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장 선과 악의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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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36(1947)년 5월 말 서울 덕수궁에서는 제2차 쏘미공동위원회가 열렸다.
회의에는 서울에 있는 여러 정당, 사회단체 대표들도 참가하였다. 김명호가 준비시킨 여러명의 조직성원들도 참가하였다. 그중에는 《한민당》의 대표자격으로 참가한 김승원이도 있었다.
둘째단계의 조직활동에서는 주역이 바뀌였다. 길철을 대신하여 김명호가 나섰다.
정시명은 쏘미협상을 둘러싼 싸움에서 경험을 쌓은 길철을 그냥 내세울가 하다가 이번 싸움에는 정당들을 움직이는것이 기본이므로 김명호로 바꾸었다.
길철은 뒤전에 물러서기는 했으나 여전히 분주히 뛰여다녔다. 그는 회의와 관련한 자료들을 제때에 장악하여 정시명에게 보고하였으며 필요한 단위들에 넘기여 회의의 순조로운 진행을 배후에서 강력히 지원하였다.
정시명은 조태준의 보고에서 지적된 《적당한 구실》에 대하여 주목을 돌릴것을 자기 사람들에게 요구하였다.
그 《적당한 구실》이 하나하나 감시권에 포착되기 시작하였다.
어느날 미쏘협상수석대표 브라운이 김구의 집을 불의에 방문하였다. 이어 브라운은 리승만의 집도 방문하였다. 브라운의 자동차가 며칠새에 겨끔내기로 정치의 두 거목의 집에 분주스럽게 들락날락하였다. 그러더니 리승만과 김구가 마침내 조선호텔에서 비밀리에 마주앉았다.
이에 대한 자료가 즉시로 안지생으로부터 보고되여왔다.
《… …
리승만과 김구가 브라운의 중재밑에 조선호텔에서 회담을 가졌다. 그들은 며칠후에 쏘미협상과 관련한 자기들의 반대의사를 련명으로 발표할것을 합의하였다. 공동성명의 초안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되여있다.
〈다른 사람들이 미쏘공동위원회에 참가하는데 대하여 우리는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2차협상에서도 우리는 크게 실망하고있다.
우리는 회담에서 종종 울려나오는 위임통치요, 신탁통치요 하는데 대하여 접수할수 없다.
더구나 신탁통치의 형태와 내용 그리고 민주주의와 현지기관의 자유와 독자적재량권의 계선에 대한 회담쌍방의 명백한 태도표명이 있기전에는 회담의미가 없다고 인정하고 참가를 보류하고저 한다.〉 이것은 물론 브라운의 지령에 의한것이다.
이 성명서가 공개되면 미국은 남조선의 주되는 정치세력들인 리승만, 김구집단의 회담 뽀이꼬트를 걸고 쏘미공동위원회의 실효성을 운운하면서 회의종결을 선언할것이다.》
정시명은 이 자료를 리승만과 김구가 움직이기전에 즉시에 서울의 일간신문들에 대서특필로 공개하도록 하였다.
이 신문들이 서울시내에 한벌 깔린 그날, 회의휴식시간에 쏘련대표단 단장 스티꼬브중장은 미국인접대원이 가져온 커피를 마시다가 지나가는 소리로 슬쩍 한마디 비치였다.
《브라운소장, 난 오늘아침 서울신문에서 매우 흥미있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이제 리승만과 김구가 회의에서 물러나고 당신들도 물러날것이라고 전망했던데 당신들은 정보관리를 잘못하는것 같습니다.》
스티꼬브가 빙그레 웃는데 브라운의 희멀끔하던 상통이 순식간에 벽돌빛으로 달아올랐다.
그러나 사진기자들이 련이어 조명불빛을 번쩍거리기 시작하자 인차 헤식은 웃음을 용케 지어내고는 능청스럽게 대꾸하였다.
《스티꼬브중장, 난 신문쟁이들의 글장난에 눈을 팔지 않습니다. 우린 군복을 입은 정치가들이지요. 고양이가 야웅한다고 가던 길을 돌아설수야 없지요.》
《하하… 그러니 내가 과민반응을 했나 봅니다. 옳습니다. 우린 군복을 입은 정치가들이지요. 고양이가 야웅하면 놀라는건 쥐새끼들뿐이지요. 나는 당신의 이야기를 새겨두겠습니다.》
브라운은 상대의 웃음보다 훨씬 청높은 웃음을 터뜨려놓았으나 오히려 그 위선으로 하여 발목에 족쇄가 채워졌다. 미국은 회담장에서 빠져나갈수 없게 되였던것이다.
