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장  력사의 회오리속에서

 

1

《국방경비대》 총사령부는 미군사령부가 자리잡은 룡산구의 유측진 곳에 자리잡고있었다. 요새 송호정은 늘 어깨가 처져다녔다. 사무실에 나오면 자기의 고문인 하우스맨중령이 대구항쟁에 이어진 전 남조선적인 민중시위에 《국방경비대》를 동원시키라고 호통질이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매일같이 무시로 불러대는 하우스맨을 피해다니거나 적당한 변명거리를 만들어내는것이 여간 고되지 않다. 게다가 집에 돌아가면 처의 성화가 때없이 넌덜머리 날 지경이다. 정향선생에게 사죄하였느냐고 빈번히 묻고는 지청구다. 뭘 사죄하라느냐고 소리를 치면 바른 말씀만 하시는 선생을 노엽히게 한걸 사죄해야 한다는것이다. 어떻게 되여 바른 말씀이냐고 더럭 성을 낼것 같으면 자기도 당신 입고있는 사령관옷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것이다.

그 소리는 이미 몇번이나 들은 소리다. 매번 송호정은 코방귀를 뀄다.

《천만에!… 이 송호정이 이 옷을 벗어놓을상 싶은가?》

언젠가 김구도 간곡하게 말했다.

《중령, 자네가 내 곁을 떠날 때는 미웠지만 이왕에야 그 자리를 지켜주게. 나와 장개석이가 보증한 자리일세. 그걸 리승만에게 넘겨주면 국방의 체질이 달라져 나라가 위태로워지고 백성이 도탄에 빠지게 될수 있네.》

벌써 그런 조짐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있다. 군대를 정치에 끌어들이려는 시도가 집요해지고있는것이다.

(천만에, 이 송호정은 정치의 둘러리가 안될것이다. 나는 이 나라를 지켜가는 중임을 다할것이다.)

송호정은 이런 떡심으로 버티여왔다.

그런데 요새 마음은 어수선하기만 하다. 정시명과의 마찰이 그 어수선한데다 키질을 했다. 안해앞에서 떡떡거리다가도 돌아서면 쓸쓸해진다. 자기의 가까이에서 소중한것들이 하나 둘 멀어져가는것만 같다.

그 녀자는 이런 말도 했다.

《이보세요, 나라가 통일되면 누가 정권을 잡을것 같애요? 민심을 따르세요. 정선생님 부인이야기를 들으니 북은 국민의 지지속에 국민이 바라는 정치가 자리잡았다고 봐요. 그런데 당신총대가 지금 누굴 겨누고있어요? 북이지요? 그럼 북에서 정권을 쥐면 당신은 또 나와 같이 이 나라를 떠나가겠어요?》

아니, 다시는 이 나라지경을 넘지 않을테다. 죽어도 이 땅에서, 살아도 이 땅에서… 통일되면 통일된 내 나라를 지킬테다. 통일조국의 남부를 이방인의 침략으로부터 지킬테다. 그때까지는 이 송호정이 자리를 내놓지 않을것이다.

그는 이 말만은 자신있게 하군 한다.

《여보, 나를 믿어주오. 통일조국앞에서 죄인이 되지 않게 살리다. 내가 뭐 내 평생에 호사나 바래서 이 자리에 앉은건 아니잖소. 내까지 물러나면 군대는 미국놈들의 고용군이나 리승만의 가병이 될수 있소. 난 기꺼이 방패막이가 되고싶소. 그걸 알아주오.》

《그러나 당신이 꼭 그런 고역을 치를게 없잖아요. 당신 하는 일이 옳다면 정선생님이 어째서 화를 내시겠어요. 난 그분이 언제 우리보고 그른 말씀 하시는걸 본적이 없어요.》

처는 여전히 고집이다. 남편뜻을 하늘처럼 따르는데 습관되여온 안해의 소리이기에 송호정은 집을 나서도 마디마디들이 귀전에서 그냥 떠나지 않는다.

지금도 송호정은 《경비대사령부》의 앞마당과 련결된 세종로쪽을 음울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울적한 심사를 다잡지 못하고있었다.

세종로쪽에서는 벌써 련나흘째 서울시민들이 모여들어 웅성거리고있었다.

