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장 하지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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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인의 걱정은 괜한것이 아니였다.
사실 정시명과 그의 전우들은 헛눈을 팔수가 없었다.
북남회담문제로 하여 서울은 물론 워싱톤도 벌컥 뒤집혀져있었다. 온 세계에 울려퍼진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의 력사적제안은 미제와 반동들에게는 청천벽력이였다.
그러지 않아도 쏘미회담후 련속 수세에 몰려온 미국놈들은 북남회담이 현실로 되여가자 제놈들의 대조선정책이 위태롭게 되였다고 비명을 질렀다.
사태의 심각성을 간파한 마샬은 그를 수습하기 위하여 지원팀을 조직하여 서울에 급파하였다.
지원팀은 미국무성과 국방성에서 제노라고 하는 정책전문가들로 구성되여있었다.
하지는 김포비행장에 나가서 친히 영접하였다.
《워싱톤손님들, 잘 도와주시오.》
하지는 몰밀어 인사하고는 그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 흔들었다.
대체로 나이가 지숙해보였는데 맨 마지막에 서있는 대좌가 일행중에서 제일 어려보였다.
《륙군성 대좌 본스틸입니다.》
그의 손목을 잡던 하지가 《뭐라구? 당신이 본스틸대좌요?》하고 그를 신기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렇습니다. 륙군성 작전차관보로 있습니다.》
《음, 당신이였구만.》
하지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대좌의 아래우를 훑어보았다. 상대는 키가 껑충하였다. 하지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보였다. 얼굴은 말상이고 눈확은 곯아빠진것처럼 우묵하게 패여들어 매우 음험한 인상을 주었다.
하지만 무척 젊다. 대좌로 보기보다 대위로 보기가 십상이겠다.
(락하산승진이겠지.)
그러나 하지는 어디선가 귀동냥해들었던 말이 생각나 피씩 웃었다.
(말상은 대체로 수재들이라 했겠다.… 그래 이 녀석도 수재인가보군.)
《대좌는 내 차에 오르시오.》
《고맙습니다, 중장각하.》
첫 대면인 중장의 호의와 웃음이 자존심을 건드렸는지 대좌는 거만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양하지 않고 하지의 차에 올랐다.
지원팀을 태운 승용차들은 서울을 향해 달렸다.
자동차행렬이 비행장구내에서 벗어나자 하지가 슬그머니 말을 뗐다.
《당신이 본스틸대좌라는거지.… 지금 어떤 사람들은 조선반도의 38선을 가리켜 본스틸선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뭐 까닭이 있는 소린가?》
넌지시 지나가는 어조로 묻는 소리에 본스틸이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씩 웃었다.
《당신이 정말 30분사이에 반도의 허리를 잘라놓았다는게 사실이요?》
하지가 기어이 상대를 화제거리에 끌어들이려 지꿎게 묻자 본스틸은 또다시 어깨를 으쓱거리였다.
하지가 무슨 의도에서 그 말을 꺼냈는지 갈피를 잡을수 없는듯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하였다.
《중장각하, 그건 실례입니다만 백악관에서도 금기로 되여있는 비밀사항에 속합니다.》
《그래?… 하지만 나는 조선반도에 대한 미국의 정책을 진두에서 지휘하고있는 백악관의 대표요.
난 좀 알아야겠소. 내가 당신이 그어놓은 그 본스틸선을 지키느라 얼마나 곤욕을 치르는지 알고나 있소?
이야기해보오. 내가 아는것으로 끝내겠다는걸 약속하지.》
하지는 메마른 얼굴에 다소 온화한 색조를 띄우고 애숭이대좌를 부추겼다.
《하긴 비밀이란 언제나 시한부적이라는 말이 옳습니다. 이야기를 하자면 43년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하지는 고개를 꺼떡거리였다.
본스틸은 이 땅의 분렬에 대한 흑막뒤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중장각하께서도 아시겠지만 반도를 분단하여 미국의 지탱점을 확보할데 대한 정책은 태평양전쟁이 종결되기 전부터 제기되였습니다.》
본스틸은 이렇게 말머리를 넓게 시작하였다.
