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충신들의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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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정시명이 김명호를 만났다.
정시명이 신문사를 몇개 만들어보자고 하니 김명호는 깜짝 놀랐다.
《아예 손을 대지 않는게 좋습니다. 신문쟁이라는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십니까? 기자들은 어디서 끌어오며 인쇄소는 어떻게 리용하며 그 엄청난 자금은 어디서 대겠습니까. 제 일본놈때 16절지짜리 회람신문을 반월간지로 내는것도 땀을 빼다가 반년만에 물러앉고 말았습니다. 신문글이 조금만 벌그레한 색갈을 드러내도 여기저기서 오라가라, 아이구 말도 마십시오.》
입이 무거운 김명호가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반대의사를 주저없이 펴는것을 보면 신문사 일이 조련치 않을것 같았다.
그러나 신문사를 창설하는것은 정시명이 일전에 장군님을 뵙고나서 결심했던 문제이다. 문제는 신문사창설이 어려운가 쉬운가 하는것이 아니라 필요없는가 필요한가 하는것이다. 필요하다면 만난을 뚫고 하는것이요 필요없다면 식은죽먹기일망정 구태여 벌려놓아서 무엇하겠는가.
정시명은 김명호의 주장에 다른 말이 없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신문사를 운영하면 인민들을 정치적으로 각성시키는데 좋을것이다. 반동들을 때리는데도 좋다. 그래서 한개 군단의 병사들이 이루지 못한 공을 신문기사 한편이 할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황성신문》 주필 장지연은 시일야방성대곡을 호소한 짤막한 기사 한편으로 수백만 인민을 각성시키고 력사적인 대중적반일항거를 불러일으켜 우리 민족사의 한페지에 빛나게 새겨놓았다.
맑스의 《공산당선언》은 력사의 방향각을 돌려놓았다.…
그러나 신문창설이 그것만으로는 그 의의가 부족하다. 《언론의 자유》-부르죠아사회가 표방하는 이 구호를 우리의 사업에 리용할수 있지 않는가. 자본주의사회에서 기자의 직분만 가지면 그 어떤 분야든지 얼마든지 뚫고 들어가 사업할수 있다. 중립적인 외피를 쓴다, 형식은 물론 자본주의적이다, 여기에 알속은 붉은것을 심어주자, 이렇게 하자면 사회적으로 명망있고 출판사업에 경험이 있는 중간파인물을 전취하여 경영자로 내세워 출판활동의 합법성을 보장해야 한다.…
자기 말에 응대를 하지 않고 딴생각에 잠긴듯 한 정시명의 모습을 피끗 보자 김명호는 자리에서 슬그머니 일어났다.
《전 그러면…》
정시명의 침묵을 자기의 반론을 받아들인것으로 리해하였던것이다.
정시명이 눈시울을 내리붙이고있다가 벽에 기댔던 허리를 폈다.
《바쁜 일이 있소?》
《아니…》
《그러면 마저 의논해야지.》
김명호가 멋적은듯 다시 자리에 앉고는 안경을 벗어 닦기 시작하였다.
정시명이 자기의 생각을 털어놓기 시작하였다.
그의 말이 길어지자 점차 김명호가 고개를 끄덕이였다. 필요성이 납득이 갔던것이다.
정시명이 좋은 생각이 있으면 내놓으라 하고는 말을 끊었다.
김명호가 안경을 다시 끼고 정중한 가짐으로 앉아 묵묵히 생각에 잠겼다.
어떤 문제를 제기하면 앉은 자리에서 서너가지 생각을 내놓는 길철과 달리 김명호는 짜증이 날 정도로 오래동안 생각을 하다가 자기 의견을 내놓군 한다.
하지만 깊이 관찰해보면 머리회전이 떠서 그런것 같지 않다.
