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교포녀류기자를 만나시여
재미교포녀류기자인 문명자, 그는 사회의 정의와 량심을 대변하는 언론인이 되겠다고 꽃나이 처녀시절부터 기자생활을 시작한 녀인이였으며 박정희의 김대중랍치사건진상을 세상에 고발한 《죄》로 미국땅에 흘러갔지만 천부적인 재능으로 미국아시안뉴스써비스 주필로, 세계기자협회 부의장으로 활약하는 녀류명사였다. 또한 그는 정치문제에서의 정확한 포착력과 론리적인 분석, 담담하고 매력있는 필치로 하여 미국내에서도 몇명 안되는 백악관출입기자가 된 인물이기도 하였다.
그런 그가 1992년 4월 공화국북반부를 방문하고 쓴 글은 내외의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였다.
그는 글에서 위대한 김일성주석을 만나뵙고 민족의 숙원인 조국통일과 인민들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시는 그이의 고매한 애족애민의 숭고한 풍모에 매혹된 자기의 심정을 사실그대로 진실하게 피력하였다.
그때로부터 2년후인 주체83(1994)년 4월 공화국북반부를 방문한 문명자는 위대한 수령님을 또다시 만나뵙게 되였다.
그날은 4월 21일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경사스러운 탄생일과 관련하여 삼가 축원의 인사를 올리는 그의 손을 따뜻이 잡아주시며 선생과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여 매우 반갑다고 다정히 말씀하시였다.
그 친근하고 다정한 음성을 격정속에 들으며 문명자는 해빛같이 환한 김일성주석님의 모습을 우러르고 또 우러러보았다.
그의 마음속에서는 김일성주석님은 그 누가 설명해주어서가 아니라 그 존재자체의 비길데 없는 위대성으로 하여 만인의 칭송을 받는 태양과 같은분이시라는 감동에 젖은 목소리가 울리고있었다.
감격과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그의 모습을 다정히 바라보시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가 자신의 탄생 80돐때 조국을 방문하여 자신을 만나고 돌아가서 쓴 접견기를 읽어보았다고 하시면서 접견기를 진실하게 잘 쓴데 대하여 고맙게 생각한다고 사의를 표하시였다.
친정집에 다시 찾아온 자식을 대하시듯 정담아 말씀하시는 그이를 우러르며 문명자는 주석님께선 몇해전이나 오늘이나 조금도 변함이 없다고 무랍없이 말씀드렸다.
그의 말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웃으시면서 세월이 흘렀으니 나도 이제는 늙었을것이라고, 그렇지만 나는 아픈데가 없고 아주 건강하다고, 그래서 지금도 정상적으로 사업하고있다고, 사람은 늙었다고 하여 가만히 있지 말고 일정하게 일을 하여야 건강에도 좋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이번 4. 15를 계기로 우리 나라를 방문하였던 미국 CNN TV방송회사 기자들과 일본방송협회 기자들이 나와 회견한 소식을 여러 나라들에서 TV로 방영하였는데 나의 건강한 모습을 보고 세계의 많은 벗들이 기뻐하였다고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문명자는 통일문제와 평화보장문제 그리고 인민생활문제를 비롯하여 많은 질문을 하였는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때마다 즉시에 명쾌하고도 만족한 해답을 주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미관계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해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우리 나라와 미국사이에는 오래동안 불미스러운 관계가 지속되고있다고, 우리는 조미사이에 존재하는 이러한 불미스러운 관계가 청산되고 정상적인 관계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이렇게 하는것은 조선과 미국 두 나라 인민들의 공통된 념원이며 현시대의 흐름에도 맞는것이라고, 미국이 우리와의 대결관념을 버리고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는 원칙에서 우리 나라와의 관계를 정상화할 용의를 가지고 나온다면 조미관계문제는 얼마든지 순조롭게 해결될수 있을것이라고 언급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지난 1월에 미국에서 빌리 그라함목사가 우리 나라를 방문하였는데 그때 그는 미국이 우리와 사이좋게 지내려고 한다는 미국대통령의 구두메쎄지를 가지고 왔다고, 그래서 나는 그에게 우리도 조미관계가 개선되기를 바란다고 하면서 앞으로 적당한 시기에 미국대통령과 만나 두 나라사이의 관계개선문제에 대하여 의견을 나눌수도 있을것이라고 말해주었다고, 빌리 그라함목사가 미국에 돌아가서 조미관계개선문제와 관련하여 내가 한 말을 대통령에게 전달하였다고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말씀을 들으며 문명자는 미국그리스도교계의 거두인 빌리 그라함목사를 친히 만나시여 순간에 감화시키신 그이의 위인적풍모에 대하여 다시금 가슴뜨겁게 되새겨보게 되였다.