흰천으로 만든 프랑카드에 써있는 구호들이 명료하게 보였다.

《쏘미협상을 재개하라!》

《미국은 쏘미협상을 원하는가, 반대하는가?》

《미국은 가면을 벗으라!》

쏘미협상과 관련한 구호들이다.

드문드문 이런 구호도 있다.

《8시간로동제를 실시하라!》

《물가인상 결사반대!》

방금전에 미6사단장 브라운이 쏘미협상수석대표의 자격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브라운의 전화는 처음부터 고압적이였다.

《총사령관, 당신은 지금 창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있는지 압니까?》

송호정은 짐짓 모르쇠를 했다.

《글쎄요?》

그러나 인차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말을 이었다.

《뭐 미쏘협상을 재개하라고 하는것 같은데… 수석대표각하, 당신이 나설 차례가 된것 같습니다.》

《이제 나설 때가 올거요.》

브라운이 송호정의 빈정거리는 투의 대답을 듣자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그런데 그전까지 소요를 내버려둘수는 없지 않소.》

송호정은 당신들이 협상에 나서면 간단히 저 소요를 진정시키겠는데 공연한 말썽거리를 만들어놓고 고생을 사서 한다고 박아주고싶었다.

《난 방금 하지사령관으로부터 민중시위를 진압할데 대한 명령을 받았소.》

《진압이요?… 어떤 방법으로?》

송호정이 대뜸 긴장해졌다.

《내가 전화를 하는건 어째서 당신들의 국민앞에 해방자인 우리 미군이 총을 들고나서고 당신들 주인들은 팔짱끼고 구경이나 하는가 하는것때문이요.》

브라운은 동문서답으로 따지고 들었다.

《유감스럽지만 치안은 우리 국방경비대의 소관밖입니다.》

《아, 그래선 안됩니다. 당장 경비대무력을 세종로에 투입하시오. 적어도 한개 대대전투병력을 시위현장에 급파하시오.》

《명령이요?》

송호정의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명령?… 지금은 권고요.》

《당신께 다시 상기시키오. 서울에는 한개 분대의 전투병력도 끌어들일수 없소. 국방에 틈이 생기면 당신이 그 책임을 지겠습니까?》

송호정은 위엄있게 일축하고는 전화를 놓아버리였다.

지난해에도 10월인민항쟁이 벌어졌을 때 아놀드가 압력을 가해왔다.

대구에서 벌어진 인민항쟁에 부산에 있는 5려단의 두개 대대를 투입하라는것이였다.

그 소리를 5려단장 최원기에게 하였더니 그 역시 이렇게 물어왔다.

《명령인가?》

《아니, 아놀드의 소리인데…》

《안됩니다. 경비대는 국방을 책임지고있습니다. 어째서 군대가 정치에 개입한단 말이요?… 군대의 엄정중립… 명심합시다. 총사령관.》

그래서 끝내 아놀드는 경찰청장 장택상에게 경찰병력을 대구방면에 집결시키도록 했고 그걸로 되지 않자 주둔군인 띤사단의 미군병력을 풀어 항쟁군중을 공격하게 하였던것이다.

송호정은 정시명이 던지고 간 말이 문득 떠올랐다.

《언젠가는 경비대도 국민의 머리에 불질을 하게 될걸세.》

그의 노호한 얼굴이 되살아나자 송호정은 비웃듯이 중얼거리였다.

《천만에! 이 송호정이 뭣때문에 이 자리에 버티고있는줄 아는가.… 그렇게는 안될걸.》

초인종소리에 송호정은 문가에서 돌아섰다. 군사영어학교를 졸업한 부관이 들어왔다.

그는 문건철을 내밀며 짤막히 설명했다.

《고문관이 보내왔습니다.》

《됐소. 책상에 두고 가라.》

《긴급비준을 요구하여왔습니다.》

《긴급비준?》

자기 자리로 가던 송호정이 불쑥 물었다.

