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장 력사의 회오리속에서
2
이날 저녁 늦게야 집에 돌아온 송호정은 안해에게 사령부에서 저녁을 먹고 왔다고 이르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안으로 잠궈버렸다.
안해가 방으로 들어가겠다고, 무슨 일이냐고 걱정을 하자 《시끄럽게 굴지 마오.》하고 꽥 소리쳤다. 불까지 꺼버렸다.
마루를 깐 방안을 오락가락하며 좀체로 진정할수 없었다. 낮에 있었던 일들이 불쾌하기도 했지만 그 후과가 두려워서가 아니였다.
송호정은 언제라도 자리를 내놓으라면 아무런 미련도 없이 물러날 배심이 있었다. 또 그렇게 될 날을 대기하고있었다.
그러나 이 저녁 그를 불안하게 한것은 아까 브라운이 내뱉은 위협적인 말이였다. 야산대에 대한 공격을 다른 식으로 해결하겠다고 했는데 다른 식이란 무엇이겠는가? 리응준의 기안대로 강행하겠다는건가? 그러면 군대가 국민에게 도전하며 끝내 군대와 국민이 적아가 되여 쏘고 찌르는 전례를 만들어놓게 되는게 아닐가?
그는 도무지 종잡을수 없는 생각에 빠져 여전히 마루를 울리며 방을 거닐었다.
《이보세요.》
또다시 안해의 목소리와 함께 방문이 나직이 울렸다.
《자오, 자오, 자!》
송호정이 화를 냈다.
《이봐요. 불을 켜요. 통위부장어르신께서 찾아오셨어요.》
《뭐요?… 통위부장이?》
송호정이 크게 놀라며 불부터 켰다.
문을 여니 류동명이 성난 얼굴로 서있다.
송호정이 령감이 야밤삼경에 어찌된 일이냐싶어 놀라와 하면서도 《참모총장님, 이거 참… 어서 들어오십시오.》하며 반기였다.
송호정은 류동명을 옛적 버릇대로 참모총장으로 부르군 한다.
《심사가 불편하다고 안사람을 울려서야 되겠소?》
류동명이 문턱을 넘어서며 크게 나무랬다.
《내 한마디만 묻고 가겠네.》
류동명이 권하는 걸상을 거들떠보지 않고 선자리에서 물었다. 첫 소리부터 힐난조다.
《총사령관이 야산대토벌에 광주련대를 불러오기로 했소?》
《네?… 아니요. 난 참모장이 기안해온걸 반대했습니다.》
류동명이 추궁조로 따지고들자 송호정은 분명하면서도 심술스럽게 대답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이요. 오늘 하지사령관방에 국방경비대의 토벌작전문건이 들어온걸 내눈으로 보고왔는데…》
《예? 국방경비대문건?… 총사령관의 동의를 요구하기에 난 반대의 립장을 밝혀놨는데요.》
《그럼 총사령관은 반대했겠소?》
《거 참,… 그런데 누가 감히 사령관의 이름으로 된 문건을 들고다닙니까?… 그래서요?》
《음…그렇구만.… 결정되였소. 우리의 손에 끝내 동포의 피가 발리게 되였소.》
류동명이 떨리는 음성으로 탄식을 했다.
그러며 송호정이 권하던 걸상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거친 숨을 길게 내쉬는 늙은이의 눈굽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드르르 살진 볼편으로 굴러내렸다.
《총사령관, 내 돌아오면서 결심을 했소. 군복을 벗으려네. 이 늙은게 여력을 제 나라 지켜줄 건군에 바치고저 나섰네만 다 헛일이야. 미국놈들밑에서 제 나라 군대라 이름 지을만 한 군력을 만들자는게 애초에 당치 않은 생각이야.》
류동명이 장탄식을 엮어가는데 송호정에게는 그 처량한 이야기가 한마디도 들리지 않았다.
드디여 올것이 왔다는, 어서 빨리 수습을 해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골이 윙윙거리였다.
송호정은 잠시후 전화로 사령부를 찾았다. 당장 차를 보내라고 호통을 쳤다.
그 소리에 류동명이 《어데로?… 하지한테로?》하고 겁질린 어조로 물었다.
