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열풍을 누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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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정시명은 마동열을 통하여 송호정이 만나줄것을 바란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얼마전에 하지가 그를 불러다놓고 사관학교에 가서 재직장교반교육을 받고 오라고 했다면서 투덜거리더니 아마 가게 된 모양이였다. 미국놈들이 송호정에 대한 재평가를 내린것 같다.

미국놈들의 식민지화정책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빨찌산투쟁의 불길이 남조선전역을 휩쓸면서 거세차게 벌어질 때 그가 자리를 뜨는것은 큰 손실이였다.

정시명이 송호정의 집에 이르니 경찰이 서있는 보초소에 그의 처가 나와 기다리다가 큰아주버님이 왔다고 반색을 하였다.

《없던게 생겼습니다?》

정시명이 권총을 엉뎅이에 덜렁거리며 대문앞을 오락가락하는 경찰을 보며 웃었다.

《주인이 그래서 신경을 쓰는것 같애요. 서울경찰청장을 불러놓고 따지니 미군정청의 지시라고 하면서 지금까지 총사령관의 집을 지켜드리지 못한것이 저들의 실책이라고 사죄했다고 합니다. 감시겠지요.》

대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송호정이 마주 나왔다.

《미국어른들이 호정의 몸값을 자꾸만 올리는구만.》

정시명이 이렇게 인사말을 하며 송호정의 손을 잡았다.

《그런가보네. 어서 들어가세.》

송호정이 쓰겁게 웃으며 그를 끌고 자기 방으로 향하였다.

정시명이 자리에 앉자 송호정은 《시국이야기나 해주게.》하고 청하였다.

정시명은 그의 청을 기꺼이 받아들여 남조선의 정치정세의 현황과 전망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리고 자기네가 벌리고있는 정치전의 륜곽도 그려주었다.

송호정은 군부라는 페쇄된 직업에 종사하여서 그런지 언제 봐야 정치정세와 사회물정에는 밝지 못하였다. 그래서 정시명은 이렇게 만나게 될 때면 성의껏 이야기를 해주었고 송호정도 더 많은것을 알고싶어 신중히 귀를 기울이군 하였다.

정시명이 미제의 《단선단정》이 거의나 기정사실로 굳어지고있다는 말을 하자 송호정이 무릎을 쳤다.

《옳지, 그러니 그놈들도 나더러 경비대옷을 벗을 때가 왔다고 하는구만.》

《그건 무슨 소린가?》

《내가 재직장교반을 가지 않겠다고 다시 제기하니 하지가 그런 소리 하였네.》

《그렇다…》

정시명은 잠시 생각에 잠기였다. 올 때는 그 자리에 그냥 눌러앉아있으라고 하자 했는데 생각이 달라졌다.

《일리가 있네. 미국놈들이 〈정부〉를 조작하려면 경비대를 정식으로 정규무력으로 편성하려고 할걸세. 그러니 송형은 재직장교반으로 가야겠네. 내 김송일에게 부탁해놓을테니 껄렁껄렁 한두달만 보내다가 오게.》

《그럼 들어가볼가.》

《그래야 할것 같아. 정규무력이 나오면 어차피 류동명선생도 군부에서 빠져나갈수 있는데 호정까지 실력자리를 내주면 어찌하겠나.》

《그렇게 하자구. 내 가겠네. 그러니 이거 참 난 정말 고달픈 놈이야. 끝내 군대가 빨찌산토벌에 나서게 되였네. 내가 눈이 시퍼래가지고 동포들이 흘리는 피를 앉아서 보고만 있게 되였으니 이거야 살이 떨려 살수 있나 말일세. 차라리 이 송호정이 빨찌산대장으로 나서서 한바탕 불질을 하는게 속편하겠네.》

송호정이 눈에 열이 올라 부르짖는데 정시명의 손목을 꽉잡은 그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고있었다.

《이보게, 우린 그런 감상에 빠져있을 몸이 아니잖나. 난 한생을 그렇게 살아오네.》

정시명의 목소리도 침통하였다.

