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희들을 제일 사랑한다》
아침부터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내리던 주체82(1993)년 1월 20일이였다.
희망찬 새해를 맞이한 기쁨과 환희에 넘쳐있던 통일애국투사 박정호의 자녀들과 그들의 가족들은 이날 위대한 김일성주석을 만나뵙는 크나큰 영광을 지니였다.
그 전해에 박정호의 자녀들을 만나주시였을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앞으로 너희 형제들만이 아니라 가족들까지 다 만나주겠다고 하시였는데 그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박정호의 자녀들과 함께 그들의 가족들까지 모두 불러주시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을 반가이 맞아주시였다.
그이께서는 다함없는 경모의 정을 담아 그들이 삼가 올리는 인사를 받아주시면서 지난해 5월에 너희들을 만났을 때 온 가족을 다 만나주겠다고 약속하였기때문에 오늘 불렀다고, 너희들이 또 보고싶어서 오라고 하였다고 정을 담아 말씀하시였다.
감격을 금치 못해하는 유자녀들과 자리를 같이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박정호의 자녀들의 생활형편에 대하여 친어버이심정으로 구체적으로 물어보시며 그들의 생활에 깊은 관심을 돌려주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오찬을 마련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너희들을 언제나 잊지 않는다고 하시며 자신께서 박정호의 가족을 늘 잊지 못하는것은 해방직후에 울타리 하나 사이에 두고 앞뒤집에서 살면서 한집안식구처럼 지냈고 그후 너희 아버지가 잘 싸우다가 희생되였기때문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박정호를 처음으로 알게 되신것은 해방직후 그가 평남도당에서 일할 때였다.
박정호로 말하면 원래 평안도출신으로 대학까지 나온 지식인으로서 애국심이 강한 사람이였다. 강도 일제가 조선을 강점하자 국내외에서 반일독립운동을 하며 동분서주해온 그는 일제경찰에 체포되여 서대문형무소와 평양경찰서에서 여러해동안 옥중살이도 하였다.
나라없던 그 시절 옳바른 투쟁의 길에 들어서지 못한것으로 하여 겪은 불행과 고통을 통절히 느끼였던 그는 해방후 위대한 수령님을 몸가까이 모시고 일하게 되면서부터 민족이 낳은 절세의 위인을 끝없이 흠모하며 그이께 자기의 운명을 전적으로 의탁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제식민지통치시기 반일애국의 지조를 굽히지 않고 굴함없이 투쟁해온 그의 이러한 애국심을 귀중히 여기시고 조국과 민족을 위해 헌신하는 참다운 애국자로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절세의 위인의 한없는 믿음과 사랑속에서 그는 조국과 민족이 둘로 동강나는 시국에 자기가 무엇을 하여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깊이 자각하였으며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에 용약 나서게 되였다.
그후 박정호는 자기의 영웅적인 삶을 통하여 수령에 대한 신념과 의리를 변함없이 간직하고 목숨바쳐 지킬 때 삶도 빛나고 인생의 마무리도 잘할수 있다는것을 보여주었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근 10년세월 그가 걸어온 통일애국의 길은 참으로 고심참담하고 피어린 고난의 길이였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 계시는 한 조국통일의 그날은 반드시 밝아온다는 신념을 안고 신심에 넘쳐 싸우던 그는 1957년 가을 뜻밖에도 적들에게 체포되였다.
남조선의 주요신문이라고 하는 《동아일보》, 《경향신문》, 《서울신문》이 박정호에 대한 체포와 취조, 재판과정에 대하여 무려 130여건의 기사를 내고 20여건의 사진을 게재한 사실만으로도 그때 당시 사찰계는 물론 남조선의 사회적이목이 박정호사건에 얼마나 집중되여있었는가를 잘 말해주고있다.
파쑈교형리들은 박정호를 체포한 그날부터 갖은 방법을 다하여 그를 굴복시키려고 미친듯이 날뛰였다. 놈들은 그에게 비밀을 대라고 하면서 형언할수 없는 악형과 야만적인 고문을 하루에도 몇차례씩 들이대였다.
하지만 박정호는 자기의 지조를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
그 어떤 고문과 회유로도 그를 굴복시킬수 없게 된 교형리들은 기만적인 재판을 벌려놓고 끝내 그에게 사형을 언도하였다.
그가 사형장으로 나가는 날 파쑈교형리들은 전향서를 쓰면 목숨은 건질수 있다고 하면서 그를 또다시 회유하려고 하였다. 그는 이날 적들이 요구하는 전향문이 아니라 불굴의 의지와 신념의 마음을 담아 다음과 같은 유서를 남기였다.
