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출진전야
6
이튿날 식전바람에 마동열이 불쑥 정시명의 방에 들어왔다. 그런데 방에 들어서자 웬 영문인지 고개부터 푹 떨구는것이였다. 떠나기 앞서 방안을 정돈하던 정시명은 말장처럼 버티고서서 까닭없이 굳어져버린 마동열을 보자 어리둥절해졌다. 십년나마 데리고있었지만 마동열이 이렇게 소심한 꼴을 보이는게 처음인것 같다.
《웬일이요. 마중위?》
《저…》
마동열이 여전히 두볼이 벌그레해가지고 거친숨만 씩씩거리였다.
《허허- 말해야지, 마중위. 동열이도 이렇게 얌전할 때도 있었군.》
정시명은 무슨 심상치 않은 일이 그의 신상에 생겼나부다고 지레 속셈을 하면서도 안색을 밝게 하고 가볍게 웃어보이였다.
《저, 다른게 아니고 좀 선생님과 상론할게 있어서…》
마동열이 힘들게 이어가는 소리다.
《뭐요?》
정시명은 일견 긴장해서 물었다. 그는 마동열의 떡판같은 잔등을 밀어 걸상에 앉혔다.
《뭘 그래, 동열이, 내가 뭘 싫어하는지 알지?》
정시명은 여전히 마동열의 속구멍을 틔워주느라고 왼심을 썼다.
그제야 마동열은 고개를 쳐들었다.
《다름이 아니라… 선생님두 기어이 서울에 가셔야 합니까?》
《으음?!… 그래서?…》
정시명은 너무도 돌발적인 질문에 선뜩한것을 느끼며 성급히 되물었다.
《뭐, 글쎄 전 고향이라 이름붙일만큼 정을 붙인 곳이 없이 떠살이처럼 지낸놈이지만 그래도 정작 조국으로 간다니 이왕이면 평양에 가고싶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과 의논할려고…》
정시명은 가슴 한귀퉁이가 뭉청 내려앉는듯이 힘이 쭉 빠지였다.
《아, 그래서?》
정시명은 짤막히 마동열의 말을 받아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동열이 무엇인가 말을 꺼내려고 하다가 정시명의 눈가에 비낀 서글픔을 보자 다시 두툼한 입술을 닫아붙이고 고개를 떨군다. 정시명은 말없이 마루바닥을 뚜벅뚜벅 거닐기 시작하였다.
그러니 마동열이 하직인사를 하려 왔는가? 혈붙이처럼 생각되여온 마동열이 이제 곁에서 떨어져나간다고 생각하니 도무지 진정이 되지 않았다.
마동열이 방안을 오락가락하는 정시명의 옆모습에 허둥지둥 눈길을 쫓아다니다가 몇번 마른기침을 해서 목구멍을 열어놓고 결연히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이런 말씀을 드리게 되는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저는 서울에 가시려는 선생님의 결심에 대해 다 리해합니다. 그러나 전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마동열은 말꼭지를 떼자 그도 어쩔수 없이 흥분이 앞서 자주 떠듬거리였다. 오래전부터 속에 꿍져왔던 얘기였다. 서안을 떠날 때부터 혀끝에서 그냥 맴돌던 말이였다.
《우리가 이국땅에서 이만큼 고생을 했으면 이제 고향땅에 가서 살만 한 자격이 있지 않겠습니까? 삼천만 조선사람들치고 부모처자 다 버리고 스무해세월 등에다 칠성판을 메고 사지판을 넘나든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리고 우리야 북쪽태생들이 아닙니까?》
마동열이 시작할 때와는 딴판으로 자기의 속을 시원스럽게 털어놓기 시작하는데 정시명이 돌아섰다. 정시명이 말없이 생각깊은 눈으로 그의 얼굴을 더듬었다. 그 눈길에 주눅이 든 마동열이 입을 크게 벌린채 이야기를 중도에서 꺾고 말았다.
정시명은 그의 얼굴에서 눈길을 떼며 나직이 물었다.
