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장  사람이 사람이라 불리우는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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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수는 대전려관 제일 꼭대기층인 7층 10호실에 갇혀있었다.

문앞에는 충청남도 경찰청에서 나온 경찰 두놈이 걸상에 앉아서 방을 지키고있었다.

점심무렵에 도지사가 찾아왔다. 지금까지 일을 잘해왔는데 뭘 죄지은게 있으면 순순히 말하고 빨리 나와 업무에 나서라고 간지러운 소리를 하고갔다.

그가 물러가자 박영수는 침대에 반듯이 누워 며칠새에 있었던 일들을 곰곰히 생각하였다.

일은 퇴근길에서 시작되였다.

박영수가 도청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집을 향해 가는데 한대의 찦차가 천천히 따라 오다가 옆에 와서 멈춰섰다.

차문이 열리더니 《국방경비대》소위견장을 단 나이 지긋해보이는 운전사가 얼굴을 반쯤 내밀고 《과장님!》하고 나직이 불렀다. 그는 《국방경비대》총사령관 송호정의 운전사였다. 아마 도청 맞은편 광장에서 그의 퇴근을 기다리다가 따라선 모양이였다.

박영수는 그가 불쑥 퇴근길에 나타난것으로 보아 송호정이 비상상면을 요구하는 모양이라고 판단했다.

송호정은 사관학교 재직반을 마친 후 요즘 남부도들에서 료원의 불길처럼 타번지고있는 빨찌산에 대한 토벌작전을 지휘할 과업을 받고 전주에 내려와있었다.

그는 한주일에 한번씩 운전사를 시켜 대전공원에 개설한 비밀함을 통해 박영수에게 토벌작전계획을 상세히 보내오군 하였다.

박영수는 그걸 받아가지고는 지리산빨찌산의 련락원인 보문산기슭에 있는 산전막로인에게 전달하여왔다.

송호정은 작전계획이 갑자기 변경되거나 불의의 정황이 제기되면 이렇게 운전사를 보내여 박영수를 각이한 방법과 각이한 장소에서 접선하여 직접 넘겨주도록 하였는데 이제까지 몇번 되지는 않았다.

운전사가 찦차의 뒤문을 열어주자 박영수는 얼른 차에 올랐다. 찦차는 쏜살같이 대전시내를 벗어났다. 운전사는 대전천을 벗어나자 차를 세웠다.

그리고 안주머니에서 자그마한 봉투를 내밀었다.

《그걸 읽어보십시오. 기억하고 불태워 버리랍니다.》

박영수는 속지를 꺼내 몇번 훑어보고는 봉투채로 불태웠다.

《송선생님께 전하십시오. 이 길로 보문산으로 간다고요.》

《그래요?… 날이 어두워지는데… 잠복이 있지 않을가요?》

운전사가 근심을 하였다.

최근에 놈들은 빨찌산과 인민들과의 련계를 차단하기 위하여 밤이 되면 산으로 통하는 길목마다 매복을 조직해놓고있었다. 거기에 걸려들어 벌써 여러명의 지방조직성원들과 빨찌산련락원들이 잘못되였다.

《그래도 가야지요. 나 권총이나 주시오. 걱정하지 마시오. 그저 수고스러운대로 날 보문산어귀까지만 태워다주시오.》

《예, 그럼 어서 떠납시다.》

찦차는 다시 보문산을 향해 질주하였다.

송호정이 보내온 자료는 한시도 지체할수 없는 긴급한 자료였다. 최근에 지리산빨찌산의 한 지대가 광서만으로 진출하게 된다는 정보가 《토벌대사령부》에 들어왔다. 이에 근거하여 송호정은 작전계획을 세운다음 그에 대해 이미 빨찌산지휘부에 통보하였다. 그런데 오늘 점심무렵에 불의에 《토벌대사령부》에 도착한 하우스맨고문이 래일 아침에 광주련대를 광서만으로 급파하도록 작전계획을 변경시켰다. 송호정의 련락을 받은 빨찌산지휘부는 이미 한주일후에 벌리기로 한 진출작전을 앞당겨 래일 저녁에 하기로 하였다.

그러니 그대로 하면 빨찌산이 광주련대의 준비된 매복작전에 걸려들게 된다.

