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눈물에 비낀 사랑과 증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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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뜰무렵의 남해는 조용히 굼니고있었다.
어둠이 실려 거무틱틱하던 바다는 밝아오는 려명속에 점차 희푸릿한 빛을 띠였고 시원히 열려지는 하늘은 재빛으로 바뀌여졌다. 가없이 망망한 바다와 하늘이 맞붙은 동쪽 한끝에서 불그레한 색조가 점점 퍼지기 시작하였다.
그 불깃불깃한 노을빛은 쉬임없이 일렁거리는 물결에도 비껴들었다. 아침노을까지 어울려든 바다물결은 마치도 억만의 홍보석을 휘뿌려놓은듯 령롱하다.
노을은 자기의 고운 빛갈을 뽐내기라도 하듯 잠간사이에 동켠하늘을 장미빛으로 물들이고 하늘과 맞붙은 바다를 시뻘겋게 달아오르게 한다. 하늘과 바다가 맞붙은 사이를 헤집고 빨간 해님이 수집은듯 갸웃이 고개를 내밀었다.
노을은 생겨날 때처럼 서서히 스러져가고 바다에도 하늘에도 찬란한 해살이 넘친다. 새날을 거느리고 위엄있게 떠오르는 해님을 축복하듯 바다는 끓어번지는 쇠물인양 이글거리면서 끝없는 환희와 열정을 안고 춤을 춘다. 일단 세상에 선을 보인 해님은 이제는 부끄러울게 없다는듯 눈앞에서 쑥쑥 커지더니 드디여 수평선너머에서 쟁반같은 자태를 완연히 드러냈다. 하지만 바다는 제품에서 안아올린 그 보배로운 불덩어리를 정작 놓아주자니 너무나 아쉬워 해를 끌어안은채 함께 솟구쳐오른다. 바다가 지꿎게 끌어안고 놓아주지 않자 마침내 무변광대한 시퍼런 하늘이 굽어보다 만물의 보물을 독차지하겠다는 심보가 돼먹었느냐고 시샘을 한듯 뎅강 들어올린다. 드디여 바다는 하늘과의 힘겨루기에서 지친듯 주저앉고 수평선에서 붉은 태양이 둥실 떠올랐다.
《아! 이것이 해돋이구나! 남해의 해돋이구나!》
아까부터 모래불에 장대처럼 두다리를 뻗디고서서 그 장엄한 광경을 넋을 잃은듯 바라보고있던 마동열이 두팔을 건뜻 들어올리고 저도모르게 열에 떠서 《어-바다여!-》하고 소리를 내지른다. 그리고는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홱 돌아서서 바다가를 따라 냅다 뛰기 시작하였다. 초봄의 싸늘한 바다바람에 머리칼이 갈기처럼 일어서고 옷자락이 펄럭거렸다.
마동열은 자그마한 바위앞에서 멈춰섰다.
바위우에는 정각이 있고 거기서 얼마쯤 떨어진 곳에 아담한 벽돌집 한채가 보인다. 8. 15전에는 부산시장하던 왜놈이 기생년들을 두고 별장겸 귀빈접대용객실로 리용했다고 한다.
마동열은 바위우에 껑충 뛰여오르더니 벽돌집을 향해 큰소리로 불렀다.
《례영이-어, 례영이-》
다급하게 불러대는 소리에 벽돌집 창문이 열리더니 행주치마를 두른 례영이 손에 밥주걱을 들고 내다보았다.
《왜요?》
《이리 내려오라구, 어서!》
《아이 밥 짓다 말구 어디로 간다구…》
《아, 밥은 밥이구 어서!》
마동열은 여전히 무엇에 쫓기기라도 한듯 급하게 소리질렀다.
례영이 행주치마를 벗어놓고 마동열이 서있는 정각에 나왔다.
《왜요?》
《저리 가기요. 어서.》
마동열이 례영의 손목을 덥석 잡더니 오던 길로 되돌아서서 달리기 시작하였다.
례영이는 사내의 넉가래 같은 손에 손목을 잡힌채 숨을 할싹거리며 따라섰다.
모래불에 나선 마동열이 발을 우뚝 세우더니 벌써 한발은 솟아오른 둥실한 해님을 가리키며 부르짖었다.
《자, 저걸 봐! 막 타는것 같다니깐. 불덩이야. 불덩어리! 얼마나 멋있어. 좀전에만 왔더라도 정말 희한했는데…》
마동열이 환희와 즐거움에 겨워 잠시전의 그 장엄한 해돋이를 례영에게 보이지 못한것을 못내 아쉬워한다.
그러나 례영은 마동열의 그 열정적인 부르짖음과 함께 저 아름다운 화폭을 함께 보며 기쁨을 나누고저 자기를 불러낸 사내의 정에 더욱 감동이 되여 백옥같이 희고 잔조롬한 이발을 드러내며 탄성을 올렸다.
《정말! 막 불타는것 같네. 바다는 또 얼마나 좋아! 붉은 비단이 너울너울 춤추는것 같네.》
수평선너머에서 솟구쳐오른 불덩이같은 태양과 그밑에서 쇠물처럼 이글거리는 바다를 바라보는 례영의 눈에 행복과 기쁨이 함뿍 어리였다.
마동열이도 례영이도 이렇듯 아름답고 장쾌한 해돋이를 난생 처음 본다. 그들은 손에 손을 잡은채 오래도록 남해의 해돋이를 구경하였다.
