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장 장막을 헤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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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승만은 브라운을 기다리고있었다.
그새 여러차례 초대를 하였는데 매번 시간을 낼수 없다며 사절해왔다.
그런데 브라운이 오늘 제발로 먼저 오겠다고 전해왔으니 자못 궁금하였다.
《그래 자네에게 무슨 얘기 없었나?》
리승만은 쏘파의 팔걸이에 살진 엉치를 붙이고 앉아 자기의 어깨를 꽁꽁 주물러주는 모윤옥에게 물었다. 브라운의 말을 듣고온것이 모윤옥이였다.
《녜. 딴 얘기는 없었습니다. 저같은 녀자에게 구렝이같은 량반들이 제속을 털어놓습니까.》
《어디 보세. 자네 솜씨 듣던바 그대론가.…》
《그 량반을 제발로 찾아들게 하지 않았습니까.》
《그쯤한걸 가지고 생색을 내지 말아. 자네더러 뭐 항간에서 녀걸이라 한다면서? 호걸을 낚아내는게 녀걸이야.》
모윤옥이 퉁명스러우면서도 속말이 따로 있는 리승만의 소리에 처녀처럼 눈을 예쁘게 샐쭉거리며 《호호-》하고 간드러지게 웃었다.
《됐어, 됐어.… 에 간지럽다.-》
리승만이 늙마에도 젊은 녀성의 보근보근한 손맛과 볼에 와닿는 입김에서 정욕의 짜릿한 불이 일어났던지 그 녀자의 뭉글뭉글한 엉뎅이를 쓰다듬으며 헤식은 웃음을 지었다.
모윤옥은 일정때 천황을 잔뜩 치켜올린 친일녀류시인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변신에 이골이 튼 모윤옥은 광복후 리승만의 품에 솜씨있게 날아들었다.
그 녀자의 얼굴은 그리 미모라고는 할수 없었다. 모든게 선이 굵고 큼직큼직하게 생겨먹었다. 그러나 허리가 잘룩하고 엉뎅이와 앞가슴팍이 부풀어오르고 마흔되도록 애기낳이를 한번 해보지 않아 그런지 비온 뒤의 란초처럼 청초하고 싱싱해서 남자들의 정욕을 쉽게 자극하는 녀자였다. 거기에 교제술이 세련되여 어느 기생들도 따를수 없게 당대의 일류명사들을 손쉽게 다스리군 한다.
리승만은 모윤옥이 처음으로 접근하여 침방까지 드나들게 됐을 때 윤치영이 그 녀자의 치마폭이 열두폭이라고 일러주던 말이 가끔 생각나군 했다. 그 열두폭치마로 총독청의 한다하는 명사들을 다 휘감아온것이 좀 께름은 하지만 녀자로서의 가치를 리승만은 후하게 매겨놓았다. 매일밤 동침하는 남자들이 달라지게 하는 그 솜씨가 리승만에게는 필요했던것이다.
리승만은 브라운이 응하지 않자 모윤옥을 내세웠다. 처음 몇번은 초대장을 들려 브라운에게 나타나게 하였다. 모윤옥이 브라운소리에 몸을 꼬며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교태를 부리는것으로 보아 어제 저녁에 끝내 그 열두폭치마로 브라운을 휘감아 브라운의 침실에서 딩굴고 온것 같다. 브라운이 드디여 리승만에게 제 먼저 오겠노라 한것도 모윤옥이 잠자리에서 구슬려낸 모양이다.
벽시계가 부르르 떨더니 열점을 땡땡 쳤다.
《아, 이렇게 됐는가?》
브라운이 10시경에 오겠노라 했다 한다.
리승만은 열에 떠서 발깃한 물이 오른 그 녀자의 얼굴을 지켜보다가 손을 뗐다.
모윤옥의 아양을 더 받아주고싶은데 아무래도 브라운을 맞을 준비를 해야 될것 같다.
《참, 자네 시집이 언제 출판된다 했더라?…》
《다음주에… 출간회를 열자면…》
모윤옥이 이렇게 뒤말을 살짝 감추는척 하며 반점이 돋은 리승만의 손등을 쓸어주었다.