《정형, 용서해주게. 사실 오늘 정형을 만나자고 한건 미국놈들의 정탐기관에 우리 사람을 들여보낼 기회가 생겼기때문일세. 필요하지 않을가?》

《미국놈의 정탐소굴?!》

정시명의 얼굴표정이 일변하였다.

지금까지 그는 미국놈들이 미군정청의 여러 기구들과 미군첩보대를 통해서만 정보책동을 벌리고있는것으로 알아왔다.

미제의 정탐두목들은 남조선을 강점한 초기부터 미군첩보대를 중심으로 첩보활동을 대대적으로 조직하면서 일제와 미제의 주구노릇을 해온 인간쓰레기들과 북반부에서 월남도주한 반동들을 긁어모아 《서북청년회》, 《애국정탐사》, 《백의사》, 《협신정탐사》 등 각종이름을 단 정탐특무기관을 조작하고 간첩테로분자들을 북반부에 들이밀고있었다.

정시명은 애국세력을 보위하기 위한 투쟁을 중요한 투쟁과제로 제기하고 적정탐기관들에 우수한 동지들을 파견하고 그들의 활동에 특별한 관심을 돌려왔다. 그리하여 이 사업을 맡은 길철이 적들이 정탐조직들을 도처에 대폭적으로 조직하고 확대하는 기회를 리용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단시일안에 거의 모든 정탐기관들에 자리잡게 하는데 성공하였던것이다.

정시명은 미륙군정보국과 《서북청년회》와 같이 규모가 크고 위험도가 큰 정보모략기구들에는 파악이 있는 조직성원들을 별도로 파견하여 자신과만 단선으로 련결되게 하였다.

그런데 별도의 정탐기관이 존재한다는것은 금시초문이였다.

《어느 갈래라고 하던가?》

《미중앙정보국소속이라고 하던가… 아무튼 군정보집단은 아닐세.》

《그래?… 지난 9월달에 미국놈들이 중앙정보국을 정식 창설하였다는 소문이 돌아갔는데 날래구만.》

《아니,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전략정보국의 서울지부로 있다가 미중앙정보국이 나오면서 소속을 바꾸었나보네.》

《위치는 어디던가?》

《김포공항일세. 위장명칭은 항공출장소고 책임자는 레코라우스라는 이름을 가진 단마르크계통의 미국놈이라고 하더구만. 거기 부책임자가 미국전략정보국의 중경지부에서 일을 보던 놈인데 나와는 거기서 만난적이 있었네. 이번에 김포공항에 우연히 갔다가 만났는데 내가 경비대 총사령관으로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면서 믿을만 한 통역관을 한명 선발해달라고 하더구만.》

《음 그렇구만. 아주 흥미있는 일이네. 아, 생각이 나네, 생각이…》

그제야 정시명은 더듬어졌다. 쏘미회담때 막판에 김포항공출장소의 책임자인 레코라우스가 끼여들었던것이다.

그뒤로 련이어 몰려든 일거리에 묻혀 지금껏 까맣게 잊고있었다.

송호정의 말을 듣고보니 바싹 구미가 동했다.

송호정이 말을 이었다.

《그자가 자랑삼아 하는 말이 앞으로 제놈들이 남조선에 있는 여러 정보기관들을 통일적으로 지휘하게 될것 같다고 하더군.》

《고맙네. 아무튼 중요한 문제야. 미국놈들이 국가적인 유일정탐기관까지 조직했으니 이제부터 우리 나라에서도 더 소란을 피우자고 덤벼들것은 뻔해.》

정시명은 돌아오면서 레코라우스정탐소굴에 들여보낼 사람을 골라보았다.

기준은 무엇보다도 영어에 능해야 한다. 다음은 로숙한 인물이 되여야 한다.

상대방이 지역정탐기관의 총책이니 그를 다루자면 경험있고 수준있고 견결한 상대역을 맞세워야 한다.

적중한 인물이 떠오르지 않았다.

길철이를 만나 인물선발기준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도 종시 마땅한 인물을 내놓지 못하였다.