젊은 부부가 부산에서 30리 떨어진 이 외진 도미섬에 온지가 꼭 한주일이 된다.
그런데 그새는 남해의 초봄날씨가 변덕스럽고 또 새벽시간이 꿀맛같이 소중한 신혼재미에 겨워 해돋이를 모르고 지내왔었다.
그들을 이리로 데리고온것은 괴뢰국경비대의 부산려단장인 최원기였다.
그들은 중국에서부터 서로 잘 아는 사이였다.
그는 정시명의 지시를 받고 마동열의 출국수속을 다 해두었는데 례영이 함께 나타나는바람에 계획을 바꾸었다. 례영이까지 밀선으로 보내는것이 안심치 않고 미안하였던것이다. 새로 출국수속을 하자면 시일이 필요하였다. 더구나 그들이 렬차안에서 벼락같은 결혼식을 희한하게 하였다는것을 듣고는 차라리 잘되였다고 하면서 자기 집에서 며칠밤을 재운다음 이 섬으로 데리고왔다.
지도에도 알려지지 않은 이 도미섬에는 최원기수하의 한개 경비소대가 있을뿐 일체 외인출입이 금지되여있었다.
최원기는 그들을 이 집에 안내해주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이 집은 서울고관들이 행차하면 모시는 우리 려단의 빈관일세. 자네들 아버님도 여기 몇번 모셨댔어. 식모로친과 접대원도 휴가를 주어 집을 비워두게 했으니 마중위 잡으려 예까지 올놈은 없어. 그러니 아무 걱정말고 내가 올 때까지 재미있게 지내라구. 아무래도 자네들을 둘 다 안전하게 출국을 시킬려면 좀 날자가 걸릴걸세. 늦잡아서 한주일후에는 오겠네.》
그리고는 심심하면 낚시질이나 하라면서 이 아근에 흔한 도미낚는 법을 반나절 배워주고 돌아갔다.
그날부터 신혼부부는 생각지 않은 호강을 하면서 신혼밀월을 꿈속에서처럼 즐기여온다. 너무도 뜻밖에 찾아든 행복이여서 지금도 그들은 이루어진 사랑의 열매와 누리게 된 행복이 기연가미연가했다.
최원기가 떠나간 저녁부터 이 아름다운 섬의 아담한 귀빈실의 주인이 된 마동열은 갑자기 다사해졌다. 하긴 서울에서 한처마를 쓰고 지내면서도 언제한번 단둘이 마주앉아 정담을 나눈적이 없었던 그들이였다. 그저 마음과 마음으로 통하며 서로 끌리는 정을 나누고 입으로가 아니라 눈으로 사랑을 속삭여왔었다.
마동열은 천근같이 무겁기만 하던 입을 열고 자기가 걸어온 어제날의 이야기부터 쏟아놓았다. 어떤 때는 그 시원스럽고 부리부리한 눈망울을 둘둘 굴리며 눈물속에 더듬기도 하고 어떤 때는 주먹으로 허공을 냅다 치며 울분을 터치기도 하였다.
그러면 큰 고생을 모르고 자라난 례영의 눈가에도 이슬이 돋고 입술이 바르르 떨기도 하였다.
《아마 례영이를 이렇게 만나자고 그 고생살이 다 이겨내고 이렇게 살아난것 같애.》
마동열은 이렇게 곡절많은 한생을 추억하였다.
례영이도 살아온 이야기를 동열에게 처음으로 들려주었다.
그들의 오가는 말속에 언제나 떠나지 않는것은 정시명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침에도 저녁에도 밥상을 마주하고도 잠자리에 함께 들어도 정시명에 대한 이야기는 끊어지지 않고 뜨거운 감사와 애정과 감동속에 그냥 비끼군 하였다.
《례영이, 우리 앞으로 절대로 헤여지지 말고 서로 아껴주며 오래오래 살아보자구. 비명에 돌아간 우리 부모님들의 몫까지 모두 합쳐서 말이요.》
마동열은 눈물에 젖는 안해를 넓은 품에 끌어안고 이렇게 더운 목소리로 웅얼거리군 하였다.… …
《야, 밥이 타겠네!》
동녘에 해가 서너발 솟아 오를무렵에 례영이 새된 소리를 내질렀다.
《엉? 하하…》
마동열이 큰 웃음을 하늘에 날리며 제먼저 주먹을 부르쥐고 바위를 향해 냅다 달려갔다.
새까맣게 탄 누렁지를 식탁에 올려놓고 젊은 부부는 한바탕 즐겁게 웃었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줄 모른다잖아요. 자, 이거라도 더 드세요.》
례영이 미안스러워 제앞에 있는 도미탕그릇을 그에게 밀어놓으며 살뜰히 권했다.
《뭘, 그래서 그 희한한 구경을 하지 않았어. 하마트면 그걸 놓쳐버리고 섬을 떠날번 했지.》
마동열이 례영이 내미는 도미탕그릇을 받아들며 벙긋 웃었다.
아침상을 물리자 마동열은 또다시 집안의 비품으로 되여있는 낚시대를 들고 집을 나섰다. 섬주변에 도미가 많이 서식하고있었다. 그래서 섬이름도 도미섬이라 한다.
어선들도 함부로 드나들지 않아 낚시질은 깜깜인 마동열이도 반나절만 앉아있으면 둘이 먹을 찬거리는 어렵지 않게 낚아냈다.