《좋아. 윤치영이더러 5만을 달라고 해.》
《고맙습니다. 위원장선생님.》
《허, 그말 듣기 안좋다. 둘이 있을 때도 위원장인가. 령감님이라 불러.》
《호호호-》
모윤옥이 또 한바탕 간드러지게 웃고는 리승만의 왼쪽볼에 입술을 살짝 댔다가 떼며 《령감님, 그럼 안녕.》하고 방에서 나가버렸다.
모윤옥이 일본놈들이 망하자 곁에 앉기도 지긋지긋해보이는 반송장에 가까운 리승만에게 얼른 들어붙은것은 이런 재미때문이였다. 그는 광복이 되자 무엇보다도 《일본주구숙청자》명단에서 빠져나와야 했던것이다. 그리고 인생을 즐길수 있는 돈줄이 필요했다. 그 대상을 리승만으로 꼽았다. 리승만도 그 녀자의 육체가 풍기는 서양적인 매력과 상류계에서 인정받은 사교술과 필요한 정도의 지성이 늙음을 자극하는 멋도 있고 장차 양인들과의 사업에도 쓸모가 있을것 같아 그 녀자를 받아들였다. 그랬던것이 피차에 노렸던바를 이렇게 주고받으며 서로 유익한 보상을 한다.
리승만은 모윤옥이 물러가자 곧 창문을 열어 그 녀자가 남기고간 분내와 향수내를 가셔냈다. 그는 거울앞에 가서 모윤옥이 마구 주물러놓은 옷매무시며 머리단장을 바로 하고 쏘파에 도로 와서 앉았다.
(브라운이 도대체 무슨 말거리를 가지고오는가? 반가운 소식이겠는가, 불길한 소식이겠는가?…)
하지보다 브라운은 내흉스러운 인간이라고 판단되였다. 하지는 속에 있는 말을 다 토해놓지 않으면 갈증이라도 만난듯 참지 못하는데 브라운은 쇠통 속내가 짐작이 가지 않는다. 더구나 요즈음은 도무지 길흉이 내다뵈지 않았다.
미국무성은 여전히 자기를 이 나라의 통수권자로 지목하고있는것 같은데 하지와 그의 부하들은 갈팡질팡이다. 만날 때마다 우익세력의 단합을 요구하는데 그게 될상 싶은가. 설사 안된다면 어쩔테냐. 미국에 붙어먹는 세력이 내 발밑에 벌떼처럼 몰려드는데 그것이면 족하지. 려운형이나 김구를 다 끌어안고 어쩌자는거냐.
세월이 흐를수록 하지는 공공연히 삿대질이다. 통수권을 다른 세력에게 넘겨줄 의향을 숨기지 않는다.
그는 미국에서부터 리승만이 제일 가까이 지내고 보호자로 자처해온 정치고문 구펠로까지 쫓아버렸다.
(구펠로… 당신이 있어야 되는건데…)
리승만은 때없이 떠오른 구펠로 생각에 자기도모르게 상통이 찌그러지고 속에서 하지에 대한 분노가 부지지 끓어번졌다.
(미국의 리권을 지킨다는 네놈이 미국의 영원한 벗이 되겠다고 맹약한 리승만을 이렇게 고달프게 만들수 있다더냐.)
구펠로의 실각은 그와 리승만의 밀착관계가 빚어낸 추문으로 하여 벌어진 일이다.
리승만은 벌써 오래전부터 구펠로와 친교를 맺어왔다.
구펠로는 미중앙정보국의 전신인 미전략정보국 창설자의 한사람으로서 초대 비밀공작담당 부국장으로 있은 미국의 거물급정탐배였다.
구펠로는 주체31(1942)년에 리승만을 장차 아시아지역에 침투시킬 고등첩자로 내정하였다. 리승만의 독립청원놀음을 배후에서 협력해주는척 하면서 이 역적놈을 비밀대령급 문관으로까지 채용하였다.
