 기여들었다가 미국놈의 팔굽에 매달려 다시 양지로 기여나와 번성하기 시작한 놈들로서 외세의존이 생리로 된 놈들이다.

나의 사촌형인 김성수자체가 일제시기 군량미 삼천석을 헌납한 호남벌의 대지주다. 철저히 타도해야 할 무리이다.…》

다음으로 정시명은 개천땅에서 줄행랑을 놓아 서울에 온 문봉제놈이 조직한 《서북청년회》라는 얼간망둥이들의 조직도 하지나 리승만의 편에 세워놓았다.

《서북청년회》를 주저없이 하지의 쪽에다 밀어놓은것은 그놈들이 대체로 북반부의 정치에 반기를 들고 의식적으로 남으로 도주해온자들이기때문이였다. 어차피 그들의 생존방식도 친미, 매국밖에 달리는 될수 없는것이다. 손을 내밀어 돌려세울수 없는 무조건 고립, 와해, 타도해야 할 투쟁대상이다.

김구와 김규식의 얼굴이 다시 떠오르면서 자기속이 어느 정도 시원해지는듯싶었다. 공산주의운동에 일관하게 맞서고 심술을 쓰기는 했어도 그네들은 수난많은 민족의 한을 언제나 가슴에 품고 살아오는 지사들임에는 틀림없다. 그들도 언젠가는 민족의 재생과 만년번영을 위한 김일성장군님의 웅지를 받들어나서게 될것이다.

만약 그들을 외세의 품에 밀어던져 먼 뒤날에 민족사의 한페지에 그들의 이름이 치욕으로 새겨진다면 그 책임을 어찌 그들에게만 씌울수 있으랴 하는 생각이 정시명의 심중을 강하게 때렸다.

정시명은 다음으로는 함께 손잡고 나가야 할 협력자들을 그려보았다.

려운형의 집에서 3거두회의에 참가했던 일이 생각났다.

…그날의 회합은 김명호의 요구에 의하여 소집되였다.

조직부장직을 차지한 김명호가 어느날 정시명에게 그동안 당내부사업을 료해한 정형을 이야기하고나서 정시명이 조직의 명의로 근로인민당의 거두들인 백남운과 리영을 만나줄것을 희망하였다.

《당의 목표가 명백치 않고 아직도 거두들부터 우경적인 경향이 농후한것이 문제입니다. 그리고 강하게 규률을 세워나가자니 그동안 무정부주의적분위기에 습관된 적지 않은 세력들이 당내 민주화를 떠들면서 소란을 피우는데 여기에는 3거두들에게도 크게 책임이 있습니다.》

김명호는 실례를 들어가면서 자기가 겪고있는 고충을 털어놓으며 이렇게 분석하였다.

《지금은 토론구락부나 다름이 없습니다. 백남운선생은 제가 려운형선생의 단독결심으로 등용된데 대하여 불만을 가지고 곁을 주지 않습니다. 당이 최고강령은 있으나 최저강령이 없고 정책적문제들에서 3거두들로부터 의견조정이 잘되지 않습니다. 쏘미량군철거지지가 겨우 당론으로 선포되기는 했지만 〈좌우합작〉탈퇴문제는 아직도 어정쩡합니다.》

김명호가 이렇게 저저히 력설하는바람에 정시명은 자기가 공개장소에 나타나는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응하였다.

그가 가는데 대해서는 마동열이도 반대해나섰으나 나중에는 따라 나섰다.

모임에 앞서 려운형은 정향선생이 근로인민당지도부회합에 참가하게 되였다는것을 엄숙하게 선포하였다. 그리고는 첫 발언권을 정시명에게 주었다.

뜻밖의 소개말에 정시명은 당황하였지만 려운형의 이야기가 사뭇 장중하기까지 하여 내색은 보이지 않고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났다.