례영이는 설겆이를 마치고 마동열의 군인외투를 들고 바다가로 나갔다. 발소리를 죽이고 등뒤에 다가갔으나 깜부기에 정신을 팔고있는 마동열이 인기척을 모르고있다가 제등에 외투가 걸쳐져서야 돌아다본다.
《뭘, 제가 쓸게지… 그런데 왜 나왔소? 한잠 푹 자기나 하지.》
마동열이 외투를 도로 례영에게 걸쳐 주자 례영이 더 사양하지 않고 해죽이 웃으며 그의옆에 무릎을 세우고앉았다.
그는 깜부기를 눈여겨보다가 끝간데없이 펼쳐진 바다로 시선을 옮겼다.
해가 중천에 걸리자 바다는 수집게 살랑거리던게 언제였더냐 싶게 크게 움씰움씰거리며 파도를 높이고 소란을 피우기 시작하였다. 욱-밀려든 물결이바위를 들릴 때마다 크고작은 물알갱이들이 길이 넘게 날아 흩어진다.
그들이 마주앉아 있는 바위밑은 병풍처럼 파도를 막아선 암벽때문에 련못처럼 고요하였다.
촐랑촐랑거리던 깜부기가 물속에 쑥 들어갔다.
《이크…》
마동열이 환성을 지르며 번쩍 낚시대를 쳐들었다. 솥뚜껑같은 둥글넙적한 도미가 데룽데룽 매달려 바위우에 철썩 떨어져내렸다.
례영이 냉큼 자리에서 일어나 도미를 낚시에서 풀어내였다. 그는 푸들짝거리는 도미를 다래끼에 담고는 낚시에 미끼를 꿰는 마동열의 옆에 와서 다시 소곳이 앉아 먼바다로 시선을 보냈다.
《아저씨가 언제 오신다고 했던가요?》
례영이 문득 지나가는 어조로 물었다.
《늦어도 한주일이라 했으니 뭐 오늘에야 오겠지. 갑갑해졌소?》
마동열이 낚시를 다시 바다물에 던져넣으며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였다.
하기는 이제는 갑갑할만도 하다. 며칠새에 숱한 이야기를 줄소나기처럼 부어대고보니 이젠 흥이 날만한 이야기거리도 밑창이 났다. 그렇다고 례영이와 더불어 재미를 나눌만 한 오락물도 없고 책이나 신문도 없으니 워낙 집에 들어앉아있는것이 질색인 마동열이도 갑갑하기 그지없다. 그래도 자기에게는 낚시질이라는 소일거리가 있으니 그런대로 무료함을 덜어주었다.
마동열은 례영의 다음말을 기다리며 여전히 깜부기만 지켜보았다.
요 며칠전부터 마동열은 례영의 마음속에 그 어떤 이름짓지 못할 이상야릇한 변화가 일고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였다. …사흘전에 있은 일이다. 잠자리에 나란히 누웠을 때 마동열이 평양에서 김일성장군님을 뵙던 이야기를 하였다. 장군님께서 특별히 자기에게 맡겨주신 특별임무에 대한 이야기도 하면서 그걸 수행하지 못하고 떠나는 죄스러운 생각도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본격적인 싸움들이 눈앞에 있는데 정시명의 신변이 자못 걱정스럽다고 한숨을 쉬였다.
그 말을 들은 례영이 《그래도 아버님은 언제 한번 그런 걱정을 하시지 않던데요.》하고 조용히 말을 받았다. 제딴으로 마동열의 아픈 마음을 위로해주고싶었던것이다.
그 말을 듣자 마동열이 번열증이라도 나듯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그러니 더욱 문제요. 선생님이 언제 제한몸 생각하시는분이요. 내 선생님슬하에서 꼭 10년을 지내왔소. 걸음걸음이 아슬아슬한게 지하전선이요. 참호에 엎드린 병사들은 날아오는 총탄을 볼수 있고 저를 노리는 상대를 알고 싸우오. 지하전선이란 언제 어디서 칼이 날아오고 포승줄이 덮쳐드는지 누구도 모른단 말이요. 선생님이 직접 당한 위험한 고비를 내가 지켜본것만 해두 헤아릴수 없소.
장군님께서 선생님의 신변을 지켜드리는것이 통일혁명의 승리를 위하여 중요한 일이라고 간곡히 말씀하시였는데 난 이렇게 제한몸 편해서 물러나거든.
난 요새 자꾸 선생님을 꿈에서 보군 하오.》
《너무 념려말아요. 곁에 어머님두 계시구, 지생오빠도 계시구. 다 든든한분들이 있지 않나요.》
《글쎄 내 안동무에게 부탁했으니 어련하겠소만 서울공기가 나날이 너무 험악해가거든. 중국에서도 우린 줄창 이러루한 일을 해왔지만 서울처럼 숨가쁘지는 않았어. 이번에 놈들이 날 쫓아다녔지만 언젠가는 선생님도 따라다니게 될것만 같애.》
《설마…》 례영은 이렇게 덴겁을 하듯 나직이 부르짖었다.
《설마가 뭐요. 저놈들이 인정사정 아는 놈들이요. 몽양선생이 돌아갔을 때 생각이 안나오. 그분을 지켜내지 못했다고 가슴을 두드리면서도 자신에 대해서는 너무도 무심하단 말이요.》
잠시후 례영이 물었다.