그래서 송호정은 광서만에 대한 진출을 포기하든가 작전을 뒤로 미룰것을 빨찌산지휘부에 제기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빨찌산지휘부작전조의 부조장이 경비대정보국의 첩자라는것을 밝혔다. 지리산빨찌산지휘부는 박영수의 정보원천에 대해서는 모르고있었지만 그의 통보에 대하여 전적으로 믿고있었고 크게 도움을 받고있었다.

갓 창설된 빨찌산지휘부는 남부도들에 자연발생적으로 조직된 야산대를 비롯한 무장조직들을 결집하면서 끊임없는 애로와 난관속에서도 놈들에게 무자비한 징벌을 안기고 좌익세력들의 통일운동을 크게 고무하고있었다.

그들은 박영수의 련락선에 커다란 의의를 부여하고 자기 련락원을 경험있고 견결한 사람으로 배치하고 이 선을 특별히 보호하고있었다.

지금 박영수는 새롭게 조성된 상황이 지리산빨찌산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수 있다는것을 인차 알아차렸다.

광서만은 벌판과 야산지대로 되여있고 매복에 걸려들면 빠져나가기 어렵다. 특히 바다가로 죄여넣는다면 사태는 절망적이다.
박영수는 산어귀에서 차를 세우게 하였다.

《어서 갔다오십시오. 내가 여기서 기다리지요.》

《아니, 여기서 기다리는건 위험합니다. 돌아가는건 천천히 혼자 가겠으니 어서 떠나시오. 송선생님이 소식을 기다릴겁니다.》

박영수는 굳이 운전사를 돌려세웠다.

차가 떠나자 박영수는 잠시 풀숲에 앉아서 산전막에로 통하는 길을 눈더듬하여 보았다.

산전막까지 가자면 두개의 골짜기를 넘어야 했다. 산전막은 이 일대의 강냉이밭에 무시로 달려드는 메돼지를 쫓느라고 만들어놓은것인데 광복전부터 혁명가들의 련락장소로 리용되여왔다.

광복후에 지하조직에서는 이 일대에 약초밭을 일구고 사시장철 사람이 살도록 크게 지었다. 말이 산전막이지 규모도 크고 내부에 여러개의 방과 부엌까지 갖춰진 집이였다.

사위는 쥐죽은듯 고요한데 어데선가 밤새의 청아한 울음소리가 간간히 들려왔다.

박영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밤새가 구성지게 뽑는 가락에 귀를 기울였다.

처음 밤길을 걸을 때는 저 소리도 무섭게만 들렸었다. 어느 날엔가 머리우에서 들린 소쩍새의 울음소리에 화닥닥 놀랐던것이 생각나 박영수는 제풀에 볼이 달아오르고 미소가 피여났다.

이제는 호젓한 밤길에 밤새들도 유쾌한 길동무로 되였다.

박영수는 달뜨기전에 산전막에서 돌아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골짜기를 두개 꿰질러가자 동화속에서처럼 가느다란 불빛이 새여나오는 산전막이 나타났다.

그는 삽작문앞에서 새끼줄을 찾아서 두번 잡아당겼다. 산전막안에서는 작은 매방울이 딸랑딸랑거리였다.

이때 문이 열리고 60대가 가까와보이는 늙은이가 조심스럽게 나왔다.

늙은이는 어둠속에서 나타난 손을 확인하더니 말없이 삽작문을 열어주었다.

산전막안에 들어서자 로인은 《이거 밤중에 웬일이시우?》하며 놀라와하였다.

《저녁전이겠지요? 좀 맛보려우?》

로인이 밀빵을 내밀었다.

박영수가 《그러지 않아도 출출합니다. 지휘부에 긴급통보할 일이 생겼습니다.》하고 빵을 받아들며 말했다.

《인주시유.》

《아니 말로 전하시오.》

박영수는 빵을 씹으며 송호정이 보내온 작전변동사항을 천천히 설명하였다.

《알겠시다. 참 고맙시다. 내 인차 떠나겠시다. 박선생도 인차 떠나지요.》

《예, 그럼 여기서 헤여집시다.》

박영수가 손을 툭툭 털고 일어서려는데 울타리밖에서 별안간 한방의 총성이 되알지게 울렸다. 이어 벼락치듯 한 일제사격소리가 울리더니 《손들고나오라!》하는 호령이 들려왔다.

뜻밖의 사태에 당황한 박영수는 얼른 품속에 있는 총부터 꺼내들었다.

