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곡한 당부

 

떠나온 조국을 못 잊어 세월이 흐를수록 더더욱 못견디게 그리워하는것은 해외교포들의 공통된 심정이다. 더우기 대부분이 일제식민지통치시기 망국노의 설음을 안고 피눈물을 뿌리며 정든 조국땅을 떠난 수난자들의 후손인 해외조선동포들의 경우 조국에 대한 그리움은 남다른것이라고 할수 있다.

그 수난자들의 후손들이 사회주의조국의 품을 어머니품이라 부르며 끊임없이 찾아오고있다.

주체83(1994)년 4월이였다. 그때 국제고통련(전 쏘련조선통일촉진위원회) 고문으로 사업하고있던 정일심녀성이 뜻깊은 4월의 명절을 앞두고 조국을 방문하였다.

그로 말하면 이전 쏘련에서 살다가 해방후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유명한 조국개선연설을 접하고 조국으로 나와 건군사업에 이바지하였고 미제가 침략전쟁을 일으키자 선두땅크를 타고 서울에 입성하여 방송국을 점령한 후 서울해방을 선포하였으며 사단장병들을 원쑤격멸에로 불러일으키다가 수원해방전투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105땅크사단 문화부사단장 안동수영웅의 부인이였다.

안동수영웅이 희생된 때로부터 수십년의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언제나 그에 대하여 잊지 않으시고 그들의 유가족들을 친어버이심정으로 보살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뜻깊은 기념일이나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면 안동수영웅의 부인인 정일심녀성과 그의 자녀들을 조국으로 불러주시고 만나주시였다.

4월 11일 이날도 언제나와 같이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그들을 따뜻이 맞아주시며 오찬을 마련하여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늘 정일심동무가족일행을 다시 만나니 매우 기쁘다고 말씀하시였다.

이어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정일심동무가족일행을 만나니 안동수동무생각이 난다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안동수동무는 해방직후 쏘련에서 나온 우리 사람들가운데서 조선말도 잘하고 애국주의사상도 강한 동무였습니다.》

전장에서 쓰러진지 수십년세월이 흘러 안해의 기억속에서도 그 모습이 삭막해지는 남편의 표상을 방불히 그려내시는 이 말씀을 받아안으며 정일심녀성은 다섯해전에 자기들을 처음으로 만나주시였을 때부터 남편 안동수에 대한 감회깊은 회고의 말씀을 해주시며 아까운 사람이 너무 일찍 갔다고, 그가 좀더 살아있었으면 많은 일을 할수 있었을것이라고, 안동수동무는 31살밖에 살지 못하였지만 자기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빛나는 한생을 바친 훌륭한 사람이였다고 높이 평가하시던 그이의 우렁우렁한 음성이 그대로 귀전에 울려와 격정을 금할수가 없었다.

살길을 찾아 고향을 떠난 아버지, 어머니의 등에 업혀 이국땅에까지 흘러간 안동수가 조국을 해방하고 개선하신

장군님께서 새 조국건설에 누구나 떨쳐나설것을 호소하시였다는 소식을 듣고 조국으로 찾아온것은 조선청년으로서 너무나도 응당한 소행이였다. 그런데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를 여러차례 만나주시였으며 새 조국건설에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치려는 그의 애국열의를 믿으시고 보안간부학교 교원, 인민군신문사 책임주필, 105땅크사단 문화부사단장의 중책까지 맡겨주시며 유능한 군사정치일군으로 키워주시였을뿐아니라 그가 전사한 다음에는 공화국영웅으로 온 민족앞에 내세워주시였다.

해외에서 자란 평범한 한 청년을 나라의 영웅으로 키워주신 은공만도 다 갚을 길이 없는데 준엄한 전쟁의 그 어려운 시기에는 정일심녀성이 혼자몸으로 아이들을 키워야 하는 고생을 헤아리시여 거액의 보조금까지 보내주신 위대한 수령님.

온 가족이 안동수영웅처럼 살아야 한다시며 안동수영웅의 아들딸을 위하여 일편단심 변함없이 살아왔다는 뜻에서 부인의 이름은 정일심으로, 묘향산에서 만났다는 뜻에서 아들이름은 안향산으로, 딸들은 조선의 꽃들인 목란과 진달래의 란자와 진자를 따서 안향란, 안향진으로 고쳐주시여 그들이 조국의 아들딸로 인생의 새 출발을 하도록 은혜를 베푸신 그이이시였다.