《저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소?》

《데모지요.》

《뭣때문에?…》

《총사령관각하. 벌써 나흘째 계속되고있는 시위인데 모르고 계시였습니까? 기본은 미쏘협상재개를 요구하고있습니다.》

《미쏘협상재개?… 그럼 재개하면 될게 아닌가?》

《저건 좌익이 조직한 데모임에 틀림없습니다.》

《좌익이건 우익이건 상관있나? 옳은 요구라면 받아주면 데모도 뭐도 끝날게 아닌가. 서울뿐인가?》

《아닙니다. 전국적으로 2백만이 참가하고있다고 합니다.》

《그것 보라구. 긁어 부스럼이라더니 애초에 꺼버리면 되겠는데 자꾸 쑤셔서 큰불이 되게 하고는 우리보구 꺼달라고 야단질이거든.》

송호정은 자기의 부관이 노불이 박아넣은 밀정이라는걸 잘 안다. 하긴 군사영어학교라는게 원래 미전략정보국 요원들이 주관해서 운영한 학교로서 앞으로 남조선에서 친미세력의 핵심들을 키워내는데 목적을 두었으므로 어느놈치고 미국과 손을 잡지 않는 놈이 없었다. 다만 갈래가 각기 다르고 업은 놈이 다를뿐이였다. 송호정이 부관자리에서 여러놈을 쫓아내고 앉혀놓은 놈인데 노불이 몇번 만나보더니 그놈에게 아예 붙어버리고 만것 같다. 또 쫓아낼가 하다가 가만 놔두고있다. 이따금 얼굴 맞대고 말하기 어려운게 있으면 이런 식으로 노불과 노불을 거쳐 하지의 귀에 자기의 속말이 흘러들도록 하는데 쓸모가 있는 녀석이다.

부관이 내민 문건을 대강 받아 훑어본 송호정이 대뜸 화가 돋쳐 책상우에 훌 던져버렸다.

《좋아. 나가보라.》

《그럼 문건은?》

《연구하겠다고 전해.》

부관이 멋지게 손을 채양밑으로 올려갔다가 구두뒤축을 소리나게 맞쫗고는 돌아서서 방에서 나갔다.

《부관!》

송호정이 그를 다시 불러들였다.

대기실에 나갔던 부관이 되돌아와서 송호정앞에 부동자세로 섰다.

송호정은 명령을 긴장하게 기다리는 젊은 중위를 잠시 바라보다가 쏘파에 앉으라고 턱짓을 하였다. 부관이 사양하지 않고 쏘파에 단정히 앉아 공손한 눈길로 쳐다보았다.

《부관, 솔직히 말해. 중위는 미쏘회담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지?》

《저, 그건?…》

부관이 송호정이 돌발적으로 던진 물음의 의미를 리해하지 못하여 되물었다.

《가령 미쏘회담이 무얼 추구하고있는가? 미국이, 아니 우리가 미쏘회담재개를 두려워 할 리유는 무엇인가? 애초에 어떻게 열린 회담이기에 미국은 회담자체를 두려워하게 되였는가?… 뭐 이러루한걸 아는껏 설명해보란 말이야.》

송호정은 일전에 정시명한테서 설명을 들은바가 있지만 아직도 석연치 않다.

그래 정치감각이 예민한 부관의 설명을 다시 듣고싶은 생각이 동했던것이다.

송호정은 자주 그와 마주 앉아 정치담을 나누군 한다. 개체가 똑똑하고 총기있는 부관은 세상물정에 밝고 아는것이 많은 청년이였다.

그는 송호정이 강직하고 자주성이 강한 인간이며 아부와 굴종과 위선을 미워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 송호정에게 정세에 대한 보고를 할 때면 제딴으로 객관성을 지키느라고 애를 썼다. 송호정도 자기의 부관이 노불의 끄나불이 되여버린것을 알면서도 즐겨 정치담을 나누는것은 이런 사정때문이였다.

《답변하겠습니다.》

부관은 서슴없이 접수하면서 용수철에서 튕겨오르듯 일어났다.

그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며 눈을 깜박거리다가 《미쏘협상문제는 멀리로 테헤란과 얄따에서 진행된 쏘, 미, 영 수뇌자회담으로부터 풀이되여야 합니다.》하고 시험관앞에 나선 수험생처럼 조리있게 대답을 엮어나갔다.

송호정은 턱을 두손바닥에 고이고 앉은채 호기심을 보이느라고 고개를 끄덕거려주었다.

