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박달에도 못 들어갈 자리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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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이 지나 정시명은 례영을 대전에 있는 박영수의 집으로 내려보냈다. 마동열에게 보내는 자금과 출국과 관련한 지시를 주기 위해서였다.
마동열이 오늘저녁에 부산을 떠나면 사건수습은 깨끗이 끝나는셈이였다. 송호정과의 련계는 앞으로 박영수와 직접 선을 이어놓았다.
부산에서는 최원기가 밀선을 준비해놓고 마동열을 기다리고있었다.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점심상을 물리고 잠시 자리에 누워 일간신문들을 보는데 민순임이 소리없이 방문을 열고 머리맡에 와서 앉았다.
《저 한가지 물을게 있는데…》
민순임이 신문에 눈길을 박고있는 남편을 방해하는게 미안쩍어 조심스럽게 말을 떼였다. 아직도 민순임은 둘이 있는 자리에서도 남편을 어려워한다.
정시명이 안해가 그럴 때마다 민망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오히려 자기를 책망해보기도 했지만 민순임의 소심한태는 여전하였다.
《얘기하오.》
정시명은 신문에 여전히 눈길을 주며 대답했다.
《통일이 언제면 될가요?》
그 말에 정시명은 번쩍 고개를 들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뭐요?》
정시명은 왕청같은 안해의 물음에 한순간 떨떨해졌다. 그는 한참이나 안해의 얼굴을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껄껄 웃고말았다.
《남은 알고싶어 물어보는데…》
민순임이 작은 목소리로 핀잔을 주었다.
《그래 당신생각에는 언제될것 같소?》
정시명이 여전히 미소를 담고 물었다.
《글쎄요. 래년이면 될가요?》
《글쎄… 나도 모르겠소. 정말 나도 모르겠소.》
정시명은 민순임의 눈에서 진지한 빛을 보자 정색을 하고 이렇게 대답했다.
정말 자기도 모를 일이다. 언제면 통일이 되려나, 언제면 국토가 다시 합쳐지고 38선의 패말뚝들이 없어지려나.
자기도 모르게 정시명의 입에서는 긴한숨이 나왔다. 가슴이 답답해왔다.
민순임이 남편이 대답을 하지 못하자 한발 가까이 나앉았다.
《례영이 말이예요.》
《례영이가 어쨌다는거요?》
《그 애를 이번에 동열이 그 사람한테 달려보내면 안될가요?》
《그건 왜? 동열이 자리잡은 다음에 보내자구 했는데…》
《그 애가 그때 가서 혼자 갈려고 할가요?》
《그건 무슨 소리요?》
《그 애 성미에 당신 남겨두고 따라 갈것 같지 않아서요. 동열이 떠날 때 그 애가 한 소리가 있어요.》
《어떻게?》
《동열이 그 사람이 기다리겠다구 하니 자긴 통일된다음 가겠다고 합디다.》
《그건 무슨소린가? 통일된 다음이라니. 그게 언제될지 누가 안다구…》
《그러니 내가 물어보는 소리가 그게 아닙니까.》
《음, 그렇구만…》
정시명이 시름겹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이였다.
사실 민순임은 례영의 말을 들은 다음에는 그 말이 명치에 맺혀 도무지 내려가지 않았다. 그래서 하루에도 예닐곱번씩 정시명에게 말을 꺼내고싶었는데 이제까지 모두 돈사건때문에 얼굴이 꺼칠해서 돌아가기에 얘기를 붙여볼 자신이 없어 참아왔었다.
정시명은 안해의 말을 들으니 가슴이 뻐근해왔다. 정말 통일이 되기는 빨리 돼야겠는데 지금 같아서는 대중할수가 없다. 그렇다고 그날까지 례영을 옆에 끼고있는다는것은 말도 안된다.
정시명의 눈앞에 불쑥 수류탄을 안고 창문에서 뛰여내리던 김정필의 불사신같은 모습이 우렷이 떠올랐다.
《내가 애비구실을 제대로 못하고있소.》
정시명은 혼자소리로 마치 딸을 맡기고간 귀중한 전우에게 사죄를 하듯이 침울하게 웅얼거리였다.
《내 생각에는…》
민순임이 용기를 내여 말하다가 말끝을 이내 가무리지 못하는데 정시명이 생각을 내놓으라는듯 고개를 끄덕이였다.
《이제라도 대전에 따라가서 머리를 얹어주고 오면 좋지 않을가요?》
《그리고는 어떻게 한단 말이요?》
《동열에게 달려서 보내지요.》
민순임이 별생각없이 척척 대답하자 정시명은 무릎을 쳤다. 너무도 쉽게 해결되는 문제이다.
동열이와 함께 보내면 그들에게도 미안스럽지 않고 돌아간 그들 부모들앞에서도 죄스럽지 않을것 같다.
《당신이 참 좋은 생각을 했소. 그걸 왜 이제야 퉁겨주오.》
《모두 내남없이 바쁘게 다니니 어디 그런말 꺼내놓겠습디까.》
《차비를 하오. 택시를 불러타고 갔다오우.》
《당신은 가지 않고요?》
《내가?… 그래 내가 가야 할 일이지.》
《내같은게 열스물이 간들 당신 가시는것만큼이야 하겠어요.》
《그건 그래.》
정시명은 이렇게 말하며 또 길게 한숨을 내쉬였다.
《오늘저녁에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되여있소. 당신 하루전에라도 귀띔을 해주었더라면…》
정시명은 락심천만해서 혀를 찼다.
《이렇게 합시다. 당신 영수아버님을 모시고 갔다오오. 무슨 일이 생겨도 그렇고… 영수아버님께 내 부탁하리다. 나를 대신하여 잔도 받고 좋은 말씀도 많이 해주라고…
이거 정말 안되였소. 그러니 난 이젠 례영이를 보지 못하겠구만.》
정시명은 저도모르게 한숨을 길게 내쉬며 갈린 소리로 말했다.
《그 애에게 뭘 기념으로 주었으면 좋겠는데…》
정시명이 책상을 뒤졌으나 알맞춤한것이 눈에 띄지 않았다.
《됐수다.》
민순임이 허둥거리는 남편의 모양을 생각깊은 눈으로 지켜보다가 《당신이 정히 소원이라면 우리 량주의 선물로 이걸 끼워주리다.》하며 왼손을 정시명의 눈앞에 조심스럽게 내민다. 거기에는 정시명이 약혼기념으로 끼워준 반지가 반짝거리고있었다. 벌써 서른해가까이 민순임이 소중히 간직해온 사랑의 소중한 유물이였다.
《여보!》
정시명은 불시에 그가 내민 손을 덥석 움켜잡고 자기의 볼에 비비였다.
사람은 사람다운 구실을 해야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다는것이 정시명이 마음속으로 자주 외우는 삶의 신조이기도 하다.
사람다운 구실이란 여러가지로 풀이되겠지만 남을 위해 좋은 일만 하는것이 으뜸이라 하겠다. 그래서 누구나 생을 마무리할 때 량심에 후회되는 일이 적도록, 자신의 추억도 아름답고 남들의 추억에도 아름답게 간직되도록 그렇게 한생을 살기를 소원하는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생각이 부족한탓으로 가슴에 후회를 남기는 일이 적지 않다.