《아버님은 언제면 서울을 뜨게 되는가요?》
《글쎄… 딱히는 몰라도 통일이 되는 날이지.》
《통일?… 통일이 언제면 될가요?… 한 5년은 걸릴가요?》
《5년?… 무슨 5년까지 간단말이요. 온 나라가 들고일어나지 않았소. 미국놈들이 나라를 토막을 내려고 발광을 부리지만 어림두 없어. 쏘미협상때 봤지. 우리가 멋들어지게 이겼단 말이요. 남북 삼천리에 통일기운이 꽉 찼는데 뭘 5년까지 간단말이요. 원래 모스크바3상회의라는데서 5년후에 보자고 했는데 그 5년이 벌써 절반은 지나갔거던. 글쎄 그건 그거구 내 생각에는 극상해야 이제 한해나 이태쯤 지나면 알도리가 있겠지. 두고보오. 우리가 이제 타국에 가서 자리를 잡느라면 아버님이 우릴 오라고 부를게요. 제발 그날까지는 무사하셔야 되겠는데… 자, 이젠 잡시다.》
그런데 이튿날 동틀무렵이였다.
마동열이 눈을 뜨니 례영이 경대앞에 그린듯이 앉아있었다. 턱을 고인 오른손에는 얼레빗이 들려있고 다른 손에는 분곽이 들려있었다. 례영이 이 벽돌집에서 신접살림을 시작한 후로 언제나 새벽 무렵이면 제먼저 이불속에서 빠져나와 화장까지 다하고 부엌에 나가군 하였다. 그런데 이날따라 거울앞에 앉아 생각에 옴해있는 그 모양새가 례사롭지 않다.
마동열이 그의 뒤모습에 눈길을 박은채 숨소리를 죽이고있는데 례영이 이따금 가느다란 한숨을 내쉰다.
(왜 저럴가?…)
마동열은 례영이에게서 처음으로 들어보는 그 한숨소리가 가슴을 쩌릿하게 하였다. 이제는 자기보다 아니 제 한몸보다 더 귀하게 여겨지는 귀중한 사람이였다.
그날 식사끝에 새벽에 경대앞에서 무슨 생각을 했느냐고 물으니 《오빠생각…》하며 방긋 웃었다.
그러나 그날부터 마동열은 안해의 일거일동에 자연히 신경을 쓰게 되였다.
확실히 례영의 얼굴에 무엇인가 수심이 어리고 그 무슨 생각이 명치에 옥맺혀있는것 같았다.
(무엇일가? 례영이 후회하는것이 아닐가?)
마동열은 불안하고 두려워졌다. 곰곰히 돌이켜보면 크게 맺힌 정이 없이 사귀였고 결혼마저도 벼락치듯 성사되였다. 례영이를 위해 사내로서 특별히 해준것도 없다. 그렇다고 녀인들의 눈을 끌만 한 매력있는 사내도 못된다. 례영이 서울판에서 나같은 사내를 골라잡으라면 그 무슨 품들일것도 없을것이다. 인물곱고 마음씨 착한 례영이 나서면 지나가던 총각들이 걸음을 멈춘다.
이건 여러번 체험했던 일이다. 그러나 례영이 없이는 이제는 한시도 살아갈수 없을것만 같다. 고 애된것이 심장을 깡그리 앗아낸것 같다. 그런데 무슨 일이 생겼을가? 어떤때 보면 먼 허공에 초점없는 눈길을 보내다가는 눈길이 마주치면 화닥닥 놀라 언제나 다름없는 생기있고 살뜰한 모습을 되찾군 한다.
그럴 때면 마동열은 속안이 허우룩 하였다.
지금도 수평선 멀리에 눈을 주고있는 례영의 모습에는 수심이 어려있다.
《동열오빠!》 문득 례영이가 조심스러운 어조로 불렀다. 그 은근하면서도 떨리는듯한 음조가 동열의 가슴에 싸늘하게 박혀들었다. 마동열은 그에게 고개를 돌리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으음-》하고 짤막히 대꾸하였다.
례영이 그의 허벅다리를 꼬집으며 엉석을 부리듯 《나 좀 봐요.》하고 말했다.
《왜?》
《글쎄요.》 례영이 가까이 다가드는데 동열이 지꿎게 깜부기만 내려다본다.
도미란놈이 지느러미로 장난을 치는지 잔잔한 수면우에서 깜부기가 간들거렸다.
《아이 뚝바우!》 례영이 그만에야 마동열의 앞에 마주앉으며 사내의 구리빛얼굴을 새침해서 쳐다보았다.
《허허… 말이야 귀로 듣는거니… 말해보라구.》
《음… 이런 말 한다고 달리 생각말아요.》
《… …》
《나 서울에 다시 가야 할가봐.…》 말소리가 떨리다가 잦아들고말았다.
례영은 입술을 더 오물거리였으나 말이 들리지 않았다.
《뭐야?!》 마동열이 그 큰 눈을 흡뜨고 소리질렀다.
례영이 대바람에 험상해진 사내의 얼굴과 큰소리에 깜짝 놀라 뒤로 주저앉았다.
《아이 깜짝이야!》
례영이 또 뭐라고 하는데 마동열이 낚시대를 홱 들어올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바위에서 뛰여내려 모래불에 큼직큼직한 자국을 찍으며 씨엉씨엉 걸어갔다.
