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국을 통일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복종합니다》

 

1980년대 후반기에 이르러 나라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민족의 통일기운은 더욱 고조되고있었다.

북남사이의 대화와 평화통일의 전환적국면을 열어나가기 위하여 북남고위급정치군사회담제안, 북남련석회의소집방안과 쌍무적 또는 다무적접촉과 회담을 가질데 대한 제안 등 이 시기에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련이어 제시하신 방안들은 온 겨레의 전폭적인 지지와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특히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한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에 새로운 활력을 부어주었다.

그런 속에서 남조선에서는 군사파쑈독재를 반대하는 1987년 6월인민항쟁이 폭발하였으며 이에 질겁한 군사파쑈도당은 《6. 29선언》이라는 공약을 내놓고 무릎을 꿇지 않을수 없게 되였다. 남조선인민들의 6월인민항쟁은 미제의 남조선에 대한 식민지적지배와 괴뢰도당의 군사파쑈통치를 반대하고 사회의 민주화와 조국통일을 위한 반미, 반파쑈인민항쟁으로서 남조선사회전반에 자주, 민주, 통일의 열풍이 세차게 몰아치게 하였다.

자주통일운동이 힘있게 벌어지는 가운데 남조선인민들과 정계, 사회계인사들속에서는 련방제방식으로 조국을 통일할데 대한 주장이 날을 따라 높아갔으며 남조선《국회》에서까지 《통일국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울려나오고있었다.

이러한 남조선정세와 새로운 발전단계에 들어서고있는 통일운동을 심오히 분석평가하신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주체78(1989)년 1월 1일 《신년사》에서 가까운 시일안에 평양에서 북과 남의 각당, 각파, 각계각층의 의사를 대표할수 있는 지도급인사들의 북남정치협상회의를 가질데 대한 새로운 제안을 내놓으시였다.

이 제안은 전민족적대화마당을 마련하여 통일방도에 대한 민족적합의를 이룩하며 민족대통일전선의 형성을 촉진시킬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며 합리적인 방도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북남정치협상회의소집방안을 제시하시면서 남조선의 민주정의당, 평화민주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의 총재들과 김수환추기경, 문익환목사, 백기완 등을 평양에 초청하시였으며 남조선의 지도급인사들이 건설적인 통일방안을 가지고 온다면 환영할것이며 그들이 내놓은 어떠한 제안에 대해서도 함께 허심탄회하게 협의할것이라는 넓은 아량을 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 애국애족적인 제안은 남조선인민들과 정계, 사회계의 진보적인사들의 한결같은 지지와 환영을 불러일으켰으며 드디여 이해 3월 25일에는 남조선의 문익환목사가 남녘겨레들의 통일념원을 안고 유원호, 정경모 등과 함께 평양으로 찾아왔다.

문목사로 말하면 오래전부터 남조선사회의 민주화와 나라의 평화통일에 헌신하여온 민주인사로서 1984년에는 민중주체의 통일운동을 지향하는 민주통일국민회의를 발족시키고 그 의장으로 활약하였으며 1989년에는 진보적민주단체들의 통일전선체인 전국민족민주운동련합(전민련) 고문으로 되여 활약하고있는 재야정치계의 원로였다.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한 재야정치세력의 운동을 주도해온 문익환목사는 《통일의 주체는 민중이기때문에 이들의 자주적인 참여속에서 통일방안이 마련되여야 한다.》는 《민중통일론》을 주장하였다.

평양에로의 길이 보통길이 아니라는것을 너무도 잘 알고있는 그였지만 김일성주석님을 만나뵙고 조국통일의 바른길을 찾기만 한다면 또 한번 옥고를 치르어도 무관하다는 심정을 안고 북행길을 결심하였던것이다.

남조선의 문익환목사일행이 평양에 도착하였다는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바쁘신 일정도 뒤로 미루시고 평양으로 돌아오시여 그들과의 상봉을 앞당겨 마련하시였다.

그날은 온 강산에 봄기운이 완연히 짙어가던 1989년 3월 27일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문목사일행이 도착하기 전에 금수산의사당(당시)의 현관에 나오시여 그들을 기다리고계시였다.

