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고려인통일련합회 위원장을 만나주시며

 

주체82(1993)년 6월 6일이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조국을 방문한 독립국가협동체 조선통일촉진위원회(당시) 강일위원장과 그의 부인을 만나주시였다.

조국을 방문하여 또다시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는 행운을 지니게 된 그들부부는 감격에 설레이는 마음을 억제할수 없었다. 그럴수록 한해전인 1992년 10월의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을 처음으로 만나뵙던 때가 가슴뜨겁게 되새겨졌다.

조국산천에 단풍이 곱게 물들어가던 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 자기들을 부르신다는 소식을 전달받은 강일위원장내외는 감격과 환희에 휩싸였다.

온 세계가 국제정치의 대원로로 높이 칭송하는 위대한 김일성주석님, 이처럼 위대하신분을 민족의 어버이로 모시고있는 긍지와 자부심과 함께 그이를 한번만이라도 만나뵙고싶은 마음속소망을 안고있던 그들에게 있어서 이 소식은 정말 꿈같은 일이 아닐수 없었다.

그들은 한달음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곳으로 달려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처음으로 만나시는 강일위원장과 그의 부인을 마치 구면친구를 대하시듯 따뜻이 맞아주시였다.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자기들을 반가이 맞아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뵈옵는 첫 순간 그들부부는 그이의 고결한 인품, 넓은 도량에 완전히 매혹되여 인사말도 변변히 올리지 못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부부의 이러한 심정을 헤아리신듯 줄곧 따뜻한 미소를 지으시고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이날 그이께서는 강일위원장과 그의 부인에게 이역땅에서 살고있는 동포들을 묶어세워 조국통일운동을 벌려나가는것은 좋은 일이라고, 조선사람은 조선을 위한 애국을 하여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분에 넘치는 치하의 말씀을 받아안은 강일위원장은 감동을 금할수 없었다.

사실 이전 쏘련시기에 우즈베끼스딴공화국 건설관리국 기사장, 쏘련내각직속 중앙아시아 농업 및 처녀지개간성 제1부상으로 30여년동안이나 일해온 그가 민족분렬의 고통을 겪고있는 조선사람으로서의 자각을 안고 조국통일운동에 나선것은 몇년전부터였다.

이 길지 않은 기간에 강일위원장은 해외동포들도 조국통일의 주체적력량으로 내세워주고 이끌어주시는 김일성주석의 통일애국사상과 령도에 고무되여 이전 쏘련지역에 널려살고있는 동포들을 하나로 묶어세워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끄시는 조국통일위업에 떨쳐나서도록 하는 사업에서 적으나마 성과를 거둘수 있었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고 높은 평가의 말씀까지 받아안은 강일위원장은 그후 수령님에 대한 고마움을 늘 가슴속에 간직하고 통일애국의 길에 심혼을 바쳐왔다.

그런데 그때로부터 불과 한해만에 다시금 그이를 뵈옵게 되였으니 그들의 감격이 어찌 크지 않으랴.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시 만나게 된데 대하여 대단히 반가워하시면서 동무들은 그동안 반동들과의 투쟁을 적극적으로 벌리면서 조국통일을 위한 여러가지 활동을 많이 하였다고, 자신께서는 동무들이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에서와 독립국가협동체나라들에서 사는 동포들과의 사업에서 커다란 성과를 이룩한데 대하여 매우 기쁘게 생각하면서 높이 평가한다고 말씀하시였다.

1년만에 또다시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게 된것만도 크나큰 영광인데 이렇게 과분한 치하의 말씀까지 해주시니 강일위원장은 너무도 황송하여 어찌할바를 몰라했다.

잠시 그의 이러한 모습을 바라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무들은 이미 이룩한 성과를 공고히 하면서 조국통일운동을 더 적극적으로 벌려나가야 한다고 고무해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지금 안팎의 정세는 매우 복잡하며 조국통일을 위한 우리 인민의 앞길에는 의연히 많은 난관과 시련이 가로놓여있다고 하시면서 당시 조성되였던 국내외정세에 대하여 이야기를 시작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무들도 알고있는바와 같이 최근년간 제국주의자들과 사회주의배신자들의 책동으로 말미암아 이전 쏘련과 동유럽나라들에서 사회주의가 좌절되고 자본주의가 복귀되는 비정상적인 사태가 벌어졌다고 하시면서 쏘련을 와해시키고 붕괴에로 이끌어간 현대수정주의자들과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반사회주의적책동의 반동적본질과 그 후과에 대하여 까밝히시였다.

그때로 말하면 제국주의자들과 현대사회민주주의를 제창하는 사회주의배신자들의 반사회주의적책동에 의하여 지구상에 첫 사회주의국가로 출현하였던 쏘련이 해체되여 이미 자기의 존재를 마친 뒤였다.

70여년간 사회주의붉은기를 휘날리며 강국의 위용을 떨쳐온 쏘련을 파국속에 몰아넣고 붕괴시킨 사회주의배신자들의 죄행을 낱낱이 발가놓으시는 그이의 말씀을 받아안으며 이전 쏘련시기 30여년간 여러 직책에서 복무하여온 강일위원장의 생각은 깊어졌다.

