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장 하지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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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들을 회의장에 보내는 문제를 둘러싸고 적아간에 치렬한 대결이 고조되여갔다.
어느날 김포비행장에 방금 도착한 미군용비행기의 승강대우에 로신사가 나타났다.
훤칠한 키에 멀끔하게 생긴 로신사는 금물을 올린 지팽이에 몸을 의지하고 비행장너머로 병풍처럼 둘러간 산발들을 음험한 눈길로 굽어보고있었다.
그는 미국무장관 마샬이 하지의 보고를 받고 급기야 파견한 미국무성 특사 호프킹즈였다. 그는 최근년간 세계정치계의 각광을 모으고있는 반도의 땅을 정복자다운 거만하고 차거운 눈으로 굽어보며 워싱톤을 떠나기전에 마샬이 열이 올라 하던 말들을 생각하고있었다.
마샬은 그 조그마한 땅덩어리가 2차대전후 미국의 외교에 그늘을 던지고있다고 하면서 장시간 조선에서의 좌익세력들과의 공방전을 력설하고나서 이런 말로 자기의 외교적실책을 슬쩍 변호하였다.
《이제 서울에 가면 리해가 되겠지만 하지가 안팎으로 곤경에 빠져있습니다. 그 사람으로 말하면 군단장으로나 족한 인물인데 맥아더의 우산밑에 있으니 군정의 옥좌에서 몰아내기도 힘들게 돼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당신을 특별히 현지에 파견하는건 그 4월남북련석회의라는 공산주의자들의 정치유희나 무산시키라고 보내는게 아닙니다. 난 당신의 외교실력과 수완으로 하지와 그의 동료들에게 외교학의 총론을 깨우쳐줄것을 희망합니다.》
호프킹즈는 입가에 느슨한 미소를 담았다. 영접을 나온 하지와 그의 측근인물들을 그제야 눈아래로 내려다보며 중절모를 벗어 그들에게 도착인사를 보냈다.
이 로신사는 벌써 2차대전시기에 루즈벨트의 특명을 받고 쓰딸린과 처칠, 히틀러사이를 전용비행기를 타고 누비면서 빈번히 높은 외교적실적으로 미국의 여우라는 평판을 받은 로회한 외교가였다. 그는 루즈벨트가 급사한후 백악관을 떠나 미국의 두뇌집단으로 불리우는 헤리티지재단의 수석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여전히 미국의 외교진에 깊이 관여하고있었다.
호프킹즈는 승강대에서 자신있게 걸음을 옮겼다.
하지의 관저의 별채에 려장을 풀어놓은 호프킹즈는 하지와 관여인물들로부터 남북정치인들의 회합과 관련한 상황보고를 상세히 청취하였다.
호프킹즈는 일이 꼬일대로 꼬여들어 바로 잡기가 힘들것이라는 판단이 직감적으로 생겼으나 내색을 하지 않고 일에 달라붙었다.
그는 이미 한발앞서 서울에 날아든 국무성과 국방성의 모사군들, 주둔군 사령관 하지와 미군정장관 그리고 수하인물들과 미중앙정보국 남조선책임자 레코라우스를 비롯한 관계기관의 수뇌들로 특별공작그루빠부터 조직하였다.
이것은 이미 마샬앞에서 제안하였던 일이였다.
특별공작그루빠는 남북회담을 파탄시키는것을 목표로 규정하고 본부는 미군정청안에 두고 정보국장 노불이 매일 호프킹즈의 지시를 받고 그 지시집행을 감독하고 총화하도록 하였다.
모략소동은 확실히 수가 달라지고 여러 방면에서 활발히 벌어졌다.
서울에 주재한 모든 미국기관들과 역원들이 호프킹즈의 총괄적인 지휘밑에 남북회담을 파탄시키기 위한 적당한 몫을 부과 받았다. 작전은 남조선지경을 벗어났고 방법도 필요한것이라면 다 리용되였다.
하지는 처음에는 호프킹즈에게 다 밀어붙이고 자신은 그 지긋지긋한 일거리에서 벗어나고싶었으나 생각을 고쳐먹고 여전히 힘을 넣었다. 그는 그루빠에 1천 200만원이라는 거액의 활동자금을 제공하고 4월 중순으로 예견된 회의를 파탄시키도록 진두지휘하였다.
