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눈물에 비낀 사랑과 증오
3
정시명은 리순애를 송호정에게 보내여 참모부의 타자수로 취직시키였다. 례절바르고 용모가 깨끗한 처녀는 인차 참모부안의 장교들의 관심을 끌었다. 장교들은 처녀의 깨끗하고 얌전한 품성과 부지런한 일솜씨에 현혹되여 저마다 그와 사귀여보려고 접근하고 넘겨보았다. 특히 그가 소속된 타자실에서 함께 타자를 치는 장덕수중위는 첫날에 벌써 그에게 완전히 넋을 잃고말았다.
장덕수는 다른 처녀타자수들이 시샘을 하는것도 아랑곳없이 리순애에게 각별한 호의를 보이면서 그와 가까이 해보려고 애를 썼다.
그는 처녀의 인격에 어울리게 몸치장도 언행도 품위있게 해보이느라고 하였는데 그게 오히려 처녀들의 조소거리가 되였다.
타자실에서는 극비에 속하는 작전계획이나 작전명령들을 장덕수가 타자하고 처녀들은 일반문건들을 맡아서 처리하였다. 그러나 리순애에게 홀딱 반해버린 장덕수는 때때로 극비문건타자를 리순애에게 맡기고 자기가 미군정의 높은 신임을 받고있다는것과 자신이 리순애를 믿는다는것을 은근히 암시하면서 유혹하려고 하였다. 그는 자기가 타자실에 들어올 때 미군정의 통위부장까지 직접 만나보았다고 자랑하였다.
처녀는 극비에 속하는 작전계획과 작전명령들의 사본을 제때에 김아성에게 넘겨주군 하였다. 그가 넘겨주는 모든 자료들은 정시명에게 고스란히 보고되였는데 그 가치가 상당하였다.
순애는 김아성을 만날 때마다 호소했다.
《난 어쩐지 불안해요. 장교놈들이 자꾸 곁눈질하는게 막 징그러워 죽겠어요.》
그러면 처녀앞에서 이죽거리기 좋아하는 김아성은 《어찌겠소, 인물값인걸.》하고 씨물거리였다.
그러나 생각은 깊어 정시명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면서 은근히 다른 자리에 옮겨주었으면 하는 의향을 비치였다.
정시명은 리순애가 개인감정으로 장덕수와의 관계를 끊어버릴가봐 여러번 간곡하게 일깨워주었다.
투쟁속에서 점차 자기의 위치와 존재가치를 깨달은 리순애는 계속 장덕수의 추파를 받아주면서 호의적으로 대하였다.
김아성은 리순애와 장덕수의 관계를 《사랑놀이》라고 불렀다.
처녀가 던진 낚시에 단단히 걸려든 장덕수는 자기가 반드시 타자해야 할 중요문건들을 사랑의 표시로 그에게 계속 맡기였다.
그는 문건을 넘길 때마다 늘 이렇게 다짐을 두었다.
《이건 정말 극비야. 이 봉투에 찍힌 시뻘건 도장이 몇개인가. 어데 가서 절대로 말해서는 안돼. 순애만 알고있어.》
《알아요, 중위님.》
처녀는 속눈섭을 내리깔며 장덕수가 강조하는것이 민망스러운듯 새침해서 대답했다.
그러면 장덕수는 더욱 몸이 달아 처녀의 옆에서 맴돌다가 혜식은 웃음을 남기고 입을 삐죽거리는 뭇처녀들의 눈총을 받으며 사라지군 하였다.
어느날 장덕수는 《국방경비대》 려단장 백인엽이 작성한 작전계획사본을 리순애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다른 타자수들이 들을가봐 처녀의 귀가에 입을 가까이 하고 《순애씨, 이건 하지밖에 모르는 비밀이요. 사실 참모장은 나외에는 누구도 알아서는 안된다고 했소.》하고 나직이 주의를 주었다.
《그런데 저에게 주면 되나요?》
《아 순애씨야 례외지. 좀 수고해주. 잠간 볼 일이 있어서…》
《좋아요. 장교님, 인차 타자해놓을테니 빨리 와서 타자검토나 해요.》
리순애는 믿음이 고맙다는듯 외씨같이 희고 잔조름한 이를 드러내보이며 야릇한 미소를 던지였다. 그 매력적인 미소에 장덕수는 뼈가 사르르 녹아드는듯 싶었으나 감히 건드릴 생각은 못했다. 약간만 농도 짙은 낌새를 보이면 언제 알았던가싶게 새파래 가지고 쏘아붙이는데 그 도고한 자세가 꼭 장미꽃가시 같았다.
작전계획사본은 곧 김아성을 통하여 안지생에게 전달되였다. 하지가 직접 《봉화작전》이라고 명명한 옹진일대에 대한 대규모적인 방화작전은 이렇게 그 시작부터 패배의 운명을 면치 못하였다.
투쟁의 비바람속에서 온실의 연연하던 꽃망울은 들장미처럼 향기롭게, 억세게 피여났다.
정시명은 이 한쌍의 젊은이들을 만날 때마다 자기 사업에 대한 긍지를 새삼스럽게 자각하군 하였다.
다른것은 다 제쳐놓고 단지 인생의 막바지에서 절망과 고독속에 몸부림치던 김아성이나 리순애가 자기 삶에 대한 보람을 깨닫고 청춘과 사랑을 조국에 바쳐 빛내여가고있는 이 한가지만 놓고서도 자기가 사람들에게 유익한 존재로 된듯 싶었다.
이 땅에는 삶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거나 스스로 저버리고 미래도 희망도 없이 목숨을 이어가는 사람들, 실존주의가 떠드는것처럼 죽음에로의 도상에 있는 인생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들의 가슴에도 인간의 존엄과 생의 보람과 희열을 심어주고 자신을 위하여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유익한 인간으로 되게 하며 세상에 태여나면서 너나없이 골고루 받아안은 행복에 대한 권리를 마음껏 누리게 하는것이 우리 공산주의자들의 본연의 지향이고 의무가 아닌가.…
리순애의 사랑놀이는 계속되였다. 언제까지 지속되려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