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남합작방침을 널리 해설선전하라시며
온 겨레의 기대와 관심속에 북남조절위원회가 구성되여 북과 남사이의 다방면적인 합작과 교류를 실현하기 위한 대화가 시작되고있던 주체61(1972)년 12월 16일이였다.
이날 조국방문의 나날을 보내고있던 재일본조선인과학자대표단 성원들은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부르심을 받게 되였다.
당시 조선대학교 리진규학장을 단장으로 한 대표단은 성규영 등 여러명의 재일동포과학자들로 구성되여있었다.
한달음에 달려와 정중히 인사를 올리는 총련의 과학자들을 반갑게 맞아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무들이 조국에 와서 구경을 좀 하였습니까?》라고 하시며 그들의 조국방문소감에 대하여 물어주시였다.
천금같이 귀중한 시간을 내시여 자기들을 불러주시고 친어버이의 심정으로 조국방문소감을 물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이 말씀에 대표단성원들은 조국방문기간에 받아안은 그이의 따뜻한 사랑이 돌이켜져 눈시울이 뜨거워올랐다.
조국에 도착한 날인 11월 28일 자기들을 몸가까이 부르시여 오랜 시간 총련조직의 강화발전과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투쟁과업을 밝혀주시고 사랑의 기념사진도 찍어주신 위대한 수령님이시였다.
그날 저녁 대표단성원들을 위하여 몸소 만찬까지 차려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로부터 이틀후인 11월 30일에는 그들과 함께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의 첫 공연도 관람하시였으며 12월 4일에는 과학원 및 사회과학원창립 20돐 기념대회에 총련의 과학자들을 대표하여 참가한 그들을 모두 주석단에까지 앉혀주시는 크나큰 믿음도 안겨주시였다.
어찌 그뿐이랴. 대회참가자들과 기념촬영을 하실 때에도 먼 이국땅에서 수고를 많이 하는 동무들인데 앞줄에 나와앉으라고 하시며 대표단성원들을 영광의 앞자리에 내세워주신 위대한 수령님이시였다.
이처럼 뜨거운 어버이사랑과 믿음속에서 리진규, 성규영을 비롯한 대표단성원들의 조국방문의 나날은 조국땅 가는 곳마다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행복과 환희속에 흘러갔던것이다.
조국땅에 들어선 첫날부터 받아안은 위인의 사랑과 은정을 가슴뜨겁게 돌이켜보며 대표단성원들은 평양과 지방의 여러곳을 참관하면서 느끼였던 사실들을 위대한 수령님께 두서없이 말씀드렸다.
그들의 대답을 마지막까지 다 들어주신 그이께서는 못내 기뻐하시며 이번 기회에 동무들이 조국의 과학, 교육기관들을 돌아본것은 매우 좋은 일이라고 하시면서 인민경제 여러 분야에서 이룩되고있는 조국의 과학기술발전성과들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시였다.
애국의 열정으로 신심을 가다듬는 대표단성원들을 미더운 시선으로 둘러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본에 있는 총련의 과학자, 기술자들앞에 나서는 과업들에 대하여 하나하나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과학연구사업이 어디까지나 주체공업을 발전시키는 방향에서 진행되여야 한다는데 대하여 언급하시다가 북남경제합작문제에로 화제를 돌리시였다.
그이께서는 우리는 주체과학을 발전시키고 사회주의자립적민족경제를 튼튼히 건설하여놓았기때문에 먹을것과 입을것을 다 자체로 해결하고있으며 제국주의자들이 우리 나라에 대하여 아무리 경제봉쇄정책을 써도 끄떡하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그러나 남조선경제는 전적으로 다른 나라에 의존되여있다고, 남조선경제는 다른 나라에서 원료를 사들여오지 않고서는 하루도 유지될수 없는 형편에 있다고, 지금 남조선에서는 덧머리도 만들어 팔고 별의별 물건을 다 팔아 다른 나라에서 원료를 사들이고있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북남회담을 위하여 평양에 온 남측대표들을 만나시여 북과 남사이의 경제적합작 특히 광산을 공동으로 개발하며 물고기잡이와 관개공사에서 합작을 하자고 하신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이 말씀을 듣는 리진규를 비롯한 대표단성원들은 전체 조선사람모두를 다같이 골고루 잘살게 하시려는 그이의 친어버이심정을 가슴뜨겁게 느낄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깊은 감동속에 잠겨있는 대표단성원들을 둘러보시며 근엄하신 어조로 남조선당국자들이 우리의 이러한 정당한 제안들에 대하여 감히 내놓고 반대하지는 못하였으나 차차 보자는 식으로 지연전술을 쓰면서 우리와의 합작에 응하지 않고있다고 말씀하시였다.