정시명은 근로인민당이 얻은 성과에 대해 평가해주고 이미 범한 과오를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비판하였다. 정시명은 공산주의자라면 누구나 파쟁을 그만 두고 나라가 맞다든 엄중한 재난을 극복하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근로인민당이 범한 결함에 대한 정시명의 예리한 분석과 신랄한 비판은 그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지금 근로인민당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람들속에서 당의 변질에 대하여 우려하는데 저도 동감입니다.》

정시명이 이렇게 무겁게 결론을 내리고 자리에 앉자 방안에는 한동안 괴로운 침묵이 흘렀다. 이에 대하여서는 회의참가자들이 다 뼈에 사무치게 통감하고있었는데 정시명이 엄숙히 선언해버리자 자책이 더욱 커졌다.

먼저 일어난것은 리영이였다.

리영은 일제시기 함남도일대의 로동자들속에 들어가 사업할 때 조선인민혁명군 지하공작원들과 련계를 가지고 투쟁한 사람이였다. 거듭되는 감옥살이에서 여러가지 병마에 시달려온 그는 3거두중에서 제일 체소한 사람이였으나 누구에게도 쉽게 굽혀들지 않는 사람이다.

《정선생의 념려가 지당합니다. 비판을 듣고나니 속이 후련하기도 하고 우리들의 실책이 크다는걸 재삼 느끼게 됩니다.

나도 이분들과 함께 박헌영이 노는 꼴이 하도 아니꼬와 공산당에서 뛰쳐나오기는 했지만 이렇게 당의 체질이 달라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제라도 정신을 차리고 고쳐가겠습니다.》

백남운도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정시명이 두손을 들어 만류하자 엉거주춤거리며 짧게 말했다.

《동감이요.》

모임에서는 당면하여 《좌우합작》에서 탈퇴할데 대한 문제가 토론되였다.

이 문제에서는 백남운이 고개를 기웃거리였다.

《그건 이미 당론으로 결정된 문제입니다. 또 〈좌우합작〉에서 탈퇴하면 우리 당의 합법성이 위태로와질수 있습니다.》

《아니, 당의 합법성은 미국의 비위에 맞추어 주장할 문제가 아니요. 투쟁으로 전취해야 할 문제란 말이요. 투쟁하는 맛이 없다면 당초에 당은 왜 무었나말이요. 우리가 〈좌우합작〉이 미국놈들이 파놓은 함정이라는걸 똑똑히 인식한 지금에 와서도 이 문제를 놓고 왈가불가해서는 안되오. 래일중으로 〈좌우합작〉에서 탈퇴한다는걸 공식 당론으로 선언합시다.》

려운형이 질책이 담긴 열변으로 백남운의 조심스러운 반론을 꾹 눌러버렸다.

정시명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좌우합작》의 부당성에 대하여 설명을 하였다. 그는 어깨가 축 처진 백남운을 보면서 이렇게 간곡한 이야기로 설명을 마무리하였다.

《〈좌우합작〉문제에서도 우리는 그 누구의 눈치를 볼게 없습니다. 우리는 자기의 신념에 따라 주견을 세워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이 땅을 타고앉으려고 100년토록 덤벼든 미국놈들의 침략의 력사와 그를 막아나선 우리 인민의 애국의 력사와의 대결이 첨예하게 벌어지는 시대에 살고있습니다. 근로인민당은 민족의 대재앙을 막아내기 위한 대결의 선두에 나설것을 자기의 정강에 박아넣었습니다. 그런데 이 력사의 대결에서 각자가 자기의 할바를 찾아낼 대신 미국놈들이 주관하는 놀음에 미련을 가져서야 어찌 당이 내세운 애국의 뜻을 받든다고 할수 있겠습니까. 위험한 탈선입니다. 우리는 이걸 명심해야 합니다.》

백남운은 훤칠한 이마에 송골송골 돋힌 땀발을 손수건으로 닦아내며 고개를 끄덕끄덕거렸다.

회의에서는 려운형의 제안으로 당내부사업의 실무지도체제를 개편하기로 하였다. 이 문제는 이미 려운형과 정시명사이에 합의가 되였던 문제였다.

그동안 실무급중진인물들중에서 김명호가 파악해서 추천한 4명의 일군들로 4인위원회를 조직하고 여기에서 일상적으로 당내부사업을 협의하여 주관해나가기로 하였다.

3거두모임은 우익으로 기울어졌던 근로인민당을 다시 좌익으로 돌려세우는데서 전환점으로 되였다.