《그래서… 어쩌자는건가?》
《선생님, 저도 선생님도 쇠꼬치야 아니지 않습니까. 여기 모여온 사람들은 다 남쪽에 고향을 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그들의 서울행이야 마땅한 길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에게는 꼭 가야 할 리유도 없고 또 이 길에 나서라고 등을 미는 이도 없지 않습니까.》
마동열이 이왕 시작한김에 밸머리가 생겨먹은대로 할 말은 해야 되겠다는듯 한 배포로 꿋꿋이 대답질을 했다.
사실 마동열은 정시명에게 자기를 빗대고 이제라도 서울길을 다시 고려해보라고 청을 드려보고저 했는데 인차 준비해왔던 말들이 뒤죽박죽이 돼서 생각한대로 이야기가 엮어지지 않았다. 마동열은 그 누구보다도 정시명의 고민을 속속들이 헤아리고있었다. 헤아려질수록 마동열의 가슴도 쓰라린 생각으로 터질듯 팽팽해져왔다. 정시명의 결단에는 무척 감동되여왔지만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아끼고 존경해오는 동지가 마땅히 차례진 행복을 마다하고 새로운 험로에 몸을 던지는것을 옆에서 그냥 보고만 있을수 없었다. 자기처럼 일가식솔에 대한 차분한 정을 다 잃고사는 사람이라면 모르겠다. 정시명이 아무리 심장이 돌멩이처럼 차고 든든하다 한들 어찌 끝이 언제일지 모를 고생을 또 질머지려 하는가. 세상천지를 둘러봐야 아무도 정시명이나 자기가 평양에 간다고 입을 비쭉거릴 사람이 있을것 같지 않다. 평양으로 가는 길은 마땅한 길이요, 또 가야 할 길이다. 량심에 꺼릴것도 없다. 기나긴 항일싸움터를 거쳐 광복된 조국으로, 부모처자 기다리는 고향으로 가는 길이니 박수를 받으며 당당히 고개 들고가는 길이다. 중국에서 싸운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은 남쪽에 고향을 두고도 붉은기발이 날리고있는 평양으로 들어간다. 그들은 조국인민들의 열렬한 환영과 지지와 사랑을 받고있으며 현재 중요 기관들에서 활약하고있다. 평양에 애국자들이 모여드는것은 응당한 일이다. 그런데 부등부등 이 모든걸 일조에 다 버리고 서울에 간다니 기막힌 일이 아닌가. 서울이 어떻다는거야 정향선생이 너무도 잘 아는바이다. 미국놈들이 깊숙이 발톱을 박고있다. 그리고 해외에서 반동들이 온통 모여들어 소동이다. 벌써 거기서는 미국놈들을 반대하는 피의 항전이 벌어지고있다.
마동열이 보건대도 서울땅의 공기가 날을 따라 랭랭해지고있다. 정시명을 서울에서 반겨맞아줄 사람도 많지 않을것이요, 반일운동자로서 차례질 영예도 행복도 기대하기 어려울것 같다. 물론 정시명이 뒤날의 명예나 부귀영화를 위하여 생사가 눈섭끝에서 오락가락하는 혁명전에 뛰여든 사람은 아닐것이다. 허나 나라가 광복된 오늘에 와서 부모처자 다 버리고 사선을 헤쳐온 20년 고행이 싸늘한 대접을 받는다면 너무도 허무하고 분한 일이 아니겠는가.
물론 결심을 굳히기까지 곁에서도 보기가 숨이 가쁜데 당자의 고충과 아픔이 어느정도이겠는가 짐작이 간다. 그 자별한 뜻과 기개가 얼마나 장한지도 가닥이 잡히지 않는바가 아니였다.
그래서 마동열은 여직까지 바질바질 끓는 속을 새겨왔는데 정작 서울길에 오르게 되니 명치에 옭맺혀서 자꾸만 골받이하는 울분을 터뜨리지 않고서는 견딜수 없었던것이다.
