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출진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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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활동에는 뜻하지 않은 난관이 조성되였다.
《한교사무처》의 명성이 높아져 서울까지 전해지자 우익계렬이 《조선인선무단》이란것을 조직하여 심양에 들이밀었던것이다. 책임자는 상해시절에 리범석의 밑에서 테로를 벌려온놈이였다.
이자들은 동북지방의 조선사람들속에 《한교사무처》가 공산주의위장조직이며 부처장 정향대령도 공산주의자라는 여론을 돌리였다.
정시명은 이들을 청산해버리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김송일에게 그놈들이 심양일대를 싸다니면서 《한교사무처》의 권위를 헐뜯고있는 사실을 자료로 묶어 넘겨주었다.
《한교사무처》의 활동성과로 하여 동북지방에서 명성이 부쩍 높아지고 저으기 기세가 좋았던 김송일은 그 자료를 보자 단박에 낯색이 불그락푸르락하였다.
《당장 쫓아내든지 목대를 분질러놓든지… 이놈들이 감히 눈앞에 김송일이 버티고있는걸 몰랐던 모양이군. 이건 나에 대한 선전포고야!》
김송일은 자리를 털고일어나 정시명이 보고서의 마지막에 서술한 대책적행동방향에 따라 동북보안장관부 사령관을 찾아갔다.
그동안 《한교사무처》의 활동을 루루히 보고받아왔던 동북보안장관부 사령관은 김송일의 제안을 쾌히 받아들여 이튿날 《조선인선무단》패거리들을 전부 장관부에 잡아들이였다.
며칠후 다시는 심양일대에 나타나지 않겠다는 문건에 지장을 꾹꾹 찍게 하고는 호송병을 한개 소대나 풀어 베이징북쪽으로 추방해버리였다.
일단 발등에 떨어진 불은 꺼졌으나 정시명과 그의 전우들에 대한 도발은 상시적으로 존재하였다.
베이징북쪽으로 쫓겨간 놈팽이들은 조선사람이 많이 사는 동북에서 자기의 활동거점을 잃게 되자 음흉하게 정시명을 모해하기 위한 책동을 벌렸다. 놈들은 심양에 자객을 고용하여 잠입시키거나 제놈의 심복들을 내세워 정시명과 《한교사무처》에 대한 여러가지 험담을 퍼뜨리기도 하고 지어는 암살단을 무어 정시명의 뒤를 검질기게 쫓아다니게 하였다.
어느날 저녁 《한교사무처》에 소속되여있는 중국사람이 찾아왔다.
정시명은 지금까지 그 사람들의 정체를 파악해내지 못하였다. 수상한것이라면 이따금 두사람중에서 한명씩 어데론가 사라졌다가는 나타나군 하였는데 둘다 심양교외에 있는 가족들을 찾아가군 한다고 했다.
이날 중국사람은 심양시의 조선인거주지역인 서탑 2가의 2층집에 정향선생에 대한 암살을 이틀후에 벌리게 될 테로단이 모여있다고 전하였다.
정보의 출처를 캐물으니 자기도 얻어들은 소리인데 틀림없는것 같으니 대책을 세우는것이 좋겠다고 하고는 조용히 물러갔다. 정시명은 그의 정보를 우선 믿기로 하였다.
정시명은 주저없이 옷을 갈아입고 침실을 나섰다.
(위기를 피해다니기만 해서는 피동이다. 맞받아나가 위험인자를 원천적으로 제거해야 한다. 이놈들을 완전히 눌러놓지 않으면 금후활동에 엄중한 후과가 조성될수 있다.)
송사리떼와 아귀다툼을 하는것 같아서 싱거운 생각도 들었지만 어차피 한번은 맞다들어 되게 다불려놓아야 할것 같았다.
정시명은 마동열의 침실에 들려 제기된 상황을 설명하였다.
마동열이 자못 긴장해서 정선생님은 계시라고, 자기가 몇명을 데리고 가서 놈들을 체포하여 장관부에 넘겨주겠노라고 말했으나 정시명은 떠들지 말고 자기를 조용히 따라서라고 하고는 문을 나섰다.
