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장 선과 악의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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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의 정보담당고문 노불이 연장성이 제출한 자료를 받은것은 자정무렵이였다.
자료를 두번세번 훑어보고난 노불은 혼비백산해졌다.
《이럴수 있는가?》
노불은 자료에 담겨진 내용이 풀이되자 저도모르게 용수철에서 튕겨나듯 팔걸이걸상에서 일어났다.
노불은 한동안 초점잃은 눈으로 천정만 멍해서 쳐다보다가 연장성을 전화로 찾았다.
자료의 출처부터 물었다.
《무기명투서입니다. 정보의 심각성으로부터 생명의 안전을 위해 신분을 밝히지 않은것 같습니다.》
노불은 이런 대답을 듣자 곧장 하지의 집무실로 허둥지둥 달려갔다.
그는 문을 막아서는 부관을 홱 밀어제끼고 다짜고짜 하지의 방문을 열었다.
《사령관각하, 이거 큰일이 났습니다. 대표단의 출발을 보류해야겠습니다.》
노불은 방에 들어서자마자 어망결에 이렇게 큰소리로 떠들며 하지에게로 재빨리 걸어갔다.
《노불! 당신 웬일이요? 무슨 놈의 본때인가?》
하지가 무례하게 헤덤비는 부하를 매섭게 쏘아보며 꽥 소리질렀다.
그제야 노불은 자기가 극도로 흥분되였다는것을 알고 방안을 둘러보았다.
미군정장관 러취와 군복을 걸친 여러 사람들의 눈길이 그에게 쏠렸다. 그중에는 브라운도 있었다. 대표단이 래일 아침에 떠나게 되였으므로 밤늦도록 일장 훈시를 하고있었던 모양이다.
노불은 《사령관각하, 죄송합니다. 너무 급한 문제가 제기되여…》하고 사죄하고 물러가다가 부관실에 들려가지고온 문건을 부관에게 주었다.
《즉시 지급으로 봐달라고 보고하시오.》
부관이 문건봉투를 가지고 하지방에 들어갔다.
부관이 하지에게로 절도있게 다가가 문건봉투를 내밀며 보고했다.
《노불고문이 즉시 지급으로 문건을 보아달라고 합니다. 지금 대기하고있습니다.》
《그래?…》
하지는 마지 못해 좌중에게 잠간 실례하겠다고 량해를 구하고는 봉투에서 문건을 꺼냈다. 서두를 대충 훑던 하지가 대번에 《뭐야?!》하고 혼비백산하여 쏘파에서 튕겨나듯 벌떡 일어났다. 문건 첫머리에서 《극비. 브라운소장에 대한 암살기도》라는 제목을 보았던것이다.
그는 잠시 좌중을 둘러보다가 《브라운소장, 돌아가서 발언문을 다시 검토해보시오. 오늘은 이만합시다. 브라운소장과는 아침에 다시 만납시다.》
하지는 서둘러 대표단일행을 쫓아보냈다. 그리고는 초인종을 눌러 부관을 들어오게 하였다.
《노불고문을 들여보내!》
하지는 노불이 문턱을 넘어서기 바쁘게 물었다.
《이게 무슨 허튼 수작이요?》
《각하, 그렇게만 생각하실게 못됩니다.》
《어디서?… 어느 놈들이?… 빨찌산인가?》
하지는 기관총련발사격하듯 빠르고도 날카로운 어조로 다그어댔다.
《암살예정지는 평양입니다. 테로집단은 유감스럽게도…》
노불이 먹이를 노리는 독사처럼 불이 팔팔 이는 하지의 세모꼴눈을 보자 어기가 질려 슬그머니 고개를 외로 틀며 꺼지는듯한 어조로 대답을 이었다.
《혹 이것이 그 세번째 방안이라는게 아닐가요?》
노불이 조심스럽게 자기의 견해를 내놓자 하지는 주먹으로 책상을 힘껏 내리쳤다.
《노불! 당신 지금 제정신이요? 미국무성이 무슨 얼이 빠졌다고 그 따위짓을 벌리겠는가?》
《그래도 이건 부인할수 없는…》
《닥치시오. 허무맹랑한 허튼 수작이요. 난 당신네가 가져오는 정보를 절반도 믿지 않는단 말이요. 좋소. 또 한번 속아봅시다. 대표단경비력량을 배로 증가하라고 평양대표부에 전하시오. 그리고 곧 공산측에 보낼 항의각서를 작성하시오. 강도높게…》
《사령관각하. 문제는 다르게 설정되여있습니다. 그럼 제가…》
노불은 사령관이 제목만 보고 대경실색해진듯싶어 자기가 읽어주려고 문건을 손에 들었다. 하지의 역증을 더는 말로써는 당해낼수 없었던것이다.
