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거목의 뿌리
3
안지생이 또하나의 충격적인 자료를 보내왔다.
김구가 일체 외인출입을 금하였다는것이다. 자기 방에 비서들은 물론 아들, 며느리까지 얼씬 못하게 한다는것이다.
그 원인에 대하여 안지생은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다.
《김구가 대문에 단단히 빗장을 지르라고 엄명을 내리기전에 송호정총사령관이 류동명통위부장과 함께 왔다. 내가 졸라서 왔다.
나는 그들에게 김구가 정신들게 될수록 강하게 공격하라고 사전에 부탁하였다.
그들은 처음에는 도리질을 하였지만 내가 여러시간 김구선생이 분명 탈선되고있는데 저대로 둬서는 안된다고 부탁하자 함께 가보겠노라 응해나섰다.
그들의 담화가 무척 자극적이고 격렬하였다고 보아진다.
… …
송호정- 우리는 백범선생의 장래가 걱정되여왔다.
김구- 자네도 하지가 보내서 왔는가?
류동명- 백범, 우리를 남의 풍에 놀 허재비로 생각하는가? 지금 정치의 외토리가 되여가는 백범이 측은하다. 찾아온 리유는 그게 전부다.
김구- 고양이 쥐생각! 당신들이 애초에 날 걱정했드라면 나를 버리지 말아야 할것이 아니였는가? 겨울이 돼야 솔이 푸른줄 안다고 했다.
송호정- 우리는 나름으로서 몫을 질머지고 국민에게 봉사하고저 했다. 그리고 국민을 이끌려는 백범을 외곽에서 옹위하려고 했다. 당신도 이에 대해 리해를 표시한 일이 있지 않는가.
김구- 그건 요설이다. 난 자네들이 아니더라도 귀맛좋은 소리를 많이 듣고있다. 충정을 보여야 할 때다.
송호정- 백범이 충정을 줴던졌는데 누구에게서 충정을 바라는가?
김구- 그건 무슨 소린가?
송호정- 백범은 국민을 버리고있다. 참말로 충정을 가지고 얘기하자.
지금 백범에게 국민이 있는가? 백범의 마음속에 남아있는건 권력에 대한 욕심밖에 없다.
김구- 뭣이?!
송호정- 백범은 지금 권력을 타고앉기 위해 그 어떤짓도 불사한다는 국민의 지탄을 듣지 못하는가?
김구- 그래, 난 지금 권력을 위함이라면 불속도 뛰여들 각오가 되여있다.
우리가 무엇때문에 항일 50년을 누벼왔느냐?
송호정- 그것이 권력에 대한 야심이였다면 국민의 심판은 마땅하다. 당신은 지금 권력에 환장했다.
김구- 뭐라구? 권력에 환장했다구? 내가? 내가? 이 백범이 권력에 환장했다구?… 류총장, 당신도?…
류동명- (말없이 고개만 끄덕했다.)
김구- 나가라! 썩 물러들 가! 다시는 내 눈앞에 그림자도 보이지 말라! 이 백범과 함께 3. 1의 정기를 이어 동고동락 장장 서른해를 보내온 당신들이…
권력에 대한 야심을 버린다면 상해림정은 어째서 있었구 자네들은 뭣하려 그 상좌에 김구를 못박아 앉혔느냐. 나가라! 썩 물러가!…
류동명- 백범, 자중하라. 당신이 물러가라고 물러갈 우리들이 아니다.
백범- 가라, 물러가. 내 당신들의 옷소매를 물고늘어지는걸 보고싶은가?
류동명- 좋다. 우리는 물러간다. 당신의 주의주장의 밑뿌리를 안이상 우리는 더는 당신의 우인으로 되지 않을것이다.
그들의 대화는 이렇게 끝났다.
지금 김구는 침묵을 지키고있다. 안미생누님의 말에 의하면 며칠전부터는 좁쌀미음 한보시기로 아침을 굼때고는 해종일 문을 안으로 걸고 우리가 들여보낸 자료들만 보고있다고 한다.
예감이 좋지 않다. 상서롭지 못한 느낌이 든다.》
정시명은 안지생의 보고문을 여러번 주의깊게 읽었다.
이야기가 잘 흐른것 같지 않다. 그렇지만 이 보고에는 김구의 체질평가에 필요한 긴요한 요소들이 간명하게 드러나있다.