공화국북반부를 방문한 빌리 그라함목사는 공화국의 현실을 목격하고 위대한 김일성주석을 직접 만나뵙고는 그이의 인품에 매혹되여 북에 한해서는 선교할 필요가 없다고, 성서의 교리들이 이미 실현된 나라, 리상의 세계, 이 세계를 이끄시는 김일성주석은 현세의 하느님, 사랑의 아버지이시다라고 칭송하여 세계를 놀래웠던것이다.
문명자가 다함없는 흠모의 마음을 금치 못하며 그이를 우러르는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실 미국이 우리에게 나쁘게 행동할 조건이 없다고, 미국이 우리와 힘으로 겨루어보려고 해서는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고, 미국이 우리와 힘으로 겨루어보려고 하다가 실패하면 세상사람들앞에서 체면이나 깎이웠지 얻을것이 없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미국이 우리 나라와의 관계를 개선하면 아시아에서 자기의 명분을 세우는데도 좋다고, 우리는 지금 미국과 제3단계의 회담을 하려고 하는데 회담을 통하여 조미관계가 개선되면 우리의 조국통일위업을 앞당겨 실현할수 있을것이라고 천명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이어 지금 미국은 남조선에서 물러가려고 하지 않는다고 하시며 미국이 어떻게 해서든지 남조선에 그냥 남아있으려고 하는것은 우리를 견제하자는데도 목적이 있지만 보다 중요하게는 남조선을 저들의 군사기지로 리용하여 중국과 일본, 로씨야를 견제하자는데 있다고, 미국사람들은 남조선을 맛있는 비게덩어리처럼 여기면서 그것을 물고 놓으려 하지 않는다고 하시였다.
이렇게 미국이 남조선에서 물러가려고 하지 않는 원인에 대하여 과학적으로 분석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미관계를 개선하자면 무엇보다도 미국사람들이 우리에 대하여 잘 알도록 하는것이 중요하다고, 지금 미국사람들이 우리에 대하여 잘 모르고있는데로부터 여러모로 오해하고있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는 결코 그 누구에게 해되는 일을 하지 않으며 남의것을 그대로 본따거나 남이 하자는대로 하지도 않는다고, 미국사람들은 우리 나라가 그 어떤 외세에도 추종하지 않는 당당한 자주독립국가이라는것을 알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 나라가 비록 분렬되여있지만 전체 인민이 당과 수령의 두리에 일심단결되여있고 모든 문제를 우리자체의 힘으로 풀어나가고있기때문에 그 누구도 감히 우리에게 이래라저래라 하지 못합니다.
지금 세계적으로 우리 나라처럼 자주적으로, 민주주의적으로 나가는 나라는 얼마 없습니다. 미국사람들이 진실로 자주와 민주를 바란다면 우리와 사귀지 못할 조건이 없습니다.
앞으로 우리 나라는 북과 남이 통일되여도 그 어떤 대국에 예속된 위성국이 아니라 자주적이며 쁠럭불가담적인 중립국가로 될것입니다.》
그이께서는 계속하여 미국사람들이 우리의 조국통일방침에 대해서도 옳은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하시면서 지금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적화통일》을 하려고 한다느니 뭐니 하면서 우리를 헐뜯고있는데 우리는 결코 남조선을 《적화》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우리는 북과 남에 있는 사상과 제도를 그대로 두고 련방제를 실시하는 방법으로 조국을 통일하자는것이지 남조선을 사회주의화하자는것이 아니라고, 우리는 련방제방식으로 조국을 통일한 다음에도 남조선에서 자본주의를 하든 반자본주의를 하든 상관하지 않을것이라고 언급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문익환목사가 평양에 왔을 때 련방제를 찬성한다고 하면서 련방제를 실시하면 남조선의 자본가들을 어떻게 하려고 하는가고 자신께 물어본 사실에 대하여 이야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때 그에게 우리는 남조선의 모든 자본가들을 다 반대하는것이 아니라 나라와 민족을 팔아먹고 인민들을 못살게 구는 악덕자본가만 반대하지 진정으로 나라와 민족의 발전을 바라는 민족자본가는 배척하지 않는다고 말해주었더니 그가 남조선의 자본가문제때문에 신경을 써왔는데 이제는 모든것이 명백하게 되였다고 기뻐한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말씀을 받아안는 문명자의 뇌리에는 문익환목사가 애석하게 세상을 떠났을 때 유가족들에게 조의문을 보내주시고 추도모임을 크게 하도록 해주신 수령님의 의리깊은 믿음과 사랑이 되새겨져 감동을 금할수 없었다.