그러자 하지가 그의 손에서 신경질적으로 문건을 빼앗아들고 눈으로 더듬었다. 구절구절이 너무도 뜻밖이고 놀라와 종이를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는 몇번 눈으로 훑고나서 그 의미를 씹어보듯 소리내여 읽기 시작하였다.
《미쏘회담수석대표 브라운소장에 대한 암살작전이 준비되고있다. 배후조종집단은 김포항공출장소이며 집행자는 리승만의 직속테로기관인 〈애국정탐사〉 사장인 건국청년동맹위원장 문통주이다.
이미 평양에 있는 문통주의 첩자 2명에게 밀령이 내려갔으며 거사후 증거인멸을 위해 현지첩자들을 처리할 2명의 〈애국정탐사〉 요원들이 서울을 떠났다고 한다.
브라운에 대한 암살은 될수록 회담전야에 평양에서 진행할것이다.
※ 이 자료는 무기명투서로 입수되였다.
다만 봉투에는 〈미쏘협상의 성사를 바라는 무명의 국민으로부터〉라는 글이 있었다.
투서는 종로구 우체통에 넣어 본부서에 입수되게 하였으며 문건에는 지문이 없었다.
우리의 판단에 의하면 자료제공자는 암살작전의 배후가 강력한 조직이라는데로부터 자기 생명의 안전을 위해 무기명투서의 형식으로 통보하여온것이라고 보아진다.
암살작전은 미쏘협상을 현단계에서 무산시킬것을 목표로 하고있으며 투서는 그에 불만을 가진자의 소행으로 간주된다.》
다 읽고나자 하지는 온몸이 굳어졌다. 일순간 모든 감각이 마비되여 노불의 얼굴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제기된 상황에 판단이 가지 않았다.
《사령관각하!》
노불이 그 멍청해진 꼴을 보자 큰 소리로 불렀다.
그제야 하지는 다시 종이장을 훑어보고는 물었다.
《어데서 들어왔소?》
《공보여론조사과장이 수집한 자료중에서 긴급으로 보고하여왔습니다.》
《신빙성이 어느 정도인가?》
《글쎄요…》
《좋소.… 나가보시오. 필요한 자료가 들어오면 즉시에 가져오시오.》
노불이 나가자 하지는 쏘파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아래다리가 후들후들거리였다. 전신의 기운이 일시에 발끝에 잦아내린듯 게나른해왔다.
미국이 이 정도가 되였는가?… 이 지경으로 미치게 되였는가. 자기의 사단장까지 제물로 바쳐야 할만큼 사태가 막바지에 이른것인가.… …
잠시후 마음을 수습한 하지는 사태의 전후관계를 랭정하게 추리해보기 시작하였다.
무엇때문인가?… 그건 아마도 노불의 직감이 맞는것 같다. 미쏘협상결렬이라는 목표가 명백하다. 거기에 초점을 맞춘 세번째 방안일수 있다.
누가?… 문통주?… 아니다. 그가 아니다. 문통주가 이 어마어마한 살인극을 연출할수는 없다. 어느 놈일가?…
불현듯 언제나 신사연한체 검정양복에 넥타이를 단정히 조여매고 윤기나는 칠피단화를 신고다니는 틀진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레코라우스, 김포항공출장소 소장이다. 그놈밖에는 미군사단장을 저승에 보낼 이 엄청난 모략을 궁리해낼수 없다. 대표단에서 수원정도라면 모르겠다.
거기에 리승만이 아마도 합세한것 같다. 《애국정탐사》를 그 정도의 모략에 개입시키려면 그 두상의 동의가 없이는 곤난하다. 《애국정탐사》는 리승만의 직속테로기관이다.
그 늙다리가 이런 살인흉모에 가담하다니… 아니 가담정도가 아닐수 있다.
주창자의 한놈일수 있다.
《안돼! 사단장을 죽여버리다니. 미군사단장의 목숨이 파리목숨이더냐. 그 사람이 죽어야 할 죄라도 있는 사람이냐. 안돼!… 그건 안돼! 더구나 이 하지는 자기 사단장을 물어먹었다는 오명은 남기지 않을테다.》
미칠듯 한 흥분에 휩싸인 하지는 전화를 들었다.
