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충신들의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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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정내외가 일요일에 정시명더러 동부인하여 와달라고 전해왔다. 송호정의 생일인데 다른 손님을 청하지 않겠으니 꼭 오시라고 송호정의 처가 각근히 당부까지 하였다.
정시명은 때마침이라고 쾌히 응하였다.
이날 점심상을 물린 뒤에 정시명이 민순임에게 경비대 총사령관의 댁으로 가자고 말하자 그 녀자는 가뜩이나 크고 어질게 생긴 눈부터 떼꾼해졌다.
《원참, 제가 어떻게 그런 댁엘 다 간다고 그러십니까?》
《당신이 어째서?》
정시명이 반문하였다.
《촌녀자가 갈 집이 따로 있지. 전 못가요. 괜스레 따라나섰다가 당신께 무슨 망신을 시킬려고…》
《촌녀자?… 허허… 망신은 또 무슨 망신… 괜한 걱정이요. 송호정은 내 친구구 또 그 사람 처도 촌에 살던 녀자요. 내 보건데는 그 녀자가 당신보다 나은데가 별로 없는것 같은데 어서 차빌 하오. 자식들은 아직 아이들이라오.》
《정 데리고 가실라면 례영일 데리고 가세요.》
민순임이 여전히 지체가 높은 댁에 가는게 여간 걱정스럽지 않아 바재인다.
그러지 않아도 요새 민순임은 서울생활이 덧쌓여 갈수록 괜히 남편을 따라왔다고 후회가 크다. 옆에서 가만히 여겨보면 남편하는 일이 여간만 중요한것 같지 않다. 그런데 이자 겨우 면무식을 한 자기로서는 전혀 도움이 될 일거리가 없다. 남편을 찾아오는 손님들도 하나같이 자기가 촌에서 보아왔던 례사로운 사람들이 아니였다. 누구이던 들어서는 사람들은 인사하는 법도부터 다르고 말 한마디, 손짓 하나가 막된것이 없고 씨알이 배기고 기품이 어려있어 범접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자기를 만나면 깍듯이 사모님이라 부르군 하는데 그 부름말부터가 듣기가 거북살스럽기 그지없다. 차라리 촌에서 부르는 낱말로 불러주면 좋으련만 한사코 사모님이다. 그래서 민순임은 자기는 될수록 부엌에서 시간을 보내고 허드레일이나 맡아안고 돌아가면서 제가 나서야 할 자리에도 우정 례영이를 내세워온다. 그러면 눈썰미 있고 마음씨 고운 례영이 민순임의 눈치를 알아차렸는지 군말없이 민순임의 어려운 구석을 대신해서 엉치 가볍게 돌아가군 했다.
이런 일이 거듭될수록 민순임은 자기가 남편을 도와주기는 고사하고 남편의 인금을 떨구지나 않는지, 그에게 여러모로 부담거리로 되지 않는지 걱정스럽기만 하였다. 그저 그립던 김에 가자는 말 한마디에 아무 생각없이 자리를 훌훌 털고 쫓아온것이 여간 후회되지 않는다. 그러다가도 밤샘을 하며 일하고 끼식도 번져가는 남편을 맞아들일 때면 자기가 옆에 있는것이 다행스러워지기도 하였다. 누가 제처럼 밥상을 마주하고도 어떤 음식을 어떻게 만들어 대접해야 한술이라도 더 맛나게 들겠는가고 다심하게 봐주랴 싶은 생각에서였다.
기실 민순임은 이제야 비로소 안해라는 말의 의미를 깨닫는듯싶다.
평산집에 있을 때는 큰 가정의 며느리로 들어앉아 엄한 시부모와 시댁의 여러 식솔들의 눈치를 보느라 언제 남편되는 이의 식성을 헤아려볼 겨를이 없었다. 워낙 정시명이 그걸 바라지도 않았지만 그런데다가 잔정을 쏟을만 한 기회도 차례지지 않았다. 오래전에 자기에게서는 지나쳐버린 그 생활의 단맛을 이제야 찾은것이다. 그러나 그러루한 달콤한 사랑의 정도 날이 바뀌여갈수록 시들해가고 남편과의 하늘땅 같은 차이를 메꿀수 없다는것을 깨달으며 후회되는 마음이 커만 갔다. 남편도 자기의 속내를 알아차린것 같다. 그래서 될수록 자기 속을 홀가분하게 해주느라고 마음을 쓴다.