1991년 12월 25일 모스크바 크레믈리에서 쏘련국기가 내리워지고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있던 사회주의강국이 총소리 한방 울린 일이 없이 무너져버리는 비극적사태를 직접 체험한 그였다.

너무도 믿어지지 않는 현실앞에서 좌절의 쓰라린 감정과 강대한 쏘련을 무너뜨린 사회주의배신자들에 대한 분노를 터뜨리던 그때를 잊을수 없었다.

이러한 그로서는 쏘련붕괴의 근본원인과 교훈을 명철하게 밝혀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에 감탄을 금할수 없었다.

이어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최근에 독립국가협동체나라들에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 나라에 오는데 그들은 우리보고 어떻게 하나 사회주의를 고수해달라고 한다고, 그때마다 나는 그들에게 우리는 사회주의기발을 놓지 않을것이다, 우리는 비겁한자야 갈라면 가라, 우리들은 붉은기를 지키리라는 혁명의 노래를 높이 부르며 사회주의 붉은 기발을 계속 높이 들고 나갈것이라고 말해주군 한다고 하시면서 자신께서는 그들이 적극적으로 투쟁하면 멀지 않아 자기들의 목적을 실현할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잠시 동안을 두시였던 수령님께서는 근엄한 안색을 지으시고 지금 조국의 정세도 매우 긴장하다고 하시면서 미제국주의자들과 그 앞잡이들이 사회주의기치를 고수해나가는 공화국을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기면서 어떻게 하나 압살해보려고 책동하고있는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당시 미국은 국제원자력기구의 일부 불순세력들을 내세워 공화국의 두개 군사대상에 대한 《특별사찰》을 강요해나섬으로써 정세를 극도로 긴장시키고있었다. 공화국은 미국과 그에 추종하는 국제원자력기구의 부당한 요구와 압력에 굴복하지 않았으며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의 최고리익을 지키기 위하여 전국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하고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의 탈퇴를 선포하는 단호한 조치를 취하였다. 그러자 미국은 조선의 《핵문제》를 유엔안전보장리사회에 끌고가 공화국이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 복귀하지 않으면 그 무슨 제재조치를 취하겠다고 위협해나서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러한 조미사이의 핵대결과정에 대하여 설명해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지금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이 〈핵문제〉를 걸고 우리 공화국을 압살하려고 악랄하게 책동하고있지만 결코 우리 인민을 굴복시키지 못할것입니다. 우리는 적들의 책동에 단호히 맞서 인민대중중심의 우리 식 사회주의를 굳건히 고수해나갈것입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우리는 지금 혁명하는 시대, 투쟁하는 시대에 살고있다고, 혁명의 길에는 일시적인 난관도 있을수 있고 시련도 있을수 있다고 하시면서 《그런것만큼 동무들은 일시적인 애로와 난관에 동요하지 말고 동포들속에서 조국통일운동을 더 과감히 벌려나가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강일위원장은 그이께서 지금까지 내외정세에 대하여 그처럼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신것이 자기들이 조성된 일시적인 애로와 난관앞에서 동요하지 말고 신심과 락관에 넘쳐 조국통일운동을 더욱 줄기차게 벌려나가도록 힘과 용기를 안겨주시기 위한것임을 깨닫게 되였다.

계속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통일운동을 힘있게 벌려나가는데서 지침으로 되는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이께서는 먼저 동무들이 조국통일운동을 힘있게 벌리자면 무엇보다도 독립국가협동체나라들에서 살고있는 모든 동포들을 조선통일촉진위원회의 두리에 튼튼히 묶어세워야 한다고 하시면서 동무들이 어려운 조건에서도 자체의 신문사를 내온것은 잘한 일이라고, 동포들을 각성시켜 조선통일촉진위원회의 두리에 묶어세우자면 신문사를 내오고 신문발행부수를 늘여 모든 동포들이 다 신문을 보도록 하여야 한다고, 독립국가협동체나라들에 조선사람들이 적지 않게 살고있는데 신문을 많이 발행하면 동포대중을 교양하는데서 큰 효과를 볼수 있을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밖에도 예술축전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행사들을 많이 조직하며 동포청년들과의 사업을 잘할데 대한 문제, 독립국가협동체나라들의 진보적인 정당, 사회단체들과의 밀접한 련계를 가지고 공동투쟁을 적극 벌려나갈데 대한 문제 등 조선통일촉진위원회앞에 나서는 과업들을 하나하나 밝혀주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부부를 자신의 곁에 세우시고 사랑의 기념사진을 찍으시였으며 은정어린 오찬도 마련해주시였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강일위원장이 동포들속에서 조선말을 배우기 위한 사업을 벌리고있는것은 아주 잘한 일이라고 치하하시였다.

그이의 과찬의 말씀을 받아안으며 강일위원장은 조선사람이면서도 우리 글도 모르고 살아오던 독립국가협동체지역 동포들의 지난날을 되새겨보았다.