정시명도 지나간 자국을 돌이켜볼 때면 스스로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에 저리는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한발 옆으로 비켜서거나 한발 앞으로 내밟거나 한발 뒤로 물러났으면 될일들이 용기가 부족했던탓으로, 힘이 모자랐던탓으로, 또 생각이 짧았던탓으로 지울수 없는 아픔이 되여 두고두고 가슴을 에이군 한다.
그는 지금도 례영의 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그를 심양에서 만났던 그날 저녁 조국으로 떠나보내려던 자기의 주장을 그냥 내밀었더라면 그 금쪽같은 인간의 절통한 희생이 없었을것이라고, 그를 죽음에로 몰아간것은 자기의 우유부단이였다고 자신을 힐책한다.
이번에도 민순임이 이렇게 제때에 충고를 해주지 않았더라면 또 하나의 지울수 없는 아픔을 가슴에 새겨둘번 하였다.
정말 통일의 날을 기다리다가 이루어져야 할 그들의 행복이 자취없이 사라진다면 그 얼마나 통탄스러운 운명의 비극이겠는가.
항차 그들은 생명의 은인인 귀중한 동지가 남기고간 일점혈육이고 이날이때까지 자기에게 꿈도 희망도 다 맡기고 자식보다도 유별한 정을 두고 떠나는 귀중한 전우가 아닌가.
정시명은 다시 돌아올수 없는 전우앞에, 아름답게 꽃피고 열매맺어야 할 이 나라 청춘들앞에 자칫하면 죄를 지을번 했다고 생각하며 새삼스러운 눈으로 안해를 바라보았다.
자기가 미치지 못했던 생각의 구석을 메워주고 한생의 후회를 덜수 있게 한 안해가 진정 고맙고 소중하였다.
《여보, 고맙소. 정말 고맙소. 난 당신을 미처 다 알지 못하고있었구려. 정말 고맙소.》
정시명은 애틋한 정과 깊은 신뢰를 담아 나직이 속삭이였다.
하지만 민순임은 자기가 무슨 큰 일을 했기에 남편이 이렇게도 좋아하고 목이 메여하는지 통 리해가 가지 않았다. 요 며칠새 옆에서 구시렁거리며 잠을 못 이루군 하는 례영이를 보면서 이 애가 나처럼 수십년을 청상과부로 살게 되지 않을가 하는 생각에 시달리다가 끝내는 이날에 자기 생각을 비쳐보았을뿐이다.
살아오면서 정시명이 이처럼 자기를 종잡을수 없게 하는적이 부지기수였지만 아무튼 자기 생각을 기꺼이 받아주고 칭찬해주는것이 그저 기쁘고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정시명이 이윽고 안해의 손을 놓아주며 말했다.
《빨리 떠나도록 하오. 늦잡다가는 동열이를 놓칠수 있소.》
그러면서 자기도 박정인을 만나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순임은 박정인과 함께 서둘러 서울을 떠났다.
박정인이 대전에 5시전에 닿아야 한다면서 택시운전사를 연방 몰아댔으나 택시운전사는 이제는 승객들의 그런 성화에는 습관이 된듯 코노래만 흥얼거리며 여전히 무사태평이였다.
그러더니 공교롭게도 대전교외에 들어서면서 승용차가 푸르닥닥거리다가 그만에야 재채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이거 야단이군.》
박정인은 택시가 끝내 서버리고 운전사가 김이 문문 나는 기관실을 헤쳐놓자 마음이 급해져 화를 냈다.
《부산가는 차가 꼭 여섯시에 역전을 떠난다고 했는데…》
《령감님, 너무 념려마시우다.》
《여보게, 념려안하게 되였나. 여섯시차를 놓치면 대사가 망쳐질판이야.》
《그놈의 기차도 고장이 나서 제대로 대전에 오지 못할테니 념려마시래두요.》
《엥히, 배놈 배머리 돌리듯 둘러맞추기는…기차두 고장이 날텐가, 자네 발바리처럼.》
평소에는 성이라곤 모르고 살아오는 박정인이 셈평좋게 퉁퉁하는 운전사의 말에 골이 나서 어성을 높였다.
《두고 보시라요.》
운전사는 여전히 반죽좋게 대답질을 하며 하는 일을 다그친다.
민순임은 차에서 내려 운전사에게 다가가 기관실을 넌지시 보다가 근심스럽게 물었다.
《시간이 오래 걸릴가? 우린 정말 중한 일이 있어 그러네.》하며 손수건을 꺼내 운전사의 땀기 오른 목덜미를 자근자근 눌러주었다.
《오마니, 잠시잠간 좀 휴식하시소.》
차는 대문이 열려있는 박영수의 집에 다섯시가 거의 돼서야 닿았다.
운전사는 역까지 모셔주겠노라 하면서 돌아서지 않고 대문간에서 기다렸다.
《게 있느냐?》
박정인이 급해 맞아 마당에 들어서기 바쁘게 크게 소리를 질렀다.
방문이 빼써 열리더니 만삭이 된 며느리가 토방에 나섰다가 시아버지를 보자 뚱기적거리며 내려와 곱게 절을 올리였다.
그러나 박정인이 며느리인사를 정하게 받아들일 경황이 못되여 《객은 어디에 있느냐?》하고 마동열의 소식부터 물었다.
《역으로 나갔는데요. 서울아가씨랑 같이요.》
《영수도?》
《그인 렬차좌석을 봐주느라고 한발 먼저 나갔는데요.》
《허 이거 랑패로군.》
박정인은 토방에 무너지듯 앉으며 탄식을 하였다. 내려오자바람으로 간단히 상이라도 차려놓고 술잔이라도 받자고 했는데 일이 비뚤어졌다.
박정인이 미처 궁리가 나지 않아 깨끗이 다듬어진 집마당을 두리번거리다가 성큼 자리에서 일어났다.
《얘야, 거 뭐 좀 자동차에 실어라. 잔치상이 되게.》
《예? 잔치상을요?!… 언제 말씀이신가요?》
《이제 당장… 그 사람들의 결혼상을 차려야겠다.》
《어디서 차리시겠습니까?》
《어딘 어디야. 기차칸에서라도 차려야지. 암, 차칸에서… 어서!》
박정인이 급한 생각에 며느리를 앞서 집안으로 들어갔다.
며느리는 시아버지가 무슨 실성한 소리를 하느냐 싶으면서도 박정인의 엄한 눈길에 몰려 여기저기 바쁘게 돌아가며 이것저것 꺼내놓았다. 박정인이 그중에서 술병과 당과류와 과일 몇가지만 챙겨서 보자기에 싸게 하였다. 그리고는 부르렁거리는 자동차에 오르면서 바래주려고 나온 며느리에게 한마디 했다.