정시명은 자기가 알고있는 사람들을 한명한명씩 이름을 불러가며 다시 곰곰히 인물평가를 해보았다.

그렇게 추려낸것이 《한민영》선전부장 김승원과 리범석의 《족청》조직부장으로 있는 조태준이였다.

그런데 김승원은 아직도 준비한 대정치전을 결속하지 못하고 승부를 다투는 싸움이 박두해오고있는 현시점에서 움직이게 할수 없었다.

조태준의 가무잡잡한 얼굴이 떠올랐다. 리범석은 개인적으로 볼 때도 정시명에게 매우 위험한 인물이였다. 정시명의 귀국후에도 리범석은 은근히 그의 움직임을 지켜보고있었다.

그놈은 정향이 장사길에 나섰다는 소식에 다소 마음을 놓으면서도 조태준의 앞에서는 코방귀를 뀄다고 한다.

《그 사람이 돈구멍에 빠졌다구?

정향이 어떤 인간이기에 정치에서 돌아앉는단 말인가. 조직부장이 밑구멍을 쑤셔보라구.》

그래 조태준이 적지 않게 품을 들여왔다.

그는 정향에 대한 동향장악을 맡아가지고 흥국상회의 상품반출입정형까지 따져가면서 리범석의 경계심을 너누룩하게 만들어놓았다.

최근에 리범석은 《족청》을 완전히 군사화하여 지역별 훈련소까지 창설하였다.

여기서 제놈의 손때를 묻혀놓은 수많은 추종인물들을 경비대와 경찰에 야금야금 들이밀고있었다.

정시명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자기 조직도 더 많은 전우들을 확보해놓아야 되겠다고 결심하였다.

정시명은 조태준을 만나보고 최종결심을 내리기로 하고 이날중으로 조태준이 있는 을지로 5가에 있는 《족청》청사에로 갔다.

출입문기둥에는 널판자로 《조선민족청년단중앙본부》라고 쓴 현판이 붙어있고 건물의 량옆에는 무게있는 한문글자로 쓴 《민족지상》, 《국가지상》이라는 구호판이 오가는 사람들을 위엄있게 굽어본다. 그리고 건물의 옥상에는 《비정치》, 《비군사》, 《비종파》라고 우리 말로 곱게 쓴 횡단막이 뭇사람들을 매혹하듯 바람에 너울너울 춤추고있다. 건물은 3층짜리 벽돌집이였는데 중앙단부는 3층에 있다고 정문수위가 대주었다. 현관에 들어서니 량옆에 곤청색제복에 채양이 달린 둥근모자를 쓰고 모자와 가슴에는 보라매표식을 붙인 두 청년이 꿋꿋이 서있다가 그의 앞을 엄숙하게 막아섰다.

《난 여기 조태준조직부장의 외삼촌인데 잠간 만나자고 왔소.》

《조직부장님은 방금전에 수원중앙훈련소에 나갔습니다.》

《음, 한발 늦었군. 그 녀석 소식없이 싸다니니 어디 향방을 대중할수 있나.》

정시명은 맥풀린 어조로 중얼거리고는 《언제 돌아오나?》하고 물었다.

《저녁전에는 올겁니다.》

《그렇게 늦게야…》 정시명은 한시가 새로웠다. 일단 설계가 된 사업은 일사천리로 내밀고나가야 직성이 풀린다.

《오늘 수원중앙훈련소에서 제5기생 입소식이 있답니다. 그러니 아마도 늦어질거라고 했습니다. 아, 얼마 있다가 그쪽으로 가는 차편이 있습니다. 중앙단간부들이 입소식에 참가하려고 또 내려간다고 했습니다.》

정시명의 말투에서 영낙없는 조직부장의 외삼촌임을 확인하였는지 보초를 선 놈들이 인차 초친 부루잎처럼 나긋나긋해졌다.

《좀 알아봐주지. 긴히 만나고 가야겠는데.》

《예, 잠간 기다려주십시오.》

정시명은 내친김에 조태준도 만나고 중앙훈련소라는 곳도 직접 구경하고싶은 생각이 들었다.