《륙군성은 도이췰란드와 일본, 이딸리아의 패망을 예견하여 전후 여러 지역에 대한 직접통치를 목적으로 1942년부터 버지니아대학과 예일, 하버드, 시카고, 스탠피드대학들에 륙군정보학교를 설립하고 군정예정나라들의 말과 풍습과 정치학을 가르쳤습니다. 45년 초까지만 하여도 조선말은 교육하지 않았지요. 사실 그때까지는 조선에 대한 군정통치는 예견하지 않았답니다.
그러다가 일본의 항복이 급박해오자 백악관이 조선반도에서 군정실시를 목표로 확정하고 부랴부랴 군정장교들을 선발하여 조선말을 속성으로 배워주었습니다. 우리도 그때에야 반도에서 정치, 군사적발판을 확보하기 위한 구체적인 협의회를 벌려놓았습니다.
그때 우리에겐 쏘련군과 함께 반도에서 끝까지 항일기치를 추켜든 조선빨찌산의 노도와 같은 진격은 상상밖이였습니다.
사실 중장각하도 체험하시였겠지만 미국은 태평양전쟁을 힘겹게 치르느라 쏘련에 대도이췰란드전쟁을 마치고 2개월후에 대일전선에 참전해 줄것을 간절하게 요청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정작 쏘련군이 대일전쟁포고를 한지 2일만에 백만관동군이 모래성처럼 흩어지고 반도에서는 개성과 춘천계선까지 밀고 내려왔습니다. 부산까지 이르면 조선반도는 공산권에 장악될 위태로운 정황이였습니다.
여기저기서 반도에서 미국의 리권을 잃게 되였다고 비명이 터져나왔지요.
그들은 한초가 바쁘게 군사적결단으로 조선반도의 남쪽에 미군정을 실시할수 있는 지정학적기초를 마련할것을 백악관과 군부에 요구하였습니다.
상황이 너무도 예상밖이여서 백악관도 군부도 콩튀듯 했지요.》
《그래, 그랬지.》
하지가 당시의 일들이 방불하게 재현되여 감회가 깊었다.
《사실 그때 맥아더까지도 일본본토를 다 점령하자면 두해는 더 싸움을 벌릴것으로 타산했소. 그리고 우리 미군이 적어도 백만의 병력을 잃는것으로 타산하고 펜타곤에 유럽전역에 가있던 아이젠하워의 병력을 돌려줄것을 여러차례 요구했소. 그래서?…》
《급해 맞은 트루맨대통령이 극동의 전체 지역을 항복선으로 분할하여 쏘련과 미국이 일시적으로 관리하는 지역적인 경계를 설정할것을 골자로 한 명령 제1호를 작성할것을 3성조정위원회에 긴급위임하였습니다.
당시 3성조정위원회는 국무성과 륙군성, 해군성의 차관보급으로 조직되여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륙군성의 작전차관보인 레스크의 보좌관으로 이 그루빠에 속해있었습니다.
사실 솔직한 말로 그날에야 저는 조선반도의 생김새가 어떤지 똑똑히 보게 되였습니다. 자막대기로 재여보니 반도의 중심으로 38도선이 알맞춤하였습니다. 그래 38도선에 검은 덧금을 그어서 30분만에 조정위원회에 제출했지요.
론쟁이 벌어졌지요.
해군성을 대표한 카드너제독은 39도선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쏘련이 중시하는 대련항과 료동반도전체가 포함되므로 쏘련측이 접수하지 않을것이라는 말들이 제기되여 철회되였지요.》
《그래, 그건 지나친 욕심이였구만.… 하긴 또 몰라. 그대로 눌러졌다면 우린 압록강에서 다리쉼을 하면서 지금과 같은 고달픈 일을 당하지 않게 되였겠는지 누가 알겠소.》
하지는 생각나는대로 그의 말을 받고는 어서 계속하라고 손을 흔들었다.
《이렇게 되여 45년 8월 12일 우리가 밤을 새우면서 작성한 명령 제1호가 트루맨의 긴급제안으로 모스크바주재 미국대사 해리맨에 의하여 쓰딸린에게 통보되였습니다.
그것이 쏘련측의 별다른 반대가 없이 전승국들의 합의문으로 되였지요. 이 합의문에 따라 쏘련은 서울에 들어왔던 자기 무력을 38선 이북으로 철수시켜 일본의 항복을 받아냈고 38선 이남에서는 중장각하, 당신께서 무혈입성하시여 일본의 항복을 받아낸것이지요.》
본스틸은 이렇게 이야기를 마치였다.