《당시 미국대통령이였던 루즈벨트는 조선반도에서 국민의 정치성을 고려하여 최고 50년까지의 련합국에 의한 통치를 할것을 제안하였습니다. 이를테면 신탁통치를 말입니다. 1945년 12월에 모스크바에서 진행된 쏘, 미, 영 외상회담에서 이 문제가 중심의제로 상정되여 격렬한 론의끝에 최고 5년간의 4개국 렬강에 의한 후견제를 실시하되 조선의 각계층이 참여하는 림시정부를 세우고 전적으로 후견기간에도 조선인이 림시정부를 통해 스스로를 통치할수 있게 하는것으로 결정이 되였습니다. 이 결정리행을 위하여 쏘미량군대표로 미쏘공동위원회를 조직하고 여기에 조선의 각계 대표들을 참여시키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결정이 공포되자 국내외적으로 지지와 반대세력이 갈라져 충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선 미국의 매파들속에서 결정내용이 공산권에 지나친 양보를 했다는 비난과 함께 모스크바3상회담에 참가했던 마샬전의 국무장관 번즈가 쏘련과 내통한 불순분자로 몰리고 3상회의결정을 뒤집어놓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그래 그럴테지. 그대로 했다가는 분명 림시정부가 좌익권의 수중에 장악될것이였지. 그러면 미국은 5년후에 빈털털이로 반도에서 쫓겨나게 될거구… 잘 알고있구만. 계속하게.》

송호정이 칭찬을 하자 부관은 신명이 나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바로 그것입니다. 사실 총사령관님께서도 잘 아시는바이겠지만 지난해까지만 하여도 이남은 좌익세력이 훨씬 우세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미쏘공동위원회가 3상회의결정리행을 실무적으로 추진시켜나가 림시정부를 조직하면 남도 북도 권력은 좌익권이 독점하게 되여있었습니다. 그러니 번즈장관이 쏘련파로 몰릴 법도 하였지요. 미국으로서는 당장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하지를 내세워 1차미쏘회담을 저돌적인 방법으로 무기한 휴회에 들어가게 하고 한편으로는 좌익에 비한 우익의 우위를 보장하기 위한 막후조종과 실력행사를 전격적으로 벌렸습니다. 미국은 남조선의 국민여론을 오도하기 위한 일종의 교란전도 벌렸습니다.》

《교란전?》

송호정은 처음 듣는 소리여서 물었다. 그 소리에 부관이 낯색이 달라졌다.

《용서하십시오. 총사령관님, 전 사실그대로 말씀드리고싶어서…》

부관은 자기가 상전의 비위를 너무 건드리는것이 아닌가 하는 념려스러운 생각이 떠올라 이렇게 말끝을 흐리였다.

《아니, 내가 뭘 싫어하는지 알지. 생겨먹은 그대로 이야기해.》

《알았습니다.》

그제야 부관은 긴장을 풀며 다시 이야기를 엮어나갔다.

《미국은 남조선에서 친미적인 언론매체를 총동원하여 모스크바3상회의가 쏘련의 주장에 의해 조선에 대한 신탁통치를 결정했으며 회의에서 미국은 조선에 즉각적인 독립을 부여하자고 했다는 외곡된 정보를 류포시키도록 하였습니다. 이렇게 되자 우익집단들중에서 친미농도가 제일 강한 리승만의 〈독촉〉과 〈한민당〉이 〈반탁〉운동을 벌리고 모스크바3상회의결정을 지지하는 세력을 〈친탁〉으로 몰아부치였습니다. 즉시독립을 주장해온 김구세력도 미국의 교란전에 말려들어 리승만의 〈반탁〉에 합류하였는데 이때문에 민족주의운동안에서 일대 혼란이 벌어졌습니다.