푸르러가는 정원을 바라보시는 그이의 눈앞에는 해방직후 김구, 려운형을 비롯한 남조선의 정계인사들이 찾아왔던 때의 일이 삼삼히 떠올랐다.

그때로부터 40여년만에 남조선의 민간급통일운동의 지도급인사가 평양으로 찾아와 마침내 남녘동포들과의 상봉이 이루어지게 되였다는 생각으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못 감회가 새로우시였으며 외국의 수반들이나 저명한 인사들을 만나실 때와는 달리 혈육의 정이 앞서는것을 어찌할수 없으시였다.

바로 이때 문익환목사일행이 도착하였다.

차에서 내린 문익환목사는 몸소 현관앞에까지 나오시여 자기들을 기다리고계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뵈옵고 급히 그이께로 달려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문익환목사와 뜨겁게 포옹하시고나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문선생이 이렇게 평양을 방문한데 대하여 열렬히 환영합니다. 선생이 평양방문의 용단을 내린것은 참으로 용감한 행동입니다.

나는 선생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지방에 나갔다가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만나니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습니다.》

문목사는 환희와 감격에 휩싸여 정중히 인사를 올리고 《존경하는 주석님께서 저를 초청해주셔서 이렇게 만나뵈오러 왔습니다. 주석님의 건강한 모습을 뵈옵고보니 대단히 기쁩니다.》라고 말씀드리였다.

이것은 민족의 령수에게 올리는 남녘통일애국인사들의 뜨거운 인사였고 남녘동포들의 다함없는 흠모의 정의 표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뜻깊은 상봉을 기념하여 문목사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신 후 담화장소에 이르시여 친히 자리를 권하시였다.

문익환목사는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게 된 커다란 행운에 감격하여 마음을 진정하지 못하고있었다.

환하신 존안과 활달하신 걸음걸이, 건장한 풍채와 우렁우렁한 음성은 마치도 신비의 힘을 가지고있는듯 그의 온넋을 사로잡았다.

숭엄한 감정에 휩싸여 조심스레 자리에 앉는 그에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소탈한 음성으로 《외국사람들하고 담화하는 식으로 멀리 앉지 말고 여기 가까이 앉아 이야기합시다. 걸상을 가까이에 갖다놓은 다음 앉도록 하십시오.》라고 하시며 자신의 가까이에 앉혀주시였다.

그러시고는 문익환목사가 올해신년사에서 내놓은 북남지도급인사들의 정치협상회의소집제안에 지지를 표시하였으며 이번에 우리의 초청제의를 받아들이고 평양을 방문한데 대하여 감사히 생각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소탈하신 말씀에 문목사는 긴장되였던 마음이 한순간에 풀리여 마치 오래동안 헤여졌던 지기와 마주앉은듯 처음부터 자기의 심정을 그대로 헤쳐놓았다.

자신은 민족의 통일이 민족의 부활이라고 믿고 살아오는 사람이며 여기에 온것도 민족의 통일을 위해서라고 한 그는 마침 자기가 온 다음날이 부활절이여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고 목사로서의 솔직한 심정을 가식없이 말씀드렸다. 그리고 자기가 젊은 시절 북간도에 있을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일혁명투쟁을 전개하시는 전설같은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다고 하면서 다함없는 흠모의 정을 표시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감사하다고 겸허하게 말씀하시며 그의 어머니의 안부도 다정히 물으시였다.

어머니가 1995년에 100살이 된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신 수령님께서는 우리는 선생의 자친께서 100살이 되기 전에 통일하자고 하시면서 우렁우렁한 음성으로 나는 문선생을 높이 평가한다고, 선생이 민주자 통일이고 통일이자 민주다라고 하였는데 아주 훌륭한 말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순간 문익환목사는 감동을 금치 못하며 《주석님! 그렇게까지 저의 뜻을 알아주시니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를 바라보시며 민주가 없이는 통일될수 없다고 강조하시고나서 그러니까 이것은 아주 정당한 구호이며 정당한 리론이며 정당한 주장이라고, 나는 이것을 적극 지지하고 찬성한다고 하시면서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통일을 위해서 주장하는것이 아니라 자기 출세를 위해 주장하고있다고, 자기가 집권하기 전까지는 민주주의요, 통일이요 하다가도 집권한 다음에는 민주주의를 줴버린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남조선당국자들이 처음에는 민주주의와 통일을 떠들다가 요즘에 와서는 통일을 주장하는 인민들을 탄압하고있는 사실에 대하여 언급하시였다.