놈들의 악랄하고 교묘한 모략의 기본과녁은 김구와 김규식이였다.
어느날 김구는 평양에 련락원을 먼저 보내야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안지생이 련석회의날자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제 련락원을 보내면 어찌하겠느냐고 안타까운 어조로 만류했으나 그는 요지부동이였다.
이 소식을 전달받은 정시명은 무척 흥분하였다. 마지막계선에 와서 인생전환의 보폭을 크게 떼지 못하고 그냥 바재이는 김구가 미워났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달려가서 속이 후련하게 욕이라도 해주고싶었다.
(어찌 이럴수 있단 말인가. 장군님께서 불러주시였으면 다지 그 무슨 군소리가 이리도 자꾸 튀여나온단 말이냐. 항차 통일의 길에 올라 38선을 베고죽을지언정 물러서지 않겠다던 맹약은 어데 갔는가. 당신이 도대체 우리네 례영이 당하는 인생수난이 앞으로 3천만 동포모두의 수난으로 될수 있다는데 대하여 그렇게도 모르고있단 말이냐.)
정시명은 남북회담이라는 대경사를 두고 요새 자주 례영을 생각한다.
언젠가 김명호가 례영이 안고있는 분렬의 아픔을 두고 피타게 절규하던 말들이 때없이 울려나오군 한다.
례영은 지금 북남회담이 열려 나라의 통일이 토의되고 머지 않아 통일정부가 서게 될것으로 굳이 확신하고있다. 그래서 기쁨에 떠있고 감격에 설레이고있다. 민순임의 말이 례영이 달력에 회담예정날자인 4월 14일에 빨간 동그라미를 쳐놓고 손꼽아 기다린다고 했다.
김구가 도대체 이런걸 생각이나 하고있느냐. 아니 례영이앞에서 흘렸다는 그 눈물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분렬의 첫 수난자의 그 애절한 기쁨을 위해 나나 백범 당신이 백번 죽으면 어떻단 말이냐.
그러나 정시명은 울분을 눌렀다. 참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공산주의에 대한 몰리해가 빚어놓은것이라고 자기를 위로하였다.
그래서 정시명은 그의 의사를 굳이 막지 않았다. 그들이 확신을 가지고있어야 북행길도 확고해질수 있기때문이였다.
이리하여 김구, 김규식은 세사람의 측근인물을 평양에 먼저 파견하였다.
김구의 련락원은 4월 9일 38선을 넘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후날 그때의 일을 다음과 같이 회고하시였다.
《김구의 비서가 나를 만나겠다기에 내가 만나주었습니다.
그때 그는 〈김구선생이 평양에 들어와서 장군님을 뵈오려하는데 과거를 백지로 해주실수 있겠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자기가 과거에 범한 죄를 백지로 할수 있는가 하는것이 김구의 중요한 요구조건이였습니다. 나는 그에게 〈좋다, 백지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래서 김구가 평양에 들어오게 되였습니다.》
서울에 돌아온 련락원들은 장군님께서 하신 은혜로운 재생의 선언을 그대로 전하였다.
그리고는 《김장군님은 매우 도량이 넓으시며 매사에 탁월한 견해를 가지고계시며 친절하신분입니다. 장시간 말씀을 주시였는데 우리와 실무적인 협의를 하실 때는 융통성이 많으시였으며 지극히 겸손한분이십니다.》라고 하면서 평양으로 떠나야 한다고 간곡히 권유하였다.
장군님의 자애에 겨운 말씀까지 접한 김구는 그제야 비로소 안심하고 회의에서 발언할 토론문과 문건작성을 다그칠것을 측근들에게 지시하였다.
하지도 더욱 맹렬히 움직이고있었다.
4월 14일에 서울을 떠난다는것을 내탐한 하지와 노불이 김구, 김규식의 집을 연해 방문하였다. 그들은 최종적으로 련석회의참가를 단념할것을 설복하다가 끝내 통하지 않게 되자 그러면 평양에 도착한 다음 북에서 받아들일수 없는 조건을 내걸고 회의를 파탄시킬데 대하여 강박하였다.
노불은 이미 특별공작그루빠에서 작성된 《요구사항》을 렬거한 문서장까지 넘겨주었다.