남조선에서 정치권이 〈반탁〉과 〈친탁〉으로 대결하여 류혈참극까지 생겨나자 미쏘공동위원회 쏘련측대표가 기자회견까지 열어놓고 모스크바3상회의 결정이 창출되기까지의 과정을 공개하였지만 아직도 국민여론은 혼선만 빚고있습니다. 이런 실정에서 이제 2차미쏘회담이 열리면 어차피 미국은 여러모로 곤난에 빠지게 되고 미국의 반도정책이 총 붕괴될수 있는 상황이 조성될수 있습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야.… 미국은 더는 눈감고 아웅할수가 없게 되였지. 그럼 부관은 어떤 립장이지?》

《저요?… 저야 군인이 아닙니까?》

《군인?… 군인은 이 나라 국민이 아닌가. 지금 국민이 바로 저렇게 미쏘협상을 재개하라고 목소리를 합치고있는데 이걸 어떻게 봐야 하겠는가. 이에 대한 자기의 립장이 있어야 될게 아닌가?》

《총사령관각하, 전 군은 정치밖에 있어야 한다는 총사령관님의 좌우명이 옳다고 봅니다. 군인이 정치에 어떤 립장을 가지는것부터 정치참여의식의 한 형태가 아니겠습니까.》

《그럴가. 허허…》

송호정은 부관의 대답이 당돌하면서도 약삭바르기 짝이 없어 웃고말았다.

그러나 미꾸라지처럼 묘하게 살살 빠져나가는 부관의 반지러운 얼굴을 보며 이내 골살을 찌프렸다.

그는 잠시동안 이마빼기가 도드라져나온 부관의 매끈한 얼굴을 지켜보다가 《좋아, 나가보라.》하고 쫓아버렸다.

음, 바로 그렇단 말이지. 미쏘회담이 다시 열리면 어차피 모스크바3상회의 결정을 집행하기 위한 세부안이 나올테지. 그러면 림시정부가 서게 되고 국토가 다시 합쳐지게 되겠지. 그런데 북의 공산권을 누를만 한 정치집단이 준비되지 못했단 말이거든. 양놈들 바빠맞게는 됐어…

제길할… 김구는 대체 뭘 하나. 장장 30년을 버티여온 상해림정이 이런 때 주먹을 휘두르고 나서야 할게 아닌가.

헌데 뭐 그것도 아니야. 하여간 3상회의결정이 그대로 리행되면 5년안으로 우리가 완전독립국이 될게 아닌가.

뒈질놈들! 력사에 차례진 호기회를 다 잃어버리게 하다니. 도대체 이 땅의 주인이 누구들인가. 어떻게 차례진 독립의 기회인가. 독립전에 숱한 피를 흘려왔는데 막상 그 꿈이 손에 잡히게 되니 뿔뿔이들이 돼서 골받이들만 하고있으니 기가 막힌 일이 아닌가.

아, 장차 이 나라가 어떻게 돼갈가.

송호정은 자기도모르게 분통이 터져올라 윽윽거리다가 다시 눈앞에 걸려든 문건을 두고 시름겨운 어조로 중얼거리였다.

또하나의 문제거리를 안은 송호정은 푹신한 쏘파에 몸을 묻은채 일어나지 못했다.

(제길할것! 어느 하루 마음 편한 날이 없군. 도대체 이 무슨 변이냐.)

문건은 광주에 있는 14련대를 차령산줄기의 국사봉에 집결하고있는 야산대의 토벌작전에 동원시킬데 대한 건의서였다. 이번 일요일저녁에 남부지역의 야산대들이 그곳에 집결하여 금후 남조선전역에서 벌어지는 항의시위에 보조를 맞출 행동대책을 토론한다는 긴급정보에 기초한것이라 한다.

문건기안자는 얼마전에 하지가 직접 선발하여 임명한 참모장 리응준이였다.

리응준도 태릉군사영어학교를 졸업했는데 일본군에서 대좌로 있던자이다.

그놈은 송호정의 밑으로 오기전에 하지의 군사통역관으로 있었다. 리응준은 오자마자 《국방경비대의 쇄신》을 제창하면서 이미 세워진 군지휘체계와 교범들을 뜯어고치는 놀음부터 벌리다가 송호정과 여러번 강한 마찰을 빚군 했다.

그는 참모장을 당장 불러들이려고 전화를 들었다.

《교환입니다. 누굴 찾으시렵니까?》

교환수가 물었다.