사실 정시명은 한편으로는 민순임을 편하게 해주고싶어 그앞에서는 스스럼없는 바깥주인노릇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안해의 성장을 소리없이 밀어주고 보살펴주었다. 하기에 오늘과 같은 자리에도 굳이 그를 데리고가려는것이였다. 민순임이 아무리 촌녀자라고 자기스스로 어깨를 떨구어도 어쨌든 그는 김정숙동지께서 말씀하신것처럼 광복된 내 나라에서 살아오지 않았는가. 어떤 의미에서 중국의 명문대학인 베이징대학 졸업생인 송호정의 처에게는 자기말 백마디보다 촌녀자의 흙냄새나는 말 한마디가 백배의 설득력으로 귀에 들어갈수 있다. 그러니 송호정과의 사업을 위해서도 민순임을 꼭 데리고가고싶었다. 오늘 저녁에는 송호정과도 단단히 셈을 치를 작정이였다.
《여보, 그래도 당신은 김일성장군님치하에서 살아본 녀자가 아니요. 당신이야말로 북조선의 대표라고 할수 있소.》
《제가요?》
민순임이 기겁을 하듯 소리질렀다.
《그럼, 리녀맹부위원장까지 했는데 그게 어디요. 남들을 쳐다만 보지 말고 굽어보란 말이요. 서울녀자들보다 못할게 뭐요?》
정시명이 이렇게 안해를 고무해주었다.
남편이 타이르는듯 한 이야기가 민순임의 귀에 쏙쏙 들어왔다.
끝내 민순임의 마음이 움직이고야 말았다. 그는 이내 주씨와 의논하였다.
큰 어른의 집으로 가게 되였다는 소리에 주씨는 제일처럼 좋아하며 동대문시장부터 돌아보자고 하였다. 심덕이 후한 주씨는 민순임과 나이도 성미도 생김새까지도 비슷한데가 많다. 이런 일에서 경험자인 주씨는 술가게에 가서 덮어놓고 제일 비싼 술로 두병을 샀다. 과자사탕도 반짝거리는 쇠곽에 담은걸로 사서 구럭에 넣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아무래도 절기에 따르는 나들이옷을 꼭 갖춰놓아야겠다고 하면서 한사코 양복점으로 가자고 했다.
그 소리에 민순임이 《아이구 성님, 그러지 말아요.》하며 한길 뛰였다.
《바깥량반이 아시면 쫓겨나게요. 호호…》
《호호…》
두 녀인이 길가에서 서로 손을 맞잡고 한참 웃었다.
그럴만 한 일이 있었다.
이 집 대문안에 민순임네가 들어선지 얼마 안되는 어느 날이였다.
주씨가 민순임의 손에 슬그머니 두툼한 돈봉투를 쥐여주었다. 민순임이네 량주와 례영이, 동열이의 옷 한벌씩 마련하라는것이였다. 그때까지만 하여도 동열이는 장개석군의 군복을 벗지 못하였고 정시명도 옷차림이 람루하였다.
그러지 않아도 한푼 보태주는것 없이 여러 입이 집살림을 갉아먹고있다고 늘 미안쩍기 그지없었던것이다. 그래 순임이 한사코 사양했지만 주씨가 여러말로 눌러놓고 기어이 손에 돈을 쥐여주었다.
그날 저녁 민순임이 그 이야기를 하였는데 정시명이 여느때없이 대뜸 성을 냈다.
《당신두 참!… 지금 흥국상회가 겨우 걸음을 떼기 시작했는데 옷장만을 하려구 돈을 받는단 말이요? 대궐집 담장안에 들어서더니 마나님행세를 하려는게 아니요. 당장 갖다드리오. 그런 일이야 당신이 눈썰미있게 처리를 해야지. 성의라구 다 받아들여서야 인사법도가 제대로 되겠소.》
민순임은 마나님행세를 하려는가 하는 말에는 너무 억울해서 눈물이 찔끔나게 분이 치밀었으나 찍소리 한마디 못한채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고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정시명이 문을 열고나서는 그를 다시 불러들여가지고는 그 돈을 자기에게 달라고 했다.