그들은 주저없이 악당들의 소굴을 찾아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방안에는 다부산자를 입은 건장한 사나이 넷이 해사하게 생긴 계집을 끼고 앉아 화투놀이를 하고있었다. 마개 뽑힌 술병들이 딩굴고있는것으로 보아 술도 마신듯 했다.
정시명은 정중하게 자기 소개를 했다.
《내가 당신들이 죽이려고 따라다니는 서안판사처 처장 정향이요. 그리고 이 젊은인 당신들이 무서워하는 마중위요.》
그러자 놈들은 아연실색해서 서로 눈길을 마주치며 어쩔줄 몰라했다.
서안판사처 처장의 명망은 상해패들속에 너무도 잘 알려져있었던것이다. 마중위라는 이름도 이놈들이 알고있었다.
네명중에서 이마에 칼자리가 나있는 놈이 두목이고 나머지 놈들은 그놈이 달고온 심복들인것 같았다.
정시명의 정중하면서도 위엄이 있는 소개말에 두목이 저도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약간 혀가 꼬부라진 소리로 《이거, 선생님을 몰라보아 죄송합니다.》하고 인사를 차렸다.
좌중을 둘러 보던 정시명이 양복에 넥타이까지 꼼꼼히 매고 색안경을 끼고앉아 뒤에서 눈치만 살피고있는 사나이에게 칼끝처럼 예리한 눈길을 박았다.
《옳지, 이 암살단이 누구의 조간인줄 알겠다. 문진국! 정체를 밝히지.》
정시명의 담담하면서도 서리발같은 추궁에 그 사나이가 안경을 벗더니 앞으로 나선다.
《정향선생, 오래간만입니다.》 인사가 제법 정중하고 틀진데가 있었다.
《당신도 리범석이처럼 끝내 미국의 개노릇을 하고있는 모양이군.》
《뭐요?》 헤식은 웃음을 띄우고 창졸간에 벌어진 일에 극도로 당황망조해 하던 문진국이 발끈 화를 내며 도전적으로 정시명을 노려보았다.
《네놈이 김구의 이름을 걸고 또 주인님을 해치려 해. 에잇, 돼지보다 못한 자식!》
마동열이 문진국의 상판에 한주먹 먹이고싶어 벽력같이 소리를 치며 한걸음 나섰다.
《마중위, 그만하오!》 정시명이 조용히 타일렀다.
두해전에 있은 일이다. 어느날 《림정》의 무력이라고 칭하던 《광복군》사령부에 참모로 공작하던 조태준이 정시명을 찾아왔다.
그는 정시명에게 피신하라고 하면서 리범석이 세개의 암살대를 조직하여놓고 기회를 노리고있다는것이였다.
평소에 안면이나 익힌 정도로 알고 지내온 리범석이 정시명을 향해 칼을 뽑아든데는 리유가 있었다.
당시 정시명은 리범석이 장개석의 비밀정보기관에서 정상적으로 정보자금을 받으며 특무노릇을 하는가 하면 미전략정보국 중경지부에 정식 등록된 요원이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림정》참모총장 류동명에게 통보해주었다.
류동명은 그것을 김구한테 보고하고나서 한주일동안 리범석을 독감방에 가둬놓고 끝내 토설을 받아내고야 말았다.
당장 목을 치라고 불호령을 내린 김구는 닭똥같은 눈물을 둘둘 굴리며 사죄하는 리범석의 가련한 몰골과 그놈을 처치하는 경우 받게 될 외부세력의 압력을 우려하여 일단 풀어주었다. 리범석이 뒤날에 그 자료를 정시명이 제공한것임을 알아가지고 살인지령을 내렸던것이다. 조태준은 그 암살단을 조종하고있는자가 리범석의 부관으로 있는 문진국이라고 하였다.
정시명은 이튿날 류동명과 함께 김구를 찾아갔다.
정시명의 이야기를 들은 김구는 당장 리범석과 문진국을 잡아들이라고 고함을 질렀다.
이윽고 리범석과 문진국이 《림정》요인들이 주런이 올방자를 틀고앉은 대청에 대령하였다.
《이실직고하라.》 김구는 대청이 떠나갈듯 소리질렀다.