《네… 만나야지요. 참모장도 불러내서 좀 따져봐야겠습니다.》
송호정이 당장 일을 낼듯 씩둑거리자 류동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후들거리는 손으로 그의 옷자락을 잡았다.
《이 사람, 자중하라구. 이제 보면 하지가 뒤에서 다 꾸며낸 일같네. 이번 명령서는 미군정장관의 이름으로 내고 명령집행에 대한 감독권은 주둔지역 사단장 띤에게 부여됐네. 결국 경비대사령부는 이번 작전에 대한 지휘권에서 배제되였네. 그 케속을 이제야 알듯싶구만.》
《어떻게 그럴수 있습니까?》
《나도 그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지. 한데 하지의 대답인즉 미군정기간 미군사령관은 이 나라의 모든것을 관할하며 모든것을 책임지며 따라서 이번 작전에 대한 지휘도, 그 결과도 책임진다는걸세.》
《음… 그렇게 됐군요.》
송호정은 류동명의 말에서 이미 대세를 역전시키기 어렵게 되였다고 생각하였다. 그러자 마음속에 커다란 비분과 걱정이 쓸어들었다.
(야산대를 내버려두어서는 안된다!)
그들은 제가끔 해결대책을 찾느라고 자기 생각에 잠겨있었다.
대문밖에서 자동차의 경적소리가 들려왔다.
송호정은 《류총장님, 자동차를 타고 댁으로 가십시오. 전 어데 갈데가 있습니다.》하고 말했다.
《갈데라니?… 그럼 사령관이 타고가야지.》
《아니, 전 걸어갔다 오겠습니다.》
《그렇소?…》
류동명은 송호정의 서두르는 기색에서 그 어떤 의미심장한것을 감촉하였던지 더 말하지 않고 일어났다. 그리고 문을 열다 말고 《하여간 잘해보시오.》하고 당부했다.
《참모총장님, 선생님께서는 통위부장자리를 내놓으실 생각은 마십시오. 그러지 않아도 지금 군부상층이 일본놈들에게 붙어먹던 놈들로 꽉 차있는데 선생님까지 물러서시면 이 나라의 군대가 어느 벼랑턱에 올라서겠습니까?》
《원, 내같은게 무슨 이 나라의 군력에 도움이 되겠다구… 하여튼 사령관의 뜻이 고맙소. 일을 부디 잘 꾸며 랑패없도록 해주오. 어험! 다시는 우리 군이 남의 나라 총알받이가 돼서는 안되오.》
류동명은 가슴을 텅텅 소리나게 두드리며 일장 기염을 토하려고 하다가 송호정의 초조한 표정이 다시 눈에 짚이여 이내 돌아섰다.
류동명을 바래주고난 송호정은 안해를 불렀다.
《여보, 내 정선생을 만나야겠소.》
《벌써 그랬어야 했지요.》
그 녀자는 영문을 모르면서도 기뻐서 어쩔줄 몰라했다.
《이 밤중으로 만나야겠소.》
《이 밤에요?… 그건 갑자기… 래일 만나세요. 지금 몇시라구요.》
《아니, 지체해서는 안돼. 당신 수고해주오. 애들을 깨워가지고 정선생댁으로 수고를 해주오.》
《자동차를 다시 불러오면 안될가요?》
《안되오. 그건 안돼. 좋소. 그럼 나와 함께 갑시다. 역전공원까지 가다가 난 거기서 떨어지겠소.》
《네.》
그 녀자는 전에없이 긴장해지고 심각해진 남편의 모습에서 그 어떤 비장한것을 감촉하자 더 말을 하지 않고 서둘러 따라 나섰다.
자정이 가까워왔지만 역전공원은 오가는 사람들로 붐비였다.
송호정은 담배를 련거퍼 갈아대며 돌걸상에 앉아서 정시명을 기다렸다. 그는 사태를 수습하는 길은 이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사령관이라는 자리에 앉아서 극비에 속하는 작전내용을 좌익권에 넘겨주는것은 불온한 일이지만 동족과의 싸움에 자기 휘하의 군대를 끌어들이는것을 수수방관한다는건 민족앞에서 죄악이라고 생각했다. 뒤날의 책임을 따져볼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정시명이 남로당선인지 어느 선이건 알아볼 여지도 없었다. 다만 정시명을 통하면 야산대로 련결된 선을 찾을수 있을것 같았다.
