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조선청년들과의 뜻깊은 상봉

 

주체63(1974)년 9월 24일 오전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타신 차는 어느 한 회의실로 달리고있었다.

그곳에서는 조국방문의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있던 재일본조선청년예술체육대표조국방문단, 제2차 재일본조선교육일군조국방문단, 재일본조선고급학교학생조국방문단 성원들이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기 위하여 대기하고있었던것이다.

총련의 청년대표들과 학생대표들, 교육일군대표들을 만나주시려고 차를 달리시는 그이의 눈앞에는 자본주의일본땅에서도 조국통일과 사회주의조국의 륭성번영을 위한 미래의 역군으로 튼튼히 자라나고있는 재일동포청년들의 름름한 모습이 안겨왔다.

얼마후 위대한 수령님께서 타신 승용차는 청사앞마당에 들어섰다.

차에서 내리시는 수령님께 녀성조청원들과 녀성교육일군, 고급학교 녀학생이 차례로 향기그윽한 꽃다발을 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환한 웃음을 지으시며 나에게는 이 꽃보다도 동무들이 더 귀중하오, 나는 동무들이 보고싶어 오라고 했소, 그런데 이 기쁜 날에 울어서는 안되지라고 하시면서 크나큰 감동으로 세차게 오르내리는 그들의 어깨를 두드려주시였다.

이어 채홍열, 송암우동포를 비롯한 여러 방문단 단장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잠시 휴계실에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이윽고 그이께서 회의실 주석단에 나오시였다.

순간 떠나갈듯 한 만세의 환호소리가 장내를 뒤흔들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손을 높이 드시여 답례를 보내시며 거듭 진정하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러나 폭풍같은 환호소리는 그칠줄 몰랐다.

자리에 앉으시였던 위대한 수령님께서 다시금 일어서시여 손을 흔드시였다. 그이께서 재삼 진정하라고 이르시여서야 장내에는 겨우 고요가 깃들었다.

이윽토록 좌중을 굽어보시던 그이께서는 갈리신 음성으로 말씀을 시작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먼저 오늘 일본에서 조국을 위하여, 민주주의적민족권리를 지키기 위하여, 조국의 통일을 위하여 용감히 싸우고있는 재일본조선청년대표동무들과 학생대표동무들, 교육일군대표동무들을 만나게 된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다른 나라에서 고생하며 살아가는 동포형제자매들이 조국을 찾아온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특히 조국에 온 동포들을 만날 때마다 우리의 마음은 매우 설레이며 감개무량해지군 한다고 따뜻한 정을 담아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이 말씀에 그 자리에 참석한 동포청년들은 감격의 흐느낌을 애써 삼키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창밖으로 잠시 눈길을 주시였다가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앞으로 우리가 조국을 통일하고 남조선에 있는 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을 이렇게 만나게 된다면 그때의 기쁨과 감격은 더욱 클것입니다.

오늘의 우리들의 이 상봉은 동무들의 기억속에도 나의 마음속에도 영원히 남아있을 뜻깊은 상봉으로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이의 이 말씀에 또다시 뜨거운 격정의 파도가 일었다.

멀리에 있는 자식에게 더욱 정을 기울이는 친부모의 심정으로 남조선과 해외의 동포들을 먼저 생각하시며 그들과의 상봉을 그토록 기뻐하시는 위대한 수령님!

그이의 마음속에서는 언제나 식민지파쑈독재의 압제밑에서 신음하는 남녘겨레들이, 민족분렬의 고통속에 살고있는 온 겨레가 있었다.

정녕 위대한 수령님은 온 겨레를 따뜻한 사랑의 한품에 안아 보살피시는 민족의 어버이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격정에 넘친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시며 오늘의 상봉이 너무 기뻐서 동무들은 흥분되였고 눈물을 흘리고있다고, 동무들이 그러니 나도 목이 메여 연설하기가 어렵다고 하시며 손수건을 꺼내드시였다.

장내에서는 일시에 흐느낌이 터져나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감격과 고마움의 눈물을 억제하지 못하는 재일동포청년들에게 앞으로 우리는 혁명투쟁을 같이하여 나가는 과정에 또 만나게 될것이라고, 우리모두 혁명의 한길을 걸으며 만났다 헤여지고 헤여졌다 만나면서 끝까지 잘 투쟁하여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념원인 조국통일위업을 기어이 완성하자고 절절한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순간 우렁찬 박수갈채가 터져올랐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랜 시간에 걸쳐 당시 우리 나라의 정세와 재일본조선청년동맹의 과업에 대한 력사적인 연설을 하시였다.

특히 그이께서 조국통일과 관련하여 하신 말씀은 재일동포청년들의 가슴을 크게 울려주었다.