《걱정마시유. 선생은 여기에 들어가서 뒤산에 올려붙으시유. 내가 뒤산에 있는 동굴까지 지하통로를 만들어놓았으니 얼른 빠져나가시유.》

로인이 그의 팔을 끌고 뒤방으로 들어갔다. 그 방은 약초창고였다. 상자를 옮겨놓으니 거기에 마루가 있는데 그걸 몇장 들어내니 지하통로입구가 나타났다.

《자, 빨리요. 내겐 렵총이 있으니 얼마간 산전막을 지켜낼수 있수다. 바쁘면 불 질러놓고 나도 이 굴로 빠져나가겠수다. 뭐 동굴에 들어가면 산지사방 빠질 구멍이 있으니 걱정마시유.》

이런 일을 자주 당했는지 로인은 서두르지 않고 침착하게 이야기하며 그의 등을 밀었다.

박영수는 다급한 마음에 쫓기여 허둥지둥 지하실에 내려섰다. 그러나 로인이 입구의 널마루를 덮어버리자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어 마루를 떠이고 올라왔다.

《안되겠습니다. 내가 막지요. 로인님이 먼저 떠나야겠습니다.》

《괜찮아요. 어서 떠나유. 내걱정 마시우.》

《안됩니다. 난 빨찌산지휘부로 통하는 줄을 모릅니다. 오늘 밤중으로 소식이 닿자면 로인님이 떠나야 합니다. 난 접선방법도 모릅니다. 그 무슨 위임장도 없습니다. 안되겠습니다.》

《선생, 다 해볼 탓이지요. 난 래일모레 환갑을 바라보는 놈이니 이젠 죽을 때도 됐어유. 내 살아 생전에 백성이 잘 사는 세상을 끝내 보지 못하는건 한이 되지만 어쩌겠소. 이젠 때가 된것 같시다.》

로인은 모든것을 각오한듯 싶었다. 그러면서도 초연히 웃으며 박영수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주기까지 하였다.

《이 나라의 아까운 젊은이들이 자꾸 죽어가는게 난 가슴이 아프다우. 살아서 오래오래 싸워야지.》

밖에서 또다시 총소리가 몰방으로 터졌다. 그 다음에는 돼지멱따는듯 한 고함소리다.

《나오라! 너희들은 빠져나갈 길이 없다. 살겠으면 어서 나오라!》

박영수는 더는 어물거릴수가 없었다. 그는 자기도 놀라리만치 침착하고도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로인님, 여기에 나이가 무슨관계가 있습니까. 빨찌산의 운명을 생각해야지요. 로인님이 받은 정보는 수백명의 생명과 련결된것입니다.》

《거야 그렇지만…》

《그러니 지금 뭐 다른걸 생각하겠습니까. 젊다고 량심없이 내가 살아서 대사를 망치면 로인님의 죽음도 헛된게 아닙니까.》

박영수는 로인을 억지로 지하실에 밀어넣었다. 그리고 재빨리 마루를 덮고 그우에 약초상자들을 쌓아놓았다.

그때 또다시 밖에서 총소리가 터졌다.

《나오지 않겠는가! 이제 열을 셀 때까지 나오지 않으면 통채로 불태워버릴테다.》

박영수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는 방가운데 우두커니 선채 이제 놈들의 심문에 어떻게 응해야 하겠는가 궁리해보았다.

평생을 거짓말을 모르고 고지식하게 살아온 박영수는 인차 둘러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도청과장이 밤중에 산전막에 나타나야 할 리유가 없다. 그는 권총을 버리기로 하였다. 저놈들과 접전을 벌려야 한알쌈으로 포위진을 헤쳐나갈수는 없다.

《랍치?》

뇌리에 피뜩 스치는 생각이다.

(옳다. 랍치되여왔다고 하자. 퇴근길에 올랐는데 어떤 괴한이 나를 끌어다 차에 실었다. 그리고 눈을 싸매고 이곳에 끌어왔다. 지금껏 빨찌산을 도우라는 공갈을 받았다. 그 사람은 방금 총소리가 나자 불질러놓고 사라졌다.)

박영수가 이렇게 생각하고는 얼른 약초상자에 있는 약초들을 방바닥에 쏟아놓고 불을 붙였다. 마른 약초에 불이 달려 순식간에 방안에는 연기가 꽉 찼다.

그찰나에 문이 홱 열리더니 일시에 여러 놈이 달려들었다. 한놈이 그의 손목을 비틀어 수갑을 절컥 채웠다. 다른 놈이 그의 웃주머니에서 명함장을 꺼내보고 《어랍쇼, 뚝치였군. 도청과장님이 이 초라한 산전막에 왕림하시구…》하더니 꽥 소리질렀다.