이어 공화국의 련방제통일방안에 대하여 설명해주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련방제를 실시하는 경우에도 남조선에 있는 다른 나라 자본을 그대로 허용하려고 한다고, 남조선사람들도 같은 조선민족인것만큼 우리의 립장은 그들이 자본주의를 하든 반자본주의를 하든 관계없이 하나로 통일된 조국에서 천년이고 만년이고 같이 살아나가자는것이라고 거듭 강조하시였다.
비록 사상과 정견, 신앙이 다르고 어지러운 과거를 가졌다 하더라도 애국애족의 마음이 있다면 차별하지 않고 같이 손잡고 나갈수 있다는 그이의 숭고한 민족대단결사상과 한없이 넓고넓은 도량에 문명자는 감복하여 머리가 숙어졌다.
이어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오늘 우리 민족앞에 나서고있는 최대의 과업은 조국통일을 실현하는것입니다. 조선민족이라면 누구나 다 조국통일에 모든것을 복종시켜야 합니다.》
그는 크나큰 감동을 금치 못하며 그이의 말씀을 급히 취재수첩에 적어나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누구도 조국통일을 외면하고 자기의 리익만을 추구해서는 안된다고, 현 남조선집권자도 《대통령》만 해먹을 생각을 하지 말고 조국을 통일할 큰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언제인가 누가 나에게 조국이 통일된 다음에 대통령을 하는것이 어떤가고 하기에 지금 단계에서는 조국통일이 중요하지 누가 어떤 직위를 차지하는가 하는것이 중요한것이 아니라고 말해주었다고 말씀하시였다.
조국통일이 중요하지 직위가 중요한것이 아니다!
인민들에게 줄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조국통일이라고 하시며 오로지 통일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시는 그이의 숭고한 애국애족의 뜻이 비껴있는 말씀이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단군릉을 발굴하여 지금까지 신화적인 존재로 전하여오던 단군이 실재한 인물로 고증됨으로써 우리 민족은 단군을 원시조로 하는 단일민족이며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를 가진 슬기로운 민족이라는것을 온 세상에 자랑할수 있게 된데 대하여, 우리 나라에서 1억 5 000만년전에 산 새의 화석이 발굴되여 자신께서 그 새를 《조선시조새》라고 부르도록 하신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이런것을 보면 우리 나라는 인류의 발상지일뿐아니라 조류의 발상지라고도 말할수 있다고, 북과 남이 하나로 통일되면 우리 나라는 그 누구도 감히 건드릴수 없는 강력하고 존엄있는 자주독립국가로 될것이며 단군의 후예들인 7천만 우리 겨레는 삼천리금수강산에서 자자손손 복락을 누리며 살게 될것이라고 긍지에 넘쳐 말씀하시였다.
나라와 민족에 대한 열렬한 사랑이 차넘치는 그이의 말씀 한마디한마디는 실로 문명자로 하여금 조선민족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 통일된 앞날에 대한 커다란 기대와 희망으로 가슴들먹이게 하였다.
이날 담화를 마치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선생이 조국통일을 위하여 지금까지 많은 일을 하였는데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문필활동을 하기 바란다고 기대와 믿음을 안겨주시였다.
동서방 각국을 다니며 수많은 대통령, 국가수반들과 만나는 과정에 제노라 하는 사람들의 성격, 취미와 뒤생활에 대해서까지 낱낱이 알게 되면서 정치인들에게 쓰거운 눈길을 보내기도 하던 문명자였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서 절세의 위인, 참다운 인민의 수령이신 김일성주석을 여러차례나 만나뵈옵게 된것은 수십년간에 걸치는 기자생활에서의 큰 행운이였고 인생의 더없는 영광이였다.