이튿날 정시명은 그 돈을 마동열에게 주어 화신백화점에 가서 고성능라지오 3대를 사오게 했다. 한대는 마동열에게 주고 한대는 자기 방에 가져다가 설치하였다. 중국에서부터 애용해왔던 라지오가 있기는 했으나 이제는 하두 오래된것이여서 잡음이 많고 고장이 자주 생겨 소리를 놓치는 일이 빈번하였던것이다. 나머지 한대는 박정인에게로 들고갔다.
《박선생님, 이제부터 저녁 10시가 되면 이걸 틀어놓고 평양의 목소리를 듣군 하십시오. 제가 못 듣는 날도 있을테니 들어두었다가 수고스러운대로 이야기해주십시오.》
《예, 그렇게 하리다.》
박정인은 인차 정치에 밝지 못한 자기의 눈을 밝게 해주려고 왼심을 쓰는 정시명의 웅심깊은 생각을 알아차리고 군말없이 정중하게 접수하였다.
사실 박정인은 라지오를 들으며 크게 달라져갔다. 어떤 때는 뒤방에 주씨와 함께 앉아서 여러시간 평양의 목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끄덕거리기도 하고 아름다운 평양의 음악에 취하여 무릎장단을 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주씨는 자기가 준 돈이 라지오가 되여 되돌아왔다는것을 알자 기가 막혀 일후에 여러가지로 수를 써보았으나 이날이때까지 종시 새옷을 장만해주지 못해 여간 속을 썩여온것이 아니였다.
… …
길가에서 한참 웃고난 주씨가 정색해서 말했다.
《동생, 너무 그렇게 네돈 내돈 그러지 말아요. 써야 할 일이라면 써야 될게 아닌가요. 자, 어서 가요. 옷주제로 큰 어른들께 흠이 되게 해서야 안될 일이 아니우.》
주씨가 이렇게 말하며 막무가내로 끄는데야 민순임이도 어쩌는 수가 없었다.
주씨는 아예 양복점에 들어선김에 네계절에 갈아입을 옷을 일식으로 맞추게 하고서야 흐뭇해서 나왔다.
그렇게 하고 보니 해가 기울어지기 시작하였다.
집에 들어선 민순임이 옷궤를 열고 집에서 입고온 진회색 무명치마저고리를 꺼냈다. 평산을 떠나기전에 맏동서가 쌀 한말을 이고 읍에 나가 바꿔가지고 와서 제 손으로 밤을 새워 만들어준것이였다. 민순임이 손에 펴들고 다시 다림질을 해야 되겠는지 망설이는데 례영이가 강습소에서 돌아왔다.
례영이는 민순임이 저녁에 고관댁에 정시명과 같이 가게 되였다는 말을 듣자 손벽을 치며 좋아하였다.
《나도 따라갈가?》
《참, 그러자꾸나.》 민순임이 그 소리에 좋아서 고개를 끄덕거려보였다.
그러나 례영이가 눈을 깜빡거리다가 고개를 살레살레 내저었다.
《난 안갈테야요. 모처럼 아버님 모시고 나들이 가는건데. 서울구경삼아 재미있게 산보도 해보세요.》
《얜 새빠지게 산보가 다 뭐냐? 너의 아버진 총각시절에도 나 보기 싫다고 서울서 내려오지도 않았는데 나이 마흔 지나 무슨 놈의 산보냐. 남들이 웃겠다.》
《호호, 어머닌… 누가 봉건인지 모르겠네. 자, 인주세요. 다림질은 제가 해요. 그런데 이건 색갈이 너무 무거워…》
례영이 이렇게 태없이 굴며 민순임에게서 옷을 빼앗아들고 자기 방으로 올라갔다.
민순임이 례영의 뒤모습을 보다가 자기도모르게 《호호.》하고 웃었다. 곁에 있으면 정이 쏙쏙 들게 하는 례영이 날이 갈수록 탐이 났다. 도회지에서 홀어미품에 곱게 자랐다는게 일손이 어찌나 바지런하고 엉뎅이가 가분가분한지 집에 들어서면 한시도 가만 있지 않는다. 인사범절도 얼마나 밝고 스스럼 없는지 보는 사람마다 귀한 딸 곱게 키웠다고 치하를 했다. 거기에 인물 또한 서울장안을 두루 봐야 비할 이가 없을것 같다. 어쩌다가 저런 보배가 날아들었을가. 례영이가 곁에 붙어사는게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생각할수록 꿈만 같다.