정시명은 마동열의 이야기가 좌충우돌하면서도 곬을 타고 육박해오자 당황해졌다. 투박하면서도 솔직한 이야기가 다 아물었던 마음의 상처를 덧쳐놓았던것이다. 그래 지금 마동열을 대상하여 전례없이 거칠게 반응하려고 했으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러니 동열인 나와 걸음을 달리 하겠다는건가? 그건 뭐 결심대로 하라구. 난 누구에게나 서울행을 강요하지 않았어. 자네에게도 례외가 아니야.》
정시명은 가까스로 이 말을 하였다.
순간 마동열의 눈이 번쩍거리였다. 삽시에 눈굽에 물기가 촉촉해서 정시명의 발부리에 어푸러지듯 꿇어앉는다.
《선생님, 그게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는데두요. 전 선생님이 가시는 길이라면 천리라도 만리라도 따라가렵니다. 선생님이 그래 이걸 모르십니까?》
마동열은 정시명에게서 뜻밖의 오해를 받는게 절통한듯 젖어든 목소리로 웨치였다.
정시명도 마동열의 속궁냥을 모를리 없었다.
그러나 그는 자못 격앙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일어나라구. 그 말도 옳지 않아. 탈선이야. 아주 엄중한 탈선이거든. 내가 가는 길이라면 무턱대고 따른다면 그게 무슨 뜻을 가진 인간인가. 우린 혁명가들이야. 애국자야. 신념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이 아닌가. 내가 구태여 서울길을 선택한것은 이 길이 새로운 수난을 안게된 겨레가 떠미는 길이라는것을 확신하였기 때문이야. 그래 나도 쇠꼬치는 아니야. 내게도 늙으신 부모님이 계시고 처자가 기다리고있지. 눈을 감으면 그네들이 날 찾는 소리가 귀전을 때리고 심장을 비틀어대지. 내가 또다시 그들을 다 버리고 서울길에 떠났다는것을 알면 얼마나 애통해하겠나.》
《선생님!》
마동열이 급기야 오열을 터치며 정시명의 두 다리를 부여안았다.
정시명은 다리를 잡힌채 고개를 쳐들고 천정을 올려다보면서 여전히 석쉼한 소리로 부르짖었다.
《그렇지만 어떻게 고향길에 들어선단 말인가. 엉?》
그의 눈앞에 어떻게 된 영문인지 은송의 담찬 모습이 떠올랐다. 그의 이야기들이 귀전을 윙 울린다. 그도 내가 나선 길을 막아서지 않았던가. 그의 얼굴이 지워지자 20년전의 그리운 얼굴들이 번갈아 떠오른다. 자기를 손저어부르는 그 애모쁜 모습들을 세워놓고 자기의 결심을 설명해주고 변명을 하고싶었다. 그네들의 량해와 지지를 얻고싶었다. 그리고 아직도 량심 한구석에서 부지불식간에 머리를 쳐들군 하는 마음속의 동요에 모진 채찍질을 하고싶었다.
《나라앞에서 백성된 한 사람으로 제 할바를 지켜야 될게 아닌가. 갈테면 가라구. 난 막지 않겠네. 동열이도 료량이 돼 있겠지만 우리가 나선 길은 혁명에 나선 스무해 품삯을 받으러 가는 길은 아니야. 더욱 힘겨울수 있는 싸움이지.
내가 흔해빠진 소릴 하는구만. 뭐 평양길도 나들이 가는 길은 아니고 그것 역시 건국에 이바지하는 길일테니 피차에 아픈 말을 거두세나. 어쩌겠나. 리별주라도 한잔 해야지.》
정시명이 꽉 찬 울화를 다는 터뜨릴길 없어 술병을 짐짝속에서 들춰내여 술잔에 붓기 시작하였다.
초점잃은 눈으로 정시명을 멀거니 쳐다보던 마동열이 그제야 정신이 펄쩍 들어 자리에서 성큼 일어나더니 정시명의 손에서 술병을 빼앗듯이 넘겨받았다.