보초를 섰던 녀석이 마당으로 씽하니 뛰여가더니 인차 돌아왔다.

《저와 같이 마당에 나갑시다. 차가 막 떠나자는걸 붙잡았는뎁쇼.》

정말 자동차가 발동을 걸어놓고있는데 여러명의 단복을 입은 녀석들이 자동차적재함우에서 왁자지껄 떠들고있었다. 그들은 조직부장의 외삼촌이 두루마기자락을 날리며 가까이 다가서자 일제히 정숙하고는 그에게 인사를 올리는데 신통히도 히틀러청년단식이다.

운전사는 적재함에 오르려는 정시명을 만류하고 운전칸으로 모시였다.

자동차는 여러 시간을 달려서야 중앙단부청사에서처럼 각종 구호로 야단스럽게 장식을 한 수원중앙훈련소에 도착하였다.

광복전에 왜놈륙군병원으로 쓰던 건물들을 미군으로부터 넘겨받아 사용하고있었다. 새 단복을 차려입은 입소생들이 마당의 여기 저기서 패를 지어 대렬훈련을 하고있었다. 그앞에서 훈련소교관들이 저마끔 욕질을 하며 교련을 시킨다. 마당에 흰천을 씌운 책상과 걸상을 주런이 내다놓은것으로 보아 인차 입소식을 하려고 하는 모양이였다.

같이 온 중앙의 간부라는자가 정시명을 훈련소장방으로 안내하려고 했다. 그래서 정시명은 그저 조직부장에게 심양외삼촌이 왔다고, 입소식이 끝난 다음에 만나자 한다고 전해만달라고 부탁하였다.

잠시후에 환영곡이 울리더니 조태준이 맨앞에서 중앙단부 간부들을 거느리고 책상앞에 나와섰다.

마당에 정렬한 입소생은 어림짐작으로 2백명은 넘겠다. 녀자들도 스무나문명 제일 끝대렬에 세웠다.

조태준의 옆에 서있던 사람이 연탁에 나와서 《단기 올렷!》하고 째진 소리로 구령을 내렸다. 그러자 악대가 풍짝풍짝거리는 속에서 보라매를 가운데 그려놓은 푸른색바탕의 기발이 서서히 올라갔다.

이어 등단한 연사는 자기를 훈련소소장이라고 소개하고나서 훈련소의 교관들의 이름을 일일이 불러 연탁가까이에 내세우고는 담당과목을 소개하였다.

정시명은 키꼴이 좋고 목대가 실한 연사를 호기심을 가지고 바라보다가 그가 중국땅에서 여러번 충돌한바가 있는 리범석의 심복부하 문진국임에 놀랐다.

(저 녀석이 여기 와서 박혀있었군.… 그럴법도 한 일이지.)

정시명은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였다.

리범석이 미국놈들도 중시한다는 수원훈련소의 소장자리에 앉혀놓은것으로 보아 확실히 문진국을 크게 신용하는것 같다.

희한한 생각도 들었다.

눈앞에 인상깊게 나타났다가도 다시 얼씬거리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운명적으로 인연이 맺어졌는지 인생길에 자주 교차되기도 한다.

(언젠가는 저놈들과도 다시 맞붙어야 할가부다.)

정시명이 이렇게 입속말로 나직이 중얼거리는데 문진국이 중앙단부 조직부장님께서 단장님의 축사를 대독하시겠다고 소개하였다.

조태준이 박수속에 연탁에 나가서 훌륭한 건국일군이 돼달라는 말을 5분정도 하고는 물러났다.

이어 우렁찬 합창이 울려퍼졌다.

    

     하늘은 맑고 할 일은 많다

     백의민족 청년남아 떨쳐 일어나

     내 나라 부강위해 무공떨치자

     우리는 대한의 억센 보라매

     두려울것 없다네 족청 족청 족청

 

제법 힘도 있고 기백도 있는 노래였다. 노래에 발맞추어 분렬행진이 진행되였다.