남편이라는 이는 하루가야 이야기해 볼짬이 없는 사람이고 원래 집안에서는 쓰다달다 군말이 없는 사람이다. 례영이 그가운데 끼여있어서 다행히도 언제나 집안에 향기가 있고 즙이 흐르는것 같다. 어떤 때는 집에 있는 맏이와 마음속으로 나란히 세워보기도 한다. 그 애가 광복바람에 혼기를 놓쳤다는 말은 듣지 않게 되였지만 전같으면 로총각이라는 말을 들을법하다. 례영이를 맏이의 옆에 앉혀놓고 평생을 끼고 살았으면 여북 좋으랴.
지금도 민순임은 때없이 떠오른 이런 생각을 굴리며 그가 사라진 방문쪽을 취한듯 서서 바라보고있었다.
《동서가 있수?》 바깥에서 주씨의 소리가 났다.
민순임이 얼른 나들문을 열어주었다. 주씨가 연한 곤색의 비단옷을 들고서있다.
《이 옷을 입고 가면 어떨가?》
《아유, 됐어요. 그 귀한걸 뭘요.…》
《입고 가세요. 내겐 여벌이 있으니 입고 다녀요. 선생님의 손들이 어떤 분들이예요. 자, 한번 입어봐요.》
주씨가 문지방을 넘어서며 권한다.
민순임은 주씨의 권고가 고마와 인차 비단옷을 갈아입었다. 생전에 처음으로 감아보는 비단옷이다.
둘의 몸꼴이 비슷한데가 있어 민순임에게도 맞는다.
그의 옷매무시를 봐주던 주씨도 《됐수다. 난 치마가 좀 짧지 않을가 했더니 그렇게 입으니 일없군요.》하고 신통해 하였다.
례영이가 두런두런한 말소리에 방문을 빼써 열고 내다보다가 민순임이 비단옷을 차려입은것을 보자 눈이 휘딱해졌다.
《아니?!》
례영이 방에서 나와 마치도 화신백화점 진렬대에 서있는 커다란 인형을 둘러보듯 민순임의 주위를 한바퀴 휘 돌고는 《이렇게 차리니 어머님 초례청에 나선 새각시 같애.》하며 기쁨에 차서 깔깔거렸다.
《얘, 가살을 떨지 말아. 쑥스럽다.》
민순임이 이렇게 말하는데 례영의 말이 듣기가 나쁘지는 않는지 어리무던해보이는 얼굴에 발깃한 색갈이 점점 물들어오른다. 평생을 이어온 농사일로 앞으로 약간 휘여든 실팍한 어깨와 기둥같이 굴곡이 없이 굵은 다리며 밋밋하게 뻗어오른 몸통이 두터운 비단천에 가리워지고 서울에 와서 살점이 오르기 시작한 크고 너부죽한 얼굴만이 그 비단우에 달처럼 환하게 솟아있다.
크고 둥글고 어질게 슴벅거리는 두눈도 이렇게 차리고 보니 시원스러운게 풍만한 몸과 넙적한 얼굴에 꼭 어울린다.
《그런데 그 머리가…》
민순임의 곁에서 예쁜 눈을 반짝거리며 돌아가던 례영이가 흠잡을것을 찾아낸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큰어머니, 어떠세요. 머리모양새가 너무 구식이 아닐가요?》하고는 주씨의 대답을 들을념도 없이 제 방에 가서 키낮은 외면경대를 내오고 그앞에 옷궤를 갖다놓는다.
《자 앉으세요, 어머니.》
례영이는 민순임이를 끌어다가 옷궤우에 눌러앉히고 쪽진 머리에서 비녀를 뽑아냈다. 그리고 날랜 손기로 트레머리를 해서 뒤쪽에 붙이고는 제머리에 있는 빈침을 뽑아 끼워놓는다. 그래놓으니 뒤쪽머리가 붕긋이 솟아올라 모양새가 한결 의젓하게 달라졌다.
