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는 어디까지나 과거라고 하시며
1970년대 후반기에 들어와 모처럼 마련되였던 북남대화를 일방적으로 파탄시킨 남조선의 군사파쑈도당은 《두개 조선》조작책동에 더욱 악랄하게 매달리고있었다.
그러나 사회의 민주화와 조국의 자주적통일을 지향하는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의 불길은 거세차게 타올랐으며 이것은 《유신》독재체제의 전면적와해과정을 더욱 촉진시키였다. 남조선인민들과 민주인사들속에서 새로운 반파쑈민주주의련합전선형성에 대한 요구가 그 어느때보다 비상히 높아지는 가운데 괴뢰정권의 요직에 있던 사람들속에서는 《유신》독재자에게 복무하기를 거부하고 해외로 망명하는 수가 늘어나고있었다.
이러한 정세의 흐름을 깊이 통찰하신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온 겨레를 미제와 남조선괴뢰들의 《두개 조선》조작책동을 짓부시고 북과 남사이에 평화통일을 위한 폭넓은 대화를 마련하며 전국적인 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하고 민족적단합과 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투쟁에로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였다.
이미 조선로동당창건 30돐 기념대회에서 하신 력사적인 보고에서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전국적인 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하는것을 조국통일위업을 다그치기 위한 중요대책의 하나로 제시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66(1977)년 1월 25일에 진행된 공화국북반부 18개 정당, 사회단체련석회의에서 나라의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4개 항목의 통일방안을 제시하도록 하시였다.
4개 항목의 통일방안은 통일을 지향하는 북의 사회주의력량과 남의 애국적민주주의력량의 대련합을 실현하며 북과 남사이의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핵전쟁의 위험을 제거하며 민족내부의 불화의 근원을 없애고 민족적대단결의 분위기를 조성할데 대한 문제들을 협의하기 위하여 북과 남의 각 정당, 사회단체들과 각계각층 인민의 대표들로 구성되는 북남정치협상회의를 소집할것을 기본내용으로 하고있었다. 이는 분렬주의세력의 책동으로 영구분렬의 비운과 전쟁의 위험이 시시각각 짙어가고있던 당시 정세의 요구를 정확히 반영한 새롭고 현실적인 대책이였으며 민족내부문제를 자체의 힘으로 풀고 통일의 길을 열어나가기 위한 애국애족적인 대책이였다.
애국애족의 숭고한 뜻이 어린 이러한 통일방안들은 내외의 전폭적인 지지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우리 겨레모두의 가슴마다에는 위대한 김일성주석이시야말로 민족의 통일과 륭성번영을 안아오실 조국통일의 구성, 민족의 어버이이시라는 열화와 같은 흠모의 감정이 더욱 세차게 불타올랐다.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겨레의 열렬한 경모의 마음과 통일열망이 삼천리강토에 세차게 굽이치고있던 주체67(1978)년 11월 18일이였다.
이날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공화국을 방문하고있는 재미교포 최덕신선생을 만나주시였다.
그로 말하면 위대한 수령님앞에 감히 나설수 없는 과거를 가진 인물이였다.
평안북도 의주태생인 그는 8. 15해방전에는 황포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장개석국민당군대의 독립대대장으로 복무하였으며 해방후에는 서울에 나가 괴뢰군에 입대한 후 미륙군보병학교에 류학까지 하였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에는 괴뢰군사단장, 군단장, 정전담판 《국군대표》로, 전후에는 군단장, 외무부 장관, 서부도이췰란드(당시)주재 대사로 있으면서 1970년대초까지 반공일선에 섰던 그가 공화국을 방문한다는것자체도 충격적인 일이였지만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기까지 한다는것은 실로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였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불미스러운 과거와 결별하고 조국을 방문하려는 그의 지향을 애국애족의 뜻으로 보시며 공화국북반부를 방문한 그를 귀중한 시간을 내시여 친히 접견까지 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뜻밖의 영광에 황송한 마음으로 삼가 인사를 올리는 최덕신선생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시며 《나는 최덕신선생이 과거와 결별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조국을 찾아온데 대하여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그가 어찌할바를 몰라하는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선생을 만나고보니 의산 최동오선생이 생각난다고,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선생의 모습이 최동오선생을 꼭 닮았다고, 내가 선생은 이번에 처음 만나지만 최동오선생은 잘 안다고 하시며 그의 아버지 의산 최동오선생에 대하여 감회깊이 회고하시였다.
최덕신선생의 아버지 의산 최동오선생은 일찌기 위대한 수령님과 인연을 맺고 조국과 민족을 위한 길에서 삶을 빛내인 애국지사였다.