정시명은 그 일이 있은 후부터 새로운 투쟁에서 려운형과 근로인민당이 매우 중요한 몫을 감당해내리라는것을 의심치 않았다.

근로인민당의 옆에는 홍명희의 독립당과 리극로의 건민회도 나란히 세울수 있다.

홍명희는 신변안전문제로 정시명이 두번 만났다.

그는 광복직후 《김일성장군환영위원회》를 조직하고 위원장으로 활약한바가 있었다. 정시명은 마동열이 키워낸 청년들을 홍명희에게도 붙여주고 신변에 주의하라고 타일렀다. 당수가 량심을 생명보다 더 귀중히 여기는 사람이니 그가 조직한 독립당의 체질도 달리는 될수 없는것이다.

리극로도 믿음이 갔다. 일생을 한길에서 탈선없이 살아온 깨끗한 문인이고 애국자이다.

박헌영만 아니였다면 이들은 다 로동당의 중진인물로 활동할 명인들이였다.

정시명은 그밖에 《혁명당》을 비롯한 여러 중간정당, 사회단체들도 더듬어보았다. 이들은 대체로 좌익에 기울어지고있는 중도세력으로서 미제의 식민지정책에 명백한 반대의사를 표명하면서 리승만과도 선명한 리념적계선을 긋고있었다. 이들을 결합시키고 이들세력권에 김구, 김규식이까지 밀어넣으면 하지가 의지하고있는 극반동의 세력권을 얼마든지 압도할수 있을것으로 예상되였다.

오랜 시간에 걸쳐 적들과의 정치적대결의 구도를 검토한 정시명은 다시금 김구와 김규식에 대하여 심중히 생각하였다. 정치전에서의 승패의 열쇠는 그들을 누가 전취하는가에 달려있다. 미국놈들도 그것을 인식하고있기때문에 하지가 그렇게도 초조해하고 안달이 나하는것이 아닌가.

어느덧 동이 터왔다.

아침식사를 일찌기 한 정시명은 김명호를 만나 미제의 식민지통치집단을 분렬, 약화시키고 통일애국세력의 압도적우위를 보장하기 위한 대정치전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하였다.

김명호는 거창한 투쟁을 방불하게 그려나가는 정시명의 설명을 들으며 인차 흥분에 떴다. 그러나 김구, 김규식집단에 대한 평가와 그들과의 사업전망을 놓고는 머리를 기우뚱거리였다.

《나는 김구와의 사업에 대해서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명호는 무겁게 말머리를 떼놓고 잠시 생각에 잠기였다.

그동안 김명호는 정시명으로부터 따끔하게 비판을 받은바가 있었다.

… 왜 자기의 주장을 내놓기를 삼가하는가. 우리는 혁명가들이다. 우리는 자기의 신념에 이끌려나선 사람들이 아닌가. 누구의 눈치에 따라 자기의 주장과 행동에 수정을 가한다면 그것은 혁명가의 기본적인 품성을 잃은것이 된다.

정시명은 이런 내용으로 타이르고 엄하게 추궁도 하였다.

일후에 김명호는 회의나 전술토의에서 소심성을 버리기 시작하였다. 옳다고 생각한 문제는 고집스럽게 주장하고 빈틈없는 론리와 류창한 웅변으로 옹호하군 하였다.

정시명은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런 문제에서는 길철이 역시 비슷하였다.

다만 길철은 선뜻 주장을 내놓았다가는 그것이 옳지 않다는 반론에 부닥치면 재빨리 자기의 주장을 재검토하고 아무런 미련도 없이 자기의 주장을 훌훌 털어버린다. 그러나 재검토하여도 자기의 주장이 옳다고 인정될 때에는 머리가 열쪼각나도 물러서지 않는다.

김명호는 이렇게 말을 이었다.

《첫째로, 우리는 김구에 대한 좌익력량의 구호를 외면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김구, 리승만을 타도하라는 구호를 피해갈수야 없지 않습니까. 둘째로, 현실성문제입니다. 김구도 현단계에서 권력야심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진지한 론의가 벌어졌다.

정시명이 밤샘을 하며 생각하던 문제들을 가지고 오래동안 설명을 하여서야 그들은 견해의 일치를 가지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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