당시 공화국북반부에서의 사회주의건설형편과 나라안팎의 정세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남조선인민들의 민주화투쟁에 대하여 언급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최근 남조선에서는 당국자들의 파쑈통치를 반대하며 사회의 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한 각계층 인민들의 투쟁이 힘차게 벌어지고있다고 하시면서 남조선인민들이 혁명투쟁에 일떠서는것은 그들자체가 진리를 깨닫고 혁명적으로 각성되기때문이라고, 오늘 남조선당국자들은 인민들의 초보적인 자유와 권리마저 빼앗고 인민들을 가혹하게 탄압하고있다고, 이것은 남조선인민들을 더 빨리 각성시키고있으며 그들을 강력한 반항에로 불러일으키고있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말씀하신바와 같이 당시 남조선에서는 군사독재정권의 파쑈억압통치를 반대하는 청년학생들을 비롯한 인민들의 투쟁이 광범히 벌어지고있었다.

이에 당황망조한 남조선당국자들은 이른바 《10월유신》이라는것을 날조한 이후 비상계엄령과 긴급조치, 갑호경계령 등 이루 셀수 없이 많은 폭압조치들을 련발하면서 남조선인민들에 대한 탄압을 더욱 강화하였다. 1974년 4월에도 남조선당국자들은 청년학생들이 반파쑈민주화투쟁에 대대적으로 떨쳐나서자 탄압소동을 미친듯이 벌리면서 수천명의 대학생들과 인민들을 잡아가두었다. 그들속에는 지식인들과 각계층 인사들 지어는 지난날 《대통령》을 한 사람과 종교인들까지 있었다.

재일동포청년들의 가슴속에서는 사회의 민주화와 조국통일을 위하여 떨쳐나선 인민들의 정의로운 투쟁을 총칼로 탄압하는 남조선의 군사파쑈독재정권에 대한 치솟는 분노가 끓어번졌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의분에 넘친 재일동포청년들의 모습을 바라보시며 남조선당국자들은 남조선에서 자기들을 반대하는 어떤 사건이 생기면 매번 그것이 우리와 어떤 관계가 있는듯이 날조하고 우리에게 책임을 넘겨씌워보려고 책동한다고, 이것은 그들의 상투적수법이라고 하시면서 지난 8월 15일에 있은 저격사건에 대한 책임도 공화국과 총련에 넘겨씌워보려고 책동을 벌리고있는데 대하여 격하신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1974년 8월 15일 서울의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진행된 이른바 광복절기념식이라는데서는 문세광이라는 민단계재일동포청년이 남조선당국자의 녀편네를 사살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당시 남조선괴뢰들은 이 사건을 《북의 공작원》인 총련계재일조선인 문세광이 획책한 《대통령암살기도》로 떠들면서 그 책임을 공화국과 총련에 넘겨씌우려고 교활하게 책동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것은 허황하기 짝이 없는 책동이라고, 이 사건은 남조선반동들자신이나 그 상전들이 꾸민 음모가 틀림없다고 하시면서 이번 사건은 남조선당국자들이 지금과 같은 폭압통치를 계속하면 남조선인민들의 반항이 더욱 높아지고 세계인민들의 여론도 자기들에게 불리하게 조성되겠기때문에 남조선인민들과 세계인민들의 주의를 딴데로 돌리기 위하여 조작한 음모이라고 그 검은 내막을 발가놓으시였다.

일명 8.15저격사건, 문세광사건 등으로 불리운 이 사건은 후날 남조선괴뢰들이 저들의 심각한 통치위기의 출로를 찾기 위하여 꾸며낸 정치적모략극, 서툰 자작극이라는것이 밝혀지게 되였다.

술렁이는 장내를 굽어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조선반동들이 서툰 음모를 꾸며가지고 소동을 피워도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하시면서 남조선반동들은 그 어떤 술책으로써도 진실을 가리울수 없으며 인민들의 혁명투쟁을 가로막을수 없다고, 지금 남조선의 현실이 그것을 잘 보여주고있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무렵 남조선에서 일어난 저격사건의 파문은 며칠도 안되여 가라앉고말았으며 청년학생들의 반《정부》투쟁은 또다시 격렬하게 벌어지고있었다.

서울대학교와 고려대학교, 리화녀자대학교를 비롯한 여러 대학의 청년학생들은 구속된 학생들을 즉시 석방하며 학원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보장할것을 요구하여 투쟁에 나섰다. 청년학생들뿐아니라 남조선의 로동자들도 투쟁에 용감히 일떠서고있었다. 울산조선소 로동자들이 일으킨 폭동은 그 하나의 대표적인 실례였다. 질겁한 괴뢰경찰들은 투쟁에 나선 로동자들에게 야수적인 폭행을 가하였으며 860여명이나 련행해갔다.

이러한 사실들에 대하여 이야기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모든것은 압박이 있고 탄압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반항이 있다는 혁명의 진리를 다시금 뚜렷이 증명해주고있다고 하시면서 오늘 우리 나라에 조성된 정세하에서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이룩하기 위하여서는 반드시 남조선에서 반파쑈민주화투쟁을 힘있게 벌려 남조선사회의 민주화를 실현하여야 한다고 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남조선인민들의 반파쑈민주화투쟁이 우여곡절을 겪고있지만 그것은 앞으로 더욱 강화될것이며 반드시 승리할것이라고 확신에 넘쳐 말씀하시였다.