뒤덜미를 단단히 잡힌 미국은 또다시 구차스러운 오그랑수를 쓰지 않으면 안되였다.
브라운은 내키지 않은 기분으로 미국무성의 각본에 따라 미군정청 기자회견장에 들어섰다.
이미 그곳에는 군정청의 호출을 받은 리승만과 김구가 한발 앞서 와서 쏘파에 눈을 감고 앉아있었다.
그들을 보자 브라운은 걸음을 멈추고 한동안 리승만과 김구를 번갈아 노려보기만 하였다.
당장에 두상태기들을 한대씩 줴멕이고 도대체 어떻게 입방아질을 하고 다니기에 날 망신시키고 일을 뒤틀리게 하느냐고 되게 족치고싶었다.
당신들의 운명과도 직결된 문제라고 어마어마하게 강조하기까지 하면서 비밀관리를 부탁했는데 대문을 나서기 급하게 세상이 떠들썩하니 저것들을 끼고 어떻게 거사를 치른단 말인가.
기자들이 들어오고 장내가 한동안 소란해지자 브라운은 여전히 표표한 눈길로 리승만과 김구를 쏘아보기만 하였다.
리승만과 김구도 《네놈들이 요사를 떠는 바람에 돼가는 꼴이 엉망이다》는듯 한 도전적인 눈초리로 마주보고있었다.
장내가 정돈되자 브라운이 앉은 자리에서 뱉아버리듯 짤막히 말했다.
《리선생, 김선생, 미쏘협상은 당신네도 지지한바이니 순순히 참가할것을 권고하오.》
리승만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브라운은 한손을 들어앉으라고 하고는 그를 무시하듯 기자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지금 일부 비협조적인 언론매체들에서는 미군정당국의 회담의지에 대해 불신을 표명하고있는데 우리는 미쏘회담을 일정대로 계속해나갈것이라는것을 다시금 확언하는바입니다.》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맨 앞에 앉아있던 한 녀성기자가 냉큼 일어나 질문을 들이대려고 했으나 브라운은 돌아보지도 않고 연탁에서 내려 나들문으로 향하였다.
그는 리승만과 김구가 심술스럽게 입을 내밀고있는것을 흘끔 돌아보았으나 시치미를 떼고 인사도 없이 그들앞을 지나 밖으로 나가버렸다.
다음날에는 미국무성에서도 성명을 발표하였다.
성명에서 미국무성은 미쏘협상과 관련하여 현지집단과의 그 어떤 비밀접촉이 있었다는것은 사실무근의 날조된 류언비어라고 딱 잡아뗐다.
도적놈이 발저려하는 수작질이였다.
미국무성은 한걸음 더 내밟아 일부 세력들의 회의탈퇴움직임에 유감을 표시한다고 부언하였다. 들어오는 손님에게 개를 풀어놓아 물어뜯게 하고는 손님앞에서 개배때기를 차는 격이다.
며칠후 분통이 터질대로 터진 리승만과 김구는 협상반대성명을 끝내 발표하고 자기 대표들을 회담장에서 퇴장시켜버리였다.
그들은 미국놈들의 손끝에서 꼭두각시처럼 주무르다가 체면이 없게 되자 주저없이 자기들을 마구 희롱질하며 언론앞에서까지 저들의 부끄러운데를 가리워주는 정도의 취급을 하는데 대하여 더는 참아낼수 없었던것이다.
특히 리승만은 미쏘협상이 당초의 밀약대로 되지 않자 양놈들에게서 배신을 당했노라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돌아갔다.
김명호가 이것을 알아내여 기어이 불집을 쑤셔놓고야 말았다.
어느날 김명호가 준비시킨 《서울신문》 정치부의 녀성기자가 웃음을 남실거리며 리승만과 마주앉았다.
기자는 화제를 애교있게 돌려가다가 쏘미협상문제에로 끌고갔다.