《나는 죄인이 아니다. 나는 내 민족을 사랑했고 나라와 민족의 장래발전을 위하여 갈라진 조국을 통일하시려는 김일성장군님의 높으신 뜻을 받들고 통일을 위해 싸운 사람이다.
…
자식들에게 부탁하고싶은것은 김일성장군님의 뜻을 받들어 통일을 이룩하고 조국과 민족앞에 부끄럼없이 살기를 바란다.》
언제인가 남조선에서 수십년세월 감옥살이를 하다가 공화국의 품에 돌아온 한 통일애국투사는 《의리를 지키는 계선까지가 사람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한적이 있다. 그의 이 말은 의리가 인간에게 있어서 얼마나 소중한가를 가르쳐주고있다.
한번 은혜를 입으면 그것을 두고두고 잊지 않고 갚으려고 하는것이 인지상정일진대 하물며 절세의 위인의 하해같은 사랑과 믿음을 받아안은 전사임에야.
그의 이렇듯 영웅적인 최후는 바로 민족의 태양이신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전사의 충정과 의리의 정화인것이다.
그가 영웅적으로 희생되였다는 비보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못내 가슴아파하시였다. 그이께서는 하시던 일을 뒤로 미루시고 그를 추모하기 위하여 추모모임을 마련해주시였다. 그리고 자신의 명의로 된 화환을 보내주시였으며 그의 빛나는 생애와 공적을 높이 평가하시여 공화국공민의 최고영예인 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하도록 하시는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대해같은 믿음과 사랑속에서 통일애국투사로서의 참된 삶을 빛내인 아버지의 한생을 돌이켜보는 박정호의 자녀들의 가슴속에서는 격정의 파도가 일었다.
그이께서는 계속하여 해방직후 너희 아버지, 어머니가 나를 많이 도와주었다고 하시면서 회고의 말씀을 하시였다.
그이의 말씀을 받아안는 그들의 머리속에는 해방직후에 위대한 수령님의 댁과 울타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면서 백두산위인들의 한량없는 은정을 받아안던 지난날의 일들이 영화의 화면처럼 스쳐지나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945년 초가을 어느날 평남도당에서 일하던 박정호의 집을 처음으로 찾으신 후부터 자주 그의 집에 들리시여 가족들과 허물없이 지내시였다. 어느날에는 그의 자녀들을 위해 그네도 매주시고 자전거도 마련해주시였으며 저수지에 데리고 나가시여 친히 물고기를 잡아 어죽도 쑤어주시면서 친어버이사랑을 안겨주시였다.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녀사께서도 색다른 음식이 생기거나 귀한 물건이 생기면 몸소 그의 집에 들고 오기도 하시였고 박정호의 넷째자식이 백날을 맞을 때에는 친히 옷을 지어 보내주시였으며 그의 장모가 60돐생일을 맞을 때에도 고급천으로 옷을 지어주시고 생일상까지 차려주시였다.
어찌 그뿐이랴.
박정호가 희생된 후 그의 자녀들에게 베풀어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친어버이사랑과 은정은 대를 이어 전해갈 동지적의리의 전설과도 같은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돌아오지 못한 그의 자녀들만이라도 찾아내여 끌끌하게 키워 희생된 아버지의 뜻을 이어나가게 하시려고 깊이 마음써오시였다. 당과 국가사업을 령도하시는 그처럼 바쁘신 속에서도 수령님께서는 지난 전쟁시기 흩어져 행방을 알수 없는 박정호의 자녀들을 찾기 위해 각지에 수소문도 해보시고 수많은 일군들을 파견하시여 찾고 또 찾으시였다.
생전에 그가 우리에게 부탁한 애들을 꼭 찾아서 우리가 그애들의 아버지노릇을 해야 한다고, 그애들을 찾으면 시름을 놓겠다고 하시며 부모없이 그 어디에서 외롭게 살아갈 유자녀들생각으로 밤을 꼬박 새우기도 하신 그이이시였다.
언제인가 외국방문의 길에 오르시려고 비행기에 다가가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 일군을 부르시여 요즘 내가 찾는 애들이 있습니다, 내가 없는 사이라도 계속 찾아주시오, 부탁합니다라고 하시며 박정호의 유자녀들을 찾을 방도를 가르쳐주시고 찾으면 잘 돌봐주라고 거듭 당부하기도 하시였다.
그것은 결코 부모잃은 아이들에 대한 단순한 동정심이 아니였다. 그것은 조국통일의 길에서 싸우다 먼저 간 통일애국투사에 대한 그이의 한없이 숭고한 동지적의리였으며 그의 후대들을 한품에 안아 보살펴주어 아버지의 뒤를 잇도록 하시려는 친어버이의 사랑이였다.
그토록 찾고찾으시던 박정호의 자녀들을 마침내 찾아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잃었던 자식들을 다시 찾으신듯 기쁜 마음을 진정하지 못하시였다.