위대한 수령님과 최동오선생과의 인연은 수령님께서 화청의숙에 입학하여 공부하시던 나날에 맺어진것이였다. 일제식민지통치시기 조선독립의 뜻을 품고 상하이림시정부 법무부장, 국민부 외교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면서 민족주의운동에 관여하여온 최동오선생은 독립군의 군사간부들을 양성하는 화청의숙의 숙장시절에 위대한 수령님의 비범하고도 출중한 인품과 자질에 매혹되였다. 8. 15해방후 남조선에서 《과도립법의원》 부의장, 민족자주련맹 상무위원 등으로 정계에 몸을 담그어온 그는 조국강산에 민족분렬의 위기가 닥쳐오던 시기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소집하신 력사적인 4월남북련석회의에 참가하였으며 그후 조국의 평화통일과 민족의 단합을 위해 적극 노력하였다. 그는 1950년 9월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김규식, 조소앙을 비롯한 남조선정계인사들과 함께 공화국북반부로 들어왔으며 전후에는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상무위원으로 사업하면서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에 자신의 여생을 바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화청의숙시절 최동오선생에게서 배우고 집에 가서 식사도 몇끼 하였다고 하시며 잊지 못할 그 나날을 감회깊이 추억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최동오선생은 생활이 아주 검박하였고 인품이 너그러워 남에게 싫은 말을 하지 않았으며 더우기 남에게 해되는 일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고 하시면서 나는 최동오선생이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에서 일할 때 자주 만나 옛일도 회고하고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으며 선생의 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돌봐주느라고 하였다고, 최동오선생은 건강하였는데 1963년 9월에 뜻밖에도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고 가슴아픈 어조로 말씀하시는것이였다.
자신의 부친에게 주실수 있는 은정과 믿음을 다 베풀어주시며 극진히 보살펴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의리심에 최덕신선생은 고마움의 눈물을 흘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최동오선생은 조국통일을 위하여 애를 많이 썼는데 통일도 되지 않고 하여 아마 여러가지로 고민을 많이 한것 같다고 하시면서 4. 19인민봉기이후 남조선청년학생들이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라는 구호를 들고 일어났을 때 매우 흥분하였던 그가 박정희가 5. 16군사정변을 일으키고 《대통령》자리에 올라앉았을 때 대단히 분격해하였으며 사실 그때부터 실망하기 시작하였다고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이 말씀에 최덕신선생은 부친과는 상반되게 군사파쑈도당이 조작한 《유신》독재정권하에서 장관노릇까지 하며 조국과 민족앞에 씻을수 없는 죄를 지은 자신의 지난날이 돌이켜져 머리를 들수가 없었다.
그의 심정을 헤아리신듯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너그럽게 웃으시며 박정희가 《대통령》자리에 올라앉은 다음 선생이 그밑에서 일하였지만 그때 형편에서는 그렇게밖에 할수 없었으리라고 생각한다고 하시면서 말씀을 이으시였다.
《나는 선생이 지난날의 일들을 다 씻어버리고 조국통일을 위해 일하여보겠다는 새로운 결심을 가진데 대하여 높이 평가합니다. 과거는 어디까지나 과거입니다. 나라가 통일이냐 분렬이냐 하는 기로에 놓인 이때에 우리는 서로 손을 잡고 조국통일을 위하여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의 가슴속에서는 크나큰 격정의 파도가 일었다.
불미스러운 자기의 지난날을 불문에 붙이시고 이처럼 너그러운 도량으로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시는 위대한 성인이 이 세상 그 어디에 또 있단 말인가!
원래 리유여하를 불문하고 속죄란 인간의 갱신의지를 보여주는 처사라고 말할수 있다. 저지른 과실의 경중에 관계없이 속죄에는 아름다와지려는 그 인간의 량심과 번민, 의지가 고여있고 새 모습이 비껴있는것이다.
하지만 속죄하기조차 너무나도 불미스러운 과거, 민족을 등지고 사대와 매국으로 얼룩진 지난날을 안고 자책속에 몸부림친 그에게 있어서 자기의 괴로운 심정을 그처럼 속속들이 헤아리시고 너그럽게 용서해주시며 함께 손을 잡고 조국통일을 위한 애국의 한길을 가자고 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도량은 진정 바다의 광활함에도 저 하늘의 높이에도 비기지 못할 절세위인의 도량이 아닌가!