《음, 일은 그렇게 되였군.》
하지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무혈입성이라고?)
하지는 슬그머니 화가 났다. 네가 이 땅을 다스릴 사령관자리에 앉아있을 군공은 없노라는 조롱같기도 하다.
그는 이 땅에 첫발을 들이밀 때가 생각났다.
오끼나와를 점령하였던 하지는 군단을 끌고 서울에 들어가기 전에 선발대를 파견하였다. 그것이 미24군단이 인천에 상륙하기 사흘전인 9월 4일이였다.
장교 8명과 그들을 호위할 사병 10명이였다.
그들을 오끼나와에서 비행기를 태워 일본놈들의 비행기지였던 김포공항으로 보냈다.
그런데 그들이 공항에 내릴 때부터 예상되였던 다소간의 총격전은 고사하고 완전히 호화스러운 대접이였다. 비행장에는 일본총독 아베의 특명을 받은 장성급들이 영접을 나와있었고 숙소도 서울에서 일류급이던 조선호텔에 안내되였다. 그들은 며칠동안 일본총독부가 특별히 제공하는 고급료정의 왜년기생들과 술에 빠져보냈다고 한다.
그들의 임무는 영어를 할수 있는 조선사람들을 확보하는것이였는데 이것도 일본놈들이 나서서 다 해결해주었다. 이것이 미24군단의 남조선진주에 앞선 작전의 전부였다.
사흘후에 하지는 24군단을 끌고 총독부에서 조직한 환영을 받으며 서울에 들어왔다.…
듣기에는 기분이 잡치는 일이지만 어쨌든 무혈입성이라는 본스틸의 말은 정당하다.
그런데 38도선을 30분새에 그어버린 본스틸의 이야기가 허무하기도 하고 맹랑하기도 하다. 력사에 많은 숙제를 남기게 된 이 나라의 운명적인 경계선이 그렇게도 쉽게 그어질수 있는가. 아무러한 국제적공론도 현지인물들의 자그마한 의견도 고려함이 없이 이 나라의 력사와 지리, 민족적리익은 티끌만치도 알지 못하는 이 애숭이대좌의 손에 의해 자막대기로 그어지다니… 아마 이 나라 사람들이 알면 후손만대로 통탄해마지 않을것이다. 백악관이 특급금기사항으로 눌러놓을만 하다.…
자동차가 미군사령부청사에 도착할 때까지 하지는 이런 생각에 잠겨있었다.
《자, 대좌. 여기가 당신이 그어놓은 38선을 지켜나선 일선참모부요. 지금 우린 수세에 몰려있소. 당신이 만들어놓은 분단선이니 재간껏 지켜봅시다.》
하지는 이렇게 허물없는 동료처럼 본스틸의 잔등을 툭툭 쳐주며 웃었다.
하지는 먼저 조선지도를 걸어놓은 소회의실로 그들을 안내하였다.
거기서는 노불이 그들을 맞아들였다.
노불은 지도앞에 나가서 미국의 대조선정책에 대하여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마샬의 권고로 시작된 사업이였다. 부랴부랴 모아 보내는 그루빠이니 현지에 가서 미국의 정책과 그 집행정형에 대한 료해를 하도록 조직사업을 해놓으라고 했던것이다.
《우린 사실 반도에서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식민지지배의 발톱을 박는데 성공했다고 볼수 있습니다.
초기 우리는 24군단의 세 사단장들인 아놀드, 띤, 러스크를 대리인자격으로 군정장관에 세워놓고 남조선을 대륙공락의 전초기지로 만들기 위한 작전에 진입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첫 두통거리는 항일전에 나섰던 국민을 점령군의 자격으로 다스리는 자체가 국제법규상 모순되는 행위라는것입니다.
당신들앞에서 사실 그대로 통보해주는데 대하여 리해하시리라고 믿습니다.》
노불은 자기의 이야기가 일부 인물들의 신경을 건드릴수 있다는 우려감때문에 이렇게 구차스러운 해석을 덧붙였다.
《노불, 일없소. 이젠 우리가 동업자들이요. 책임을 같이 나누게 됐단 말이요. 숨김없이 통보하시오.》
하지가 노불의 속생각을 넘겨짚고 이렇게 고무해주었다.