4월 13일 저녁에는 장개석의 특사가 서울에 비행기로 황급히 날아왔다. 김구와의 공작에 장개석까지 끌어들인것이다.
특사는 김구가 상해에서 두어번 만난 일이 있는 인물이였다.
그놈은 그들을 만나 장개석의 친언이라고 하면서 공산주의자들과의 회담은 백해무익하다고 요사를 떨었다.
김구를 장차 수립될 조선정부의 수반으로 내세우고싶어 여러가지 통로를 통하여 재정적, 외교적지원을 해온 장개석의 《충고》가 김구에게는 매우 무게있는것이였다. 그는 내 집에 온 특사를 내 집에 온 나의 손님이라고 하면서 연회를 차리고 잠자리까지 같이 하는 특례를 보이였다.
이렇게 되자 하지는 이미 준비시킨 《한독당》과 《민족자주련맹》의 우익반동분자들을 내몰아 비상정치위원회를 열게 하고 남북련석회의참가문제를 최종적으로 토의하도록 하였다.
김구, 김규식은 하는수없이 회의예정일인 4월 14일에 자기 당의 정치위원회에 참가하는수밖에 없었다. 남북회담은 며칠후로 연기되였다.
정시명은 그들이 다시 눌러앉게 된 그 자체가 또다시 결심이 흔들리고있다는 징조라고 판단이 갔다. 정시명은 있을수 있는 정황을 면밀히 예측하면서 필요한 대응책을 세워나갔다.
예견했던대로 회의들에서 당안의 반동들은 여러가지 부당한 구실을 들이대면서 대표들의 참가를 악랄하게 반대해나섰다. 그들은 미군정청이 고안해낸 엉뚱한 시비거리를 한가지씩 들고나와 장광설을 늘어놓으면서 좀처럼 회의를 결속할수 없게 훼방을 놀았다.
련석회의날자까지 회의를 질질 끌어 어떻게 하든지 김구, 김규식을 협상장에 나가지 못하게 하려는 미제의 지연술책이였다.
정시명은 가슴이 홧홧 달아올랐다. 가슴에 재가 차고 손바닥에 땀줄이 움켜잡히게 하는 일이였다.
회의가 시작될 때부터 회의정형을 수시로 보고받으며 상황을 살피던 정시명은 엄한섭을 비롯한 이 당들에 있는 조직성원들과 진보적경향이 있는 상층인물들을 발동하여 악질반동들의 궤변을 사리정연한 론리로 꺾어버리고 놈들의 책동에 타격을 가하도록 하였다.
이리하여 남북련석회의가 열릴 전날인 4월 18일에야 가까스로 회의참가를 당론으로 결정하고 회의를 끝내게 되였다. 《한독당》과 《민족자주련맹》은 김구, 김규식을 포함한 27명의 우익민족주의거두들을 당의 정식대표로 최종적으로 결정하게 되였다.
이날 저녁 정시명은 저녁 늦도록 회의가 진행되는 서울녀자고급중학교의 강당옆에서 회의활동을 지휘하다가 회의가 결속된것을 보고서야 지휘부로 돌아왔다.
회의소식을 안타까이 기다리던 전우들이 그를 에워쌌다.
정시명은 말없이 례영에게 회의결정내용이 들어있는 자료를 넘겨주었다.
례영은 자료를 한번 훑어보고는 마음이 금시 맑아져서 동그란 어깨를 춤추듯 흔들며 타자를 치기 시작하였다.
례영이 타자를 끝마치고 돌아보니 정시명은 벽에 비스듬히 기대여 굳잠에 곯아 떨어져있었다. 하지를 일방으로 하여 거의 한해토록 계속되여온 긴장한 사업의 승리적인 결속이 온몸에 겹쳐들었던 피로를 일시에 터쳐놓았던것이다.
참으로 정시명은 온몸의 신경과 두뇌와 육체적힘을 깡그리 바쳐 초인간적인 활동으로 순간순간을 이어왔었다. 전우들은 기쁨과 선망이 어린 눈길로 사랑하는 지휘관의 잠든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있었다.
례영이 그의 어깨에 모포를 살그머니 씌워주었다.
《자, 나갑시다. 조용, 조용히…》
김명호가 전우들을 돌아보며 모처럼 잠든 지휘관이 깨여날가 저어하며 나직이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