최덕신선생의 심중의 언어를 읽어보신듯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없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시고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우리 민족은 단일민족이며 5천년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가진 슬기로운 민족이라고 말씀하신 그이께서는 우리 민족은 누구도 갈라져 살것을 원하지 않으며 도이췰란드처럼 갈라질 조건도 없다고 하시면서 시간이 있으면 자신께서 그 전해에 도이췰란드사회통일당 중앙위원회 총비서가 우리 나라를 방문하였을 때 그를 환영하는 평양시군중대회에서 한 연설을 읽어보는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날의 연설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도이췰란드는 강대국으로 남을 침략하려다가 패전한 전패국이며 도이췰란드가 통일되는것을 주변나라들은 두려워하며 좋아하지 않는다는것, 또 민주도이췰란드(당시)사람들자체가 도이췰란드가 분렬되여있을것을 원하고있다는것, 그러나 우리 나라는 도이췰란드와 다르다는데 대하여 명백히 밝히시였던것이다.
그이의 말씀은 천만번 지당한것이였다.
우리 나라는 침략전쟁에 참가한 나라도 아니고 패전국가도 아니였다. 그리고 우리 민족은 지난날 일본제국주의의 압제밑에서 피어린 민족해방투쟁을 벌려 자체의 힘으로 독립을 쟁취한 민족으로서 둘로 갈라질 아무런 리유와 조건도 없었으며 조국통일이야말로 조선사람 누구나 열렬히 갈망하는 민족최대의 숙원이였다.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그를 바라보시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우리 민족의 분렬이 비록 외세에 의해 강요당한것이지만 조선의 통일문제는 어디까지나 우리 민족이 주인이 되여 우리 민족자체의 힘으로 해결해야 할 민족적문제입니다. 우리는 민족자주적립장에서 우리 민족끼리, 우리 민족의 힘으로 나라를 통일하고 민족의 운명을 개척해나가야 합니다.》
그러시면서 우리 나라는 큰 나라들사이에 끼여있는 자연지리적특성으로 하여 력사적으로 적지 않은 피해를 당해왔다고, 지금도 일부 대국들이 우리 나라를 노리고있는데 우리 민족이 다시는 대국들의 희생물이 되여서는 안되며 그러자면 민족자주적립장을 철저히 견지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주체의 신념, 자주의 넋이 맥박치는 그이의 말씀은 사대와 외세의존으로 병들었던 최덕신선생의 머리속을 깨끗이 정화시켜주는듯싶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민족자주리념에 완전히 매혹된 최덕신선생은 그이의 말씀을 심장으로 받아들이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나라의 통일문제를 해결하자면 사상과 리념, 정견과 신앙에 관계없이 민족의 단결문제를 내세워야 한다는데 대하여 이야기하시면서 우리는 자기 민족을 내세워야 하며 언제나 민족을 우위에 놓고 민족의 리익에 기초하여 단결해야 한다고, 우리는 민족의 통일을 첫째로 삼는다고, 자기 민족이 없이 공산주의를 해서는 무엇하며 자기 민족이 없는 《지상천국》은 해서 무엇하겠는가고, 나는 일제를 반대하여 투쟁할 때에도 언제나 민족문제를 먼저 생각하였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나서 남조선중앙정보부 부장이 평양에 왔을 때 조국통일3대원칙과 북남합작문제에 대하여 합의하였으나 남조선당국자들의 배신적인 행위로 실현되지 못하고있는데 대하여 까밝히시면서 민족의 리익은 안중에 없이 오직 자기 개인의 리익과 돈밖에 모르는자들과는 대화를 할수 없으며 단결할수도 없다고, 민족적량심이 없는자들과는 마주앉아야 의사가 통하지 않는다고 준절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최덕신선생은 민족우선의 립장에서 북과 남이 단결하고 합작할데 대한 그이의 민족대단합사상에 깊이 공감하면서 얼마전까지만 하여도 매국과 분렬의 길로 줄달음치고있는 남조선군사파쑈도당의 하수인노릇을 한 자기의 과거가 돌이켜져 머리를 들수가 없었다.
잠시 동안을 두시였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금의 조건에서 우리는 남조선의 각 정당, 사회단체대표들과 대화를 하자고 한다고 하시면서 우렁우렁한 음성으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우리는 민족적량심을 가지고 민족자주적립장에서 자기 민족을 위하여 복무하려는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든 과거를 불문하고 손잡을것이며 사상과 리념, 정견과 신앙, 재산의 유무에는 관계없이 같은 조선민족으로서 단결해나갈것입니다.》
민족대단합의 위대한 사상이 담겨진 이 말씀에 그는 머리를 번쩍 들었다.
자기에게 재생의 삶을 안겨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자애로운 모습을 우러르며 그는 여생을 조국통일사업에 헌신하며 미국에 돌아가서도 재미교포들과 미국사람들에게 공화국의 정당한 조국통일정책과 민족자주적립장에 대하여 널리 해설선전하고 납득시키겠다고 말씀드리였다.