민족의 분렬을 하루빨리 끝장내기 위하여 그처럼 정력과 로고를 바쳐가시는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모습을 우러르는 재일동포학생들은 가슴속에 솟구쳐오르는 뜨거운 격정을 금할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재일조선청년들앞에 나서는 과업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동무들은 갈라진 조국을 통일하는것이 우리 인민의 최대의 념원이며 민족지상의 과업이라는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된다고, 조국을 하루빨리 통일하기 위하여서는 남조선청년들이나 일본에 있는 민단청년들이나 할것없이 조선의 모든 새 세대들이 한데 뭉쳐 7. 4남북공동성명에 밝혀진 자주, 평화통일, 민족적대단결의 3대원칙과 조국통일5대방침을 관철하기 위하여 투쟁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이날 연설을 마치신 후 방문단성원들과 기념사진을 찍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후 1시가 지나서야 그들과 작별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때로부터 이틀이 지난 9월 26일에는 재일본조선고급학교 학생들이 준비한 예술소조공연을 보아주시고 치하의 말씀도 해주시였으며 친히 무대에까지 오르시여 기념사진도 찍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친어버이사랑과 믿음을 받아안은 재일조선청년들은 이들만이 아니다.

1975년 8월 17일 임익관동포를 비롯한 재일본조선청년대표단 성원들도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고 크나큰 사랑과 믿음을 받아안았다.

그날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외국방문을 마치고 돌아오신지 며칠이 지난 뒤였다.

지방에 대한 현지지도의 길에 계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청대표단성원들이 돌아가지 않았다는것을 아시고 어두운 밤 억수로 퍼붓는 비속을 뚫고 차를 달려 평양으로 올라오시였다.

수령님의 부르심을 받은 재일동포청년들은 한달음에 그이께서 계시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들을 맞아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으시고 매 사람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시였다.

이윽고 대표단단장은 총련결성 20돐에 즈음하여 재일조선청년들과 재일동포들의 뜨거운 마음을 담은 감사편지를 위대한 수령님께 삼가 드리기 위하여 1만 5천리를 달려 조국에 왔다고 정중히 보고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를 대견하게 바라보시며 나는 오늘 동무들을 만나게 된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고 하시면서 이국땅에서 1만 5천리나 자전거달리기를 하여 조국에 와서 총련결성 20돐 경축행사에 참가한 그들에게 감사를 주시였다.

임익관동포를 비롯한 대표단성원들은 너무도 크나큰 영광에 감격을 금치 못해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의 조국방문정형도 알아보시고 얼마전 자신께서 진행하신 유럽과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에 대한 외국방문정형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시였다. 이어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앞당기기 위하여 남조선청년학생들과의 사업을 잘할데 대하여 언급하시면서 우리는 어떻게 하나 남조선청년학생들이 사회의 민주화와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에 적극 나서도록 잘 도와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일본에 남조선청년학생들이 많이 오가고 일본에서 공부하는 남조선류학생들도 많은것만큼 조청조직들이 그들에게 남조선사회의 민주화를 실현하며 미제를 몰아내고 조국을 통일하기 위한 투쟁에 적극 떨쳐나서도록 영향을 주어야 한다고, 그렇게 하면 그들이 남조선에 돌아가서 하나가 열, 열이 백, 백이 천, 천이 만을 교양하는 식으로 많은 남조선청년학생들을 교양할수 있을것이라고 알기 쉽게 설명해주시였다.

조국통일투쟁은 그 어느 특정한 사람들만이 하는 사업이 아니라 조선사람 누구나가 다 하나로 굳게 뭉쳐 떨쳐나서야 하는 전민족적인 위업이며 정의감에 불타는 청년학생들모두가 통일애국의 선봉에서 투쟁해나갈 때 조국통일의 날이 앞당겨질수 있다는 고귀한 진리가 담겨진 말씀이였다.

이날 대표단성원들모두에게 친히 자신의 존함이 새겨진 손목시계를 안겨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마련하신 오찬회에 나오시여 동무들이 돌아가서 조국통일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 투쟁하여줄것을 바라면서 동무들의 건강을 위하여 잔을 들자고 하시며 사랑의 축배잔을 찧어주시였다.

참으로 재일조선청년들을 조국통일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투쟁하는 애국청년들로 키우기 위하여 기울이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과 믿음은 끝이 없었다.

친어버이의 그 한량없는 사랑속에 성관수동포를 비롯한 재일조선청년대표단 성원들도 1977년 4월 25일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평양의 모란봉경기장(당시)에서 진행하는 경축행사에 참가하여 그이께 제일선참으로 인사를 올리고 대집단체조도 관람하였으며 사랑의 기념사진도 제일먼저 찍는 크나큰 믿음과 영광을 받아안을수 있었던것이다.

그처럼 크나큰 믿음과 사랑을 베풀어주시고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이 조국을 떠날 때에는 몸소 편지를 보내시여 애국심을 지니고 나라의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 크게 이바지할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재일조선청년들에 대한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이처럼 뜨겁고 세심한 사랑과 믿음에 의하여 바다건너 일본땅에서도 새 세대 조선청년들은 조선민족의 넋을 굳게 간직하고 나라의 자주적통일을 위한 애국의 길을 꿋꿋이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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