리승만은 구펠로의 접근에 추파를 보내였다. 미정계안에서의 구펠로의 영향력을 리용하여 제놈에 대한 미국의 지지기반을 넓혀나가기 위하여 무진 애를 썼다. 리승만은 자기의 측근인물들인 장기영, 정윤수, 장석윤, 장덕수, 허정 등 20여명의 교포인물들을 구펠로에게 보내 전략정보국 소속 정보학교 1기생으로 훈련받도록 하고 미전략정보국의 비밀요원으로 움직이도록 하였다.
리승만은 구펠로뿐아니라 미정계의 여러 인물들에게도 캘리포니아대학에서 류학하던 자기의 정부인 임영신을 비롯한 녀자들을 안겨주어 비교적 두터운 친미인맥통로를 만들어놓았다.
광복후 이들은 서울에 날아들어 리승만의 측근으로 공공연히 행세하면서 여전히 친미지레대를 단단히 거머쥐였다.
리승만은 구펠로밖에도 미국무성의 요직인물들인 올리버와 윌리암스, 해롤드 레이디 그리고 조선파견 선교사출신인 호머 할버트, 노불 등 여러 인물들과 직접 접촉하면서 정치적립지를 미국의 정계에 튼튼히 다져놓았다. 이들은 리승만이 귀국할 때부터 《조선위원회》라는 비공식적인 후원단체까지 조직하여 미군부와 미중앙정보국에서 리승만을 장차 조선반도의 통수권자로 내세우기 위한 로비활동을 맹렬히 벌렸다.
여기서는 단연 구펠로가 주동이 되였다.
구펠로는 《상해림시정부》의 《구미지부위원장》자격으로 입국하려는 리승만의 입국사증이 미국무성에 의하여 부결되자 미극동군사령관인 맥아더와 미국무장관 마샬을 여러차례 만나 미전략정보국의 대령계급장을 단 군복을 입혀서 서울에 나타나도록 막후공작을 벌렸다.
구펠로는 그후 하지중장의 정치고문이라는 공식 명함장까지 버젓이 가지고 미군정청에 나타났다. 그는 리승만의 정책적움직임을 유도하는 한편 하지와 현지의 미군정인물들이 리승만을 지지하도록 공작을 하였다.
그런데 바다건너 멀리에 있는 이자들이 리승만을 위하여 땀을 흘리고있는것은 결코 리승만의 가까운 지기라는 단순한 리유에서가 아니였다. 그들은 리승만의 정치적무게를 계산한데 기초하여 광복조선에서 얻을수 있는 자기들의 경제적리윤부터 산출해냈으며 거기에 눈독을 들이고있었던것이다. 실제상 리승만이 오래전부터 그들에게 약속한것은 리권이였다. 리승만은 미국식의 실용주의철학이 골수에 배인 양인들이 먹을 알이 없을 때는 눈섭 한오리 움직이지 않는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리승만은 귀국하자바람으로 《신의를 지켜》 이러한 맞바꿈질부터 시작하였다. 제놈의 주위에 모여들기 시작한 지주, 자본가집단과 친일세력을 내세워 기름종지를 노리며 군침을 흘리는 이 서양고양이들에게 여러가지 형식으로 하나 둘 알속이 큰 경제적리권들을 안겨주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일은 판이 커져 인차 들장이 나게 되였다.
지난해 초에 《민주혁명당》의 미국지부가 발행하는 신문 《독립》이 리승만이 구펠로의 친구인 사무엘 돌베이라는 미국인을 남조선의 광업고문으로 임명하도록 주선한 대가로 1백만딸라의 사례금을 받아 나누어먹었다는 자료를 실었다.
신문이 나가자마자 미국교포사회는 물론 남조선사회에서 폭풍같은 반향이 일어났다.
리승만과 구펠로가 초기에는 신문을 걸고 미국지방법원에 상소를 하였다.
반박기사도 신문에 실었으나 그럴수록 여론의 화살은 더욱 비발치듯 했다.