당시로 말하면 남조선에서 전두환의 《5공화국》이 물러나고 로태우의 《6공화국》이 출현한 때로부터 1년 남짓한 시기였다.

로태우역도는 남조선인민들의 6월인민항쟁에 굴복하여 발표한 《6. 29선언》이라는데서 《직선제개헌》과 《민주화》를 공약하였고 집권후에는 남조선인민들속에서 통일운동이 고조되고 북남대화에 참가하려는 목소리가 날로 높아가게 되자 1988년 7월 7일 《남북관계와 통일외교정책에 관한 특별선언》이라는것을 들고나와 마치도 민주주의와 통일에 관심이 있는듯이 행세하였다.

그러나 가면은 벗겨졌다.

그는 국토종단대행진과 8. 15학생회담참가를 비롯하여 조국통일과 사회의 민주화를 위한 남조선인민들과 청년학생들의 의로운 투쟁을 총칼로 탄압하는것으로써 반통일분자로서의 자기의 본색을 여지없이 드러내놓았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문목사에게 《나는 문선생이 주장한 민주자 통일이고 통일이자 민주다라는 리념에 100% 찬성입니다.》라고 다시금 높이 평가하시였다.

그이의 이토록 분에 넘치는 치하와 고무의 말씀에 그는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되뇌이며 솟구치는 기쁨을 억제하지 못하였다.

1980년의 광주대학살만행을 통해 비로소 미국의 정체를 깨닫고 통일은 제힘으로 해야겠다는 소견을 가지게 되였으며 바로 그래서 민주자 통일이고 통일이자 민주라는 리념을 추켜들게 된 문익환목사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것을 적극 지지하여주시자 통일운동의 방향을 바로잡았다고 생각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다.

그는 흥분된 심정으로 위대한 수령님께 반파쑈민주화투쟁, 반외세민족자주투쟁, 민주통일투쟁 이 세가지가 하나로 되여야 한다는것이 남쪽의 운동론으로 정립되였고 그것을 운동의 방향으로 내세우고있으며 전민련의 강령도 바로 그것이라고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만족한 어조로 그것은 나의 의견과 100% 같다고 하시며 그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시면서 혈육의 정을 담아 말씀하시였다.

《자, 손잡고 나갑시다. 반파쑈반독재민주화, 반외세반침략자주화 그리고 평화적통일, 이 셋이 하나입니다. 우리는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있습니다.》

그러시면서 문선생과 같이 그런 훌륭한 주장이 없이 그저 관광객으로 올 멋이야 없지 않는가고 하시며 소위 회담을 한답시고 평양에 와서 랭면이나 먹으러 다닐 필요는 없다고 말씀하시였다.

문익환목사도 그이의 말씀에 크게 공감하며 그런 사람들때문에 민족의 숙원인 조국통일성업이 한해두해 자꾸만 늦어지는것이 안타깝기 그지없다고 말씀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렇기때문에 여기에 오려면 통일하러 와야 한다고 그의 말을 긍정해주시면서 통일을 하려면 우에서 말한것처럼 반파쑈민주화, 반외세반침략민족자주 그리고 민족의 평화통일, 이 세가지가 있어야 한다고, 지금 우리 민족앞에 나서는 기본과업은 이 세가지를 실현하자는것이며 우리는 여기에 모든것을 다 복종시켜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어 안팎의 분렬주의자들의 책동을 규탄하시면서 우리 조선은 력사도 하나이고 민족도 단일민족이며 문자와 언어도 같다, 지금까지 분렬되여 거의 50년이 되였는데 이제 앞으로 50년만 더 지나가게 되면 서로 말이 달라져 알아듣지 못하게 되며 풍습도 달라지게 될수 있다, 이렇게 되면 결국 두개 민족으로 되는것이다, 우리 민족이 단일민족인데 무엇때문에 두개 민족으로 되게 하겠는가라고 절절하게 말씀하시였다.