《우릴 기다리지 말거라.》
《그럼 어디서 밤을 보내실려구…》
《내 잠자리는 따로 있다. 자, 떠나자구.》
박정인이 콩볶듯 다그어대는 바람에 민순임은 거의 한해만에 만나보는 박영수의 처와 말한마디 건늬여보지 못하고 말았다.
역사에 이르니 여섯시가 지났다. 박정인의 심정을 알고있는 운전사는 역개찰구로 곧바로 차를 몰고가서 서성거리고있는 한 청년에게 물었다.
《부산가는 차가 도착했소?》
《30분 연착이라오. 뭐 지금 렬차라는게 시간을 지켜다닌답디까.》
운전사는 청년이 불평을 늘어지게 하자 《고맙수다.》하고는 보따리를 들고서서 어디부터 가야 할지 망설이고있는 박정인에게로 벙글거리며 다가갔다.
《령감님, 제 말이 맞습지요? 기차가 연착이랍니다. 세상일이 한일자처럼 생겨먹어서야 무슨 사는 멋이 있겠습니까. 저는 갑니다.》
《고맙네.》
박정인이 운전사의 말이 정말 고마워 숨을 후- 내쉬고는 그가 떠나는것을 보고서야 민순임을 돌아보며 처음으로 빙그레 웃었다.
마동열은 례영이, 박영수와 함께 역사의 귀빈대기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있다가 커다란 꾸레미를 하나씩 들고 들어서는 박정인과 민순임을 보자 깜짝 놀라서 마중하였다.
《아이쿠 이젠 됐네. 자네 만나지 못할가봐 꼭 십년은 감수했네구려.》
박정인과 민순임은 젊은이들의 손에 이끌려 긴 걸상에 털썩털썩 주저앉으며 길게 숨을 내쉬였다.
《언제 오시였습니까?》
박영수가 물었다.
《방금 도착하는 길이다. 얘, 얼른 가서 부산가는 차표 석장을 더 구해오너라.》
《석장이나… 그건 어째서요?》
《글쎄 그럴 일이 있다.》
박영수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어머니까지 웬일이세요?》
례영이 살틀하게 민순임의 손을 쥐고 묻는데 민순임이 목이 쉰 소리로 《글쎄 그럴 일이 있다.》하고 말하며 례영의 눈길을 피한다.
인차 역방송이 부산에 가는 렬차가 곧 도착하게 되였으니 손님들은 개찰하라고 알렸다.
박정인일행도 개찰구로 나갔다.
박영수가 차표를 구해가지고 뛰여왔다.
《박형, 이거 정말 미안하오.》
《원 그런 소릴 마오. 자, 어서 차에 올라 자리를 잡읍시다.》
기차에 올라 마동열의 자리를 찾아 우선 들고온 보따리부터 내려놓은 박정인은 박영수를 보며 《우린 이 사람을 부산까지 바래주고 와야겠으니 혼자 들어가봐라. 그런데 모두 함께 있도록 해주렴.》하고 말했다.
《예.》
박영수가 또 려객전무를 만나느라고 바깥에 나갔다.
그가 자리를 뜨자 마동열이 아직까지도 무슨 영문인지 몰라 《선생님, 어찌 되신 일입니까?》하고 궁금해하였다.
《차차 알게 되네.》
박정인이 이렇게 대답하고는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인차 박영수가 되돌아왔다.
《아버님말씀대로 하였습니다. 이 칸에는 다른 손님을 절대로 들여놓지 말아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음, 됐다. 자, 어서 내려가거라. 그리고 네 처가 몸 풀 때가 돼오는것 같은데 잘 돌봐주어라.》
《예, 예.》박영수는 마동열과 례영의 앞에서 그런 소리를 듣는게 게면쩍은듯 이렇게 건성 대답하고는 바삐 침대칸에서 나갔다.
례영이가 상긋이 웃으며 부산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들리겠다며 손을 저었다.
마동열이 작별하려고 그를 따라 기차에서 내렸다.
《박형, 이렇게 홀로 떠나자니 발길이 쉬이 떨어지지 않는구려.》
《마형, 여기 일은 너무 걱정 마오. 나도 맡은 일을 잘 해내겠소.》
그들은 작별의 서러운 정을 금치 못해 손을 굳게 잡았다. 어제 마동열은 박영수와 송호정과 직접 련계를 가지도록 그들의 상면을 조직하였다. 마동열은 조직앞에서 박영수를 엄숙하게 보증하고 이 임무를 맡겼던것이다.
《박형, 내 떠나기 전에 용서를 빌게 하나 있소.》
《원, 용서라니. 무슨 당치 않은 소리요.》
박영수가 허여멀끔한 얼굴에 어울리는 크고 순하게 생긴 두눈을 껌뻑이며 나무랐다.
《아니요. 내 사실은 일전에 정선생님께 박형이 미덥지 않아 말씀드린 일이 있었다오. 사실은 박형의 이 만만한 손이 탐탁치 않았단 말이요.》
《됐소, 됐어.》
박영수는 그 선량한 마음으로 마동열의 가식없는 진정을 너그럽게 받아주며 손을 저었다.
《참, 사람이 사람을 믿는다는게 말처럼 쉬운게 아니거든. 우리의 싸움이야 생사가 눈섭끝에 매달린 어려운 일이 아닌가. 난 그날 정선생님앞에서 심심하게 반성하였소. 그래서 우린 이렇게 동지가 되였지. 아, 사람이 사람을 믿는다는건 행복이요. 날 용서하오.》
마동열이 천성 그대로 솔직히 털어놓는데 박영수는 어쩐지 목구멍이 더워오고 눈부리가 화끈해왔다.
정말 이렇게 성실하고 뜻이 높은 인간들과 동지로, 벗으로 사귀게 된것은 얼마나 큰 행복이고 자랑인가. 자신의 운명을 선뜻 맡아주고 빛내도록 믿음을 준 동지들과 조직에 대한 고마움이 새삼스럽게 갈마들어 박영수는 잠시후에야 다소 갈린 어조로 말했다.
《아, 그런 일도 있었구만. 여하튼 고맙소. 나를 믿어준 조직과 마형의 정을 내 잊지 않으리다. 마형, 날 끝까지 믿어주오.》
박영수가 틀어쥔 주먹을 자기의 왼손바닥으로 감싸잡고 힘껏 흔들었다.
때마침 출발을 알리는 렬차의 기적소리가 역구내를 경쾌하게 흔들었다.
《자, 어서 오르시오.》
《박형!》
《마형!》
둘은 얼싸 안았다. 그들은 툭-툭 세차게 뛰는 서로의 심장의 울림을 의식하며 한덩어리로 굳어졌다.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박영수가 그를 떠밀어서야 마동열은 포옹에서 풀려나와 렬차의 승강대에 뛰여올랐다.
마동열은 주먹을 머리우에 불끈 쳐들었다.
《박형, 잘 있소. 다시 만납시다.》
《마형, 기다리겠소. 통일되는 날 서울에서…》
《아니 평양에서…》
《좋소, 평양에서!》
기차가 멀어져갔다. 박영수는 손을 들었다. 마동열이도 박영수가 작은 점으로 사라질 때까지 손을 높이 들어 흔들었다.