착잡한 감정은 흉중에 더 두텁고 무겁게 서리였다. 류동명이 타매한것처럼 주의주장의 밑뿌리가 명확해진것이다. 밑뿌리라…
(백범! 당신이 정말 그런 인간이던가. 권력? 그래 정말 당신이 그 더러운 권력야심에 미쳐나서 홍안의 시절부터 왜놈들과 피투성이 싸움을 벌리며 그 무수한 경난을 헤쳐왔단 말이요? 당신이라는 인간의 밑뿌리가 정말 그게 전부였단 말이요?)
미워지면서도 정이 가던 인물이 창졸간에 넝마와 같은 하잘것없는 존재로 비쳐졌다.
(아니, 그럴수 없다.) 정시명은 그래도 미련을 버릴수 없어 안타깝게 중얼거렸다. (이제는 내가 나설 때가 되였다.)고 정시명은 결심하였다.
그는 점심상을 물리고나서 잠간 벽에 기대고 앉아 김구와 해야 할 일을 생각하였다.
이때 례영이 조용히 손기척을 내며 문을 방싯이 열었다.
《어서 들어오너라.》
《아버님, 시간을 좀 내실수 있겠습니까?》
례영은 전에없이 소심한 태를 보이며 물었다.
식후 30분은 정시명에게 제일 소중한 시간이여서 례영이도 청을 드리기 어려웠던것이다.
《그래?… 어째서?》
정시명은 례영의 신상에 무슨 심상치 않은게 제기되였는가싶어 흉중에 찬바람을 느끼며 물었다.
《저 혜숙언니가 아버님을 잠간 뵙고저해서…》
례영은 혜숙이와 동갑나이이지만 생일이 다섯달 앞섰다고 해서 언니라고 내세우군 한다.
《나를?… 어서 들어오라고 해라.》
례영이 생긋 웃음을 남기고 나가자 이어 권혜숙이 조심스럽게 문지방을 넘어섰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처녀는 늘씬한 허리를 굽석 숙이며 귀밑이 발그레하게 물이 든다. 어줍은 어조로 죄송하다는 말부터 한다.
《자리에 앉지. … 권동무, 무슨 일이요?》
《저 다른게 아니고…》
권혜숙이 여전히 말을 잇지 못하고 손톱여물만 썰고있는데 정시명이 그 모습에 어리둥절해졌다.
권혜숙이 이렇게 소심해서 나타나기는 처음이다. 안팎없이 시원스러워 괄량이라고 불리우는 처녀다. 이 집담장안에서 웃음소리가 그중 큰것도 권혜숙이고 대답소리도 제일 큰게 권혜숙이다. 례영이 곱게 핀 방울꽃이라면 권혜숙은 싱싱한 대나무같다고 언젠가 김명호가 말했는데 두 처녀에 대한 비슷한 평가라고 생각해온다.
그런데 지금 처녀의 얼굴에는 수심이 어리고 무엇인가 불안하다.
(아, 그렇지. 내가 아직도 길철을 다시 만나지 않았구나.)
정시명은 한강변의 오리나무숲에서 길철이와 아퀴를 짓지 못한 일이 떠올랐다. 인차 매듭을 본다는게 일에 묻혀 세월을 보내왔다.
혜숙이 그 일때문에 찾아온 모양인가.
《권동무, 어서 말하오. 뭘 도와주면 될가?》
그런데 처녀의 대답이 동문서답이였다.
《저… 저를 내보내주십시오. 하는 일은 다른 곳에 가서 할가 합니다.》
《내보내다니?… 어째 주인집에 노여운 일이라도 있었는가?》
《아니… 아닙니다. 그런게 아닙니다.》
뜻밖의 제기를 받자 정시명이 의아스러워 한동안 처녀의 얼굴을 지켜보았다.
그의 억실억실한 눈에 어려있는 수심이 여러가지 억측을 불러냈다.
《좋소, 토론해보지.》
정시명이 우선 이렇게 대답했다. 좀 더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싶은데 김구에게로 떠날 시간이 된것이다.
권혜숙은 아래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다가 자리에서 소붓이 일어나 《고맙습니다.》하고는 돌아서는데 《흑-》하고 울음소리를 감씹으며 급히 방안에서 나갔다.