례영이 너무 급해 맞아 《오빠-》하고 소리치며 뒤따라갔다. 등뒤에서 애기들의 팔뚝처럼 소담한 쌍태머리가 춤을 추었다. 부산에서 하루를 보낼 때 최원기처가 머리를 얹어주겠노라 하는걸 마동열이 그만두게 하였다. 자기는 그게 더 보기 좋으니 애기엄마가 될 때까지 놔두라는것이였다. 그래서 례영은 마동열의 소원이 그렇다면 죽을 때까지 량태머리를 하고 있겠노라 웃으면서 머리단장을 바꾸지 않았던것이다.
《내 말 들어봐요.》
《가오, 가오! 들어봐야 그 말이겠지. 넓으나 넓은 서울땅에 뭐 마동열과 같은 사내야 가을메뚜기처럼 흔해싸지.》
《뭐라구요?! 오빠가 어쩌면 그렇게 말씀하세요. 오빠-》
《생각대로 하오. 난 발부리에 엎드려 구차스럽게 빌지는 않겠으니 물러가오. 우리 선생님이 뭘 보시고 내같은거한테 저런 공주같은걸 맡겨주시였을가.…》
마동열의 소리가 점점 거칠어만 졌다.
순간 례영은 몸을 휘친거리며 내달려 그의 앞을 막아서며 야멸차게 불렀다.
《여보!-》
그 소리에 마동열은 말나가는대로 벌리던 입을 봉하고 걸음을 우뚝 세웠다.
례영은 처음으로 그렇게 불렀다. 이제까지 입에 붙어온 오빠라는 부름말이 그대로 굳어져 동열이를 다르게 부를수 없었는데 어떻게 되여 그 말이 그렇게도 쉽게 튕겨나왔는지 자기도 놀랐다.
더욱 놀란것은 마동열이였다. 그저 동생처럼 사랑스럽고 소중하게만 생각되여온 례영이 한순간에 자기와 당당히 인격을 같이 하는 동반자로, 반려로 비로소 의젓이 나타난것이다.
례영이 입술을 자근자근 깨물며 마동열을 쳐다보다가 보장처럼 모래불에 박고있는 그의 다리를 두팔로 부여안으며 무릎을 꺾고 앉는다. 동그란 두어깨가 들먹거리기 시작하였다.
마동열은 두다리를 례영에게 잡힌채 수평선으로 번쩍거리는 눈길을 망연히 보낼뿐이였다. 례영의 눈물이 발잔등에 똑-똑 떨어져내리자 마동열은 와락 그를 끌어안아 일으켜세웠다.
《여보, 이러지 마오.》
고개를 든 례영의 얼굴에 물기가 자오록하고 고운 속눈섭에 구슬같은 눈물이 매달려 파들파들 떨었다.
성미가 세찬 젊은이들이 항용 그러하듯 녀인의 반발에는 데설궂게 대응하던 마동열이 례영의 애절한 모습앞에서 그만 그 툭한것이 꺾어지고말았다.
그 곱고 청초한 눈으로 사내의 억세게 생긴 얼굴을 말끄러미 올려다보던 례영이 그의 팔에서 빠져나와 흑 하고 터지는 울음을 감씹으며 집을 향해 달려갔다.
마동열은 우두커니 서서 량태머리를 달랑거리는 그의 뒤모습을 바라보다가 급기야 《례영이! 례영이-》하고 부르며 뒤쫓아갔다.
례영은 집으로 들어가자 안으로 문을 잠그었다. 그리고는 침대우에 엎드려 엉엉 슬프게 울었다.
마동열은 문을 잡아당기다가 방에서 새여나오는 울음소리를 듣자 안절부절 못하며 문을 당장 열라고 소리질렀다. 그러나 방안에서는 여전히 울음소리만이 들려올뿐이였다. 그 소리가 사내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놓는다.
마동열은 어찌할바를 몰라 문앞을 오락가락하다가 례영이 끝내 열어주지 않자 문앞에 쭈그리고앉았다.
《례영이, 이 문열고 속시원히 말이나 해주오.》 그는 사정하듯이 말했다.
《나 싫다고 한마디 하면 난 뭐 군소리없이 례영일 놓아줄테요. 사실 나야 뭐 볼게 있는 사내야? 아버님처럼 나라의 큰일 맡아하는 사람도 아니고 안지생이나 길철동지들처럼 대학물을 먹지도 못했지. 김명호동지처럼 속깊고 말잘하는 재주도 없고 그저 주먹 센 자랑밖에 없는 사내지.
례영에게 다 말했지만 난 부모님얼굴도 똑똑히 생각나지 않아. 일찌기 웃마을 외가집에 얹혀살다가 고향 떠나 두만강을 넘었지. 좀도적질을 하며 정말 가랑잎처럼 만주광야를 떠다녔어. 주린배 채워보려구 부자집대문을 열다가 사냥개한테 물린적도 열번은 넘어될거야.
그러니 뭐 공부 못한거야 내탓이 아니잖아. 악으로 살아가자니 주먹질밖에 남은게 없었어. 그러던 내가 아버님을 만나 사람구실을 배우기 시작했어. 먹고 살기 위해 휘두르던 내 주먹을 나라와 겨레를 위해 써먹어야 된다고 일깨워주셨지. 그래서 나도 나라걱정을 하게 되고 혁명이라는 거창한 바다에도 뛰여든거야. 그게 십년전이야. 그때로부터 난 한길밖에 몰랐어. 앞으로도 난 그 길밖에 모를거야.