길철은 머리회전이 빠른데다가 도출되는 제안을 서슴없이 헤쳐보인다. 김명호도 역시 머리회전이 빠르지만 머리속에서 몇번 굴려보고야 내놓는것이 차이날뿐이다. 그들의 이러한 성격적차이는 간혹 모임때에도 드러나 충돌하기도 한다. 그때마다 정시명은 각기 단점과 장점을 가지고있는 의견을 끝까지 듣기 위하여 그들의 론쟁에 끼여들지 않고 어느 한쪽이 물러날 때까지 기다리군 하였다.
김명호가 잠시후 《정동지, 저에게 더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였다.
정시명이 더 만류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였다.
김명호가 저쯤되면 마음을 놓을수 있다. 틀림없이 좋은 제안을 내놓을것이라고 기대되였다.
정시명의 생각이 옳았다. 저녁을 마치고 잠시 뒤뜰안에 나와 소풍을 하는데 례영이 종종걸음으로 따라나와 《전화가 왔습니다.》하고 말하였다.
《어디서?》
《김리사께서 왔습니다.》
전화를 받으니 김명호의 목소리였다. 인사를 하는 품부터 무엇인가 자신이 있는 밝은 어조여서 정시명이 《말씀하십시오.》하고는 주의깊게 그의 보고를 들었다.
《문제는 판권을 쥐여야 합니다. 판권을 쥐는데는 출판물계는 몰라도 차라리 돈많은 기업가를 끼는게 나을것 같습니다.》
김명호가 이쯤되면 벌써 머리에 구상이 서있는것이다. 뚜렷한 주장이 없으면 절대로 상대방의 의견을 무시하거나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 성미였다. 그는 지금 아까 낮에 이야기한 정시명의 제안을 다른 각도에서 무시하고있는것이다.
《흥미있습니다. 말씀해보십시오.》
정시명은 전화이므로 정중하게 응답하면서 상대방을 고무해주었다. 설사 누가 들어도 실무가들의 실무적인 협의로 인식되여야 하는것이다.
김명호가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신문이란 독자만 끌어모으면 치부의 수단으로 될수 있습니다. 지각이 있는 기업가들에게 상정을 시키면 응할 자도 있을것입니다. 제가 맡아보겠습니다.》
김명호는 래일 아침 찾아가겠다고 하였다.
정시명은 래일 하루를 긴장하게 뛰여다닐 김명호의 수고를 덜어주고싶어 《아니 내가 갑지요. 리발관이 문을 닫을무렵에요.》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저녁 8시가 지났는데 문화리발관대기실에는 손님 서넛이 순번을 기다리고있었다.
잠시 앉았노라니 김명호의 처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천연스럽게 표를 떼겠는가고 물었다.
정시명이 고개를 가로젓고는 자기의 명함장을 내보이고 주인님께 채무청산을 하러 왔다고 대답했다.
《어서 들어오세요.》
김명호의 처는 스스럼없이 그의 앞에 서서 남편이 기다리고있는 내실로 안내하였다.
정시명은 그 녀자의 뒤를 묵묵히 따라가면서 김명호가 안해를 잘 훈련시키고있다고 생각하였다.
저쯤되면 어디 가서라도 무슨 일이든 맡아할것 같았다. 그 녀자의 말투에서나 걸음걸이에서나 리발관의 주인으로서의 체취가 풍기고 하나도 어색한것이 없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투쟁속에서 저처럼 자라나고있다.
김명호는 앉은 책상을 마주하고 책을 보다가 정시명이 들어서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안해는 방문을 꼭 닫은 다음에야 반가움을 금치 못해하면서 《선생님, 사모님도 무고하십니까!》하고 인사를 올린다.
《그럼요. 리발관이 잘 운영되는것 같습니다.》
《웬걸요. 아직도 궤도에 들어설라면 멀었습니다. 이제 좌석도 더 늘이고 고급리발관으로 끌어올리려고 합니다. 지금은 밑지고있습니다.》
《예, 궁냥이 그만큼 텄으면 수입에는 관계없이 발전한 셈입니다. 리발관도 사람이 하는 일이니 사람들이 단합돼서 자꾸 생각을 해내느라면 잘 돼갈겁니다. 첫술에 배가 부를수야 없지요.》
정시명이 이렇게 그 녀자의 수고를 치하해주었다.