이것은 마동열이 새겨둔 박영수의 마지막모습이였다. 이 리별이 영원한 리별이 되리라고는 지금 그들은 상상도 하지 못하고있었다. 그들은 통일의 그날을 믿었고 상봉의 그날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마동열이 침대칸에 돌아오니 어느새 차칸에는 푸짐한 식탁이 차려있었다.
민순임이 꿍져가지고 온 음식과 방금 박영수의 안해가 마련해준 술과 과일 등속을 펴놓으니 침대받침널을 가로 질러놓고 차린 탁이 꽉 차서 제법 잔치상이 되였다.
《이보게, 자네 저쪽에 가앉게.》
박정인은 방금 들어선 마동열이 자기곁에 와서 앉으려고 하자 례영이쪽으로 밀어보냈다.
민순임이 얼른 일어나 박정인의 곁에 오고 마동열이 다소 열적은 빛으로 례영이와 나란히 앉았다. 례영이 괜스레 얼굴이 활딱 붉어져서 마동열의 옆에서 냉큼 비켜앉는다.
먹물로 꾹 찍은듯 시커먼 왕붓눈섭아래 코가 주먹같고 눈망울이 어글어글하고 기골이 장대한 마동열의 옆에 눈이며 코며 입이며 오밀조밀하게 박혀있는 례영이 수집게 앉아있는것을 보니 박정인은 절로 흐뭇해지고 대견스러웠다. 신랑신부가 대조가 뚜렷하면서도 어울리는 한쌍이다. 정시명이 헌걸차게 키워놓은 대장부에게 금지옥엽으로 키워낸 전우의 혈붙이를 맡기는 그 심정이 헤아려져 새삼스러이 가슴이 뭉클해졌다.
마동열과 례영은 기차칸에서는 분수에 넘게 요란스러운 상이 차려지고 때없이 싱글벙글거리는 박정인이며 노상 흐뭇한 마음속을 감추지 못하고 웃고있는 민순임의 거동을 보고 괴이쩍기도 하고 불안스럽기도 해서 서로 어색하게 눈길을 주고받으며 얼굴을 붉혔다.
《아- 내가 을미년에 홍범도의 포수대에 발을 들여놓은이래 천으로만으로 경난을 겪으며 세상의 희노애락 다 보아왔네만 이런 희한한 일을 당해볼줄이야. 허허…
자, 동열이 이 사람, 뭘 그렇게 관청에 온 수닭처럼 멀똥멀똥해 있나. 어서 술을 치게.》
박정인의 호걸스러운 분부에 마동열은 아직도 까닭을 모르고 엉거주춤 일어나 술을 부으려고 하였다. 민순임이 얼른 술잔을 례영에게 내밀며 《이렇게 하라구.》하고 례영이더러 잔을 들고 마동열이 부어주는 술을 받으라는 시늉을 했다.
례영은 박정인이 정중하게 말문을 떼는품이라든지 민순임의 일깨움이 의심스러웠으나 그런대로 소붓이 일어나 잔을 받쳐들었다.
《자네들의 어머님께 먼저 올리라구.》
박정인이 례영이 내미는 잔을 마다하고 민순임에게로 돌리였다.
《어이쿠, 선생님. 어서 받으세요.》
《그럴가?… 그래 정선생님이 나더러 대신해달라고 분부했으니 내가 먼저 받는게 법도대로겠구만. 고맙네.》
박정인이 잔을 받아들고 사뭇 감개가 서려 두 젊은이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번갈아보다가 정중하게 말을 이었다.
《어쩌겠나. 상은 초라하고 하객도 바이 없지만 자네들이 결혼상을 받는다고 생각해주면 고맙겠네.》
박정인이 목구멍이 뜨끈뜨끈해와서 가까스로 이 말을 번졌다.
《예?!…》
신랑신부가 동시에 고개를 번쩍들며 아연실색해서 외마디 탄성을 내질렀다.
너무도 뜻밖이였던것이였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는가? 두 젊은이는 꿈도 꾸지 못했던 일에 부닥치자 어떻게 처신할지 몰라 그저 망연해진 눈으로 서로 쳐다볼뿐이였다.
박정인이 잔을 쭉 비우고나서 례영에게 내밀었다.
《너의 어머님에게도 올려라.》
드디여 마동열이 부르짖듯이 물었다.
《선생님! 사모님!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어머니!》
례영이가 가슴속의 격정을 더는 참을길 없어 민순임의 품에 와락 안기는데 마동열의 철색볼로 열탕같이 덥고 진한 눈물이 소나기처럼 흘러내리고있었다. 키가 6척이요, 몸통이 장독같은 사내가 어깨를 떨며 눈물을 쭈룩쭈룩 짜내는양을 차마 볼수 없어 박정인이 슬며시 옆으로 돌아서서는 자기도 연신 눈굽을 찍어냈다.
《례영아!》
민순임이 가슴을 파고드는 례영이를 끌어안고 볼을 맞비비였다.
《내 우리 집 나그네와 약속했다. 통일이 되는 날에 우리 평산집에 가서 정말 큰상을 차려주겠다. 정말이다. 원, 일생대사를 이렇게 치르다니.…》
《어머니! 어머니! 그런게 아니예요. 그런게 아니래두.…》
례영이 눈물을 삼키며 곱씹었다.
《동열이, 이 사람. 너무 섭섭히 생각 말게. 이건 자네 장인되는 분이 서른해전에 내 손에 끼워준걸세. 우리 량주성의로 받아 색시손에 끼워주라구.》
민순임이 손가락에서 금가락지를 뽑아내여 마동열에게 주었으나 마동열은 얼이 나간 사람처럼 박정인을 우두커니 쳐다보기만 하였다.
《어서 그렇게 하라구.》
박정인이 여전히 목이 메여 쉰 목소리로 중얼거리였다. 마동열이 주먹코를 벌름거리다가 민순임이 내미는 가락지를 받아들었다. 례영의 손가락에 가락지를 끼워주는데 둘의 손목이 그냥 후들후들 떨리기만 하고 그우에 눈물만 락수처럼 자꾸 떨어져 가락지가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 …
기차는 새벽무렵에 부산역에 닿았다.
민순임이 이 길로 자기들은 돌아서겠으니 이제부터 례영은 마동열과 함께 다니라고 일렀다.
이 역시 례영에게는 청천벽력이였다. 요새에 와서 마동열을 그려볼 때면 통일이 되는 그날까지는 정시명의 슬하를 절대로 떠나지 않으리라 눈물속에 굳은 강심을 다져오던 그였다.
마동열이 차표를 떼려고 자리를 뜨자 례영은 야무지게 도리질을 하였다. 자기는 통일을 기다리겠다는것이다. 민순임이 그 기약없는 날을 어떻게 기다리는가고 타일렀으나 어머닌 아버님을 30년 기다리지 않았느냐고 그냥 고집을 부렸다. 박정인까지 나서서 이건 정선생님의 엄명이라고 되게 눌러놓았다.
