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충신들의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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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정을 동지로 사귀려던 일은 좌절되였으나 하나의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천진에서 헤여졌던 김송일이 남조선에 나타났던것이다.
김송일은 정시명이 권고한대로 장개석과의 친분을 더욱 두터이해가지고 돌아올 때는 중장별까지 받아가지고왔다.
그는 서울에 오자마자 소장의 계급장을 받았다. 경비대사관학교 교장자리가 차례졌다. 이미 장개석이 미군사고문단 단장 웨드모웨이를 내세워 하지중장으로부터 미리 받아두었던 자리였다.
결국 김송일이 정시명이 요구하는 위치를 그가 그어준 각본에 따라 차지하게 된것이다.
경비대사관학교는 원래 미군이 남조선에 기여든후 현지 군사통역관양성목적으로 태릉에 내왔던 미군사영어학교를 모체로 설립되였다.
군사영어학교는 하지의 명령에 따라 주체34(1945)년 10월경에 조직되였는데 다음해 1월까지 1기만 졸업시키고는 페교시키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장차 남조선에서 괴뢰군의 골간을 키울 목적으로 경비대사관학교를 내왔던것이다.
정시명은 김송일이 남조선에 들어오자 그와 련계를 곧 회복하였다.
경비대사관학교에 찾아가니 김송일은 여간 반가와하지 않았다. 그간 지내온 생활경위를 오랜 시간에 걸쳐 보고하듯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남조선에 와서 무난하게 사관학교 교장으로 등용된게 정향선생의 공이라고 격찬하였다.
정시명은 김송일을 부추겨 만군출신의 부교장을 쫓아내고 그 자리에 애국적인 인물을 앉혀놓도록 하였다. 또한 그를 통하여 수십명의 젊고 유망한 청년들을 사관학교에 입학시켰다.
반동상층의 심장부에 뚫고 들어가기 위한 사업도 적극 추진되였다.
주타격대상은 한국민주당이였다.
《한민당》은 정당중에서 극우익적이고 규모가 제일 큰 정당이다. 지주, 자본가, 친일, 친미매국노들의 정치적집결처였다.
주체34(1945)년 9월 16일에 창당하여 본부를 《동아일보》사에 둔 《한민당》은 령수로서 리승만, 김구, 리시영, 서재필 등 우익적인 거물급인물들을 그들의 합의도 없이 선출하고 실권은 수석총무가 장악하고있었다.
첫번째 수석총무 송진우가 중간파인물에 의해 암살되자 호남벌의 대지주인 김성수가 그 자리를 타고앉아 좌지우지하였다.
《한민당》은 세상에 나타난 그날부터 반공, 반북정책과 친미매국로선을 정면에 내걸고 미군정청의 가장 유력한 후원과 지지를 받고있었다.
하지는 주체35(1946)년 말에 이르러 남조선정치세력들의 정책동향을 면밀히 분석하고 정당으로서는 《한민당》을, 권력기관의 핵심세력으로서는 리범석의 《족청》세력을 기본으로 현지통치기관의 기틀을 마련하려고 획책하였다.
《한민당》은 리승만이 조작한 《독립촉성중앙협의회》(독촉)에서도 중심세력이다. 그러므로 리승만의 정치적야망을 실현하는데서도 큰 몫을 담당하고있었다.
반동의 중심소굴로 전락된 《한민당》의 선전부장으로 틀고앉은 김승원은 당 상층에 자기의 지반을 닦아나갔다.
행정권력이 집중되여있는 미군정청에 애국적인 인물들을 파견하는 사업도 크게 전진되고있었다.
미군정청은 서서히 행정업무를 현지인물들에게 이관하고있었는데 앞으로 반동정권이 들어서는 경우 그들은 실제적으로 권력집단을 움직이면서 미제의 식민지적지배의 하수인으로, 실세로 놀아댈자들이였다.
미군정청안에서 좌우익에 관계없이 정당, 단체들의 동태와 인물관계자료, 군중들의 사상동향 등을 종합하여 미군사령관과 미군정장관, 미군정보부장에게 보고하는 직능은 공보여론조사과가 담당하고있었다.
정시명은 류동명을 내세워 말솜씨가 있고 지식수준이 높은 연장성이라는 사람을 여론조사과장자리에 앉혀놓았는데 그는 길철의 지도를 받고있었다.
안지생은 《림정》요인의 한사람이며 후날에 괴뢰국회의장을 한 신익회가 조직한 《반공련맹》을 주요대상으로 하여 사업을 벌려나갔다.
《반공련맹》을 정시명이 중시한것은 이 련맹이 하지의 정보고문 노불이 직접 조종하는 사회단체로서 현재 권력기관들과 행정기관들에 소속되여있는 적지 않은 중간인물들이 장차 출세의 사다리를 미국놈의 후원에서 찾고 반공이라는 패쪽을 얻기 위해 너도나도 참여하고있었기때문이였다. 그러므로 이 단체만 잘 틀어쥐면 필요한 기관들을 장악하는데 유리할수 있다.
실지 정시명과 안지생은 이런 줄시로 미군정청의 각 부서들과 미제의 어용기구들에 적지 않은 동지들을 파견하였다.
이리하여 정시명과 그의 전우들은 남조선에 들어선지 한해도 못되는 사이에 수십개의 정당, 단체안에 애국적인 조직을 꾸렸으며 미군정청의 모든 국과 처를 비롯하여 적통치기관의 심장부와 괴뢰경찰기관, 특무첩보기관들에서 애국적인 인물들을 찾아내여 애국운동에 나서도록 하였다.
그 세력은 남조선의 모든 도와 중요 시, 군을 포괄하였다.
정시명은 지방에 있는 조직들을 장악하기 위하여 필요한 지역마다 《흥국상회》의 출장소들을 만들어놓았다. 출장소책임자들로서는 해당지역의 조직들을 지도할 인물들을 선발하여 배치하였다.
《흥국상회》를 정점으로 전국적인 판도에서 조직체계가 완성되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