정시명은 처녀가 그러는게 더욱 의문스러웠다.
그는 고개를 기웃거리며 혼자소리로 중얼거렸다.
(왜 저럴가. 김구선생이나 만나고는 좀 알아봐야겠군. 내가 너무 무심했군.)
서대문네거리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있는 경교장은 2층으로 되여있는데 주변은 높은 돌담으로 둘러있고 정문에는 수위를 서고있는 경찰이 걸상에 앉아 꺼떡 꺼떡 졸고있었다. 인기척에 놀란 경찰이 옆구리에 손부터 가져가며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초인종이 울리자 곧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넘기고 땡볕에도 아랑곳없이 양복차림을 한 안우생이 나왔다.
《이거 야단이 났습니다.》
안우생의 얼굴이 어둡다.
《왜? 누가 와있소?》
잠시후 안지생이 잰걸음으로 나왔다.
《미군정청의 노불과 프란체스까가 왔습니다.》
《리승만의 처까지 ?…》
정시명은 일순간 긴장해졌다.
《일체 방문자는 거절이라더니?》
《글쎄요. 대문앞에 와서 버티고있으니 문을 열어줬는데…》
노불과 리승만의 처까지 김구의 집으로 일시에 찾아든것은 모종의 막후흥정이 또 벌어지리라는것을 예고하는 불길한 전주곡이였다.
시간을 잘못 선택했다는 직감이 들었다. 그렇다고 돌아서고싶지도 않았다.
그는 잠시 안지생이와 함께 정문대기실에 들어가 담배를 붙여물었다.
잠시후 노불과 프란체스까가 대문밖으로 나왔다.
프란체스까가 노불에게 아양을 떨며 수선을 부리는 꼴이 아마 김구와의 이야기가 순조로이 진행된 모양이다.
그들이 차를 타고 사라지자 안우생이 정시명이 내주는 명함장을 눈으로 훑어보고는 의아쩍어 하였다.
《이런 명함으로요? 차라리 서안판사처장으로…》
김구의 감회깊은 기억을 되살려보려는 안우생의 무언의 의향이 비쳐있었다.
《그게 어느때라고…그렇게 해주오.》
정시명이 웃으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안우생이 2층에 올라갔다가 인차 돌아왔다.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만나지 않겠다고 합니다. 정 만나고싶으면 한시간쯤 기다리게 하라고 합니다.》
《그래?… 음… 그럼 한시간 기다려봅시다. 날 미안해할건 없소. 뭐 읽을만 한 책이나 가져다주오.》
정시명이 대기실에서 책을 뒤적이고있는데 안우생이 다시 나타났다.
정시명은 그의 안내를 받으며 아래층에 있는 김구의 응접실에 들어섰다.
미닫이문이 열리자 바지저고리를 입고 쏘파에 앉아서 두툼한 자료를 보고있는 김구의 우람진 자태가 보였다. 볼이 옆으로 처지고 눈섭이 우로 치솟은게 누가 보아도 심술기가 첫눈에 뜨이는 늙은이다.
《게 앉으시우.》
김구는 돋보기우로 정시명을 흘끔 올려다보고는 다시 자료에 눈을 박았다.
김구는 한참후에야 보던 종이를 옆탁에 홱 내던지고는 말을 꺼냈다. 차탁에도 자료가 무드기 쌓여있다.
《용서하시오. 내 지금 신문에 꼭 긴요한게 있어서 마저 읽어보던 참이요.
나보고 마구 험담질을 갈겨댄건데 재미있게 썼거든. 요즈음에는 뭐가 뭔지 통 갈피가 잡히지 않아.》
김구는 흥분하고있었다. 김구는 상대방의 무게를 가늠하느라고 명함장을 다시 들여다보고는 돋보기를 벗고 흥심없이 정시명에게 눈길을 보냈다.
《그건 그렇고 어떻게 오셨소? 요즈음은 정치한다는 사람들도 내 집문턱 드나들기를 탐탁치 않아 하는것 같은데 장사하는 사람이 이 백범에게서 바랄게 뭐 있소… 가만!》 심술스럽게 불편한 속주머니를 털어놓던 김구가 문득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제야 정시명을 알아본 모양이다.
