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장 선과 악의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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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철은 미군정청 공보여론조사과장 연장성이부터 만났다. 그에게 차례진 중요한 몫을 그대로 전달하였다. 그리고 대결의 목적과 의의에 대하여 장시간 력설하였다.
연장성은 길철의 이야기를 엄숙히 접수하였다.
사실상 연장성의 활동은 임무의 첫단계 과업수행에서 핵심적요소이다. 그의 활동성과에 따라 작전전반의 운명이 좌우된다.
《동무에게 첫 관문을 열어제끼는 열쇠가 쥐여져 있습니다. 동무의 과업은 미국놈들로 하여금 회담상대측이 협상재개를 원치 않는다는 가정보를 접수하도록 하는것입니다. 놈들이 배지기에 걸려들 때까지 실컷 기운을 뽑게 해야 합니다. 이걸 명심해야 합니다.》
정시명은 필력이 있고 총명한 일군들로 연장성을 지원하도록 하였다. 그들은 길철의 사업거점인 종로구책방의 안방에서 침식을 하면서 사업에 착수하였다.
이들에 의하여 협상재개와 관련한 각계각층의 여론들이 기술적으로 가공되여 련속적으로 공보여론조사과의 타자기를 걸쳐 하지의 정보고문인 노불에게 제공되였다.
여론자료들은 노불의 검토를 걸쳐 즉시 하지에게 들어가고 대양을 넘어 워싱톤에 날아갔다.
하지는 언제나 아침 첫 일과를 노불이 제출하는 정보관계자료들을 보는것으로 시작하였다.
한편 김명호의 지도밑에 김승원이 극우익반동들속에서의 여론전을 능숙하게 조정하여나갔다.
그는 쏘미공동위원회가 재개되면 극우익집단들은 하나같이 미국이 주도하는 신탁통치를 접수할 용의가 있다는 식의 립장변화를 유도하여나갔다.
얼마후에는 제2차 쏘미협상에서 주요의제는 미국에 의한 《신탁통치》문제라는 여론이 광범하게 류포되였다.
좌익권에서 이를 용납하려 하지 않았다.
즉시 반응이 일어났다. 서울시내에서 시위와 집회들이 열리고 《신탁통치》를 론의하는 쏘미협상을 반대한다는 격렬한 론조들이 튀여나왔다.
연장성은 어느날 서울에 있는 쏘련대표부의 한 성원의 명의로 된 반영을 미국놈들의 구미에 맞게 그럴듯 하게 작성하여 올리밀었다. 거기에는 거의 한해동안 공전만 거듭해온 쏘미공동위원회가 다시 열려야 실질적인 결실을 얻기 힘들것이며 현재 서울에서 벌어지는 좌익권의 강한 반박도 무시할수 없다는 의미심장한 발언이 담겨져있었다.
좌익계와 신문들도 이에 론조를 같이하기 시작하였다. 여기에서는 김명호가 주관하는 신문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노불이 대세의 역전에 흡족해 하며 하지의 사나운 얼굴에서 주름살이 펴진다는 말이 정시명의 귀에까지 들어왔다.
정시명은 여러 선을 통하여 보고된 자료들을 즉시에 길철에게 보내주어 연장성을 거쳐 군정청에 계속 들이밀고 확인된 자료들은 마동열을 통하여 해당기관에 흘러가도록 하였다.
연장성의 그루빠는 고도로 예민한 싸움을 감당하고있었지만 성수가 나서 일하였다. 그들의 숙식을 보장하느라고 박정인이가 민순임과 례영이 그리고 주씨까지 거느리고 밤을 패우는 일이 드문했다.
전체가 결사의 각오로 뛰고있었다.
어느날 연장성은 제2차 쏘미회담과 관련하여 정계를 비롯한 각계각층의 여론을 종합하여 꾸며가지고 노불의 방으로 갔다.
하지의 고문들중에서 정보담당고문은 정책작성과 집행에 커다란 영향력을 가지고있는 직책이였다.
노불은 중요 정보들은 입수한 즉시로 두통을 만들어가지고 긴급문건으로 마샬과 하지에게 직송하군 하였다. 노불은 자기에게로 집중되는 여러 계통의 정보들중에서 군정청의 한개 부서로 되여있는 공보여론조사과의 자료를 제일 중시하고있었다.
노불은 연장성이 직접 들고온 자료들을 여러번 곱씹어 읽더니 꼬냐크병을 들고와서 잔에 부었다.