《당장 김포항공출장소를 찾으라!》
하지는 전화통에 대고 소리질렀다.
하지는 다시 방안을 왔다갔다 하며 사색을 이어갔다. 맥아더의 말이 생각났다. 맥아더가 좋아하는 명언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명령에 불복하는자 유명해지노라.》이다. 또 하나는 《전장에서 자기를 구원해주는것은 덕이다.》이다.
앞의 말은 군인은 싸움을 창발적으로 해야 한다는것이요, 뒤의 말은 장교는 수하 장병들에게 덕을 베풀라는 뜻이다.
하지는 맥아더라는 위인을 그닥 탐탁치 않게 여기지만 이 말은 그럴사 하다고 생각해온다. 하지는 자기의 군복무에서 이 말을 은근히 따르고있었다. 그가 아놀드가 쫓겨갈 때 아리조아주에 가서 농장을 경영할수 있도록 자리를 알선해주고 필요한 자금까지 무둑히 안겨준것도 맥아더의 그 알량스러운 명언을 따른것이라 할수 있었다.
하지는 아놀드뿐아니라 수하 부하들이 자기곁을 떠날 때는 언제나 그들이 불만을 가지고 떠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왔다. 상대가 비록 자기가 철직시켜버린자라 해도 례외가 아니였다.
하기에 수하 장교들치고 그를 싫어하는놈이 얼마 없으며 떠나간자치고 그를 시비질하는놈이 얼마 없다고 한다.
그런데 도대체 위급이나 좌급장교도 아니요 큰별을 두개씩이나 올려놓고다니는 수하 사단장을 죽음에로 몰아가는 이 무지한 활극을 가만 보고만 있을수 있는가. 도대체 레코라우스가 이 하지를 뭘로 보는건가. 빌어먹을 놈, 네놈을 당장 군사법정에 세워놓고 목대를 비틀어놔야지…
김포항공출장소는 명색뿐이고 실은 미전략정보국 남조선지부이다.
레코라우스는 그 우두머리이다.
그가 셋째방안의 기안자이고 집행자임에 틀림이 없다. 이미 레코라우스가 덕수궁회담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있다는 자료가 들어왔다.
노불의 말에 의하면 레코라우스의 첩자인 《뉴욕타임스》 서울특파원을 비롯한 세명의 요원들이 덕수궁회의에 참가하여 각각 평가보고서를 매일 제출한다고 한다.
하루는 《뉴욕타임스》 특파원이 작성한 보고서의 부본이 하지에게 전해졌다.
그 내용이 유모아적이면서도 의미심장하여 지금도 하지의 기억에 남아있다.
《… …
회담에서 밀리는것은 브라운이다.
이것은 불가항력적이다. 왜냐하면 브라운소장은 뒤걸음치려는 사람이고 쏘련대표 스티꼬브중장은 나가려는 사람인 까닭이다. 그런데 회의가 길어질수록 브라운은 점차 배수진에 이르고있다.
회의에서는 미국의 대조선정책이 벌거벗기우고있다. 이제 알몸으로 나앉을 때가 왔다. 가리워보자니 맨손뿐이라 그 역시 난사이다. 돌아서서 물에 첨벙 뛰여드는것이 차라리 더 큰 수치를 면하게 할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 아닐가?… …》
전화종이 울렸다. 교환수가 김포항공출장소장이 지금 부재중이라고 알렸다.
《엉큼하기로 황구렝이 눈알 빼먹을놈, 오금이 저려나는 모양이군.》
하지는 수화기를 던지며 씹어뱉듯 중얼거리였다. 레코라우스가 전화를 사절하는 모양이다.
다시 방안에는 무거운 군화소리가 울렸다.
하지는 창가로 다가갔다. 창문을 열자 초여름의 훈훈한 공기가 확 쓸어들었다. 그는 3층창턱까지 솟아있는 푸르청청한 전나무의 뾰족뾰족한 잎새들을 보며 생각을 가다듬었다.
무표정한 눈길로 한동안 나무잎새만 내려다보느라니 치미는 분노와 흥분이 서서히 가라앉고 피도 식어진것 같다. 모닥불처럼 순식간에 타올랐던 울분이 사그러들자 어떻게 된 노릇인지 다르게 생각이 이어졌다. 레코라우스가 전화를 사절한것이 차라리 다행스럽다. 세번째 방안이 추구하는 의미는 석연하다. 레코라우스의 립장에 서보자.