리범석은 고개를 들어 좌우팔방을 살피다가 정시명이 앉아있는것을 보자 고개를 꺾어질듯 푹 떨구었다. 그놈이 얼마나 기절초풍했는지 쓰고있던 도수높은 안경이 돌마루에 툴렁 떨어져 박살이 나기까지 하였다. 가까스로 용서를 받고 풀려났지만 리범석은 그후에도 정시명을 제거하려고 별지랄을 다 썼으나 그때마다 그의 발밑에 묻혀있는 성원들과 마동열을 비롯한 정시명의 전우들의 헌신적인 투쟁에 의하여 제때에 적발 분쇄되군 하였다. 이번에도 리범석이 동북지방의 소식을 전해듣고 일후에 제놈의 강력한 적수로 귀국할 정시명을 지레 타향에서 모살할것을 시도하여 문진국을 현지에 파견하였던것이다. 적수들을 파리잡듯 하는것이 체질화된 놈들이였다.
《정향선생은 어째서 우리 참모장님을 그렇게 하치않게 랭소하는겁니까. 그러니 그 어른도 선생을 가만 두자고 할수 있소?》
문진국이 정시명의 규탄의 목소리에 도전조로 대들었다.
문진국의 소리를 듣자 정시명은 상대방을 뚫어지라 쏘아보았다.
(그러니 저 녀석도 리범석의 무엇에 매혹되여있는 모양이다. 그러지 않고야 어찌 저렇게 천진스러운 소리를 하고있겠는가.)
문진국이 리범석의 정체를 아직도 모르고있는것 같았다.
《무슨 소리요? 당신들은 그때 나의 통보를 반신반의하였지만 그건 여러 선에서 확증된 정보였소. 생각해보오. 광복이 되여 김구의 귀국을 그렇게도 막아나서던 미국놈들이 리범석만은 특별비행기를 내여 중국주둔군 미군사령부 웨드모웨이까지 직접 동행하여 서울에 〈모셔〉갔소. 하지중장이 직접 소개를 받았지.》
《그건 나도 압니다. 그 석상에 나도 있었지요. 하지만 그건 공식적인 면담이고 거기에서 의심할만 한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바로 그것이 문제요. 리범석이 얼마전에 정식으로 귀국할 때는 김포비행장에서 환영식까지 크게 벌려놓았소. 당신은 김구선생이 비행장에 내려 미군병졸들의 감시밑에 풍차에 실려 서울에 들어간것을 알고있소?》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이요?》
그때 옆에 있던 마동열이 문진국의 대답질이 하도 답답스러워 꽥 소리를 질렀다.
《여보, 당신이 도대체 리범석의 눈치밥을 먹는 사람이 옳긴 옳소? 그쯤 되면야 당신 상전이 어느 놈의 개인지 판단이 안간단 말이요?》
문진국은 마동열의 까박까지 당하고는 더는 대꾸질을 못하고 《두고봅시다.》하고 꽁무니를 빼려고 방에서 나갔다. 마동열이 두눈을 무섭게 부릅뜨고 문진국을 따라 나가다가 《됐소, 그까짓거 놔두라구.》하고 정시명이 눌러놓는 바람에 돌아섰다.
문진국이까지 사라지자 테로단놈들은 완전히 주눅이 들어 서로 쥐구멍에라도 숨어들듯 한 꼴이 되였다.
《보아하니 당신들도 살인을 치를 졸부들은 아닌것 같구려. 내 생각던 끝에 당신들과 이야기를 나누자고 찾아왔소. 아니 당신들의 죄상을 회계하자고 왔소.》
《거 무슨 말씀이시오?》
일당중에서 눈알이 앞으로 툭 삐여져나온 눈딱부리가 쥐고있던 화투목을 마루바닥에 홱 던지며 벌컥 성을 냈다. 그리고 안주머니에 손을 넣으려고 했다. 흉기를 꺼내려고 한 모양이였다. 두목이 그의 옷섶을 잡아당겨 제지시켰다.
《자중하고 다들 앉으시오. 경거망동은 사내들이 할 짓이 아니요.》
정시명은 그놈을 노려보며 위압조로 말했다.