1971년 1월 24일 그들을 친히 몸가까이 부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버지, 아버지!》라고 목메여부르며 자신의 품에 달려와 안기는 그들을 꼭 껴안아주시고 《그래그래, 내가 너희들의 아버지다. 이젠 내가 너희들의 아버지야!》라고 눈물에 젖은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너희들을 보니 너희 아버지생각이 난다고, 너희 아버지는 나의 친구였고 훌륭한 혁명가였다고, 너희 아버지는 내가 죽으라면 죽고 살라면 사는 그런 각오가 되여있는 훌륭한 혁명가였다고, 너희 아버지는 혁명밖에 몰랐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어 오래동안 직접 건사해두셨던 한장의 편지를 꺼내시였다. 박정호가 자신께 드리였던 편지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에게 편지를 보여주시면서 너희 아버지의 필적이니 기억해두라고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박정호와 마지막으로 만나시였던 잊을수 없는 날을 회고하시면서 너희 아버지는 끝까지 절개를 지킨 훌륭한 혁명가였다고, 너희 아버지의 투쟁업적은 우리 조국청사에 길이 빛날것이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이날 다른 일은 뒤로 미루시고 유자녀들을 위해 오랜 시간을 보내신 그이께서는 식사나 같이하자고 하시며 그들을 식탁으로 이끄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먼저 그들의 술잔에 술을 부어주시며 혁명의 길에서 싸우다 돌아간 너희 아버지를 추억하여 이 잔을 들자고 하시였다.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전사들에 대한 숭고한 사랑이 그대로 고인 술잔을 받아들고 그들은 가슴속에 치미는 격정을 누를길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어 류달리 눈에 띄는 갈비국그릇을 그들앞으로 옮겨놓으시며 감회깊은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너희 아버지는 음식중에서도 이런 갈비국을 몹시 좋아하였단다.
오늘 너희들이 온다기에 우정 이렇게 갈비국을 끓여놓았으니 사양말고 많이들 먹어라.》
그러신 후 잠시 동안을 두시였던 그이께서는 갈리신 음성으로 《아버지몫까지 대신해서…》라고 하시고는 말씀을 더 잇지 못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리에서 일어서시여 천천히 창문가로 가시였다.
전사에 대한 그리움을 안으시고 한동안 창밖을 바라보시던 그이께서는 손수건을 눈가로 가져가시는것이였다.
통일애국의 길에서 응당 해야 할 일을 하다가 쓰러진 한 전사를 그토록 잊지 못하시는 수령님의 숭고한 사랑앞에서 유자녀들은 다시금 감격의 눈물을 쏟고야말았다.
이렇게 유자녀들을 찾아주시고 친어버이사랑을 부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박정호의 자녀들을 인차 찾지 못하여 잘 돌보아주지 못한것을 생각하면 잠이 다 오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긴장한 사업이 겹치는 그 바쁘신 가운데서도 일군들에게 일일이 과업을 주시여 그들을 각급 학교에 보내여 마음껏 공부하도록 하시였으며 또 학교를 마치였을 때에는 중요한 직무도 맡겨주어 통일애국의 대를 이어나가도록 해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자신의 탄생 60돐을 맞으신 날에도 그들을 친히 만나주시였다.
그날 박정호의 자녀들은 경사스러운 탄생일을 맞으시는 위대한 수령님께 자기들이 마련한 소박한 선물을 삼가 드리였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너희들더러 누가 선물을 가져오라고 하더냐, 나에게는 너희들이 다 혁명가가 되는것이 제일 큰 선물이다라고 하시면서 가볍게 나무라시였다. 그러시고는 너희들을 보면 너희 아버지생각이 나서 내 가슴이 더 아프다고, 내 한평생 너희 아버지, 어머니, 너희들을 잊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나는 너희들을 제일 사랑한다.》
그이의 음성은 깊이를 알수 없는 사랑의 물결이 되여 그들의 가슴속에 흘러들었다.
그이께서는 그 다음날에도 박정호의 자녀들을 또다시 만나주시고 그들의 아버지에 대하여 감회깊이 회고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방직후에 평양에 나오시여 박정호를 처음 만나시던 일과 그에게 중요한 임무를 맡기신데 대하여 이야기하시면서 너희 아버지는 나에게서 과업을 받고 장군님, 내 한평생 장군님 한분만을 높이 모시고 장군님을 위해 이 한몸 바치렵니다, 장군님 위해 이 한몸 싸우다 쓰러지면 대를 이어서라도 기어이 장군님 주신 과업을 수행하렵니다라고 하였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너희들은 아버지의 대를 이어 당과 혁명에 무한히 충직한 혁명가가 되여야 한다고, 부모들이 못다한 혁명을 너희들이 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유자녀들에게 자신의 존함이 새겨진 시계를 선물로 안겨주시였다.