그때로부터 얼마후 문명자는 북과 남이 7월 25일 최고위급회담을 평양에서 열기로 하였다는 감격적인 소식에 접하게 되였다.
그는 옹근 반세기를 기다려온 력사의 그 순간을 취재하자고 서둘러 미국땅을 떠나 도꾜까지 왔다.
북남최고위급회담 취재차로 평양에 가서 주석님을 만나뵈오면 그이의 회고록을 본 이야기며 세상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고 계획한 문명자였다.
그런데 이 무슨 청천벽력인가.
북남최고위급회담을 눈앞에 두고 그토록 통일을 념원하시며 온갖 심혈을 다 바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 서거하시였다는 도저히 믿을수 없는 소식이 전해졌다.
몇달전에 만나뵈왔을 때만 하여도 나는 아픈데가 없고 아주 건강하다고, 그래서 지금도 정상적으로 사업하고있다고 하시던 주석님께서 세상을 떠나시다니…
김일성주석과 같은 민족의 위대한 어버이, 인류의 태양을 잃는다는것은 정녕 그 무엇으로써도 보상할수 없고 메꿀수 없는 커다란 손실이 아닐수 없는것이였다.
너무도 비통한 마음을 진정할수 없었던 그는 위대한 수령님의 령전에 찾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서둘러 평양행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추도곡이 장중하게 울리는 애도장에 들어서니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비분에 잠겨 생전의 모습으로 계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령전에 호상을 서고계시였다.
화면과 사진에서보다 몹시 수척해지신 모습이였지만 수령님과 너무나 꼭같으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어라고 위로의 말씀을 드릴지 몰라하는 문명자에게 장군님께서는 먼길을 와주어서 감사하다고 하시면서 수령님을 만나뵙고 쓴 기사를 활자로 확대해서 자신께서 직접 수령님께 갖다드렸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주석님께서는 문기자가 내가 말한것을 정확하게 보도했다고 하시면서 무척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10월에 단군릉을 개막할 때 문선생과 또 만나게 되여있다고 하시였습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음성은 이름할수 없는 비분에 젖어있었다. 일생에 가장 큰 슬픔속에 계시면서도 도리여 조문객인 그를 위로해주신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수령님께서 계실 때처럼 자주 오라고, 단군릉개막때에도 오고 보통때에도 오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그날에 하신 장군님의 간곡한 당부대로 문명자는 그해 단군릉개막식을 취재하기 위해 다시 평양에 왔으며 그후에도 자주 평양을 방문하였다.
언제인가 평양을 방문한 문명자는 경애하는 장군님께 접견해주시였으면 하는 요청을 드리였다.
그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여러가지 중대사들이 많이 제기되여 그를 만나주실 시간적여유를 내지 못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선군장정의 길을 이어가시는 바쁘신 속에서 그에게 편지를 보내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편지에서 짬을 낼수 없게 되여 매우 유감스럽다는것과 자신께서는 수령님께서 생전에 녀사와 같은 저명한 녀류문필가를 가지고있는것은 우리 민족의 자랑이라고 하시던 말씀을 잊지 않고있으며 녀사가 조국과 민족, 통일을 위하여 활약하고있는데 대해 언급하시였다.
이어 그이께서는 우리는 나라의 통일을 자주적으로, 평화적으로,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실현하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다할것이라고, 녀사가 조국을 다시 방문하는 기회에 꼭 만나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건강하여 사업에서 보다 큰 성과가 있기를 바란다고 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그토록 바쁘신 속에서도 한 해외교포녀류기자의 소원을 헤아리시고 몸소 친필편지까지 보내주신 사실은 그에게 접견을 받은데 못지 않은 큰 충격과 감동을 주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후 조국을 또다시 방문한 문명자를 친히 접견해주시고 나라의 통일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하도록 크나큰 믿음을 베풀어주시였다.
참으로 나라의 통일과 민족의 단합을 위한 애국의 마음을 지닌 모든 사람들을 자애로운 한품에 안아 애국애족의 길로 이끌어주신 위대한 김일성주석과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한량없는 믿음과 은정이 있어 백악관출입기자가 민족의 사랑을 받는 통일언론인으로 값높은 삶을 누리게 된것 아니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