돌이켜보면 로씨야와 중앙아시아 등 이전 쏘련지역에 널리 퍼져살고있는 수십만의 조선사람들은 생김새만 같을뿐 우리 말도 풍습도 문화도 모르고 이민족들속에 넋을 빼앗긴채 생활의 세파에 부대껴왔다. 이들이 이렇게 살게 된 래력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역시 우리 근대민족사의 불우한 운명과 이어져있었다. 대체로 함경도지역에 고향을 둔 그들의 선조들은 1860년대, 1910년대, 1920년대에 불우한 민족의 운명을 통탄하며 조국을 떠나 주로 원동지방에 들어가 살다가 1937년에 중앙아시아지역으로 이주해간 사람들이다.

《민족의 파편》으로 삶의 터전에서 몇번이나 뿌리뽑힌 그들, 정든 고장을 떠날 때마다 조선사람의 리별의 한이 스민 《아리랑》의 가락이 그들의 가슴속에 사무쳤으련만 그들의 후손들은 우리의 옛 민요 한곡조 제대로 뽑을줄 몰랐다. 아니 자기 민족의 고유한 말, 이름조차 잃고 살았으니 민족문화는 더 말할것도 없었다.

살아가는데 편리한 방편으로 로씨야인이나 우즈베크인이 되고싶어도 타고난 검은 머리와 눈동자, 혈관에 흐르는 조선민족의 피줄기를 속일수는 없었다.

조선사람의 넋을 되찾아 떳떳이 조선사람으로 살기 위해 조선통일촉진위원회는 동포들속에서 조선말을 배우기 위한 사업을 벌리기 시작하였던것이다.

이어 그의 가정형편에 대해서도 일일이 알아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들, 손자는 없고 딸들과 외손녀들만 있다는것을 아시고는 딸들을 키우는 재미가 있다고 다정히 말씀하시였다.

진정 친부모도 대신할수 없는 그이의 한없는 육친적사랑에 그들부부는 끓어오르는 감사의 정을 금할수 없었다.

《위대한 주석님!》

강일위원장은 위대한 수령님께 자기들의 진정을 담아 이렇게 말씀올렸다.

《저희들은 지금 그립던 본가집에 찾아와 친아버님을 모신 심정입니다. 주석님께 최대의 감사를 드립니다.》

그의 이 말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외동포들에게 있어서 조국은 본가집, 큰집이라고, 해마다 한번씩 조국에 와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자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나서 강일위원장과 그의 부인의 손목에 자신의 존함이 새겨진 금시계를 손수 채워주시는것이였다.

영광과 행복의 절정에 그들부부는 어찌할바를 몰라하며 감격의 눈물만 소리없이 흘리였다.

그들의 손목에 채워주신 금시계, 여기에는 조국과 민족을 위한 애국의 길을 언제나 시계처럼 한치의 드팀도 없이 걸어가기를 바라시는 그이의 크나큰 기대와 믿음이 어려있었다.

민족의 어버이의 이처럼 크나큰 믿음과 사랑은 곧 강일위원장에게 있어서 통일운동에 모든것을 다 바칠수 있게 한 생의 활력소였고 신념의 원천으로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접견을 받고 돌아간 강일위원장은 몸은 이역땅에 있어도 불세출의 위인을 모시고있는 조선민족의 한 성원이라는 크나큰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조국통일과 민족의 대단결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 자기의 지혜와 정열을 바쳐나갔다.

1993년 9월 로씨야련방국회쎈터에서 조선통일촉진위원회 2차대회와 청년대회를 열고 여기에서 조직의 명칭을 국제고려인통일련합회(국제고통련)로 개칭하는 사업, 대회기간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을 지지하는 해외동포들의 100만명 서명운동의 발기와 조국의 도서, 사진, 민예품전시회의 진행, 조직을 튼튼히 꾸리기 위한 사업 등에는 강일위원장의 헌신적인 노력이 깃들어있었다.

조국은 통일애국사업에 헌신한 자기의 장한 아들을 잊지 않고 값높은 삶의 언덕에 세워주었다.

한없이 숭고한 의리를 천품으로 지니신 경애하는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주체80(1991)년 11월 7일 멀리 이국땅 따슈껜뜨에 살고있는 강일위원장과 그의 부인에게 생일 60돐을 맞으며 사랑의 선물을 보내주시였으며 그들의 외손녀가 조국의 대학에서 공부하도록 뜨거운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또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조선민족의 한 성원으로서의 도리와 본분을 지켜 통일운동에 나선 강일위원장의 공헌을 높이 평가하시여 1995년 조국해방 50돐을 맞으며 그에게 조국통일상수상자의 크나큰 영광도 안겨주시였다.

조선민족의 피줄을 잇고 민족적량심을 지닌 사람이라면 지구의 그 어디에서 살건 주실수 있는 사랑과 은정을 다 베풀어주시고 정과 뜻을 함께 할 영원한 동행자로 뜨거운 믿음을 안겨주시며 운명과 미래도 끝까지 보살펴주시는 민족의 은혜로운 태양의 품이 있었기에 해외동포들은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제시하신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을 높이 받들고 조국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려나갈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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