《례영의 손이 정말 보배다. 참 보기가 좋구나.》
주씨가 맞장구를 치는데 례영이 얼른 민순임의 머리에 향수 몇방울을 이슬 털듯 떨구었다. 삽시에 방안에 향내가 피였다.
《얘, 이건 또 무슨짓이냐.》
민순임이 덴겁을 하였으나 례영이는 호호- 웃으며 동백기름까지 손에 발라가지고 민순임의 머리를 비다듬어 내리였다.
《얘얘 정말 남들이 웃겠다. 이젠 됐다.》
《봐요. 이젠 촌내촌내 하지 말아요. 촌내는 다 없어졌어요.》
례영이는 시치미를 떼고 민순임의 머리를 그냥 다듬으며 핀잔을 준다.
정시명은 이날 일찌기 집을 나섰다. 송호정이 차를 보내주겠다는걸 절대로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였다. 이날 오후는 안해를 위해 시간을 내기로 속구구를 했던것이다.
례영이와 함께 뒤따라 나온 민순임을 보자 정시명이 저도모르게 입귀가 벌어졌다. 민순임이도 제풀에 어색해하며 《얘가 촌내를 없앤다고…》하고 뒤말을 감빨았다.
《그렇게 차리니 보기가 좋구만. 그렇지만 촌내야 어떻다구…》
정시명이 이렇게 중얼거리며 한결 의젓하고 미끈해진 안해의 모습이 싫지 않아 비주름히 웃었다.
《얘, 너때문이다.》
민순임이 이렇게 례영이를 빗대고 흘기고는 제먼저 대문밖으로 달아났다.
《어머니, 잘 다녀오세요.》
례영이 캐득거리며 그의 등뒤에 대고 손을 흔들었다.
례영이는 정시명내외가 자리를 뜬후 잠시 동안을 두고 마동열이 대문가에 나타나자 눈을 빨며 그를 막아나섰다.
《오빠-》
례영이가 나직이 여러 말을 쏘아붙이는데 마동열이 히물거리며 그냥 대문을 열려고 하였다.
《아유 눈치두… 오늘은 제발 따라다니지 말아요.》
《참 이렇게두 맹꽁이 한가지라구야. 이게 뭐 나들이가는 길인줄 알아?… 좋아, 내 절대로 사모님눈에 띄지 않겠다는걸 맹세하오.》
마동열이 정중하게 맹세를 다져서야 례영이는 그를 놓아주었다.
정시명은 이날 민순임을 끌고 서울에서 명소로 일컫는 남한산성과 독립문이며 창경원을 차례차례 돌아본 다음 해가 떨어질 무렵에 남산재의 류동명의 집에서 얼마 멀지 않은 송호정의 집으로 갔다.
송호정내외는 초대에 응해준 정시명내외를 무척 반갑게 맞았다.
특히 송호정의 처는 두번째로 만나게 된 정시명의 안해를 선뜻 형님으로 부르며 여간 상냥하게 굴지 않았다. 마흔을 갓 넘기였으나 처녀들처럼 몸매가 날씬하고 화장을 진하게 한데다가 이러한 사교에 능하여 몸가짐과 언행이 자못 우아한 맛이 있었다. 그 녀자는 성의껏 차린 생일상에서 민순임의 옆에 꼭 붙어앉아서는 민순임이 제집에서처럼 편하게 시간을 보내도록 좌석의 분위기를 재기있게 유도하여 나갔다. 그러면서도 북에서 살던 이야기를 하나라도 더 들으려고 애를 썼다.
저녁상을 물리자 민순임은 부엌에 나가 거둠질을 함께 거들었다.
응접실에서는 자리를 옮긴 정시명과 송호정사이에 인차 시국이야기가 시작되였다.
정시명은 이야기가 북반부에로 곬을 타자 단도직입으로 선언을 하였다.