당시 남조선당국자들은 북남조절위원회가 정식으로 구성된 이후에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북과 남사이의 합작방침에 동의한다고 하면서도 그 실천적대책들을 강구하기 위한 대화에는 불성실한 태도로 림하고있었다.
서울에서 진행된 북남조절위원회 제1차회의에서 북측은 북과 남이 정치, 경제, 문화, 군사, 외교 등 각 분야에서 다방면적인 합작과 교류를 실현할것을 거듭 주장하면서 그를 위한 구체적인 제안들을 내놓았다. 하지만 남측은 시기상조라고 하면서 이 정당한 제의를 접수하지 않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남조선당국자들이 우리와의 합작에 응하지 않는것은 남북합작이 실현되면 남조선인민들이 우리 사람들과 접촉하는 과정에 우리의 사상적영향을 받을가봐 겁이 나서 그러는것이라고 그 속심을 까밝히시였다.
그러시면서 남조선당국자들은 남북합작에 대한 우리의 정당한 주장이 남조선인민들에게 알려지는것마저 막아보려고 책동하지만 그들의 뜻대로 되지 않을것이라고, 우리가 남북합작에 대한 문제를 가지고 연설도 하고 여러가지 방법으로 떠들면 우리의 주장이 남조선인민들속에 들어갈것이며 그렇게 되면 남조선인민들은 당국자들에게 왜 인민들을 다른 나라에 노예로 팔아먹으면서 같은 동포끼리 합작하자는데 대해서는 반대하는가고 들이댈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조선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다 접수되고 지지환영할 공명정대한 제안인 북과 남사이의 합작방침에 응해나서지 않고있는 남조선당국자들의 검은 속심을 대번에 발가놓으시고 남조선인민들을 북과 남의 합작실현에로 불러일으킬수 있는 방도까지 밝혀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르며 대표단성원들은 그이의 비범한 통찰력에 감탄을 금할수 없었다.
잠시 말씀을 끊으시고 대표단성원들을 미더운 눈길로 바라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우리의 주장대로 북과 남사이의 경제적합작이 실현되면 조국통일문제해결에서 새로운 국면이 열릴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동무들은 일본에 돌아가서 재일동포들과 광범한 일본인민들속에 남북경제합작에 대한 우리의 정당한 제안을 널리 해설선전하여야 합니다.》
일본땅에 살고있는 자기들도 민족의 한 성원으로서 조국통일을 위한 길에서 자기의 본분을 다해나가도록 믿어주고 내세워주시는 그이의 사랑과 믿음이 어린 이 말씀을 받아안은 대표단의 전체 성원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북과 남의 합작방침실현을 위하여 적극 투쟁할 결의를 다지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에도 조국을 방문한 여러 동포들을 만나신 기회에 북과 남사이의 합작방침의 정당성에 대하여 알기 쉽게 설명해주시며 그들을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의 한길로 이끌어주시였다.
1972년 11월 15일 박분점동포를 비롯한 제7차 재일동포조국방문단 성원들을 만나신 자리에서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북과 남이 서로 합작을 해서 하루빨리 조국을 통일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동포들의 가슴마다에 통일애국의 넋을 심어주시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가르치심을 받아안고 돌아간 재일동포들은 동포사회와 일본인민들속에 그이께서 제시하신 북과 남사이의 합작방침의 정당성에 대한 해설선전사업을 적극적으로 벌려나갔으며 이들의 활동에 의하여 바다건너 일본땅에서도 북남합작방침에 대한 지지의 목소리가 더욱 높이 울려나오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