그들은 역전공원에 나가서 작별의 애모쁜 시간을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속에 보내다가 서울행렬차가 역구내에 들어서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동열과 례영이 마지막으로 하직인사를 고하려고 공원의 마른 잔디우에 엎드려 조선절을 드리였다.
그런데 마동열이 일어서다 말고 《어머니!》하고 목메여 부르며 그 커다란 몸을 휘우뚱거렸다. 마동열이 태여나서 처음으로 불러보는 그립고그립던 부름이였다.
《제가 글쎄 이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선생님을 사지판에 남겨두고 저만 살겠다고 홀로 도망을 치다니… 장군님께서 이걸 아시면 저를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어머니! 어머니! 부디 선생님을 잘 모셔주십시오.》
《동열이, 이 사람아!》
민순임이 목이 잠겨 더 말을 잇지 못하고는 마동열을 와락 끌어안고 그의 실팍한 허리를 자꾸만 엇쓸었다.
민순임이도 례영이도 박정인도 모두가 흐르는 눈물을 걷잡지 못한채 작별을 하였다.
서울에서는 불길한 소식이 그들을 기다리고있었다.
사건은 련이어 일어났다. 림인준이 아침녘에 화페운반에 리용하였던 다이야를 처리하기 위하여 구두수리방에서 어물거리다가 경찰에게 단속되였다.
다이야는 통제품으로서 민간에서 매매하는것은 금지하고있었다. 림인준을 현장에서 심문한 경찰은 당장 법정에 내세울듯이 으르릉거리며 어데서 구했느냐고 따지였다.
그런데 림인준이 너무도 예상밖에 경찰들과 부닥치고보니 그만 겁에 질려있다가 얼결에 서울 통인동에 있는 어느 부자집에서 받았다고 실토하였다. 부자집이라는 말에 경찰들은 성수가 났다. 잘만 하면 공돈을 갉아먹을수 있다는 타산이 섰던것이다. 경찰놈들은 그를 앞세우고 박정인의 집으로 달려들었다.
대문이 여느때없이 거칠게 열리는 소리가 나자 길봉례가 얼른 비상사고를 알리는 종소리를 냈다. 지휘부가 박정인의 집에 자리를 잡은 후 처음으로 울린 비상종소리였다.
정시명과 집안사람들은 일시에 긴장되였다. 대문간에서 떠드는 고함소리가 안방까지 들렸다.
림인준이 경찰들의 강박에 떠밀려 대문까지 오기는 하였으나 막상 정시명이 거처하는 집마당에 경찰을 달고 들어서게 되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엄중한 규률위반이라는것을 깨달은것이였다.
그래서 대문가에서 멈짓멈짓거리면서 이 집이 비슷한것 같기도 하고 아닌것 같기도 하다면서 큰소리로 떠들었다. 이렇게 밖에서 소란을 피우는 사이이면 집안사람들이 사태를 알아차리고 비상대책을 세울것이라고 타산한것이다.
이때 정시명은 길철과 마주앉아 마동열이 넘기고간 서류들을 정리하면서 사업토의를 하고있었다.
그들은 재빨리 서류를 걷어모아 벽장속에 밀어넣고 그우에 이불과 모포를 옮겨놓았다. 그리고 길철은 뒤울타리담벽에 박정인이 뚫어놓은 비상통로로 빠져나갔다.
정시명이 담배를 피워물고 신문을 들여다보며 바깥동정에 귀를 기울이는데 경찰들이 들이닥쳤다.
경찰들은 방에 들어서자 다짜고짜 정시명에게 달려들어 다이야가 어디서 났는가고 따지기 시작하였다.
《다이야라니?… 건 무슨 소리요?》
경찰들이 어떻게 되여 림인준을 끌고왔는지 영문을 모르고있던 정시명은 정황판단이 서지 않아 이런 정도로 대척하는수밖에 없었다.
더욱 의혹이 짙어진 경찰들은 집안을 뒤지기 시작하였다.
림인준은 얼굴이 흙빛이 되였다. 순간의 불찰로 정시명을 경찰들앞에 세우게 된것이다. 서류가 발각되는 경우에는 매우 엄중한 사태가 벌어질수 있었다.
림인준은 지휘부사업에 깊이 개입되지는 않았지만 자기 형 림인석을 통하여 정시명이 조직의 책임자이며 매우 중요한 임무를 수행한다는것은 알고있었다.
그래서 림인준은 여차하면 세놈의 경찰을 까눕힐 심산으로 주먹을 불끈 틀어쥐고 주변에 있는 장작개비에 눈독을 들이고있었다. 그런데 경찰 한놈이 벽장문고리를 잡을 때였다.
박정인의 안해 주씨가 비단치마저고리를 흔들며 야단스럽게 문을 활짝 열어제끼고 들어섰다. 길봉례가 재빨리 그에게도 사태가 위급해진다고 알려주었던것이다.
《아니, 이건 도대체 어디서 해먹던 버릇들이야? 당신네는 서울장안 박씨집을 어떻게 알고 이 행패질이야! 어서 나가지 못할가!》
허리통이 한아름이 되는 녀인이 손세를 써가며 새된 소리로 꾸짖는 기상은 대번에 경찰들의 어기를 꺾어놓았다.
그 마음씨 착하던 부인한테서 어데서 그렇게 비린 악청이 쏟아져나오는지 신기한 일이였다.
《그래 무슨 일이 생겼으면 주인량반님께 아뢰고 그다음 문책을 하던지 뒤간 뒤짐을 하든지 할법이지 어디서 배운 막돼먹은 버릇을 함부로 해댄단 말이야! 어서 말들이나 해봐요. 갑자기 벙어리들 됐나?》
세도 있는 부자집 안주인의 사나운 지청구에 경찰들은 한동안 어안이 벙벙해서 자기들끼리 눈길만 마주치며 어쩔바를 몰라 했다.
한놈이 헛기침을 연신 해가며 그에게 사건전말을 설명해주었다.
그러자 주씨는 림인준에게로 돌아서서 한바탕 욕설을 퍼부었다.
《이 쓸개빠진 녀석, 다이야는 우리 주인령감께서 사가지고는 왜 우리 오라버님께 행패질을 시키느냐. 어쩐지 아까 흥정을 부칠 때에도 모자라는 놈으로 보았더니 정말 바보로구나. 쭈이 화이티 쟈취!(고약한 놈)》
주씨는 진짜로 성이 독같이 나서 중국말까지 섞어 욕을 하다가 림인준에게 달려들어 따귀를 한대 철썩 부치였다.
경찰들은 주씨가 행악을 부리는것을 보다가 저들끼리 중얼거리였다.
《되놈(중국사람)의 집이구만, 제기랄.》
《저놈의 자식 정말 민충이군.》
속이 한줌만 해졌던 림인준이 이때라고 얼른 볼을 싸쥐고 머저리흉내를 내였다.
《정말 마님을 보니 사람을 헛갈린것 같은뎁쇼…》
《그럼 다이야는 어데서 났습니까?》
뱁새눈을 한 경찰이 모를 일이라는듯 머리를 갸웃거리다가 물었다.