《난 북의 정치가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정치라고 생각하네.》
송호정이 어리둥절해져 《그래서?!》하고 상대방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래서 난 북의 정치를 따르기로 결심하였네.》
《뭣이? 초야에 묻혀 조용히 살아가겠노라 내앞에서 한 소리는 언제고?》
송호정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조용히 살아갈수 없게 세상사가 찌그러지는데 무위도식할수는 없어.》
《그럼 아직도 공산당하겠는가?》
《물론이지.》
《국방경비대가 북의 공산당과 맞섰다는걸 알지 못하는게 아닌가?》
송호정의 어성이 커지는데 정시명은 여전히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어떻게 하겠나. 우린 팔자가 고약해서 그렇게 맞서가지고도 중국에서부터 이렇게 술상에서는 친구로 되여왔지.》
《빈정거리지 말고 이야기하세. 자네 그러고도 나를 찾아올 체면이 있던가? 국방경비대 사령관집에 말이야.》
송호정의 목소리는 거칠어졌다.
그는 정시명이 중국에서 좌익계에서 활약했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다만 그의 사람됨에 머리를 숙여오며 더없는 벗으로 사귀였을 따름이였다. 그러기에 송호정은 굳이 서울에 온 정시명이 조용히 살아가겠다는 말을 듣고는 안속으로 저으기 기뻐했다. 정시명이 그렇게 살아간다면 그를 평생지기로 삼아 교분을 나누며 의좋게 살아갈수 있으리라는 타산에서였다. 그런데 이 무슨 청천벽력인가. 공산주의를 막아나선 일선대결장의 지휘관인 자기앞에 또 공산주의자의 얼굴로 손을 내미는것을 보자 어쩐지 노여움이 앞서고 서글퍼졌다.
《물러가게. 그리고 얼씬 말게.》 송호정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미닫이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정시명이 열려진 문을 닫아걸고 같이 어성을 높였다.
《자네가 물러가라면 쫓겨날 정향이 아닐세. 자네가 개질을 그만두기 전에는 난 자네를 놓아주지 않겠네.》
《개질?… 내가 개질을 한다구?》
정시명에게는 이미 송호정과의 이날의 사업원칙이 뚜렷이 세워져있었다.
…송호정은 량심적인 인물이다. 그는 의리를 중히 여기며 겨레앞에서 무엇인가 봉사하려는 인간이다. 이런 인간을 애국의 길로 이끄는데는 진실이면 족하다. 송호정이 나를 믿을진대 나 또한 송호정을 믿지 못할 리유가 없다. 이런 인간을 그 어떤 서툰 말재간으로 우롱한다는것은 인간의 의리에 대한 모욕이며 친구의 신의에 대한 배반이다. 개인적우정으로 봐도 그것은 도리에 저촉되는 저급한 소행이다. 일생동안 자기가 뒤에서 봐줄터이니 장사질은 그만두고 소일거리로 남달리 살아온 편력기나 두툼히 써내여 정객들의 머리를 교정시킬 인생독본을 마련하라고 진심으로 권유하던 고마운 벗이다.…
그러기에 정시명은 더구나 참아낼수 없었고 물러설수가 없었다. 오늘은 송호정을 단단히 훈계해서 어떻게 하든지 속대를 바로 세워주어야 되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는 물쏟아 붓듯 거침없는 열변을 토하기 시작하였다.
《그래, 자네는 평생토록 남의 개질을 하고있지. 그래도 장개석의 밑에서 개질한것은 좀 덮어두고 보세. 아무튼 장개석은 일본놈과 헛총질이라도 해본 위인이니 그래도 장개석의 개노릇은 일본놈을 물어뜯은 의로운것도 있었지.
하지만 지금은 양놈의 개질이 아닌가. 자넨 지금 양놈의 개껍데기를 쓰고있단 말이야.》
《양놈의 개껍데기? 국방경비대는 나라의 국방을 지키고있네.》
《국방?… 누구의 국방? 자네 언젠가 이야기한것처럼 미국놈 중령한테 아침저녁 보고하러 다니는것도 일국의 국방을 책임진 사령관이 할짓인가? 자네 한번 강화도에 가보세. 거기 척화비에 서양오랑캐와 화친을 하는것은 나라를 파는 역적행위이니 자자손손 명심하라구 새겨져있네. 그래 지금 미국놈들이 벌려놓는것이 아이들의 유희로 생각되는가?》
《………》
송호정은 더는 대답을 못하고 거친 숨만 내쉬며 정시명을 쏘아보았다. 그는 점점 눈덕이 무거워지는것을 느꼈으나 여전히 표표한 눈빛으로 눈싸움에서 지지 않으려는듯 안깐힘을 다 썼다.