《난 그 문제라면 빚진거 없어. 하지일파가 나와의 약속을 어기였단 말이야. 그놈들은 신의라고는 꼬물만치도 찾아보기 힘든 군사정객들이요.》
리승만에겐 이 대목이 목에 가시처럼 박혀들었다. 촉각이 예리한 녀기자는 그걸 놓치지 않고 난딱 물어챘다.
《저, 위원장선생님, 하지가 지키지 못한 약조라는게 도대체 무엇입니까? 어째서 회담이 계속되고있습니까?… 위원장선생님은 정치적고아가 됐다는 설도 있는데 유감입니다.》
녀기자가 살짝 웃으며 리승만의 비위를 건드려놓자 리승만이 결난 김에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브라운이 찾아왔더란 말이요. 하지의 특명을 받았다나. 그 사람이 나하고 약속하기를 2차미쏘회담이 〈단선단정〉을 위한 사치품이요, 회담무산을 위한 일시적양보이니 우선은 회담재개를 운운하라는거야. 그래서 난 애초에 그걸 신통치 않게 여겼지만 그네들이 두번세번 찾아오는 일이라 응했던거요. 헌데 일은 어떻게 되였는가. 미쏘회담은 그냥 벌어지고 총선거요, 통일정부요 하는 따위의 잠꼬대만 무성해진단 말이요. 이게 신의를 가지고 하는 정치요?》
《참, 사내들이 하는짓에도 변덕이 많군요. 그럼 선생님, 전 실례하겠습니다.》
리승만은 밤을 자고난 아침에야 잠자리에서 이일저일 생각해보다가 제놈이 그 해사한 계집에게 굉장한 실언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프란체스까가 덩달아 화닥닥 일어날 지경으로 자리를 차고일어나 전화통에 매달렸다.
서울신문사를 찾아 오늘 신문에 녀기자의 회견내용이 실리지 않았느냐고 하니 벌써 시내바닥에 뿌려져 돌풍을 일으키고있노라 자랑스럽게 대답하였다.
《이거 야단이 났군. 고 암고양이같은 계집이 살살 꼬인다 했더니 내 간을 빼려고했댔군. 이거 큰일이요!》
리승만은 너무 경황이 없어 이렇게 얼이 빠져서 주절거렸다.
리승만의 불안이 우연이 아니였다. 하지와 브라운이 뿔이 났다. 시켜서 한 일에 수족이 묶이게 된것이다. 문제의 진위를 따지고드는 전화가 군정청에 쉴새없이 날아들었다. 마샬까지도 전화로 《어째 서울은 바람 잘 날이 없느냐》고 짤막하지만 바늘끝처럼 날카로운 추궁을 하여왔다.
부아통이 터진 하지는 처음에는 브라운이 서투르게 정객들을 다루었노라 야단을 부리다가 그것이 성차지 않아 리승만을 당장 끌어오라고 하였다.
리승만이 부엉이처럼 부어오른 눈시울을 붙이고 도살장에 끌려오는 소처럼 엉기적엉기적 들어섰다.
하지는 옆에다가 브라운과 노불이며 여러 고문들을 주런이 앉혀놓은채 《당신 로망인가?》하고 하인 다루듯 고함을 질렀다. 하지는 거의 한시간되게 줄욕을 퍼부어대다가 하와이에 넘어가 꼬아리장사나 하라고 모욕을 주었다.
리승만은 그 자리에서는 《죽여주소》하고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내리는 회초리를 다 받았으나 제 소굴에 들어서자 이를 뿌드득 갈았다.
리승만은 골방에 틀어박혀 며칠동안 앙앙거리다가 또다시 워싱톤에 날아갔다. 그리고 여기저기에 싸다니면서 하지를 《국제공산당의 프락찌야》, 《로씨야체까에 미국의 리권을 팔아먹는 붉은 마녀》요 하고 악이 치받치는대로 딱지를 붙였다. 나중에는 미국회에까지 찾아가서 맥카시즘에 걸어 당장 법정에 세우라고 고소질을 하였다.
이무렵에 미국정계에서는 미국회 하원의원인 맥카시가 미국무성과 군부와 사회각계에 붉은 마녀(공산주의자)들이 틀고앉아있다는 괴문서를 돌리면서 반공히스테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맥카시는 지어 미국무성의 80프로가 붉은 마녀들이라고 공격해나섰다.