안해가 나가자 김명호가 보고하였다.
《리달영이라는 기업가가 판권을 내보겠노라 했습니다. 미군정청의 공보실신문담당관을 안다고 해서 오전에 그를 앞세우고 만나보았습니다. 이번주 말에 리달영의 이름으로 발행허가를 받기로 하였습니다. 신문의 내적책임은 우리 성원인 최석호라는 동무에게 맡겼으면 합니다. 원래 출판물계도 알고 글도 잘 쓰고 책임성이 높은 동무입니다. 저녁전에 그도 만나보았는데 자신있게 대답하였습니다. 필요하다면 이제라도 찾아오게 하겠습니다. 저녁시간에 자리를 뜨지 말아달라고 했습니다.》
김명호가 자신이 하루에 한 사업을 차근차근 이야기하였다.
《수고했습니다. 일은 이렇게 일사천리로 밀고나가야 밥맛도 생기는 법이요.》
말보다 실천이 앞서는 김명호의 일본새에 정시명은 여간 흡족해하지 않았다.
이리하여 벌써 며칠후에는 종로구의 한 건물에 《조선중앙일보사》라는 큼직한 간판이 나붙고 일자리를 구하려 기자들과 로동자들이 드나들었다.
정시명은 신문사의 경비성원들과 편집집단을 합법적인 중립신문으로 잘 위장하면서도 혁명적내용을 보장할수 있도록 꾸리였다.
표면적으로는 리달영을 사장으로 내세웠고 그밑에 1부사장으로 김명호의 조직성원인 최석호를 두어 신문사의 전반사업을 장악하도록 하였다.
외부와의 거래가 많은 재정경리업무와 외사업무는 리달영의 조카가 맡아보도록 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누가보든지 리달영이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영업신문이라는 감을 주었다.
김명호는 점차 리달영이까지 완전히 포섭전취하여 의식적인 동정자로 만듦으로써 신문사의 활동을 보다 자유롭게 보장할수 있게 하였다.
정시명은 분초를 쪼개쓰는 속에서도 《조선중앙일보》창간사를 비롯한 수많은 기사들을 직접 집필하여 신문사에 보내주군 하였다.
원래 정시명은 다년간의 기자생활을 통하여 예리한 필치를 소유하고있었다.
그가 상해에서 중간신문이였던 《민중일보사》 기자로 활동할 때 주은래를 비롯한 중국공산당의 지도급인물들의 특별한 신임과 존경을 받게 된 첫 동기도 짧은 글속에 착취사회의 반동성을 예리하게 포착하여 호되게 답새길줄 아는 능란한 글솜씨와 한마디의 단어, 한줄의 문장으로 독자들의 심장을 끓게 하는 문필가로서의 뛰여난 재능이였다.
정시명은 명석하고 심오한 지식으로 일제의 야수성과 사회의 부패를 발가놓은 폭로기사를 쓰기도 하고 때로는 대중을 투쟁에로 불러일으키는 호소성이 강한 정론도 썼고 때로는 재치있는 해학과 유모어로 엮어진 풍자글을 써서 웃음속에 반동들의 뒤통수를 호되게 후려치기도 하였다.
그런가 하면 어떤 때는 생동한 시어에 망국의 울분과 분노를 담은 시들을 써서 무기명으로 신문사들에 보내여 싣기도 하였다.
일본놈들이 그를 7년간이나 죽음의 형무소로 악명을 떨친 중경형무소에 가두어놓은것도 번개처럼 번쩍이기 시작한 그의 필봉을 시초에 꺾어버리자는데 있었다.
투쟁은 오래전에 그를 문필전선에서 물러앉게 하였다. 그러나 여러 필명으로 남조선출판물들에 실리기 시작한 정시명의 글들은 세상에 나타나자마자 사람들속에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장군님을 흠모하는 그의 충성스러운 글들은 각계각층 인민들속에 널리 애독되였다. 정시명은 날을 따라 변모되는 북반부의 현실도 구수한 달문으로 널리 소개하였다. 평양에서 수집한 자료들이 크게 은을 냈다.