브라운을 쓸어눕힌다. 평양에서 거사를 실현한다. 그 다음에는 북조선측에 그 책임을 전가시킨다. 하수인들을 없애버리면 어차피 신변안전을 담보한 북조선측이 책임을 지게 되는것은 상례다. 아니 그들의 소행으로 밀어붙인다.
그러면서 북조선측이 미쏘회담을 반대한다는 여론을 돌리고 그것을 구실로 회담을 끝내버린다. 남에서는 좌익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면서 《단선단정》만이 해결책이라는것을 골자로 세계여론을 대상한 공세를 벌린다.
그러면 왜 꼭 회담의 수석대표를 제물로 바쳐야 하겠는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있는 난문제이므로 어차피 세계를 놀랠만 한 도박을 놀아야 한다. 고래잡는데 붕어낚는 미끼로야 어림도 없지 않는가.
(브라운… 당신이 불쌍하구나.)
하지의 격하던 감정은 쓸쓸한 비애로 바뀌였다.
(하지, 당신도 불쌍해. 제 새끼 물어가는줄 알면서도 손가락 한번 튕기지 못하게 되였으니 너도 비겁쟁이임에 틀림이 없구나.)
하지는 부지불식간에 커다란 고뇌와 비분이 가슴에 쓸어들었다. 끝없는 절망과 허탈에 잠겨 쏘파로 어정어정 걸어가 주저앉았다.
그는 갑자기 골속에 파묻혀 버린듯 한 눈으로 천정의 한점을 멀거니 올려다보았다.
(아놀드는 쫓겨나게 하고 브라운은 이렇게 제물로 보내다니…)
살이 떨리고 주먹이 떨렸다. 생각할수록 기가 막혀 피가 꺼꾸로 솟는다.
그러나 그는 갑자기 두주먹에 힘을 주어 온몸을 부르르 떨고는 쏘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난 의무앞에서 복종만 아는 군인이다. 난 지금 미국의 리권을 지키고있는 현지의 보스이다. 그건 다 얄팍한 감정에 지나지 않는다.)
끝내 군인다운 랭정성이 인간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감정을 이겨낸것이다.
《하는수 없어. 미국이 이 땅을 삼키려던 백년대계가 어찌 피가 없이 성취되겠는가. 브라운! 영예롭게 죽으라.
뒤날에 내 그대의 묘비를 크게 세워주리다. 영예로운 순국을 했노라 비문도 크게 쪼아박지.》
하지의 세모꼴눈이 다시 번들거리기 시작하였다. 살기가 뻗쳤다.
다음날 하지는 출발에 앞서 사무실에 인사하러온 브라운을 만났다.
그를 정작 마주서자 으스스한 기분을 덜수 없었다. 아무리 혈관에 랭혈적이고 과격적인 스코트종족의 피가 흐른다지만 제 부하를 도살장에 보내게 되니 자꾸만 그의 눈을 피하게 되였다.
신변에 각별히 류의하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기여올랐으나 가까스로 참아냈다.
브라운이 돌아서나가려 하자 《잠간, 소장.》하고 멈춰세우고는 꼬냐크를 꺼내놓았다. 군정의 두 거두들은 말없이 잔을 쪼았다.
하지는 잔을 들면서도 고별주라는 생각에 가슴이 후드드해왔다.…
위험은 제때에 제거되였다.
하지는 끝내 자료내용을 브라운에게 전달하지 않았으나 그에 대한 암살작전은 파탄되였다. 평양에서 브라운을 노린 현지첩자 두명과 문통주가 파견한 살인악당들은 브라운의 숙소가 있는 모란봉에서 거사직전에 평양보안원들과의 총격전에서 다 즉사하였다.
미국의 세번째 방안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미제의 모략은 더는 통하지 않게 되였다.
회의장안팎에서 망신만 당한 미국놈들은 날이 갈수록 제놈들의 검은 속심이 폭로되고 외교적승산이 도저히 보이지 않게 되자 회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해버렸다.
끝내 브라운이 막다른 배수진에 걸려들고만것이다.
기다린듯 세상은 미국의 량면술책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를 더욱 높이기 시작하였다.
《조선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조정자》로서의 미국의 가면은 벗겨졌다.
회담결렬을 《단선단정》의 명분으로 삼으려 했던 흉계도 분쇄되였다.
오히려 미국은 새로운 강타에 직면하였다.
쏘련대표단이 브라운일행이 일방적으로 퇴장한 후 쏘미량군을 즉각 철수시켜 조선인민이 자기 손으로 통일정부를 세울수 있는 가능성을 줄데 대한 성명을 발표한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