마당에 운집한 저 광기어린것들이 리범석의 손탁에서 규률을 배우고 반공을 배우면서 장차 이 나라를 망국의 길로 끌고나갈 무리들로 자라나고있는것이다.

정시명은 리범석의 야심만만한 상판을 그대로 보는듯 싶었다.

조태준의 보고를 통하여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이렇게도 정계의 막뒤에서 반동의 정예화된 후비가 질서정연한 조직체를 가지고 자라고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였다.

조태준은 입소식을 마치고도 한참 지나서야 나타났다.

《과시 놀랍소.》

정시명은 진심으로 놀라와마지 않았다.

《위험한 짓입니다. 하지만 너무 놀라워하실건 없습니다. 리청천이 빼내간 인원이 15일전의 집계에 의하면 수십만입니다.》

《그렇게 많이?!》

그 역시 놀라운 소식이다.

《그런데 며칠전부터는 다시 돌아오는 녀석들이 많다고 합니다.》

《왜?》

《리범석이 총리가 된다는 소문이 족청안에 짜합니다.》

《리범석이 만들어낸 소문인가?》

《예, 그렇기도 하지만 리범석의 고문으로 와있는 미국놈들이 그런 소문을 돌린것 같습니다.》

《하여튼 재미있소. 왔다갔다…》

잠시후 한대의 찦차가 그들옆에 와서 멎었다.

《타십시오. 이 길로 선생님과 같이 서울에 올라가겠습니다.》

《아니, 일을 마저 보지. 난 일없소.》

《그렇게 인사를 하고 나왔습니다. 저 운전사는 저의 련락원입니다. 마중위와 자주 만날것입니다.》

《아, 그런가? 수고를 하오.》

정시명이 운전사에게로 고개를 돌리자 운전사가 그에게 말없이 허리를 깊이 굽히였다.

정시명은 조태준과 함께 찦차에 올랐다.

자동차는 서울을 향하여 쏜살같이 달렸다. 임무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자동차에서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조태준이도 정시명이 중요한 문제때문에 자기를 찾았다는것을 알고 긴장한 마음으로 말문을 열기만을 묵묵히 기다렸다.

서울에서도 번화가인 을지로에 들어서자 차 한잔 하고 가자고 말했다.

그들은 자동차를 보내고 락엽이 진 가로수밑으로 천천히 걸었다.

《거, 수원훈련소 소장말이요. 낯이 익더라…》

정시명이 지나가는 말투로 넌지시 속생각을 내비치였다.

《문진국이라고 중경에 있을 때부터 리범석의 손때가 묻은자입니다.》

《나도 띄여본적이 있었소. 가량이 없는 놈이더구만.》

《예… 저도 소문은 더럽게 듣기는 했는데… 여러번 마주쳐보니 속대는 서있는 놈입니다. 리범석의 졸개로만 생각했는데 이따금 술판에서 퉁퉁 내뱉는 소리를 들으면 그렇지는 않은것 같구… 상당히 비판적입니다. 미국놈들에 대해서도 그렇고 리범석에 대해서도 바른 소리를 하군 합니다.》

《그래?… 그런 놈이 어째서 리범석의 손끝에서 놀아날가?》

《글쎄요… 그래 제가 좀 뜸을 놓아보려고 궁리하는 중입니다. 선생님께 한번 여쭈려고 하였습니다.》

《음… 좋소. 그렇게 생각을 굴려 자꾸 일거리를 찾아내야 하오. 그런데 조동무, 그건 당분간 덮어두고…》 정시명은 화제를 돌렸다. 《조동무, 족청사업을 인계맡을수 있는 동무가 있소?》

《글쎄요… 그러면?》

《당장 동무가 담당해야 할 중한 자리가 나서서 이렇게 찾아왔소.》

《그렇다면 뭐… 리범석이도 날 다른데 옮겨놓을 궁리를 하는데 차라리 잘 되였습니다.》

《리범석이는 어떤 곳에 보낼려고 하오?》

《그놈은 군부를 장차 틀어쥐려고 하니 측근인물들은 그쪽에 빼돌리는 방향입니다.》

《음. 그러면 좋소. 리범석이도 좋아할수 있는 자리요. 리범석의 보증까지 받으면 더욱 믿음직하오. 대상은 미중앙정보국의 남조선지부요. 고도의 비밀성과 수완을 요구하는 자리요.》