그는 저녁에 일사업을 다 마무리 지은 다음에 글을 쓰군 하였다.
민순임과 례영이가 새벽에 일어나 곱게 정서하였고 마동열이 아침식사를 마치자바람으로 문화리발관에 보내주군 하였다. 근래에 와서 련락임무가 늘어나서 타자강습소를 마친 례영이도 마동열의 사업에 망라되였다.
《조선중앙일보》의 활동이 정상화되자 또 하나의 신문사를 설립하였다.
새 신문의 창간은 다른 방법으로 실현하기로 하였다.
이번에는 새로운 판권을 획득하는 방법으로가 아니라 자금난에 빠져있는 신문사를 탐문하여 어느 한 개인기업가의 명의로 변경수속을 하는 방법으로 하였다.
그리하여 《우리 신문》이라는 간판을 단 새로운 신문사가 출판활동을 시작하였다.
이밖에도 정시명은 《광명일보》와 《독립신보》가 경영난에 허덕이자 여기에 자금을 대주고 일군들을 알선해주는 방법으로 신문사의 출판활동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이 신문들은 남조선인민들의 의사와 지향의 적극적인 대변자로 복무함으로써 인민들속에서 커다란 환영을 받았으며 독자대렬은 급속히 늘어나 《조선중앙일보》의 발행부수는 당시로서는 많은 축에 속하는 6만부에까지 이르렀다.
김명호는 점차 이 사업에 흥미를 느꼈다.
언론의 촉수가 미칠수 없는 부문이란 자본주의사회에서 극히 드물다. 그들은 신문사를 통해 자료를 수집하였을뿐아니라 다른 부문들에서 입수된 자료들중에서 미제의 식민지예속화정책과 반동세력의 민족분렬책동들에 대한 자료들을 폭로하는 사업도 벌려나갔다.
이것은 적내부를 혼란시키고 사회여론을 불러일으켜 미제의 식민지통치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이 신문들이 남조선전역에 전파되자 반동들은 첫날부터 신문의 편집활동을 방해하려고 집요하게 달려들었다.
여기에 발맞추어 혁명대오에 잠입하여 조국청사에 천추만대 용서못할 죄행을 저지른 박헌영일당들까지 압력을 가해왔다.
어느날 박헌영의 졸개로서 남로당의 중요직위에 있는 홍민표가 직접 《조선중앙일보》의 최석호를 찾아왔다. 안경을 쓰고 이마빡이 매미처럼 반들거리는 홍민표는 자기의 반당반혁명적요구를 감히 공개적으로는 떠들지 못하였다.
홍민표는 장시간 남조선정세의 엄혹성에 대하여 빙빙 에돌아가면서 설명하였다.
최석호가 그때까지도 그놈이 찾아온 리유를 모르고 그놈의 장광설을 듣고있다가 물었다.
《그러니 신문의 타격도수를 더 높이자는것입니까?》
《도수를 더 높인다?… 말귀가 좀 어두운 량반이군.》
홍민표는 고양이상통같은 낯짝에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혀를 찼다.
《이봐, 당신 혁명에는 1보전진도 있고 2보후퇴도 있다는 말 들어본 일이 있어? 당신도 한다하는 신문쟁이니 레닌의 이 말씀은 얻어들었겠지.… 에…우리 지도부는 북반부의 선전을 당신들처럼 바지저고리 다 벗어놓고 하면 백색테로에 속옷까지 벗기우고 만다는걸 주의주려고 하오. 당신네가 날린 불똥이 우리한테까지 올수 있단 말이요. 너무 극좌적으로 나가면 피차에 재미없으니 심중히 처리하길 바라오. 이건 내 개인의 의사가 아니라 박헌영동지의 조직적의사라는걸 알아야 하오.》
그놈은 박헌영의 이름으로 은근히 위협조로 나왔다.
사실 당시 박헌영은 정시명이 신문지상을 통하여 장군님에 대한 선전사업을 하는데 대하여 음으로 양으로 반대하여 나섰다.