《자, 듭시다. 당신네 나라의 속담에 있지요. 밤말은 새가 듣고 낮말은 쥐가 듣는다고…》
고향이 평양이고 유년시절과 청년시절의 대부분을 대동강반에서 보냈다는것을 큰 자랑거리로 여기는 노불은 미군정청안에서 첫번째의 《한국통》으로 자처하는 인물이였다.
사실 노불은 미국인들속에서 조선말을 자유자재로 번질수 있는 몇안되는 인물들중의 하나였다.
《아니, 우리 속담에는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되여있습니다.》
《아, 그렇지요. 새는 밤에 잠들고 쥐는 낮에 숨어있으니까… 역시 비밀이란 시간적개념이라는 말이 옳소.》
노불은 술잔을 입에 가져가며 기분이 좋아서 떠들었다. 그러면서도 미국무성의 진의도에 대해서만은 가둬두고 딴전을 부리는것을 잊지 않았다. 연장성은 이미 다 알고있는바였지만 짐짓 모르쇠를 하고 맞장구를 쳤다.
《글쎄요, 벌써 항간에는 미국이 미쏘협상을 적극 추진시키고있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있어 그리 정보라고 부를만 한 가치가 없게 되였습니다.》
《허허… 좋소. 두고가시오. 동질의 자료라고 기각시키지 말고 계속 종합해야겠소. 미쏘공위에 대해서 우익은 기본적으로 돌아섰구만.》
《좌익은 반대로 매우 도전적입니다. 부정적인 평가가 많습니다.》
《좀 더 떠들라고 내버려둡시다.》
《그런데 리승만세력에서는…》
《아, 당신들은 그곳까지는 사업권을 이어놓지 못했다고 했지요. 자, 이걸 보시오.》
노불은 비죽이 웃으며 서류함에서 한통의 서류를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그것은 리승만의 《독촉》과 《한민당》계렬에서 작성된 보고서였다. 2차미쏘협상에서 법치국인 미국이 주관하는 《신탁통치》를 지지한다는 내용이였다.
드디여 5월 중순 어느날 새벽에 하지의 집으로 대양건너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하지는 투덜거리며 잠자리에 누운채로 받았다. 시간차이가 워싱톤과는 꼭 열시간이 되므로 워싱톤의 고관들은 늘 하지가 단잠에 드는 자정무렵이면 전화통에 불러내군 한다.
전화상대는 마샬이였다.
《중장, 잠을 깨워 미안하오. 나의 정책실은 방금 결심을 내릴것을 건의해왔소. 난 이에 대해 곧 트루맨에게 보고하려고 결심했소. 어떻소, 중장?》
미쏘협상과 관련한 어리광대놀음을 시작하겠다는 소리다.
하지는 선뜻 동의하고싶었으나 잠시 동안을 두기로 하였다. 수화구에서는 잠시 전류가 흐르는 삭막한 소리만이 들렸다. 마샬이 잠자코 하지의 대답을 기다려주었다.
전화를 이렇게 받게 된것은 여기 서울에 와서 배운 버릇이다. 즉석에서 찬성과 반대의사를 표시해야 하는 군복쟁이의 체질이 내용보다 형식이 중시되는 정치놀음에서 약삭바르게 변질된것이다.
만약 즉시에 대답을 준다면 상대는 가볍게 결심을 내리는 경솔한 외교관으로 평가할것이며 뻔한 문제도 상대가 짜증이 날 정도로 길게 생각하는척 해서 짧게 대답하면 무게있는 정치인으로 평가되는게 정치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류행이다.
지금 하지는 자신이 어리석은 흉내를 내고있다고 화를 내면서도 지꿎게 입을 다물고있다가 조용히 대답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다음날 아침 하지는 집무실에 들어서면서 브라운과 노불을 비롯한 측근 고문들을 불러오라고 부관에게 명령하였다.
하지는 앞상에 주런이 앉아있는 측근 인물들을 둘러보다가 기고만장해서 선포를 하였다.
《제씨들, 그동안 모두 수고했소. 때는 왔소. 공산측은 이제 더는 물러설수 없을거요. 백악관은 결심을 내렸소. 막은 올랐소.》
이날 미국무장관 마샬은 트루맨대통령의 동의까지 얻어내자 곧 워싱톤주재 쏘련대사를 자기 방에 호출하였다.
그는 쏘련외무상 몰로또브에게 보내는 자기의 각서를 정중하게 전달하였다.
각서는 이렇게 되여있었다.