이렇게 살아온 내앞에 례영이가 나타났어. 난 례영일 만날 때부터 누이동생처럼 정이 가고 사랑이 갔지만 사실 내게는 까마귀에 백로처럼 생각되였어.
정말이야. 평생 곁에 두고 아껴주고싶어도 그쪽에서는 꼬물만치 생각도 안하는것 같아서 그런 말은 입밖에 꺼내놓지 못하겠더란 말이야. 그런데 이렇게 될줄이야. 난 지금도 꿈속에서 사는것만 같아.
사실말이지 나같이 잘린 무우밑둥같은 사내에게 선녀같은 례영이 당하는가. 그러니 뭐 이제라도 례영이 돌아가겠다면 붙잡지 않겠다는거야. 선생님께는 뭐 적당히 말씀을 드리면 되는거구. 그게 오히려 나라 받드는 싸움에서 마음편할지도 모르지. 그러니 울지 말라구. 난 정말 례영의 울음소리 듣느니 죽어버리는것이 나을것 같애. 울지 말아, 응, 례영이!》
그런데 동열이 울지 말라구 사정하였지만 그의 말이 길어질수록 례영의 울음소리는 더 커지기만 하였다.
마동열은 더는 목이 메여오는 슬픔을 걷잡지 못하고 그도 굵다란 눈물을 뚝뚝 떨구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터벅터벅 모래불에 나갔다. 정오의 해볕이 재글재글 끓고있는 바다를 바라보다가 모래불에 네활개를 펴고 벌렁 누워버렸다. 파도처럼 밀려왔다가는 밀려가는 번거로운 생각에 잠기여 시간가는줄을 몰랐다.
한식경이 지나서 례영이 모래불에 나왔다. 건듯 들린 초록빛 하늘을 초점잃은 눈으로 쳐다보고있던 마동열은 사각-사각- 모래 밟히는 소리가 나자 눈을 감아버렸다.
례영은 그의 머리맡에 잠시 서있다가 《오빠, 점심 드세요.》하고 나직이 불렀다.
그러나 마동열은 눈을 감은채 대척을 하지 않았다. 례영이 짧은 한숨을 내쉬고는 자리에 앉아 그의 어깨를 가볍게 흔들었다.
《오빠, 어서 일어나요. 배고프지 않아요?》
《안먹겠소.》
마동열이 여전히 눈을 감은채 푸접없이 대꾸하였다.
《오빠, 어서 일어나요. 오빠가 이렇게도 제 마음을 몰라줄줄은 몰랐어요. 일어나요. 정말 이러고계시겠어요? 이렇게 남의 속을 태우겠어요?》 례영이 안타까이 그의 어깨를 마구 흔들다가 억지로 앉혀놓았다.
하는수없이 일어나앉은 마동열은 례영의 다기찬 눈길을 피하다가 그의 머리모양새가 달라진데 눈이 가자 의심쩍어 하였다.
어깨우에서 달랑거리던 량태가 없어지고 뒤통수가 불룩 솟아있었던것이다.
《왜 그러세요?》
《그 머리는 그… 그 량태머리는 왜?…》
《뭘, 놀라세요. 벌써 그렇게 해야 될건데요. 어때요, 량태머리보다 보기 좋아요? 이제야 처녀꼴 벗은것 같지요?… 자, 가서 점심이나 하자요.》
례영이 상냥하고도 다심하게 사내의 속을 어루만져주자 마동열은 어쩌는수가 없어 《허 참.》하고 일어섰다.
례영이가 무겁게 걸음을 옮기는 마동열의 팔을 끼고 살뜰하게 물었다.
《오빠, 그렇게도 제가 미덥지 못해요?》
《허-》
《말 좀 해봐요. 제가 그렇게도 천하고 속된 계집같아요? 설마 오빠가 그리도 못난 사내라 한들 제가 부모님 맺어준 인연을 보름 못되여 희롱질하는 그런 계집같애요?》
그것은 롱이 아니였다. 여전히 상냥하고 귀염성스러웠으나 씨가 박힌 꾸짖음이고 모진 비난이였다.
《오빠는 정말 어쩌문 그렇게도 속대가 만만할가? 혹 제가 그런 시시한 계집같으면 어째 한대 줴박을 생각을 못해요? 그 쇠뭉치같은 주먹은 어데다 쓰냐 말이예요.》
《례영이, 난 이런데는 통 둔한 사람이야. 나를 자꾸 머저리로 만들지 말구 속 씨원히 진정을 밝혀줘. 난 지금 뗑한게 갈피잡을수 없어.》
《뭘 모를게 있구 진정이구 뭐구 까리까리한게 있어요? 좋아요. 점심상이나 받으시고요.》
《아니, 난 례영의 이야길 듣기 전에는 아무것도 안먹겠소.》 마동열이 이렇게 선언하고는 《자, 앉았다 갑시다.》하고 제먼저 모래우에 털썩 주저앉았다.
《내 아까 실없는 소릴 한건 잘못했어. 하지만 내 정말로 례영이를 의심해서 그런건 아니야. 내 밸머리 례영이도 잘 알지 않아. 하도 답답해서 씩둑거려본거지. 하지만 그게 무슨 소리야. 난 좀 알아야겠어.》
마동열이 정말 말 듣기전에는 아예 굳어져버릴 잡도리를 하자 례영이는 《호-》하고 짧은 숨을 내쉬며 그옆에 나란히 앉았다.
례영은 며칠새 입속에서 맴돌던 이야기를 정작 꺼내놓자니 가슴부터 떨려왔다.