《정말 당신들의 죄상을 세상에 발가놓아야 정신이 들겠소? 청맹과니 아닌이상 대세를 알아야지. 당신들이 지난날 자파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분별없이 날뛴것은 그래도 리해가 되오. 강도일제에게 조국을 빼앗긴 설음이, 살래야 살길없는 인생의 막바지가, 더우기는 좌표가 없이 좌충우돌하던 복잡다단한 운동들이 당신들을 생사를 기약할길 없는 극단의 싸움에서 리성을 잃게 했을거요. 하지만 오늘은 다르지 않소. 우리에게는 조국이 있소. 우리를 손저어 부르는 어머니품이 있단 말이요. 피눈물을 뿌리며 한을 남기고 떠나온 조국산천이 지금 우리를 찾고있는데 도대체 당신들은 아직도 옛적본성을 버리지 못하고 공산주의자요, 민족주의자요 하며 마구 류혈의 칼을 휘두르고있으니 그래 이게 조선사람이 할짓이요? 어디 말들 해보오. 이 정향이 당신들의 머리카락 한오리 다쳐놓은적 있었는가? 〈한교사무처〉가 당신들의 돈구멍을 막은적이 있는가? 내 나라, 내 겨레를 위해서 그래도 자그마한 성의라도 보이고싶어 하는 〈한교사무처〉가 어째서 당신들의 눈에는 가시가 되여 보이는가. 설사 당신들의 주장대로 공산주의조직이라 한들 내 조국에 대한 봉사를 하고있는데 흠잡을게 뭐가 있단 말이요. 오늘이나 래일이나 종당에는 당신들도 내 나라지경에 들어가 뼈를 묻힐것이 아닌가. 그런데 광복된 오늘에까지 이국땅에서 이따위 모략과 류혈참극을 벌리려하니 그래 인민이, 조국이, 고향땅이 용서할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정시명의 추상같은 단죄에 패당은 무릎을 꿇고야 말았다. 상대방의 심리를 꿰들어 명석한 지성과 론리의 힘으로 놈들의 죄상을 준절히 꾸짖는 정시명의 류창한 열변이 수십년세월 죄악의 버캐에 눌리워있는 량심의 마지막 쪼각을 세차게 흔들어놓았던것이다.
만일의 경우를 생각해서 두 주먹을 돌덩이처럼 틀어쥐고 놈팽이들을 노려보던 마동열은 정시명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들지 못하는 놈들을 보자 안도와 경탄과 통쾌함을 금할수 없었다. 마동열은 정시명을 따라나설 때만 하여도 오늘 밤은 필경 류혈적인 싸움이 있으리라는것을 의심치 않고 매우 긴장되여있었다.
정시명은 이자들이 오늘은 자기들의 죄상을 뉘우치지만 며칠 지나면 또 굳어진 본성이 살아날수 있다는것을 예상하여 오금을 박았다.
《일어들 서시오. 나는 당신들의 참회를 받으려오지 않았소. 내 굳이 찾아온것은 당신들때문에 이 동북땅에서 내 나라 망신을 시키는게 가슴아팠기때문이요. 난 당신들의 눈앞에서 사라지겠소. 하지만 귀국민들을 마저 보내야겠소. 그러니 당신들부터 당장 심양을 떠나시오. 요구한다면 조국으로 가는 배편을 주선해주겠소. 하지만 다시 동족을 물어뜯는 너절한 놀음을 한다면 우리의 동료들이 당신들을 가만 놔두지 않을것이요. 위협이 아니라는것을 명백히 밝혀두오.》
그러면서 정시명은 푸른 색갈의 마분지로 만든 장개석의 특별신임장을 주머니에서 꺼내 두목의 코앞에 내밀었다.
신임장에는 이렇게 씌여있었다. 《본 신임장의 소지자에 대하여 총통의 동의없이 구속 또는 활동제한을 불허한다.》
놈팽이들은 신임장을 돌려보고나서 더욱 눈이 휘딱해졌다.
《선생님, 용서하십시오.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으렵니다.》
두목놈은 연신 허리를 굽석거리고는 정시명과 마동열을 길가에까지 따라나와서 바래주었다.
정시명에게 위압되고 어느 정도로 감화된 테로단놈들은 다음날 아침 심양에서 꼬리를 감추었다. 문진국이도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