송호정은 전화를 놓았다. 문건내용을 다시 검토할바가 못된다는 생각에서였다. 군대는 정치에 참여말아야 한다. 더구나 현 시국처럼 정치적계파들이 좌충우돌하고있는 형편에서 군대가 엄정중립을 지켜야 한다는것이 송호정의 변함없는 립장이다. 부산에 있는 5려단장 최원기와 여러 군지휘관들도 자기의 주장에 전적인 공감과 지지를 보내오고있다. 장개석이 왜 중국의 통치권을 잃고 강남으로부터 대만으로 쫓겨나고 말았는가. 그것은 군대가 토비화되고 군벌들의 사병으로 전락되였기때문이다.

야산대란 정치투쟁의 산아이다. 입으로 해결되지 않으니 주먹을 든 정치행위의 연장이다.

송호정은 정초에 광주에 내려갔다가 14련대장으로부터 야산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들은바가 있다.

야산대란 남조선각지의 농촌을 거점으로 조직된 무장조직이다. 미군과 경찰세력의 폭압을 박차고나선 좌익세력들이 상대방의 힘의 압력으로부터 저들을 보위하기 위한 자위적인 형태로 되여있었다. 낮에는 정치투쟁을 벌리다가 밤에는 폭압을 일삼는 악질적이며 테로적인 우익계에 반격을 가한다는것이다.

그러므로 야산대는 미군정통치가 빚어놓은 정치의 부산물이다.

그런데 이것마저 《국방경비대》가 맡아안으라니 될말인가. 그것은 군대의 정치참여이다. 정치적엄정중립과는 대치되는 의미를 가진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국방경비대》는 국방경비는 걷어치우고 국민을 적으로 하는 국내전쟁의 2대세력으로 될것이다.

《안될 말! 안돼!》

송호정은 마치도 참모장을 앞에 세워놓은듯 단호하게 부르짖었다. 그리고는 밀어던진 문건을 도로 당겨다가 문건표지에 단단히 오금을 박아넣었다.

《참모장! 이따위 문건을 다시는 들고다니지 말것!》

그리고는 손에 쥔 펜대를 책상우에 던졌다. 펜대가 책상우에서 굴러가다가 방바닥에 떨어졌다.

송호정은 부관을 호출하여 문건을 주었다.

부관이 사라진후 송호정은 잠시토록 나들문을 거친 눈길로 노려보기만 하였다. 뒤머리가 무직해왔다. 저 문건의 기안자가 리응준이라 하지만 분명 명령자는 하우스맨일것이다. 하우스맨의 명령은 또 그자신의 견해만 반영한것이 아닐것이다.

최근 송호정은 미국것들이 민중과의 대결에 한사코 몸을 사리고있는 《국방경비대》를 야산대에 맞세우려고 안달이 나 한다는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송호정은 강하게 버티고있다. 온몸이 그대로 군의 존재에 버팀목이 된다는 비장하고도 안타까운 심정으로 뻗치고 서있다. 이 문제를 가지고 하지도 만났다. 노불도 만나 론전을 장시간 벌렸다. 하우스맨과는 기회있는대로 군부의 중립성에 대해 강론을 펴고 자세를 낮추어 호소도 하고 애걸도 했다.… 군을 정치의 파수군으로, 정치인들의 사생아로 만들지 말아달라.… 이제 또 한차례의 회오리가 닥쳐들것이라는 직감이 왔다. 여기저기서 뛰여오고 불러대고 삿대질을 할것이다. 이럴 때는 시원히 자리를 피하는것이 상수다.

송호정은 방을 그냥 지키고있기 싫었다. 부관에게 사관학교에 간다고 이르고는 방을 나섰다. 운전사더러 아무데나 가서 바람을 쐬겠다고 말했다. 정말 어디에 가서 늘어지게 한잠 자든지 머리를 비워두고싶다. 이런저런 지겨운 생각에서 벗어나 태평스런 공간속에 마음껏 나래를 펴고싶었다. 8.15전에 서울 운송점에서 목탄차조수로 일했다는 운전사는 입이 무겁고 눈치 빠른 사람이였다. 송호정은 운전사만은 아직 어느 놈의 손때가 묻지 않은 사람이라고 믿었다. 자동차에 올라앉자 세상만사가 귀찮아 눈을 감았다.

운전사는 룡산구를 지나자 한강다리를 넘어 성동구에 있는 아리랑극장앞에 와서 차를 세웠다.