《그런걸 치마 두른 내인이 어떻게 알겠나? 그럼 모두 우리 집에 들어가 주인 오기나 기다리라구. 우리 오라버님은 심양에서 갓 나오시여 아무것도 모른다네.》
주씨가 꾀 바르게 내놓은 장단에 가락을 맞추자니 정시명이도 시골얼뜨기령감구실을 하는수밖에 없었다.
《허허, 난 좀 모를 일이다. 매부님더러 나 좀 다이야를 달라고 하였더니 그게 벌써 장사군에게 가있었군. 구두수리하는 애녀석들한테 넘겨주면 로자라도 보태쓸텐데. 쯧쯧…》
그들이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림인준은 슬그머니 달아나버렸다.
《다이야가 어데서 났는지 정말 모르십니까?》
뱁새눈이 다시 오금을 박아 물었다.
《그까짓 다이야 몇짝 있었다면 무슨 대수요. 그걸 기어이 알아야겠소?》
나라법을 알탁없는 부자집마누라에게 퉁만 맞고 더 따져볼 여지가 없게 된 경찰들은 눈이 떼꾼해서 어이없어 서로 마주 보다가 결국 주씨가 벌금값이라며 내미는 청주 한사발씩 얻어마시고 달아나버렸다.
그놈들이 비칠거리며 대문밖을 나서자 주씨는 정시명에게 《어이구, 선생님, 용서해주세요.》하며 새빨개진 얼굴을 두손으로 싸쥐고 몸둘바를 몰라 하였다.
《영수어머님, 정말 용합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영수어머님이 아니였더라면 큰일 날번 했습니다. 정말 장하십니다.》
정시명은 고마운 생각도 컸지만 희한하기 그지없어 진심으로 이 슬기롭고 담이 큰 녀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박정인과 민순임이 대문에 들어선것이 이때였다. 박정인에게서 결혼상을 차려준 이야기를 들은 정시명이 방금 벌어졌던 일을 이야기하자 주씨는 얼른 주인앞에서 몸을 피해 안방으로 달아났다.
박정인이 민순임과 한바탕 폭소를 터뜨리고 나서 웃음을 거두고 진중하게 말했다.
《하, 일은 손끝에서 시작되고 큰 불도 불꽃 한점에서 시작된다더니…》
정시명은 박정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였다.
련이어 일어난 사건들은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조직의 활동에서 제기되는 사소한 부주의나 우발적인 사고가 결국은 조직의 안전을 크게 흔들어놓은것이 아닌가.
박정인의 말이 옳다. 높이 쌓인 제방도 개미구멍으로부터 시작되여 허물어진다고 일개 조직원의 부주의나 무규률적행동이 방대하게 일떠선 조직을 일거에 허물어버릴수 있다.
이번 사건들을 거슬러오르면 박정인이 개성 만월동 출장소책임자에게 뭉치돈을 떼준것부터 잘못되였고 지휘부의 거처지에 통제물품을 끌어들인것이 잘못되였다.
정시명은 조직의 확대에만 골몰하면서 아직 투쟁의 세례를 받지 못하고 지하활동경험이 없는 성원들을 교양하고 단련시키는 문제에 주의를 덜 돌려온 자신에 대하여 심각히 뉘우치였다. 림인준이 지하조직원으로서의 비밀관념이 바로 서있었더라면 얼마든지 무난히 넘길수 있는 단서에 기가 질려 지휘부의 거처지에까지 적들을 달고오는것 같은 위험천만한짓을 하지 않았을것이다.
그리고 림인준과 같은 일개 성원이 지휘부의 거처를 알고있는것도 규률이 없는 표현이였다.
정시명이 찾은 교훈은 이것만이 아니였다.
이 사건들은 놈들의 수사진도 졸지 않고있다는것을 똑똑히 보여주었다.
미국놈들은 이 시기 남조선에서 경찰력량을 급속히 팽창시켜 중앙으로부터 면에 이르는 정연한 감시, 폭압체계를 세워놓았다.
얼마전에 하지는 미군정청안에 정식으로 정보국까지 내오고 그 국장으로 정보담당고문이던 노불을 앉혀놓았는데 이 기관은 전적으로 남조선의 대내정보수집을 담당하고있었다.
하지가 노불을 자기의 주변에서 군정청의 정보국장자리로 밀어낸것은 두가지 원인이였다.
첫째로는 노불이 미중앙정보국계통의 인물이라는데로부터 마땅한 인사조치였다. 그러나 여기에는 노불의 위치를 자기의 측근보좌관의 위치로부터 상하부관계가 뚜렷하고 업무가 상대적으로 분주스러운 자리에 얽어매놓으려는 엉큼한 속계산이 깔려있었다. 하지는 평생 군무에 몸을 담아보지 못한 직업적인 탐정인 노불이 자기의 사업에 대하여 지나친 관심을 표시하는것을 미중앙정보국의 일종의 감시라고 의심하여왔던것이다.
둘째 원인은 구펠로와 다름없이 노불도 리승만의 비호자로 지나치게 나서고있는 사정이였다.
하지는 노불이 수하에 들어오기전에 그들의 관계를 알고있었다.
그들의 정치적유착의 뿌리는 조선에 건너온 미국장로교 선교사인 노불의 아버지 월리암 노불이 서울배재학교의 학생 리승만과 처음으로 만난 1890년대에 시작되였다고 들어왔다.
월리암 노불은 영어문자를 배워준것으로부터 리승만에게 미국을 안내해준 첫 미국인상전이였다.
그의 아들인 해놀드 노불은 1903년에 평양에서 태여나 거기서 소학교를 마쳤다. 노불은 그후 본국에 돌아가 캘리포니아대학에서 동양력사를 공부하고 리화녀자전문 교수를 하다가 2차세계대전시기 정보장교로 활약하였다.
뒤날에 노불은 자기의 회상록에 이렇게 썼다.
《나는 리승만내외와 오래동안 좋을 때나 궂을 때나 가까이 지내왔다. 리승만은 야심있는 정치가들속에서 벌어지고있는 권력장악의 암투를 잘 알고있지 못한것 같았다.
나는 경계해야 할 특정인물의 이름을 들춰가며 리승만에게 설명을 했고 그도 그런자들을 끌어내는것이 유익하다는것에 동의했다.》
하지는 구펠로에 못지 않은 리승만의 오랜 지기를 자기의 고문으로 파견한 마샬의 처사에 격분했으나 별도리가 없었다.
노불은 구펠로보다 고압적인 자세는 없었으나 짜증이 나도록 장황한 설명으로 리승만을 이 나라의 첫째가는 미국의 벗으로 개올리군 하였다. 그러나 리승만에 대한 역성은 하지를 언제나 불쾌하게 하였다.
이러한 원인으로 하지는 노불을 옮겨놓았지만 오히려 정보국장자리는 조직화된 체계와 방대한 인력을 가지고 노불의 영향권을 확대하게 된다는것을 미처 예견하지 못하였다.
노불은 새 자리에 들어앉자마자 산발적으로 활동하던 여러 폭력기구들과 반탐기구들에 대한 통제권을 장악하기 시작하였다.