《처음 들어봅니다.》

《나도 그렇소. 일전에 쏘미회담때 브라운암살문제를 놓고 처음 들었는데 위험한 적이요. 동무가 발을 붙여야겠소. 송호정총사령관의 소개장으로 들어가 통역관으로 활동하게 되오. 놈들이 곧 남조선에 산만하게 조직되여있는 정탐기관들을 틀어쥘 계획이라고 하오. 그러니 동무의 새로운 위치가 얼마나 큰 문제들을 해결하게 되리라는것이 명백하지 않소. 리범석에게 오늘중으로 제기해주오. 그놈도 동무와 같은 수하일군을 그런 곳에 박아넣고싶어 할거요.》

《해보겠습니다.》

《매우 심중한 사업이요. 첫 걸음부터 열번 재여보고 한발 옮기는 사업기풍을 세워나가야 하오. 그러나 매사에 지나치게 소심하거나 오물쪼물할건 없소. 공작에 인차 착수해야겠소. 그런 자리는 인차 메워질수도 있으니 어정거리다가는 틀어질수 있소.》

《알았습니다. 이제 돌아가서 리범석을 만나겠습니다. 내가 송호정총사령관의 건의를 받았다는것을 밝히겠습니다.》

《그렇게 하오. 동무와 송호정은 이미부터 서로 안면이 있으니 무방할것이요.》

정시명은 인차 송호정에게 조태준을 선발했다고 알려주었다.

송호정은 조태준의 경력을 아는껏 레코라우스에게 전달하였다.

리범석은 조태준의 이야기를 듣자 처음에는 《통역관이란 말단자리야.》하며 반신반의하였으나 송호정에게 전화로 문의하고나서는 매우 만족해하였다.

그는 조태준에게 자기가 신원보증서를 만들어주겠다고 하면서 래일중으로 조직부장후임을 제기하라고 하였다.

레코라우스는 송호정의 전화를 받자 《족청》에 나가 있는 리범석의 고문인 써젠트에게 조태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료해하였다.

써젠트는 좋게 평가하면서 리범석의 심복부하라고 확언하였다.

이리하여 송호정의 제기가 있은지 열흘만에 조태준이 레코라우스의 통역관으로 임명되였다. 조태준의 후임으로는 문진국이 들어앉았다.

조태준에게 레코라우스기관의 정체를 정확히 알아내며 점차 활동의 전모를 알아낼데 대한 첫 과업이 주어졌다.

조태준은 통역관으로 임명되자 짬짬이 첩보사업에 대한 미국놈들의 책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원래 무서운 독학가이고 박식한 조태준은 첩보물계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래서 이따금 레코라우스에게 그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신통한 조언을 한마디씩 튕겨줌으로써 인차 그의 눈에 들었다.

레코라우스는 60에 이르도록 정탐계에서 늙어오는 오랜 정탐이였다. 그는 미전략정보국의 동경지국장대리로 오래동안 공작하다가 조선이 광복된 후 김포공항에 틀고앉아 남조선에 첩보활동기지를 꾸리는 사업을 다그쳐왔다.

레코라우스는 북조선의 지리와 경제형편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고있을뿐아니라 상당한 지식과 총명한 두뇌로 하여 첩보분야에서 전도가 유망해보이는 이 조선청년을 자기의 일상적인 협의대상으로 삼기 시작하였다.

그는 동양에서 오래동안 근무한 관계로 동방나라들의 력사와 풍습을 잘 알고있었고 지식수준도 높았다. 한담자리에서는 젊은 시절 하버드대학에서 작가를 지망해서 당대의 이름난 문인들을 찾아다니던 일을 큰 자랑거리로 떠들군 하였다.

그러면 조태준도 와세다대학시절을 회상하면서 정계에 발을 들이민 자신을 탄식하기도 하였다.