《이 집의 령감태기는 어데 있어?》

《말을 삼가하시오. 난 퇴근길에 랍치되여왔소.》

그때 삼단 같은 불길이 부엌까지 쓸어들었다.

박영수는 그놈들에게 끌려 마당에 나섰다.

《우린 네놈이 큰 도로에서 제발로 걸어오는걸 다 보았다. 웃기는 수작하지 말고 대답해. 이 집 두상은 어데 갔는가? 뭘 넘겨줬는가? 찦차의 주인은 누구인가? 이것부터 대라!》

이놈들은 초저녁에 이 주변에서 잠복을 서던 경찰들이였다. 놈들은 산어귀에서 난데없이 나타난 찦차의 전조등불빛을 보고 주목을 돌리기 시작하여 예까지 따라왔던것이다.

《난 랍치되여왔다. 지금까지 눈을 싸매고있어 잘 모르겠다.》

박영수는 그것이 제 생각에도 타당성이 부족하여 이놈들에게 통할리 만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렇게 뻗대는수밖에 없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마주 섰던 놈이 《웃기는 놈 봤네.》하며 주먹으로 그의 면상을 쳤다. 그러자 옆에 서있던 놈들이 구두발로 배를 걷어차서 넘어뜨리고는 그의 온몸을 란타하였다.

순식간에 티한점 없이 맑고 멀끔하던 박영수의 얼굴이 피자박이 되여 퉁퉁 부어올랐다.

놈들은 까무러친 박영수를 차에 태워가지고 철수하였다.

그가 눈을 뜬것은 다음날 아침이였다.

그의 침대에는 의사와 간호원이 앉아있었고 그뒤로 여러놈의 경찰들이 주런이 앉아서 쏘아보고있었다.

《됐소. 나가봐요.》

박영수가 의식을 회복하자 한놈이 명령했다. 의사와 간호원이 물러가자 그놈이 말했다.

《여긴 대전려관이요. 당신이 도청총무과장이라는것을 고려하여 구류장에 넣지 않았소. 이제부터 우리 일을 도와줘야겠소. 첫째, 찦차의 주인을 대시오. 둘째, 당신의 상급과 하급을 내놓으시오. 셋째, 산전막에서 당신이 뭘 전했는가를 밝히시오. 이상이요.》

《난 어느 하나도 모르오. 난 랍치되였소.》

《허튼소리… 생각할 기회를 주겠소. 자, 가자.》

그놈의 말에 앉아있던 놈들이 우르르 일어났다.

… …

(내가 찦차를 타고가지 말아야 하는건데…)

박영수는 바늘로 쑤시는듯 한 아픔을 참으며 이렇게 락심천만해서 중얼거리였다. 그놈들에게 단서를 잡힌이상 빠져나갈수는 없게 되였다.

(그래도 다르게 말해서는 안되지. 퇴근길에 랍치 당하였다.… 그렇게만 말해야 한다.) 박영수는 이 말만 곱씹었다.……

서울에서는 길철이 뛰고있었다. 치안국 수사지도과장인 김창기가 그의 지시를 받고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는 즉시 충청남도 경찰청 수사과장에게 박영수의 체포에 대하여 확인하고 사건의 전말을 보고할것을 명령하였다.

도경찰청에서 인차 보고가 올라왔다. 빨찌산과의 접선현장에서 체포했는데 아직은 범인이 입을 다물고있어 그이상은 모르겠다는것이였다.

김창기는 그들에게 경비대정보국 3과가 눈독을 들일수 있으니 절대로 빼앗기지 않도록 비밀관리를 잘하라고 엄하게 지시하였다.

당시 정보국 3과는 군부에서 방첩임무를 수행하고있었는데 3과장 김창룡은 북에서 도망쳐나온 친일정탐배로서 살인괴수로 벌써부터 악명을 떨치고있었다. 그놈은 자기의 첩자들을 경찰청의 요진통들에도 박아놓고 제놈들이 관여해야 할 대상이라면 닥치는대로 끌어갔다.

얼마후에 도에서 보고가 왔다. 비밀관리를 위하여 대전려관 7층에 구금하고 보초를 단단히 배치했다고 하였다.

김창기는 시간을 끌기 위하여 도수사과장에게 서뿔리 다치지 말고 우선 치료를 해주어 의식을 회복시키고 치안국에서 내려 갈 때까지 대기하라고 지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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