《오빠, 전 오빠가 서울을 떠나면서 무엇때문에 괴로워하는지 똑똑히 알게 되였어요.》
《…》
《장군님께서 주신 그 특별임무를 두고 떠나는 오빠의 괴로움을 알아요. 며칠전에 오빤 자면서도 안지생오빠를 찾더군요. 꿈에서도 아버님의 신변걱정을 하며 다시 부탁의 말을 하더군요.》
《그건 옳아. 난 자나깨나 그 생각뿐이요. 우리는 여길 떠나면 서울처럼 조심할것까지는 없소. 그게 난 괴로워. 선생님을 사지판에 두고, 장군님께서 친히 맡겨주신 과업을 남겨놓고 떠나자니 발이 천근만근이야. 생각하면 여기 와서 호강하는것이 막 괴로워. 만약 선생님의 신상에 그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장군님께 무슨 면목이 서고 통일력사에 이 마동열이 무슨 죄를 남기는가.…》
《그렇지만 오빤 떠나야지요. 여기 계셔야 오히려 아버님께는 짐이 될거야요.》
마동열은 그만 크게 한숨을 내쉬며 말없이 고개만 끄덕거리였다.
《이제 저도 이렇게 훌렁 떠나지요. 글쎄 저같은거야 아버님곁에 있은들 무슨 도움이 크게 되겠어요. 그렇지만 오빠, 전 저마저 아버님곁을 떠나는게 너무 죄스러워요.》
《그러니 그때문에?… 글쎄…》
《오빠, 용서하세요. 제가 아버님곁에서 오빠마음을 대신한다면 오빠의 괴로움도 덜지 않을가요?》
《그건?… 그건 안돼…》 마동열이 눈을 번쩍거리며 소리지르다가 맥이 진한듯 풀어진 어조로 중얼거리였다. 《날 막 벼랑턱으로 몰아가는구만…》
《여보, 절 용서해요.… 절 용서해요. 우리는 앞길이 길지 않나요. 량심에 후회를 남기지 말자요.》
《여보!》 마동열은 그만 목이 꺽 메고말았다.
《당신도 말씀하셨지요. 통일이 이태전에는 될거라구. 그러니 이태동안 기다려주세요. 전 일생에 한을 남길가봐… 난 참 어쩌면 좋을가, 이러기도 힘들구 저러기두 힘들구… 당신이야 어차피 떠나야 할 몸이니 어찌할 도리가 없지요. 하지만… 당신이 말씀해줘요. 전 어쩌면 좋아요? 저만이라도 남게 해줘요. 통일… 통일이 되는 그날까지만…》
《여보!》
례영이는 북받치는 격정을 주체할수 없어 쓰러지듯 마동열의 품에 안겼다.
태질하는 례영을 끌어안은 마동열이 비칠거리였다. 그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삼켜버리고 례영의 틀어올린 머리우에 고개를 묻으며 눈물어린 볼을 비비였다.
그들은 모래불우에 한덩어리로 엉켜서 한동안 형언할수 없는 쓰라린 심정으로 피가 뚝뚝 듣는 심장과 심장을 끌어안고있었다.
최원기가 나타난것은 바로 이때였다.
자그마한 모타선을 타고 섬에 온 최원기는 소대부에 들렸다가 인차 이곳으로 왔다. 그는 방안에 먹지 않은 밥상이 차려있는것을 보자 그들을 찾아 바다로 나왔다.
《어이 마중위, 게서 뭘 하는가?》
젊은이들은 최원기의 출현에 화닥닥 놀라 두쪽으로 갈라졌다.
그들은 재빨리 옷매무시를 수습하고 그를 마주 향해 걸어갔다.
《오늘 다섯시엔 출발이야. 시모노세끼로 가는 정기려객선으로 떠나니 걸려들건 없을것 같애. 출국수속은 다 해놓았으니 이걸 건사하라구.》
최원기는 마동열에게 증명서와 문건과 배표가 들어있는 봉투를 내밀었다.
《거기에 다 있네. 일본지페도 좀 넣었으니 보태쓰라구.》
마동열은 고개를 끄덕일뿐 흥심없이 봉투를 받아들고 바지주머니에 찔러넣었다.
《점심전이더군. 마침 잘 되였네. 우리 마누라가 뭐 제가 한상 차리겠다더군. 내 자네들 춘부장과는 꼭 다섯살 우이니 큰아버지벌이 되거던. 그러니 큰집에서 차린 반살기로 받으라는거야.》
최원기는 젊은이들의 거동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였으나 대범하게 스쳐보내며 껄껄 웃었다.
《아저씨, 고맙습니다.》 례영이가 허리를 굽혔다.
《자, 얼른 들어가 차비를 하게. 난 예서 바다바람이나 쐬일라네.》
《가만 최선생님, 거 권총을 좀 빌려주십시오.》
《권총?… 갑자기 그건 왜? 이제 뭍으로 나가야겠는데.》
《저 사람에게 좀 가르쳐줄랍니다. 그리고 이제 부산에 가시면 저 사람이 건사할만 한 작은걸로 한정 마련해주십시오.》
《무슨 소릴 하는거야? 앞뒤쪽 세관에서 남자녀자 갈라놓고 샅샅이 뒤지는판인데 그걸 갖구 어떻게 여러 나라 지경을 벗어난단말이야.》
《그럴 일이 생겼습니다.》
《그럴 일이라니?… 정말 무슨 일이 생긴것이 틀림없어. 왜 둘다 우거지상인가. 올 때와는 썩 기분이 좋아보이지 않아. 어찌된 일인가? 다투었나?》
최원기가 정색을 하고 년장자답게 따져물었다.