부모는 설사 행복한 자식이라고 해도 마음을 놓지 못하는 법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에도 박정호의 자녀들을 몸가까이 부르시여 그들의 생활을 친어버이심정으로 보살펴주시였다.
그러시고도 오늘 또 이렇듯 유자녀들뿐아니라 그 가족들까지 모두 불러주시고 오찬까지 마련해주시며 친어버이사랑을 안겨주시는것이였다.
철없던 그 시절부터 이날이때까지 자기들을 따뜻이 보살펴주고 키워주신 절세의 위인들의 은혜로운 사랑을 되새길수록 박명철을 비롯한 박정호의 자녀들의 가슴속에는 한없는 고마움의 정이 차올랐다.
감격에 목이 메여 앉아있는 그들에게 음식을 권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막내딸에게 네가 아버지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자랐을것이라고, 아버지의 얼굴모색을 알려면 오빠를 보면 된다고 하시면서 아들이 신통히도 아버지의 모습을 닮은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40여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자기 아버지를 잊지 않으시고 회고해주시며 아버지를 모르고 자란 막내딸에게 아버지의 모색을 그려주시려고 애쓰시는 수령님의 깊은 심중이 안겨와 그들은 눈시울이 뜨거워났다.
그이의 말씀에는 유자녀들이 아버지의 모색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닮기를 바라시는 간절한 기대와 크나큰 믿음이 담겨져있는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하였다.
이때였다. 방안의 무거운 분위기를 바꾸시려는듯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박정호의 아들이 대학에 다닐 때 처와 련애하던 이야기를 꺼내시며 좋은 일이라고, 련애를 바로하였다고 하시면서 크게 웃으시였다.
한없이 인자하시고 자애로우신 그이의 말씀에 접한 장내에서는 가벼운 웃음이 일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어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꼽으시며 일을 이악하게 하고있다고, 일밖에 모른다고, 그래서 김정일동지가 늘 칭찬한다고 과분한 치하의 말씀을 하시였다.
구절구절 믿음과 격려로 충만된 그이의 말씀을 받아안고 격정을 금치 못해하던 박정호의 아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저 수령님의 은덕에 보답할 마음안고 일했을뿐이라고 겨우 말씀드리고는 머리를 수그리고말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시며 나는 너희들이 일을 잘한다는 말을 들을 때면 더 기특하게 여겨지고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고 하시며 못내 대견해하시였다.
이어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만하거나 교만해지지 말고 앞으로 더 일을 잘해야겠다고 하시면서 일을 잘하자면 물욕과 직위욕이 없어야 한다, 혁명가들이 제일 경계해야 할것은 물욕과 직위욕이다, 혁명가들이 혁명사업에 몸바칠 생각을 하지 않고 물건과 직위를 탐내면 과오를 범하게 된다, 혁명가들은 남보다 더 잘살아보겠다는 생각을 할것이 아니라 인민들이 강냉이죽을 먹으면 나도 강냉이죽을 먹겠다는 생각을 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더없이 간고하고 준엄했던 항일혁명투쟁시기와 조국해방전쟁시기를 회고하시면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먹으면 마음도 편안하지 못하다고 말씀하시는것이였다.
그이의 말씀을 한마디한마디 되새기려니 인민들속에서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누시며 언제나 소박하고 검소하게 생활해오신 위대한 수령님의 한평생이 가슴뜨거이 안겨와 격정을 금할수 없었다.
박정호의 자녀들은 위대한 수령님께 기쁨을 드릴 마음으로 그이께 노래를 불러드리겠다고 말씀드렸다.
그이께서는 못내 기뻐하시며 어서 부르라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날 유자녀들이 부르는 노래를 들어주시면서 곡에 맞추어 박자를 쳐주시였으며 노래가 끝나자 아주 잘 부른다고 치하해주시면서 먼저 박수를 쳐주시였다.
그리고 막내딸이 읊는 자작시를 들으시면서는 천천히 손수건을 눈가로 가져가시였으며 시가 끝나자 저으기 갈리신 음성으로 고맙다고, 앞으로 일을 잘하라고, 자신을 친아버지로 생각하고 일을 잘하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이날 그들이 심장으로 부른 노래와 자작시는 그대로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 드리는 심장의 맹세였다.
《나는 너희들을 제일 사랑한다.》
수십년전에 떠나간 통일애국투사를 한생토록 잊지 못하시며 그 후대들의 친어버이가 되시여 아무 구김살도 없이 키워주시고 애국의 대를 꿋꿋이 이어놓으신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한량없는 사랑과 숭고한 의리에 대한 이야기는 만사람의 심금을 울리며 길이 전해지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