《리별주는 무슨 리별주입니까.》
마동열이 정시명의 아픈 가슴만 긁어놓은 자기의 소행에 화증머리가 났던지 병채로 꿀꺽꿀꺽 마셔버리고는 방에서 휭하니 나가버렸다.
《저런! 그게 맹물인줄 알아?》
마동열의 데설궂은 행동에 정시명이 눈이 뎅그랑해졌다가 《허허허…》하고 크게 웃고 말았다. 마동열이 마구 탕탕 해대던 소리가 방안에 꽉 차서 그냥 윙윙거리는것만 같다. 심장이 급하게 뛰기 시작하였다.
그는 걸상에 주저앉아 괴롭게 중얼거렸다.
(동열이, 자네 말이 옳을수도 있어. 하지만 이젠 그 누구도 날 돌려세우지 못해. 나의 선택은 내 량심의 결단이야. 우리가 애국자라면 어떻게 나라반쪽 겨레가 또다시 침략자의 노예로 굴러떨어지는것을 그냥 놔두고 행복을 찾아, 따뜻한 보금자리를 찾아갈수 있단 말인가. 그건 량심이 용납하지 않아.)
정시명은 번거로운 상념에 이제는 영원한 종지부를 찍고싶어 두주먹에 힘을 주고 고개를 힘껏 저었다.
《다시는… 다시는!》
그리고는 다시 길떠날 행장을 꾸리기 시작했다.
일행이 심양역으로 나가는데 마동열이 자그마한 보짐을 막대기에 꿰들고 뒤꽁무니에서 스적스적 따라섰다. 앞에서 걷던 정시명이 걸음을 멈추고 그가 가까이 다가서자 옆구리를 툭 치며 슬쩍 한마디 건늬였다.
《어델?》
《…》
마동열이 얼굴이 벌개져서 정시명을 힐끔 돌아보고는 길가에 딩구는 마른 말똥을 군화발로 힘껏 차던지고 바람을 일쿠며 달아나버렸다.
《허허허…》
청높은 정시명의 웃음소리가 호탕하게 들렸다.
일행은 심양을 떠나 티엔진항을 향하였다. 거기에는 김송일이 일행이 숙박할 려관까지 마련해놓고 기다리고있었다.
김송일은 특별히 대기시켜놓은 일본인귀국선으로 그들을 안내하였다. 김송일은 일본인 선장을 불러 전승국군대로서의 최상의 봉사를 해줄것을 여러번 다짐받고서야 정시명을 끌어안고 작별을 고하였다.
정시명이 갑판에 올라 얼마 되지 않는 환송객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데 마동열이 슬그머니 그의 옆에 다가와서 손에 쪽지를 쥐여주었다.
《뭐요?》
《읽어보십시오.》
쪽지를 펴보니 이렇게 써있었다.
《정향동지! 저희들은 정향동지의 무사출국을 보장할데 대한 우리 당지도부의 지시를 집행하였습니다.
부디 안녕히 가십시오.
세계혁명 만세! 중조친선 만세!》
정시명이 그제야 중국사람들이 《한교사무처》에 망라된 사연을 알게 되였다. 그동안 요긴한 대목마다 그 사람들의 귀중한 방조를 받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기들을 위해 각별히 마음을 써준 중국당지도부 동지들의 동지적우정과 보살핌이 무등 고마워졌다.
《뚜-》
배가 드디여 닻을 올리고 출항의 고동소리를 길게 내질렀다.
배가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선미에 얼어붙은듯 서서 해풍에 머리카락을 날리며 멀어져가는 중국대륙을 바라보는 정시명의 마음은 더없이 감개무량하였다.
(이국의 하늘아래서 청운의 푸른 꿈 안고 반일전에 청춘시절을 보내고 이제는 머리에 흰서리가 내린다.
피 끓는 젊은 시절, 얼마나 많은 한숨과 눈물을 묻어둔 땅인가.