그를 제지시키라는 《엄격한 지시》까지 내려보냈다.
오래전에 일제에게 투항변절하였고 미제의 고용간첩으로 전락된 박헌영놈으로서는 남북삼천리에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흠모의 정이 높아지는것이 눈에 든 가시처럼 생각되였던것이다.
최석호는 이미 마동열을 통하여 정시명과 직접 련계를 맺고있는 사람이였다. 그는 박헌영의 정체는 몰랐지만 이미 정시명으로부터 이 문제와 관련한 시비에서는 원칙과 신념을 양보해서는 안된다는 말을 들은바가 있었다.
그래서 주저없이 홍민표의 압력을 일축하여버렸다.
《당신들은 설설 기며 살아가시오. 우리는 우리대로 가슴을 펴고 살아가겠으니 당신이 왈가불가할 일이 아닌줄 아오.》
그는 평소에도 필요없는 곳에서는 극좌적인 구호를 들어 대중의 혁명적기세를 저락시키고 무익한 희생을 내다가도 정작 기발을 들어야 할 때는 뒤전에 물러나는 박헌영과 홍민표에 대하여 불만이 컸다. 그로 하여 조직에서 쫓겨났던 사람이였다.
홍민표는 이틀동안의 말미를 주겠으니 대답을 보내라는 오금을 박고는 숨을 씩씩거리다가 돌아갔다.
최석호는 그날중으로 마동열을 통해 정시명에게 제기된 사실을 통보하였다.
그의 통보정형을 주모임에서 공개한 정시명은 동지들이 다 자기 견해를 발표하도록 하였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데리고있는 동지들을 사상적으로 실무적으로 키우기 위해서였다.
모두가 박헌영일당의 소행을 옳지 않다고 격렬하게 규탄하였다.
그들의 토론을 결속하면서 정시명은 격노한 어조로 분연히 부르짖었다.
《박헌영은 분명히 공산주의자가 아니요. 공산주의자라면 아무리 파쟁에 열을 낸들 어찌 자기의 령도자와 혁명의 기지를 자랑조차 하지 못하게 한단 말이요. 내 생각도 동무들과 같소. 최석호동무가 립장이 바로 섰소. 마동무, 그 동무에게 우리 지도부의 감사를 전해주오. 그리고 박헌영에게도 대답을 줍시다.》
정시명이 모임이 끝난후 정당사업을 담당한 김명호를 따로 만나 그자들에 대한 측면검열을 강화하기 위한 대책을 토의하였다.
모임때마다 박정인의 내외가 의례히 별식으로 성의있게 차려오는 저녁상을 물리자 한주일만에 만난 전우들과 한담을 나눌새도 없이 정시명은 자기 사무실로 들어갔다. 정시명의 사무실은 날샐녘까지 불이 꺼지지 않았다.
아침준비로 일어난 민순임이 방에서 아무런 기척도 없기에 들어가보니 책상우에는 담배꽁초가 수북히 쌓여있고 속필로 쓴 원고가 있었다. 민순임이 발끝으로 발볌발볌 짚어나가는데 정시명이 눈을 감은채 피곤에 지친 어조로 물었다.
《례영이 일어났소?》
《또 밤을 새셨군요. 례영이는 아직 자고있습니다.》
《깨우오. 그 원고를 빨리 정서하라고 하오.》
이틀이 지나 《조선중앙일보》에는 김일성장군님의 초상화를 크게 모시고 그이의 빛나는 업적을 칭송하는 장문의 기사가 실리였다. 박헌영일당에게 보내는 애국충신들의 단호한 대답이였다.
정시명이 장악한 《우리 신문》과 《광명일보》, 《조선중앙일보》는 반동들의 악랄한 탄압과 방해책동으로 여러번 정간 또는 휴간되였다.
그러나 그때마다 다시 일떠나 남조선에서 통일세력을 대변하여 북반부의 눈부신 발전을 소개하고 미제와 반동들의 전쟁도발책동을 폭로하며 반동상층부의 내면을 파헤치는 자기의 사명을 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