《여긴 왜?》

눈을 뜬 송호정이 나들문우에 크게 써붙인 극장간판을 보자 골살을 찌프렸다.

운전사가 주인의 기분에는 아랑곳없이 히죽 웃으며 뛰여가더니 해사하게 생긴 극장 안내원처녀를 데리고왔다.

그 녀자는 애교있는 눈으로 어마어마한 직함을 가진 송호정을 할끔 치켜보고는 《어서 오십시요. 저희 극장에서는 지금 〈콩쥐와 팥쥐〉를 공연하고있습니다. 총사령관님을 모시게 되여 영광으로 생각합니다.》하고 연신 무릎을 갑신갑신거리였다.

《허-》

송호정은 자기의 무거운 속을 가볍게 해주려고 우정 이런 곳에 데려온 운전사에게 허거픈 웃음을 지어보이고는 처녀의 안내를 받으며 2층에 있는 특별석으로 갔다.

《콩쥐와 팥쥐라…》

안내원이 옆에서 분내를 날리며 또 뭐이라 설명하자 송호정은 귀찮은듯 손으로 어서 나가라고 쫓아버렸다.

무대에서는 콩쥐가 한창 팥쥐의 시샘을 받는 장면이 펼쳐지고있었다. 콩쥐가 무대 한구석에 쓰러져 섧게 우는데 팥쥐와 그의 어미가 나타나 네년이 감히 왕자님을 낚아보겠느냐고 매정스레 소리치고는 한바탕 간드러진 가락으로 야료를 부린다.

송호정은 몇장면 보다가 스르르 눈을 감아버렸다. 다 귀찮다. 지금쯤 일이 어떻게 번져지고있을가?…부관이 문건을 리응준에게 가져갔을것이고 리응준이 눈이 우멍해가지고 하우스맨에게 달려갔을것이다. 하우스맨이 브라운에게로 갔을것이고 브라운 역시 하지의 문턱을 넘을것이다. 그러면 하지가 살모사의 눈같이 독이 오른 두눈을 올롱해가지고 으르렁거리다가 전화통을 들것이다.

하지의 세모진 주걱턱이 떠오르자 송호정은 저도모르게 소름이 끼쳤다. 그 노랑눈에서 뿜어져나오는 독기가 언제나 매섭다. 그 눈빛만 봐도 다시 만나고싶지 않은 사나이다.

《이년아! 네가 감히 이 어미뜻을 어기고 팥쥐를 모함해. 이년!》

무대에서 울리는 새된 악청에 송호정은 화닥닥 놀라 눈을 떴다. 팥쥐의 어미년이 콩쥐의 머리끄뎅이를 쥐고 몇번 태를 치며 해대는 소리다. 창극이 마지막에 가까워오는것 같다. 쓰러졌던 콩쥐가 벌떡 일어나 뭐라고 항변한다.

다음에는 팥쥐가 달려들어 생야단이다.

《에잇, 그년들 앙탈도 야멸차다!》

송호정은 역정이 나서 투덜거렸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 불꺼진 극장에 피신해 있다니… 일국의 국방의 통솔자라는게 팥쥐에미의 횡설수설이나 듣고있다니… 미국놈들앞에서 할 소리는 해야 될게 아닌가. 저 콩쥐도 할 소리는 하고있는데 이 무슨 용렬한 짓이냐. 자리를 피했다 해서 시작된 태풍이 가라앉을가. 어떻게 하든지 또 그 맞서기 싫은 인간들과 마주서서 론전을 벌리고 국민전쟁에 무력을 동원시키려는 시도를 좌절시켜야 한다…)

송호정이 2층에서 내려오자 현관복도에 서있던 안내원이 왜 마저 보시지 않고 가시느냐고 인사를 하면서 몸을 꼰다.

송호정은 그의 인사를 듣는둥마는둥 덤덤한 표정으로 극장을 나섰다.

부관실에 들어서니 그동안 리응준이며 하우스맨에게서 여러번 전화가 왔다고 보고하였다. 송호정은 자기 방으로 향하다가 말고 부관실옆 방문을 열었다. 하우스맨의 방이다.

그곳에는 브라운과 리응준이 하우스맨과 마주앉아 이야기를 하고있다가 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하우스맨을 개별적으로 만나 조용히 말을 붙여보려 했는데 뜻밖에 여럿의 도전적인 눈길들에 마주치자 주눅이 들었다.