그의 이 말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는 그것을 매우 필요하고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며 적극 지지한다고, 우리 나라의 통일문제는 우리 민족이 주인이 되여 민족자체의 힘으로 해결해야 할 민족내부문제일뿐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유관국들이 옳은 인식을 가지고 협력해야 할 국제적문제이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미국은 우리 민족분렬의 장본인이며 지금도 남조선을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지배하면서 조선의 통일문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책임있는 당사국이라고 하신 수령님께서는 미국당국자들이 우리 나라의 통일문제에 대하여 옳은 인식을 가지지 못하고 시대착오적인 대조선정책에 매달리고있는것으로 하여 우리 민족의 통일에 커다란 장애가 조성되고있다고 하시면서 그들이 공화국의 공명정대한 조국통일정책에 대하여 옳게 인식하도록 하는것이 중요하다는데 대하여 이야기하시였다.
이어 미국사람들과의 사업에서 중요한것은 나라와 민족의 자주성을 생명으로 여기고있는 우리는 절대로 남의 위성국으로 되지 않고 언제나 민족자주적립장을 지킬것이며 나라의 절반땅인 남조선을 남이 예속국으로 만들려고 하는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는것과 미국사람들이 조선의 통일에 유리한 조건을 지어주는 방향으로 나간다면 우리는 조미관계를 우호적으로 발전시켜나갈것이라는것을 똑똑히 인식시키는것이라고 하시면서 구체적인 자료와 실례를 들어가며 하나하나 밝혀주시였다.
이밖에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나라는 통일이 되여도 절대로 남의 지휘봉에 따라 움직이지 않을것이며 우리 식대로 살아나갈것이라는것, 우리 조선은 앞으로도 그 어느 나라의 위성국으로 되지 않고 중립적이며 완전한 자주독립국가로 될것이라는것, 우리는 《남침》할 의사가 없으며 우리 민족은 두번다시 동족간의 류혈전쟁을 하지 않을것이라는것, 미국은 우리 나라의 현실을 바로 보고 리성적으로 사고하여야 하며 하루빨리 그릇된 대조선정책을 시정하고 조선의 통일에 도움을 주는 정책을 실시하여야 한다는것 등 조국통일과 관련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이의 말씀을 받아안으며 최덕신의 가슴속에는 이분이시야말로 우리 민족에게 통일의 새 아침을 안겨주실 조국통일의 구성이시며 온 겨레가 안겨살 민족의 은혜로운 태양이시라는 확신이 굳게 자리잡게 되였다.
그는 위대한 수령님께 자기가 미국에 돌아가서 공화국의 이러한 립장에 대하여 잘 해설하면 미국사람들을 납득시킬수 있을것이라고 정중히 말씀드리였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렇게 되면 우리의 조국통일위업에 큰 도움이 될것이라고 하시면서 우리는 하루빨리 민족최대의 숙원인 조국통일을 이룩하여 반드시 통일된 조국을 후대들에게 넘겨주어야 한다고, 우리가 통일하지 않으면 누가 통일하겠는가고 말씀하시였다.
절절하게 울리는 그이의 음성을 들으며 최덕신선생은 일찌기 체험하지 못한 숭엄한 감정에 휩싸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경건한 자세로 앉아있는 그를 정겨운 시선으로 바라보시며 나는 오늘 최동오선생을 만난 심정에서 선생에게 조국통일문제와 관련한 우리 당의 립장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는데 앞으로 조국통일을 위하여 함께 손잡고 투쟁해나가자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나는 선생이 미국에 돌아가서도 자기 조국을 굳게 믿고 어떻게 하나 우리 민족의 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힘껏 노력하기 바랍니다.》
최덕신선생에게 있어서 이날은 조국과 민족을 위한 참다운 애국의 길에 다시 태여난 영광의 날이였다.
그후 미국으로 돌아간 최덕신선생은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가르치심을 받들어 조국통일을 위한 활동을 적극 벌려나갔다.
해외동포조직인 배달민족회 회장사업을 맡아보고있던 그는 해외동포 2세, 3세들에게 조국의 모습을 알려주고 그들을 통일위업에로 추동하기 위한 사업을 추진하는 한편 자기가 경영하는 배달신보사의 출판물들을 통하여 재미동포들과 미국사회에 북의 공산주의자들의 아량과 포옹력에 대하여, 북남합작의 가능성과 현실성, 공화국의 조국통일정책과 립장을 널리 선전하였다.
진실로 조국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비록 과거에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조국통일을 위한 애국위업에로 이끌어주시는 위대한 어버이의 품이 있어 최덕신선생은 죄많은 과거와 결별하고 말년이나마 보람찬 삶의 길을 걸어갈수 있게 되였다.
참으로 위대한 김일성주석은 조국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이든 과거를 묻지 않으시며 애국의 길에서 갱생의 삶을 누려갈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민족의 은혜로운 어버이이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