노불은 남조선에서 미국의 리권을 크게 위협하고있는 좌익세력에 대한 감시망을 재정비하고 그 고삐를 단단히 거머쥐였다.
노불은 특히 남조선경찰력을 강화할수 있도록 이 부문에 대한 예산을 곱으로 늘이게 하고 경찰의 절대적인 력량을 반미적이며 통일지향적인 정당, 단체인물들에게로 집중시켜나갔다.
정시명은 한시바삐 엄호망을 적들의 심장부에 강력히 꾸려놓아야 하겠다는것을 절감하였다.
정시명은 박정인으로부터 부산에 갔다온 전말을 듣고난 후에도 이러한 생각에 묻혀있었다.
그는 지휘부모임을 열고 이 문제를 토의하기로 하고 남도에 나가 있는 김명호와 연선지역에 가있는 길철이까지 호출하도록 하였다.
새벽무렵, 명월미장원에서 전화가 왔다.
민순임이 받았다. 김명호의 처가 민순임의 목소리를 확인하자 주인과 바꾸겠다고 하더니 이어 김명호가 부산 김씨라고 하면서 사장 령감을 바꾸어달라고 하였다.
《미장원 주인올시다. 아, 사장님이시군요. 다 무고합디다.》
김명호는 이미 약속된 은어로 전화하고있었다. 정시명은 며칠전에 부산에 있는 최원기로부터 김명호가 부산에서 일을 마치고 전라도로 갔다는 전화보고를 받았다. 그런데 벌써 서울에 나타나 새벽바람으로 전화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에, 이번 출장길이 시원치 못했수다. 기차간에서 난데없는 고양이가 나타나서…》
《그래 다친데는 없소?》
《다친데는 없수다. 가지고오던 령수증은 그만 담배종이로 써버렸수다. 여기에도 고양이들이 있는것 같수다.》
《흠… 김씨가 고양이바람에 정신이 들락날락했군. 오늘은 집에서 좀 안정하시오. 래일 만납시다.》
다음날 김명호가 흥국상회에 나타나 광주에서 올라오다가 겪은 봉변을 이야기하였다.
…김명호는 남도에 있는 자기 관하의 조직들을 지도하고 서울행 렬차에 올랐다.
렬차가 대전에 이를 때까지는 다른 징후가 없었다.
그런데 렬차가 대전역을 떠날 때였다.
방금 차에 오른듯한 젊은 녀석이 전라도말씨로 《손님, 좀 죄입시당께.》하면서 엉뎅이부터 들이대였다. 김명호는 자리를 조여주고 녀석이 무례하다는 불쾌한 생각에 고개를 돌렸다. 어쩐지 낯이 익었다. 그의 뇌리에는 불길한 예감이 피뜩 스쳐갔다. 어데서 보아둔 얼굴일가?… 어수룩해보이면서도 날카롭게 번뜩이는 눈길…
그렇지! 김명호는 몇시간전에 광주역 매표구에서 자기옆에 붙어서서 표를 사던 사나이가 떠올랐다.
그러니 광주에서 오른 놈이구나. 김명호는 등받이에 허리를 붙이고 눈을 감았다. 어쩐지 심상치 않았다. 무엇때문에 이놈이 오늘 내옆에 두번이나 나타났는가.
김명호는 문득 기발한 생각이 떠올라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자기 옆자리에서 머리우에 모자를 가리우고 졸음을 청하는 시늉을 하고있던 사나이도 뒤따라 일어났다.
《젊은이는 어데서 올랐소?》
김명호는 돌발적으로 물었다.
《대전에서 올랐는께요. 와 그러시노?》
《아, 이거 야단이군. 대전역에서 여라문살되는 소녀애 보질 못했소? 데리고가야 하는건데…》
김명호는 이놈이 사복형사라는것을 알아차렸다. 광주에서 어물거리던 놈이 무엇때문에 대전에서 올랐다고 거짓말을 하겠는가. 분명 미행자라는것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하려는것이다. 김명호는 보따리를 놓아둔채 승강대로 나왔다. 저놈은 분명 서울까지 나를 무사히 데리고 가려고 할것이다. 그런데 란간에서 담배를 빨고있던 한 녀석이 자기를 찬찬히 지켜보다가 시선이 마주치자 얼른 창밖으로 돌린다.
광주에서부터 자기를 계획적으로 추적하고있는것 같았다. 놈들을 꼬리에 달고 서울까지 갈수는 없었다.
김명호는 도로 자리에 와서 날이 저물기를 기다리며 다시 눈을 감았다.
도대체 내가 이놈들에게 감시 당하게 된 리유가 무엇일가?
김명호는 이번의 출장길을 돌이켜보았다.
경상북도 대구에서 시작되여 제주도경찰청 부청장을 만나려 바다를 건너갔다오고 진해에 가서 박룡문대령을 만났다. 부산에 와서 최원기를 만나고 포경회사 사장도 만났다. 그리고 다시 전라도 광주에까지 갔다.… 아무리 올리 훑고 내리 훑고 해야 놈들에게 꼬리밟힐 일은 없는것 같다.
무엇때문일가?… 혹 서울에서부터 따라온 놈들이 아닐가? 그렇다면 더욱 야단이다. 이번 출장길에서 지도한 조직들이 다 이놈들의 감시권에 포착되였을것이 아닌가.
아니 그럴수가 없다. 우선 말씨가 전라도말씨다.
김명호는 이놈들이 어디 소속인지 알아봐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며 도로 자리에 돌아와 도시락을 꺼냈다.
《여보, 식사 안할라오? 광주 명일관의 특산이요.》
조직성원인 명일관주인이 정성스레 싸준 도중식사를 꺼내며 말을 걸었다.
《나도 가지고 왔당께요.》
그놈도 도시락을 꺼냈다.
《명일관의 김밥이요. 이것 좀 맛 보시우.》
명일관의 명물은 김밥이다. 다른데서는 흔히 계란찜에 잘게 썬 고기를 두고 김밥을 말지만 광주 명일관의 김밥은 유별나게도 닦은 밤을 가루내여 넣어서 독특한 맛이 풍기게 한다.
이것은 명일관의 주인이 몇번이나 들려주던 자랑거리였다. 김명호가 저가락으로 김밥을 집어 내밀자 그놈도 자기 도시락을 보여주며 사양하였다.
《아, 아니… 내것도 명일관의 김밥이랑께요. 우린 서울출장갈 땐 명일관에 부탁하지유.》
그놈은 저도모르게 광주소속을 토설해 버리였다.
그제야 김명호는 자기가 광주경찰서의 미행을 당하고있다는것과 그놈들의 미행근거를 짐작하게 되였다.
8. 15직후 광주일대에서 벌어진 활동자료에 자신의 이름이 두드러져있으니 광주경찰서가 항시적으로 자기를 노리고있으리라는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였다. 그놈들이 광주에서 체포하지 않고 미행하고있는것은 분명히 자기의 활동무대를 찾아내려는 의도 같다.