일이 터지자 그러지 않아도 리승만의 독선, 독주를 극구 찬양하여 그의 보호자로 나서는가 하면 은근히 맥아더와 미정보기관을 등에 업고 함부로 삿대질을 하던 구펠로를 눈에 든 가시처럼 여겨오던 하지는 불행중 다행이라고 인정하고 백악관에 급전을 보내여 맥아더가 미처 손쓸새가 없이 그를 소환시켜버렸다.
이 일이 있은 후부터 리승만과 하지사이는 크게 벌어졌다. 쫓겨간 구펠로가 국무성과 펜타곤의 서울관계자들을 부지런히 찾아다닌덕으로 그 자리에 리승만의 측근인물인 노불이 들어앉았지만 그의 영향력은 하지앞에서 매우 제한적이였다. 구펠로에게서 쓴 맛을 본 하지는 노불이 발빠르게 움직이는데 대하여 사정없이 면박을 가하군 하였다.…
《시간이 지났는데…》
리승만은 벽시계를 올려다보며 혼자소리로 투덜거리였다. 그는 쏘파에 등을 붙이고 눈을 감고는 브라운의 얼굴을 그려보았다.
브라운의 속내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노불은 브라운과의 사업도 중시하라고 여러번 귀띔을 주었으나 당자가 조금도 틈을 보이지 않는다.
첫 면담에서 리승만은 세가지 문제로 하여 실망을 느꼈다.
첫째로 브라운은 시원스럽게 네가 룡상에 오를것이라고 하지 않고 그 문제를 놓고 속을 쓰게 깔찌근깔찌근거리는것이였다.
구펠로는 만날 때마다 한마디였다. 《걱정마시오.》
그런데 뒤날에 알고보니 브라운은 마땅히 자기앞에서 해야 할 말을 김구에게 던져주고왔던것이다.
그래서 그는 하지에게 달려가서 분통을 터치고야 말았다.
일은 좋게 마무리되였지만 뒤자리가 찜찜하기 그지없다. 브라운이 어떤 속통으로 그렇게 소란을 피워놓았는지 모르지만 그것으로 하여 피차에 관계가 어성버성해졌다.
둘째로 브라운은 구펠로를 만난 이야기를 한마디도 내비치지 않은것이였다.
구펠로는 브라운이 서울에 온 후 곧 전화로 브라운을 워싱톤에서 만났다는것과 깊이있는 이야기가 오갔다는 여운이 있는 말을 하여왔다.
그런데 브라운은 시치미를 뚝 뗐다. 끝내 구펠로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셋째로 그를 실망시킨것은 브라운이 자기를 맨 마지막순위로 만나준것이였다. 분명 의도적인것이였다. 그리고 협상에서 명수급이라 하던 브라운이 오찬석상에서까지 한번도 웃지 않는것이였다. 사교적인 인간으로, 온건한 인물로 세평을 받고있는 브라운이 어째서 내앞에서는 잔뜩 신경을 도사리고있는가.
이것 또한 흉조이다. 그가 하지에게서 단단히 사전훈계를 받고온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모윤옥이라는 다리를 놓았다. 모윤옥이 그의 침방은 점거한것 같은데 마음까지 정복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워낙 양인들이란 제가 방금 재미를 본 녀인도 돌아앉아서는 목졸라버리는 포악한 사탄의 무리라고 리승만은 알고있다. 자기의 실리가 보이지 않으면 주저없이 어제날의 친구도, 우정도, 사랑도 헌신짝이 되고 마는게 미국이다. 리승만도 이런 일을 수없이 보고 듣고 체험도 했다. 이른바 실용주의로 불리우는 이러한 사회적관계가 미국의 철학적리념이요, 국가발전의 원동력이라고 찬미되지만 리승만은 속으로는 더러운 야만들이라고 욕질도 해온다.
《브라운이라…》
리승만은 복잡하게 서려드는 생각에서 헤여나오고싶은듯 이렇게 중얼거리였다.
이번에 오면 권력문제를 가지고 따지고 확답을 받아내리라고 결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