한시간이 좋이 지나서야 정시명이 안해와 나란히 걸어왔다. 그 뒤로 또 한사람이 따르고있었다. 그 사람은 공원입구에 이르자 어둠속에 사라져 더 가까이 접근하지 않았다. 그는 마동열이였다.
송호정은 담배불을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시명에게로 다가가 푸르스럼한 수은등불밑에서 마주 섰다.
《어찌된 일인가? 다시는 눈앞에 얼씬거리지 말라더니.》
정시명이 빈정거리였다.
《그래. 친구의 가슴을 함부로 우벼놓고 달아빼는 인사불성이 어디 있나. 십년지기 버리면 하늘이 벌내린다 했지.》
《허, 이것 봐. 제쪽에서 큰소리는… 도대체 무슨 일인가?》
《자네한테 전해야 할 얘기가 있네.》
《난 또 무릎꿇고 용서를 빌줄 알았더니.》
《체, 이 송호정, 제손으로 목을 치면 쳤지 무릎 꿇을상 싶은가. 명심해 듣게. 이번 일요일에 차령산줄기의 국사봉에 남도의 야산대가 집결한다는 정보가 들어왔네. …제길할! 유격전을 벌리면 지리산이나 오대산 같은데 붙을거지 종심이 얕은 국사봉쪽에 나앉을건 뭐람. 이와 관련하여 우리 경비대소속 광주련대가 출동하게 됐네.》
《뭣이? 경비대가? …자네가 눈이 시퍼래 있으면서 그런 일이 벌어지게 하다니…》
《난 제 할바를 다 했네. 강약이 부동이라 어쩌겠나. 넘어지는수밖에…》
《그래 어떻게 하라는건가?》
《어떻게 하다니?… 자네에게 야산대로 통하는 줄이 있잖겠나.》
《야산대로 통하는 줄?… 아직은 없네. 좋네. 고맙네. 정말 고마워. 날 찾은 리유는 그게 단가?》
《달세.》
《그게 다다?… 난 오면서 사실 더 큰걸 기대했지. 물론 이것도 더없이 훌륭한것이지만.》
《설마?… 내가 공산주의자로 둔갑할줄 알았나?》
정시명은 고개를 끄덕이였다.
《호정. 이왕 이렇게 내밟은 걸음인데 한걸음만 더 성큼 밟아주게.》
《괜한 바람일세. 내게서 더 이상의것은 바라지 말라구. 난 이 군복을 벗는 날까지 끝까지 내나름으로 민족앞에 자기의 의무를 다하려네. 오늘처럼 더는 자기를 지켜낼수 없다면 군복을 벗어버리면 그만이지. 마누라도 뭐 이 껍데기가 꼴불견이라구 그러지 않아도 앙탈일세. 어려울것도 없어. 종이 한장에 내 이름 석자 적어 그 알량한 중령한테 던지면 다야. 그러니 날 두고 딴궁리 말아주게. 송호정은 제멋으로 사는 사람이야. 자네를 찾은것도 실은 민족앞에 하나의 봉사라도 더 하고픈 생각에서였다네. 앞으로도 필요하다고 내 량심이 판단을 내린다면 이보다 더 위험해도 자기 할바를 다 할걸세. 이것만은 믿어달라구. 그러다가 죽으면 어떻다는건가. 제 명이라고 생각하고 죽으면 되는거지…》
송호정의 말은 처량하였다. 그의 얼굴에 푸릿한 수은등불빛까지 비쳐들어 창백해보이고 엮어가는 마디마디가 배창밑에서 울려나오는듯 비장하고도 엄숙하게 들렸다.
정시명은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송호정이 지금 깊은 번민에 말려들어 방황하고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 한편으로는 측은하게 여겨져 다심하게 타이르기 시작했다.