레코라우스는 조태준의 일솜씨와 지식 그리고 일상적으로 풍기는 지적인 향기를 사랑하였다. 그를 조선인정보관으로 임명하고 자기의 심복부하로 만들려고 애를 썼다.

남조선의 다른 첩보기관들에 대한 현지료해검열에도 그를 망라시켰으며 어떤 때는 독자적인 임무를 주어 첩보기관들과 사업하도록 하였는데 그가 작성한 보고서들은 언제나 레코라우스를 크게 만족시키군 하였다.

레코라우스는 송호정과 리범석에게 전화로 훌륭한 청년을 보내준데 대하여 사의까지 표시하였다. 조태준은 자리를 옮긴지 보름후부터는 귀중한 자료들을 보내오기 시작하였다.

그는 레코라우스기관은 항공출장소를 위장간판으로 하고있는 《미전략정보국》의 남조선지부로 발족하여 최근에 미중앙정보국의 창설과 함께 그 대렬을 새로 정비보강하는중에 있다고 보고하였다.

미전략정보국은 1942년에 미국대통령 루즈벨트가 조직한 대외첩보기관이였다. 미제는 태평양전쟁시기 이 조직을 가지고 해외정보활동을 벌렸다.

루즈벨트의 후임으로 백악관에 틀고앉은 트루맨은 신사는 남의 편지를 훔쳐보지 않는다고 부대통령시절의 고담을 되풀이 하면서 정보사업자체를 탐탁하게 여겨오지 않다가 1945년 9월에는 전략정보국을 아예 해체해버렸다.

그러나 실지 미국의 정책을 진두에서 지휘하게 된 트루맨은 미구에 정보사업의 의의에 대하여 재평가를 내리게 되였으며 유력한 정보진이 없이는 단 한걸음도 움직일수 없다는것을 깨달았다. 미국무성과 국방관계성들에 정보기구가 있었지만 해당 분야의 업무처리를 위한 전술적인 한계점을 극복하지 못하였다. 게다가 2차세계대전이 종결된 그 시기로 말하면 점령지분할과 통치를 비롯한 많은 문제들이 산적되여있을 때였다.

어느때보다도 정보활동이 활발히 전개되여야 할 때에 정보기구를 주관적편견에 따라 성급히 해산시킨것은 트루맨의 커다란 실책이였다.

이리하여 트루맨은 1946년에 중앙정보그루빠를 만들어냈고 전략정보국지부들이 계속 활동하도록 명령하였다.

정치무대에서 달과 해를 보낼수록 정보의 의의와 위치를 더욱 절감하게 된 트루맨은 1947년 9월에는 중앙정보그루빠를 중앙정보국으로 승격시키고 해외지부들을 확대강화하여나갔다.

조태준은 보름사이에 리승만을 두번이나 레코라우스의 방에서 보았다고 하면서 백악관과 미국무성이 그처럼 리승만을 극성스럽게 두던하고 밀어주고있는것은 레코라우스의 평가보고서에 기초하고있는것으로 보아진다고 분석하였다.

그는 노불도 여러번 왔다갔는데 레코라우스가 노불을 세워놓고 하지의 정책적과오를 매섭게 비난하군 한다고 보고하여왔다.

조태준의 활동은 날을 따라 더욱 맹렬해졌다. 그는 레코라우스의 신임을 리용하여 자기의 영향밑에 있는 동지들을 영등포에 있는 미군첩보대(쥐투)와 미군대내첩보대(씨아이씨)에서 사업하도록 하였으며 산하기관들로 넘어오기 시작한 경비사령부 정보국, 《서북청년회》, 《애국정탐사》, 《백의사》의 주요인물들과 일상적으로 지시를 주고 보고를 받는 과정을 통하여 그들의 활동과 공작체계, 인사정형을 료해장악하였다.

놈들의 모략기관에 깊이 들어간 조직성원들의 투쟁은 첫 시기부터 조국을 보위하고 인민의 안전을 지키는데 커다란 은을 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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