브라운이 먼저 말을 꺼냈다.

《총사령관, 당신을 기다리던중입니다. 어서 앉으시오.》

브라운이 정중하게 맞으며 그에게 쏘파를 가리켰다. 브라운은 잠시 그를 눈여겨 보더니 손에 문건을 들었다.

《난 미쏘협상수석으로서 당신의 경솔한 행동에 대하여 유감스럼을 금할수 없습니다. 지금 이 나라 국민들은 미쏘협상을 재개할것을 바라고있소. 그런데 발밑이 이렇게 어지러워서야 회담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미쏘협상이 재개되면 소요는 진정이 될겁니다.》

《야산대가 그것으로 해체될것이라는 그 무슨 담보가 당신에게 있다는거요?》

《야산대?… 거야 뭐 딴 문제지요. 그런데?… 그게 우리 국방경비대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요?》

송호정은 처음부터 기가 눌리우거나 세놈의 공세에 피동에 빠져서는 안되겠다고 바싹 마음을 도사렸다.

《국내치안은 다시 상기시키지만 우리의 소관밖입니다. 나는 경찰사령관이 아니라 군대의 사령관입니다.》

《경찰의 힘으로 안될 때는 어떻게 한단 말이요?》

《그건 정치하는 사람들이 맡아서 대답할 일이지요. 나는 미국군대가 공화당치하에서 민주당탄압에 리용되였다거나 민주당치하에서 공화당탄압에 동원되였다는 이야기를 들은바가 없소. 국민의 세금으로 먹고 입고 무장한 군대가 국민의 적이 되여서야 안되지요.》

《여긴 서울이요. 정치상황이 다르다는것을 당신은 정말 모르십니까?》

《서울이건 워싱톤이건 상황이 어떻든지 군대의 성격은 다르게 해석되여서야 안되지요.》

《총사령관, 당신은 제 나라의 국가체제가 허물어지고 북의 공산권에 흡수되여도 군대는 관계하지 않을거라는것입니까?》

《소장각하, 난 국민의 선택을 존중합니다. 국민은 지금 자기 권리를 행사하여 나름으로의 체제를 주장하고있습니다. 난 당신들도 우리 군부도 그러한 국민적권리행사를 보호하여 주어야 한다고 봅니다.》

《당신은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있는거요? 야산대의 총부리가 미군정을 겨누고 당신들을 겨누고있는것은 현실이요. 난 즉시 이 문제에 대한 당신의 립장을 재검토해줄것을 바라오. 이 문건을 더는 지체시켜서는 안되오.》

송호정을 더는 설복할수 없다고 판단한 브라운은 잠시 위압적인 눈길로 상대방을 노려보다가 문건을 내밀었다.

그러나 송호정은 그를 거들떠보지 않고 단호하게 일축하였다.

《그런 문건에 난 수표할수 없소.》

《뭐요. 여전히 고집인가? 그렇다면 앞으로 남조선이 정말로 국내전쟁에 말려들면 당신이 책임지겠소?》

《그건 왜요?… 야산대가 보다 큰 항쟁군으로 된다고 합시다. 그 책임은 그들의 정치적요구를 외면해서 불씨를 커지게 한 사람들이 져야 할것이요.》

송호정이 열이 나서 떵떵 맞섰다.

브라운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송호정을 노려보는 그의 눈길이 여느때와 같은 평온을 잃고 적의로 번뜩이고있었다. 마주보는 송호정의 눈찌도 곱지 않았다.

《이제 난 더는 우리 미군을 당신들 대신으로 내세우지 않겠소.》

《그건 옳은 결심이요. 당신의 결심을 나는 지지하오.》

《좋소. 난 이 문제를 다른 식으로 해결하겠소. 야산대는 분명 빨찌산화될 가능성이 크오. 요람기에 짓눌러버려야 하오.》

브라운은 신사다운 체면을 잃어버린듯 돌처럼 굳어진 주먹으로 책상을 쳤다.

송호정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브라운을 마주 쏘아보다가 제먼저 하우스맨의 방에서 나와버렸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辽ICP备15008236号-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