《그러니… 자넨 이 편도 저 편도 아닌 중간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눈치보기를 하자는건가?… 난 그게 싫네.》
《그럼?… 어떻게 살라는건가?… 친구를 자꾸 욕되게 하지 말게.》
《껍데기가 문제가 아니지. 속주머닐 어떻게 건사하는가 하는게야. 어차피 우리 시대에 와서 민족에 대한 참다운 복무를 두고 제3의 길이란 있을수 없네. 광복전에는 그래도 민족주의라는것이 하나의 중간세력으로 존재하면서 나라와 국민을 위해 유익한 일을 할수 있었네. 그러나 시대는 달라졌어. 지금은 이쪽과 저쪽… 편은 둘로 갈라졌네. 굴종과 자주… 어차피 우린 여기서 량자택일 할수밖에 없네. 찍어놓고 말하면 공산주의와 련합하여 민족의 구성원으로 되느냐, 미국과 련합하여 민족의 배반자로 되느냐 이렇게 되여있네.》
《극단으로 몰아가지 말게. 난 중국에서도 그렇게 살아왔네. 난 지난날을 부끄럽지 않게 돌아볼수 있네.》
《글쎄… 그땐 그것이 가능했어. 왜냐하면 우리에겐 일본이라는 목표물을 두고 어느쪽에 서서라도 살을 날리기만 하면 되였네. 오늘은 조국건설이야. 공산주의자들은 민족의 운명을 자기 인민의 힘에 의거하여 자기 식으로 맡아서 처리하고 책임지려고 하네. 그런데 우익세력은 민족의 장래를 미국에 의존하여 미국식으로 해결하려고 하네. 중간길-제3의 길은 없어. 이쪽이 아니면 저쪽이란 말일세. 이쪽은 민족을 위한 길이요, 저쪽은 민족을 등진 길이야. 그래 자넨 도대체 어느쪽에 자기 일생을 맡길텐가?》
《아니 더는 설복말게. 내 지금껏 받아들이지 못한 공산주의를 50이 가까와 리념으로 받아들이진 못하겠어.》
《호정, 아마 우리의 이야기는 뒤날에 미루어 계속해야겠네. 자네의 이 고마운 성의가 헛되지 않도록 빨리 돌아가야겠네. 난 조국에 돌아와서 수난많은 겨레에게 바치는 자네의 첫 지성으로 접수하고 잊지 않겠네. 아무튼 고맙네, 호정. 건강에 류의하고 신변을 잘 정리해두게.》
정시명은 곡진하게 타일렀다.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마주선김에 더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고싶었으나 여기서 더 지체할수 없었다.
송호정이 그 손을 꽉 잡았다. 잠시 합쳐진 두주먹이 얼어붙은듯 떨어지지 않았다.
정시명은 이 사람이 그 어떤 비장한 일도 치를수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 대바른 사람이고 보면 복잡한 마음의 속박을 그런 식으로 끝낼수도 있다. 그의 눈길에, 그의 말투에 비낀것이 상서롭지 않아 은근히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정시명은 말소리에 진정을 모아 부탁했다.
《호정, 우린 지금껏 이 나라 위해 열은 있어도 바친것은 없는 사람들이야.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뗐어. 그런데 걸음을 옮기자마자 스스로 포기해버리면 나라앞에 죄를 짓는거라구 생각되네. 난 부디 자네가 자기를 이겨내기를 바라네. 나라앞에 분렬이라는 구름이 몰려오고있는것을 보면서 자기의 의무를 포기해버리는 인생수치를 남기지 않도록 해주게. 부탁일세.》
송호정은 묵묵히 그의 말을 들을뿐이였다.
송호정과 그의 처를 바래워주고난 정시명은 마동열을 밤차로 대전으로 떠나게 하였다.
국사봉은 대전에서 멀지 않다. 그러니 충청남도 도청에 있는 박영수를 통하면 야산대의 통로를 찾아낼수 있을것이다.
정시명은 야산대와 련결된 지방혁명조직에 정보를 전달해주며 그것이 야산대에 전달된 정형까지 확인하고 오라고 말했다. 그와 함께 박영수에게 앞으로 야산대와 통하는 극비통로를 개설해놓을것을 위임하라고 일렀다.
박영수에게 주는 첫 임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