김명호는 놈들의 미행을 따돌리기 위하여 자리가 비좁아 숨이 차다고 하면서 이리저리 차칸을 돌아다니다가 맨 뒤칸에 자리를 잡았다. 이번에는 아까 승강대에서 보았던 놈이 눈에 다시 띄였다. 놈들의 미행에서 벗어나자면 기차에서 탈출하는수밖에 없었다.
김명호는 기차가 차령고개에 잡아들자 담배를 붙여물고 승강대로 나왔다.
몸에 간수해왔던 서류는 위생실에 들어가 내용을 머리에 새겨넣고는 불살라버렸다. 고개에 올라서자 기차는 점점 가쁜 숨을 내쉬며 힘들게 달렸다.
기회를 노리던 김명호는 문을 벌컥 열었다. 그 순간 세괃진 손탁이 우악스럽게 목덜미를 덮쳤다.
《손님, 왜 이러노. 그건 황천길이라는께요.》
돌아보니 어느결에 나타났는지 아까 옆에 앉아있던 놈이 느물거리며 비꼬는 어조로 뇌까리였다.
《이걸 놓지 못해?》
《당신을 놓치면 안된다는께. 우린 목이 뎅강… 아시겠수?》
놈은 로골적으로 본색을 드러내며 옆구리를 툭툭 쳤다. 거기에 무기까지 있다는 수작이였다.
김명호는 어처구니 없다는듯 허허 웃다가 담배를 다시 꺼냈다.
《문은 열란 말이요. 머리가 뗑해서…》
김명호가 이렇게 한발 늦추어 주었다가 그놈이 문고리를 잡는 순간 재빨리 그놈을 와락 끌어안고 기차에서 뛰여내렸다.
김명호는 매사에 침착하고 유연하면서도 일단 결심을 하고 몸을 날리면 무섭게 기운을 내고 날파람 있게 상대방을 제낄줄 아는 사람이였다. 순간적으로 방심하였던 형사놈은 기차에서 떨어지자 그대로 뻐드러지고말았다.
김명호는 다시 광주행렬차를 타고 대전까지 갔다가 다음날 유유히 돌아왔다.…
정시명은 김명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앞으로는 그를 전라도쪽으로 보내지 말며 서울에서도 비합법적으로 움직이도록 해야 되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피동적인 수습책이다.
문제는 모든 전우들이 자기들이 사실상 원쑤의 감시속에 있다는것을 순간도 잊지 말게 하는것이다. 지하혁명가들에게 있어서 순간의 실수나 방심은 패배와 죽음과 잇닿아 있다. 언제나 원쑤가 뒤따르고있다는것을 잊지 말아야 하며 필요한 때에는 김명호처럼 림기응변하여 지혜를 내고 담력있게 돌진하여 위험을 제때에 제거해야 한다.
보다 중요한것은 매사에 적의 눈초리를 느낄줄 아는 예민한 감각과 투철한 예지이다. 아직은 지하사업의 문어귀에 서있는 우리의 순결무구한 동지들이 이 상식이면서도 높은 지력을 요구하는 지하투쟁의 생리에 대하여 옳게 리해하고있을가.
정시명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였다. 그는 김명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편으로는 엄호사업을 속한 시일내에 해야 하겠다는 결심을 더욱 굳게하였다. 만약 광주일대의 적사찰기관들에 믿음직한 성원들이 들어가있었다면 김명호가 당한 봉변도 사전에 막아낼수 있었을것이 아닌가.…
남산의 로송나무밑에서 지휘부모임이 열렸다.
화페운반사업이 심각하게 총화되였다.
정시명은 자기 비판부터 허심하고 진지하게 하였다.
《이번 사업에서는 빈구석이 많았고 지하사업규률이 준수되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은 제가 사업수행에 앞서 연구를 심화시키지 못하고있을수 있는 정황들을 미리 타산하여 그에 맞게 지도를 옳게 하지 못한데 원인이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지하활동규범을 명심하고 각성만 높였다면 이번에 련이어 벌어진 사건들은 애초에 생겨나지부터 않았을것입니다.》
정시명이 이렇게 자기를 심심히 뉘우치자 모두가 번갈아 일어나서 자기 사업을 비판적인 시각에서 심각하게 검토하였다.
정시명은 모임참가자들이 자기 비판으로 그치지 말고 이번 사업에서 발휘된 모범을 찾아내고 경험과 교훈을 배우도록 하는데 주의를 돌렸다.
이번 사업에서는 동지들을 적의 마수에서 구출해내는 방법을 배우게 되였고 반동들을 제마음대로 후려낼수 있는 첫 경험도 쌓았다. 누가 주씨부인이 그렇게도 담대하고 지혜롭게 행동할수 있으리라고 생각이나 했겠는가. 누가 백형복이나 검사같은 로회한 살인귀들을 마음대로 쥐고 흔들 엄두를 내보았겠는가. 김명호도 그렇다.
정시명은 이렇게 렬거하면서 높이 평가해주었다.
교훈은 모두를 각성시켰고 경험은 조직을 일층 다져준듯 싶다.
정시명은 전우들의 토론을 들으면서 조직이 다시는 이번 사건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을것이며 자기 발전의 궤도에서 한계단 비약할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모임에서 엄호선을 강력하게 조직할데 대한 문제를 련이어 상정시켰다.
《우리의 활동에 대한 원쑤들의 감시와 탄압책동을 적진에서 사전에 알아내고 대책을 취할수 있는 엄호사업을 한시바삐 벌려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엄호조직의 조치는 지금까지 우리가 꾸려온 방식으로써는 해결할수 없습니다.》
정시명은 엄호사업과 관련한 자기 의견을 제기하였다.
경찰기관에 애국적인 조직을 꾸리는것은 이제는 시기를 놓치였다. 미국놈들은 경찰기관만은 일본놈들이 만들어놓은 경찰기구와 체계, 인원을 거의 그대로 존속시켜왔으므로 지금 와서 폭압기구는 비교적 째여있다.
그러므로 준비된 사람들을 침투시키기에도 힘들고 설사 들어간다고 해도 요진통을 차지하자면 세월이 흘러야 할것이다. 가장 빠른 지름길은 놈들속에서 지지자, 동정자를 찾아 포섭하는 길이다.…
정시명은 계속하였다.
《대상인물부터 정확히 선정해야 합니다. 그들의 정치사상동향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그 인간의 속성을 정확히 타진해야 하며 그 다음에는 침을 바로 놓아야 합니다. 설복과 교양도 할수 있지만 필요에 따라서는 코를 꿰는 방법도 써야 합니다.
그러나 방법이 문제가 아니요. 문제는 적 폭압기관 복무자들을 한명이라도 더 우리의 편, 애국의 편에 돌려세워 나라와 겨레를 위한 참된 길을 걷게 하는것이요. 이 사업은 어렵고 복잡하오. 그러나 반드시 해내야 하는 혁명임무요.
내가 언젠가 이야기했는데 박달나무에도 못 들어갈 자리가 있는 법이요.》
적의 폭압기관에 통일을 념원하는 애국적인 조직의 뿌리를 박기 위한 투쟁이 박력있게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