얼마나 많은 피와 희생으로 얼룩져있는 땅인가. 쓰라린 실패와 좌절과 위훈으로 엮어져온 파란곡절 많은 20년 고행길언덕을 넘어 조국으로 간다. 내 겨레의 품에 안긴다.)
갈매기 두마리가 깃을 치며 배전에 날아옌다. 무엇을 찾아낸듯 넘실거리는 바다물에로 쏜살같이 내리꽂힌다. 다시 날아올라 정시명의 머리우를 넓게 원을 짓고 돌아가다가 날개를 푸덕거리며 서쪽으로 날아갔다.
정시명은 갈매기가 점으로 사라질 때까지 홀리운듯 눈길을 보내다가 《허, 네가 나먼저 조국에 가겠구나.》하고 부러운듯 중얼거리였다.
갈매기들이 사라지자 일시에 여러 모습들이 기다린듯 그 하늘에 두둥실 떠올라 눈앞에 우줄우줄 다가든다. 아버지의 모습이 선참으로 다가선다. 항일운동에 나설 아들의 뜻을 흔연히 받아주고 대범하게 등을 떠밀어주던 아버지의 모습이 정시명에게는 언제나 힘이 되고 용기로 되여왔었다. 그 뒤로는 노상 밖에 떠도는 남편을 대신하여 억척스레 밭일을 하며 큰 집안을 다스려오던 어머니의 모습이 따라선다.
(애들은 어떻게 하고 지낼가? 소학교나 마쳤는지, 할아버지슬하에서 천자문이야 깨쳤겠지.…
아, 이제 다들 장정들이 됐겠구나.… 허허 참, 세월이란 류수와 같다더니…)
정시명은 허거픈 미소를 담고 나직히 중얼거리였다.
그들의 모습을 지우며 한 녀인의 어리무던한 얼굴이 다가들었다. 어디서나 뒤구석에서 있는듯 없는듯 조용히 지내던 안해의 어진 모습이 떠오르자 정시명은 가슴이 뻐근해왔다. 그 여린 몸에 아이들을 맡겨두고 세상천지를 떠돌다가 이제 빈손으로 찾아가는것이 여간 죄스롭지 않았다.
(이제 또 서울에 눌러앉으면 여전히 갈라져 지내야 되지 않을가. 아니 그렇게 해서야 안되지. 그건 피차에 너무 혹독한 일이다. 어떻게 방도를 찾아보자. 아무리 서울땅이 험하기로 처건사 못할만큼 험할텐가.…)
생각이 이렇게 뻗어가자 속이 무직해왔다.
(서울… 서울은 우리를 어떻게 맞아줄가.
미국놈들이 정말로 타고앉을 생각일가. 정말로 우리가 반미대결의 새로운 장을 벌려나가게 될것인가. 어차피 싸움은 해야 할것 같다.
미국놈들이 쉬이 물러갈 차비가 아닌것만은 분명하다. 이건 벌써 김일성동지께서 경종을 울리시였다. 미국놈들은 우리 나라에 발톱을 박으려고 백년전부터 덤벼들었다. 조상들은 그 백년간 미국놈들로부터 나라를 지켜냈다. 결국 우리 나라를 노리는 침략의 백년력사를 가진 미국놈들과 미국놈들로부터 제땅을 지켜온 이 나라의 애국의 백년력사의 대결이 이제 새로운 상황에서 다시 시작된 셈이다.…)
입을 꾹 다문채 마음속으로 담담히 엮어가던 정시명은 《음!-》하고 전신의 기운을 뿜어올리듯 길게 코소리를 냈다.
《뚜-》
크나큰 환희와 함께 무거운 시름을 안고 새로운 전구를 그려보는 정시명의 마음속에 길게 울리는 배고동소리가 유별난 정회를 담고 흘러들었다.
배는 대양의 거센 물결을 헤가르며 조선을 향하여, 그리운 조국을 향하여 기운차게 달린다.
주체35(1946)년 10월 24일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