《아 이게 누구시오?… 서안판사처 정처장이 아니시오?》
《그렇습니다. 정향이올시다. 백범선생, 그동안 옥체만강하셨습니까?》
《아 참, 이거 내 또 큰 실수를 했군. 정처장이 오셨다면 진작 그렇게 알려야지 원, 이런… 정처장, 정말 오래간만이요. 여러 지기들의 념려로 이렇게 난 무고히 지내오. 그런데 어찌하여 이렇게 소식없이 지내셨소. 관내에서 내 사람들이 처장선생신세를 이만저만 졌다구.》
김구는 자못 감개무량해서 정시명의 손목을 각근히 잡아흔들며 인사를 정중히 차렸다.
이윽고 쏘파에 자리를 권한 김구는 서울에 들어와 지나온 일들을 간추려서 개괄하고는 정시명에게로 말머리를 옮겼다.
정시명이 중국에서 《한교사무처》일로 이국살이를 끝내고 서울에 와서 장사를 시작했노라고 그지간에 있은 일들을 간단하게 이야기하였다.
《허, 처장선생이 이 란잡한 정국에 나서야지 장사일을 보다니… 그 일은 아무리 생각을 굴려야 잘된 일 같지는 않은데…
우린 이젠 늙었거든. 대세에 따라 서지 못하오. 바람결이 차지면 어차피 나무잎도 볕보기를 그만 두어야 하듯이 정치하는 사람도 자기 시대를 넘기면 물러나야 하는것이 순리일것 같소.》
방안을 천천히 거닐던 김구가 느닷없이 물었다.
《처장은 방금 내 집에서 나가는 양인들을 보시였소?》
《예, 봤지요. 화제거리 인물들이니 경교장에 드나들만 한 연고가 있겠지요.》
김구가 속이 켕기여 먼저 말을 꺼내놓는데 정시명이 대범하게 무시해버리자 제풀에 무색해서 허허하고 허구프게 웃었다.
그는 정시명의 반발을 예상했던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는 남의 눈치를 봐가며 누굴 만나보는 시럽의 아들이 아니라고 화를 낼 심산이였다.
《담배나 태우시우. 처장선생이야 담배이상의 대접이 없는줄 내 아오.》
김구는 다소 주눅이 들어 미국상표가 붙어있는 담배곽을 내밀었다.
《내게도 있습니다.》
정시명은 그가 권하는 양담배를 사양하고는 담배쌈지를 꺼내 곰방대에 잘게 썬 담배를 꽁꽁 다져넣었다.
김구는 정시명의 곰방대를 노려보다가 양담배를 책상서랍안에 훌쩍 집어넣고 소리나게 밀어닫았다. 그리고나서 밭고랑같은 주름이 세로 패인 볼을 풀떡거리며 심술스럽게 말을 이었다.
《처장은 뭣때문에 오랑캐계집과 어울리는 백범을 찾아오시였소?》
《백범선생, 자중하시오. 오늘은 나도 백범선생과 국사를 의논하고싶어 왔습니다.》
정시명은 주먹을 차대우에 올려놓으며 위엄있게 대꾸하였다.
호령기 많은 백범도 불빛같은 눈길로 상대방을 쏘아보며 쩌렁쩌렁 울리는 음성으로 마디마디에 무게를 담는 정시명의 위엄앞에서는 기가 눌리우고말았다.
《말해보시오.》
《나는 먼저 묻고싶습니다. 백범선생은 어찌하여 림정이 오늘 이남땅에서 응당히 차지해야 할 정통정부로서의 자기의 지위를 상실한것 같습니까?》
《… … …》
《여건이 많겠지만 나는 첫째 백범선생이 실책을 범했기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나때문에?》
김구는 두눈을 부릅뜨고 거친 숨을 내쉬며 반문하였다.
《그렇습니다. 어째서 남경, 상해, 중경에서는 산하를 진동하던 백범의 호령이 서울에서는 마이동풍이 되고말았습니까?》
《… …》
《김규식, 류동명, 최동오, 리범석… 조소앙도 떨어져나갔지요. 김원봉의 혁명당도 제멋대로 놀고있습니다. 도대체 누구와 함께 이 남쪽땅의 정사를 해보겠다는겁니까? 왜 그렇게 되는가. 김구선생의 뜻에 일관성이 부족한탓으로 우로좌로 기우뚱거릴 때마다 파편쪼각처럼 하나둘 빠져나가는겁니다.》
《내 유다같은 무리가 제둥지 버리는것을 크게 랑패라 생각지 않소. 봄에 달린 떡잎이 여름철에 가서 떨어지면 나쁠게 없소. 하지만 나한테 이제 찾아왔던 손님들의 방문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시겠소?》
김구는 비위살이 두텁게 입가에 쓴웃음을 지으며 흰목을 뽑는다.