《우리는 일단 지탱점을 확보한 조건에서 분단을 고착시킬 방향에서 한걸음한걸음 조심스럽게 나갔습니다.
분단고착은 불피코 두개 지역에 두개의 지역정부를 세워야 한다는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 나라의 여론을 대상하여 처음으로 정치적투전장을 던져보았습니다. 나의 선임이였던 구펠로씨가 이러한 각본에 따라 미국으로 소환되기 앞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공산주의는 38선에서 저지되여야 한다〉는 당시로서는 이상야릇한 주장을 내놓았습니다.
그다음에는 친미정객인 리승만을 지방도시인 정읍이라는 곳에 보내여 〈남한에서라도 단독정부를 세워야 한다〉는 당시로서는 세상을 놀랠만 한 발언을 시켜보았습니다.
예상대로 즉시에 비발치는 항의와 규탄에 부닥쳤습니다.
당신들이 이제 부닥쳐보겠지만 미리 말씀드릴것은 이 나라 국민의 지능계수가 낮지 않다는것입니다.
우리는 미군정청 정무담당 장관이였던 아놀드를 내세워 구펠로의 발언이 미국의 의사와 무관계하다는 성명을 내게 하는것으로 미국에로 그 여파가 옮겨지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노불국장, 좀 더 간단히, 그렇게 하다간 종일 걸려도 끝내지 못하겠소. 유감스럽지만 우리는 시간이 많지 못하오.》
하지가 너무 세부에 들어가는 노불의 이야기에 짜증이 나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발목을 붙잡는것이 모스크바3상회의결정과 그 집행을 위한 미쏘회담이였습니다. 조선에서의 통일적인 민주주의정부수립을 골자로 한 미쏘협상이 성사되면 우리의 전략적목표가 달성될수 없다는것은 뻔한 일입니다.
이렇게 되여 우리는 세계의 여론에 눌리워 끌리워다니던 미쏘협상을 끝내 파탄시키였습니다. 그러나 미쏘협상은 끝났으나 단독정부수립의 명분을 세우려했던 우리의 시도는 다시 좌절되였습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유엔을 움직여 만들어낸것이 〈유엔조선림시위원단〉입니다.
우리는 당초에 북조선이 〈유엔조선림시위원단〉을 받아들이지 않으리라는것을 타산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면 북조선이 통일정부수립을 접수하지 않는다는 여론을 쉽게 만들어낼수 있는것입니다. 일은 뜻대로 되였습니다. 그런데 위원단이 삐그덕거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물건짝으로는 일을 꾸며낼수가 없게 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선 돌파해놓고 보자는 전술을 세웠습니다.》
이상하게도 노불이 이 대목에 와서는 하지를 힐끔 바라보았다.
하지가 그 눈길을 받으며 쓰겁게 웃었다. 《돌파해 놓고 보자》는 소리는 자기가 한 소리였다. 위원단까지 제멋대로 움직이자 그의 조폭한 무인적기질이 사태를 역전시켰던것이다.
《우선 돌파하고 보자. 그까짓 여론이고 뭐고 볼게 있는가. 돌파하자. 승자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는다.》
하지는 이렇게 수하부하들에게도, 미국무성에도 말하며 자기 주장을 내밀었다. 이렇게 되여 국제법규요 뭐요 하는 요식에 불과한 절차와 구속마저 집어던지고 《유엔조선림시위원단》의 이름으로 《단독선거》를 발표해버렸다.
그런데 이 무슨 청천벽력인가.
《남북회담이 제기되였습니다. 남북회담이 열리면 남과 북의 정치인들의 목소리가 모아질것입니다. 반도의 통일문제가 거론되면 미국의 조선정책은 원점으로 돌아갈것입니다.
사태는 심각해졌습니다.》
노불이 예까지 말하고 손수건을 꺼내 목덜미를 쓱쓱 문지르며 객석에 내려앉았다.
이어 하지가 일어나 남북회담과 관련한 남조선 각 정치세력들의 동향을 개괄하였다.
워싱톤의 손님들은 곧 일에 착수하였다.
하지는 그들과 함께 밤에 낮을 이어가며 《마라손모의》를 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