계속하여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에 대하여 언급하신 수령님께서는 온 민족이 단합하여 우리 민족자체의 힘으로 나라의 통일문제를 해결하여야 한다는데 대하여 밝혀주시면서 조국통일은 온 민족의 거족적인 위업인것만큼 누구든지 통일문제를 협의하기 위하여 찾아오겠다면 개별적으로라도 오는것을 환영할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통일문제에 대하여 고심도 많이 하고 제나름의 일가견도 가지고있던 문익환목사는 민족공동의 리익을 최우선순위에 놓고 조국통일을 위하여 온 민족이 떨쳐나설데 대한 수령님의 통일철학에 완전히 매혹되였다.

하여 그는 가슴속에 품고있던 의문을 말씀드렸다.

《주석님! 조국을 통일하자면 온 민족이 단결하여야 하겠는데 자본가들은 어떻게 하려고 합니까?》

그에게 있어서 이것은 오래동안 해답을 찾을수 없는 골치거리였다. 공화국정권은 로동자, 농민의 정권이라 지주, 자본가들과는 불상용적일것이니 남조선의 그 많은 중산층들과 자본가들은 어떻게 대해줄것인가 하는 생각에 갈피를 잡을수 없었던 그였다.

그의 이러한 고충이 리해되시는듯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환하게 웃으시며 미국이나 일본 같은 외세를 등에 업고 그들을 위하여 복무하는 매판자본가는 반대하여야 하지만 민족적량심을 가지고 민족을 위하여 복무하려 하는 민족자본가는 다 포섭하여야 한다고 명백히 대답을 주시였다.

문익환목사는 금시 눈앞이 환히 밝아지는듯싶었다.

《주석님! 그렇게만 하면 민족의 대단결은 문제없습니다. 민족의 단결이 곧 조국통일의 힘입니다. 그러니 벌써 조국통일은 이루어진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사실 나는 자본가들을 어떻게 하겠는가 하는 문제때문에 주석님을 찾아왔는데 민족자본가들과도 단결할수 있다고 하시니 문제가 다 해결되였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과 문익환목사와의 담화는 무려 두시간동안이나 진행되였다.

담화가 끝난 후 문익환목사는 자기의 솔직한 심정을 다음과 같이 말씀올리였다.

《이렇게 말씀을 들으니 남쪽의 통일운동의 확고한 구심점이 섭니다. 그만큼 모두들 확신과 자신을 가지고 일할수 있게 되였습니다.》

사람이 빛을 따르는것은 법이기 전에 생리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소박하면서도 진정어린 그의 이 말은 그대로 이 명언의 진리성을 확증해주는듯싶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문익환목사일행을 위하여 친히 오찬까지 베풀어주시였다.

문익환목사는 이 뜻깊은 자리에서 위대한 수령님께 자신이 준비한 두권의 책을 선물로 올리였다.

참으로 3월 27일은 문익환목사에게 있어서 잊을수 없는 영광의 날이였다.

하지만 이제 또 얼마나 크나큰 영광을 받아안게 될것인지에 대하여 그는 미처 생각지 못하고있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4월 1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몸소 문익환목사의 숙소를 찾아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문앞에 마중 나와 인사를 올리는 문익환목사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시고나서 담화를 나누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조선에서의 미군철수문제, 앞으로도 우리 나라가 영원히 다른 나라의 위성국이 되지 않도록 하는 문제 등에 대하여 언급하시고 반드시 조선인민자체의 힘으로 통일되고 중립화된 나라를 건설해야 한다고, 큰 나라를 등에 업고서는 만년이 가도 나라의 통일을 이룩할수 없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계속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북과 남이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통일문제를 해결해나가는데서 제기되는 일련의 문제들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밝히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남침〉을 하지 않으며 대담하게 북과 남이 마주앉아서 불가침선언을 채택하며 군대를 축소하고 경제문화교류를 실시하자는것을 시종일관 주장하고있습니다.

련방제도 마주앉아서 협의하고 실현하자는것입니다.