리승만이 그 《마녀》들속에 하지를 밀어넣으려 한것이다. 리승만은 워싱톤정가를 한바탕 휘젓고 난 다음 돌아오는 길에는 제놈의 실언때문에 비발치고있는 내외의 공세로부터 당분간 피신해있을겸 남경에 들렸다.
며칠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리승만은 가까스로 장개석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도 리승만은 미쏘회담의 부당성과 하지의 《배신》에 대하여 루루히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이들의 밀담내용도 미군사령관 하지가 알기전에 정시명이 먼저 알았다.
장개석의 《서울대표부》에 서기관으로 있는 그의 사람이 그놈들의 단독밀회에 통역으로 참가했던것이다.
그가 보고한 자료는 이러했다.
《리승만과 장개석의 단독회담내용
리승만; 만약 미쏘회담이 나의 의견대로 되지 않을 경우 미국과 영국, 중국, 쏘련 등 4대렬강회의를 별도로 소집할것을 제안하려고 한다.
지금 미군정은 협상에서 렬세에 처해있다. 조선반도의 공산화가 심히 우려되는 회담은 동북아시아 특히 중국의 안전에도 백해무익하다.
나는 귀정부의 협조를 요망한다. 원래 태평양전쟁의 참전국인 귀측이 조선문제토의에서 도외시된것은 심히 유감이다.
장개석; 지당한 말이다. 일본과 당당히 전쟁을 한 전승국으로서 우리가 린방문제해결에서 발언권을 가지지 못한것은 국제관례상 이례적인 일로서 나도 불쾌하게 생각하고있다.
그런 견지에서 미쏘공동위원회란 그 발족부터 미국인들의 부당한 정치유희이다. 어떻게 일국의 전도를 두 나라의 장성들이 모여 결단을 내릴수 있는가.
나는 당신의 정치적구상이 정당한 발기라고 생각한다. 나는 당신이 지금 당장에라도 미쏘회담을 배격하고 상기의 대안을 내놓는다면 전적인 지지와 협조를 줄것이다.》
정시명은 이 자료를 곧 리승만의 비서실에 있는 신정섭에게 보내여 밀담내용을 재확인하도록 하였다.
신정섭은 밀담한데 대해서는 비서실에서 알고있지만 그 내용에 대해서는 모르고있다고 알려왔다.
정시명은 자료를 즉시 연장성을 통하여 하지에게 보고하도록 하고 김명호에게도 알려주었다.
하지는 보고를 받자 자기의 특사를 비행기에 태워 장개석에게 보냈다. 특사는 장개석을 만나 리승만과 모의한 내용을 극비에 붙여달라는것을 미국무장관의 명의로 정중히 전하고 돌아왔다.
그러나 밀담내용은 회담장안팎에서 회담결렬을 꾀하는 미제와 반동들을 답새기는 비수가 되여 번뜩이였다.
브라운은 구체적인 자료를 가지고 제놈들의 흉계를 발가내는 상대방의 공세에 한마디의 반발도 못하고 진땀만 뺐다.
회의장안팎에서 회의성과를 기대하는 세력들의 눈부신 활약과 압력으로 우익세력권에서도 더는 회의장에서 물러나겠다는 잡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브라운의 입침을 단단히 맞아둔 《한민당》이나 《반공련맹》의 대표들까지도 울며 겨자먹기로 회담장에 꼬바기 나앉군 하였다.
서울의 정치분위기는 회의에서 물러나는 세력은 어떤 세력이건 민족의 장래에 먹구름을 몰아오는 역적의 무리로 규정되여 벼락같은 공격을 받을만큼 팽배해져있었던것이다.
하는수 없이 미국무성은 덕수궁회의일정을 꼬바기 지켜나가도록 대표단에 지령을 새로 떨구었다.
회의실황은 매일 세계적인 중대뉴스가 되여 온 세상에 전해졌다.
미국무성은 급해났다. 더욱 급해진것은 하지와 브라운이였다. 그들의 수중에 있던 방안이라는게 이제는 거덜이 난셈이다.
회담이 거듭될수록 《협상의 명수》가 낭떠러지에 밀려나기만 하였다. 그에 따라 미국의 대조선정책의 더러운 본질이 발가져서 회의연단에서 완전히 만신창이 되여가고있었다.
5월 말에 열려 한달가까이 진행된 덕수궁회의는 평양에서 회담을 계속하기로 하고 계획된 일정을 고스란히 마치고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