《그네들이 하는 수작을 들어보시겠소. 뭐 영국식의 정치방식이 바람직한데 김구 당신이 영국의 녀왕격이 되든지 총리가 되든지 내키는대로 골라잡으라는거요. 그네들이 하는 말이 감언리설이 헨둥하지만 여전히 김구를 친구로 사귀겠다는것이 아니겠소.》
《백범! 옷은 새것이 좋고 친구는 옛지기가 좋다는 말이 있지요. 항차 선생이 사귀려는 새 친구가 이 나라의 명줄을 끊으려 하는 물건너온 도적의 무리일진대 그래도 선생은 그 뒤말이 두렵지 않습니까?
내 한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달다고 꿀떡을 삼키지 말고
쓰다고 삼수탕 뱉지를 말아
이방인을 믿어 덕 본이 없고
역적과 손잡아 치욕을 던이 없거늘…》
김구는 소스라치듯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만, 그만하시우.》
그는 얼이 빠진 사람처럼 오른 팔을 들고 허우적거리였다. 심기가 뒤틀려 심술기만 잔뜩 성해있던 안색이 삽시에 달라졌다.
그것은 김구가 중경시절에 리승만이 당시의 미국대통령 윌슨에게 미국의 후견을 받는 방식으로 조선을 독립시켜달라는 청원서를 제출했다는 소식에 접하여 어느 술상에서 울분을 토하며 읊은 시조였다. 그게 독립운동자들속에 퍼지고 리승만의 귀에까지 들어가 둘의 사이가 더 버그러졌다 한다.
정시명은 자리를 털고일어서서 두루마기를 걸치였다.
그러자 김구가 숱많은 흰 장미를 푸드드 떨며 정시명을 노려보다가 그의 두루마기자락을 움켜잡았다.
《처장, 이야기를 좀 합세다. 나는 중경시절에도 처장을 만나면 답답하던 가슴이 후련해지군 했소.》
《참으로 섭섭하외다. 배달동포가 경모하던 우국지사 백범은 어데 가고 그 우상만 남아 감히 이방인의 장단에 흥이 나서 거들거리는겁니까?》
정시명은 미국을 등대고 자기의 존재를 과시하는 김구의 이야기에 분격이 터져올랐다. 그러나 인차 자신을 억제하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김구는 크게 흥분되여있었다. 정시명이 이렇게 나타난것이 그닥 반가운것은 아니였지만 훌쩍 자기를 버리고 갈가보아 걱정이 되였다. 그래 움켜쥔 정시명의 두루마기자락을 놓지 않고 말했다.
《정처장, 내 방으로 갑시다. 그 자리엔 방금 리승만의 내인이 앉아있었다우.》
그 말투에 형언할수 없는 고독과 방황에서 벗어나보려는 그의 몸부림이 비치고있다.
정시명이 그게 헤아려져 가슴이 뭉클했다.
김구는 그의 팔을 잡은채 2층계단으로 올랐다.
《자, 여기가 내 방이요. 어서 들어가시오.》
김구는 2층복도의 한끝에 있는 자기 침실문을 열고 이렇게 들여보내고는 집안이 떠나갈듯 큰 소리로 불렀다.
《여봐라, 게 누구 없느냐?》
그러자 아래방문들이 우당탕 열리면서 《예-》하는 여러 목소리가 한꺼번에 들리는데 2층계단에 뛰여오르는것은 안미생뿐이였다.
김구는 사랑하고 존경해마지 않던 렬사의 딸이라는데도 있지만 젊은 나이에 남편을 여의고 집안의 궂은일 마른일 다 맡아안고 자기와 함께 온갖 고난을 다 겪어오는 이 맏며느리를 제일 아끼고 믿고 사랑해준다.
《아버님, 분부하세요.》
《아가야, 문을 활짝 열어 바람갈이하거라. 양놈들의 향수냄새 지독도 하다.》
《알았습니다, 아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