마주앉기도 전에 서로 리해할수 없다고 해서는 언제 가도 리해할수 없을것입니다.》

그러시면서 나는 나라의 통일을 위해서 필요한것이라면 무엇이나 다 찬성한다고, 나라의 통일을 위한 일을 까다롭게 대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고 하시면서 문제는 우리가 한자리에 모여앉아 허심탄회하게 토론하여야 풀릴수 있다고, 문선생과 이렇게 두번 만나니까 벌써 동지가 되고 서로 걸리는 문제가 없는것처럼 서로 모여앉아 토론하는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시였다.

문익환목사는 깊은 감동의 눈길로 위대한 수령님을 오래도록 우러르다가 주석님께서 공산주의를 받아들인것이 언제쯤 되는가고 물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소탈하게 웃으시며 아버님께서 자신에게 《레닌일생기》를 보라고 하여 그 책을 본 다음부터 쏘련에서 출판된 책을 많이 읽는 과정에 조선독립을 이룩하려면 공산주의사상을 가지고 해야 하겠다고 생각하게 된 때부터이라고, 아버님께서는 조선사람이 제마끔 파를 무어가지고 파벌싸움질만 하는데 그렇게 해서는 조선독립을 이룩하기 어렵겠다고 생각하고 《레닌일생기》를 읽으라고 하신것이였다고 감회깊이 회고하시였다.

그러시고나서 근엄한 어조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나는 민족해방을 위하여 공산주의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문익환목사의 가슴속에는 조국과 민족에 대한 숭고한 사랑이 맥박치는 그이의 말씀 한마디한마디가 돌에 쪼아박은 비문처럼 깊이 새겨졌다.

장시간에 걸친 담화를 마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에도 문목사일행을 위하여 오찬을 베푸시였다.

오찬회장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문선생의 어머니나이가 100살이 되기 전에 우리는 나라를 반드시 통일하자고 하시며 문선생이 평양에 왔다간 후에 북과 남사이에 자유로운 래왕이 이루어지면 좋을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우리는 앞으로 북과 남사이에 정치군사회담을 연 다음 다른 여러가지 회담들을 다 진행하여야 한다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나는 조국을 통일하는 일이라면 그에 무조건 복종합니다.》

오찬회장은 크나큰 감동으로 설레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마치 큰 모임에서 수많은 청중들을 향해 연설하시는듯 우렁우렁한 음성으로 같은 말씀을 되풀이하시였다.

《나는 조국을 통일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복종합니다.》

그것은 문익환목사일행만이 아니라 온 겨레를 향하여 하시는 그이의 숭고하고 위대한 애국애족의 선언이였다.

오찬이 끝난 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작별하기에 앞서 문익환목사를 뜨겁게 포옹하시고 오래도록 놓을줄 모르시였다.

다음날 문목사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 관계일군들과 회담을 가지고 조국통일은 7. 4남북공동성명에서 확인한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조국통일3대원칙에 기초하여 이루어져야 한다는 등의 9개 항목으로 된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문익환목사의 평양방문은 1940년대에 있은 김구선생의 평양행과 더불어 조국통일운동사에 큰 자욱을 남긴 장거였다.

물론 김구선생의 평양행과 문익환목사의 평양방문은 각이한 년대에 있은 서로 다른 력사적사실이지만 그것은 하나같이 민족적대의에 모든것을 복종시킨다면 어떤 신앙과 정견, 주의주장도 초월하여 전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할수 있다는 위대한 수령님의 민족대단결사상의 정당성과 생활력을 힘있게 실증해주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평양을 방문한 문익환목사일행을 두번이나 접견해주신 소식은 여러 나라 통신과 방송, 신문들에 대서특필되여 삽시에 온 세계에 전해졌으며 세인의 한결같은 격찬을 받았다.

서울로 돌아간 문익환목사는 그후 통일은 미래형이 아니라 현재형, 완료형이라고 하면서 위대한 수령님의 민족자주, 민족단합의 경륜을 실현하기 위하여 자기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한몸바쳐 투쟁하였다.

조국통일에 모든것을 복종시키신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숭고한 민족애는 오늘도 통일을 지향하는 우리 민족모두의 가슴마다에 래일에 대한 확신을 안겨주며 통일의 길로 신심에 넘쳐 나아가라고 힘있게 떠밀어주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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