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시백의 세 아들을 만나시여

 

주체81(1992)년 12월 어느날 성시백의 세 아들은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자기들을 친히 부르신다는 꿈같은 소식에 접하게 되였다.

진정할수 없는 흥분속에 밤을 새우고 새날을 맞이한 그들은 금수산의사당(당시)으로 향하였다.

그들이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곳에 당도하니 잠시후 그이께서 나오시는것이였다.

그들은 흥분된 나머지 정성껏 마련한 꽃다발들을 위대한 수령님께 올릴 생각도 못하고 큰절을 드리였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큰절은 무슨 큰절이야. 손이나 잡아보면 되지.》라고 하시면서 그들을 한품에 안아주시였다.

그들 삼형제를 량옆에 세우시고 사진을 찍으신 그이께서는 기념사진은 여러명 함께 찍는것보다 개별적으로 따로따로 찍어야 더 기념이 된다고 하시면서 한명씩 자신의 곁에 세우시였다.

먼저 간 통일전사를 생각하시여 그에게 다 주지 못한 혈육의 정을 그의 후대들에게 쏟아부으시며 깊이 마음쓰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뜨거운 인정앞에 모두가 감격을 금치 못하였다.

기념촬영이 끝나자 그이께서는 그들을 오찬회장으로 이끄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무들을 위하여 오찬을 마련했는데 어려워하지 말고 많이들 들라고 하시고는 좀더 일찍 만나야 했을걸 늦게 만나 안되였다고, 언제부터 만나보려고 했으나 시간이 허락되지 않아 오늘에야 비로소 만나게 되였다고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가슴뜨거운 말씀에 커다란 감동을 금치 못해하던 성시백의 맏아들이 자기는 위대한 수령님을 네번째로 만나뵙는다고 말씀드린 다음 1948년에 수령님과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녀사께서 만경대고향집에서 아버지를 만나주신 사실을 형상한 미술작품을 찍은 사진을 보여드리였다.

그이께서는 깊은 감회에 잠기시여 사진을 보시였다.

해방직후에 서울에서 활동하던 성시백은 1948년 4월남북련석회의를 계기로 평양에 들어왔었다. 그때 그는 수염을 기르고 바지저고리차림을 했기때문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를 얼른 알아보지 못하시였다고 한다. 성시백이 자기소개를 하자 그이께서는 그를 찬찬히 보시다가 생각이 난다고, 성시백이가 분명하다고 하시면서 무척 반가와하시였다. 그는 그날 밤중으로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녀사께서 지어주신 양복을 입었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성시백의 안해가 임신중이라는것을 아시고 그에게 좋은 보약도 적지 않게 보내주시였다.

성시백의 안해는 사랑의 보약을 쓰고 순산하였는데 이때 태여난 아이가 셋째아들이였다.

그후 그들부부가 위대한 수령님과 김정숙녀사의 극진한 사랑속에 태여난 아이여서 함부로 이름을 짓지 못하고있다는 사연을 아시게 된 수령님께서는 100날을 맞는 때에 친히 뜻깊은 이름을 지어주시였고 김정숙녀사께서는 은식기 한조와 꼭지은숟가락을 보내주시였다.

사진을 보시며 회억에 잠겨계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감회깊은 어조로 그때 생각이 난다고 하시고는 성시백이 1948년 남북련석회의를 성사시키기 위해 기울인 노력에 대하여 이야기해주시였다.

이윽고 그이께서는 성시백의 막내아들에게 몇살인가, 서울에서 언제 들어왔는가고 물으시였다.

그가 1950년 전쟁이 일자 어머니와 형제들과 함께 평양으로 들어왔다고, 그때 두살이던 자기는 어머니의 등에 업혀 북행길에 올랐었다고, 공화국의 품에 안긴 다음 어머니는 여생을 아무런 불편도 없이 보냈고 사망후에는 애국렬사릉에 안치되였다고 말씀드렸다.

한동안 말씀이 없으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윽하여 너희들 아버지는 중어도 잘하고 영어도 잘했다고 하시며 또다시 성시백에 대한 말씀을 하시였다.

그때 막내아들이 어머니가 생전에 귀중히 간수해온 아버지의 유물에 대해 말씀올리였다.

성시백의 안해는 세상을 떠나면서 막내아들에게 남편이 소중히 간직하고있던 금회중시계를 물려주었었다.그 금회중시계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1947년에 성시백을 처음으로 만나시였을 때 호박물부리, 라이터와 함께 선물로 주신것이였다. 성시백은 나라의 통일을 위해 어려운 싸움을 하던 시절 늘 그것을 보면서 힘을 얻었다고 한다.

그가 사형되기 직전에 그의 안해는 막내아들을 업고 형무소로 면회를 갔었다.그때 성시백은 품속에 소중히 간수하고있던 금회중시계를 안해의 손에 쥐여주며 잘 건사했다가 막내아들에게 주라고,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김일성장군님품으로 찾아가라고 당부하였다.

사연많은 금회중시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주신 그이의 안광에는 물기가 어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회중시계를 생각깊은 안색으로 오래도록 살펴보시더니 그때는 이런것밖에 없었다고 하시며 아버지의 체취가 스며있는 시계를 잘 건사하라고 이르시였다.

그이의 웅심깊은 사랑과 고결한 의리에 커다란 감동을 금치 못해하던 성시백의 자녀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위대한 수령님의 건강을 절절히 념원하는 자기들의 마음을 담은 노래를 불러드리였다.

깊은 생각에 잠기시여 노래를 들으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고맙다고 사의를 표하시고나서 자신의 존함이 모셔진 금시계를 친히 그들의 손목에 채워주시였다. 한사람한사람 시계를 채워주시고는 시계를 조절하는 방법까지 일일이 설명해주시는 그이의 다심한 손길에 그들은 너무도 감격하여 참고참아오던 뜨거운 눈물을 쏟고야말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에도 성시백의 자녀들을 육친의 정으로 보살펴주시면서 그들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통일애국의 길에서 자기의 본분을 다하도록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이것을 어찌 성시백의 자녀들만이 받아안은 사랑이라 하랴.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런 친어버이의 사랑으로 모든 통일애국투사들의 자녀들을 보살펴주고 내세워주시였다.

조국통일을 위하여 싸우다가 희생된 통일애국투사들을 언제나 잊지 않으시고 수십년이 지나도록 그들의 자녀들을 친어버이가 되시여 돌보아주시고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시기에는 그들을 한사람한사람 다 만나주시며 통일애국의 대를 꿋꿋이 이어주신 김일성주석의 한없이 숭고한 의리와 인덕에 대한 전설같은 이야기는 통일조국의 래일과 더불어 길이 전해질것이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