《자네 지금 도대체 어느 놈의 대문을 지키는가. 나라의 허리를 외세가 잘라버렸는데 그래 그놈들의 발밑에서 동강난 나라의 반쪽을 지키겠단 말인가.
나라의 분렬을 고집하거나 거기에 동조하는것이 천추에 지탄받을 역적행위라는걸 자네가 모른단 말인가?》
《… …》
송호정의 눈길이 그만 툭 꺾이여 아래로 접혀들었다. 그러건말건 정시명은 내친 김에 할 말을 해야겠다고 여전히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었다.
《우린 마땅히 나라를 하나로 이어놓고 압록강과 제주도에 국방의 진을 쳐야 하네. 그러면 누굴 믿고 나라를 세우겠는가? 리승만?… 어림도 없네. 그 늙다리가 벌써부터 미국에까지 건너가 남조선에 단독정부를 세워야 되겠다고 로망을 부리고있는걸 자네도 잘 알겠지. 김구?… 어리석은 일이야. 〈림정〉식솔도 거느리지 못해 집안싸움을 그칠새없이 벌리던 김구의 좁은 가슴에 삼천만의 운명을 맡길수 있는가?…
난 심양에서 10월항쟁소식을 들었네. 그 사람들이 무엇을 원했나. 나라의 완전독립을 원했지. 배고파 죽겠다 쌀을 내라고 했지. 나라걱정으로 주먹을 쳐들었던 그 사람들의 가슴에 경비대는 불질을 했지. 천오백의 애국자가 쓰러졌어. 2만 6천이 부상을 당했지. 만오천이 지금도 철창속에 있어.… 뜻있는 사람들은 다 적어놓고 눈에 불을 달고 벼르고있네.》
《그건 자네가 잘 모르고 하는 소리야. 난 국방경비대는 한명도 대구에 보내지 않았네. 국민에게 불질한건 미국과 경찰놈들일세.》
송호정이 비명지르듯 울부짖었으나 정시명은 여전히 무겁게 몰아댔다.
《같고같은 족속이야. 조만간에 경비대도 민중도살에 뛰여들어 칼부림을 하고야 말걸세.》
그 소리에 송호정이 흠칫 놀랐다. 요새 그의 흉중에 맺혀있는 가장 아픈 급소를 찔렀던것이다. 바로 사처에서 압력이 가해지고있었다. 강심으로 그를 막아나서고있다. 정말 어느때까지 버티여낼수 있을가. 그런데 정시명은 남의 사정은 생각도 없이 제일 아픈 구석을 사정없이 찔러만 댄다.
《천만에!》
송호정은 자기의 마음을 다시금 도사려 끝까지 지켜내려는듯 굵고도 단호한 목소리로 반발했다.
《천만에!》
이번에는 정시명이 준절한 어조로 받았다. 그리고 그를 쏘아보며 하던 말을 계속 토해놓았다.
《그래 우리가 무엇때문에 장장 20년 이국땅에 청춘을 묻고 항일을 했나? 가난하고 짓눌리고 천대받던 백의동포를 위해서였지. 그런데 감히 불질을 해? 그렇게도 그립고 그립던 우리 겨레의 가슴에?》
정시명은 마치도 송호정이 방금 그 피비린내나는 살륙장에서 돌아오기라도 한듯 정말 눈에 불을 켜달고 도끼로 장작을 패듯 주먹으로 허공을 연신 내찍었다. 정시명은 자기도 어쩔새없이 치밀어오르는 분노와 통분을 다잡으며 잠시 숨을 가라앉히였다. 다시 차분한 음성으로 타일렀다.
《이보게, 아닌게 아니라 나도 복잡한 시국에 산골에 들어가 부대기나 뚜져먹으며 소일거리나 잡고 조용히 여생을 보내고도 싶네. 일장춘몽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짧으나 짧은 인생을 뭣때문에 소란스럽게 끝낼것인가 하는 생각도 과히 없지는 않단 말일세. 하지만 조국이 통일이냐 분렬이냐 판가리하는 력사의 준엄한 기슭에서 나라고 어찌 은둔하여 살아 가겠나. 그래서 난 다시 민족의 가슴에 칼을 박으려는 자들과 싸움을 선언하고 이렇게 다시 자리를 털고나섰네.》
정시명의 사리정연하고 준절한 질책은 송호정의 가슴에 비수처럼 날카롭게 찔러들었다.