《아메리카합중국은 조선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조직된 미쏘공동위원회의 결렬에 유감을 표시하면서, 조선문제를 조속한 기간안에 결속하여야 할 우리 정부의 변함없는 립장을 재천명하면서, 미쏘협상의 재개를 바라는 조선의 각계각층의 요구와 리해관계에 류의하면서 조건부없는 협상의 재개를 즉시 시작할것을 귀측에 촉구하는바입니다.》
미국놈들만이 할수 있는 낯가죽이 두터운 수작이였다. 미국무성은 저들의 각서가 모스크바에 전달도 되기전에 의도적으로 각서의 내용을 미국의 2대신문인 《워싱톤포스트》와 《뉴욕타임스》에 공개하여 버렸다.
남조선의 주요신문, 방송들도 일제히 그것을 받아물었다.
정시명은 때를 놓칠세라 반격을 가하였다.
씨름판에서 밀려돌아가고있던 좌익권이 드디여 공세에로 넘어갔다. 그때까지 협상재개에 대하여 회의적이거나 강력한 반대의사를 표명하여오던 남조선의 좌익과 중도세력들, 그들의 립장을 대변한 언론기관들이 협상지지에로 일제히 태도를 일변하였다.
미국이 막후에서 벌려온 어리광대극을 사전에 통보받고 대기하고있던 쏘련측은 미국무장관의 각서를 받은지 30분후에 그를 수락한다는 몰로또브외무상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마샬은 닭쫓다가 지붕 쳐다보는 개신세가 되고말았다.
미국무성은 완전히 오산하였다. 공산측이 협상을 부정하고 뒤걸음치리라고 예상했던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였다.
미륙군참모총장까지 하면서 군부에서 군턱이 져온 마샬은 국무성안의 정치분석가들을 불러놓고 《국록을 타먹는 외교무식쟁이들》, 《오뉴월의 쉬파리처럼 소란스럽기만 한 무위도식자들》이라고 혹독하게 욕설을 퍼부어댔지만 일은 깨진 사발이 되고 말았다.
미국무성의 실무진은 또 그들대로 하지와 군정장관 러취를 비롯한 현지 사환군들에게 《정치감각이 도끼등 같은 군복쟁이들》이라고 내리욕질을 갈겨댔다. 하지는 그대로 측근을 들볶아댔다.
정시명은 이 사업을 중간총화하는 모임에서 《민족청년단》조직부장인 조태준이 보내여온 보고문을 통쾌한 심정으로 랑독하였다.
《동무들! 여기에 한통의 자료가 들어왔소. 나는 중간총화에 대한 보고를 따로 하지 않겠소. 내 읽겠으니 들어주시오.
〈미쏘공동위원회 미국측대표단 수원인 미전략정보국소속 소좌 써젠트와 민족청년단 단장 리범석과의 일문일답(조태준 동석) 리범석; 2차 미쏘협상재개와 관련하여 서울정계가 갈팡질팡이다. 나도 얼떨떨하다. 도대체 미국은 어떻게 하자는건가? 하자는건가, 말자는건가? 나의 립장을 구태여 먼저 밝힌다면 걷어치우라는거다.
써젠트! 당신의 심정이 십분 리해된다.
협상재개는 미국의 진의가 아니다. 우리의 계산이 잘못되여 시행착오가 생겼을뿐이다. 마샬국무장관이 쏘련외무상 몰로또브에게 협상재개를 촉구한것은 쏘련측에서 틀림없이 거절하리라는 상황판단이 내려있었기때문이였다.
이것은 여러 계통의 통로를 통하여 입수되여 종합된 정보분석과 평가에 기초한것이다.
그러므로 국무성정책보좌팀은 확고한 견해일치를 보여왔다. 만약 마샬의 의도대로 몰로또브가 미국의 제의를 거절하였더라면 우리는 회의를 최종적으로 공산측에서 파탄시켰다고 책임을 넘겨씌우고 대표단을 완전히 철수했을것이다. 사실 이것이 미국의 책략적의도였다.
그러나 뜻밖에도 공산측은 쾌히 접수하였다.
마샬은 엄중한 실책을 범했다. 하는수 없이 미쏘협상이 며칠후 덕수궁에서 열리게 된다.
그렇지만 당신의 기대대로 될것이다. 우리는 껄렁껄렁 시간을 끌다가 회의를 걷어치우게 될것이다. 그에 필요한 적당한 구실은 마련될것이다.〉
이상입니다. 뭘 더 설명을 하겠습니까. 여기에 우리가 지금껏 벌린 투쟁의 의의도 금후과업도 다 밝혀져있소.》
정시명이 이렇게 말을 그치자 마동열이 제일 먼저 통쾌함을 금할수 없어 솥뚜껑같은 손바닥으로 박수를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