정일심녀성과 그의 가족들이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받아안은 사랑과 은정을 돌이켜보며 격정을 금치 못해하는데 그이께서는 안동수가 땅크사단 문화부사단장을 하면서 우리 나라에 와있던 쏘련군대 기계화보병사단장과의 사업을 잘하여 그에게 좋은 영향을 많이 준데 대하여서와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잘 싸운데 대하여 회고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안동수동무가 속한 부대가 수원 남쪽에서 처음으로 미군과 맞다들었을 때의 일을 이야기하시였다. 그때 포로된 미국병사들은 우리 군인들에게 금가락지를 내놓으면서 목숨만 살려달라고 빌었는데 우리 군인들은 인민군대가 금가락지 같은 금붙이나 좋아하는 너절한 군대인줄 아는가고 하면서 그것을 줴던졌다고 하시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가 사상사업을 맡아본 사단군인들의 사상정신상태가 훌륭하였다는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인민의 조국해방전쟁은 미제를 비롯한 16개국 무력침공자들을 반대하는 어려운 싸움이였다고 하시면서 사실 우리 나라와 같이 작은 나라가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미제와 그 15개 추종국가 무력침공자들을 대상으로 하여 싸운다는것이 간단한 일이 아니였다고, 그러나 우리 인민은 미제침략자들을 반대하는 성스러운 싸움에서 승리하였다고 말씀하시였다.

정일심녀성과 그의 가족들이 마음속으로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신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를 받았기에 조선이 승리한것이라는 자부심을 깊이 느끼고있는데 그이께서는 추연한 기색으로 《안동수동무는 1950년 7월 6일에 전사하였습니다.》라고 뇌이시는것이였다.

그러시고는 한동안 말씀을 끊으시였다가 이렇게 이으시였다.

《나는 정일심동무가족이 안동수동무처럼 조국통일과 조국의 륭성번영을 위하여 헌신분투하기 바랍니다.》

조국통일과 조국의 륭성번영을 위하여 헌신분투하라! 참으로 흉벽을 치는 가르치심이였다.

돌이켜보면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언제인가 그들을 만나주신 자리에서도 조국통일을 위하여 적극 투쟁할데 대하여 이르시였다.

그때 그이께서는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전쟁을 할 의사가 없다는것을 천명하였다고, 그리고 북과 남이 고려민주련방공화국을 창립한다고 하여도 남조선을 공산주의화하지 않으며 또 나라의 통일이 누가 누구를 먹거나 먹히우는것으로 되여서는 안된다는것을 밝혔다고, 그러나 미국은 우리 나라의 통일을 반대하면서 남조선을 계속 깔고앉아 군사기지로 리용하려 하고있다고, 우리는 온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조국통일을 방해하는 세력들을 반대하여 투쟁하여야 한다고, 그리하여 조국을 기어이 통일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조국통일, 그것은 조선사람 그 누구에게나 그러하였지만 정일심녀성의 가족에게 있어서 남달리 강렬한 소원이고 꿈속에도 바라고바라는 숙망이다.

안동수의 피가 뿌려지고 그의 육체가 잠들어있는 분계선너머 저 남녘땅!

마치도 안동수의 령혼이 어서빨리 통일을 이룩하여 자기가 조국의 품에 안기게 해달라고 웨치는것만 같았다.

아버지가 다하지 못한 일을 자식들이 이어나가는것은 도덕적의무이기도 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정일심일가는 통일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큰 책임과 과업을 안고있는것이다. 해외에 산다고 하여 이 민족적책임이 덜어지는것은 결코 아니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은 이러한 력사적사명감에 대하여 다시한번 깨우쳐주시는것만 같아 마음속으로 꼭 그렇게 살겠다는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정일심녀성은 자식들의 마음까지 합쳐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을 관철하기 위하여 적극 투쟁할 결의를 말씀드리였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결의가 좋다고 하시면서 정일심동무가 이제는 나이가 많은것만큼 자식들에 대한 교양에 특별한 관심을 돌려야 한다고, 자식들을 잘 교양하여 조국통일과 나라의 부강발전을 위하여 적극 투쟁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일생 좌우명으로 삼아야 할 당부의 가르치심이였다.

안동수영웅이 조국에서 생활한 나날은 불과 두해 좀 남짓한 기간이였다. 조국통일을 위한 성스러운 싸움터에서 땅크를 몰아가던 그가 세상을 떠난지도 어언 60여년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오늘도 조국을 위해 목숨바친 그의 애국의 넋을 잊지 않고 내세워주신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숭고한 의리에 떠받들려 안동수영웅은 오늘도 민족의 기억속에 영생하고있으며 그 자녀들도 해외에서 통일애국의 길을 꿋꿋이 걸어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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