《다투긴요.》
《그럼 어찌된 일인가? 말해보게.》
《저 사람이 서울에 도로 가겠다고 합니다.》
《서울에? 그건 왜 마중위가 떠날 때 함께 가는게 좋지. 출국수속도 돼있는데 뿔뿔이 갈게 있나. 그럼 마중위도 동의했다는건가?》
《예.》
《리유는 뭔가? 이건 무슨 뚱딴지같은짓이야.》
《아버님곁을 누구 한사람 지켜드리자는겁니다.》
《원 무슨 소린지… 쯔쯔쯔… 아, 정선생님곁에는 사람들이 없다던가, 례영이, 다시 생각해보는게 어떤가. 선생님이 자네들 처신을 좋다고 할가. 동열의 생각도 해줘야지. 난 허락못해.》
《최선생님, 이건 저희들의 마음을 합쳐 어렵게 내린 결심입니다. 저 사람의 뜻이 옳습니다. 서로 기다리느라면 통일문제도 끝을 볼게구 그러면 인차 만나게 되겠지요. 최선생님은 제가 장군님으로부터 어떤 특별임무를 받았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저도 례영이 남아주면 그래도 가볍게 떠날것 같습니다.》
《음… 알지… 알구말구… 그런데…》
최원기도 목이 화끈해와서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례영이와 마동열의 손을 하나씩 끌어다가 두손으로 감싸쥐였다. 《아, 원 세상에 이런 일도 있는가?… 음… 어떻게 하든지 갈라지지 말아야겠는데…》하며 최원기는 권총을 가죽주머니채로 풀어주었다.
그는 두 젊은이를 번갈아보다가 그들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고는 말없이 정각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정각의 나무기둥에 기대고서서 바다를 초점을 잃은듯 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자기도모르게 두볼에 뜨거운 눈물이 얼찐거렸다.
(정도 품앗이라는 말도 있거늘 정선생이 저 젊은이들을 어떻게 키워냈으면 이리도 사람의 마음을 울리게 하는거냐. 자식이라 한들 저렇게 처신을 할소냐. 아, 하지만 젊은이들에게 우리 세대는 너무도 큰 죄를 짓는게 아닐가. 참말로 통일이란 이리도 애간장을 녹이고 비싼 대가를 치뤄야 오려나. 저런 생리별이 이제 부지기수로 생겨나겠으니 장차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인가.…)
생각할수록 최원기는 가슴이 터지고 절통한 생각으로 흐르는 눈물을 걷잡을수 없었다.
잠시후 바다가에서는 야무진 총소리가 나기 시작하였다. 새로운 임무를 스스로 맡아안은 례영이 난생 처음 울리는 총성이였다.
총소리가 날 때마다 최원기도 몸을 흠칫거리였다. 그는 제발 례영이가 서울에 가서 저런 총소리를 내지 않기를 뜨거운 마음으로 빌었다.
최원기는 이날 일정을 바꾸어 섬에서 젊은이들과 함께 지내려고 하였다.
그는 젊은 부부와 함께 점심을 나누고는 낚시대를 들고 바위밑으로 내려갔다.
해가 뉘엿뉘엿해서야 최원기가 세마리의 도미를 꿰들고 올라왔다. 그는 방에 들어서다가 꿍져놓은 그들의 행장을 힐끔 보더니 탄식조로 말했다.
《내 나살이나 건사한게 자네들 풍에 놀았다가 선생님께 경치지 않겠는지 모르겠다.… 에, 나도 모르겠다. 자네들 뜻은 장한데 인륜에 어디 그렇게 돼있는가. 아- 모진 사람들이야. 모질거든.》
《선생님, 어서 떠납시다. 시간이 늦었습니다.》
《내 딴 생각이 있어 늦잡은걸세. 자네들은 여기 며칠 더 묵게. 내 갔다가 열흘후에 배를 보내겠네.》
최원기는 이제 기약이 없는 리별을 하게 될 신혼부부가 다문 며칠이라도 정을 더 나누게 하고싶어 이렇게 결심을 바꾸었다. 이렇게라도 그들을 위해주고싶었던것이다.
《아, 그건 안됩니다. 출국을 열흘 미루려면 다시 수속도 하고 배표도 구해야 되겠는데 이제 떠나겠습니다. 지금이 어느때라고 어정거리고있겠습니까. 한주일 무사태평하게 지낸것만 해도 분수에 넘는걸요.》
《너무 그러지 말게. 마중위가 열흘 휴직을 한다고 하늘이 무너지겠는가. 십년세월을 분주하게 뛰여다니다가 이제 또 기막힌 부부생리별을 하게 될 자네들에게 열흘이 아니라 한해를 고이 호강을 시킨들 누가 나무랄텐가. 이 일은 내 뜻을 따르라구… 그런데 이 사람 마중위, 례영이를 울리지 말고 재미나게 지내라구.》
최원기는 젊은 부부를 위해줄 일이 이것밖에 없는것이 유감스러워 고개를 가로젓다가 그들을 와락 끌어안고 목메여 부르짖었다.
《통일을 해야지. 암 해야 하구말구. 이거 참 세상에 이런 기가 찬 일이 어데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