《음-》 송호정은 창자가 끊어지는듯 한 신음소리를 지르며 쏘파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난 가네.》 정시명이 애국의 편으로 그를 끌어들이려던 계획이 예상밖의 랭대를 받게 되자 노여움이 부지지 괴여올라 문을 드르릉- 열었다.
미닫이문앞에는 송호정의 처와 민순임이 찬비맞은 새처럼 오돌오돌 떨며 서있었다.
송호정의 처는 처음에는 그들의 말싸움에 기겁해진 민순임의 손목을 꼭 잡고 안심을 시켰다.
《걱정말아요. 저이들은 맞다들면 꼭 한번은 저렇게 수닭싸움을 벌려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분들이죠. 호호.》
그런데 그 도수가 넘어가자 못내 념려되여 달려왔던것이다. 들려오는 이야기가 주인이 몰리는것이 확연했다. 그 녀자는 중국녀자였다. 송호정과 살면서 남편의 뜻을 따른다고 벌써 중국에서 조선말을 다 익히고 조선치마저고리를 입고 다니던 뜻이 있는 녀인이였다. 녀인은 여늬때없이 격한 정시명의 얼굴을 눈물이 그렁해서 쳐다보다가 속눈섭을 살풋이 내리깐다.
《선생님!… 주인을 용서하세요.》
녀인은 제가 죄를 지은듯 꺼져드는 어조로 용서를 빌었다. 그 눈물 어린 얼굴을 마주하니 정시명의 가슴이 불시에 저려오고 그 녀자가 측은해보였다.
《아주머니, 이거 죄송합니다.》
친구의 마음을 돌려세우지 못한채 쫓겨나오는 자신이 그 녀자앞에서 용렬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어쩌랴. 인간이란 피차에 제 갈길을 타고난 모양이다.
《그런데 그렇게 가시면 어찌하십니까? 주인을 저꼴로 남기고는 못가십니다.》
송호정의 처는 정시명의 두루마기자락을 잡으며 울먹이였다.
《어쩌겠습니까. 우린 인생고초를 다 겪으며 살아온 사람들이니 피차에 강권으로 나선 길을 돌려세우지는 못할것 같습니다.》
정시명은 쓸쓸한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아주머님이 빚는 교즈맛을 보려는 오겠수다.》
송호정의 처는 교즈를 맛나게 빚군 하여 늘 정시명의 칭찬을 들어왔다.
그는 순진한 녀인의 마음을 다소간이나마 위로해주고싶어 허거픈 웃음을 보이고는 대문을 나섰다.
골이 잔뜩 오른 송호정의 앞에는 민순임이 실팍한 어깨를 옹송그리고 죄스럽게 서있었다.
《선생님, 저를 욕해주세요. 우리 주인이 저렇게 성내는건 저도 평생에 처음 봅니다. 용서해주세요. 제가 돌아가서 잘 말씀드리겠습니다.》
민순임이 꺼져드는 어조로 저저히 용서를 비는데 송호정이 고개를 푹 떨구었다.
《사모님, 그런게 아닙니다. 제가 정선생과 한두해 지내봤다구요. 제가 정향선생의 뜻을 간혹 거슬려서 욕을 보군 하지요. 달리 생각지 말아주십시오. 주인말씀은 그른데가 없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송호정은 격한 가운데서도 깊이 사귀지 못한 녀인인지라 도리를 지켜 그의 남편을 내세워주었다.
송호정의 처가 민순임의 손목을 꼭 잡고 뜨락을 나서다가 대문가에서 고개를 외로 꺾으며 집안으로 달려갔다. 등뒤에서 《여보-》하는 녀인의 매운 목소리가 들리더니 현관문 여닫는 소리가 들리였다. 눈물에 젖어 주인을 타매하는 녀인의 목소리가 등뒤에서 들린다.
《당신이 어쩌면… 어쩌면…》